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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화장법
아멜리 노통브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세계사 / 200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몇 년 전 정신병원에 싸이코 드라마를 보러 다닌 적이 있다. 싸이코 드라마는 매주 1차례 열렸는데, 대상자는 매회 2명 정도였고, 방청객은 입원환자들, 나 같은 일반인, 스태프들이었다. 스태프들이 보기에 내 정신세계가 건강해 보였는지 나는 한번도 대상자가 된 적이 없었는데, 싸이코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전문 연기수업을 받은 사람들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놀라울 지경이었다.
무대엔 의자가 놓여있다. 무대는 연극무대와 같다. 대상자에게만 밝은 빛을 비춰준다. 그 속에서 대상자는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그 누군가와 자기 입장을 오가며 정신을 집중한다. 그리고 마음속에 감춰뒀던 상처가 된-입원한 사람이라면, 그 원인이 된-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보인다. 그 중 정말 놀라운 한 사내가 있었는데, 그는 그 병원에 입원한 사람도 아니었다. 어찌 보면, 잠재환자-누구나 정신병자가 될 수 있다고 볼 때-라고 할 수 있는 학생일 뿐이었는데, 그의 흠 잡을 데 없는 감정이입에 혀를 내둘렀었다.
내가 본 싸이코 드라마는 언제나 타인과의 싸움이었다. 중간중간 의사가 던지는 질문을 통해 대상자는 상황에 몰입하게 되고, 격렬한 싸움의 끝에 가슴속의 응어리를 풀어내고, 저 앞에서 밝은 빛이 자기를 환영해 주고 있는 것 같은 벅찬 감정을 맛보게 된다. 싸이코 드라마는 치유의 과정인 것이다.
그럼, 이제 책 얘기를 해보자. 이 책의 독자라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나'와 '적'이란 단어를 이용해 리뷰 제목을 지었는데, 이는 제롬이 자기를 괴롭히고 있는 또 하나의 제롬인 텍스토르와의 싸이코 드라마를 보여준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타고 가야 할 비행기는 오지 않고 자신의 연극을 보아 줄 관객들은 넘친다. 관객 없는 연극은 앙꼬 없는 찐빵과 같으니까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모르겠다.
간간이 몇 번에 걸쳐 나오는 반전상황에서 내 예측이 맞아 떨어져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긴 했지만, 하나의 반전상황에서 또 다른 것으로 옮아가는 과정은 기가 막히다. 속독하는 사람이라면 3시간쯤이면 다 읽을 수 있을 만큼 흡인력이 있고, 게다가 얇기까지 한 이 책을 무려 5일에 걸쳐 야금야금 읽었다. 이런 책은 앉은자리에서 끝내야 제 맛인데... 마지막에 '옮긴이의 말'을 읽으며 더욱 큰 공감을 했다. 옮긴이의 말이 이 책의 가장 잘 된 리뷰가 아닐까 싶다. 아멜리 노통브 만큼이나 시원했다.
그래,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잘 다스리고 볼 일이다. 이것이 내가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다소 우습겠지만, 받아들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