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性)에 대해서 열려 있는 편이다. 내게는 이성애와 동성애가 똑같고, 바이섹슈얼, 에이섹슈얼도 마찬가지이다. 한 인간이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람의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 그 사람이 사랑할 만한 사람이라면 사랑할 수 있고 이는 곧 섹스할 수 있음을 뜻한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이 합의한 상황이라면 그 둘 사이에(또는 셋, 또는 넷 혹은 그 이상) 어떠한 성적 유희를 즐기더라도 그것은 그들 사이의 일이므로 타인이 관여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내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성적 지향(이것을 성적 지향이라고 말하는 것조차 과연 온당한가 싶은데)이 있으니, 페도필리아, 즉 소아성애이다. 이 둘 사이에선 ‘합의’라는 게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명백히 착취와 피착취의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동물성애도 마찬가지이다. 동물과 인간이 ‘합의’해서 섹스를 할 수 있다고? 난센스다. 그러므로 동물성애(주필리아Zoophilia)도 내게는 소아성애와 마찬가지였다. <성스러운 동물성애자> 를 읽기 전에는.
성(性)에 대해 열려 있어도 나름 순진한(?) 잠자냥은 수간(bestiality)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아니, 동물과 인간이 섹스를 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런 인간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 책의 해제에서 정희진 쌤이 언급한 바로 그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이 영화를 볼 당시 나는 꿈 많은 20대였는데, 영화 속에서 수간을 처음 접하고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환멸과 구토가 밀려와 며칠 내내 식음을 전폐했다. 영화에서는 경제적으로 결혼할 수 없는 최하층 남성이 욕구를 참다못해 흰 개를 덮친다. 아아, 그 흰 개는 잊히지도 않아..... 내게 <나라야마 부시코>는 인간이 살기 위해 자기 부모를 산 채로 내다버릴 수 있는 존재라는 것보다 인간이 제 욕망을 위해 다른 종의 동물을 강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준 충격적인 영화였다. 그런데 동물성애라니, 동물성애에 성(聖)스럽다는 표현을 쓰다니, 오오오, 이런 빌어먹을 책이 다 있나.
이 책에 대한 소개는 일목요연하게 은오 님이 잘해주셨기에 내가 따로 또 정리할 필요는 없을 듯하고, 책을 읽으며 들었던 충격과 고민의 지점들을 두서없이 적어나가려고 한다. 먼저 이 책이 나오기까지의 배경이 뜻밖이었다. 이 책의 저자는 성폭력 피해자이다. 20대 초반부터 거의 10여 년 가까이 파트너로부터 성폭력을 당해서 정신이 너덜너덜해진 상태이다.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결혼까지 하는 모험을 강행해서 마침내 양가 부모에게 남편의 폭력 사실을 알리고 이혼하는 데 성공한다. 가정폭력과 성폭력 피해자들의 시위에도 나가보고 갖은 노력을 해보아도 상처는 쉬이 극복되지 않고, 인간에게 사랑과 섹스가 무엇인가? 질문하고 답을 찾아 헤매던 끝에 대학원에 들어가 문화인류학을 전공하고 그러다 동물성애자들을 논문 주제로 삼게 되고, 그들을 만나기 위해 세계 유일의 ‘동물성애자 옹호단체’ 제타(ZETA)의 멤버를 찾아 독일로 떠나 몇 개월 동안 각양각색의 주파일(동물성애자)들과 생활한다.
일단 처음에 헛웃음이 나왔던 장면은(나는 너무 충격적인 것을 보면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오는데 아마 극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내 몸 나름대로의 방식인 것 같다), 주파일들이 대부분 자신의 반려 동물을 ‘파트너’라고 명명하고 아내 혹은 남편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주파일 안에서의 성적 지향도 이성애&동성애자들 사이의 관계처럼 매우 다양하다. 남성이 수컷 동물을 사랑하면 주파일게이, 여성이 암컷 동물을 사랑하면 주파일레즈비언, 그 사이에서도 패시브와 액티브 파트로 또 나뉘는데(오 마이 갓... 읽고 있기 힘들죠? 그래요. 그래도 참아 봐요. 쓰는 나도 괴롭네요.) 쉽게 말하면 공수(攻受 BL에서 이런 말 씁디다) 탑/바텀의 개념이다. 여기서 일단 헛웃음이- 그러다가 받는다고? 받는다고? 하고 동공지진이 일어났다.
저자가 찾아간 첫 번째 주파일 ‘미하일’도 그렇지만 제타의 다수가 압도적으로 남성이다. 여기서 나는 은오 님이 그랬듯이 그러면 그렇지 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놈의 곧휴들이 문제다. 은오 님 표현을 따르자면 아니 시발 이젠 넣다, 넣다 동물들 똥꼬에다까지 넣어야 하냐! 욕이 처 올라왔다. 그런데 동공지진한 부분, 수컷 동물을 성적 대상으로 두는 주파일게이 대부분이 수컷 개를 받아들이는 섹스를 하는 패시브 파트였다는 것이다. 아니 개한테........응...ㅠㅠ 도대체 왜..... 그냥 동물이 좋고 예쁘면 우쭈쭈 사랑해주라고, 울렁울렁하는 지점인데 이 주파일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묘하게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내가 무엇보다 간과했던, 아니 애써 잊고 살려고 했던 것은 동물도 성적 욕망을 지닌 존재라는 사실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늘 개와 함께 살았다. 주로 소형견(다행이다.........)이라 덮침을 당할; 일은 없었지만 개들도 뭔가 이상한 짓을 한다는 걸 알고는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곧휴가 나온다거나 인형 같은 것에 붕가붕가를 한다거나 등등. 한번은 집 마당에서 기르던 수컷 개가 수컷 마당 냥이를 올라타고 붕가붕가하는 걸 보고(최초의 다른 종끼리의 교합 목격) 어린 마음에 크게 충격받았던 적도 있다. 그 후로 그 개가 싫어졌다. 내가 어릴 때는 이렇게 개를 중성화한다는 걸 어른들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내에서 키우게 되면서는 중성화를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그때쯤에 나는 또 속으로 인간이 자기 마음대로 자기 키우기 편하자고 개를 거세하는 게 잘하는 짓인가? 삐딱한 마음이 들었다(붕가붕가하는 개도 보기 싫다면서 중성화도 반대하는 나도 참 어처구니 없다). 개를 키우는 동안은 중성화에 대해 부모님이 선택권이 있었으므로 이렇게 좀 삐딱하게 생각했는데....
문제는 내가 고양이를 키우면서부터였다. 1호부터 3호까지는 모두 수컷으로 내가 직접 데리고 가서 중성화를 했다. 4호부터 6호까지는 모두 암컷, 녀석들은 길에서 TNR(Trap-Neuter-Return 각 지자체에서 길냥이들 개체 수 조절을 위해 포획하고 중성화하고는 다시 방생한다. 중성화했다는 표시를 위해 한쪽 귀 끝을 살짝 자른다. 우리 4호~6호 귀가 조금씩 잘린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했다. 고양이는 알다시피(?) 수컷이나 암컷이나 발정이 나면 답이 없다. 울고 난리가 난다고. 우리 숫냥이들은 울어대기 전에 마킹 같은 걸 하는 낌새가 보여서 바로 데리고 가서 했다. 그런데 결국 이것은 인간이 편하자고 하는 짓이 아닌가? 길냥이 개채 수 조절을 위해 TNR하는 것도 그렇다. 길냥이를 돌보면서도 이 문제는 늘 나를 괴롭혔다. 인간은 이 지구의 신(神)인가? 자기의 편리함을 위해 다른 종의 개채 수도 조절하고, 거세도 한다. 얼마나 이기적 존재인가. 인간보다 더 우위에 있는 다른 종이 인간 너희는 개채 수가 너무 많으니 중성화하고 그 표시로 귀를 커팅하고 다시 이 지구에 방생해주겠다! 그런데 어디다 방생할지는 랜덤이다! 한다고 생각해 보라. 이 얼마나 잔인하고 오만한 행위인가. 그런데 나도 거기에 동참한 것이다.
가끔 집사 2와 우리 집 녀석들을 보면서 농담처럼 저 녀석들은 태어나서 한 번도 못해보고.......(아니 왜 여기서 갑자기 떠오르는 인물이...) 자기 자식도 못 낳아보고(4호 제외) 안쓰럽다.... 할 때가 있다. 그러다가도 무한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면서 상태가 나빠져서 죽어가는 암컷 고양이들을 보면 아니야, 아니야 고개를 가로젓기도 한다. 집에서 중성화하지 않고 키운다면 우리 집 같은 경우엔 새끼가 무한정..............................@_@ 그래서 중성화가 있기 이전의 시절에는 태어난 새끼를 물에 빠뜨려 죽이기도 했다(도리스 레싱 <고양이에 대하여>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중성화를 하든, 중성화를 하지 않고 개채 수를 조절하든 인간이 제멋대로 다른 종의 성적 욕구와 재생산 권리를 쥐락펴락한다는 점은 여전히 오만하다. (나 반성해라.....네.)
그런 점에서 이 책에 나오는 대다수 주파일들은 동물의 성적 본능과 욕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받아(!)들여준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온몸(제 항문)으로 받아들여준다. 하- 정말 그 애정과 사랑이 성聖스럽다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하, 시발 그래도 그럴 것까지야.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요”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파트너 개의 마스터베이션을 도와주기도 하는데(하...............) 이것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키우던 개들이 인형 붙잡고 붕가붕가하고 있으면 소리 지르면서 신발부터 던져버렸는데 말이다. 지금도 가끔 울집 수컷냥이들이 엉덩이 주변 그루밍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고 하찮은 곧휴가 좀 삐져나올 때 있는데 그럴 땐 “야, 이놈아 집어넣어!” 버럭한다. 그러나 얘네들은 몰라요..... 응? 뭔 소리야? 하는 표정. 하지만 이 녀석들도 분명 성적 욕구가 있지 않겠는가. 수하 님이 댓글로 달았듯이 고양이들은 궁디팡팡해주다 보면 좀 느끼.....는 거 같고 그러면 나는 녀석들을 아니야, 아니야 저리 가 밀어버리는데... 이 아이들의 욕망을 거세한 나에게 또 자책감이 들다가도, 그렇다고 내가 저 주파일들처럼 해주고 싶은 마음은 1도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녀석들은 내게 귀엽고 귀여운 새끼 같은 자식들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바로 이 지점도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왜 인간은 동물을 ‘펫’으로만 대하는가.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삼았을 때 대부분은 자식으로, 그러니까 아이와 같은 존재로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들이 제 자식의 성적 욕구를 어느 시기까지는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반려동물인 개나 고양이의 성적인 욕구를 애써 외면하거나 거세함으로써 그런 욕망을 차단하고자 한다. 영원히 넌 순진한 나의 새끼로만 있어줘 하는 것이다. 성적 본능이 없는 귀여운 존재로서만 있어주기를 ‘인간’ 그 자신을 위해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주파일들은 파트너인 동물에게 ‘퍼스낼러티(personality)’를 느끼며 대등한 관계를 꿈꾼다.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기 때문에 훈육도 하지 않는다. 이런 점들을 읽다 보면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동물해방자이자 동물애호가들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지만 하 그래도 시발 섹스까지 할 필요는......
다행스러우면서도 의아한 점은 왜 고양이는 파트너로 삼지 않는가 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주파일들은 개와 말을 파트너로 삼는다. 개 중에서도 소형견은 안 되고 주로 대형견(저먼셰퍼드, 로트와일러, 도베르만처럼 인기 있는 종이 따로 있더라)과 말을 파트너로 삼는다. 몸집과 성기 크기 때문이다. 고양이를 키워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 하찮은 크기 어쩔........ 하지만 다행이야. 정말 사랑한다. 녀석들아 너희들 앞이빨처럼 곧휴도 하찮아서 정말 다행이야. ㅠㅠ 말을 파트너로 삼는 사람은 농장도 있어야 하고 등등 주로 재력가인 경우가 많아서 신분이 알려지길 꺼려해 극히 조심한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결정적인 의문이 드는 것이다. 그놈의 성기. 그놈의 페니스. 종과 종을 뛰어넘는 사랑 운운하지만 결국 그 종과 종의 결합에서도 중요한 것은 성기 크기(삽입과 삽입당하는 사이)의 조합이 어느 정도 맞아야지만 가능한 것이다. 이는 결국 종을 뛰어넘은 이들조차도 페니스 중심의 섹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그래서 너는 뭘 바라는 건데!?).
동물의 성기를 삽입당하는 주파일게이들은 자신을 수간충들과 동일시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런데 동물의 성기에 삽입하는 쪽인 액티브들은 말을 아낀다. 이들은 동물이 원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 물리적으로 상처를 받을만한 동물에게는 하지 않는다 등등의 말을 하기는 하지만 수간충과 주필리아 액티브를 구분하기란 모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말에게 삽입 섹스를 한 인간이 성기 크기 때문에 (인간의 작은 곧휴 <말 성기) 말은 상처입지 않을 것이라고 자위하는 부분도 어불성설처럼 느껴진다. 그토록 동물 중심으로 생각하는 그들이지만 동물이 상처를 받을지 안 받을지는 단순히 페니스의 크기 차이로 판단한다는 말인가? 어떤 점에서는 보통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한 단계 뛰어넘은 그들이지만 그럼에도 남성 페니스 중심의 세계관에 여전히 갇혀있다는 한계가 엿보이는 지점이다. 물론 주파일 중에는 동물과 섹스하지 않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다만 그들은 동물을 대등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그들의 욕구, 식욕처럼 성욕도 존중한다는 데 방점을 둔다. 그렇다면 결국 모든 종과 종 사이에서 참 사랑은 나 아닌 다른 대상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받아들이되 섹스는 하지 않는 에이섹슈얼이 정답인 것인가..... 인간에게 그놈의 성(性), 섹슈얼리티란 과연 무엇인가 결국 인간으로 돌아와 다시 질문하게 만드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