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원래 책을 읽고 리뷰를 안 씁니다. 그저 책을 읽다가 뭔가 떠오르면 그걸 제 경험과 엮어서 주저리주저리 하는 글을 가끔씩 끄적일 뿐입니다. 왜냐? 리뷰를 쓰려면 읽은 내용을 구조화하고 정리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머리를 써야 하기 때문이죠. 저는 머리를 쓰기 싫습니다. 머리를 쓰는 건 다른 일들로도 벅차고, 단순 취미인 독서와 글쓰기는 제게 강제하는 사람이 없으므로 저의 머리를 굴리기 위한 동력이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제가 이런 기괴한 책을 발견해서 북플의 친구분들께 알렸고, 저는 이 책을 가장 먼저 읽은 사람이 되었고, 여러분들이 관심을 보이시면서 리뷰를 써달라! 내가 돈 주고 사서 읽긴 싫다! 하시기에, 제게 갑자기 이상한 책임감과 사명감이 부과되는 바람에, 이렇게 리뷰를 씁니다. 그래도 쓰기 귀찮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므로 의식의 흐름대로 그냥 갈길 겁니다.
어쨌든 이 책의 제목과 소개를 읽어보면 정말 해괴망측한 책이 아닐 수 없습니다. 넌 이 책을 왜 읽었냐? 하고 물으신다면, 일단 그 해괴망측한 주제가 저의 흥미를 끌었고, 저는 저의 고정관념을 깨부수고 가치관을 뒤흔드는 책을 좋아합니다. 이 책이 그런 경험을 만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아주 조금 들었습니다. 그런 코딱지만한 기대감을 가지고 구입했기 때문에, 사실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에도 이 책이 동물과의 섹스에 대한 제 기존의 생각을 바꿀 수 있으리라 예상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제 생각은 바뀌었습니다. 띠용.
제가 편견 없이 세상을 보려고 가끔(솔직히 항상은 아님) 의식적으로 노력하기는 하지만, 동성애에 대해서도 아무런 생각이 없는 사람이지만, 아니 뭐 동성을 좋아할 수도 있고, 동성끼리 섹스할 수도 있고, 같은 인간끼리 성별이 중요해? 하는 사람이지만, ㅅㅂ 그래도 동물은 좀;; 그렇잖아요? 하지만 이러던 제가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뒤 음... 그럴 수도 있겠네, 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저 말고 저자는 어쩌다 동물성애자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요? 저자는 성폭행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겪으며 사랑과 섹스에 대한 회의와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결국 대학원에 진학해서 이를 학문적으로 연구해 보기로 결심하고 문화인류학을 전공으로 선택합니다. 연구대상을 고민하던 저자에게 지도교수는 수간을 제안합니다. 물론 저자가 그 제안을 바로 받아들인 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라면 하고 싶겠습니까? 전 싫어요.
그럼에도 저자는 독일의 세계 유일의 동물성애자 단체 '제타'의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고, 이것이 저자가 동물성애자들을 연구대상으로 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또 저자는 동물과의 섹스라는 극단적인 사례를 통해서 사랑과 섹스에 대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을 본 겁니다.
저자는 연구를 위해 제타의 회원들을 만나서 이들의 집에 머무르며 일상을 함께 보냅니다. 따라서 피상적이지 않은, 보다 깊이 있는 관찰이 가능했습니다. 읽다 보면 이들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점차 변화하는 것이 느껴지는데, 읽는 저도 변하고 있음을 자각하고 놀랐습니다. 솔직히 1/3 가량 읽을 때까지만 해도 시발 시발 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 조용해졌습니다. 의문이 점차 풀리기 시작했던 겁니다. 대상에 대한 의문이 사라지면 역겨움도 조금씩 가시게 마련입니다. 여러분들과 저의 의문이 같을 것이라고 제 마음대로 상정한 채로, 의문이 조금씩 해결되어 갔던 과정을 적어보겠습니다.
먼저 수간과 동물성애를 구분하고 갈 필요가 있습니다. 수간은 동물과의 섹스 그 자체를 가리키는 용어로, 때로는 폭력적인 행위까지 포함합니다. 동물성애에 있어서는 동물과의 심리적 애착 유무가 중요합니다. 나아가 동물성애자는 '주파일(zoophile)'이라 칭합니다.
제타 회원들은 주로 온라인으로 모임을 가지며 남성이 압도적 다수라고 합니다. 여기서 저는 그럼 그렇지 이미친변태이상성욕독남충새끼들!!! 하며 급발진했지만, 저자는 여성이 온라인상에 자신의 성적 취향을 드러냈을 때, 심지어 그 취향이 주파일일 경우, 여성 주파일이 겪을 위험과 모욕의 가능성을 지적합니다. 그럴 듯합니다. 한남이든 독남이든 남성들이 온갖 더러운 쪽지를 보내거나 댓글을 달 것이 분명합니다. 저는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도태된 독남충들이 인간 여성과 섹스하는 게 어려우니까 동물에게 눈을 돌려서 성욕을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읽다 보니, 적어도 저자가 만난 주파일들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이들의 파트너(파트너 또는 아내, 남편이라고 부름)는 거의 개 또는 말입니다. 여기서 또 저는 의문을 갖습니다. 왜 개와 말이냐? 정말 동물을 사랑한다면 뭐 고양이도 사랑할 수 있고, 지렁이도 사랑할 수 있고, 금붕어도 사랑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왜 다양성이 없냐?
이들은 파트너의 '퍼스널리티'를 사랑한다고 합니다. 내내 이들이 언급하는 게 퍼스널리티입니다. 이들에게 파트너의 퍼스널리티는 '캐릭터'와는 다르다고 말하는데, 캐릭터가 동물 저마다가 지닌 특유의 성격이나 성질을 의미한다면, 퍼스널리티는 자신과 동물간의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 개념이라는 겁니다. 이는 관계의 특별함이고, 사적인 역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퍼스널리티가 형성되려면 파트너는 어느 정도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동물이어야 합니다.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동물 중에서 개와 말이 역사적으로 인간과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온 동물입니다. 그럼 고양이는? 고양이는 작아서 안 된다고 합니다. 이들은 수간충들과 같이 묶이는 것을 매우 혐오하고 본인들이 동물을 학대하지 않음을 강조하기 때문에, 체격차를 중시합니다. 따라서 소형견도 파트너가 되지 않습니다. 벌레는 당연히 안 됩니다. 이들은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동물 일반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보이기는 하지만, 벌레는 아닙니다. 주파일도 파리는 죽이더랍니다.
주파일 한 사람당 파트너는 거의 한 동물입니다. 그 동물의 퍼스널리티를 사랑해서, 그 동물이 아니면 안 되기 때문에, 그 동물이 '파트너'인 겁니다. 파트너 외에 자신이 키우는 동물들은 그저 '펫'일 뿐입니다.
동물과 섹스를 하면 안 되는 가장 큰 이유로 동물은 말을 못한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동물은 말을 못하기 때문에 동물이 섹스를 원하는지 아닌지 인간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들은 파트너가 배가 고프다거나 놀아달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섹스를 원한다는 것을 명확히 표현한다고 말합니다. 인간이 반려동물을, 비유하자면 아이와 같이 여기기 때문에, 동물의 성욕을 터부시하고 그로 인해 동물이 보내는 성적 신호를 무시해버리거나 알아보지 못하는 것일 뿐이라고요. 그래서 이들은 파트너가 보내는 성적 신호에 대해 이야기하고, 저자가 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직접 그것을 보기도 합니다. 저는 읽으면서 납득이 됐습니다. 자세한 건 읽어보시라.
아니, 그래도 사람의 성기를 동물에게 삽입하는 건 너무 폭력적인 것이 아닌가? 제타에는 수컷을 대상으로 하는 주파일 게이가 과반수, 주파일 게이는 모두 패시브 파트였습니다. 패시브 파트가 뭐냐? 액티브와 패시브가 있습니다. 주파일 게이 패시브는 수컷 동물에게 삽입을 받는 위치인 겁니다. 물론 액티브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주파일 안에서도 액티브는 논란의 대상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패시브가 추궁하는 쪽인겁니다. 저자도 액티브는 2명만 만날 수 있었는데, 일반적으로 우리가 수간충을 생각할 경우 액티브가 떠오르기 마련입니다. 패시브보다 질타를 받을 가능성이 월등히 높은 까닭에 액티브는 스스로를 잘 드러내지 않으려 하고, 저자의 인터뷰도 거부했습니다. 책에서 액티브의 사례가 적어 아쉽긴 합니다.
또 이들은 공통적으로 섹스를 위해 동물에게 성적인 트레이닝을 해서는 안 된다는 윤리관을 강조합니다. 말인즉슨, 유도하거나 가르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동물이 어떻게 항문에 삽입을 하냐? 저도 궁금했는데, 안 가르쳐도 그냥 바지만 내리고 엉덩이를 보이면 된다고 합니다. 물론 그렇게 했을 때 동물의 삽입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고요. 그런 경우엔 안 한다고 합니다. 가르칠 수는 없으니까.
아니 시발 그래도 동물이랑 꼭 섹스를 해야 하냐? 저도 존잘 무성욕자가 이상형인 사람으로서 사랑과 섹스는 별개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아니잖아요? 사랑하면 섹스도 하고 싶고 뭐 그런 거잖아요? 존중합니다. 이들은 상대가 동물이라고 다를 바 없는 겁니다. 우리는 반려동물을 동등한 대상으로 보지 않습니다. 반려동물은 우리가 보호하고 귀여워하는 대상일 따름입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파트너는 "동등한 대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물에게 성적 욕망을 느끼기도 하고, 동물의 성적 욕망을 무시할 수가 없는 겁니다. 요컨대 이들에게 동물은 "인간과 대등하며, 인간과 마찬가지로 퍼스널리티를 가진 존재, 섹스의 욕망 역시 가진 생명체"(239쪽)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트너와 섹스를 하지 않는 주파일도 꽤나 존재합니다만, 자위는 일반적으로 대신 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동물을 존중하는 만큼 동물의 성욕 또한 존중하니 말입니다.
저자와 함께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들의 일상을 지켜보면 이들에게 동물과의 섹스는 동물과의 관계성보다 중요한 것이 아님이 느껴집니다. "주파일이라는 말이 '동물과 섹스하는 존재'와 반드시 동의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독일에서 이해했다. 그들은 섹스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내가 만나온 주파일은 동물의 삶을, 성의 측면까지 포함하여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정의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240-241쪽)
사실, 저자가 만난 제타 회원들이 모든 동물성애자를 대변하는 존재는 아닙니다. 책의 제목인 '성스러운 동물성애자'는 제타 회원들을 지칭하는 것인데, 이는 저자가 제타에서 문제가 되어 탈퇴한 회원을 인터뷰했을 때, 그가 제타 회원들을 성인군자라고 조롱하듯 말한 데서 나온 겁니다. 제타 회원들은 독일의 주파일 중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거니와 주파일 중에서도 엄격한 윤리관을 갖고 동물을 대하는 집단이라는 겁니다. 이런 맥락에서 나온 말이지만, 저는 적어도 저자가 만난 제타 회원들에 한해서는, 이들을 성스러운 동물성애자로 명명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레 생각해 봅니다.
"미하엘은 더듬더듬 이야기하지만,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는 사람이다. 말이 끊길 듯 이어지는 게 처음에는 그의 성격 탓이려니 했다. 하지만 시간을 함께 보내는 동안, 그가 나보다는 동물들에게 더 주의를 쏟고 있음을 깨달았다. 케시의 섬세한 움직임이나 고양이의 시선에 끊임없이 집중하고 있었다. 때때로 말을 중단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대개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 반려동물이 말썽을 부리지 않는 한 특별히 상대하지 않는다. 개는 인간의 대화에는 끼어들지 않는다. 하지만 미하엘과 개와 고양이는 빈번히 눈을 맞추며, 종종 서로를 지긋이 쳐다본다. 만약 그들의 시선 교환을 실로 이어보면, 몇십 분 만에 촘촘한 그물코를 지닌 망이 방 한가운데 펼쳐질 것이다. 그 그물망 안에 있는 나까지 개와 고양이와 서로 뒤얽혀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 공간은 독특했다. 주파일의 집에서는 인간과 동물이 함께, 그리고 완벽히 동등한 강도로 존재하고 있었다."(65-6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