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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家具의 힘

 

                                                                       박형준

 

얼마 전에 졸부가 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나의 외삼촌이다

나는 그 집에 여러 번 초대받았지만

그때마다 이유를 만들어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어머니는 방마다 사각 브라운관 TV들이 한 대씩 놓여 있는 것이

여간 부러운 게 아닌지 다녀오신 얘기를 하며

시장에서 사온 고구마순을 뚝뚝 끊어 벗겨내실 때마다

무능한 나의 살갗도 아팠지만

나는 그 집이 뭐 여관인가

빈방에도 TV가 있게 하고 한마디 해주었다

책장에 세계문학전집이나 한국문학대계라든가

니체와 왕비열전이 함께 금박에 눌려 숨도 쉬지 못할 그 집을 생각하며,

나는 비좁은 집의 방문을 닫으며 돌아섰다

 

가구란 그런 것이 아니지

서랍을 열 때마다 몹쓸 기억이건 좋았던 시절들이

하얀 벌레가 기어나오는 오래 된 책처럼 펼칠 때마다

항상 떠올라야 하거든

나는 여러 번 이사를 갔었지만

그때마다 장롱에 생채기가 새로 하나씩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집의 기억을 그 생채기가 끌고 왔던 것이다

새로 산 가구는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이 달라졌다는 것만 봐도

금방 초라해지는 여자처럼 사람의 손길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먼지 가득 뒤집어쓴 다리 부러진 가구가

고물이 된 금성 라디오를 잘못 틀었다가

우연히 맑은 소리를 만났을 때 만큼이나

상심한 가슴을 덥힐 때가 있는 법이다

가구란 추억의 힘이기 때문이다

세월에 닦여 그 집에 길들기 때문이다

전통이란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것 -

하고 졸부의 집에서 출발한 생각이 여기에서 막혔을 때

어머니의 밥 먹고 자야지 하는 음성이 좀 누그러져 들려왔다

너무 조용해서 상심한 나머지 내가 잠든 걸로 오해하셨나

 

나는 갑자기 억지로라도 생각을 막바지로 몰고 싶어져서

어머니의 오해를 따뜻한 이해로 받아들이며

깨우러 올 때까지 서글픈 가구론을 펼쳤다.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문학과 지성사)

 

  ** *       이 가난한 시인과 어머니 사이에 서글픈 '가구론'이 들어와 앉아 있는 이 시를, 안도현은 액자시라 부른다.  이 시를 읖조리면, 중얼대면서도 가난한 젊은 아들을 안스러워하는 어머니의, 자글거리는 눈가에 매달려 있는,  어쩔 수 없는 사랑이 보인다.

 

명절이면 으레 긴장이 되곤 한다. 이레저레 신경 쓰이는 것들이 있고 거추장스럽기도 하다.  아래 위로 챙겨야할 것이 많은 것도 바로 우리가 주역이기 때문이라 생각하라는 어느 분의 이야기를 힘으로 삼고 이번 설연휴를 출발했다. 시댁식구들과 이틀, 친정엔 23일에 갔다. 

이번 설은 대한과 함께 정말 설답게 추워서 쌉싸름한 공기를 코로 들이키며 좁다란 계단을 조심해서 밟으라며 아이들을 앞세워 올라갔다. 둘다 한복을 곱게 입고선 치맛자락을 한껏 올려잡고 올라가는 모습이 참 많이도 컸다 싶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트집이 났다. 집이 냉골이었기 때문이다.  이 추위에 기름보일러 아낀다고 제대로 안 켜고 계신 것 같았다. 수도관은 얼어서 만 하룻동안 수돗물도 못 썼다고 한다. 발바닥이 얼 것 같았다. 엄마의 명요리,  만두(올해는 며느리랑 함께 빚었다)가 나왔지만 몸이 풀리지 않는다.

엄마의 아들(나의 막내 동생)은 가난하다. 엄마 눈에 보이는 상대적인 기준으로,  당신은 그 점이 못내 안스럽다. 생전 별로 그렇지 못한 성미의 엄마가 이것저것 챙겨먹이려는 모습이 왠지 낯설고서글펐다. 평소 닦달하곤 했던 점이 아들에게 미안해서이겠지, 하면서 엄마의 눈가에 자글자글 그어지는 주름이 난 끼어들 수 없는 경계선처럼 느껴졌다. 내가 맘을 풀지 않고 있어서이겠지, 하면서도 이젠 정말 늙어가는 엄마와 아빠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보고 화가 나는 건 또 무슨 일인지...

동생은 시인은 아니다. 하지만 가난한 젊은 아들 며느리와 함께 사는 엄마 집에는 오래된 가구가 많다. 그리 비싼 가구들도 아니다. 가구란 추억의 힘이라고 시인은 짐짓 위안하고 있지만, 그리 추억할 만한 생채기가 묻어있는지 잘 모르겠다. 작년 여름 이사하면서 정말 생채기가 나 있었던 가구들을 대거 처분했다. 엄마에게 준 식탁과 장식장, 동생에게 준 소파와 거실장, 동서에게 준 5단 서랍장... 11평 연립주택에서 시작한 나와 남편의 집은 결혼 14년만에 6배정도로 불어났다.

엄마는 재수 좋은 가구 한 개쯤은 남겨두라는 말을 하며 새 것을 사들이는 맏딸을 불편한 눈으로 보셨다. 이래저래 걸리는 것들이 있어 내 원하는 기준으로 구입하지 않은 걸 후회하는 맘도 요새는 조금 있다. 만두국을 먹으며, 우리 사회에 빈부의 격차가 갈수록 더해질 것이라는 남편의 말이, 엄마 아빠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박히는 소리가 들렸다. 어떨 땐 고의적이다 싶게 눈치가 없다.  이제 완전히 생퉁맞게 삐죽거리며 뒤틀리기 시작한다.  너무 민감하다 싶은 내가 또 거추장스럽다.

엄마가 서실로 쓰는 방에 들어갔다. 월간 서예를 비롯해 붓글씨와 사군자에 대한 자료와 책자, 그리고 파일에 차곡차곡 정리해 둔 연습글자들을 보았다. 왜 이제야 눈에 들어왔는지, 나도 참 무심하다. 엄마가 오랜 세월 한 우물을 파고 계신 것인데, 좀더 관심을  가져야겠다. 작가로 데뷔도 하셨으니 다음 기회엔 커다란 꽃다발과 함께 격려의 웃음이 담긴 편지라도 드려야겠다. 냉방의 서실에서 움츠린 어깨로 붓을 잡고 연습하는 엄마에게 따스한 힘 한번 제대로 실어주지 못한 못난 딸이다.

엄마의 가구에는 '상심한 가슴을 덥힐 때가 있는' 힘이 있을 법하다. 매달리고픈 소망이기도 하다. 가구란 '세월에 닦여 그 집에 길들기 때문'이라고 시인은 생각을 몰아간다. 엄마의 손때가 묻었을 낡은 책상과 문방구, 아빠가 여태껏 쓰시는 스테인레스스틸 재떨이(원래는 보온 도시락)가 올라앉아있는 이동식 원목 테이블 같은 것들이, 훗날  이런 저런 이유로 상처 입은 내 가슴을 덥혀줄 때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추억의 힘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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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박형진

 

풀여치 한 마리 길을 가는데

내 옷에 앉아 함께 간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언제 왔는지

갑자기 그 파란 날개 숨결을 느끼면서

나는

모든 살아 있음의 제 자리를 생각했다

풀여치 앉은 나는 한 포기 풀잎

내가 풀잎이라고 생각할 때

그도 온전한 한 마리 풀여치

하늘은 맑고

들은 햇살로 물결치는 속 바람 속

나는 나를 잊고 한없이 걸었다

풀은 점점 작아져서

새가 되고 흐르는 물이 되고

다시 저 뛰노는 아이들이 되어서

비로소 나는

이 세상 속에서의 나를 알았다

어떤 사랑이어야 하는가를

오늘 알았다.

                                                  <바구니 속 감자싹은 시들어가고> (창작과비평사)

    박형진 시인은 지금도 전북 변산의 그트머리 모항이라는 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산다고 한다.

 

1월 6일과 7일, 아이들을 데리고 생협에서 마련한 어린이 친환경캠프를 갔다왔다. 경북 상주로 세시간 가량을 달리는 동안, 옆에 앉은 친구랑 얘기하면서 버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간간이 보았다. 가지만으로 버티고 섰는 나무들에서 근육질의 생명력을 보았다. 예상만큼 춥지 않아 논에 물 뿌려 얼음판 얼려 놓고 그 위에서 옛날식 썰매 만들어 놀기로 한 건 완전 물거품이 되었다. 짱뚱이 시리즈에 나온 바로 그걸 타 볼 수 있겠다고 펄쩍펄쩍 뛰어오르며 좋아했던 큰아이는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다.

상주로 들어와 어느 폐교를 고쳐 환경학교로 만들어 놓은 아담한 건물 운동장에 버스는 우릴 풀어놓았다. 입교식을 하고, 환경을 생각한 세제와 일반세제를 각각 다른 어항에 풀어넣고 금붕어를 넣었다. 어휴~ 불쌍한 금붕어. 결국 두마리 금붕어는 시간을 달리 하긴 했지만, 아가미에 피를 머금고 물에 둥둥 떠 있었다. 그리고 햄버거와 청랑음료의 비밀에 대해 공부하고 청량음료의 당도를 측정해 보기도 했다.  미리 준비해 간 얼레로 연도 만들었다. 일부러 도와주지 않았는데 아이들은 혼자 힘으로 그런대로 잘 만들었다. 잘 날아 오르지 않아 속 상해 하는 아이에게 그곳 생산자 아저씬 자기가 만든 멋진 연을 선뜻 주며 날아 올리는 쾌감을 맛보게 해 주셨다.

쓱쓱 닦아 껍질째 먹는 사과를 아삭아삭 베어 먹으며,  굴렁쇠 돌리기, 재기차기, 줄다리기, 그냥 먼 산 바라보기를 하였다. 코로는 감자, 고구마 굽는 냄새가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장작불에 감자와 고구마를 호일로 싸서 넣고, 또 한 쪽에선 돼지 바비큐를 준비하고 있었다. 스트레스 받지 않고 항생제도 먹이지 않은 건강한 돼지, 농약이나 제초제를 주지 않고 키운 먹거리라 생각하니 개운했다. 곶감은 또 어떻고. 깨끗하고 적당히 달고 맛있어, 자꾸 먹고 싶어졌다. 변비 따윈 걱정 접어 두자고. 

이 곳에 와서 건강한 먹거리 재료로 만든 소박하고 깨끗한 음식을 주니(우리 엄마들이 당번 정하여 주방에서 만들었다), 아이들도 편식을 언제 했나 싶게 잘 먹었다. 그곳 그루터기 생산자들이 마련한 먹거리와 놀거리 모두, 심심한듯 무심하게 둘러 서 있는 그곳 풍경들처럼 그랬다. 수수하고 은근한 맛이랄까.

또 한 가지!  상주는 자전거 도시란다. 다음 날, 집으로 오는 길에 자건거 박물관에 들렀다. 엄복동의 사진과 희귀한 자전거들이 최초의 자전거와 함께 잘 전시되어 있었다. 아담하지만 볼거린 충분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 모닥불을 가운데 하고 빙 둘러 서서 어린애마냥 엉덩이를 흔들며 율동도 하고 노래도 하다가 새까만 밤하늘로 문득 시선이 갔다. 내가 왜 여기 와 있지, 여긴 어디지, 이놈의 병이 또... 아니, 생각해보니 오랜만에 아주 기분 좋은 낯섦이었다. 순간이었지만, 그 낯섦이 또 한동안 나를 설레게 할 것이다.

전 국민의 3퍼센트가 생협의 조합원이 되면 우리 농가가 살 만하다고 한다. 있는 사람들이 더 하다며, 우린 우스개 소리를 하면서도, 자기 아이들과 생업까지  팽개치고 십시일반의 일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 열성 엄마들의 진지한 눈빛을 놓칠 수 없었다.

 '모든 살아 있음의 제 자리를 생각했다.'

이 분들은 기꺼이 한 포기 풀잎이 되어주는 사람들 같았다. 내 살아 있음의 제 자리를 생각했다. 나의 자리는 한 포기 풀일까, 아니 난 누군가에게 기꺼이 풀여치가 앉을 수 있는 풀잎이 되어줄 수 있을까, 점점 작아져서 새가 되고 흐르는 물이 되고 다시 저 뛰노는 아이들이 되려면, 난 얼마나 '나'를 버려야 하는지 생각했다. 버려야할 '나'는 보이지 않는 그물처럼 거추장스러워 답답하기도 하고, 때로 타인에겐 이기적이고 이질적이며 소심한 속성을 드러내니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무심하게 살자. 나를 잊고 나를 버리고 걸어보자. 검은 물이 뚝뚝 묻어날 것 같은 시골의 밤하늘 속으로 '나'를 온통 담궈버리자. 이 세상 속에서 나의 '모든 살아 있음의 제 자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살아낼 때, 좋든 싫든 나를 대하는 모든 이들도 온전한 한 마리 풀여치, 하늘, 햇살, 바람이 되리.

'이 세상 속에서의 나'는 풀여치에겐 풀잎이 되고, 맑은 하늘에겐 새가 되고, 물결치는 바람에겐 흐르는 물이 되고, 나를 믿고 따르며 안겨드는 아이들에겐  나도 뛰노는 아이들이 되리. 하나가 되리.

'이 세상 속에서의 나를 알았다'

'어떤 사랑이어야 하는가를 / 오늘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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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예진 2004-01-29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많이 놀랐어요. 엄마랑 글 보다가요. 저희 집도 생협 하거든요. 엄마께서 열심히 이 글 끝까지 보시더니 뭐라고 하시는 줄 아세요?
"야~이 분도 글 무지 잘 쓰신다!"
예진 왈
"그럼! 이 분이 명예의 전당 분이셔!"
엄마 왈
"진짜? 어휴~대단하시네!"
참고로 예진이네 집은 예진이 알라딘 명예의 전당이 꿈입니다.^^ 아주 크고 결정적인 소망이죠. 혹시 명예의 전당에 오를 수 있는 비법이 있다면? 저한테만 알려주세요^-^

프레이야 2004-01-29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진님, 요즘 글쓰기 샘물이 터져 쉬지 않고 콸콸 뿜어져나오는 님의 마이페이퍼 보며 참 즐겁기도 하고 생각의 힘이 느껴져요. 자신만의 생각을 그렇게 세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글까지 유려하고 논리정연하니까요. 날마다 게을리하지 않으면 더욱 빛을 발할 거에요. 다음에 생협에서 마련하는 캠프에도 가족과 함께 가 볼래요? 푸근하고 건강하고 배부르고, 좋아요.
명예의 전당엔 뭐, 굳이 오를 필요 있나요?^^ 벌써 예진님 명성이 자자한데요. ^^
 



책 읽는 여자....책이 가진 상징적 의미와 여자가 가진 상징적 이미지를 가지고 혼자 복작 복작 ....움직 움직 거리다가 낙서처럼 그린 그림...책과 여자를 그림은 처음인데 앞으로 이 두 소재를 가지고 그림을 더 그리고 싶다. 아니 이미 그려서 버려야 할만큼 머리통이 그득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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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4-01-16 0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눈은 무엇으로 저리 붉고 누렇지?
비어있는 듯 갈망하는 눈. 책과 여자, 여자와 책.
검은비님의 그득한 머리통에서 하나 퍼 와, 내 맘대로 느껴보는 재미~ Thank you.

비로그인 2004-01-16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그 운명의 형상화처럼 느껴지는 그림입니다.늘상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여성의 처지와 책을 통한 간접 경험....그러나 일탈할 수 없는 마음의 철조망이 잘 조화된 멋진 그림으로 보입니다..

프레이야 2004-01-16 0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수께끼님, 반갑습니다.
님의 해석을 보니, 마치 제 맘을 들켜버린 것 같습니다. ^^
아니, 검은비님의 마음이었던가!
일탈할 수 없는 마음의 철조망이 온몸으로 느껴집니다.
님, 올해도 좋은 기억으로 남는 시간, 날마다 맞이하시길 기원합니다.

비로그인 2004-01-16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안녕하시지요? 이 그림을 보고는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위에 언급한 내용말고 더 생각했던 내용은 눈부분입니다. 물론 테두리의 색상을 모두 붉게 통일했는데 눈부분의 붉음은 저를 슬프게 만드는군요... 그나마 위안인것은 눈동자는 또렷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검은비님의 그림...시사하는바가 매우 크다고 느꼈습니다. 비록 시인의 詩作노트와 읽는이의 감상이 다를수 있다해도...그리신 검은비님의 사고와 다를 수 있다해도...느낌은 깊게 전해오는군요...그래도...그래서...그러니까....그럴수밖에 없어...책을 읽는 여자.....인가요??
 

 

             포구의 잠

                                                                   김선우

 

생리통의 밤이면

지글지글 방바닥에 살 붙이고 싶더라

침대에서 내려와 가까이 더,

소라냄새 나는 베개에 코박고 있노라면

 

푸른 연어처럼...

 

나는 어린 생것이 되어

무릎 모으고 어깨 곱송그려

앞가슴으론 말랑말랑한 거북알 하나쯤

다 안을 만하게 둥글어져

파도의 젖을 빨다가 내 젖을 물리다가

포구에 떠오르는 해를 보았으면

이제 막 생겨난 흰 엉덩이를 까불며

물장구를 쳤으면 모래성을 쌓았으면 싶더라

 

미열이야 시시로 즐길 만하게 되었다고

큰소리 쳐놓고도 마음이 도질 때면

비릿해진 살이 먼저 포구로 간다

 

석가도 레닌도 고흐도 감자먹는 아낙들도

아픈 날은 이렇게 혁명도 잠시

낫도 붓도 잠시 놓고 온종일 방바닥과 놀다 가려니

처녀 하나 뜨거워져 파도와 여물게 살 좀 섞어도

흉 되지 않으려니 싶어지더라

                                                     <내일을 여는 작가> 1997년 봄호

 

    안도현이 눈여겨 보고 있는, 아직 시집 한 권 묶지 않은 젊은 시인이란다.

   어제 가족과 함께 바다에 갔다. 서서히 해가 바다로 내려가고 있었고 해면은 잘게 부서지는 유리조각의 발광체 같았다. 코로 들어오는 바다 비린내가 언제부터 좋았는지... 그래 자주색 볼레로의 교복이 이뻤던 여고 2학년 때다. 어느 일요일 새벽(겨울이었다) 시내 버스로 한 시간 남짓을 달려와 해돋이를 하자고, 몇이서 의기투합되었다. 겨울바다는 그렇게 큰 몸으로 나를 덮치듯 안겨왔다.

  딸아이 둘은 서로 새우깡을 많이 주겠다고 야단이다. 포말처럼 하얗게 몰려오는 갈매기들에게 하나라도 더, 잘(입에 쏙 들어가게) 주려고 전심전력 하고 있다. 가히 몰입의 경지다. 그래서 아이들이 부럽다. 작고 하찮은 것에 대한 탐욕스런 몰입이 부럽다. 양볼이 발그레 물들고도 안 춥다며 새우깡을 한 봉지 더 사게 해 달라고 조른다. 수퍼에서 사는 값의 두배 이상의 값을 치르고, 작은 아이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로 난 수평선을 따라 걷는 기분이다.

  "갈매기가 내가 던진 거 먹었어. 바다로 떨어진 건 아마 물고기가 먹었을걸. 갈매기가 날개를 푸드덕거리는 소리가 참 좋아."

  아이는 시인이다.

  아이들 아빠는 카메라를 바꿔 가며 바다와 하늘과 갈매기와 사람을 담느라 바쁘다. 내 눈의 렌즈는 이 모든 풍경을 사진처럼 담고 있다. 정지한 시간이기라도 하듯 스틸사진으로 담고 있다. 무비카메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건 그 사람이랑 닮았다. 살면서 닮아가는 면이 많기도 하다. 다양한 각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남편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본다. 한마디로 자기 목적성이 강한 인간이다.('몰입의 즐거움'에서 이끄는, 질 높은 삶을 사는 인간형)  

  난 마음 속에 어떤 갈등이 있어 혼란스러우면 칩거하는 유형인데, 이 사람은 카메라 가방 메고 새벽에 나가는 형이다. 한때 그 도구가 낚싯대인 적도 있다. 난 가장 싸게 먹히는 도구, 바로 책을 보고 노는데 말이지.  보이지 않는 족쇄에 스스로 매어서 헤어나질 못하는 '나'는 이제 떨쳐버리고 그 모든 타성에서 벗어나야지.

  바다는 '나'를 버리라 한다. 그릇된 자아일랑 바닷물에 던져버려라. 까닭 모르게(사실은, 알고 있다. 나 자신의 한계가 두려워 입 밖에 내지 않을 뿐) 아픈 날,  바다는 한 몸으로 날 달구고 서늘하게 식힌다.

   딸아이들과 난 여자 사우나에서 목욕하고 남편은 찜질방에서 있다가 두 시간 후에 만났다. 통유리 밖으로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욕조라니. 이런 작은 호사는 누려도 뭐랄 사람 없겠지. 아이들 살갗이 참 보드랍다.  동그란 엉덩이는 마알간 해 같다. '이제 막 생겨난 흰 엉덩이를 까불며' 종알댄다. 몇달 새 몸무게가 많이 늘었다. 아이들 건강한 거, 감사하다. 하지만 내 몸무게는 늘지 않았어야 하는데... 그래도 난 종종 달콤한 도넛이 먹고 싶다. 초콜릿이 얌전히 발린, 동그란 구멍 있는 도넛에 커피 한 잔.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나의 애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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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부모 되기 위한 내 아이 유형별 적합한 교육법

 * 단호한 유형

#행동특성 ; 목표를 정하고 달성하기를 좋아하는 타입이다. 일단 일을 시작하면 그 일을 끝내야 직성이 풀린다. 대화할 때 상대방이 요점만 말해 주기를 원하고 의사결정도 빠른 편이다. 자신이 가진 능력이나 기술에 자신감을 갖고 있어 간섭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그래서 자신의 방식대로 일하기를 원한다. 사람과의 관계 증진보다 주어진 일을 마치는 데 더 신경을 쓰는 편이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좀처럼 참아내지 못한다. 도전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일에는 곧 싫증을 내고 자신이 일을 주도하는 것을 즐긴다. 경쟁하기를 좋아하고 지는 것을 몹시 싫어하는 것도 두드러진 특징.

# 교육법 ; 무조건 지시하고 통제하기보다 스스로 통제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책임감을 부여하는 게 좋다. 어떤 일이나 한계가 있다는 점을 항상 일러주는 게 중요하다. 일을 서둘러하지 말고 휴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점을 주시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런 유형의 자녀와 힘겨루기는 절대 금물. 또 특별하게 추구해 나갈 목표를 설정해 주면 자녀의 강점을 살릴 수 있다.

* 상호작용적인 유형

# 행동특성 ; 처음 만난 사람과도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을 만큼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유형이다. 친구와 함께 일하기를 좋아하고 말하기를 즐긴다. 대중 앞에 잘 나서고 남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는 편이다. 여러 활동에 사람들이 함께 일하도록 설득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상상력이 풍부하지만 정리정돈을 잘 하지 못한다. 이런 유형은 어떤 일을 하는 도중에 다른 일을 벌이는 경우가 많은 게 특징이다. 또 종종 주어진 일을 끝마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 교육법 ; 사교성이 있는 자녀의 강점을 부각시키고 단점을 보강하는 게 중요하다. 특히 이런 유형의 자녀에겐 '한 가지 일을 마쳤을 때 그 성과에 대해 격려하는 게 필요하다'는 게 임교수의 설명이다. 자녀와 함께 할 일을 결정한 뒤 자녀가 어떤 일을 끝냈을 땐 즉각적으로 보상해 주는 것이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구체적인 해결책을 함께 모색하자고 제의한다. 그러면 아이는 한층 열정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게 된다. 이런 자녀에게 냉정하고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지원형

# 행동특성 ; 성격이 까다롭지 않고 어려운 사람 돕기를 좋아하는 유형이다. 변화에 적응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변화보다는 현 상태를 유지하기를 원한다. 화가 나도 잘 참는 편이다. 남의 말을 잘 경청하고 자기 일을 진지하게 수행한다. 어떻게 일을 추진할 것인지를 구상하기보다 할 일을 가르쳐주면 잘 하는 타입으로 필요할 때 앞장서기보다는 잘 따르는 유형이다. 진지한 칭찬을 좋아하지만 지나치게 타인의 시선이 집중되면 당황한다.

# 교육법 ; 임교수는 '이 같은 유형의 자녀에겐 어떤 일이든 자신의 느낌을 표현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말한다. 먼저 자녀가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하지만 지시적이고 요구하는 듯한 태도는 안 된다. 특히 이 같은 유형의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내는 건 잘못이다. 그러면 아이는 대화의 문을 완전히 닫게 된다. 따라서 선택의 여지를 주면서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중요하다. 부모의 의견에 따르도록 요구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 교정형

# 행동특성 ; 조직하고 정리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정확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형이다. 권위와 규칙을 존중하고 목표나 이상도 높은 편이다. 내면적으로 신중한 성격이며 공적이고 예절이 바르다. 하지만 좀처럼 기쁨을 밖으로 표출하지 않는다. 의사결정 전에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잘못이나 실수를 허용하지 않는다. 어떤 일이든 서두르지 않는 편이지만 중압감을 느끼거나 독촉 받을 때는 피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 교육법 ; 이 같은 유형의 자녀에겐 어떤 문제에 관해 '어리석다' 든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런 타입의 아이에게 무엇이든 재촉하는 것은 금물. 충분한 시간을 주면서 일을 잘 끝낼 수 있도록 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게 중요하다. 아이와 의견이 맞지 않을 땐 분명한 이유를 말하고 대화를 통해 납득시켜야 한다. 아이에게 어떤 기대를 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말해 주고 아이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주는 건 좋다. 잘못했을 때에도 아이가 실망하지 않도록 오히려 격려해 주면 좋다.

 

2003. 12.22자 모 일간 신문에서 옮겼습니다. 아이에게 좋은 부모 되기 위해 염두에 두고 싶어서요. 우리 큰아인 단호한 유형에 약간의 교정형이고, 작은 아인 상호작용적인 유형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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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ila 2003-12-25 0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정보 감사드려요. 제 아들애는 아직 어리지만 단호한 유형인 것 같아요. 요즘 이 녀석하고 힘겨루기를 하려던 참이었는데 자제를 좀 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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