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학년이면 아이들 담임선생님이 누굴까, 궁금해하고 조심스럽게 걱정이 되기도 하는 건 아이들보다 엄마들 쪽이 더 그렇다. 이끌어주는 혹은 함께 어울려 지내는 선생님의 철학이나 취향에 따라 일년을 줄곧 지낼 반 아이들의 생활은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 아이들이 자라는 긴 연장선상에서 보아도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칠지 가늠하기 어렵지 않다.

이사 오기 전 지인과 오랜만에 전화통화를 하면서 아주 걱정스러워지고 마음이 안쓰러워졌다. 작은 아들이 2학년인데, 이번 담임선생님이 하는 일에 엄마는 아주 화가 나 있었다. 50대 여선생님이신데, 예를 들자면, 일기는 매일 한 쪽을 넘지않게(모자라지도 넘지도 않게), 독서감상문은 일주일에 세 편, 수학문제 매일 20문제 풀기, 받아쓰기 매일 20문제(문장으로), 틀리면 두 번씩 더 쓰기 같은 것을 하루도 그르지 않고 시킨단다.

그보다 더 한 것은 쉬는 시간 10분 동안 교실 밖을 나가지 못하게 하고 다음 시간 교과서 꺼내놓고 제자리에 그대로 앉아있기, 화장실 갈 사람만 나가는데 늦게 돌아오면 회초리(아니면 바로바로 손이 올라간단다), 일기 검사도 무성의하게 도장만 꽝, 노 코멘트, 색종이접기 같은 작은 과제수행도 선생님 눈에 들 때까지 새로 해 오기.

자유분방한 사고를 하고 틀에 너무 매이는 것을 못 견뎌하는 이 아이는 며칠 째 열이 펄펄 끓어 결석하고 집에 누워있었다. 몸보다 마음이 훨씬 고단했던 게 아니었나 싶다. 아이들이 이런 식으로 상처받고 규격화되는 게 난 너무 싫다. 선생님께 한번 하소연을 하니 돌아온 대답은 '독후감 쓰기 싫으면 안 해도 됩니다. 일기도 그렇구요' 이더란다. 하지만 그런 것으로 스티커를 주고 평가서에 내용을 쓸 것인데, 무엇보다 아이를 열번이고 돌려보내며 해오라고 뭉갤 것인데, 어떻게 안 하게 내버려두냐고 엄마는 아주 울먹이고 있었다.

내용보다 형식을 더 차리려 하는 건 아닐까. 그런 식으로 눈에 보이는 평가를 하여 나중에 기록부 작성도 용이하고 눈에 드러나는 실적도 있으니, 선생님 입장에선 효율적이라 생각하나보다. 하지만 그럴 시간에 아이들이 써서 제출하는 일기장에 풀어놓은 이야기를 눈여겨 보고 아이들 마음에 다가가는 답글 한 줄이라도 써 주는 게 훨씬 나은 교육이라 생각한다. 아이들이 공공연히 마녀라고 부른다는데, 이 선생님은 무엇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지, 아이를 생각하면 영 마음이 개운치않고 입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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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쉬는 항아리 - 솔거나라 전통문화 그림책 6 전통문화 그림책 솔거나라 2
정병락 글, 박완숙 그림 / 보림 / 1995년 1월
평점 :
절판


보림의 전통문화그림책 시리즈 '솔거나라'는 여러 권 보았고, 여러 번 보았지만, 오늘 밤 자기 전 희령이가 책꽂이에서 뽑아들고 온 책이 의외로 <숨쉬는 항아리>였다. <무지개 물고기>를 며칠 째 보더니 오늘은 우리그림책으로 마음이 갔던 모양이다. 자연스럽게 나는 희령이의 선택에 찬사(?)를 보내며 오랜만에 이 그림책을 보았다.

표지에는 장독대에 키순서대로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는 항아리들의 재미난 표정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그런데 여태까지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여 참 신기했다. 제일 뒷줄에 있는 커다란 항아리에 버선 한 짝이 거꾸로 붙어있는 것이다. 뒷장으로 가서도 두 번 더 그 그림이 나온다. 버선을 장독대 항아리에 거꾸로 붙여놓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지 궁금하다. 아니면 무슨 무늬나 그림자일까?

누렇고 붉으스레한 흙을 우리에게 이로운 점이 많은 친근한 친구처럼 소개하는 글로 항아리가 숨을 쉬는 비결을 들려준다. 군데군데 들춰보기 식의 낱장이 숨어있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커튼놀이를 하는 것 같다. 흙으로 정성껏 빚고 손가락으로 쓰윽쓰윽 무늬까지 그려넣고 나면 뜨거운 가마 속에 들어앉아있는 항아리들을 찾아볼 수 있다. 모양도 크기도 그 용도에 따라 가지가지이지만 그 느낌이나 색깔은 다르지 않다. 책의 제일 뒷장에 가면 흙으로 빚은 그릇들을 옹기라 하며 옹기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는 것을 잘 알아볼 수 있게 해 놓았다.

<숨쉬는 항아리>의 주인공은 혼자 숨어 졸던 '작은 항아리'이다. 되똥되똥 귀엽고 순해 보이는 항아리는 집구경을 하다가 알록달록 색깔도 모양도 예쁜 다른 그릇들에게 핀잔을 듣고 슬퍼진다. 하지만 작은항아리가 자신감을 얻게 되는 곳은 다름아닌, 장독대의 옹기가족에게서이다. 옹기가족이라는 내맘대로의 상상을 하고보니, 그 버선이 그려져있던 큰 항아리는 엄마항아리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너무한 비약일까.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뭐라 대답할지, 내가 읽어주는 걸 듣다가 잠이 들어버린 아이에게 내일 물어봐야겠다.

김칫독, 젓동이, 고추장단지... 모두 하는 일은 조금씩 다르지만 중요한 건 모두 몸으로 숨을 쉬어야한다는 것이다. 절대 잊지마, 라며 작은항아리를 격려해 준다. 짭잘한 소금과 메주를 담고 숯과 붉은고추를 띄워 된장을 만드는 게 작은항아리가 할 일이다. 까맣고 못생긴 작은항아리는 이 일을 멋지게 해내고 흐뭇한 웃음을 입가에 가득 머금고 눈을 지긋이 감고 있는 얼굴표정으로 그려진다. 성큼 커버린 아이의 얼굴같이 대견하다.

이야기를 내세워 들려주지만, 우리 것에 대한 정보와 지식에 촛점을 맞추려면 초등 저학년(3학년까지도 괜찮을 듯)까지 유용하게 볼 수 있겠다. 뒷장에 나오는 '엄마랑아빠랑' 꼭지에서 다른 읽을 거리랑 연계하여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을 확장시켜줄 수 있다. 옹기가 만들어지는 과정, 옹기가 통기성이 좋은 이유, 환경친화적인 옹기, 옹기의 종류와 다양한 용도, 옹기를 찾아볼 수 있는 풍속화, 같은 것으로 정보를 모아보면 우리 것에 깃든 지혜와 순박함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겨우내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장독대에 옹기종기 키순서대로 앉아 인내의 시간을 보냈을 항아리들이 봄햇살에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모습을 그려보니, 겨울에 갔던 영랑생가의 별볼일 없었던 장독대가 떠오른다. 외할머니가 된장을 한 숟가락씩 떠오곤 하셨던 그 항아리도 그립다. 외할머니까 보글보글 끓여주시던 구수한 된장찌개가 더 그리운건지. 그러고보니 흙이랑 옹기랑 된장이랑 색이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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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26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학년 2학기 교과과정과 연계해서 봐도 좋을 거 같네요. 솔거나라 시리즈는 괜찮다 싶었지만 한 권 한 권 꼼꼼히 보진 않았는데 역시 봐야 겠단 생각이 듭니다. 상쾌한 하루!

2004-04-03 0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날아가기 2004-05-09 0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애들은 솔거나라 시리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ㅜㅜ 떡 좋아하는 작은 애가 떡잔치를 줄기차게 보는 정도이지요. 책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픕니다. 좀 더 자라면 좋아할지...

프레이야 2004-05-09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거나라 시리즈는 사실 지식 그림책에 가까우니까 그런 면이 있을거에요. 님의 아이들이 몇살인지요? 천천히 흥미를 가지도록 유도하는게 좋겠지요.

방긋 2005-03-27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늦은 답변인 것 같은데... 버선 거꾸로 붙여 놓은 거요!
장맛이 변하지 말라고 버선을 거꾸로 붙이는 거랍니다. ^^
버선은 늘 발에 신던 거잖아요. 그런데 거꾸로 있는 모습을 보곤, 장맛을 변하게 하는 나쁜 귀신들이 놀라서 도망간다고 믿었대요. 전주박물관에 있는 장독대에도 한지에 그린 버선이 거꾸로 붙어있답니다.
 
 전출처 : 김여흔 > 손톱을 깍아야지


봄이 오면
손톱을 깍아야지
깍아도 깍아도 또 자라나는 기억
썩은 살덩이 밀어내
봄바람에 날려 보내야지


내 청춘의 푸른 잔대, 어지러이 밟힌 자리에
먼지처럼 일어나는 손거스러미도
뿌리째 잘라 없애야지
매끄럽게 다듬어진 마디마디
말갛게 돋아나는 장미빛 투명으로
새롭게 내일을 시작하리라


그림자 더 짧아지고
해자락 늘어지게 하품하는, 봄이 오면
벌떡 일어나 머리 감고 손톱을 깍아야지
해바른 창가에 기대앉아
쓸어버려야 해, 훌훌
봄볕에 겨워 미친 척 일어나지 못하게
묻어버려야 해, 영영

 

 

 

 

 

 

 

 

Photo  yellu / 나비가 되어
詩  김영미/ 대청소
Music 김윤아/ 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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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4-03-22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날은 간다, 요즘 난 이 노래가 참 좋다.

waho 2004-04-24 0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래 넘 좋네요...혜경님 아니었음 전 이렇게 좋은 노래가 있는 줄도 몰랐겠네요.

프레이야 2004-04-24 0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윤아 앨범도 좋다고 하더군요. 이 노래 너무 좋죠?
요즘 노래방가면 제 애창곡 1순위에요. 아이랑 한번씩 가거던요. 희령이가 탬버린 흔들어주죠,
박자 안 맞아서 노래 다 버려놓구요^^
 
찰리와 초콜릿 공장 (반양장)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7
로알드 달 글, 지혜연 옮김, 퀸틴 블레이크 그림 / 시공주니어 / 2000년 2월
평점 :
품절


로알드 달은 '대담하고 뻔뻔한' 상상력의 소유자이다. <제임스와 수퍼복숭아>에서도 전혀 예상치 못한 기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더니 내가 두번째로 만난 로알드 달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도 그런 신나는 경험과 모험으로 읽는 이를 데려간다.

로알드 달은 네살 때 아버지를 여의며 아버지의 유언대로 영국 최고의 학교라는 렙튼 공립학교에 다니게 되는데 그곳은 글짓기를 포함애서 달을 괴롭히는 것 투성이였다고 한다. 튀는 행동이라곤 일절 용납되지 않는 그곳 생활에서 특히 달은 글짓기 시간마다 선생님에게 꾸지람을 들었다고 한다. 글짓기 공책에는 선생님이 좍좍 그은 빨간 줄 때문에 마치 불이 난 것 같고, 맨 뒤에는 '주제와 전혀 상관 없는 방향으로 고집스럽게 열심히 씁니다' 라는 평이 쓰여지곤 했단다.

종횡무진, 럭비공처럼 이리 튀고 저리 튀는 상상의 나래를 붙들고 가다보면 정말 수퍼복숭아에 내가 올라타고 하늘을 날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는 이런 기발한 장치들이 더 많이 나온다. 게다가 유혹의 맛 초콜릿을 내세워 읽는 이의 구미를 확 잡아끌고 있다.

달의 글이 쉽고 재미있는 건 그 문장이 짧고 기교가 보이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쓸데없는 수식 따윈 없고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의 중심으로 파고 들어간다. 인물들이 내뱉는 대사도 점잖을 떨지 못하고 거침없어서 속이 후련하게 느껴진다. <제임스와 수퍼복숭아>에서는 지네를 비롯한 동물들의 입을 통해 기상천외한 노랫말의 노래를 내놓더니 이 책에서는 움파룸파라는 난장이들의 입을 빌어 나오는 노랫말을 통해 아이들과 어른들의 잘못을 꼬집고 뒤집고 비틀어 놓는다.

대단한 초콜릿 공장의 사장 웡카씨는 어른들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못 된다고 생각하고 카카오를 제일 좋아하는 움파룸파들을 몽땅 화물상자에 실어 와 공장의 직원으로 채용한다. 아무도 들어가본 적이 없는 이 공장의 후계자를 뽑으려는 마음으로 웡카씨는 황금초대장을 뿌리고 다섯 명의 아이만이 이 공장에 들어갈 수 있는 굉장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찢어지게 가난한 찰리와 서로 위해주며 사는 가족들, 나누어 줄 줄 알고 이해심도 있는 찰리에게 뜻하지 않은 행운이 찾아오고 찰리는 그 다섯번째의 주인공이 된다. 조 할아버지와 함께, 다른 4명의 아이들도 부모님과 함께 초콜릿 공장에 들어간다. 초콜릿강물을 시작으로 공상만화와도 같은 신기한 일들이 연이어 눈앞에서 벌어지고, 하나같이 나쁜 습관을 가진 4명의 아이들과 이들을 방관하고 책임을 소홀히 한 어른들까지 새 사람(?)이 되어 나온다. 아주 우습고 황당한 방식으로 깨닫게 하고 있는데, 움파룸파가 만들어 부르는 노래가 한몫을 한다.

작가는 버릇없는 아이들만 나무라는 게 아니라 바르게 키워내지 못하고 순간의 만족감 앞에 굴복하는 아이로 키우고 있는 어른들까지 꾸짖고 있는데, 그 방식이 유연하고,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로봇이 등장하는 신나는 만화영화 같다. 설교도 이런 식으로, 농담처럼, 기분 좋은 상상의 나라로 데려가 들었다 놓았다 하며, 세상에 둘도 없을 모험 속에서, 우당탕탕거리며 하고 있다. 

너무 가난하여 비쩍 마른 찰리가 초콜릿을 실컷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물론, 웡카씨의 초콜릿 공장의 후계자가 되어 온 식구와 함께 그 공장의 집에서 살 수 있게 된 것은, 그저 눈 속에서 주운 50센트처럼 찾아온 행운이라고만 보지 않으면 좋겠다. 어려움 속에서도 착하고 넉넉한 마음을 잃지 않고, 남을 탓하지 않고, 자신의 처지 안에서 지혜롭게 처신하려고 애쓰고, 욕구를 절제할 줄도 알며, 어른들의 충고에도 귀기울일 줄 아는 열린 귀를 가졌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 처지가 힘든 아이가 있다면 이 책으로 초콜릿처럼 달콤하고 부드러운 희망 하나를 입 속에 넣어주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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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희망 2004-03-22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이 이야기 영화로도 책으로도 봣죠.. 아직도 기억나는건 찰리네 7명의 가족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침대에 찰리와 부모는 매트리스를 깔고 자던 모습의 삽화...
초콜릿 공장의 내음에 감동하던 찰리의 얼굴..
정말 멋진 이야기....^^

리뷰도 그에 못지 않게 멋지네요..^^ 잘 읽고 갑니다.

프레이야 2004-03-22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동화가 영화로도 나와있나보네요. 몰랐어요. 구해서 보고 싶은데요, 어디서 구할 수 있나요?

세진맘 2004-04-03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얄드 달의 책은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인것 같아요.
우리 아들은 책과 영화 모두에 푹빠져 있는데다가 감히 원서책까지 보고 싶어할 정도 랍니다.
리뷰의 감칠맛나는 글이 다시 한번 작가의 이미지를 각인시켜주네요^^
 


..오랜만에 오일 파스텔로 작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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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ho 2004-04-24 0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낌이 좋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