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는 항아리 - 솔거나라 전통문화 그림책 6 전통문화 그림책 솔거나라 2
정병락 글, 박완숙 그림 / 보림 / 1995년 1월
평점 :
절판


보림의 전통문화그림책 시리즈 '솔거나라'는 여러 권 보았고, 여러 번 보았지만, 오늘 밤 자기 전 희령이가 책꽂이에서 뽑아들고 온 책이 의외로 <숨쉬는 항아리>였다. <무지개 물고기>를 며칠 째 보더니 오늘은 우리그림책으로 마음이 갔던 모양이다. 자연스럽게 나는 희령이의 선택에 찬사(?)를 보내며 오랜만에 이 그림책을 보았다.

표지에는 장독대에 키순서대로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는 항아리들의 재미난 표정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그런데 여태까지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여 참 신기했다. 제일 뒷줄에 있는 커다란 항아리에 버선 한 짝이 거꾸로 붙어있는 것이다. 뒷장으로 가서도 두 번 더 그 그림이 나온다. 버선을 장독대 항아리에 거꾸로 붙여놓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지 궁금하다. 아니면 무슨 무늬나 그림자일까?

누렇고 붉으스레한 흙을 우리에게 이로운 점이 많은 친근한 친구처럼 소개하는 글로 항아리가 숨을 쉬는 비결을 들려준다. 군데군데 들춰보기 식의 낱장이 숨어있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커튼놀이를 하는 것 같다. 흙으로 정성껏 빚고 손가락으로 쓰윽쓰윽 무늬까지 그려넣고 나면 뜨거운 가마 속에 들어앉아있는 항아리들을 찾아볼 수 있다. 모양도 크기도 그 용도에 따라 가지가지이지만 그 느낌이나 색깔은 다르지 않다. 책의 제일 뒷장에 가면 흙으로 빚은 그릇들을 옹기라 하며 옹기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는 것을 잘 알아볼 수 있게 해 놓았다.

<숨쉬는 항아리>의 주인공은 혼자 숨어 졸던 '작은 항아리'이다. 되똥되똥 귀엽고 순해 보이는 항아리는 집구경을 하다가 알록달록 색깔도 모양도 예쁜 다른 그릇들에게 핀잔을 듣고 슬퍼진다. 하지만 작은항아리가 자신감을 얻게 되는 곳은 다름아닌, 장독대의 옹기가족에게서이다. 옹기가족이라는 내맘대로의 상상을 하고보니, 그 버선이 그려져있던 큰 항아리는 엄마항아리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너무한 비약일까.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뭐라 대답할지, 내가 읽어주는 걸 듣다가 잠이 들어버린 아이에게 내일 물어봐야겠다.

김칫독, 젓동이, 고추장단지... 모두 하는 일은 조금씩 다르지만 중요한 건 모두 몸으로 숨을 쉬어야한다는 것이다. 절대 잊지마, 라며 작은항아리를 격려해 준다. 짭잘한 소금과 메주를 담고 숯과 붉은고추를 띄워 된장을 만드는 게 작은항아리가 할 일이다. 까맣고 못생긴 작은항아리는 이 일을 멋지게 해내고 흐뭇한 웃음을 입가에 가득 머금고 눈을 지긋이 감고 있는 얼굴표정으로 그려진다. 성큼 커버린 아이의 얼굴같이 대견하다.

이야기를 내세워 들려주지만, 우리 것에 대한 정보와 지식에 촛점을 맞추려면 초등 저학년(3학년까지도 괜찮을 듯)까지 유용하게 볼 수 있겠다. 뒷장에 나오는 '엄마랑아빠랑' 꼭지에서 다른 읽을 거리랑 연계하여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을 확장시켜줄 수 있다. 옹기가 만들어지는 과정, 옹기가 통기성이 좋은 이유, 환경친화적인 옹기, 옹기의 종류와 다양한 용도, 옹기를 찾아볼 수 있는 풍속화, 같은 것으로 정보를 모아보면 우리 것에 깃든 지혜와 순박함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겨우내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장독대에 옹기종기 키순서대로 앉아 인내의 시간을 보냈을 항아리들이 봄햇살에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모습을 그려보니, 겨울에 갔던 영랑생가의 별볼일 없었던 장독대가 떠오른다. 외할머니가 된장을 한 숟가락씩 떠오곤 하셨던 그 항아리도 그립다. 외할머니까 보글보글 끓여주시던 구수한 된장찌개가 더 그리운건지. 그러고보니 흙이랑 옹기랑 된장이랑 색이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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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26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학년 2학기 교과과정과 연계해서 봐도 좋을 거 같네요. 솔거나라 시리즈는 괜찮다 싶었지만 한 권 한 권 꼼꼼히 보진 않았는데 역시 봐야 겠단 생각이 듭니다. 상쾌한 하루!

2004-04-03 0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날아가기 2004-05-09 0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애들은 솔거나라 시리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ㅜㅜ 떡 좋아하는 작은 애가 떡잔치를 줄기차게 보는 정도이지요. 책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픕니다. 좀 더 자라면 좋아할지...

프레이야 2004-05-09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거나라 시리즈는 사실 지식 그림책에 가까우니까 그런 면이 있을거에요. 님의 아이들이 몇살인지요? 천천히 흥미를 가지도록 유도하는게 좋겠지요.

방긋 2005-03-27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늦은 답변인 것 같은데... 버선 거꾸로 붙여 놓은 거요!
장맛이 변하지 말라고 버선을 거꾸로 붙이는 거랍니다. ^^
버선은 늘 발에 신던 거잖아요. 그런데 거꾸로 있는 모습을 보곤, 장맛을 변하게 하는 나쁜 귀신들이 놀라서 도망간다고 믿었대요. 전주박물관에 있는 장독대에도 한지에 그린 버선이 거꾸로 붙어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