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속의 유령
멜빈 버지스 지음, 유동환 옮김, 전기윤 그림 / 푸른나무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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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주 독특한 동화를 만났다. 추리소설 같기도 하고 유령소설 같기도 한 <벽 속의 유령>의 원제는 GHOST BEHIND THE WALL이다. 이 유령을 만나려면 낡은 마호가니 빌라의 집들로 연결되어있는 환기구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좁은 통로를 지나가야 하므로 덩치가 큰 사람은 어림 없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별명이 반토막이나, 꼬맹이로 불리는 데이빗은 키가 120센티미터를 겨우 넘을 정도라서 그 일이 가능하다.  처음엔 장난이나 모험으로 시작한 일이다.

약간 거칠고 난폭한 성격에 친구들에게 놀림을 자주 당하고 엄마는 없이 수줍음을 잘 타는 안경사 아빠와 단둘이 사는 데이빗은 아빠가 늦게 오시는 화요일과 목요일이면 더욱 무료하고 외롭다. 데이빗의 불안정한 마음은 자꾸 환기구 안으로  들어가보라고 부추긴다. 그곳을 통해 다른 사람의 집에 몰래 들어가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고 무언가 물건을 집어내 오기도 하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몰래 엿들으며 악마적인 짓을 취미처럼 일삼는다.

그러던 어느 날 4년 후면 100살이 될 로버트 할아버지의 집을 엿보게 되고 노망기가 있는 할아버지의 혼잣말을 엿듣다 난데없이 유령을 만난다. 환기구에서 외롭게 지내는 유령은 데이빗과 또래로 보이는 얼굴이다. 로버트 할아버지를 유독 싫어하는 유령은 날마다 데이빗을 유혹한다. 자원봉사자가 와서 깨끗이 청소를 해 둔 할아버지의 집을 완전히 엉망으로 만들고 소중한 추억이 스며있는 할아버지의 물건들을 깨어부순다. 데이빗이 정신을 차리고 숨어있던 양심에 후회를 한 때는 이미 늦었다. 유령은 나쁜 짓을 멈추지 않고 오히려 데이빗에게 같이 하지 않는다고 화를 낸다.

이 일로 데이빗은 경찰의 수사를 받고 요주의 소년이 된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사랑하는 아들이 이웃의 불쌍한 노인에게 그런 악한 일을 저질렀다는 걸 알고 아빠는 실망을 감추지 못한다. 데이빗은 아빠의 눈물을 보았고 자신에 대한 절제와 로버트 할아버지에 대한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하게된다. 어느 날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다가 뜻밖의 반가움을 느끼게 되고 때로는 날카로움이 번득이는 할아버지와의 대화를 즐거워한다.

유령의 정체에 대하여, 사람의 기억이란 것에 대하여, 사람이 늙어가면서 되돌아보는 추억의 힘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듣는 동안, 아주 많은 세대차이가 나는 이 두사람의 대화는 그동안 혼자서 추억을 주절대며 고독하게 살았던 로버트 할아버지에게 어떤 빛이 된다. 유령의 정체를 캐내려는 데이빗에게는 어떤 실마리가 된다. 또한 '적절한 대화'를 시도한 아들에게 그의 아빠는 약간의 질투가 섞인 대견함을 표시한다.

유령은 대개 죽은 자의 영혼이라 생각하지만, 산 자에 속한 것이란게 할아버지의 말이다. ' 사람은 특별한 뜻 없이 자신들의 기억을 되살려 보기도 하고, 혹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또한 기억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게 저장된다. 삶의 어느 순간 '떠오르는 기억을 보게 된다면, 그게 바로 유령이'다. 사람 저마다의 상상 속에, 소망 속에 유령이 있다는 얘기가 된다.

우리에게 '삶'의 방법을 가르쳐주는 사람이나 프로그램이 없듯이 '죽음'의 방법을 가르쳐주는 곳도 없다. 로버트 할아버지는 더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만 내심 더 살고 싶은 게다. 죽음을 찾아가는 편안한 방법을 모르고 에둘러가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것 같다.

유령으로 떠돌던 잃어버렸던 추억 속의 소년(자신의 유년시절)은 할아버지를 싫어한다. 단지 모든게 '낡아간다는 것' 외에 소년과 할아버지는 다른 점이 없다. 늙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나이듦이 젊음의 파릇한 본성을 엎어버리진 않는다는 점이 할아버지의 마음을 괴롭힌다. 죽음을 앞둔 나이에 그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할지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생각해보기라도 했을까. 마음은 데이빗과 같은 소년인데 말이다. 그렇게 많은 친분을 맺고 살았던 사람들이 지금은 할아버지 곁에 아무도 없는데 어떻게 온전한 정신으로 하루를 살까.

그 쓸쓸한 가슴에 이제 데이빗이 다가가 평화로운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한다. 상실했던 소년시절의 기억을 찾아주고 할아버지 곁에 누워 조용히 죽음에게 손 내밀 수 있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데이빗이다. 극과 극은 정점에서 만난다고 했다. 죽음은 곧 삶이고 삶은 곧 죽음이다. 소년의 유령은 데이빗에게서 새로 태어나고 할아버지는 새로운 생명의 줄을 잇는 것이나 다름없다. 로버트 알베스턴은 이제야 집착의 줄을 고요하게 놓는다.

이 동화는 초등 고학년이 읽기에  얼른 이해하기 어렵거나 아직은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는 대목이 여럿 나온다. 좀 철학적인 성향이 있는 아이라면 썩 재미있어할 것이다. 가령, 이런 대목이다.  - 사람이 자기 자신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존재인지 스스로 알 수 없을 때, 그 느낌이란 정말 이상한 것이다. ...... 그는 자기가 아무 존재도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결국, 자신과 주위의 존재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자기를 이렇게 독립된 자기 자신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이런 데이빗의 상념은 이야기의 결말 부분에서 데이빗이 흘리는 근원 모를 눈물에서 잘 나타난다. 조용히, 편안하게 죽음을 찾아간 할아버지의 침대 옆에 서서 데이빗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 '그 눈물이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그 소년과 알베스턴 씨를 위한 것인지 그 자신도 알지 못한'다.

이야기의 길이가 짧지 않은 <벽 속의 유령>은 독특한 소재와 흥미진진한 구성으로 독자로 하여금 단숨에 읽어내려가게 한다. 이 세상의 어느 것도, 누구도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나의 영혼은 너에게, 너의 영혼은 나에게, 진원지를 알 수 없는 영혼의 버팀목으로 오늘도 우리는 살아가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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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5-30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스토리를 보아하니, 제가 읽어도 재미있다 할 듯 싶군요.^^

다연엉가 2004-05-30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보니 제가 읽으면 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불한당들의 모험 2004-06-17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화책이었군요.저는 단순히 문고판 추리소설인줄 알았거던요. 도서관 반납대에 누군가가 실수로 올려놓았었나 봅니다. 그림이 예뻐서 서가에 선채로 내쳐 읽었었는데. 재밌기도 하고 꽤 잔상이 오래 남는 책이었습니다.
 
 전출처 : 파란여우 > 그림으로 알아보는 성격 테스트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을 골라보세요.

9개의 그림들은 9가지 대표적인 성격 유형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http://www.netpia.com/service/eqtest/html/ucharacte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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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기질이 있으며(Professional)
실용주의적이며(Pragmatic)
자기 만족적인(Self-Assured) 성격

당신은 그 누구보다도 당신 자신을 믿으며, 우연한 행운보다는 당신이 스스로 한 행위를 더 믿습니다.

내 행위로 인한 것을 주로 믿는편

당신은 당신에게 주어진 일을 현실적이면서도 단순한 방법으로 해결합니다. 즉 일상생활 속에서 당신의 생활 태도는 매우 실용주의적인 관점을 유지합니다.

내 삶의 모토는 심플한 현실주의자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당신을 의지할만한 사람으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본의아니게 해야할 일이 많아질 때도 있습니다.

일복 많다

이러한 당신의 의지는 매우 단호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자신에 대한 신뢰가 강한 사람으로 평가하는 일도 있습니다. 또한 당신은 당신이 생각했던 것이 현실화되기 전까지는 좀체 만족하려 들지 않는 성격입니다.

글쎄...때로는 대충주의자로 전락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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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4-05-26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은 저 그림을 선택하셨네요.^^
저는 해보니까 저를 그대로 잘 꼬집어 놓았더라구요.
내성적이며(Introspective) 민감하며(Sensitive) 사려가 깊은(Harmonious) 성격.
당신은 당신 자신과 당신의 환경에 대해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에 비해 보다 많이 고민하는 편입니다. 당신은 피상적인 것을 싫어해서 다른 사람과 이런 저런 잡담을 하기보다는 차라리 혼자 있기를 좋아합니다. 당신은 친구를 매우 주의깊게 사귀는데, 이로 인해 당신은 내적 평화와 안정감을 얻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아무리 오래 혼자 있더라도 조금도 지루함을 느끼지는 않는 성격입니다. &&&
 
미미 안에 또다른 미미 문원아이 18
소중애 지음, 장지선 그림 / 도서출판 문원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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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름은 여러번 접했던 소중애 작가를 이 책의 책날개에서 처음 얼굴을 보았다. 짧은 컷트머리에 덩치도 있어뵈고 크고 둥근 알의 안경을 쓰고, 씨익 웃고 서 있는 뒤로 낡고 작은 배 한 척이 묶여있다. 바다도 조금 보인다. 현재 아산의 모 초등학교에서 열한 명의 1학년 아이들과 사랑을 나누고 있다고 적혀있다. 바다처럼 품이 참 넉넉해보이는 인상이다. 

글쓴이의 말처럼, 겉똑똑이들이 많이 사는 세상에 속똑똑이 미미를 만나러 얼른 가고 싶어진다. 할머니와 함께 사는 미미는 올해 입학을 해야한다. 눈이 이상하고 발육도 늦어 제대로 뛰지도 못하는 미미는 먹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한다. 점심을 급식으로 먹을 수 있어 학교가 더없이 좋은 건 할머니도 미미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입학식 날부터 미미는 사고뭉치에 모자라는 아이로 낙인된다. 이런 아이들에 대한 선생님들의 대화가 솔직하게 나온다. 교사라는 입장에서 두던하는 게 아니라 여과없이 내보내주니 오히려 작가에게 믿음이 간다. 

이렇게 현실을 직시하여 내보여준다는 점은 결말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부정적인 현실을 교정해보려는 의도나 희망 쪽으로 가지않고 그냥 현실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맺는다. 어찌보면 약자가 오히려 도피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어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미미와 할머니간의 '징글징글맞은' 옥신각신 장면은 웃음이 나오려다가 들어간다. 마음이 아파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두사람 사이에 흐르는 깊은 속정을 느낄 수 있어, 독자는 울다가 웃는 꼴이 된다. 위기 부분에서 드러나는 할머니의 슬픈 인생의 곡절과 미미의 엇갈린 운명에 대한 이야기는 기가 막히다. 둘은 떨어져서는 못 살 사람들이다. 좋은 옷에 깨끗한 음식이 아니라, 걸레세수에 빨지도 않은 양말, 매일 먹는 시래기국이라도 미미는 할머니의 마늘냄새가 그립다.

할머니를 찾아 시장을 헤매다 만난 두사람은 한번도 살아보지 않은 유일한 곳, 아무도 모르는 강원도로 가서 살자고 약조한다. 이 부분에서 난 가슴이 황량해졌다. 이런 식으로 약자가 더 다치지 않으려고 피하는 게 현실이라 생각하니, 작가의 의도는 독자에게 역작용을 바라는게 아닌가싶다. 이 부분에서 어린이독자와 어른은 생각나누기를 잘 해야할 것 같다. 자칫하면 이 책의 결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 이런 현실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버리고 개선이나 고민의 여지를 남기지 않을까 우려된다.

책을 덮고 생각해보니 할머니의 이 말은 그냥 해보는 소리인줄도 모르겠다. 워낙 자존심도 세고 강인한 사람이니 미미도 할머니도 상처 입은 기억을 되살려줄 이 동네에서 '도망'가고 싶을 수도 있겠지만, 속정이 깊다는 걸 생각하면 그래도 개복엄마가 있는 이 동네를 떠나지 않고 잘 살 것 같기 때문이다. 이건 단지 내 바람일지 모른다.  "도망갈라문 힘이 있어야 한다. 순대 많이 시켜 먹자." 라고 말하는 할머니의 억세지만 누그러진 말투에서 "절대 도망가지 않을거야" 라고 다짐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초등 4, 5학년 정도에서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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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비밀 친구, 제8의 힘 나의 첫소설 1
카티 리베이로 지음, 스테판 지렐 그림, 정미애 옮김 / 함께자람(교학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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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이 주는 느낌은 우울, 차분, 냉정, 원칙, 이성, 폐쇄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상이다. 순전히 주관적인 내 느낌이다. 이 책은 하드커버에서의 느낌과 책표지에 그려진 어떤 남자아이의 모습이 파란색과 잘 어울린다. 삽화도 파란색 한 가지로 모두 그려져있다. 변기앞 바닥에 앉아 뭔가 끄적거리고 있는, 어른도 어린아이도 아닌 남자아이, 이 아이가 '나만의 비밀 친구'라고 하는 친구는 누구일까?

'카티 리베이로'라는 프랑스 작가는 이 책으로 처음 알게 되었다. 그녀의 다른 작품 <운수 나쁜 날>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이 책을 만나 썩 기쁘다. 이야기의 전개가 깔끔하고 힘 있다. '삶은 비극이다'라는 글귀로 시작하는, 동화이기도 하고 아이들이 만나는 첫소설이기도 한 이 작품은 아직 어른은 아니지만 마냥 아이라고만 하기도 뭣한 인물의 이야기이다.

어느 날 보면 불쑥 커보이는 아이가 또 어느 날 보면 마냥 어린애 같기도 한 모순을 거의 날마다 겪으며 아이들을 만난다. 뭔가 아주 많이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가 어느 순간에 보면 역시 순진한 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는 아이다.

작가는 주인공 남자아이를 화자로 하여 1인칭 시점을 쓰고 있다. 이 아이는 곧 6학년이 될 아이지만 또래보다 생각이 많다. 평범한 아이들은 겪지않을지도 모를 고민과 갈등을 안고 있다. 부모의 이혼을 혼자 감당해야하고 아빠의 새 여자친구와 그 가족을 안아들여야하며, 뇌성마비 여동생까지 동생으로 맞아들여야한다. 그리고 어른들의 온갖 이율배반적인 언행을 감수해야하며 그들의 말장난을 참아내야하며, 종내는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야한다.

남자아이는 냉소적이다. 비관적이기도 하며 다소 고립적이다. 가령 이혼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위로 차원의 말, '행운'이란 단어에 대해서도 쓴웃음을 날린다. 삶은 비극이다, 라는 말은 조리스 루이가 '허풍을 떨려고 지어 낸 말'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내 스스로 얻어 낸 결론일 뿐이'다. 사람들이 두 가정을 갖는 '행운'을 누리게 된 거라고 위로할 때, 아이는 속으로 '내 가족은 둘로 불어난 게 아니라 둘로 쪼개진 거'라고 '이건 아주 중요한 사실'이라고 또박또박 (속으로) 따진다.

아이가 마음의 변화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겪게 되는 과정이 참 자연스럽고 솔직하다. 아빠와 새여자친구 클레르 아주머니와 그의 식구들과의 3주간의 바캉스가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올 줄이야. 그래서 원제는 'vacances force 8'이다. 7월 1일부터 21일간의 이야기가 주인공의 마음을 따라 일기장에 고스란히 적혀있다. 그 아이의 내면은 두려움에 일렁이기도 하고 노을빛을 보고 슬픔에 잠기기도 한다. 섬세한 심리 그리기가 돋보인다. 그 소중한 일기장을 읽는 독자는 어쩌면 그리 특별나지도 않는 소재의 이야기에 이상하게도 점점 매료된다.

아름다움을 가장한다거나 군더더기 같은 설명이나 묘사도 없고 간결체의 문장이 산뜻하다. 아이의 성격을 대변해주는 것 같다. 인물들이 가식없이 내뱉는 말과 생각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최대한 상대를 생각하여 자제하는 말 속에 따뜻한 유머가 살짝 감추어져있다. 특히 새 가족이 될 할머니, 할아버지의 길지 않은 대사 속에 연륜이 묻어나는 따스함이 보여 대가족의 장점이 이런 데서 오는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가족에 대하여,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하여, 그리고 이런저런 생각으로 성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아이들에 대하여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입양이란 말이 책 속에 나오는데, 이것의 풀이가 남다르다. '안토닌 할아버지는 나를 입양했다고 말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할아버지가 나를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이제 내가 이 가족의 한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다시 말해 '아빠도 제임스의 가족에 입양된 셈'이다. 혈연중심의 가족개념에서 벗어나고 있다.

장애를 가진 올리비아를 혐오하던 처음의 생각은 가족들이 그 아이와 함께 하며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모습들을 보며 조금씩 바뀌어간다. 나중엔 이야기듣기를 좋아하는 올리비아를 위해 이야기도 들려주고 휠체어로 산책도 도와준다. 절대 동생으로 인정하려하지 않던 처음의 마음은 온데간데 없다. 모든 게 아주 자연스러운 게 장점이다. 제임스와도 만화책으로 허물이 없어져 하마터면 조리스는 비밀일기장에 대한 이야기를 할 뻔 했다. 수퍼마켓에서 만난 고약한 '할망구'에게 반드시 복수할 것을 다짐하는 제임스와 조리스의 결의는 웃음이 훅훅 난다.

책제목인 '나만의 비밀친구'는 일기장이다. 그것에 주인공이 붙인 이름이 '제 8의 힘'이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나중에 '제 8의 힘'이란 이름을 붙인 곳은 예의 그 복수전이다. 못된 할망구를 위한 복수전의 행동방침을 세우고 이름을 그것으로 정했다. 그때 제임스가 그 이유를 묻는데, 조리스는 그저 '우리 식구가 모두 여덟 명이지 않느냐'고 대답한다. 3주간 떨어져 있는 엄마, 아빠와 헤어진 엄마를 내내 그리워하던 주인공은 이제 클레르 아주머니를 비롯한 식구들 모두를 정말 식구로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지 뭔가.

그럼 엄마는? 친엄마의 입장에서 보면 못내 아쉽고 슬픈 일이지만, 아이는 새로운 가족을 '밀물과 썰물'처럼 받아들이려한다. 삶은 비극이라기 보다, 엄청나게 많은 밀물과 썰물이 지나가고 또 닥쳐오는 것임을 아이는 이제 조금 이해한다. 작가는 어쩜 밀물과 썰물로 삷의 슬픔과 기쁨을 이야기할 생각을 했는지..., 그녀에게 끌린다.

그래도 '가끔은 어른들의 삷을 다 알 수 없을 때가 있는' 주인공은 아직 아이다. 3주간의 휴가가 끝나고 떠나기 하루 전 날, 조리스는 제임스에게 일기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만다. 제임스도 일기를 쓰게 되어 나중에 서로 일기장을 바꿔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때를 위해 처음 써 놓았던 일기들을 뜯어낼 수 있는 스프링 노트를 일기장으로 고른 걸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걸 보니 말이다. 지난 날 써놓은 일기를 지금 보면 유치한 말과 생각들에 얼굴이 붉어지는 경험이 누구나 있을 법하다. 조리스도 그렇게 성장하는 과정에 있는 꽤 괜찮은 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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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지에 새로 온 아이 아이북클럽 30
레나테 아렌스 크라머 지음, 최진호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03년 1월
평점 :
절판


동화를 통해 어린이들이 현실을 제대로 알게 하고 싶다는 뇌스틀링거의 생각처럼 이 동화의 작가는 힘든 주제를 들고 나왔다. 동화를 통해 현실에서 벗어난 꿈처럼 이상적인 세계에 빠졌다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말을 끄내기 두려운 현실을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의 가정학대는 여러가지 양상이 있지만, 친부모에 의한 아동학대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신고에 의해 표면으로 드러난 경우는 전체의 0.5%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그보다 더 많은 사례들이 있다고 한다. 얼마전 어떤 아버지는 6세 남자아이를 학대, 폭력하였고 어떤 젊은 엄마는 어린 아이들을 쓰레기장을 방불케하는 집에 가두어두고 방치한 것이 이웃의 신고로 드러났다. 직접 폭력 못지않게 방임이나 착취도 아동학대이고 그렇게 학대를 받아온 아이들은 부정적인 자기상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정신적인 병을 앓게 된다.

3번지에 새로 온 아이는  평범하고 상식적인 부모 아래 형제자매와 그런대로 단란하게 사는 클리오나 같은 아이와는 너무나 판이한 환경에서 살아온 아이다. 술로 날을 보내며 가족을 학대하는 아버지, 방임하는 어머니, 어린 두 동생들에게 벗어나 무작정 도망을 한 패트라는 11살 여자아이는 자상한 보육원 원장의 눈에 띄어 말끔하게 단장한 아름다운 보육원에서 살게된다. 특별히 친한 여자친구는 없고 정이 많고 생각이 많은 클리오나는 새로 온 이 아이를 편견없이 대하지만, 돌아오는 건 섬뜩한 느낌뿐이다. 

어느 날 초콜릿 사건으로 사람에 대한 경계심으로 도사리고 있던 패트가 클리오나에게 희미한 웃음을 처음으로 보인다. 이 일을 시작으로 둘은 조심스레 우정을 쌓아간다. 하지만 이들의 우정은 고요한 파도를 타기만 하는 건 아니다. 주위 친구들의 편견어린 시선과 말, 너무 다른 환경에 대한 서로의 이해부족, 서로의 아픔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작고 큰 갈등을 낳는다.

패트의 이 말은 참 가슴 아프다. "우리같은 아이들을 보살펴야하는 보육원 원장님에게 보살펴할 가족이 왜 있는거지."  패트가 유독 믿고 따르며 좋아하는 어른은 돌리 원장님인데, 세살짜리 아들과의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고 패트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질투심에 몸을 떤다. 패트는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였던 게다. 아이들이 어른들에게서 원하는 것은 가르침이 아니라 보살핌이란 말이 생각났다. 

클리오나는 패트의 마음의 돌을 꺼내려하는 꿈을 밤새도록 꾼다. 패트는 이 돌로 인해 눈물샘마저 메말라버린 아이이다. 하지만 나중에 패트의 영어작문시간 글에서 드러나듯, 자기고백적인 글로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던 돌을 들어내고 패트는 잊고있었던 눈물을 흘릴 줄 안다. 좋아졌다는 걸 뜻한다는 담임선생님의 말처럼 패트는 길고긴 어둠의 터널을 이제 막 벗어나 빠져나오려한다. 패트가 마음의 문을 열 수 있게 클리오나의 인내심 있는 노력이 전편에 잔잔하게 펼쳐진다.

패트의 언니 로레인은 보지도 못한 패트에 대해 보육원에 사는 아이라는 말만으로 심한 편견을 드러낸다. 그런데 로레인이 패트에 대해 호감을 보이는 계기가 전혀 없고 심정적으로라도 납득되는 부분이 없는 게 흠이다. 학급의 아이들경우도 그까진 아니라도 다소 비약이 되어있다. 패트가 쓴 작문이 긴장감이 있어 재미있다는 이유로 단번에 패트의 글이 학교신문에 실리고 아이들은 패트에 대한 호감을 보인다. 결말 부분, 패트의 생일파티에 반아이들 모두 초대되고 여지껏 있었던 갈등이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해결되는 것처럼 그려진다. 역시 아이들이라 맑은 심성으로 그린 것인지, 아니면 이런 해결이 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작가의 바람인지, 좀 개연성이 없어보인다. 하지만 아이들은 의외로 단순하고 특별한 악의로 따돌림을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맞다면 이런 행복한 결말도 그려봄직하다. 그래도 아이들을 믿고싶은 게 내 맘이기도 하다.

패트의 아빠처럼 학대를 일삼는 사람을 격리수용하는 체벌만이 해결의 방법일까?, 하는 나의 질문에 6학년 아이들 몇이 한 답변은 그래도 희망적이다. 격리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그보다는 꾸준히 관심을 갖고 대화하고 문제를 함께 해결하도록 해야한다고, 이웃에서도 무관심보다는 적절한 신고를 해야한다고.  <3번지에 새로 온 아이>는 보통의 아이들과는 동떨어진 소재라서 현실감이 떨어질 수 있는 동화이지만, 우정을 쌓아가는 모습에 촛점을 두어 이야기 나눌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일어나는 갖가지 왜곡된 모습에 눈을 두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동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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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파리 2004-05-22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리 앤과 키다리 아저씨의 주디는 행운아였습니다. 그리고 그 책을 통해 사람들은 고아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지요. (당시 고아에 대한 인식은 매우 않좋았다고 하죠. 헐~) 그러나 지금 어린이 학대와 고아에 대한 기존의 생각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고는 하나, 부정적인 관념들이 깨끗이 사라진 건 아닙니다. 

  그나저나 토탈 7777입니다. 배혜경님은 이벤 안하세요?(이벤을 노리는 이파리~)


프레이야 2004-05-22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이파리님. 저라도 편견을 싹 지우고 대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네요.
아무 생각없이 사는 것보단 그래도 생각하며 고민하는 거리를 던져주는 일이 필요하겠죠, 아이들에게요. ^^ 근데 토탈 7777 전 몰랐네요. 행운의 숫자가 넷이나!! 이벤트라, 어떤 게 좋을까요? 귀띔해주세요. ^^

밀키웨이 2004-05-22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V에서 학대받는 아이들에 대한 보도가 나올 때마다 저는 참 많이 웁니다.
그 아이들이 불쌍해서요.
그 부모들이 미워서요.
그런데요, 놀이터에 나갔을 때 입성이 꼬질꼬질하고 뭔가 좀 경계심을 갖게 하는 아이가 주위에 있으면 차력형제가 그 아이를 피해서 놀았으면...그렇게 바라게 됩니다.
또 유치원 친구들 중에서도 엄마아빠가 맞벌이를 하시는 집보다는 엄마가 집에 계시는 친구와 놀았으면~~하고 바랄 때도 있습니다.

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마음입니까....

프레이야 2004-05-23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키웨이님, 우리는 참 이율배반적이죠. 저도 그래요. 안 그러려고 노력하는 거죠. 언어폭력도 아동학대에 포함된다니, 더욱 신경써야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