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속의 유령
멜빈 버지스 지음, 유동환 옮김, 전기윤 그림 / 푸른나무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아주 독특한 동화를 만났다. 추리소설 같기도 하고 유령소설 같기도 한 <벽 속의 유령>의 원제는 GHOST BEHIND THE WALL이다. 이 유령을 만나려면 낡은 마호가니 빌라의 집들로 연결되어있는 환기구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좁은 통로를 지나가야 하므로 덩치가 큰 사람은 어림 없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별명이 반토막이나, 꼬맹이로 불리는 데이빗은 키가 120센티미터를 겨우 넘을 정도라서 그 일이 가능하다.  처음엔 장난이나 모험으로 시작한 일이다.

약간 거칠고 난폭한 성격에 친구들에게 놀림을 자주 당하고 엄마는 없이 수줍음을 잘 타는 안경사 아빠와 단둘이 사는 데이빗은 아빠가 늦게 오시는 화요일과 목요일이면 더욱 무료하고 외롭다. 데이빗의 불안정한 마음은 자꾸 환기구 안으로  들어가보라고 부추긴다. 그곳을 통해 다른 사람의 집에 몰래 들어가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고 무언가 물건을 집어내 오기도 하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몰래 엿들으며 악마적인 짓을 취미처럼 일삼는다.

그러던 어느 날 4년 후면 100살이 될 로버트 할아버지의 집을 엿보게 되고 노망기가 있는 할아버지의 혼잣말을 엿듣다 난데없이 유령을 만난다. 환기구에서 외롭게 지내는 유령은 데이빗과 또래로 보이는 얼굴이다. 로버트 할아버지를 유독 싫어하는 유령은 날마다 데이빗을 유혹한다. 자원봉사자가 와서 깨끗이 청소를 해 둔 할아버지의 집을 완전히 엉망으로 만들고 소중한 추억이 스며있는 할아버지의 물건들을 깨어부순다. 데이빗이 정신을 차리고 숨어있던 양심에 후회를 한 때는 이미 늦었다. 유령은 나쁜 짓을 멈추지 않고 오히려 데이빗에게 같이 하지 않는다고 화를 낸다.

이 일로 데이빗은 경찰의 수사를 받고 요주의 소년이 된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사랑하는 아들이 이웃의 불쌍한 노인에게 그런 악한 일을 저질렀다는 걸 알고 아빠는 실망을 감추지 못한다. 데이빗은 아빠의 눈물을 보았고 자신에 대한 절제와 로버트 할아버지에 대한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하게된다. 어느 날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다가 뜻밖의 반가움을 느끼게 되고 때로는 날카로움이 번득이는 할아버지와의 대화를 즐거워한다.

유령의 정체에 대하여, 사람의 기억이란 것에 대하여, 사람이 늙어가면서 되돌아보는 추억의 힘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듣는 동안, 아주 많은 세대차이가 나는 이 두사람의 대화는 그동안 혼자서 추억을 주절대며 고독하게 살았던 로버트 할아버지에게 어떤 빛이 된다. 유령의 정체를 캐내려는 데이빗에게는 어떤 실마리가 된다. 또한 '적절한 대화'를 시도한 아들에게 그의 아빠는 약간의 질투가 섞인 대견함을 표시한다.

유령은 대개 죽은 자의 영혼이라 생각하지만, 산 자에 속한 것이란게 할아버지의 말이다. ' 사람은 특별한 뜻 없이 자신들의 기억을 되살려 보기도 하고, 혹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또한 기억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게 저장된다. 삶의 어느 순간 '떠오르는 기억을 보게 된다면, 그게 바로 유령이'다. 사람 저마다의 상상 속에, 소망 속에 유령이 있다는 얘기가 된다.

우리에게 '삶'의 방법을 가르쳐주는 사람이나 프로그램이 없듯이 '죽음'의 방법을 가르쳐주는 곳도 없다. 로버트 할아버지는 더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만 내심 더 살고 싶은 게다. 죽음을 찾아가는 편안한 방법을 모르고 에둘러가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것 같다.

유령으로 떠돌던 잃어버렸던 추억 속의 소년(자신의 유년시절)은 할아버지를 싫어한다. 단지 모든게 '낡아간다는 것' 외에 소년과 할아버지는 다른 점이 없다. 늙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나이듦이 젊음의 파릇한 본성을 엎어버리진 않는다는 점이 할아버지의 마음을 괴롭힌다. 죽음을 앞둔 나이에 그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할지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생각해보기라도 했을까. 마음은 데이빗과 같은 소년인데 말이다. 그렇게 많은 친분을 맺고 살았던 사람들이 지금은 할아버지 곁에 아무도 없는데 어떻게 온전한 정신으로 하루를 살까.

그 쓸쓸한 가슴에 이제 데이빗이 다가가 평화로운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한다. 상실했던 소년시절의 기억을 찾아주고 할아버지 곁에 누워 조용히 죽음에게 손 내밀 수 있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데이빗이다. 극과 극은 정점에서 만난다고 했다. 죽음은 곧 삶이고 삶은 곧 죽음이다. 소년의 유령은 데이빗에게서 새로 태어나고 할아버지는 새로운 생명의 줄을 잇는 것이나 다름없다. 로버트 알베스턴은 이제야 집착의 줄을 고요하게 놓는다.

이 동화는 초등 고학년이 읽기에  얼른 이해하기 어렵거나 아직은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는 대목이 여럿 나온다. 좀 철학적인 성향이 있는 아이라면 썩 재미있어할 것이다. 가령, 이런 대목이다.  - 사람이 자기 자신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존재인지 스스로 알 수 없을 때, 그 느낌이란 정말 이상한 것이다. ...... 그는 자기가 아무 존재도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결국, 자신과 주위의 존재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자기를 이렇게 독립된 자기 자신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이런 데이빗의 상념은 이야기의 결말 부분에서 데이빗이 흘리는 근원 모를 눈물에서 잘 나타난다. 조용히, 편안하게 죽음을 찾아간 할아버지의 침대 옆에 서서 데이빗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 '그 눈물이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그 소년과 알베스턴 씨를 위한 것인지 그 자신도 알지 못한'다.

이야기의 길이가 짧지 않은 <벽 속의 유령>은 독특한 소재와 흥미진진한 구성으로 독자로 하여금 단숨에 읽어내려가게 한다. 이 세상의 어느 것도, 누구도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나의 영혼은 너에게, 너의 영혼은 나에게, 진원지를 알 수 없는 영혼의 버팀목으로 오늘도 우리는 살아가는 게 아닐까.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우맘 2004-05-30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스토리를 보아하니, 제가 읽어도 재미있다 할 듯 싶군요.^^

다연엉가 2004-05-30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보니 제가 읽으면 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불한당들의 모험 2004-06-17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화책이었군요.저는 단순히 문고판 추리소설인줄 알았거던요. 도서관 반납대에 누군가가 실수로 올려놓았었나 봅니다. 그림이 예뻐서 서가에 선채로 내쳐 읽었었는데. 재밌기도 하고 꽤 잔상이 오래 남는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