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난 척쟁이 경시 대회 작은거인 5
앤드루 클레먼츠 지음, 강봉승 그림, 조병준 옮김 / 국민서관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앤드루 클레멘츠의 동화를 세번째로 만났다. 랄슨선생님 구하기, 프린들 주세요, 다음으로 이 책이다. 여기에서도 공간은 역시초등 학교다. 주인공은 초등학생. 프린들주세요, 에서처럼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남자아이를 만날 수 있다. 다른 동화에서처럼 작가는 간결하고 경쾌한 문체로 이야기를 빠르게 이어내려간다. 그 이야기에 독자는 동승하여 마치 놀이기구를 탄 것처럼 올라갔다 내려갔다 휘돌아가며, 신이 난다.

주인공 제이크는 현재 4학년인데 3학년 때 있었던 특별한 경험을 떠올리며 회상하여 고백하는 이야기 형식이다. 컴퓨터를 좋아하고 10년 가까운 세월을 컴퓨터와 지낸(그렇다고 중독은 결코 아니다. 하루 한 시간만 한다는 약속을 잘 지키고 있으니) 컴퓨터 박사다. 제이크가 가장 싫어하는 건 잘난 척 하는 거다. 잘난 척 하며 언제나 손을 번쩍 들고 나서는 케빈과 마샤를 경멸한다. 그런 제이크가 잘난 척 할 수밖에 없는 기로에 섰고 그 과정에서 대단히 소중한 것을 잃어감을 느끼며 스스로의 깨달음으로 완전히 잃을 뻔 한 것을 다시 찾는 과정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제이크는 모든 걸 알고 있다, 이게 원제다. 제이크는 '정말 잘난' 사람은 어떠해야함을 서서히 깨달아간다. 과학경시대회에서 상품으로 내걸어진, 그토록 갖고 싶었던 최기종 컴퓨터를 독차지하기 위해 과학실험에 매달려온 자신의 모습을 보며, 과학이 좋아서, 알고 싶어서, 즐겁게, 잘난 척 하지 않으면서, 조용히 오래도록 실험관찰을 해온 피트에게 우승이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란 걸 깨닫는다. 하지만 제이크는 준우승에 흡족해한다. 왜냐하면 제이크는 절친한 친구 윌리와 공동 작업을 하며 너무나 즐거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 좋은 친구 윌리와 다시 뭉치며 우정을 다졌기 때문이다.

<잘난 척쟁이 경시대회>는 초등 중학년 정도의 아이들이 마음의 성장을 경험하는 과정을 풋풋하게 담고 있다. 자신을 과시하고 싶어 남을 누르고라도 잘난 척하며 나서고 남의 시선을 끌고 싶어 잘난 척을 하는 아이들의 심리가 밉지 않게 그려진다. '잘난 척척쟁이'였던 제이크의 아빠도 믿음직하다. 윌리와 제이크의 공동작업을 중간에 딱 한 번 봐주면서 아이들이 해 놓은 것을 바꾸라는 말이나 다른 도움 따위는 전혀 주지 않고 그저 스스로 생각해보라는 말만 해준다. 여기서 제이크는 아빠에 대한 신뢰를 가진다. 또한 눈빛만 보아도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 윌리는 제이크에게 있어 소중한 재산이다. 긍정적이며 유쾌한 성격의 윌리는 자신을 사랑하고 친구의 마음까지도 보듬어주며 생각이 깊은 아이다. 이런 친구와 함께 하는 일이라면 뭐든 즐겁지 않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리게 되는 제이크, 건강한 아이다.

이 책의 미덕은 아이들의 톡톡 튀는 대사와 함께 제이크와 윌리, 케빈과 마샤 그리고 피트의 성격을 개성있게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어른들은 주변에 두고 아이들을 주인물 구도로 하여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을 적극적으로 그려내어서, 읽는 내내 생동감이 느껴진다. 중간에, 과학을 하는 사람의 태도로 주변을 관찰하고 의문을 가진 다음에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실험하여 결론을 내리는 과정이 나온다. 평소 과학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이라면 이 부분에 집중하며 썩 재미있어할 것이다. 클레멘츠의 다른 동화에서 올바른 신문기사쓰기와, 언어의 창조와 소멸에 대해 아이들로 하여금 탐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듯이, 여기서는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하는 보너스까지 얻을 수 있다. 클레멘츠의 동화에는 특별한 재미가 있다.

4학년아이들과 읽고 잘난 척을 해보게 할 것이다. 어떤 이야기들을 쏟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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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또유스또 2006-07-21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이 책을 장바구니로 옮겨야 겟네요..^^
저 아들과 영화 보러 갑니다..
얼른 갔다 올께요~

프레이야 2006-07-21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 오셔서 후기 올려주시와요^^

비자림 2006-07-21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많이 쓰시는 님이 존경스럽사와요.^^

전호인 2006-07-21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기분좋아지는 아이 만나고 쉽땅!

프레이야 2006-07-21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호인님 댁에 있는 토끼같은 아이들이요~~~^^

비로그인 2006-07-21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보관함에 넣어둘랍니다. 제 딸도 조금 더 크면 볼 수 있겠네요.

해리포터7 2006-07-28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축하드려요 리뷰뽑히셨네요..저두 이책 담아감니다!

아영엄마 2006-07-28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리뷰당선 축하드립니다~~ ^^

가넷 2006-07-28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ㅎㅎ

기인 2006-07-28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이 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 앗 초등학교 선생님 이셨군요. (맞지요? ㅎㅎ) 아웅 저는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2년 남짓 다녔지만, 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초등학교 선생님 하면 준엄마 (^^; ) 같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답니다. ㅎㅎ

소나무집 2006-07-28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 님, 축하 드려요. 리뷰 열심히 읽고 있어요.

stella.K 2006-07-29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축하드려요!^^

또또유스또 2006-07-30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이 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휴가갔다 돌아 오시면서 좋은 소식으로 반겨 드리네요..^^
축하드려요... ~~~~~~~~~~~~~

치유 2006-07-31 0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프레이야 2006-08-01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휴가 갔다 왔더니 뜻밖의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네요.. 님들 축하 모두 모두 감사드려요 ^^

꽁주맘 2006-08-03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리뷰 항상 읽고보고 도움 많이 받고 있습니다. 장바구니가 님때문에 늘어나네요..ㅎㅎ 축하드려요.

프레이야 2006-08-03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꽁주맘님 반갑고 감사해요^^
 
 전출처 : 로쟈 > 엉터리 국어정책 유감

흐루시초프에 관한 자료들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지난 1월에 러시아어 등의 외국어 표기법에 개정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난 월드컵 때 선수들의 인명 표기에 상당한 변화/혼란이 빚어졌던 게 우연이 아니었던 것. 뒷북치는 셈이 됐지만, 여하튼 이런저런 개정 내용이 불만스럽다. 개정내용을 소개하는 한겨레의 기사와 문제점을 지적하는 스포츠칸의 기사를 옮겨온다. 스포츠칸의 엄민용 기자는 기자협회보에 '엉터리 국어정책 유감'이라고 그래도 답답한 마음을 좀 풀어주는 기사를 실었는데, 그걸로 페이퍼의 제목을 삼는다. 마지막엔 축구선수들의 표기 문제를 사례로 짚어본다. 중앙엔터테인먼트&스포츠의 기사이다.    

 

 

 

 

한겨레(06. 01. 08) 포르투갈어 등 3개언어 새 표기법 마련

-국립국어원은 5일 포르투갈, 네덜란드, 러시아 등 세 언어의 새로운 표기법을 고시했다. 이 표기법은 현지 언어의 발음에 가깝게 표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 △포르투갈어에서 r를 ‘ㄹ’과 ‘ㅎ’으로 구분하여 적고 브라질 지명·지명은 포르투갈어와 다른 브라질의 발음 특성을 반영하고 △네덜란드어의 g는 ‘ㅎ’으로 적고, v는 ‘ㅍ’과 ‘ㅂ’으로 나누어 적으며 △러시아어 p, t, k, b, d, g, f, v가 무성 자음 앞에 올 때는 받침으로 적고 sh와 shch는 ‘시’로 적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포르투갈의 인명 Ronaldo는 ‘호나우두’, Rivaldo는 ‘히바우두’로 적어야 한다. Jorge는 포르투갈 사람이면 ‘조르즈’로, 브라질 사람이면 ‘조르지’로 적어야 한다. 이과수폭포(브)는 이구아수, 리우그란데(브)는 히우그란지, 바스코 다가마(포)는 바스쿠 다가마 등으로 바뀐다. 네덜란드어의 경우 에인트호벤은 에인트호번, 에라스무스는 에라스뮈스, 호이징가는 하위징아, 스키폴 공항은 스히폴 공항으로 써야 한다.

-러시아의 차이코프스키는 차이콥스키, 고골리는 고골, 하바로프스크는 하바롭스크, 흐루시초프는 흐루쇼프, 푸슈킨은 푸시킨, 루빈슈타인은 루빈시테인으로 각각 바뀐다. 그러나 리우데자네이루, 아드보카트, 하멜, 보드카, 프라우다 등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 표기를 그대로 인정키로 했다(*흐루시초프나 푸슈킨이 아드보카트보다 지명도가 떨어진다는 말인가? '하위징아'는 또 뭔가? '하위징아'로 무얼 검색하란 말인가?).

-이번 표기법 고시는 1986년에 제정한 현행 표기법이 이들 언어에 대해 자세한 표기 규칙을 두지 않아 현지 발음과 동떨어지거나 체계적이지 못하여 언어생활에 혼란을 빚어 온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러시아어 등에 써오던 표기와 달라지는 것이 많아 상당한 혼란이 예상되며 정착되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달라진 표기법이 '현지 발음', 특히 '러시아어 발음'에 더 부합하는 것도 아니다. 왜 이런 억지를 강요하는 것인가? 원칙도, 철학도, 실리도 없는).

-한편, 국립국어원은 올해 안에 그리스어, 아랍어, 터키어 등 3개 국어에 대한 표기법을 고시할 예정이라고 밝히고 이로써 24개 외국어에 대한 표기법이 완성된다고 말했다(*이런 식이라면 그들만의 표기법이겠다. 국립국어원에서 할 수 있는 더 유익한 일들이 있지 않을까?). 그러나 몽골, 아프리카어에 대한 표기법은 특별한 불편과 수요가 없어 따로 두지 않기로 했다.(임종업 기자)

 

 

 

 

스포츠칸(06. 01. 10) 새 외래어표기법 ‘희한하네’

-국립국어원이 지난달 28일 포르투갈·네덜란드·러시아어 등 세 언어의 새로운 표기법을 지정·고시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음, 그러니까 작년말이었다는 얘기군). 국립국어원은 지난 5일 “1986년에 제정한 현행 표기법이 이들 언어에 대해 자세한 표기규칙을 두지 않아 현지 발음과 동떨어지거나 체계적이지 못해 언어생활에 혼란을 빚어왔다”며 “더 이상의 혼란을 막기 위해 새 표기법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금까지 써오던 표기와 달라지는 것이 많아 상당한 혼란이 예상된다. 더욱이 규칙 자체에 문제점을 드러내 정착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새 표기법에 따르면 ‘거스 히딩크' 전 축구국가대표 감독이 ‘휘스 히딩크’로 바뀌는 것을 비롯해 차이코프스키는 차이콥스키, 고골리는 고골, 하바로프스크는 하바롭스크, 흐루시초프는 흐루쇼프, 루빈슈타인은 루빈시테인으로 써야 한다(*'고골리'는 이미 '고골'로 쓰고 있다. 한데, '흐루시초프'를 굳이 '흐루쇼프'로 바꿔 표기해야 할까? 이 안에 따르면 러시아어의 'sh'와 'shch'의 음성표기가 동일하게 된다. 비슷한 소리이지만 동일한 소리는 아니며 영어 표기에서는 앞에서처럼 구분해준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은 수백억원의 국가예산을 들여 교과서를 바꾸고 민간 출판사들도 온갖 책들을 다시 찍어야 하는 일을 벌이면서도 공청회 등 의견수렴을 거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언론외래어공동심의위원회의 의견을 받아들여 ‘하멜’ ‘리우데자네이루’ ‘아드보카트’ 등 6가지를 ‘관용’ 표기토록 했을 뿐이다(*아드보카트가 언제 한국에 다시 올는지 모를 일임에도, 국내에 많은 책들이 소개돼 있는 흐루시초프나 푸슈킨 등이 '관용'에서 예외로 처리된 건 놀라운 일이다. 그들만의 행정으로 봐주어야 하는 일일까?) .

-하지만 이마저 언론을 의식한 ‘면피용’으로 비친다. 최근 언론에 부쩍 많이 나오는 축구국가대표 감독 ‘아드보카트’에 대해 “원래는 ‘앗보가트’가 맞지만 관용 처리한다”고 하면서, 더 많은 국민이 알고 있을 흐루시초프 등은 관용표기를 허용하지 않았다. 특히 이 관용표기는 ‘아드보카트의 아들 앗보카트가…’ ‘하멜표류기를 쓴 하멜의 자손인 하멀은…’ 따위로 써야 하는 모순을 안고 있다. 지난달 28일 고시하고도 그 사실을 1주일 넘게 알리지 않은 이유도 의문이다. 이와 관련, 국어연구원의 관계자는 “현실적 쓰임과 지나치게 괴리하는 말은 토의를 거쳐 관용표기를 허용할 방침”이라고 말했다.(엄민용 기자)

기자협회보(06. 01. 18) 엉터리 국어정책 유감

-국립국어원은 지난달 28일 포르투갈·네덜란드·러시아어 등 세 언어의 새로운 표기법을 지정·고시했다. 그리고 지난 5일 이 같은 사실을 뒤늦게 언론에 알리면서 “1986년에 제정한 현행 외래어표기법이 이들 언어에 대해 자세한 표기규칙을 두지 않아 현지 발음과 동떨어지거나 체계적이지 못해 언어생활에 혼란을 빚어왔다”며 “더 이상의 혼란을 막기 위해 새 표기법을 마련했다”고 밝혔다(*더 이상의 혼란을 막은 게 아니라 그 이상의 혼란을 더 보탰다!).

-그러나 오히려 새 표기법 때문에 국민의 국어생활이 혼란스러워지지 않을까 염려된다(*내 말이 그 말이다. 이런 문제제기가 스포츠신문의 기자 한 사람에게서만 나왔다는 것도 신기한 노릇이다). 새 표기법에 따르면 그동안 온 국민이 ‘거스 히딩크’라 부르던 전 축구국가대표 감독은 ‘휘스 히딩크’로 바뀐다. 또 차이코프스키는 차이콥스키, 고골리는 고골, 하바로프스크는 하바롭스크, 흐루시초프는 흐루쇼프, 루빈슈타인은 루빈시테인으로 써야 한다. 그뿐 아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만든 ‘관용 표기’인지 모르겠지만, ‘아드보카트의 아들 앗보카트가 한국에 왔다’거나 ‘하멜의 자손인 하멀은…’ 따위로 써야 한단다(*엄기자가 잘 꼬집고 있다).

-국립국어원은 이처럼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들 일을 벌이면서 국민의 얘기는 한마디도 듣지 않았다. 공청회는 고사하고, 신문사에서 매일 외래어표기법과 씨름하는 교열기자들에게도 일언반구가 없었다. 수백억원의 국가예산을 들여 교과서를 다시 찍어야 하고, 민간 출판사들도 제 돈을 들여 온갖 책을 다시 찍어야 하는 상황을 국립국어원은 아주 비밀스레 만들었다. 그 이유가 뭘까? 국립국어원의 한 관계자는 “표기법을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할일인데, 그 일을 하면서 일일이 알릴 필요가 있느냐”고 말했다(*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당신들이 한 일을 일일이 공표하지도 말라는 것이다. 내부용으로만 돌려보면 될 거 아닌가?).

-무서운 말이다. 슬픈 얘기다. 그 관계자의 말이 국립국어원 전체의 생각을 대변한 것이라면 이미 우리의 국어는 죽은 송장이다. 말과 글의 주인은 국민, 즉 언중이다. 일부 학자들이 마음대로 이래라저래라 할 것이 못된다. 한글맞춤법이 어찌되어 있든, 표준어규정이 어떻게 정하고 있든, 많은 언중이 자주 쓰면 그 말이 표준어가 되는 게 상식이다. 외래어도 마찬가지다. 미국인이 어떻게 소리내든, 아프리카 원주민이 뭐라 발음하든, 그런 말이 우리 국민이 똑같이 쓰는 말을 못 쓰게 만들 수는 없다. 세상에 ‘그런 벱’은 없다(*이 정도의 상식도 통하지 않는다는 게 거듭 유감스럽다).

-국립국어원은 ‘나라의 적기가 외국의 소리와 달라 어린 백성이 혼란을 겪는 것이 안쓰러워’ 새 표기법을 만들었다고 했다(*그 취지가 심히 한심해서 말도 안 나온다). 그 말이 맞는다면 ‘라디오’ ‘컴퓨터’ ‘밀크’ 따위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나라의 이름은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외국 어디도 우리를 대한민국이라 불러주지 않는다. ‘KOREA’라 쓰고 ‘코리아’라고 소리내는 영문도 지들 마음대로 ‘COREE’라 적고 ‘꼬레’쯤으로 소리낸다. 그것이 외래어표기다.

-외래어 표기는 외국인들에게 ‘우리가 당신네 말을 당신네 소리대로 잘 적어주고 있지요’라고 자랑하려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의 국어생활에 통일을 기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이 정도의 상식도 모른다면, 국립국어원의 명칭을 국립외국어원으로 바꾸는 게 차라리 낫겠다). 따라서 한번 정해진 것은 쉬 바꾸는 것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툭하면 바뀌는 외래어 표기는 정말 문제다.

 

 



-더욱이 이번 새 표기법은 국립국어원이 수년 전 1백억원이 넘는 돈을 들여 만든 <표준국어대사전>마저 쓰레기로 만들었다. 그 사전은 이제 버려야 한다. 아직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새 표기법과 다른 말이 수천자는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새 표기법은 이미 지정·고시됐다. 이제 와서 왈가왈부한다고 해서 만든 표기법을 버릴 수도 없다(*대신에 무시하는 도리밖에 없겠다). 하지만 이같은 일이 반복돼서는 안된다. 국립국어원이 몇몇 학자들 중심으로 표기법을 만들고 국민들은 무조건 따르라는 식으로 해서는 안된다(*러시아어 표기만 하더라도 전공자들마다 의견이 다 제각각이다. 전문가의 자문이랍시구 한두 사람의 의견을 수렴해서 국민 모두에게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국립국어원이 언중 위에 군림하면 국어가 죽는다.

JES(06. 07. 06) 호나우두 혹은 호날두

-이번 월드컵을 보다 보면 생각나는 록 밴드가 있다. 바로 너바나다. 1990년대의 록을 이야기할 때의 너바나를 빼놓는다면 깍두기 없이 설렁탕과 다름없다. 그러나 한국을 대표하는 DJ 배철수씨는 너바나라는 그룹을 모른다. 그에게 이 밴드를 물으면. “아. 니르바나(Nirvana)?”하고 되묻는다. 불교 용어로 열반(涅槃)을 뜻하는 니르바나는 천년 전부터 한국인들이 쓰던 단어인데 한 미국 밴드가 그 단어를 이름으로 썼다고 해서 새삼 다른 식으로 읽을 이유가 있느냐는 주장이다. 말하자면 ‘마다나’를 ‘마돈나’라고 쓰는 것과 같은 이치다. 늘 바뀌는 외국 인명ㆍ지명의 한글 표기에 경종을 울리는 주장이다.

-한글 외래어 표기는 언론인들의 영원한 숙제다. 현행 기준 중 가장 중요한 원칙은 ‘현지인이 발음하는 대로 적는다’는 것이다(*가장 웃기는 원칙이다. 우리끼리 쓰면서 '현지음' 흉내를 왜 내는가? 입에 침이 마르는군. "워러 플리즈!"). 물론 중요하다. 똑같이 써도 프랑스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가 미국으로 건너가면 청바지 상표인 리바이-스트라우스로 변하고. 역시 알파벳만 보면 미국 조지아 주와 구 소련 지역의 그루지야 공화국이 혼동되기도 한다(*실제로 '그루지야'를 '조지아'라고 표기하는 사례가 종종 나온다).

-하지만 대회때마다 바뀌는 축구 선수의 권장 표기 명칭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지난 98년 미국월드컵에 등장한 호나우두 이후로는 포르투갈어의 R을 ‘ㅎ’으로. L을 ‘이우’로 읽는 관행이 정착됐지만 이번 월드컵에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복병으로 등장했다. 외모와 실력을 겸비해 국내에도 익히 알려진 이 선수는 호나우두에서 하루 아침에 호날두로 개명을 당했다.

-이유가 가관이다. 같은 포르투갈어지만 L이 이우로 발음되는 것은 브라질 식의 발음이고. 포르투갈 본국에서는 그냥 ‘ㄹ’로 발음된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그리고 물론 한심하다). 국립국어원에서 언제쯤 호나우두의 조국은 브라질이 아닌 ‘브라지우’라고 표기해야 한다는 공문이 나올지 궁금할 뿐이다.

-한국에서 ‘반니’라는 애칭으로 불린지 오래인 반 니스텔루이 역시 하루 아침에 판 니스텔로이가 됐다. 글쎄. 어련히 알아서 정했겠지만 지난해 내한했던 PSV 에인트호벤(이것도 국립국어원이 정한 권장 표기다) 관계자가 “우리 팀의 이름은 아인트호벤인데 왜 한국에서는 에인트호벤이라고 쓰는지 모르겠다”는 걸 보면 정말 현지 발음에 더 가깝기는 한 건지 좀 의심스럽기도 하다.

-현지 발음에 가까운 것도 좋지만 일단 정착된 표기는 최대한 존중하고. 혼란을 최소화하는 것이 한글 표기법의 사명이 아닐까(*공무원은 때로 복지부동하는 것이 차라리 국민에게 유익하다). 지금까지는 사실 강 건너 불이지만. 이런 과잉 교정의 열풍이 언제 연예계로 밀어닥칠까 불안하기만 하다. 영국 출신인 비틀즈 멤버 존 레논과 미국을 대표하던 배우인 잔 웨인이 ‘파리’ 아닌 ‘빠히’에서 만났다고 기사를 쓰게 되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송원섭 기자)

06. 0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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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sooninara > [퍼온글] [펌] 강풀 - FTA를 말한다.

우와!  이젠 강풀도 FTA를 말하네요! 
원래 하던 연재를 중단하고 FTA 만화를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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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20 1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6-07-21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저러다 큰일나겠어요...우리 농민들은 어떻게 살아가야할련지
싼것두 좋치만 저라다 농민들 다 사라지고 미국에서 다 해달라고대로 비싸도 따라가야할 깜깜한 미래밖에 안보이네요...석유 의약품까지 정말 심각해지네요 ㅠ.ㅠ
 

쿠바 초등학교 교실 사진   2006/07/19 01:09

쿠바 아바나의 아바나비에하에 있는 초등학교의 모습입니다.

쿠바 혁명후 성공적인 것은 교육분야라고 합니다. 남미국가중 문맹퇴치율이 가장 높은 국가이며

모두 의무교육입니다.

 

한 한급당 학생수도 적절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교실 모습을 보면 혁명가 체게바라, 피델카스트로

그리고 국민적인 영웅인 호세마르띠의 사진이 있습니다.

 

DSCF3189.jpg

 

 

DSCF3194.jpg

수업중 교실로 내려온 해빛을 받고 있는 학생

 

 

DSCF3187.jpg

교실에 걸려있는 피델 카스트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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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종이수염 한빛문고 16
하근찬 지음, 강우현 그림 / 다림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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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근찬님의 단편이 셋 실려있는 책이다. 모두 향토적인 색채가 느껴지는 문체가 익살스러우면서도 서글픈 삶을 사는 서민의 모습을 보여준다. 순박한 언어 속에 그들이 짊어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냉정한 현실이 느껴져 안타깝다. 작가는 전쟁터에서 아버지의 시신을 찾아헤맨 경험이 있는, 전쟁을 몸소 겪은 사람으로서 그의 작품에는 전쟁과 그것이 남긴 상처가 자주 등장한다. 작가의 체험이 글에 녹아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지만 작가는 전쟁 자체를 그려내기보다는 그것이 개인에게 입힌 상흔을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관념적으로 전쟁의 잔인함을 그린다거나 거창하게 국가와 민족, 이념을 그리기보다는 보잘 것 없어보이는 시골 사람을 등장인물로 하여 소박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삶에 전쟁이 할퀴간 상처가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를 그저 보여주기만 하는 방식이다.

첫번째의 단편, <흰 종이수염>은 동길이라는 초등학생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데 이 아이는 징용 간 아버지 때문에 사친회비도 못 내고 교실에서 쫓겨날 판이다.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동길이는 이런 현실에 발끈하고 욕설을 내뱉는다. 어느 날 마루에 누워자고 있는 남자는 돌아온 아버지인데 한쪽 팔이 없다. 뎅그러니 흔들리는 오른쪽 옷소매가 을씨년스럽게 느껴진다. 목수일을 해야하는 아버지로선 한쪽 팔이 없으니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찾아야한다. 술에 취해 헐렁대며 들어온 아버지는 흰 종이수염을 만들고 동길은 다음날 거리에서 흰 종이수염을 단 아주 괴상스러운 사람을 보게 된다. 광대옷을 입고 몸의 앞뒤로 극장광고판을 지고 있는 그 희한한 사람의 눈과 동길의 눈이 마주치는 장면에서 가슴이 덜컥한다. 동길은 흰 종이수염을 건드리며 희롱하는 친구에게 주먹세례를 퍼붓고 모든 상황을 눈치챈 아버지는 그저 "야가 와 이리라노?" 라는 말로 넘기려 허둥대고 있다. 아마도 그 눈에는 눈물이 맺혔을 테다.

작가는 경북 영천이 고향이다. 그래서 여기 작품들의 대사는 모두 경상도 사투리로 나온다. 그 말을 소리내어 읽어보면 참 구수하다. 투박하지만 끈끈한 정이 묻어나는 맛이다. 작가는 묘사를 길게 하지 않는다. 설명이나 자기해석도 자제한다. 간결한 문장과 소박한 단어가 시골무지랭이들의 삶을 잘 보여주면서 그들만이 나눌 수 있는 속깊은 정을 느끼게 해준다. 경상도 말이 그렇듯이 대사 자체도 장황하지 않고 곱살스럽지도 않다. 때로는 그저 침묵(말줄임표)으로 일관하는 부분도 있고 툭툭 내뱉듯이 단어가 끊겨서 나온다. 그래도 그 안에 담긴 속정이 코허리를 시큰하게 한다.

부자간의 속정이 진한 감동을 주는 작품은 <수난이대>다. 태평양전쟁 때 징용 가서 한 쪽 팔을 잃은 아버지와 한국전쟁에 나가 한 쪽 다리를 잃은 아들이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장면은 가슴 저리다. 아버지가 아들을 업고 아들은 지팡이와 고등어를 양손에 나누어 들고 아버지의 목을 꽉 끌어안고 매달려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것이다. 그래도 떨어지지 않고 잘 건너는 그들. 크레파스로 아이가 그린 것처럼 그려놓은 삽화가 기괴한 느낌을 자아낸다. 희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면 속에 진한 눈물이 숨어있다.

전쟁이 가져온 불행이 이들에게는 단지 불편함일 뿐이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시대를 한스러워하는 대목도 찾아볼 수 없다. 역사의식이 부족한 것이 아닐까, 하는 염려는 가방끈 좀 길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의 짧은 생각이다. 한 쪽 다리로 다니려니 영 불편하다고 말하는 아들과 그래도 살아있으니 괜찮다고 말하는 아버지. 나가서 하는 일은 내가 하고 집에 앉아 하는 일은 네가 하면 안 되겠나?, 이렇게, 버겁고 가여운 삶에 빨리도 적응하며 살아갈 방편에 몰두하는 아버지. 장성한 아들을 업고 한 쪽 팔로 업고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아버지의 어깨가 상상할수록 묵직하다. 작가는 감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이들의 대사만으로 전쟁의 아픔을 전해준다.

<전차구경>은 옛날 전차운전수였던 할아버지와 지하철이 개통되는 날을 기대하며 부라보콘을 먹는 손자의 이야기이다. 박물관의 고물 같은 옛날의 전차와 오늘날의 빠르고 깨끗한 지하철을 대비하여 보여주면서 조주사가 느끼는 옛것에 대한 그리움으로 독자를 끌고간다. 산업화로 발전이 가속화하고 인심은 각박해지는 시대에 살고있으면서 옛 맛에 대한 그리움을 놓지 못하는 조주사를 통해 옛 것의 미덕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도록 하루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전차의 속도와 지하철의 속도가 글 전체에서 대비됨을 느낄 수 있다. 옛 것에 매달려 있는 것은 좋지 않겠지만 수수하고 느리며 인정이 느껴지는 옛 전차의 풍경처럼 옛 것을 돌아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한 것이다.

속도와 경쟁을 부추기는 자본의 논리 속에서 세상의 속도에 발맞추지 못하는 조주사의 쓸쓸함이 술기운을 빌어 건들건들 추는 춤 속에 묻어나온다. 골동품이 되어버린 전차는 마치 조주사 자신의 모습인 것 같아 더욱 애절해진다. 요즘 아이들이 이 대목에 공감하기란 어렵겠지만 뭔가 더 소중한 가치가 있다면 무엇일까에 대한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다. 중학 1학년 아이들과 읽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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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6-07-20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소년용이군요.
제가 그맘때 읽었을 적에도 그냥 그런갑다 했으니 아이들도 그렇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