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이매지 > 혼도와 페이비언의 즐거운 하루

누가 더 즐거웠을까?

피터 매카티 글, 그림 / 장미란 옮김 / 바다어린이

 

 




 

고양이 페이비언은 창가에서,

강아지 혼도는 마루에서,

저마다 가장 좋아하는 자리에서

색색 자고 있습니다.

 

 




 

"혼도야, 일어나. 놀러 가야지!"

혼도는 재미있는 곳에 놀러 갑니다.

 

 




페이비언은 집에 남아 있습니다.

 

 




도는 자동차를 타고 어디로 가는 걸까요?

 

 




혼도는 바닷가에서 친구랑 놉니다.

 

 




페이비언은 집에서 아가랑 놉니다.

 

 




혼도와 친구는 신이 나서 바다로 첨벙 뛰어듭니다.

 

 




페이비언은 어디론가 뛰어갑니다.

 

 




혼도는 친구랑 재미있게 놀고 있습니다.

 

 




페이비언도 재미있게 놀고 있습니다.

 

 




이제 혼도는 배가 고파요.

혼도는 물고기가 먹고 싶어요.

 

 




페이비언도 배가 고파요.

페이비언은 칠면조 샌드위치가 먹고 싶어요.

 

 




드디어 혼도가 돌아왔습니다.

어서 저녁밥을 먹어야지요!

 

 




혼도와 페이비언은 사이 좋게 저녁밥을 먹습니다.

 

 




혼도와 페이비언은 배가 부릅니다.

이제 늘 자던 곳으로 돌아갑니다.

 

"혼도야, 잘 자."

"너도 잘 자."

 

 




"아가도 잘 자!"

 

 

 

햇살이 따뜻한 곳에서 읽으면 너무나 잘 어울릴 것 같은 책이죠?
짤막짤막한 글임에도 여운이 길게 남습니다.
누가 강아지와 고양이를 천적이라고 했을까요?
여기서는 너무 다정해 보이기만 하는걸요.
그림도 너무 예뻐요.
전 그림을 보자마자 크빈트 부흐홀츠를 떠올렸는데 여러분은 어떠세요?
부드러운 파스텔 그림이 서로 닮은 것 같아요.
파스텔은 선명하다기보단 은은한 느낌이잖아요.
그래선지 꼭 꿈을 꾸고 있는 기분이 들어요.
아기가 자기 전에 읽어 주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책은 저만 예쁘다고 생각한 게 아니었나 봐요.
2002년에는 <뉴욕타임즈> 올해의 최고 그림책상과 2003년에는 칼데콧 아너상을 수상했거든요.
(칼데콧상은 최우수상 1권, 칼데콧아너상은 우수상으로 1~5권이 선정됩니다.)

이책을 보고 나니 고양이를 키우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진 것 같아요.
(의자 위에 예쁘게 앉아 있는 페이비언이... 마치 "날 가지세요~." 하고 유혹하는 것만 같아요. ㅠ.ㅠ)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고양이는 요물이라는 집안 식구들의 반대로
아이가 태어나서는 아이 건강에 해롭다는 반대로
이래저래 고양이와는 인연이 없는데요.

만화가 이우일씨네 집에 있는 너무나도 멋진 고양이 카프카가 순간 떠오르네요.
그럼 날 때부터 카프카와 함께 자란 은서는 어떻게 건강하단 말입니까!!!

참, 책 날개 뒷쪽에는 혼도와 페이비언의 진짜 모습도 볼 수 있답니다.
피터 매카티와 그의 아내 윤희, 딸 숙희가 실제로 키우는 애완동물들이거든요.
이름을 보니 우리 나라 분과 결혼하셨나 본데...
그렇다면 페이비언과 함께 놀던 아가가 숙희인가 봐요.
아무튼 오랫만에 따스한 감성의 그림책을 만나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혼도와 페이비언 둘 중에 누가 더 즐거웠는지는 여러분의 생각에 맡길게요! ^^

 

출처 : http://paper.cyworld.com/boo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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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가넷 > [진중권의 교양 돋보기|사진 이론의 역사]

[진중권의 교양 돋보기|사진 이론의 역사]

어떤 사진에 강렬한 ‘필’이 꽂히는 이유는
대부분 관습적 독해 코드로 이미지 읽기 … 메시지 담긴 사진 감동이 살아 있어
중앙대 겸임교수 mkyoko@chollian.net
 
주체의 사라짐

마이클 스노, ‘Authorization-사진사의 초상’, 1969.

캐나다 오타와 국립미술관에 가면 재미있는 작품이 있다. 전시실 벽에 거울이 걸려 있고, 그 매끈한 표면 위에 다섯 장의 사진이 붙어 있다. 넉 장은 거울의 중앙에 함께 배치되어 있고, 나머지 한 장은 뚝 떨어져 왼쪽 상단에 있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사진사가 거울 앞에 서서 폴라로이드카메라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찍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먼저 그는 텅 빈 거울을 향해 셔터를 누른다. 즉석에서 현상된 사진은 거울에 테이프로 표시된 사각형의 한쪽 귀퉁이에 붙여진다. 그것이 거울 속 사진사의 모습을 4분의 1가량 잡아먹는다. 이어서 같은 위치, 같은 각도에서 또 한 번 셔터를 누른다. 곧바로 카메라 밑으로 삐져나온 사진은 앞 사진의 오른쪽에 나란히 붙여진다. 이제 사진을 찍는 사진사의 모습은 절반이 가려졌다.

이어서 같은 방식으로 다시 셔터를 누른다. 이번 사진은 두 사진의 아래쪽에 배치되고, 이로써 사진사의 모습은 4분의 3이 사라진다. 이제 다시 그것을 찍어 남은 귀퉁이에 붙이면 테이프로 표시된 거울 위의 사각형에서 작가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진다. 그럼 이제 찍을 것은 하나뿐이다. 사진사를 집어삼켜 버린 넉 장의 사진. 그것을 찍은 마지막 사진은 거울의 왼쪽 상단으로 올라간다.

 

사진적 행위

“주체는 자신의 복제 때문에 점진적으로 매장되고, 언제나 이미 지나간 순간을 고착시키는 재현에 의해 각각의 조준과 촬영 순간마다 조금씩 삼켜지고 지워진다.” 여기서 “주체는 사진적 행위에 의해, 그리고 그 행위 속에서 완전히 용해된다.” 주체가 사라진 곳에 남는 것은 작가의 얼굴을 집어삼킨 다섯 장의 사진으로 표상되는 것, 즉 사진을 찍는 이미지 행위(image-acte)뿐이다.

디에고 벨라스케즈,‘시녀들’, 1656.

‘사진적 행위’에서 필립 뒤바는 이 작품에 자신의 논지 전체를 암시하는 ‘상징의 역할’을 맡긴다. 푸코는 ‘말과 사물’에서 벨라스케즈의 ‘시녀들’을 에피스테메론의 엠블럼으로 삼아 그것을 회화의 회화, 즉 고전주의적 표상의 표상으로 규정한 바 있다. 뒤바 역시 이 캐나다 작가의 작품을 사진의 사진, 즉 사진 찍기의 사진으로 푼다. ‘Authorization-사진사의 초상’(1969)이라는 제목은 ‘작가에게 권한을 부여한다’고 말하나, 정작 작품에서 사진사는 점차 지워진다.

이는 물론 당시에 롤랑 바르트가 ‘저자의 죽음’이라 부르고, 탈근대 철학자들이 ‘주체의 죽음’이라 불렀던 것의 사진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미학에서는 예술가를 타고난 ‘천재’로 보든, 아니면 후천적인 ‘장인’으로 보든 작품을 작가의 주체성의 표현으로 보았다. 하지만 현대 예술가들은 종종 자신을 ‘영매’로 간주하곤 한다. 이 경우 작품은 작가 개성의 표현이 아니라, 어떤 객관적인 사태가 벌어지는 사건의 성격을 띠게 된다.

 

실재의 거울

뒤바는 이 작품을 작가의 주관성의 표현이 아니라 사진 그 자체의 작동(une mise en acte)으로 본다. 이는 물론 진리의 발동(ins Werk Setzen)이라는 하이데거의 개념을 불역한 것이다.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에서 중요한 것은 작가나 작품이 아니라 ‘그린다’는 행위 자체다. 뒤바 역시 스노의 작품에서 작가를 지우고 그것을 ‘찍는다’는 행위로 환원시킨 뒤, 이제까지 사진 이론에서 그 행위의 본질을 어떻게 파악해왔는지 추적해 들어간다.

   


윌리엄 헨리 폭스 탈보트, ‘포토제닉 드로잉’, 1840.

사진 이론의 역사를 재구성하려면 먼저 퍼스의 기호학을 알아야 한다. 퍼스는 기호를 크게 도상, 지표, 상징의 세 가지로 나누었다. 도상(icon)은 흔히 보는 그림처럼 ‘유사성’을 토대로 한 기호. 지표(index)는 남편의 와이셔츠에 묻은 루즈가 그의 바람기를 의미하듯이 ‘인과성’을 토대로 한 기호. 상징(symbol)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처럼 지시 대상과 아무런 유사성이나 인접성 없이 그저 관습과 협약에 따라 사용되는 ‘무연성(無緣性)’의 기호다.

사진도 일종의 기호라면, 이 가운데 어디에 속하는가? 처음에 카메라가 발명됐을 때 당장 사람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사진이 현실을 빼어나게 닮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에게 사진은 현실을 쏙 빼닮은 도상기호였다. “사진과 영화는 그 속성상 사실주의의 강박관념을 충족시켜 준다.” 현대 회화가 재현의 과제를 사진에 넘겨주고 추상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이렇게 19세기 사진 이론에서 사진은 무엇보다도 ‘실재의 거울’이었다.

 

실재의 변형

하지만 우리는 이게 얼마나 소박한 생각인지 잘 알고 있다. 사진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변형해서 보여준다. 루돌프 아른하임에 따르면 사진을 찍을 때 우리는 이미 관습적 도식, 즉 문화적으로 형성된 지각의 코드를 적용한다. 인류학의 연구 역시 문명 이전 사회에 사는 부족들은 종종 사진을 보고도 이해를 못한다고 보고한다. 이 역시 사진의 바탕에는 해독을 위해서 따로 배워야 할 어떤 관습적 코드가 깔려 있기 때문일 게다.

사진은 거울처럼 실재를 있는 그대로 비추는 게 아니라 대개는 현실을 변형시켜 제시한다. 가령 지난번에 본 로젠탈의 사진은 연출된 장면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굳이 인위적으로 연출하지 않아도 사진이 세계를 그대로 반영하는 건 아니다. 무엇을 찍을까, 어떻게 찍을까를 결정할 때부터 이미 사진 속에 찍히는 세계는 찍는 사람의 머릿속의 관념에 따라 변형되게 마련이다. 사진은 세계의 그림이기 이전에 그것을 찍는 이의 머릿속 그림이다.

윌리엄 헨리 폭스 탈보트, ‘포토제닉 드로잉’, 1840.

이 때문에 ‘카이에 뒤 시네마’ 그룹에서는 사진의 바탕에 이데올로기가 깔려 있다고 보았다. 사진은 그림이기 이전에 관념이라는 것이다. 사진이 일종의 감추어진 텍스트라면, 그것은 도상기호가 아니라 상징기호가 되는 셈이다. 20세기 초의 사진 이론은 사진을 세계의 거울이 아니라 ‘실재의 변형’으로 보았다. 사진은 세계를 찍는 이의 관념에 맞게 세계를 변형시켜 제시한다. “글자를 모르는 자가 아니라 사진을 못 읽는 자가 미래의 문맹이 될 것”이라는 베냐민의 언급도 이와 관련이 있다.

 

실재의 자국

20세기 후반에 들어오면 사진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등장한다. 이미 루돌프 아른하임은 “물리적 대상들은 그들의 이미지를 빛의 광학적, 화학적 반응을 통해 스스로 자국으로 남긴다”고 말한 바 있다. 엄밀히 말하면 사진은 도상기호가 아니다. 사진기는 현실을 재현할 ‘의도’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피사체와 카메라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반사광과 감광물질 사이의 광학적, 화학적 인과관계뿐이다.

이는 특히 포토그램에서 잘 나타난다. 탈보트는 피사체를 인화지 위에 올려놓고 바로 현상하는 ‘포토제닉 드로잉’을 선보였다. 만 레이 같은 예술가도 비슷한 작업을 남겼는데, 그는 여기에 ‘레이요그래피’라는 이름을 붙였다. 로잘린 크라우스의 말대로 “포토그램은 모든 사진에 적용되는 것을 극단적으로 보여주거나 명확하게 한다. 모든 사진은 빛의 반사에 의해 감광면 위로 이동된 물리적 자국의 결과다.”

   


로버트 카파, ‘인민전선 병사의 죽음’, 1936.

물론 사진은 분명히 사물과 사람을 닮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의 물리적 효과, 즉 사실적인 모방 개념과 상관없는 빛 자체의 물질효과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사진은 무엇보다도 그 본성상 지표기호라고 해야 한다. 이렇게 하여 사진은 실재의 거울, 실재의 변형을 거쳐 마침내 ‘실재의 자국’이 되었다. 이렇게 20세기 후반에 사진 이론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이 바로 롤랑 바르트의 텍스트 ‘카메라 루시다’다.

 

스투디움과 푼크툼

우리는 사진의 의미를 독해할 수가 있다. 가령 흑인 장교가 프랑스의 삼색기에 경례를 하는 사진이 있다고 하자. 거기서 우리는 작가가 던지는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다. 즉 ‘조국 프랑스는 피부 색에 상관없이 누구나 프랑스군의 장교로 받아들인다. 삼색기는 우리 모두의 조국이며, 그 아래서 피부색이 다른 우리 모두는 하나의 국민이다.’ 이때 그 사진은 프랑스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이데올로기의 시각적 표현이 된다.

만 레이, 레이요그래피 ‘키스’, 1935.

이렇게 사진을 읽을 때 관습적으로 동원되는 독해 코드를 바르트는 ‘스투디움(studium)’이라고 부른다. 스투디움에 대해 무지할 때 우리는 사실상 문맹자가 되어 사진 속 이미지를 그대로 세계의 거울로 생각하는 주술적 의식에 빠지게 된다. 때문에 사진의 의미를 읽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스투디움을 이해해야 한다. 이로써 사진은 상징기호가 된다. 하지만 사진의 본질이 과연 그런 일반적인 해석의 틀에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가끔 어떤 사진을 볼 때, 그 모든 의미의 해석에 앞서 이른바 ‘필이 꽂히는’ 체험을 하게 된다. 스페인 내전 당시 인민전선의 병사가 총에 맞아 죽는 장면을 포착한 로버트 카파의 사진을 생각해보라. 이런 강렬한 체험을 일으키는 것은 그 사진의 의미를 읽게 해주는 ‘일반적’ 해석의 틀이 아니라 그 사진의 ‘개별적’ 존재가 찌르는 고유한 효과다. 이는 곧 사진이 우리 신체에 남긴 ‘자국’이라 할 수 있다. 이 촉각적 효과를 바르트는 ‘푼크툼’(punctum)이라고 부른다. 사진의 진정한 본질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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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에 외래어종 방생하지 말아야



청계천[2].jpg

 

서울시민의 문화 휴식처로 막대한 예산을 들여 새로 태어난 청계천에 일부  시민들이 생태 위해(危害) 외래어종인 붉은귀거북, 금붕어등을  방생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이 같은 불법 방생은 야간에 인근 수족관에서 외래어종의 물고기를 사 남의 눈을 피해 몰래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 외래 어종은 폐해는 우리의 토종 물고기를 잡아먹고 대량 번식해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것으로 그 유해성이 크다.


특히 붉은 귀거북의 폭력성 심해 살아 움직이는 생물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으며 이로 인해 죽은 물고기가 청계천에 떠다니고도 있어 시민들의  미관을 크게 해치고 있다.


한편 청계천에서는 이미 오간수 문 주변과 다산교 상류에 방류 금지 안내판을 설치했지만 여전히 물고기를 방생하는 불법 사례가 줄지 않고 있다.


현재 야생동식물보호법에서는 붉은귀거북·큰입배스·파랑볼우럭(블루길)·황소개구리 등 외래종과 수입산 물고기 등 생태계 교란의 우려가 있는 어류의 방생을 금지하고 있다.


또한 청계천은  잉어 ,피라미, 버들치, 돌 고기 등 우리 고유종이 이제 막 서식처로 자리 잡고 있는 생태하천이어서 방생 장소로도 적당하지 않다.


맑은 청계천을 사랑하며 지켜가고 모든 시민들이 쾌적하게 공유하려면  단속에 앞서 외래어종의 무분별한 방생과 같은 개인적인 이기주의는 자제할줄 아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아쉽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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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6-06-28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아, 몰래 사서 방생하는 사람은 대체 뭐죠?
 
 전출처 : 가넷 > [진중권의 교양 돋보기|열정과 이해관계]

[진중권의 교양 돋보기|열정과 이해관계]

희로애락 삼킨 차가운 ‘경제적 인간’
외향 인성 근대화 거치며 내성적 인간으로 … 물질 소유의 욕망 다른 모든 정념 희생

베르니니의 ‘다비드’ (1623~24)

한국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몸부림치며 울던데요?” 일본에 갔다가 들은 얘기다. 가족이 죽었는데 땅을 치며 곡을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그럼 “일본 사람들은 가족이 죽어도 울지 않느냐?”고 물었다. 일본인들도 가족이나 지인의 죽음을 슬퍼하기는 해도, 한국 사람들처럼 격렬하게 감정을 표출하는 일은 좀처럼 없다고 한다. 문화가 다르면 감정의 구조도 달라지는 모양이다.

독일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내가 살던 기숙사 옆에 큰 병원이 있었는데, 종종 거기서 커다란 비명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사망한 환자의 가족이 내지르는 절규다. 그러던 어느 날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렇게 땅을 뒹굴며 울부짖는 이들이 대부분 검은 머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족이나 친지의 죽음에 격렬한 슬픔을 나타내는 이들은 라틴계나 동양계뿐이고, 금발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게 요란하게 우는 것은 거의 보지 못했다.

냉정과 열정

한국의 길거리에서 이따금 목격하는 게 있다. 다 자란 성인들이 서로에게 욕설을 퍼붓거나 멱살을 잡는 장면이다. 특히 도로에서 접촉사고가 나면, 두 운전자가 벌컥 문을 열고 튀어나와 다짜고짜 삿대질을 한다. 그러나 똑같은 상황에서 독일인들은 다르게 행동한다. 사고가 나면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나와 “구텐 탁!”이라고 인사를 한 뒤 경찰관이 올 때까지 도란도란 얘기하며 기다린다.

물론 이것이 반드시 동서양의 차이인 것은 아니다. 예컨대 동양에도 일본처럼 비교적 냉정한 문화가 있는가 하면, 서구에도 라틴계처럼 비교적 뜨거운 문화가 있는 것이다. 유학 시절, 주세페라는 이름의 이탈리아 친구가 있었다. 어느 날 이 친구랑 길을 걷는데, 갑자기 베를린공대의 못생긴 건물을 보더니 두 팔을 벌리며 외치기를 “오, 수학과 건물이여. 그대를 사랑하노라” 하는 것이다.

이런 감정구조의 차이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일본의 경우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 혹은 자본주의화에 성공한 나라다. 반면 서구의 라틴계 나라들은 문화적 보수성 때문인지 유럽의 다른 나라들보다 근대화에 늦은 축에 속한다. 이것으로 보아 감정을 자제하는 문화는 ‘근대화’의 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앨버트 허시먼의 ‘열정과 이해관계’는 중세의 열정이 근대의 냉정으로 변하는 과정을 다룬다. 중세인들은 감정이 풍부했고 그것을 즉각적으로 표출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 외향적 인성이 근대화를 거치면서 어느새 제 감정을 억누를 줄 아는 내성적 인간으로 변모한 것이다. 허시먼은 세 철학자의 텍스트를 재료로 하여, 서구인의 내면에서 벌어진 이 변화의 궤적을 추적한다.

   


이성으로 정념을 정복하라

폰 스테판 로흐너의 ‘성 빌립보를 조롱한 사람’(1450~51·왼쪽). 외르크 브로이의 ‘십자가를 진 예수를 조롱한 구경꾼들’(1501년경).

데카르트의 과제는 감정에 치우친 사람들을 이성적 존재로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격정에 휘둘려 합리적 판단을 그르치지 않는 존재. 이런 존재가 되려면 이성의 힘으로 희로애락의 정념을 통제할 줄 알아야 한다. 데카르트가 보기에 사람들이 격정에 휘둘리는 것은 정념의 정체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 따라서 정념의 메커니즘을 인식하기만 하면 정념을 정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인들이 아프리카를 정복하기 전에 지도부터 만든 것처럼, 정념이라는 미지의 대륙을 정복하려면 먼저 정념의 지도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 ‘정념론’에서 데카르트는 인간이 가진 모든 정념을 일일이 나열한 뒤, 그것들을 비슷한 것끼리 묶어 체계적으로 분류한다. 아울러 육체에서 발생한 정념이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정신에 영향을 끼치는지, 당시의 해부학적 지식에 기초한 생리학적 분석을 내놓는다. 가령 사랑이라는 정념에 관한 그의 설명을 들어보자.

“오성이 자기 앞에 사랑의 대상을 그릴 때, 이 사고가 일으키는 인상은 동물 정기들을 여섯 번째 부분의 신경을 통해 창자와 위의 둘레에 있는 근육들로 이끈다. (생략) 그 정기들은 사랑스런 대상에 대한 첫 생각이 거기에서 일으킨 인상을 강화하면서 정신으로 하여금 이 생각 위에 멈추도록 강요한다. 이로써 사랑이라는 정념이 성립한다.”

이성으로 정념을 극복하라는 데카르트의 명제는 철학만의 현상이 아니었다. 데카르트 철학으로 무장한 고전주의 비평가들은 감정을 즉자적으로 표출하는 바로크 예술을 싫어했다. 가령 이탈리아의 조각가 베르니니의 ‘다비드’는 당시 고전주의 비평가들에게 혹평을 받았다. 왜 그랬을까? 골리앗을 향해 돌을 던지는 다비드의 찡그린 얼굴에 격정이 표출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정념으로 정념을 다스리라

하지만 데카르트의 말대로 정말 이성만으로 야생마 같은 정념의 힘을 억누를 수 있을까?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그 행위의 후과를 몰라서 하는 짓이라고 말했다. 범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제대로 알기만 한다면, 아무도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어디 범죄자가 범죄가 자신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몰라서 범죄를 저지르는가?

똑같은 얘기를 데카르트에 대해서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정념의 메커니즘을 아는 것만으로 과연 정념의 광포한 힘을 극복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격정이 왜 일어나며, 그것을 표출하는 것이 자신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뻔히 알면서도 격정에 휘말리곤 한다. 따라서 ‘이성으로 범죄를 막을 수 있다’는 소크라테스의 주장처럼 ‘이성으로 정념을 극복할 수 있다’는 데카르트의 견해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사뭇 다른 견해를 제시한다. “정념은 그것과 반대되는 정념, 그것보다 더 강한 정념에 의하지 않고서는 억제될 수도, 제거될 수도 없다.” 한마디로 이성은 무력하기 짝이 없어 광포한 정념의 힘을 극복할 수 없다. 따라서 정념은 오직 그보다 더 강한 다른 정념으로써만 억누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전술이라 할 수 있다.

   


차분하면서도 강한 정념

가시면류관을 쓴 예수에게 욕을 하는 민중(1480년경·오른쪽).

데이비드 흄은 경험주의 철학자답게 경험에서 출발한다. 현실의 여러 사례들을 관찰해보니 이성은 무력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이성은 정념의 노예일 뿐이며, 정념에 봉사하고 복종하는 것” 외에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흔히 ‘이성의 힘으로 정념을 극복했다’고 말하는 경우에도, 잘 살펴보면 실은 이성이 아니라 하나의 정념을, 또 다른 정념을 가지고 극복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성은 정념의 노예”라는 말은 ‘의식은 무의식의 노예’라는 프로이트의 명제를 연상시킨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우리가 ‘정신’ 혹은 ‘이성’이라 부르는 의식은 무의식의 명령에 따라 욕망을 실현하는 방도를 찾는 시종의 구실을 할 뿐이다. 때문에 이성이 감히 정념을 정복할 수는 없고, 정념을 극복하려면 스피노자가 말한 것처럼 다른 정념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흄은 ‘격렬한’ 정념과 ‘강한’ 정념을 구별한다. 대개 격렬한 정념은 냄비와 같아서 순간적으로는 달아올라도 열기가 오래가지 못한다. 우리의 행위를 그르치는 정념은 대부분 이 부류에 속한다. 반면 어떤 정념은 온돌처럼 차분하면서도 오랫동안 지속된다. 정념을 극복하는 흄의 전략은 이 ‘격렬하나 약한 정념’을 ‘차분하나 강한 정념’으로 바꿔놓는 것이다.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탄생

그렇다면 문제는 ‘차분하고 강한 정념’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다른 모든 격정을 억누르게 해주는 이 강력한 정념. 앨버트 허시먼에 따르면 그것이 바로 ‘이해관계(interest)’, 즉 무한한 물질적 소유의 욕망이라고 한다. 이해관계는 격렬하지는 않으나 어떤 것보다 강하여, 다른 모든 격정을 굴복시킬 수 있다. 이렇게 ‘이해관계’로 모든 격정을 억누르는 존재, 그것이 바로 근대인이라고 한다.

근대인은 그 모든 정념의 풍부함을 단 하나의 정념, 즉 이해관계에 종속시킨다. 이성이란 이 물질적 욕망의 실현에 필요한 노하우를 제공해주는 수단일 뿐이다. ‘이해관계’가 근대인을 움직이는 동력이라면, ‘이성’은 이 욕망의 전차를 조종하는 핸들이다. 이렇게 ‘이해관계’라는 단 하나의 정념에 차가운 계산능력을 가진 근대인이 바로 ‘호모 에코노미쿠스’다.

오늘날 세계의 모든 이들은 이미 ‘경제적 인간’이 되었으나 거기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다. 고객의 요구가 도를 넘어섰다고 느끼면, 한국의 상인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더러워서 안 팔아.” 하지만 일본의 경우에는 고객이 항의하면 무조건 “스미마셍”을 연발하며, 절대로 그의 심기를 거스르려 하지 않는다. 순간의 불쾌함을 참고 이익의 영원성을 추구하는 일본인은 한국인보다 더 ‘호모 에코노미쿠스’에 가깝다.

   


정념의 부활

캥탱 마시스의 ‘화폐교환사와 그의 부인’(파리 루브르박물관 소장). 근대인의 무표정한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언젠가 어느 체스 챔피언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세계 챔피언이 되었어도 그의 얼굴에는 기쁜 표정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상대가 두는 수에 제 감정의 동요를 보여주지 않으려고 극도의 냉정을 유지하는 버릇 때문에 정작 기뻐해야 할 때조차 기쁨을 표출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 챔피언의 얘기는 이해관계라는 단 하나의 욕망을 위해 다른 모든 정념의 풍부함을 희생시킨 근대인의 상징이 아닐까?

사실 한국인들은 근대화의 과정이 짧아서 그런지 아직도 쉽게 정념에 휘둘리는 편이다. 격정에 휘둘려 판단을 그르칠 때, 대개의 경우 불필요한 폭력이나 이해관계의 손실로 이어진다. 하지만 정념이 풍부한 게 꼭 나쁜 것은 아니다. 가령 한국민의 그 격렬한 열정이 없었다면, 제 자신의 이해를 희생시켜서라도 표출해야 했던 그 고귀한 분노가 없었다면, 오늘날 한국의 민주화가 이루어질 수 있었겠는가?

냉정한 태도로 합리적 판단을 내리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맘껏 기뻐하고, 한껏 슬퍼하고, 무섭게 분노하는 것이야말로 생명활동의 본질이 아닐까? 기쁠 때 기뻐하지 못하고, 슬플 때 슬퍼하지 못하며, 분노할 때 분노하지 못하는 것을 어찌 ‘삶’이라 부르겠는가. 이익과 계산만으로 살아가는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실은 삶의 대부분을 희생시킨 불행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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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비연 > 여행갈 때 짐 꾸리기^^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변하지 않는 진리가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짐을 가볍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들뜬 마음과 기대로 그 무게를 가늠하지 못한 채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게 되지만 여행지에 도착해 비 맞고 잘 곳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면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됨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다. 배낭과 왠수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초반부터 군기를 확실히 잡아야 한다.

무겁고 가볍게 느끼는 정도는 개인차가 있으니 여기에 또 하나의 정설을 보태자면 배낭은 일단 한 번 꾸려본 후 거기에서 아까워하지 말고 반으로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아낌 없이 덜어내야 하는 것들을 꼽으라면 너무 많은 옷가지와 화장품일 것이다. 이 두 가지 모두 여행을 크게 즐겁게 만들어주지도 않으며 후에 버리고 싶어지는 것들의 목록 1 순위에 해당된다.


세수나 제대로 할 수 있으면 다행일껄?

 

그렇게 반으로 줄인 배낭을 메고 하루쯤 시험 삼아 고궁 같은 곳에 가서 밥도 사먹고 구경도 하고 이리저리 하루 종일 다닌 다음 집에 돌아왔는데도 전혀 부담이 되지 않는다면 OK. 그거 메고 출발하면 된다.

현지에 도착해서 정 옷이 필요하다면 간단한 티셔츠 몇 개 사 입어 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수 있다. 물론 지금 떠나려고 하는 곳이 알래스카라면 해당 사항 無다. 바리바리 싸 들고 떠나라.

제발 너무 힘주지 말고 가비얍게 떠나라. 그렇게 할 수 있는 당신은 벌써 여행 계획 세우는 단계에서 80 점 이상 먹고 들어가는 것이다. 모조리 짊어지고 떠났을 때 낭비하게 되는 체력과 그래서 누리지 못하고 놓쳐버린 여행의 즐거움은 돈으로 결코 보상받을 수 없는 것들이다.

 

* 항공사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개 항공 화물은 20kg 까지 무료이며 비행기 안에 들고 탈 수 있는 수화물은 핸드백을 제외하고 한 개(세 변의 합계가 115cm 이내)로 제한된다.


1. 가방이냐 배낭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냥 일반 가방이라고 한다면 들어 옮길 수도 있고 끌 수도 있는 하드케이스나 소프트 케이스 등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이다. 이 두 가지 중에 딱히 무엇이 더 좋다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해외 여행을 떠나면서 작은 꾸러미들을 가득 짊어지고 가는 바보 같은 짓을 피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들이다. 공항이나 숙소 등 이동할 때 편히 소지할 수 있는 것으로 선택하면 된다.

그리고 배낭은 만약 처음 떠나는 여행이고 새로 구입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자신의 신체 사이즈, 여행 일수나 가져갈 짐의 양을 잘 생각해서 배낭의 신체 사이즈, 즉 용량을 정해야 한다. 아주 커도 40L 가 넘지 않는 것이 좋다.

배낭은 크게 나누어 배가 터지는 것(배낭 앞 전면이 지퍼로 열리는 것)과 머리가 터지는 것(일반 등산용)이 있는데 각각 장단점이 있고 개인별 취향이 있지만 추천하고픈 건 배가 터지는 배낭이다.

배가 터지는 배낭은 시간이 촉박할 경우 맨 밑에 깔려있는 짐도 손쉽게 꺼낼 수 있고 숙소에서 지퍼를 열어 놓아 눅눅해진 짐들을 통풍시킬 수 있어서 좋다.

배터지는 배낭 중에도 애기배낭을 업은 것은 둘이 지퍼로 연결되어 있어 보조배낭으로 유용하다. 동대문이나 남대문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고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찾아보기 쉽다. 배낭 여행 정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이트들에서도 공동구매 행사를 진행하니 이 때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자유여행이 아닌 단기 패키지 여행일 경우는 배낭이 아닌 가방을 더 선호하게 된다. 이때 가방은 크게 소프트 케이스와 하드 케이스로 나뉘게 되는데, 밀고 끌기가 가능한 바퀴달린 가방을 생각하면 되겠다.

하드 케이스의 경우 무게가 많이 나가지만 내용물이 훼손될 염려가 적다는 점이 강점이겠고, 소프트 케이스의 경우 부드러운 재질로 되어있기 때문에 무겁지는 않으나 항공기 수하물이 되었을 때 내용물의 파손 가능성이 있다. 본인에게 맞는 가방의 선택은 여행 준비의 가장 기초단계이면서 편한 여행으로의 지름길 입구쯤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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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반드시 챙겨야 할 것

 

1) 옷가지

이미 말했듯이 최대한 간소화 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이상해진 하늘이 한여름에 우박이 내리는 판이니- 긴 팔 하나 정도는 필요하고 아무리 저 예산 배낭 여행이라도 아쉬울 상황에 대비해 깨끗한 옷 한 벌이면 충분하다. (산에 올라가거나 별을 보며 자야 할 때, 야간 열차를 탈 경우에 긴 팔이 필요하고 뮤지컬 등의 각종 공연을 관람할 때, 기습적인 데이트가 있을 때 등등에 깨끗한 옷이 필요할지도 모르니)

아열대성 기후의 영향을 받는 동남아 지역은 특히 스콜이라는 변수가 늘 존재하고 있으니 젖게 되더라고 금새 마를 수 있는 옷감으로 된 옷이 착하고 좋은 옷이라고 할 수 있겠다.

 2) 카메라

 필카라고 불리우는 필름 카메라의 오랜 독재 이후 디카라는 새로운 종족이 나타나서 바야흐로 사진계는 혼돈의 시기를 맞고 있다. 필카의 종류도 여러 가지가 있으니 전문적인 조작을 필요로 하는 수동 카메라와 버튼 하나로 조작되는 자동 카메라가 그것이다. 이쯤에서 두 가지 정도를 제안하고 싶다.

하나는 가져가게 될 카메라는 손에 익숙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과 또 하나는 총알 준비를 확실하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필카의 총알은 당연히 필름이며 디카의 총알은 또 당연히 메모리 카드 되시겠다. Tip 한 개 더 넣자면 필름은 외국보다 한국이 더 저렴하다.

 추가로 요즘 일회용 수중카메라도 저렴한 가격으로 많이 판매되고 있으니 이를 구입해 가면 스노클링이나 스쿠버 다이빙을 할 때 매우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바다가 있는 동남아로 간다면 스노클링이나 스쿠버 다이빙 한번쯤 안한다는 게 이상할 정도다. 또 이것은 현상 후엔 케이스를 분리해서 소품 정리함 따위로도 쓸 수 있는 멋진 아이템이 된다. 방수용 아쿠아팩도 요긴하다.


요로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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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세면 도구

치약 새로 큰 거 장만해서 떠난다면 그건 몇 개월씩 장기 여행 떠나는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다.

집에서 쓰던 거, 그것도 그냥 작은 거 하나 들고 가면 된다. 비누도 마찬가지고 수건은 적게 가져가서 그때 그때마다 빨아 사용할 생각을 하는 것이 좋겠다. 만약 호텔에서 묵게 된다면 이게 왠 떡인가 싶게 샴푸, 린스, 수건이 준비되어 있는 경우가 많을 테니 그냥 막 사용하면 된다.

 

4) 보조배낭

 

여행시 항상 큰 배낭을 매거나 케이스를 들고 다닐 수 없는 노릇이므로 가이드 북과 지도, 중요한 소지품, 카메라 등을 넣을 수 있는 작은 배낭은 필수품이다. 엄마배낭은 숙소나 락커에 안전하게 두고 아기배낭만 들고 다니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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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기타

알람 시계, 구급약, 다용도칼(맥가이버칼), 필기도구, 나침반, 메모장 등등 스스로 잘 생각해보고 챙기기!

여행 지역에 상관 없이 가장 기본적이고 우선적인 사항은 돈 아까워하지 말고 되도록이면 물은 미네랄 워터를 사서 마시자는 것이다. 국가에 따라 마실 수 있는 현지 수도물도 있으나 물 갈아 마셔 배탈나는 건 사실 가장 간단히 막을 수 있는 질병이면서도 가장 많은 여행자들이 곤욕을 치루는 원인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설사약을 반드시 준비하고 스위스나 오스트리아 같은 국가가 아니라면 되도록이면 사서 마시자. 웬만큼 적응한 다음에 수도물을 마셔보고 상관 없을 때 그때부터 마셔도 된다. 특히 동남아 국가들의 경우는 물갈이 잘못했다가 여행을 아예 망쳐 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구급약의 경우 집안에 상비되어 있는 약통을 통째로 들고 갔다가는 짐만 된다. 감기약과 해열제 그리고 밴드 정도만 준비하고 그 이상으로 아플 경우에는 현지에 있는 병원으로 가는 게 제일 좋다. 물론 개인적인 투병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약을 투약해야 한다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말이다.

 약을 가지고 갈 때에는 상표가 표기된 알약 상태로 갖고 가는 것이 좋다. 여러 종류의 약을 가져갔다가 이게 무슨 약인가 싶어서 고민하지 않기 위해서 또 공항에서 마약으로 오인 받지 않기 위해서이다. 특히 가루약은 마약으로 오인받기 쉬우므로 되도록 가지고 가지 않는 게 좋지만 꼭 가져가야 한다면 약사에게 그 성분을 적어달라고 해서 약봉투에 담고 약종이로 싸거나 당의정 캡슐에 담는 것이 좋다.

또 하나 더 렌즈를 착용해서 식염수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당분간 쓸 것만 챙겨가도록 하자.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인데 식염수 정도는 쉽게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걸 끙끙대며 싸가지 말기를... 마실 수도 없고 말이다.


가이드 북도 하나쯤은 챙겨가자!

6) 더운 나라로 간다면

동남아 대부분 국가들은 아열대성 기후에 속한다. 특히 유명 여행지로 간택받은 곳들의 공통점은 연평균 기온이 높고, 바다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준비물도 이에 걸맞아야함은 너무도 지당하신 말씀이다. 선블락이나 선크림, 수영복, 모기약 등과 더불어 여유가 있다면 개인 파라솔이나 비치 타월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연평균 30 ° 정도의 동남아국가를 여행할 때 필요한 물품 체크 리스트>

품명

필요도

비고

귀중품

여권

유효기간 6 개월 이상 남았는지 확인

여행자수표

사인은 해두었는지?

현금(외화)

미 달러의 소액지폐가 편리함 (다음 여행시 사용 가능)

현금(한화)

도착 후, 귀가시 필요함

신용카드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1 개
정도
의류

셔츠

여름용 티셔츠 3 ~ 5 장,
긴팔 남방 또는 점퍼 1 개

속옷, 양말

적당량 준비

썬크림

낮 시간 활동시 자외선을
막아준다

모자, 썬그라스

낮 시간 활동시 필요

수영복, 비치샌들

해변에서 해수욕이나 호텔 내의 수영장 이용시

바지, 스커트

짧은 스커트는 피할 것
잡화

가방

튼튼한 것으로 준비해야 물건 파손 예방

긴 끈 달린 손가방

여행 중에 소지품을 보관할 수 있는 편한 가방 (사선으로 멜 수 있는 것 - 도난방지)

약품류

평소 복용하시던 약은 필수!!
지사제나 김기약 및 일회용
밴드, 연고 등 비상약

생리용품

한국 제품이 최고!!

화장품

평소 사용하던 것으로 소량씩 준비

소형 드라이기

꼭 필요한 사람만 준비
(가끔 없는 호텔이 있음)

세면도구

수동 면도기 등 필요한 것.
피부가 예민한 사람은 평소
사용하던 것으로 준비.

필기도구

잃어버리기 쉬운 것들을
메모해 둠

카메라, 필름
밧데리, 메모리
충전기, 콘센트

필름은 한국이 저렴하니 넉넉히 준비할 것.
디지탈 카메라는 밧데리와 메모리가 중요하다. 그렇다고 노트북을 가져갈수도 없으니 넉넉한 메모리와 충전기, 다용도 콘센트가 필요하다. 엄청무거워지니 마음의 준비를

가벼운 슬리퍼

얇고 가벼운 것으로

예비용 사진

여권 분실의 사고를 대비해
2 ~ 3 장 정도. 여권에 끼워넣지 말고 별도로 보관

국제전화카드

한국으로 전화할 때 저렴
(또는 수신자 부담으로)

기타 개인용품

기타 개인적인 것들
(간식거리 등)

 

신개념 여행미디어 그룹 노매드(www.nomad21.com) 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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