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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독을 품고 가라
신 현 림
빈민가 담벼락 같은 가슴을 뚫고 겨울이 온다
슬픔은 미친 종처럼 울고 슬픔은 끝없이 나는 연
저 환장한 연을 잡았으면
내가 너 대신 아팠으면 너를 안고 나는 갈매기였
으면
아우야, 추운 너를 안고 어머니가 금강산을 날으셨
구나
애인아, 그리운 너를 안고 나는 바닷속을 달렸더구나
마음으로라도 날고 뛰지 않으면 살 수 없던 날들
열린 차창으로 비명을 지르고 싶던 날들
불탄 아현동 사람들이 무덤으로 던져진 어제
저녁이 오기도 전에 식탁의 빵들은 부패했다
장송곡보다 무거운 원피스를 입고 너는 꿈 속 강변
을 헤매고
버림받은 자들이 부르는 유행가가 싸락눈으로 날린다
의지대로 되는 일이 없다
우리는 토실토실한 쓰레기나 불리며 살고
작별의 꽃을 던지며 사나니
술잔은 자꾸 죽음을 향해 기울어지더라
기나긴 밤마다
아무 위로 없이 남겨진 나의 너여
더 이상 탄식의 나팔을 불지 마라
현세가 지옥인 때는 슬픔의 독을 품고 가라
무자비한 세상, 지옥의 슬픔을 월경하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