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림

마음이 다 드러나는 옷을 입고 걷는다

숨어있던 오래된 허물이 벗겨진다

내 허물은 얼마나 돼지처럼 뚱뚱했던가


난 그걸 인정한다

내 청춘 꿈과 죄밖에 걸칠 게 없었음을


어리석음과 성급함의 격정과 내 생애를

낡은 구두처럼 까맣게 마르게 한 결점들을

오래도록 괴로워했다.

나의 등잔이 타인을 못 비춘 한시절을

백수일 때 서점에서 책을 그냥 들고 나온 일이나

남의 애인 넘본 일이나

어머니께 대들고 싸워 울게 한 일이나

실컷 매맞고 화난 주먹으로 유리창을 부순 일이나

내게 잘못한 세 명 따귀 때린 일과 나를 아프게 한 자

마음으로라도 수십 번 처형한 일들을


나는 돌이켜본다 TV 볼륨을 크게 틀던

아래층에 폭탄을 던지고 싶던 때와

돈 때문에 조바심치며 은행을 털고 싶던 때를

정욕에 불타는 내 안의 여자가

거리의 슬프고 멋진 사내를 데려와 잠자는 상상과

징그러운 세상에 불지르고 싶던 마음을 부끄러워한다.


거미줄 치듯 얽어온 허물과 욕망을 생각한다

예전만큼 반성의 사냥개에 쫓기지도 않고

가슴은 죄의식의 투견장도 못 된다

인간의 원래 그런 것이라며 변명의 한숨을 토하고

욕망의 흔적을 버린 옷가지처럼 바라볼 뿐이다


고해함으로써 허물이 씻긴다 믿고 싶다

고해함으로써 괴로움을 가볍게 하고 싶다

사랑으로 뜨거운 그 분의 발자국이

내 진창길과 자주 무감각해지는 가슴을 쾅쾅 치도록


나는 좀더 희망한다

그 발자국이 들꽃으로 흐드러지게 피어나

나를 깨워 울게 하도록

 

<세기말 블루스> 창작과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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