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론 / 진은영
호랑이를 왜 좋아하는지 몰라요
작은 나무의자에 어떻게 앉게 되었는지 몰라요
언제부터 불행을 다정하게 바라보게 되었는지
정원사가 가꾸지 못할 큰 숲을 바라보듯 말이죠
언제부터 너의 말이 독처럼 풀리는지 몰라요
맑은 우물은 여기부터
하나,
둘,
셋,
이 낡은 의자에서…… 언제쯤 일어나게 될는지
몰라요 나의 둘레를 돌며 어슬렁거리는 녹색 버터의 호랑이들
대체 뭘 바라는 거죠? 몰라요
이 시를 몰라요 너를 몰라요 좋아요
- 진은영 시집 <훔쳐가는 노래> 중 '인식론'
진은영. 70년생.
시콘서트 감성지기 강승연이 새해 간절히 바라는 소망을 묻는데
자신은 더 딱히 바랄 것이 없으니 자신보다 더더 절실하게 소망하는 것들이 있는
사람들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대답하는 심지 깊고 눈 맑은 시인.
철학을 전공한 자분자분한 목소리의 시인이 인식론을 노래한다.
나는 이 시집을 바구니에 담고.^^
몰라도 좋은 것, 몰라서 좋은 것 아니 몰라야 좋은 것들이 늘어가고
알아야겠다고 끙끙대던 것들이 그저 안개 속으로 그 형체를 허물어뜨리는 일이 잦아질 때
알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구나 알아야할 것도 하나 없구나 라고 느끼게 될 때
알지 못하는 마음들, 꼭 충만해야 한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것들의 틈과 틈을 느끼게 될 때
그저 졸린 눈으로 병원 대기실에 앉아 아이를 기다리며 몰아치는 상념들이 내 바닥을 긁어댈 때
사랑하면 할수록 모르는 것 투성이 살아가면 갈수록 모르는 것 투성이 몰라서도 모르고 알아서도 모르는
그렇다고 꼭 알아야만 하는 것도 아닌, 알든 모르든 달라질 게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