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임진년 새해 아홉번 째 날이고 곧 50분후면 열번 째 날로 넘어간다.
원래 정월 한 달은 새해인사를 해도 우습지 않은데,
달의 흐름으로 셈하면 아직 임진년이 시작되지 않았다.
아빠의 생신은 음력으로 12월 초순이라 해마다 양력 1월에 걸린다.
흐르는 시간을 자르는 게 무의미하지만, 김정운의 말대로 '마디가 있는 삶'은 각성의 역할을 한다.
세상을 80해 째 맞이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30도 지나고 40도 지나고 50을 바로보는데, 80이라니.
숫자에 미약한 나는 감히 셈할 수가 없다.
80해를 살아오시며 대하소설감의 이야기가 구구절절 얼마나 많을까.
몸에 새겨진 이야기, 못다한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
세상이 말하는 명예도 권력도 물질도 쌓지 못했고
불운과 치욕과 고난과 고독의 세월을 어렵사리 건너 80에 왔는데
그걸 세상에 다 내어놓지도 못하고 날이 갈수록 모르는 척, 아닌 척, 못 본 척,
침묵의 순간이 잦고 길어지는 모습에 눈시울이 뜨끈하다.
소설가 김별아는 치유산행에세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에서
"어떻게 살아야할까" 라는 질문은 삶에게 우리가 물을 수 있는게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이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행동으로
그 물음에 대답하는 것이라고 한다.
습관적인 사고와 구태의연한 행동양식을 벗어나 이제는 묻기보다
행동으로 대답하라는 죽비소리가 맵다.
전혀 읽어보지 않은 이 작가의 소설을 한두 권 읽어보고 싶어지는
솔직한 성찰과 치유의 글이다.
작가처럼 백두대간을 타볼 용기는 전혀 없는 나는 이리 생각만 많은 거다.
"산은 타는 척할 수 없고, 삶은 사는 척할 수 없다"
책 제목은 함께 등반한 아이들이 말하는 백두대간 종주의 법칙 중 '그 순간 지나가면 쉬운 코스더라!'에서
떠올린 말이다. 유대교 경전 주석서 <미드라쉬> 중 '다윗 왕의 반지 ' 일화를 언급하며...
Soon it shall also come to pass!
고백에 의하면 저자는 소아우울증을 앓았을 정도로 유년의 트라우마가 있고 완벽주의자로
자신을 스스로 힘들게 하는 사람이었다.
사람의 성격도 상대적이다. 관계의 양식과 성질에 따라 사람의 성격도 변한다.
만약 어느 관계 어느 시공에서도 성격이 초지일관이라면 오히려 적절하지 못하다.
나는 기본적으로 온순하고 내성적이고 순종적으로 보인다. 물론 그런 면을 갖고 있다.
(이런 요구된 성격이 사실 오랜 억압으로 내게 작용해 내적 분노가 많다는 걸 알았다.)
나는 또한 리더이기를 좋아하고 도발적, 다혈질이고 간섭 받는 것 싫어하고 고집도 세다.
물론 늘 그런 건 아니고 가끔.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의존적이고 보살핌을 무한으로 받고 싶어하는 성질이 강하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이런 내적 불협과 모순과 억압이다.
'나'와 조화하기, '나'의 본성에 순연히 따르기, 훼손된 자존감 살리기!
- 이건 내가 나를 다독이며 주문해야할 일순위다.
나는 소중하고 힘이 있다. 힘을 뺄 수 있는 힘도, 힘을 불어넣는 힘도 결국은 내게 있다.
김일엽 스님 말을 빌자면, 물건도 마음대로 쓰는데 '나'를 내 마음대로 쓰지 못한다는 건 바보같은 짓이다.
지난 주, 자동차 바퀴에 나사못이 박혀 바람이 빠진 걸 (카센터에서) 뺐다.
사람 좋아보이는 아저씨에게 네 바퀴 모두 바람을 좀 넣어달라고 했다.
그날따라 바람이 제법 차가운 늦은 오후였다.
바람이 탱탱하게 들어간 바퀴, 그렇게 새로 또 달려보는 거다. 바람 빠지면 또 좀 쉬어가도 괜찮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