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인 시인의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을 글자 그대로 곱씹어보면
누군가를 무언가를 가만히 좋아하는 일은 참 쉽지 않은 것 같다는,
조용하고도 깊이, 좋아하고 고마워하고 감정의 선율을 더듬어보는 일은 참 쉽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만가지 격정을 참아내고 안으로 삭이는 일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점에서 아래의 시는 조근조근 다가오는 말투가 진솔해서 더 곱살스럽다.
천생 곱살맞지 못한 나는 내 안에 그런 천성이 엄연히 있고 자주 나타내지 못함에, 또 한 번 욕심을 버리는 일만 남았다.
순연한 가을바람소리에 귀를 세우고 먼산바라기 하며 앉은 내 가슴팍에
빛바래고 구멍 난 나뭇잎 하나 스스럼없이 안긴다.
문득 나는 겁에 질려 있는 또다른 나를 보고 왈칵 참았던 눈앞이 흐려진다.
누군들 깊이 묻고 사는 것 한두 개 없을까마는. 그저 감사할 일만 남았다고 되뇌어본다.

 

조용한 일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깊이 묻다 

 

사람들 가슴에
텅텅 빈 바다 하나씩 있다 

사람들 가슴에
길게 사무치는 노래 하나씩 있다
늙은 돌배나무 뒤틀어진 그림자 있다

사람들 가슴에
겁에 질린 얼굴 있다
충혈된 눈들 있다

사람들 가슴에
막다른 골목 날선 조선낫 하나씩 숨어있다
파란 불꽃 하나씩 있다

사람들 가슴에
후두둑 가을비 뿌리는 대숲 하나씩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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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1-11-01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에 어울리는 시를 님 덕분에 읽어요.
사람들 가슴에 길게 사무친 노래.
아~

프레이야 2011-11-02 07:41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 시월도 가고 이제 십일월의 둘쨋날을 맞이해요.
춥지도 덥지도 않고 상쾌한 바람이 너무 좋은 날들, 하시는 일 즐겁고 보람되기 바래요.^^

양철나무꾼 2011-11-02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조용한 일' 저 짧은 시의 첫 구절을 제 맘대로 '마뜩잖다'라고 외웠었네요.
암튼...
저도...님이 그냥 고맙습니다~^^

마녀고양이 2011-11-02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저 선물해주실 기회 있으면, 꼭 이 책 해주세요...
아하하... 뻔뻔스러운. 시가 너무 좋아요.

텅빈 바다, 겁에 질린 얼굴, 가을비 뿌리는 대숲... 아, 어쩜 좋을까요.

[그장소] 2016-02-08 09:38   좋아요 0 | URL
가만히 좋아하는?

세실 2011-11-06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안녕하세요?
저도 이 시집 읽고 페이퍼에 '조용한 일' 적었는데 통했네요.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가끔은 이런 쉼이 필요하지요.
이시 참 좋아요. 그쵸?

자하(紫霞) 2011-11-08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시를 읽으면 마음이 시리다 못해서 뚫려버릴 것 같아요.
이와중에 돌배나무에 달린 돌배는 맛있겠다라는 어이없는 생각을...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