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인 시인의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을 글자 그대로 곱씹어보면
누군가를 무언가를 가만히 좋아하는 일은 참 쉽지 않은 것 같다는,
조용하고도 깊이, 좋아하고 고마워하고 감정의 선율을 더듬어보는 일은 참 쉽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만가지 격정을 참아내고 안으로 삭이는 일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점에서 아래의 시는 조근조근 다가오는 말투가 진솔해서 더 곱살스럽다.
천생 곱살맞지 못한 나는 내 안에 그런 천성이 엄연히 있고 자주 나타내지 못함에, 또 한 번 욕심을 버리는 일만 남았다.
순연한 가을바람소리에 귀를 세우고 먼산바라기 하며 앉은 내 가슴팍에
빛바래고 구멍 난 나뭇잎 하나 스스럼없이 안긴다.
문득 나는 겁에 질려 있는 또다른 나를 보고 왈칵 참았던 눈앞이 흐려진다.
누군들 깊이 묻고 사는 것 한두 개 없을까마는. 그저 감사할 일만 남았다고 되뇌어본다.
조용한 일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깊이 묻다
사람들 가슴에
텅텅 빈 바다 하나씩 있다
사람들 가슴에
길게 사무치는 노래 하나씩 있다
늙은 돌배나무 뒤틀어진 그림자 있다
사람들 가슴에
겁에 질린 얼굴 있다
충혈된 눈들 있다
사람들 가슴에
막다른 골목 날선 조선낫 하나씩 숨어있다
파란 불꽃 하나씩 있다
사람들 가슴에
후두둑 가을비 뿌리는 대숲 하나씩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