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의 연애학


손택수


  홀아비로 사는 내 늙은 선생님은 자전거 연애의 창안
자다 그에 따르면 유별한 남녀 사이를 자전거만큼 친근
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없다 일단 자전거를 능숙하게 탈
줄 알아야 혀 탈 줄 안다는 것, 그건 낙법과 관계가 있지
나는 주로 하굣길에 여학교 근처를 어슬렁거리다 점찍어
둔 가방을 낚아채는 방법을 썼어 그럼 제깐 것이 별수 있
간디, 가방 달라고 죽어라 뛰어오겠지 그렇게만 되면 만
사가 탄탄대로라 이 말이야 지쳐서 더 뛰어오지 못하는
여학생 은근슬쩍 뒤에 태우고 유유히 휘파람이나 불며  

달려가면 되는 것이지 뒤에서 허리를 꼭 잡고 놓지 못하
도록 약간의 과속은 필수항목이고, 그렇게 달려가다 갈
대숲이나 보리밭이 나오면 어어어 브레이크가 말을 안
듣네 이를 어째 가능한 으슥한 곳을 찾아 재깍 넘어지는
거야 그러고는 아주 드러누워버리는 것이지 어째 허리가
펴지질 않는다고, 발목이 삐끗했나보다고, 아무래도 여
기서 쪼깐 쉬어가는 게 낫겠다고...... 아울러 이 모든 일
엔 품위가 있어야 혀 서화담이 황진이 만나듯인 아니더
래도 서규정*이 직녀를 만나듯은 격이 있어야 된단 이 말
씀이지 이것이 요즘 너희 젊은 것들 잘 나가는 오토바이
나 스포츠카로는 감히 엄두도 못 낼 자전거 연애라는 것
이야 허허허 좋은 세상이란 그런 것이지 젊으나 젊은것
들이 불알 두 쪽만 갖고도 연애를 걸 수 있는 세상이지
그는 술잔을 기울이며 한 말씀 더 남기신다 그런데 그 맛
에 너무 깊이 빠지면 못써, 잘못하면 나처럼 이 나이껏
혼자서 살아야 할 테니께.

* 서규정 [직녀에게], 빛남출판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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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도 계산이 앞서고 거짓이 팽배한 요즘  

이런 거짓 낙법쯤은 낭만이라 불러도 좋아

중요한 건, 낙법의 품격

삶과 연애하는 것 같다는 말이 듣기 좋았던 건 

연애도 삶도 사랑도 어리버리 제대로 몰랐던 것일뿐  

입술을 깨물며 소리쳐도 채워지지 않는 것들  

삶의, 사랑의, 무수한 적의와 의심과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약함을 사랑하는 법 익히기

그것이 낙법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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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0-07-11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림의 미학이네요.
맞아요. 사귐에도 격이 있어야 하지요.
님 편안한 주말 되셨나요?

글샘 2010-07-11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낙법의 본질...
살면서 낙법은 알아야 하겠어요. 넘어질 때를 반드시 대비할 것.
이런 시 참 좋죠. 날마다 쓰는 말 그대로가 아름다운 시가 되는 것들...

여름 참 덥습니다. 시원하게 보내시길... 시와 함께...
저는 맨날 시원 C1과 함께인 듯... ㅋㅋ

자하(紫霞) 2010-07-11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만난 몇 안되는 남자들은 모두 자전거를 잘 타는 사람이었군요.

비로그인 2010-07-11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혀 탈줄 안다는 것...으로 읽고 말았네...으이구~미챠미챠~
동태눈깔을 어찌할까요?
동태심보인가보다~ㅋㅋ.

순오기 2010-07-12 0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전거 연애학이 실린 손택수 시집 <목련전차>엔 내가 무지 좋아하는 시가 많아요~~ ^^
언젠가 한번 만나고픈 시인이기도...
예전에 내가 요 시를 올렸던 거 생각나서 찾아봤어요.
http://blog.aladdin.co.kr/714960143/1914457

마녀고양이 2010-07-12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밤 창을 열고 잤더니, 오늘 열이 있어요...
미열에 내가 둥둥 떠다니는데, 프야 언니의 글을 보니..... 더 둥둥 떠다녀요.

비로그인 2010-07-12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자전거 연애는 좀 해보셨나욤? +_+ (저도 무스탕님 따라서 눈을 초롱초롱 빛내봤어요 ㅎㅎ)

프레이야 2010-07-12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치님 눈은 그냥 있어도 초롱초롱해요.
어제 축구 보느라 날밤 샜더니 아직도 눈이 흐리멍텅
머리가 띵하니 정신 없어요.

마녀고양이님, 열은 좀 어때요? 밤엔 공기가 제법 차서 감기 걸려요.
문 잘 닫고 이불 덮고 자기에요.

오기언니, 목련전차 좋아하시죠? 저 시인, 부산에서 대학원을 나왔더군요.
시에 동래온천도 나오고..ㅎ

마기님, 동태심보는 뭣이래요? ㅎㅎ 산문시 읽다보면 저도 가끔 그래요.

비로그인 2010-07-12 15:17   좋아요 0 | URL
아~~놔 진짜~~
내가 동태눈깔이라고 썼어요?
해태눈깔이라고 쓴건데...
해태랑 동태랑 무슨 상관일까?

에효~진짜~
접시물에 코박아야지 원~~~~~ㅠㅠ

프레이야 2010-07-12 15:20   좋아요 0 | URL
마기님, 해태눈깔은 또 뭣이래요? ㅋㅋ
태자 돌림이네요.

잉크냄새 2010-07-13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림과 헐거워짐의 미학이라고 해도 좋을까요?

프레이야 2010-07-13 19:41   좋아요 0 | URL
느리게 가는 게 어떨 땐 지름길이기도 하더군요.

2010-07-19 15: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0-07-20 13:52   좋아요 0 | URL
올만이에요.^^
전 여름감기로 고생중이에요. 목이 많이 아프네요.

같은하늘 2010-07-20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줄한줄 읽어 내려가는데 어린시절 엄마가 즐겨보던 드라마의 풍경들이 자꾸 생각나요.
교복입은 남학생의 자전거 뒤에 수줍은듯 앉아 있는 양갈래 머리의 여학생~~~

프레이야 2010-07-20 20:36   좋아요 0 | URL
전, 얼마전 신언니에서 이미숙이 그 술도가 사장 유혹할 때
자전거 뒷자리에서 하던 장면들이 생각나서 웃음나요.
걸어서 일부러 자빠지게 하던 장면이요.ㅋ
같은하늘님 전 낙법은 잘 하지 못하지만 그냥 자전거 타는 건
좋아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