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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주인공 강인호는 현실적인 인물에 가깝다. 적당한 지식인, 적당한 패배자, 적당한 순정파, 적당한 열성파. '적당한'이라는 수식어가 주는 모호하지만 적확한 의미가 우리들에게도 잘 어울리는 게 아닐까. 적당히 강하고 적당히 약한, 적당히 옳고 적당히 그른, 적당히 똑똑하고 적당히 어리석은 강인호. 그의 삶은 의도하고 계획한 대로 그가 주체적으로 이끌어왔다기보다 명명하기 어려운 거대하고 애매한 채찍에 몰려 이끌려왔다. 그가 살아온 세상 자체가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휘두르는, 받아치려고 해도 실체가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내몰려온 것처럼 보인다. 어쩌다보니 집요한 사랑과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하는 이별을 경험하고, 전교조 입회 서류에는 도장을 찍었을 뿐이고, 사업에도 실패한, 이제는 아내와 어린 딸까지 생긴 그에게, 마지막 희망일지도 모를 '무진'은 여태까지 살아온 세상이 확대 혹은 축소된 무서운 공간이다.

 안개! 그것은 자신의 실체를 가리고 음험하게 도사리고 있다가 어디선가 나타나 뒤통수를 갈기는 퍽치기 같은 것! 강인호가 무진에 와서 "상식 밖의" 엄청난 사건에 서서히 휘말리기 시작했다고 느낀 어느 날 밤, 거리에서 당한 ‘퍽치기’와 같은 것이었다. 정의에 대한 신념의 배신이라기보다는 삶 그 자체의 배신이다. 정혜신 정신과 박사가 우리 시대 ‘배신’에 비유한 퍽치기는 애초에 있어서는 안 될 어리숙한 기대에서 출발한, 다분히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판정이다. 그것은 겉보기엔 아름답고 공명정대한 무진시로 상징된, 안개 즉 거대폭력이 휘두른 예정된 강타였다. 퍽치기를 당하고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줄 소소한 것들(신분증이 들었을 지갑 등)을 부지불식간에 빼앗긴 그날 밤 강인호의 뇌리에 무진의 거리는 ‘악몽보다 섬뜩한 것’으로 박힌다. 그 불길한 예감이 빗나갔으면 좋으련만 -그런 세상은 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소설은 집요하게 그 예감을 파고든다. 

 청각장애 학생들의 학교, 자애학원에 기간제교사로 부임한 인호는 자끄 프레베르의 '밤의 파리'로 첫수업을 시작한다. 아직은 로맨틱한 감성과 순수한(순진한) 열성으로 접근하는 젊은 남자 선생이다.

 

   
  어둠속에서 세 개비의 성냥에 불을 붙인다. / 첫번째 성냥은 너의 얼굴을 보려고 / 두번째 성냥은 너의 두 눈을 보려고/ 마지막 성냥은 너의 입을 보려고 / 그리고 오는 송두리째 어둠을 / 너를 내 품에 안고 그 모두를 기억하기 위해서 (29쪽)
 
   

 

 전편에 깔리는 안개의 이미지는 공간적 배경이자 주제를 부각하는 역할을 한다. 안개는 다시 '어둠'의 이미지로 이어지고 그것은 소리 이외에는 어떠한 감각도 허용하지 않는 악의 기제로 작용한다. 혼을 읽을 수 있는 얼굴, 공포와 소망을 동시에 읽을 수 있는 눈, 정의와 진실을 읽을 수 있는 입을 어둠은 삼켜버린다. 단지 소리만이 존재하는 어둠속에서 무진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 소리마저도 들을 수 없다. 아니 들려도 귀를 막거나 들었다고 말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공간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송두리째 어둠을 안고 그 모든 것을 기억하는 일’일 것이다. <도가니>는 돌이키고 싶지 않은 기억을 엄연한 진실로 기억하고, 불감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그들의 소식을 그리워하도록 만든다. 여기 ‘그들’에는 인권의 사각지대를 사는 그들뿐만 아니라 적당히 비겁하고 적당히 용감한 대개의 우리 모두가 포함된다. 또한 세상의 달콤하고 빛나는 것들을 독점하고 약자를 유린하는 것에 죄책감도 부채감도 느끼지 못하는 자들이 포함된다.  

 

 분노의 도가니, 광란의 도가니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인호는 결국 욕망이 꿈틀대는 불볕 도시에서 잠깐의 그늘을 찾는 ‘하얀 와이셔츠’들로 중첩된다. 작가는 이들을 이렇게 연민한다. “홀로는 쓸쓸하고 더불어 있어도 외로운 사람들, 군중. 그래서 끝끝내 홀로이지도 더불어 함께이지도 못할 사람들”(291쪽)

 참여정부 때 5년형을 받은 이 실제사건(광주 인화학교 사건)은 집행유예로 판정된다. 그들 가진 것 많은 파렴치범의 인권과 가진 것 없는 불쌍한 자들의 인권은 다른 것인가. 최근 안경환 국가인권위원회장의 사임사를 읽고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이 왜 소중한 것인지, 인권이란 게 특히 왜 그들을 위해 존재해야하는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일부를 옮긴다. 

   
  모든 국가기관을 대리하여, 약자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바탕으로 정부에 대해 고언을 제공하는 일, 그것이 국가인권위원회의 본질적인 임무입니다. 강자와 다수자에게 생길지 모르는 약간의 불편을 무릅쓰고라도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함으로써 사회전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민주국가. 인권국가, 법치국가의 본령입니다. 힘없는 자의 분노를 위무하고, 가난한 사람의 한숨과 눈물을 담아내는 일에 인색한 정부는 올바른 정부가 아닙니다. 흔히 소수자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다수자의 인권이 더욱 중요하다고들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평은 인권의 본질에 대한 성찰의 부족에서 유래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권은 다수결이 아닙니다. 사회의 모든 기재가 다수자와 강자의 관점과 이해를 옹호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인간세상의 자연적 속성이기에 인권의 본질은 강자의 횡포로부터 약자를 보호함으로써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폭력을 당한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은 왜 당하고만 있었느냐, 대항하거나 피할 수 없었느냐, 라는 말이라고 한다. 그런 말은 그들을 두 번 세 번 죽이는 일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자들을 위해 인권의 '권력'이 필요한 것이다.

 

<도가니>는 절망 속에 우리를 두지 않는다. 희망을 가지라 하고 우리들 존재의 존귀함을 강조한다. 이는 숨막힐 듯 전편에 흐르는 안개와 어둠의 이미지 속에서도 언뜻언뜻 그러나 분명히 보이는 "빛"의 존재를 자주 떠올려준 작가의 의도에서 읽힌다. 이 일이 있고 “우리도 소중한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하는 가엾은 장애우 민수의 말, “그것으로도 우리가 완전히 진 건 아닐 것”이라고 말하는 당찬 여성 서유진의 자신감은 감히 성냥불 같은 가느다란 빛, 그런 희망을 놓지 말라고 말한다. 빛의 이미지는 전편에 흐르는 어둠과 안개의 공간에서도 불현듯 현시되는 빛의 존재를 감각하는 문장들에서 살아난다. 이는 촛불축제를 떠올려 주고 '홀더!'라는 신조어로 또렷하다. “홀로 서고 더불어 살기”. 이 말로 작가는 개인의 강인한 생명력과 더불어 군중의 강력한 연대를 강조한다. 공감하고 연민하고 나아가 함께 일어서라고 권한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이후 작가의 또다른 변화와 힘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우리는 진실을 감추고 덮으려는 성향이 있다. 진실은 대개 상당한 불편을 주고 진실을 인식하기에는 자신감과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진실’의 진실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문장이다.

   
  진실이 가지는 유일한 단점은 그것이 몹시 게으르다는 것이다. 진실은 언제나 자신만이 진실이라는 교만 때문에 날것 그대로의 몸뚱이를 내놓고 어떤 치장도 설득도 하려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진실은 가끔 생뚱맞고 대개 비논리적이며 자주 불편하다. 진실 아닌 것들이 부단히 노력하며 모순된 점을 가리고 분을 바르며 부지런을 떠는 동안 진실은 그저 누워서 감이 입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 도처에서 진실이라는 것이 외면당하는 데도 실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면 있는 것이다. (165쪽)
 
   

 

<도가니>는 살벌한 안개의 기운처럼 거대 음모와 협잡으로 이루어진 기득권층에 짓눌린 채 살아가는 광란의 도가니를 날것으로 보여준다. 문장은 때로는 건조하고 대개는 치열하게 내달린다. 강인호를 찾아 무진에 온 아내와의 하룻밤 묘사는 모래바람이 이는 듯 메마르다. 공지영의 문장으로 이렇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허무하다. 그날 밤, 가장 극렬한 갈등으로 내면의 지옥을 겪었을 인호의 심리가 그려진듯. 집필을 위해 실제인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수없이 분노했을 작가자신과 그 도가니 속에서 ‘앗 뜨거워’ 하면서도 그럭저럭 또는 무기력하게 군중속에 숨어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애정 어린 박차가 느껴진다. 미안해하고 있을지도 모를 ‘강인호’들, 그들의 근황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난 그들이 나를 바꾸지 못하게 하려고 싸우는 거에요,라고 장경사에게 일갈한 서유진 못지않게 사는 일이 힘겨운 강인호의 안녕을 비는 것이다. 

 덧: 장애인을 위한 예산을 대폭 줄였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말로만 하는 복지가 아니라 진정 그들을 위한 복지가 되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할지 생각해야한다. 장애인에 대한 오해와 편견, 잘못된 상식이나 지식을 바로 잡아줄 수 있는 공공교육도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청각장애가 있어도 그 정도가 다 다르고 음파에 따라 들리는 음파가 있고 그렇지 못한 게 있다는 사실 등, 똑똑한 여학생 연두의 이야기와 그의 아버지가 하는 말에 귀담을 필요가 있다. 연두가 법정에서 조성모의 노래에 반응하는 장면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결정적인 증거가 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 뒤의 일들은 어처구니 없는 쪽으로 선회된다. 더구나 안타까운 것은, 이들은 한가지 장애만이 아니라 지적장애나 지극한 가난, 부모의 장애와 무능력 등 이중 삼중의 고통속에 있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스스로를 보호할 능력도 스스로 일어설 자산도 애초에 결핍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을 위한 실질적인 도움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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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피하지 마라, 빈들에 가서 깨닫는 그것
    from 처녀자리의 책방 2011-09-24 23:32 
    도가니 / 황동혁 / 2011살아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 튼튼한 줄기를 얻고 / 잎은 흔들려서 스스로 / 살아있는 몸인 것을 증명한다//바람은 오늘도 분다 / 수만의 잎은 제각기 / 몸을 엮는 하루를 가누고 / 들판의 슬픔 하나 들판의 고독 하나 /들판의 고통도 하나 / 다른 곳에서 바람에 쓸리며 / 자기를 헤집고 있다//피하지 마라 / 빈들에 가서 깨닫는 그것 / 우리가 늘 흔들리고 있음을 (오규원, 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전문)오규원님의 이 시
 
 
꿈꾸는섬 2009-07-10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멋진 리뷰에요. 공지영의 소설인데도 선뜻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었는데 이 리뷰를 보고 나니까 읽어볼까 하는 마음이 드네요.^^

프레이야 2009-07-11 11:48   좋아요 0 | URL
너무 적나라하게 가슴 아픈 장면들이 있어 섬님처럼 여린 분은 어떨지 모르겠어요.ㅜㅜ
공지영이 더 부드러우면서도 내면은 더 단단해졌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꿈꾸는섬 2009-07-16 22:38   좋아요 0 | URL
앗, 제가 여린 사람으로 비쳐지는군요.ㅎㅎ 몰랐어요. 하지만 애 둘이나 낳은 아줌마가 얼마나 여릴까요?ㅎㅎㅎ 그래도 기분은 좋은데요.^^

순오기 2009-07-11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약주문으로 사놓고 아직 손도 못댔어요.
광주인화학교 사건~~ 많이들 알지요.ㅜㅜ

프레이야 2009-07-11 01:23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ㅜㅜ
이곳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몇 해 전 있었어요.
이중삼중의 고통을 지니고 있는 자들에게 너무 가혹해요.

비로그인 2009-07-11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이 턱, 막히는 리뷰에요. 프레이야님. 단지 그냥 리뷰가 아닌 그 이상의 무엇으로 다가오는.

주말은 잘 보내고 계신지요? 저는 아이는 수영장 생일파티가고 토욜에도 일하는 남편은 아직 안온지라 심심해요..

프레이야 2009-07-11 19:41   좋아요 0 | URL
여긴 흐리고 빗방울이 간혹 내려요. 그곳도 그런가요?
조용한 토욜 보내고 계셨군요.
지금쯤은 다들 돌아와 단란한 시간 보내고 계시겠죠.^^
내일 전 어느 노문우의 시비제막식에 가야해요. 울산으로..
비가 와도 가야할 것 같은데 비오면 좀 불편해도 더 운치 있으려나요.^^
만치님 만치님 예쁜 만치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용~~~

비로그인 2009-07-11 22:32   좋아요 0 | URL
오후까지는 흐리기만 하더니 저녁이 되니 비가 내리기 시작하네요.
비오는 울산에서 시비제막이라니.. 멋져요. 비가 와도 잘 다녀오세요.
앗 그리고 부산 사진! 드디어 보냈어요 ^^; 사진보니까 다들 보고싶어요 헤헤.

프레이야 2009-07-12 19:12   좋아요 0 | URL
빗방울이 뿌리다 걷히다 진흙도 밟고 우산 쓰고 잘 다녀왔어요.^^
사진 넘넘 고마워요. 그거 보면서 또다시 헤벌쭉~ 그랬다우~

다락방 2009-07-11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답하고 화가나서 눈물이 나는 그런 소설이지요.

프레이야 2009-07-12 19:14   좋아요 0 | URL
눈앞이 안 보이고 갑갑한 상황이라 답답하고 강인호가 '엎어치기'를 당할 땐
그 어이없음에 더욱 분노하게 되더군요. 그럼에도 눈물은 차라리 나지않고
차분해지고 냉정해지는 것 같아요. 결말처럼요.

네꼬 2009-07-12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마음이 작아서 읽기 어려울 거예요. -_- 아니나 다를까 프레이야님의 (이토록 좋은) 리뷰를 읽고 나니 책의 분위기가 훤히 잡혀서 더욱. (일곱 번째 추천이 저예요)

프레이야 2009-07-12 19:27   좋아요 0 | URL
네꼬님은 정말 마음이 여려서 어려울지 몰라요.
입에 담기 힘든 증언을 들어야하니까요. 그것도 수화로요..
추천, 씽긋~

같은하늘 2009-07-13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엽서를 준 다는 얘기에 덥썩 예약주문 해놓고 못 보고 있는데...
프에이야님의 리뷰를 보니 책을 보기가 힘들어질 것 같다는...ㅜㅜ

프레이야 2009-07-13 11:36   좋아요 0 | URL
같은하늘님, 별로 그렇지 않을 거에요^^
잘 읽으시기 바랍니다.
어젯밤 여긴 천둥번개 요란했어요. 지금도 장맛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