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일이면 고등학생이 될 희원이가 오늘 2박3일로 오리엔테이션 갔다. 학교와 기숙사 내에서 주로 하고 이튿날은 가까운 산 등반도 하는 걸로 되어있다. 좀 까탈스런 아이라 며칠 전부터 기숙사 들어갈 준비물 챙기느라 몇군데 왔다갔다 했고 어젯밤에는 마지막으로 옷가지랑 세면도구 등등을 챙기고 캐리어에 한 짐 싸두곤 그래도 뭔가 빠진 것 같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는지, 아이는 자꾸 히죽거리며 내 주위를 뱅뱅 돌았다. 감정 표현에 서툰 아이라 그 정도면 제 마음이 어느정도인지 내가 뻔히 안다. 그래서 꼭 안아주었다. 살찔까봐 덜 먹는 아이라 마른 듯한 어깨뼈가 내 팔에 닿았다. 키는 벌써 나보다 훌쩍 커설랑은. ^^

알람을 해두고 잤고 오늘 아침 난 그전에 눈이 뜨였다. 날이 흐린 것 같더니 기어이 빗방울이 한두 방울 떨어졌다. 차로 30분 정도면 도착하는 곳이다. 입구에서 재학생 둘이 서서 안내를 맡고 있었다. 학교가 산 아래 높은 곳에 있어서 기숙사 있는 곳까지 올라가니까 공기가 무척 상쾌했다. 산허리는 윤무에 싸여 있었고 청명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질 듯했다. 여학생동은 올라가서 왼쪽, 그 앞에서 학번과 기숙사방의 번호를 확인하고 5층으로 올라갔다. 룸메이트는 나와 같은 성의 학생, 착해보였다. 나보다 연배가 높아보이는 그 엄마와 전화번호도 교환하고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는 말도 했다.   

거울과 행거, 탁상달력, 의자, 휴지통, 크리넥스, 슬리퍼, 빗자루와 쓰레받기, 우선 떠오르는 대로 이런 게 빠진 물품이다. 입학식날 보충해야겠다. 밤에 난방은 잘 되어서 추우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은 안 해도 된단다. 희원이가 누워잘 2층 침대의 2층에 누워보니까 하늘과 산, 구름이 바로 눈앞에 보였다. 밤이면 별을 보다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침대까지 들어내고 걸레질 하고 있는 다른 방 엄마들도 있더구만 나와 그 엄마는 뭘 이러며 그냥 나왔다. 창틀에 벌레들의 시체가 널려있었는데 그거라도 처리해주고 올 걸 그랬다싶다. 나도 내키진 않지만 크악~ 날파리 한 마리에도 꺅~그러는 아인데..  

나도 고3때 기숙사 생활을 다섯 달 했다. 그때 처음 한 달간 화장실을 못 갔고 그때 얻은 만성변비증세가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특별히 입맛이 까다로운 것도 아니었는데 왜 그랬던지 모르겠다. 희원인 이 기회에 편식습관 고치고 뭐든 잘 먹고 체력 좀 기르면 좋겠다. 식사가 아주 좋다고 하니 안심이지만. 특별활동은 뭘로 선택할 건지 물으니까 가만히 앉아서 하는 걸로 할 거란다. 아유, 내 그럴 줄 알았다. 어쩜 나랑 비슷한지..  아까 점자도서관에서 책 읽다가, 기숙사 물품 반입시간 중 남은 시간에 뭐하고 있나싶어 전화했더니 밖에 나와 친구들이랑 어울려 얘기하고 있다고 한다. 생각보다 적응이 빠른 건지.^^  점심 맛있게 많이 먹으라는 말만 했다. 은근 기대된다고 하며 간 아이, 앞으로 정말 멋지고 행복한 시간으로 소중히 가꿔가며 보내라고 마음으로 빌었다.

문득 오래전 기숙사의 내 룸메이트가 생각난다. 머리가 자주 아프다고 호소하며 어느 날인가는 "혜경아, 내 머리안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 같아."라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이마를 콕콕 찌르며 내게 말하던 그 애. 지금은 얼굴도 희미하고 목소리는 더욱 흐릿하다. 난 그때 뭐라고 대답했더라?  아마 그럴지도 몰라, 아니면 그럴리가... 어느 쪽이었던지 기억도 안 난다. 아무튼 주말에 집에 와선 엄마한테 그 아이의 말을 했던 기억은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머리 안에 벌레가 몇 마리 기어다니고 있었던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인지.

 


댓글(2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소나무집 2009-02-25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오리엔테이션을 갔군요.
아이 기숙사에 들어가면 많이 섭섭할 것 같아요.
희원이도 님을 많이 닮아가고 있군요.
딸들은 어쩜 엄마를 그렇게 닮는지..
우리 딸도 커가면서 점점 저를 닮는 듯해요.

프레이야 2009-02-25 20:17   좋아요 0 | URL
네, 기분이 좀 그래요.
절 닮은 구석도, 조금은 다른 구석도 있구요.^^
아이들 커가는 모습, 딸은 더 애틋하죠.

stella.K 2009-02-25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요즘엔 고등학교도 오리엔테이션을 하나 보죠?
아니면 희원이 다니는 학교만 그런 건가요?
기숙사 생활 하셨군요.
그 시절 감히 생각해 볼 수도 없었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저는 그런 추억도 없고 뭘하며 살았는지...
저도 집 아니면 화장실 잘 못 가는데 힘들었겠군요.

프레이야 2009-02-25 23:45   좋아요 0 | URL
기숙생활하는 특목고라 그런가 봐요.^^
헉~ 오래전 그때 정말 죽는 줄 알았잖아요, 스텔라님.ㅎㅎ
5월 기숙사 담장 붉디붉던 장미넝쿨이 생각나요.

stella.K 2009-02-26 10:51   좋아요 0 | URL
아이고, 딸내미가 공부를 아주 잘하는가 봅니다.^^

마노아 2009-02-25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숙사 생활이라니, 엄마 입장에선 걱정도 되고 섭섭할 것도 같아요. 근데 저는 막 부러운 거 있죠. ^^
아, 머리 속의 벌레라니... 회충이 머리로 간 건지도 몰라요. 마태님 소설에 보면 그런 얘기 나오잖아요ㅠ.ㅠ

프레이야 2009-02-25 23:42   좋아요 0 | URL
11시30분 취침이라 들어서 방금 전화해 봤더니 꺼져있네요.^^
마태님 소설, 기생충..ㅎㅎ
앗, 마노아님이랑 같은 항렬이야요.(썰렁~)


라로 2009-02-25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원인 잘 해낼것 같지만 엄마로서 마음이 짠 하시겠어요,,
우리 딸을 보낸 엄마들끼리 함 뭉치자고요~.ㅋㅋ
근데 혜경님도 기숙사생활을 하셨구나,,,젤 부러운것을,,,그시절엔 어떻하면
집에서 안 살 수 있나 생각 했던듯~ㅎㅎㅎ

프레이야 2009-02-25 23:44   좋아요 0 | URL
나비님 딸은 멀리 가서 더 그럴 거에요.
전 거기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말에요.
맞아요. 집에서 벗어나 살고싶단 생각을 하게 된 게 그때부터였지
싶어요. 진짜 함 뭉쳐야쥐~ 근데 요새 승연님은 통 안 보여요.ㅠㅠ

진주 2009-02-25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엄마 품을 벗어나기 시작하네요..^^
쑥 자란게 대견하기도 하고, 한편 아쉽기도 하고...

프레이야 2009-02-25 23:45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어릴 때부터도 어디 캠프나 수학여행 같은데 보내면
애가 워낙 담담해서 약간 서운하기도 했었는데 이제 정말 많이
컸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진주님.

책읽는나무 2009-02-26 0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님도 입학이로군요.더군다나 기숙사!
맏딸이라 어딘가 모르게 듬직한 포스가 팍 느껴집니다.
제가 장녀라서 울친정엄마가 간간히 서운할때가 있다고 하시더라구요.
맏딸은 그렇잖아요.속으론 늘상 걱정하고,고민하지만 겉으론 표현하지 않는~~
님의 큰따님도 애써 자신을 다잡으면서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을꺼에요.
그리고 엄마 걱정끼치지 않으려 애쓰면서 고등학교 생활을 잘 하리라 믿어요.

이젠 님도 고등학교 1학년 나이의 엄마가 되신거네요.축하드려요.^^
전 이제 초등1학년 엄마가 되었네요.ㅎㅎ

프레이야 2009-02-26 16:48   좋아요 0 | URL
책읽는나무님, 민이 초등학생 되죠? 축하드려요.^^
둥이들이랑 알콩달콩 좋은 엄마로 살아가시는 모습 늘 좋아보여요.
저도 맏딸이라 엄마와 참 많이 다투기도 했지요.
늘 마음과는 달리 그럴때가 많아요.

하늘바람 2009-02-26 0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어지는 마음이 어쩔까 생각하면 제가 다 마음아파요.
하지만 제 조카 이야기를 보면 학교에서 연주부인가? 거기서 바이오린을 했고 거기가 무조건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라 다양한 특기 활도을 하고 선후배간의 연계도 잘 되어 있고
외국 대학을 간 선배도 많아서 미래 설계도 아이가 주체적으로 하더군요.
아쉽지만 더 발전된 희원이가 되겠죠. 멋져요 희원이.


프레이야 2009-02-26 16:50   좋아요 0 | URL
주말마다 나올 건데요 뭐.ㅎㅎ 나중엔 데리러 가고 오고 하는게
귀찮아지지 않을까 살짝 우려가..
네, 정말 조카처럼 아이에게도 그런 값진 기회가 되면 좋겠어요.
연주부도 좋겠네요.^^

전호인 2009-02-26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모의 맘이랑 아이들이랑은 또 다를 겁니다. 희원이는 아마 새로운 친구들과의 만남을 은근히 즐기려 하고 있는 지도 모를 일입니다. 괜히 급한 것은 부모맘일지도요. 하지만 처음 부모님이랑 떨어져서 생활해야 하는 희원이로서는 부모님에게 의지했었던 든든함이 사라진 공허함과 혼자서 잘해야지 하는 새로운 의지력이 샘솟고 있을 겁니다. 옛날 시골에서 처음 도회지(청주)로 고등학교를 진학하고 얼음장 같던 자취방에 덩그러니 홀로 남겨져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다 성장하면서 겪는 과정이려니 생각하시면 좀 편하실까요? 나중에 부모님의 그늘을 벗어나 부쩍 자란 희원이가 기대됩니다.

프레이야 2009-02-26 16:53   좋아요 0 | URL
전호인님 격려와 팁 고맙습니다.
아이에게도 업그레이드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도 좀더 일찍 부모곁을 떠나 살았더라면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들어요.

혜덕화 2009-02-26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아들도 28일 기숙사 들어갑니다. 남자애라서 그런지 준비물이 뭔지도 관심도 없고 제 팬티와 수건을 잘 챙길지 걱정이네요.^^
아이들 데리고 수영장에 현장학습 가면, 여자아이들은 자기 것 잘 챙기는데, 남자아이들은 무엇이 제 것인줄도 모르더라구요. 대학생이라도 일상의 소소한 것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 초등 아이들과 같지 않을지......^^
특목고 생활이 행복하고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프레이야 2009-02-26 19:53   좋아요 0 | URL
혜덕화님 대학생인데요 아주 잘 해나갈 거고 오히려 더 자유스러워
할지도 몰라요. 그래도 서운하시죠? 저랑 동문이더군요, 아들이^^
격려 고맙습니다.^^

새초롬너구리 2009-02-27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따님은 친구들 때문에 조금 늦게 느끼겠지만 님은 바로 빈자리로 그리워하실것 같군요. 눈물을 조금만 흘리세요 ^^

프레이야 2009-02-27 17:31   좋아요 0 | URL
새로촘님, 오늘 낮에 데리고 나와 또 뭐 좀 필요한 것 사서 이제야
집에 들어왔어요. 아이도 좀 피곤해하는데, 처음이라 그렇겠죠.^^
눈물은 안 흘렸어용~~

BRINY 2009-02-28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년전이라면 저도 그런 학교에 가고 싶었을 거 같아요. 그때는 그런 학교들도 거의 없었고, 있더쳐도 정보가 없었던 시대였지만요.

프레이야 2009-02-28 01:27   좋아요 0 | URL
브리니님도 집 떠나 있고 싶었군요.^^
아이가 오늘 돌아왔는데 기숙사생활이 불편하다고 좀 투정이네요.
앞으로 잘 적응하고 즐거운 생활을 해야할텐데 살짝 걱정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