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내면의 목표를 빗겨나가 그저 어머니로서만 전진하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조용하고 편안한 이 삶에 정착하는 것이 자신도 모르게 이 삶을 살아버리는 것이 두렵다. 이러한 사실을 확인한 순간에도 그녀는 일기장에 절대 적혀 있지 않은 모든 것들, 함께 하는 삶, 같은 공간을 나누는 친밀함, 그녀가 수업이 끝나면 빨리 돌아가고 싶어 하는 집, 둘이서 자는 잠, 아침에 전기면도기 소리, 저녁의 돼지 삼형제 이야기 이러한 것들이 반복되는 일상, 잠시 떨어지면 삼 일을 넘기지 못하고 그리워지는 - 그녀가 중요하고 아낀다고 믿는 것들을 - 사고로 잃는다는 상상만 해도 그녀의 가슴을 옥죄는 모든 것들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 128



이제 욕망의 대상은 미래가 아닌 과거다 : 63년 여름, 로마의 그 방으로 돌아가는 것. 그녀는 일기장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극한의 자아도취적인 시선으로, 내 과거를 선명하게 보고 싶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내가 아닌 존재가 되고 싶다˝ ˝나에게 고통을 주는 부류의 여성의 모습, 어쩌면 나는 그것을 향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3년 전, 파리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그녀는 도로시 태닝의 그림을 봤다. 가슴을 내놓은 한 여자와 그 여자 뒤로 늘어선, 살짝 열려 있는 여러 개의 문이 있었다. 제목은 <생일>이었다. 그녀는 그 그림이 자신의 삶을 표현하고 있으며 오래전에 그녀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제인에어] 나중에는 [구토]속에 있었던 것처럼 그 안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등대로』『빛의 세월』같은 책을 읽을 때마다 자신의 인생 역시 그런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지를 자문한다. -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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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 시점은 1967년. 그녀라고 지칭되는 주인공(아니 에르노)이 결혼한 지 4년째인 해다. 평온하지만 작가의 꿈도 꾸지 않는 지금, 남편과 아이가 있는 자신이 아니라 혼자였던 때를 자주 떠올리며 두려움을 느낀다.

그런 자신의 삶을 표현하고 있다고 느낀, 그녀가 3년 전에 보았다는 도로시 태닝의 그림 <생일>이 궁금해 찾아봤다. 가슴을 드러내놓은 여자의 뒤로 열려있는 여러 개 문. 어쩔 줄 몰라하는 듯 엉거주춤한 포즈. 당혹스럽게도 고요한 표정. 열려 있으나 바람이 통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것 같은 초조함이랄지. 반대로 막연한 가능성들 앞에서 느끼는 혼란과 기대. 나중에 터져나올, 지금은, 침묵. 날개가 있으나 날지 않는 새처럼.

1910년생인데 백수를 넘기고 세상을 뜬 도로시 태닝은 이 그림을 들고 독일 초현실주의 화가 막스 에른스트를 찾아갔다. 전쟁 중 미국에 건너간 막스. 그는 도로시를 본 지 일주일만에 1946년 애리조나로 사랑의 탈주를 했고 평탄한 결혼 생활을 했다.
도로시 태닝을 치면 도로시 태닝 샵이 뜬다. ㅎㅎ 막스 에른스트의 그림도 찾아보니 많다. 달리 비슷한 느낌.


1번 그림. 도로시 태닝 “생일”
2번 그림. 막스 에른스트 “물 속으로 뛰어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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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2-10-17 20: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처음 보는 그림인데 굉장히 혼란스러움을 주는 그림이네요. 보통 ‘생일‘이라고 하면 기쁜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그림 속 여자는 뒤에 열려있는 문 때문인지 어두운 색감 때문인지 행복과는 거리가 있어 보여요. 예술은 또 다른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군요.

프레이야 2022-10-17 21:02   좋아요 2 | URL
그죠. 문 손잡이를 잡고 있는 손이 갈등 중인 것 같죠. 당장 뛰어나갈 것도 같은데 맨발은 그냥 바닥을 딛고 있고 눈은 살짝 위를 향하고요. 자화상 같아요 실물과 닮았어요. 치마 양옆에 가시덤불이 말할 수 없는 내적 고난 같기도 합니다. 들여다보며 저 혼자 생각에^^

꼬마요정 2022-10-17 20: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림이 굉장히 강렬합니다. 파이버님 말씀처럼 행복해 보이지 않기도 하구요. 밑에 그림은 더 우울해보입니다ㅜㅜ 근데 제가 운동을 하다 보니 제 눈엔 ‘복근‘이 제일 먼저 들어오네요... 설마 굶주림으로 인해 뼈가 보이는 건 아니겠죠? 이 분의 삶이 궁금해집니다.
도로시 태닝 샵은 혹시 도로시 태닝에서 영감을 받은 걸까요?

프레이야 2022-10-17 21:34   좋아요 4 | URL
아마 상관 없지 않을까요 그거랑.
태닝 샵 이름이 도로시더라구요 ㅎㅎ
미국 화가인데 저서도 7권인가 있어요. 지성과 재능을 모두 갖춘 화가. 막스와는 나이차가 많던데 유명한 커플이더군요. 막스 에른스트도 오늘 알았네요. 복근이랑 가슴근육도 눈에 들어오고 목선이랑 가슴 모양도 이쁘네요. 굶주림은 아닐거고요. 저도 예전에는 복근이 있었는데 살에 묻혀 사라졌어요 두둥 ㅎㅎ
저 그림에서 에르노가 자신의 삶을 떠올렸다니 ^^ 세상에 대단한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흥미로워요 꼬마요정 님.

mini74 2022-10-17 2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른스트 소개 글에서 이 그림을 본 기억이 납니다. 제 기억엔 도로시아 테닝 하면 아마 화가가 뜰거예요 ~ 좋은 글과 그림이 만나니 참 좋습니다 *^^*

프레이야 2022-10-17 22:24   좋아요 2 | URL
네. 화가 찾아보고 확인하였지요 ^^ 비하인드 스토리가 재미있어요. 에른스트와 태닝의 다른 그림들도 좋구요 미니 님 역쉬!

희선 2022-10-18 00: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 에르노 소설 속에 담긴 그림을 찾아 보셨군요 마지막 사진은 도로시 태닝과 막스 에른스트군요 그림을 보고 바로 좋아하게 된 건지... 도로시 태닝 그림은 초현실주의 같네요 바닥에 있는 동물은 뭘지...


희선

프레이야 2022-10-18 01:19   좋아요 2 | URL
보자마자 알아보고 서로 영감을 주고받았을까요. 에른스트가 초현실주의인데 태닝도 나중 그림 보면 내면세계가 복잡해요. 새는 자아로 해석될 것 같아요. 이 책에 찾아볼 인물과 작품, 저서, 영화, 역사적 사건 그런 게 많고 문체도 독특해 쉽지 않아요. 다 기억하지 못해도 찾아가며…

얄라알라 2022-10-19 10:12   좋아요 2 | URL
정말 강렬한 그림들이네요.
사진과 자화상의 모습 싱크로율 높아요.

그렇다면 꼬마요정님 보셨듯, 실제 도로시 태닝도 단련된 복근을?^^‘‘

희선님 저는 요새 ˝악˝에 대한 책을 읽고 있어서인지
검은 형체가 동물이 아니라 ˝악˝ 에의 유혹? 이렇게 상상되더라고요.

태닝 샵이 뜬다고는 미리 경고 주셨지만
태닝 샵 링크 피해서 더 알아보고 싶어지네요.

아니 에르노도 안 읽었는데
도로시 태닝 그림까지..계속 물고 물며 가야할 길이 멀어요^^

새파랑 2022-10-18 04: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첫번째 그림같이 문이 있으려면 집이 얼마나 커야 할까요? ㅋ 그림이 뭔가 신비합니다 ㅎㅎ

프레이야 2022-10-18 08:33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 ㅎㅎ 내면의 집이 평수가 엄청 큰가 봅니다. 문은 열 수도 닫을 수도 있는 것이라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 그림 보고 영화 아이 앰 러브, 생각나더군요. 여자가 딱 저런 느낌으로 크고 화려한 집 한가운데 갇힌 짐승처럼 서 있는 장면이 있거든요. 결국 뛰쳐나가지요 ㅎㅎ

얄라알라 2022-10-19 10:12   좋아요 2 | URL
오! 속박으로 보시지 않으시는 군요. 프레이야님께서는!

내면의 집, 평수 엄청 큰 집^^

프레이야 2022-10-19 10:16   좋아요 2 | URL
얄라 님 무한히 열려 있는 저 아름다운 문들이 무려 !! 얄라 님도 갖고 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