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셋째 날 아침이 밝았다. 눈 뜨면 북플을 훑어보는데 오늘 눈에 띈 책은 두 권이다. <끝낼 수 없는 대화>와 이 책 <빅터 프랭클>을 당장 구매한다. <빅터 프랭클>은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옮긴 이시형 박사가 번역했다.
나는 2013년 새해를 맞이하며 오리무중인 삶과 그 안에서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막막함을 느꼈다. 그해 1월 초, 내 갈급한 마음에 화답하듯 프랭클 박사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와 <책에 쓰지 않은 이야기>를 만나 단숨에 읽었다. 명료한 생각과 단호한 문장이 무척이나 힘이 되었고 저자의 정신력에 감탄하며 <이것이 인간인가>를 떠올리기도 했다. 같은 상황에서도 사람의 선택은 다르고 선택할 수 있는 게 없을 것만 같은 상황에서도 "수용소에서는 항상 선택을 해야 했다. 매일같이, 매시간마다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찾아왔다.(죽음의 수용소에서, 120쪽)"로 이어지는 프랭클 박사의 처방은 유효적절했다.
우리의 현 상황이 마치 수용소의 수감자 같다는 생각을 많은 사람이 한다. 비단 현 상황만이 아닐 것이다. 이것은 인간 실존의 문제에 연루한다. 선택의 자유가 허용될 때 그리고 선택의 자유를 누릴 줄 아는 사람은 인간다움을 느낀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에서도 선택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면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이다. "그 수감자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은 그 개인의 내적인 선택의 결과이지 수용소라는 환경의 영향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근본적으로 어떤 사람이라도, 심지어는 그렇게 척박한 환경에 있는 사람도 자기 자신이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다.(죽음의 수용소에서, 121쪽)". 그러면서 프랭클 박사는 도스토옙스키의 말을 인용한다.
"내가 세상에서 한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고통이 가치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수용소에서는 남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과 친해진 후, 나는 도스토옙스키의 이 말을 자주 머리 속에 떠올렸다. 수용소에서 그들이 했던 행동, 그들이 겪었던 시련과 죽음은 하나의 사실, 즉 마지막 남은 내면의 자유는 결코 빼앗을 수 없다는 사실을 증언해 주고 있다. 그들의 시련은 가치 있는 것이었고, 그들이 고통을 참고 견뎌낸 것은 순수한 내적 성취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이다. (121-122쪽)
회상록에서 훨씬 더 좋은 사유와 삶의 의미에 대한 생각을 만날 수 있었다. 좋아하는 저 볼드체 문장!
결국 늙는다는 것은 인간존재의 덧없음의 측면이다. 하지만 이 덧없음이 근본적으로 삶을 책임지게 하는 유일하게 큰 자극제이다. 인간존재의 본질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책임감에 대한 인식. ......
두 번째 인생을 산다고 생각하라. 첫 번째 인생을 잘못해서 모두 망쳤는데 두 번째 인생을 살면서도 지난번의 과오를 되풀이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살아라. 실제로 책임감은 그런 가상의 자서전을 거쳐 진짜 자신의 삶으로 옮겨 가게 된다. (193쪽)
우리 집 수족관에 사는 물고기들은 좁게 보이는 그 공간에서 수감자로 산다. 단지 우리가 보는 관점일 뿐, 물고기는 활발하게 움직이고 느긋하게 쉬고 24시간이 바쁘다. 먹이가 주어지면 맛있게 먹고 또 움직인다. 한 달에 두 번 수족관 청소를 옆지기가 한다. 오래도록 관리를 맡겼는데 작년부터 우리 손으로 해보자 했다. 수초에 낀 때가 잘 빠지지 않아 며칠 후 확 다 뒤집어 갈아주고 수족관 안을 재배치할 것이다. 예전에 살았던 앵두플래티는 가고 없지만 삶이 그러저러하다 생각될 때면 '앵두'를 생각한다. 새해가 시작하면 새 마음을 먹고 덕담을 나누기는 그게 작심삼일이 된다해도 의미 있는 일이다. 작심삼일을 계속 이어가면 된다는 농담 아닌 진담.
연초에 덕담을 나누다 어느 선생님이 내 글 '앵두를 찾아라'에서 한 문장을 피드백해 주셨다. 나는 그때 자유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했구나.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 "본능적인 욕구에 집착하지 않고 과욕하지 않기란 진정한 자유를 구가하는 비결이다. 자유롭지 않음은 아직 버리지 않은 게 많다는 말이다." 그리고 삶을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겠다는 의지의 선택을 다시 새긴다. 그 의미란 게 어디에 있는지 어디를 향하는지 잘 살피는 양치기가 되자. 풀어헤치고 모으고 여유있게 지혜롭게 잘 건사하자. 작은딸이 곧 도착한다. 특강 시작하기 전에 며칠 마지막으로 쉬겠다고.^^ 착한고양이 모꾸 목욕 한 번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