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당하고 말았다. 무슨 책인가 싶어 책 정보를 살펴보다 저자 사진을 보고 혹해......, 이런 적이 없었건만. 책을 읽던 중 혹시나 해서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책에 실린 사진과 동일인물이라고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작가의 사진들......세월 앞에 장사 없다. 책에 실린 저자 사진은 아마도 20년 전 사진이 아닐까? 이것 참, 차라리 아니 검색해야 했거늘

 

<유혹의 학교>란 제목을 지었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내가 보기에 이 책은 젊은 여성들보다 오히려 10대나 20대 남성들에게 유익한 책이라고 본다. 특히나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난 남자라면 더더욱

 




이곳은 모든 관계가 유혹에 기반을 뒀다고 생각하는 사회야. 서로를 유혹하고 유혹함으로써 자신을 증명해 보이고 싶어 하지. 눈앞의 결과를 위해서만 유혹하는 게 아니라 존재의 방식으로서 유혹한다고나 할까. (16)

 

저자가 프랑스 유학시절 프랑스 친구의 조언이다. 프랑스인에게 유혹은 존재의 방식이다. 토마 마티외의 <악어 프로젝트>를 보니 딱히 그렇지도 않더라. 프랑스 남성이 그 정도라면 한국 남성들은 얼마나 유혹에 서툴고 폭력적으로 여성에게 접근할는지.

 

“‘유혹하다라는 의미의 seduce라는 단어는 라틴어 seducere에 연원을 두고 있다. seaway, 즉 떨어져 있음을 의미하고 ducerelead, 즉 이끈다는 의미다. 연결해보면 떨어져서 이끄는 것을 말한다.”

 

여성이 자신의 맘에 든다고, 남성에게 섹스 할 권리는 주어지지 않는다. 중세의 면죄부마냥 섹스권이나 섹스부같은 건 발급되지 않는다. 호감 가는 여성을 만난다면 무작정 들이대지 말아라. 사랑은 면죄부가 아니다. 강간은 사랑이 아니다. 거리를 두고 이끌기를.


 

“5분이 넘지 않은 시간동안 우리의 몸은 단 한 차례도 부딪치지 않았다. 비로소 상황에서 벗어났을 때에는 내 몸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어 당황스러웠다. 둘 사이의 좁은 공간이 남기고 간 감각이 한동안 등 뒤에서 어른거렸다. 뒤늦게 깨달았다. 둘 사이에 또렷이 자리 잡은 경계와 거리에 대한 의식이 나를 욕망하게 했다는 것을. 우리는 가까이 있으나 분리되어 있다는 인식, 경계를 짓고 있는 개체라는 인정, 하지만 그 경계가 출렁이는 순간 유혹이 탄생한다는 사실을. ”

 

즉 닿을 듯 닿지 않는 적당한 거리가 욕망을 생성한다. 자리를 잡았다면 언제든 유혹은 가능하다. 무작정 들이대는 건 폭력이지, 사랑이 아니다. 타인을 유혹하기 위해선 먼저 이성의 입장이 돼야 한다. 

 

 

유혹은 상대의 입장이 되어 바라보는 데서 시작하면 좋다. 자신을 드러내는 속도가 상대를 발견하는 속도보다 앞서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에 매달리기보다 상대를 느끼고 이해하는 데 집중한다. 상대방이 당신과의 만남에서 자신의 역할에 만족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누구나 자신이 그리는 자아상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원하는 자아상이 무엇인지 파악하여 그것을 발견해주고 때로는 북돋아주는 편이 좋다. (39)

 

유혹은 남녀관계 뿐만 아니라 관계의 방식으로서도 유효하다.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고 상대방의 입장에 서기.

 

저자의 연애 경험들을 들여다보니 내가 지나온 연인들의 얼굴들이 아른거린다. 만일 과거에 이런 책을 읽었더라면 나는 좀 더 현명하게 유혹하지 않았을까. 더 이상 이성을 유혹할 수 없는 상태가 된 지 오래다. (유효기간이 지났다) 이제 자식을 유혹해야 하는데, 이것도 만만치가 않다. 삶이란 결국 끊임없는 유혹의 전장터는 아닐지.

 


내가 사랑하는 그대

부디, 내내 어여쁘소서.

 

, 유혹하고 싶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평생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라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 이상, 이런 시

 

바르트는 허무함의 자리에 머물지 않고 선언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무언가 알려지려면 말해야만 하고, 또 그것은 일단 말해진 이상 일시적이나마 진실이 된다고. 또 다른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사랑 예찬>에서 사랑의 선언에 우연을 운명으로 끌어들이는 힘을 부여한다. 사랑의 선언은 단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길고 산만하며, 혼란스럽고 복잡하며, 선언되고 다시 선언되며, 그런 후에조차 여전히 다시 선언 되도록 예정된 무엇이 된다.


 

에릭 오르세나의 소설 <오래 오래>의 주인공인 원예사 가브리엘은 군더더기 없는 기하학과 잠들어 있으나 오롯이 느껴지는 생명의 위대한 현존때문에 겨울의 정원을 가장 사랑한다고 말한다. 잎을 벗은 나무들이 알몸을 드러내고 그 뼈대와 굴곡, 뒤틀림과 상흔까지 볼 수 있는 겨울 정원은 경이롭다. 간략해진 선의 율동 속에서 창조자의 참뜻이 드러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영화 <보이후드>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함께 있던 어느 여성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듣는다.

 

흔히 순간을 잡으라고 하잖아. 하지만 난 모르겠어. 오히려 그 반대인 것 같지 않아? 순간이 우리를 사로잡는 것 같아.” (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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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6-08-26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막 출간됐을 때 관심있게 봤는데 여기서 보게 되네요.
정말 이 책은 여자 보다는 남자가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솔직히 유혹은 우리나라에선 남자 보단 여자가 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잖아요.
정확히 저자가 남자를 겨냥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남자가 읽으면 좋을 것 같은데
이런 책 남자들이 더럽게 안 읽죠.ㅋㅋㅋㅋ

시이소오 2016-08-26 18:37   좋아요 1 | URL
남자들이 유혹하는 사회. 근사하네요. 남자들도 진화해야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