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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3권 - 6.25 전쟁에서 4.19 전야까지 ㅣ 한국 현대사 산책 5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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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1일, 제 4대 민의원 총선거를 4개월 남겨둔 시점에서 조봉암, 박기출, 김달호, 윤길중 등 진보당 주요 간부 10여 명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거된다. 정부는 재판도 열리기 전인 2월 25일 진보당의 등록을 취소시킨다. 왜 조봉암 이하 진보당원들은 체포되야 했을까? 조봉암이 주장한 ‘평화통일론’ 때문이었다. 북한괴뢰가 사용하는 문구이니 국가보안법에 저촉된다는 이유로.
재판이 점점 진보당 측에 유리하게 돌아가자 검찰은 뒤집기를 시도한다. ‘간첩 양명산’ 카드. 조봉암이 간첩 양명산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것. 훗날 검찰의 조작으로 밝혀졌다.
5월 12일, 제4대 민의원 총선거는 ‘진보당 죽이기’ 이후에 치러졌다. 자유당의 정치자금 조달 방식은 이제 폭력 조직과의 유착 형태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박태순과 김동춘은 이를 ‘관료 –폭력 독점자본의 유착’이라고 부른다.
“‘폭력 주식회사’ - 이것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진 소설가가 착안한 소설 제목이 아니라 50년대 남한 사회에 실제로 존재했던 막강한 이득 창출의 사업 조직체였다. 연희전문 출신의 홍영철이 이끌었던 이 ‘회사’는 문자 그대로 폭력을 자원으로 삼고 있었던 바, 미군의 불하물자를 주먹의 힘으로 독점 입찰하여 막대한 이득을 챙겼다. 하지만 그 수익의 8할 이상은 자유당의 정치자금과 ‘안 되는 일이 없고 못하는 일이 없다’던 막강한 삼권부인 경찰, 특무대, 헌병대 그리고 그 외곽에 군웅 할거하는 각종 정치 폭력집단들에게 분배됨으로써 나름대로 ‘관료 –폭력 독점자본의 유착’이라 할 수 있는 것을 형성시켜 나갔다.”
조봉암은 7월 2일 1심 재판에서 간첩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은 가운데 징역 5년을 언도받는다. 판결뒤 이기붕 수하의 반공청년단 수백 명이 법원청사로 들어와 난동을 부린다. 이승만은 1심 판결이 내려지자 국무회의 석상에서 “이러한 판사들을 처리하는 방법은 없는가”라고 분노하였다. 겁을 먹은 검사 조인구는 2t심 재판에서 조봉암에게 사형을 구형한다.
조영래 변호사와 함께 대한민국 법대생들이 가장 존경하는 가인 김병로는 조봉암 1심 판결 뒤 벌어진 폭력배들의 난동에 대해 정치깡패들과 그 배후자들을 통렬히 비난했다. “법관을 가리켜 ‘용공 판사’ 운운한 것은 법관 모욕죄 가운데서도 가장 악질에 속하며 그들 행동은 살인 강도에 비할 바가 아니다”라며 분노했다. 김병로는 이승만에 대해 ‘옛날 군주와도 달리 법에 대한 관념이 결여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함석헌은 <사상계> 8월호에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8월 8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된다. 이 글 가운데 다음과 같은 부분이 문제가 되었다.
“우리가 일본에서는 해방이 됐다 할 수 있으나 참 해방은 조금도 된 것 없다. 도리어 전보다 더 참혹한 것은 전에 상전이 하나였던 대신 지금은 둘 셋이다. 남한은 북한을 쏘련 중공의 꼭두각시라 하고 북한은 남한을 미국의 꼭두각시라 하니 있는 것은 꼭두각시뿐이지 나라가 아니다. 우리는 나라 없는 백성이다. 6.25는 꼭두각시의 노름이었다. 민중의 시대에 민중이 살았어야 할 터인데 민중이 죽었으니 남의 꼭두각시밖에 될 것 없지 않은가. 잘못이 애당초 전주 이씨에서 시작됐다. ”
사상계는 이 필화사건으로 인해 더욱 인기가 치솟아 59년에 이르러선 판매 부수가 5만 ~ 8만으로 뛰어오른다. 당시 최대 신문의 발행 부수가 20만 이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놀라운 기록이었다.
11월 18일, 자유당은 간첩 색출을 명분으로 하는 전문 3장 40조 부칙 2조로 구성된 신 국가보안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인권 탄압의 위법 조항 때문에 야당과 언론인, 법조인들이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당은 12월 19일 법사위에서 10명만 참석한 채, 신국가보안법을 날치기 통과시킨다.
야당의원들이 무기한 농성에 들어가자 자유당은 전국의 무술 경찰관 300명을 임시국회 무술 경위로 특채해 급조, 농성중인 야당의원들을 끌어내 지하실에 감금한다. 12월 24일 벌어진 일이라 해서 이를 ‘2.4 국가보안법 파동’이라 부르게 된다. 자유당은 야당의 저지로 통과시킬 수 없었던 27개 의안을 무더기 통과시킨다. 지방자체단체의 장을 선거제에서 임명제로 개정, 이후 도지사, 시장, 군수, 면장, 동장 등 말단까지 모두 자유당원만을 임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