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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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을 한 번 썼어도 영 개운치 않은 책들이 있다. 써야 했으나 쓰지 못한 말들이 너무 많아서다. 강간을 옹호하는 정신 나간 것들이 있다니! 예외 없이 전부 다 공화당 의원들. 리처드 머독은 강간 임신을 신이 준 선물이라 주장했다. 미국에 공화당이 있다면 한국에 새누리당이 있다. 일명 성누리당. 온갖 강간범들, 성추행범들이 집결해 있는 이런 정신병자들을 국회의원으로 뽑아주는 국민도 있다. 한국은 커다란 정신병원이다.

 

리베카 솔닛의 관점은 페미니즘에 매몰되지 않아서 좋았다. 예를 들면 IMF 총재 도미니끄 스트로스깐이 호텔 여직원을 성폭행한 사건을 단지 여혐이라 말하지 않는다. 착취당한 자는 아프리카고 착취한 자는 유럽이다. 강간범이 IMF 총재라는 점도 상징적이다. IMF는 돈을 빌려주고 강간을 일삼는 고리대금업자를 연상시킨다. 돈을 빌려주고 문호를 개방하라고 강제하는 IMF, WTO, NAFTA등 전 세계 숱한 강간기구들.




 

이 책의 표지가 사진일 거라 짐작했었다. 그런데 회화였다니. 아나 떼레사 페르난데스의 그림에 대해 솔닛은 여자는 존재하는 동시에 말소되었다고 말한다. 솔닛의 말마따라 그림속의 그림자는 검고 다리 긴 새처럼 보인다. 나는 왜 닭처럼 보일까. 닭그네를 말소시키고 싶은 욕망 때문일까. 여기서도 솔닛의 시선은 말소된 여자들에서 그치지 않는다. 아르헨티나 군사 독재 시기 사라진 사람들까지 다다른다. 군사독재에 대항해 처음으로 목소리를 낸 사람들은 어머니들이었다. 사라진 사람들의 어머니들. 이후 오월광장의 어머니들이라 불렸다. 한국에서도 사라진 아들(김주열 열사) 을 찾아 나선 어머니와 다른 어머니들이 419혁명을 촉발시켰다.

 

표지 그림의 그림은 무제지만 시리즈 전체의 제목은 뗄라라냐. 거미줄이란 뜻.

 

내가 사는 대륙에서는 호피, 푸에블로, 나바호, 촉토, 체로키 원주민 부족의 창조 설화에서 거미 할머니가 우주를 창조한 장본인으로 등장한다......그녀보다 더 강력한 세 운명의 여신은 인간들 한명 한명의 생명선을 잣고 감고 끊음으로써 인간의 삶이 어젠가 반드시 끝이 나는 선형적 내러티브가 되게끔 만들었다고 한다. (모이라이라고도 하는 세 운명의 여신은 실을 잣는 클로토, 실을 감는 라케시스, 실을 자르는 아트로포스다.)

 

그물 같은 거미줄은 비선형성의 이미지, 무언가가 선택할 수 있는 여러 방향들을, 무언가가 생겨날 수 있는 여러 근원들을 보여주는 이미지다.

 

-117.

 

솔닛의 말처럼, 페르난데스의 그림은 현대의 여자들이 여전히 그물에 걸려 있다고 말하는 듯 보인다. 그러므로 여성 해방이란 우선적으로 그물을 짜되 그물에 걸리지 않는 것.

 

그물을 짜되 그물에 걸리지 않는 것, 세상을 창조하는 것, 자신의 삶을 창조하는 것, 자신의 운명을 다스리는 것, 아버지들만이 아니라 할머니들을 호명하는 것, 직선만이 아니라 그물을 그리는 것, 청소부만이 아니라 제작자가 되는 것, 침묵당하지 않고 노래하는 것, 베일을 걷고 모습을 드러내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이 내가 빨랫줄에 너는 현수막들이다.

 

- 118.

 

미래는 어둡고, 나는 그것이 미래로서는 최선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

 

, 버지니아 울프는 1915118일 일기에 이렇게 썼다. 이런 심리상태로는 자살에 이를 수밖에. 솔닛에 따르면, 손택은 <사진에 관하여>에서 사람들이 잔혹한 이미지를 거듭 접하면 무감각해지기 마련이라는 원래의 주장을 철회한다. 손택은 어떻게 하면 우리가 그것을 계속 바라볼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솔닛의 말처럼, 우리는 우리 눈에 전혀 보이지 않는 고통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응을 할 수 없다. 한국의 방송과 언론은 고통을 충분히 알려주지 않는다. 대중이 알아야 할 진실은 감추고, ‘누가 누구와 잤다는 기사만 연일 불어댄다. 한국 언론은 부부젤라. 닥쳐라 제발!

 

울프가 어둠에 관한 문장을 일기에 쓴 시점으로부터 한 세기 남짓 앞선 1817년 한 겨울의 어느 밤 존 키츠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집으로 걸어 돌아왔고, 나중에 어느 유명한 편지에서 그날의 산책을 이렇게 묘사했다. “여러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매끄럽게 맞아떨어져서, 성취하는 사람에게는, 특히 문학적 성취를 거두는 사람에게는 어떤 특징이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대번에 떠올랐어. ...그건 소극적 능력이야. 사실과 이성을 찾아서 초조하게 헤매는 대신에 불확실성, 미스터리, 의문을 수용할 줄 아는 능력이지.”

 

.....울프는 회고록 <과거의 스케치>에서 이렇게 썼다. “그러던 어느날 테비스톡 광장을 거닐다가, 나는 다른 책을 쓸 때도 가끔 그랬던 것처럼 머릿속에서 <등대로>를 써내려갔다. 나로서도 부지불식간에, 엄청난 속도로, 한 생각이 곧장 다음 생각으로 이어졌다. 빨대로 거품 방울을 불면 머릿속에서 발상들과 장면들이 쏜살같이 뿜여저나오는 느낌인데, 그 때문에 길을 걷는 내 입술이 저절로 읊조리는 듯했다. 무엇이 거품 방울을 불어냈을까? 왜 하필 그때였을까? 나는 모른다.”

 

솔닛에 따르면 울프의 천재성은 키츠가 표현한 소극적 능력때문이다. 또한 울프의 비평은 반비평이다. 작품을 못 박는 게 아니라 작품을 해방시키는 비평.

 

 

위대한 비평은 예술작품을 해방시킴으로써 작품을 더 완전히 보여주고, 계속 살아 있게 하며, 끝없이 이어지면서 끝없이 상상력을 북돋는 대화로 끌어들인다. 해석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구속에 반대한다. 영혼을 죽이는 것에 반대한다. 그런 비평은 그 자체로 위대한 예술이다.


그런 비평은 비평가를 텍스트에 맞세우지 않고, 귄위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 대신 작품에 담긴 생각들과 함께 여행한다. 작품에는 꽃피울 기회를 제공하고, 사람들에게는 이전에는 이해할 수 없다고 느꼈을지도 모르는 대화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전에는 눈에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관계들을 드러내고, 이전에는 잠겨 있었을지도 모르는 문들을 열어젖힌다.

 

한마디로 울프는 모든 것을 해방시켰다. 이에 솔닛이 바치는 울프에 대한 헌사는 감동적이다. 무한을 주었다니!

 

울프는 우리에게 무한을 주었다. 그것은 움켜쥘 수 없는 것, 어서 껴안아야 하는 것, 물처럼 유동하는 것, 욕망처럼 가없는 것, 길을 잃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나침반이다.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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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자리 2016-06-29 2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길을 잃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나침반이라니..

울프도, 솔닛도 너무 좋아요.(리뷰 써주신 시이소오 님께도 감사를..ㅎ)

앞으로 읽을 책들이 나름 순서를 기다리고 있지만^^ 울프를 좀 더 앞으로 당겨야겠어요.

울프의 글은 평면이 아닌, 온 사방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 입체적인 마력이 있더라고요.

시이소오 2016-06-29 20:17   좋아요 1 | URL
저도 울프에 다시 도전해야겠어요.
아우~~~

물고기자리 2016-06-29 20:26   좋아요 0 | URL
이런 아재개그라니!
썰렁했어요ㅋㅋ

혹시 솔닛이 특별히 언급한 울프의 책이 있었나요? <등대로> 빼고요ㅎ

시이소오 2016-06-29 20:55   좋아요 0 | URL
ㅋ 그랬나요. 소설보다는 주로 에세이를 언급했어요.

자기만의 방 외에도 에세이가 많나봐요 ^^

물고기자리 2016-06-29 21:08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고마운 김에 예전에 쓰셨던 `임계혼탁` 비유, 언젠가 다른 작가에게 다시 쓰셔도 완전 모른 척해드릴게요^^

그리고 저 썰렁한 거 좋아해요ㅎㅎ

시이소오 2016-06-29 21:17   좋아요 0 | URL
임계혼탁 모른척 해주신다니 감사합니다
그럼 저 아재개그 계속하겠습니다 ㅎ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