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페미니스트 - 불편하고 두려워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 사이행성 / 201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페미니즘에 관한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남성으로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것은 한국사회에선 위선이거나 새빨간 거짓말이다.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지만 당신이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박해와 차별을 당한다면 나는 당신을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라고 볼테르 식으로 말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이 순간도 여성을 착취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내가 바로 페미니스트의 적이다. 설거지도 안 하고, 밥도 안 하고, 빨래도 안 하는 내가 어떻게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을까.. 변명을 하자면 가사노동을 분담하려고 해도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는우리 와이프가 못하게 한다. (와이프가 이 글을 안 봤으면)

 

다만 나는 성폭력이나 성희롱, 성추행을 해 본적은 없다. (성추행을 당해본 적은 있다. 남성에게. 또한 몸무게 100kg를 훌쩍 넘긴 듯한 여성에게. 맞을까봐 조용히 있었다. 이런 된장.) 고등학생 때, 여동생을 한 번 때린 적은 있다


(낮잠 자는데 피아노를 치 길래 치지 말라고 했더니, 여동생은 더 세게, ‘포르티시시모<엄청 강하게>’로 피아노를 쳤다. 그래서 나는 여동생을 쳤다.. 그래도 나는 메조포르테<조금 강하게>’정도로 쳤을 뿐이다. 남동생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더 많이 때렸으니 피아니시시모<엄청 약하게>’에서 포르티시시모까지 모든 강도로 - 성차별은 아닌 것 같다.....성차별일까)

 

최근 강남역에서 한 여성이 남성의 무차별 살인 사건에 희생되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지금 이 순간도 여성 혐오냐 아니냐로 논란이 되고 있다. 나는 여성 혐오 범죄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대다수 여성들이 여성 혐오로 인식한다는 게 아닐까. 그만큼 그동안 여성들이 여성 혐오를 직접 몸으로 겪어왔다는 반증이다.

 

여성을 왜 혐오하는지 잘 모르겠다. 일자리에 대한 남성들의 위기 때문일까.

여성은 당연히 숭배해야 하거늘.

 

비록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책에 대한 독후감은 쓸 수 있지 않을는지. 프로이트는 작은 차이를 가지고 끊임없이 대립, 반목, 경멸하는 현상에 대해 사소한 차이의 나르시시즘이라고 불렀다. 페미니즘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페미니즘 내에서도 리버럴, 마르크시즘, 래디컬, 백인, 흑인, 근본적인, 온전한, 포괄적인 등등 여러 분파가 난립, 각자가 자기만이 옳다고 하고, 다른 페미니즘에 대해 이를 가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인지 록산 게이는 나쁜 페미니즘’(혹은 부족한)을 주장한다. 페미니즘을 어떤 대단한 사상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의 성 평등으로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을 토대로 록산 게이는 미국의 문화, 즉 영화, 소설, 드라마, 팝송 등에서 은폐되어 있는 여성의 성차별을 들추어낸다. 책의 어떤 부분들에선 저자의 관점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다가 다른 곳에선 고개를 설레설레 젓기도 했다. 내 관점에서 록산 게이는 전혀 배드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어떤 장에선 가혹하다 할 만큼 작품을 갈가리 찢어놓는다.

 

<헝거 게임>이 이렇게 대단한 소설이었다니! 영 어덜트 소설이라 무시했거늘. 읽어봐야겠다.

 

여성 캐릭터는 왜 항상 호감만 연기해야 하는가하는 저자의 문제제기엔 동의할 수가 없다. 록산 게이의 말대로 나는 여성 캐릭터가 호감만 연기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렇지만 저자는 다른 글에서 남성 캐릭터가 비호감이라고 비난한다. 이건 완벽한 모순이다. 그녀의 논리대로라면 강간을 일삼는 개차반 남성 캐릭터를 비난할 근거가 없어진다. 성차별이다.

 

얼마 전에 리뷰를 썼던 주노 디아스의 <이렇게 그녀를 잃었다>도 록산 게이의 도마에 올랐다. 록산 게이는 소설의 작품성을 인정하지만 그 안에 성차별주의가 있다고 주장한다. 주노 디아스는 여성들을 착취하는 수시오’(난잡한 놈)이자 페로’()인 도미니카노(도미니카 남자들)에 대해 썼다. 록산 게이는 이 수시오들이 잘못의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는 사실이 꺼림칙하다고 말한다. 록산 게이는 소설속의 여성들이 단지 유니오르의 성적 쾌락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썼다. 만일 그렇다면 유니오르는 왜 떠나간 애인을 몇 년동안 잊지 못하는 걸까. 단지 성적 쾌락을 얻기 위해서였다면 다른 여자로 대체하면 그만 아닌가.

 

이외에도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와 같은 소설, 드라마 <걸스>, <헬프>, <노예 12>, <장고 : 분노의 추격자>등의 영화도 록산 게이의 도마에 오른다. 예를 들어, <헬프>같은 경우 뇌를 아파트에 놓고 영화를 보러 간다면괜찮은 영화라고.

 

록산 게이는 공인들이 커밍 아웃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직도 게이란 단어가 여진히 비방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게이 남성들이 주목받고 인정받아야 한다고. 나는 공인들이 왜 커밍아웃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공인이 아니라면 더 더욱. 왜 사람들은 타인의 잠자리 취향까지 알려고 하는 걸까. 사적 영역이란 개인의 은행 잔고라고 말했던 이는 누구였더라. 록산 게이는 이 책에서 자신이 어린 시절 집단 강간당한 사건을 고백한다. 굳이 이 사실을 꼭 밝혀야만 했을까.

 

강간 농담, 강간 유머가 있다는 것은 이 책을 보고 처음 알았다. 한국에도 있나? ‘합법적 강간’? 강간이 어떻게 합법적일 수 있을까? 선거철만 되면 선거 공약으로 낙태 제한권을 들고 나오는 정치가가 있다는 것도 충격이었다. 미국 정치가들은 한국의 새누리당 정치인들만큼 제 정신이 아닌 것들이 많구나. 여성들이 그리스 희극 <리스스트라타>처럼 성 파업을 일으켜야 하는 것은 아닐런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남자와 어느 정도 사귀고 나서 남자가 희망이 담긴 목소리로 피임약 복용하니?”라고 물었을 때 내가 아니? 그러는 너는?”하고 답할 때이다.

 

윗 문장을 읽고 남성인 나는 왜 이리 통쾌했던걸까. 나는 남성으로서의 나의 특권을 인정한다. 이게 출반선이 될 수 있을까. 록산 게이는 페미니스트가 아예 아닌 것보다는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는 편이 훨씬 낫다고 말한다.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는 것보다는 차라리 허무라도 욕망하라고 말했던 니체의 경구가 떠오른다.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고 앞으로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페미니즘을 욕망하고 싶다.


 

린 히긴스, 브렌다 실버 <강간과 재현>

다이애나 스페츨러, <스키니>

케이틀린 모란, <진짜 여자가 되는 법>

가렛 카이저, <프라이버시>

수잔 콜린스, <헝거 게임>, <캣칭 파이어>, <모킹 제이>

주디스 버틀러, <젠더 트러블>

케이트 잠브레노, <그린 걸>

엘렌 식수, <메두사의 웃음>

조앤 디디온, <플레이 잇 애즈 잇 레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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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5-25 15: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여성을 ‘숭배’해야 한다는 표현이 오히려 남성혐오자들의 반감을 부추기는 원인이라고 생각해요. 숭배라는 단어가 신 같은 종교적 대상을 우러러 보는 행위를 뜻합니다. 여성혐오자들은 남성의 존재감이 여성보다 아래에 있는 상황을 싫어합니다. 과거 남성 중심의 위계적 질서를 그리워합니다. 옛날에는 남성이 신이었습니다. 여성은 남성의 말에 복종해야만 했습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여성들도 남성의 그늘에서 벗어나서 주체적으로 생활할 수 있게 되었는데, 남자들은 위계질서를 누리는 주인공이 여자가 되었다고 착각합니다. 남자들은 천성적으로 남성이든 여성이든 지기 싫어하는 성격입니다. 자신들의 위치가 협소해질까 봐 불안감이 생기고,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현실을 못마땅합니다. 저는 여성혐오의 원인을 이렇게 봅니다. 이거 말고도 다른 원인이 있을 겁니다. ^^

저는 숭배보다는 여성의 말과 행동에 ‘공감’해야 한다는 표현을 쓰고 싶습니다. 남성은 여성의 말과 생각에 공감해야 합니다. 공감하는 행위 자체가 여성의 말을 인정한다는 의미니까요. 제가 남자 입장에서 남자가 여자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느낀 게 남자는 여자의 사소한 말 한 마디를 귀 담아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여자가 올바른 소리를 해도 한 쪽 귀로 흘러 듣습니다.

:Dora 2016-05-25 17:16   좋아요 1 | URL
정신적으론 숭배찬성 태도는 공감...웬지 자존감이 급상승하는 느낌이 들어서 찬성합니다

시이소오 2016-05-25 17:36   좋아요 0 | URL
아고 답글이계속 사라져 힘드네요 ㆍ공감이더 적절한 표현이겠네요 ^^

cyrus 2016-05-26 15:57   좋아요 0 | URL
To. Theodora, 시이소오 // 처음에 ‘공경’이라는 표현도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여성을 노인처럼 대하는 것 같아서 고민한 끝에 ‘공감’으로 바꿨습니다. 페미니스트라고 해서 다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남녀 모두 평등하게 사는 삶을 만드는 방식도 차이가 있거든요. 제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 입장도 있을 겁니다. ^^

시이소오 2016-05-26 16:16   좋아요 0 | URL
공감합니다 ^^

:Dora 2016-05-25 16: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자에게는 친밀함의 유전자가 없다고 누군가 쓴 걸 읽었어요. 모든 불평등과 차별에 반대하는 의미에선 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합니다..

시이소오 2016-05-25 16:44   좋아요 1 | URL
아, 그런가요? 친밀한 남성들도 있지 않을까요?

:Dora 2016-05-25 16:55   좋아요 1 | URL
ㅋㅋ맞아요 흔하지는 않지만 있긴 있죠

시이소오 2016-05-25 17:06   좋아요 2 | URL
제가 그렇다는거는아니구요ㅋ

:Dora 2016-05-25 17:15   좋아요 1 | URL
확인불가 사항이라 딱히 드릴말씀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