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동안, 240여 권의 책을 읽었다곤 하지만 그 중 반은 읽으나 마나한 책이었다. 닥치는 대로 읽은 결과 적중률이 시원치 않은 탓이다. 믿을만한 가이드를 찾아 책 지도를 만들어 영토화하리라.

 

1. 가장 아름다운 지상의 양식

 

젊은 날 로쟈에겐 사르트르가 영웅이었다. 사르트르의 책 중, 나는 <구토>외엔 다른 책은 안 읽은 반면 로쟈는 <구토>빼고 다른 책들은 다 읽었다고. 90학번 이후의 세대들에겐 사르트르가 한 물 간 철학자처럼 보여 졌기 때문일까.

 

<존재와 무>, <문학이란 무엇인가>,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이제 생각이 난다. 지난날 내가 바닷가에서 그 조약돌을 손에 들고 있었을 때 느꼈던 것이 뚜렷하게 생각난다. 그것은 시크무레한 일종의 구토증이었다. 그 얼마나 불쾌한 것이었던가! 그런데 그것은 그 조약돌 탓이었다. 확실하다. 그것은 조약돌에서 손아귀로 옮겨졌었다. 그렇다. 그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손아귀에 담긴 일종의 구토증

 

- 사르트르, <구토

 

로쟈는 닉 레인의 <미토콘드리아>는 대충 서론만 읽고 쓴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터득하신 듯. ‘아포토시스는 예정된 세포 자살이라고 한다. 모든 세포는 더 큰 이익을 위해 몸 전체를 위해 자살을 하는데, 아포토시스가 일어나지 않으면 암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세포의 입장에서 보자면 두 가지 길 밖에 없다. 숙주를 위해 자살을 하는 방법, 자신을 위한 자유를 찾는 방법. 그러나, 자신의 자유는 곧 숙주를 숙여,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

 

세포의 두 갈래 길에 대한 명상은 프란시스코 바렐라의 <윤리적 노하우>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네오포네라 아피칼리스라는 개미 집단은 전체를 조정하는 중앙 통제적인 자아를 갖고 있지 않음에도 마치 하나의 유기체인 것처럼, 전체의 중앙에서 조정하는 행위자가 있는 것처럼 움직인다고. 바렐라는 이것을 무아적 자아혹은 가상적 자아’, ‘자아없는 자아라고 부른다.

 

선종의 스님들은 툭하면 개미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하곤 조사에게 묻곤 하던데

로쟈의 말을 따르자면 개미에게도 불성이 있다.’

 

제일 지식인 중에 서경식이란 이름은 들었어도 강상중이란 이름은 금시초문이었다. 서경식이 소프트하다면 강상중은 하드하다고. 강상중 씨는 일본 극우파의 공격에 대비해 강연에 나갈 때는 배에 신문지를 넣고 다닌다고 한다.

 

인생은 한 갑 성냥을 닮았다. 소중하게 다루는 건 어리석다. 소중하게 다루지 않으면 위험하다.”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언제나 나는 나 자신을 후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불현 듯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내 앞에 아무도 없고 어느새 내가 전위가 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나는 언제까지나 후위라고 생각하거니와 후위라는 사실을 영광으로 여긴다. 그럼에도 내가 마치 전위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만큼 일본이라는 사회가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 강상중, <청춘을 읽는다.>














 

로쟈의 리스트 1

 

마스모토 겐이치, <기타 잇키>

히틀러1

스탈린 강철권력

네차예프 혁명가의 교리문답

괴셀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로베스피에르 혁명의 탄생

 

2. 책 읽기와 글쓰기.



 












로쟈하면 지젝아닌가? 여기선 지젝의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향락의 전이> 두 권에 대해 말하는데 책에 대해서라기보다는 번역에 대한 문제 제기다. so far as를 이상(理想)으로 번역했다니! 시라노 백작은 키라노 백작이 되고.


 

무질의 소설 <특성없는 남자>에 등장하는 도서관 사서는 350만권의 장서들에 대한 총제적 시각을 유지하기 위해 책은 읽지 않고 제목과 차례만 본다고. 이때만 해도 <특성없는 남자>가 출판되지 않았었나 보다. <특성없는 남자> 1권을 작년에 읽었었는데, 주인공이 도서관 사서였음?? 왜 전혀 기억이 안 날까? 독서를 위해서는 인생이 짧다. 어떻게 해야할것인가? <읽지 않는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의 저자의 충고는 이렇다.

 

중요한 것은 책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얘기를 하는 것, 혹은 책들을 통해 자기 얘기를 하는 것이다.”















 

<햄릿에 관한 앙케트, 귀머거리들의 대화>

 

<, 열 권을 동시에 읽어라> 나루케 마코토.

 

저자는 물리학, 문학, 전기 및 평전, 경영학, 역사, 예술 등 전혀 다른 장르의 책을 적극적으로 넘나들며 동시에 읽을 것을 충고한다. 다치바나 다카시와 마찬가지로 저자 역시 문학책은 읽을 가치가 없다고 말한다.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다가 요즘 들어 너무 편중된 독서를 하는 듯.

 

<독서력>, 사이토 다카시.

 

사이토 다카시는 문학 작품 100권과 교양서 50권 정도를 독서력 기준으로 제시한다. 독서력에 탄력이 붙으면 책 수준에 따라 속독과 정독을 병행하라고. 이후에는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으라고 말한다.

 

김봉석, <전방위글쓰기>

오병곤, 홍승완, <내 인생의 첫 책 쓰기>

박미라, <치유하는 글쓰기>

애디 딜러드, <창조적 글쓰기>

 













김봉석은 일주일에 원고 2,3매라도 꾸준히 쓸 것을 충고한다. 그 다음에는 책을 쓰면 된다. <내 인생의 첫 책 쓰기>는 저자들 자신들이 책을 낸 경험을 바탕으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책을 쓰는 것 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고 말한다. <치유하는 글쓰기>는 글쓰기 자체가 힐링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글쓰기에 소질과 열정도 있다면 <창조적 글쓰기>처럼 글을 쓰는 삶을 추구할 수도 있다.

 

로쟈의 리스트2 : 한겨례 지식문고 1차분

 

3. 교양이란 무엇인가

 

고미숙,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장정일, <장정일의 공부>

강유원, <몸으로 하는 공부>

신영복, <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













 

고미숙은 공부하는 인간을 호모 쿵푸스라 부른다. 다른 말로 이권우는 호모 부커스라 했다. 장정일은 이탁오의 말을 듣고 눈물이 핑 돌았다고.

 

나이 50 이전에 나는 정말 한 마리 개와 같았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어대자 나도 따라 짖어댄 것일뿐, 왜 그렇게 짖어댔는지 까닭을 묻는다면, 그저 벙어리처럼 아무 말없이 웃을뿐이었다.”

 

강유원이 강조하는 것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로 학이 정신의 일이라면 은 몸의 일이다. 즉 머리로 배우고 몸으로 익히라는 말이다. 이러한 몸으로 하는 공부의 모범적인 사례로 로자는 신영복을 들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신영복 선생이 감방 안에서 노촌 이구영 선생으로부터 서예와 동양 고전, 한학을 배운 것은 익히 알려진 일이다.

 

커드 스펠마이어, <인문학의 즐거움>

에드워드 사이드, <저항의 인문학>













 

스펠마이어는 오늘날의 인문학이 전반적으로 우리의 실제 생활과는 유리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동감이다. 삶에 봉사하지 않는 인문학은 지적 허영이거나 쓰레기에 불과하다. 왈라스틴이나 에드워드 사이드는 근대 사회과학과 인문학이 주로 유럽 중심주의적 관점이라고 말한다. 사이드는 유럽중심주의 관점을 제한하고, 3세계의 전통과 언어를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한 민주적 비판을 강조했다. 그는 지식인을 가리키는 아랍어의 두 단어를 차용한다. ‘무타카프muthaqqaf’무파키르mufakir인데, 무타카프는 문화/교양을 뜻하는 타카파에서, 무파키르는 사유를 뜻하는 키프르에서 온 단어다. 배우면서 비판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이러한 작가 지식인들은 사회정의와 경제적 평등, 그리고 자유로서의 발전을 추구해야만 한다.

 

임철우, 우기동, 최준영 외, <행복한 인문학>

 

미국의 교육자 얼 쇼리스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인문학 강좌를 모델로 사회 소외 계층에 행해진 인문학 강좌를 들은 수강생과 교수님들의 체험담이라고 한다. 당장 먹고 살기 바쁜데 인문학이 무슨 소용인가? 수강생들은 인문학을 통해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삶과 다른 사회를 꿈꾸려는 근원적인 충동은 누구에게나 있다는 점, 그리고 사람은 타인의 시선을 통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감과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점 등이다.

 

장 폴 사르트르, <지식인을 위한 변명>

 

사르트르가 보기에 지식인들은 언제나 무기력한 상황에 처해있다. ‘무기력한 상황이란 지식인들이 지배 계급에 예속되어 있다는 말이다. 지식인들은 이러한 예속적, 기생적 상횡에서 탈피하여 숙주인 지배계급에 반기를 들고 저항할 때 탄생한다. 이러한 반항의 신화적 형상이 프로메테우스다. 로쟈가 지적하듯 오늘날의 상황은 달라졌다. 오늘날 지식인들은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기보단 지배계급이 던져준 사료를 감사히 쳐 먹는 배부른 돼지가 되길 바란다. 한국엔 주로 이러한 돼지들이 대학에서 학생들을 사육한다.

 

천정환, <대중 지성의 시대>

 

저자가 그려내는 문화사로서의 지식사는 단지 천재적인 개인과 권력의 시계를 통해 이루어진 지성사가 아니라 다양한 다수의 사람들이 소유한 지식과 그 앎- 문화의 변동에 초점을 맞춘다. 소위 아래로부터의 지성사.

 

도쿄대 교양학부, <교양이란 무엇인가>

오마에 겐이지, <지식의 쇠퇴>

 

문사철 학과가 해마다 없어지는 추세는 내년에도 계속 이어질 듯 보인다. 70년대 대중사회가 성립되면서 일본이나 한국은 교양주의의 쇠락을 맞았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예전처럼 인생의 의미보다 취업을 더 고민한다. 일본 경영 컨설턴트 오마에 겐이치는 예전의 교양이라는 게 오늘날 전혀 통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이른바 글로벌 리더들이 전통적인 교양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의 따르면 지금의 리더들은 주로 사회 공헌과 환경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고 한다. 허걱, 일본은 그런가? 독일의 경영자들은 대뜸 당신은 터키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자주 던진다는데, 허걱, 역시 ‘Bildung’ 국가다.














 

로쟈의 리스트 이삭 바벨

 

4. 고전은 왜 읽는가

 

디트리히 슈바니츠, <슈바니츠의 햄릿>

여석기, <나의 햄릿 강의>

해럴드 블룸, <세계문학의 천재들>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 슈바니츼의 경험담이 재밌다. 어릴 적 <헨리 4>를 읽었던 저자는 아이들과의 욕 경연대회에서 어느 날 상대방 뚱보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삶아놓은 돼지머리 같은 놈아, 헛바람만 들어찬 똥자루, 지 다리도 못 보는 한심한 배불뚝이, 물 먹인 비계, 물러터진 희멀건 두부살, 푸줏간에 통째로 내걸린 고깃덩이, 푸딩으로 속을 채운 출렁거리는 왕만두, 버터를 접시째 퍼먹는 게걸딱지......” 그리고 옆에 끼어든 빼빼 마른 친구에겐 꺼져버려, 이 피죽도 못 얻어먹은 몰골아, 뱀장어 껍데기, 말린 소 혓바닥, 북어 대가리 같은 놈, 수수깡, 뜨개바늘보다 더 가늘어서 치즈 구멍으로 술술 빠지는 놈아, 갑자기 성난 비둘기라도 된 거냐? 아니면 세상에서 제일 용감한 생쥐?”

 

슈바니츠는 욕 경연대회의 챔피언이 된 것은 물론이고 친구들은 그를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봤다고 한다. 슈바니츠는 필립 아리에스의 <죽음에 대한 서양의 태도>를 언급하는데, 동문선에서 필리프 아리에스의 <죽음의 역사>로 국역돼 있다.

 

로쟈는 블룸의 <세계 문학의 천재들>이 완역돼있지 않아서 구입을 포기했다고 한다. 허걱, 몰랐었다. 그렇다. 난 완역도 아닌 책을 멍청하게 다 읽었다.

로쟈 ......다 읽지도 않으면서. 다 안다.


 













가와이 쇼이치로, <햄릿의 수수께끼를 풀다>

 

전반적으로 작가의 해석에 동의하기 힘들다. 헤라클레스? 영웅이 되고자 했다고?

 

박민영, <논어는 진보다>

리쩌허우, <논어금독>

 

<논어는 진보다>의 주된 내용은 공자와 논어가 보수가 아니라고.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를 듯하다. 묵자와 비교하면 공자는 보수다. 한국 보수들에 비하면 진보다. 러쩌허우에 따르면 <논어>의 이름난 주석자만 하더라도 2천 명이 넘는다고. . 리쩌허우 말대로 원문 읽기 보다 중요한 것은 광범위한 인문학적 지식과 철학적 사고능력일 것이다.

 

이상수, <한비자, 권력의 기술> “목숨이 붙어 있다면 개혁가가 아니다.”

 

개혁가는 군주의 마음을 얻어야만 한다. 그래서 유세를 해야 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혁가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 군주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한비자는 유세객 또는 개혁가가 무엇을 알고 있느냐보다 그 지식을 어떻게 세상에 내놓아 실행되도록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비자가 보기에 권세가들, 즉 신하들은 오로지 사리사욕만을 추구하는 존재다. 군주와 권세가 사이에서 개혁가는 어떻게 군주의 마음을 잡을 것인가? 개혁가는 그런 와중 대개 모함과 누명으로 형리에게 죽거나 자객에게 죽임을 당할 운명이라고 단언했다. 그의 말처럼 한비자 역시 그를 시기한 이사의 모함 때문에 결국 죽고 말았다.

 

신병주, <이지함 평전>, 토정 이지함을 말한다.

 

<토정비결>은 이지함이 쓴 게 아니란다. 국부증대책, 해상통상론을 조정에 건의한 걸로 보아 18세기 북학파 실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듯하다.

 

로쟈의 리스트 4 유르스나르 읽기

 

5. 행복이란 무엇인가

 

미하일 숄로호프, <인간의 운명>, <고요한 돈강>


 














<고요한 돈강>으로 196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하일 숄로호프의 중편이다. 러시아 혁명과 내전을 겪고,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된 평범한 가장 안드레이 소콜로프가 주인공이다. 아내와 두 딸이 죽은 줄도 모르고 포로 생활을 전전하던 소콜로프는 어느날 과중한 노동량에 불평을 터뜨렸다가 수용소 소장에게 불려간다. 소콜로프는 죽음 앞에서도 기어코 자신의 품위와 자존심을 지켜낸다.


지젝,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

마르셀 모스, <증여론>

부르디외, <실천이성>

 

포틀래치라는 게 있다. 북미 원주민의 말로 선물이라는 뜻인데, 보통은 선물을 주면서 크게 벌인 잔치를 가리킨다. 많은 손님을 초대해 생선과 고기, 모피와 담요 따위를 나누어줌으로써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고 과시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선물을 받은 사람은 또 더 큰 포틀래치를 열어서 자기도 못지않다는 걸 보여주어야 했다.

 

로쟈는 포틀래치와 대조적인 것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라고 보았다. 포틀래치가 주인들 사이의 행위라면 교환은 노예에 속하는 행위라고. 내 생각엔 포틀래치 역시 노예에 속하는 행위다.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으로 불행하다.”

 

행복은 나비와 같다. 잡으려 하면 항상 달아나지만, 조용히 앉아 있으면 너의 어깨에 내려와 앉는다.”

 














<소비의 사회>, 장 보드리야르,

<무소유>, 법정

 

티베트 토종개 짱아오열풍. 중국에선 한국 돈으로 십 수억을 호가한다고.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사회 평등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행복은 계량 가능한 것이 되어야 했다. 그 척도는 소비다. 그러나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하는 방글라데시 국민의 행복지수가 세계 최고 수준인 것만 들여다보아도 소비가 행복의 척도는 될 수 없을 것이다.

 

함께 읽을 책.

 

<풍요한 사회> 갤브레이스,

<새로운 산업국가> 갤브레이스.

<행복의 역설> 리포베츠키

 

납작하다고 다 홍어는 아니다.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상어와 가까운 종류인 가오리과의 홍어는 정규 과정을 거쳐 몸을 납작하게 만들었다. 녀석은 몸을 양 옆으로 늘려서 커다란 날개를 만든 것이다. 그래서 마치 압착기를 통과한 상어와 같은 모양을 갖게 되었고 좌우가 대칭이다. 하지만 가지미목에 속하는 광어(넙치)는 다른 방식으로 몸을 납작하게 만들었다. 경골여류인 이 녀석은 상어와 다르게 세로로 납작하다. 따라서 광어의 조상이 바다 밑바닥에 엎드릴 때, 홍어의 조상처럼 배를 깔고 엎드리는 것보다는 몸을 한쪽으로 눕히는 것이 자연스러운 행동이었겠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아래를 향한 눈 하나가 항상 모래 속에 파묻히게 되어 결과적으로는 외눈박이를 만드는 문제점을 낳았다. 이 문제는 진화 과정에서 아래로 내려간 눈이 위쪽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해결됐다. 눈이 돌아가는 과정은 광어의 어린 새끼가 자라는 동안 재연된다고 한다. 그래서 어느 정도 자란 광어는 양쪽 눈이 모두 위로 향한, 마치 피카소의 그림과도 같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하고 바다 밑바닥에서 살아간다.

 

로쟈는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드러난 정치가들의 비리를 지적하기 위해 홍어와 광어를 비유로 든다. 즉 유권자 앞에 정직하게 엎드리기보다는 앞뒤 가리지 않고 일단 한쪽으로 드러누운 정치가들은 마치 잘못된 진화로 뇌마저 뒤틀린 광어와 같다. 납작하다고 다 홍어는 아니다.

 

민주주의 이론서

민주주의는 죽었는가

데이비드 헬드, <민주주의의 모델들>

 

로쟈의 리스트5. 스티븐 제이 굴드.


-2014년 11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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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5-11 17: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지도’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어요. 저는 알라딘에 기록을 남기는 이유가 다른 독자들을 위한 지도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사소한 실수나 오류를 용납하지 않아요. 잘못된 생각이나 정보가 있으면 바로 고치려고 합니다.

시이소오 2016-05-11 17:29   좋아요 0 | URL
가끔씩 실수도 용납하셔도 ㅎㅎ ^____^

cyrus 2016-05-11 17:33   좋아요 0 | URL
누군가가 지적하기 전에 얼른 고쳐야 마음이 편합니다. ㅎㅎㅎ

시이소오 2016-05-11 17:57   좋아요 0 | URL
ㅋㅋ 저는 자주 지적해주세요 ^____^;;

cyrus 2016-05-11 20:22   좋아요 0 | URL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 남을 대하기는 춘풍처럼 관대하게 하고, 자기를 지키기는 추상처럼 엄정하게 해야 한다. 이제부터 제 앞가림이나 잘 해야겠어요. ㅎㅎㅎ

시이소오 2016-05-11 20:27   좋아요 0 | URL
아구, 이거 또 한수 배웁니다 ^__^

cyrus 2016-05-11 20:30   좋아요 0 | URL
신영복 선생님의 <처음처럼>에 나오는 구절이에요. 며칠 전에 이 책을 읽다가 알게 되었어요. ^^

시이소오 2016-05-11 20:33   좋아요 0 | URL
처음처럼 정신줄 놓고 마실 게 아니라 정신이 번쩍들게 읽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