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 마르크스의 쓸모.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농업혁명에서 설명한 허구를 상상하는 능력이었다. 하라리에 의하면 호모사피엔스는 허구를 상상하는 능력때문에 여러 호모 종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아이디어 때문에 <사피엔스>에 결정적으로 별 다섯 개를 던졌다. 하라리는 이 아이디어를 도대체 어디서 얻었을까? 김용규의 <데칼로그>를 읽다 하나의 가설을 찾아냈다.

 

흥미로운 것은 카를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이처럼 신이 아닌 것을 마치 신처럼 여기는 것을 허위의식false consciousness’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역시 우상숭배와 묶어 설명했다는 사실입니다. 허위의식이란 말 그대로 잘못된 의식, 곧 현실 또는 진실을 왜곡하고 있는 사상이나 이념을 뜻하지요. 때문에 허위의식은 항상 ‘~을 마치 ~처럼이라는 형식을 갖기 마련인데,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라는 것이 마르크스의 생각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돈을 예로 들어 설명했습니다.

 

돈이란 본디 상품교환이라는 목적을 위한 매개수단에 불과하지요. 그런데 노동자가 돈을 위해 자신의 상품인 노동을 팔 때 그에게 돈은 더 이상 수단이 아니고 목적이 됩니다. 수단을 마치 목적처럼 여기는 허위의식이 생긴 거지요. 그리고 일단 허위의식이 생겨나면 돈이 진정한 신또는 보이는 신이 되고 그것의 숭배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이 된다는 거지요.

 

<데칼로그> p169. 김용규

 

아마도 마르크스를 읽은 분들은 진작에 눈치 채지 않았을까. ‘허구를 상상하는 능력은 마르크스의 허위의식개념을 변형시켜 조금 더 확장했을 뿐이다. ‘허위의식신이 아닌 것을 마치 신처럼숭배하는 것이라면 허구를 상상하는 능력은 신마저 아우른다.

 

20대 때 나는 마르크스의 책을 읽지 않았다. 사유 재산을 폐지하겠다는 마르크스의 사상이 너무도 순진하고 너무도 멍청해보였기 때문이다. ‘인간 심리에 저렇게 무지하다면 읽을 가치가 없다라고 단정했었다.

 

최근에서야 이사야 벌린의 <칼 마르크스>를 읽었다.

그것도 칼 마르크스를 알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이사야 벌린이 썼기 때문에.

 

(10 여년 전에 듣보잡 작가의 <낭만주의의 뿌리>를 읽었다. 문학사조를 이렇게 재밌게 쓸 수 있다니! 모리스 블랑쇼의 <문학의 공간>을 발견했을 때만큼의 충격!

이사야 벌린의 책이었다. 당시엔 이사야 벌린이 세계적인 작가라는 걸 전혀 몰랐다.)

 

하라리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다시 읽고 <사피엔스>를 쓴 셈이다.

고전을 읽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

마르크스를 읽어야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 2016-04-14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사야 벌린의 칼마르크스 아직인데,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좋은하루되세요~~^^

시이소오 2016-04-14 16:43   좋아요 0 | URL
저도 벌린책 다 읽고싶어요. 사랑님도 좋은 봄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