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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게 뭐라고 - 시크한 독거 작가의 죽음 철학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11월
평점 :
2.5인칭의 죽음.
<사는 게 뭐라고>에 이어 <죽는 게 뭐라고>까지 나왔다. <죽는 게 뭐라고>는 <사는 게 뭐라고>보단 삶 보다 죽음에 대해 더 관심을 둔다. 겹치는 내용들도 많다. 두 책 중 한 권만 읽어야 한다면 단연 <사는 게 뭐라고>를 권하고 싶다. 한국인으로선 그녀가 한국 드라마 때문에 목이 돌아간 이야길 빼먹고 읽기엔 아무래도 좀 아쉽다.
“성욕은 있는데 정욕은 없다”는 골동품 상 주인인 싱글벙글 씨도 다시 등장한다. 여전히 이 책에서도 산 송장마냥 생기가 없다. 암 선고를 받고 재규어를 산 일화 역시 빠지지 않는다.
사노 요코는 암이라고 호들갑 떨지 않는다. 암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담배를 끊을 생각도 없다. 일흔은 딱 죽기 좋은 나이라고 생각한다. 죽기를 기다리는 게 오히려 지겹다. 그녀는 ‘기운차게’ 죽고 싶다. 그녀는 암과 싸워 ‘투병기’ 따위를 쓰고 싶어 하지 않는다. 대신 주변에 암이라고 퍼뜨려 지인들로부터 자잘한 친절을 이용하기 바쁘다.
유전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쉰 다섯 살 이상의 연령대는 굳이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종족 보존에 적합하지 않은 종이 왜 살아남아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요즘 남자들의 정자 수가 부실하다는 점, 또한 지구에 꽤나 많은 인간이 살아 있다는 점을 고려하자면 나(딱히 실험을 해보진 않았지만 정자 수가 현격히 부족할 것이다)를 포함한 40대 이후의 남자들은 전부 죽어도 좋을 것 같다. 여자는? 나이를 불문하고 여자들은 공동체에 도움이 되지 않나?
저자가 베를린 유학 시절, 같은 하숙집에 쉰 살 쯤 되어 보이는 한국인이 있었다고 한다. 경성에서 가장 큰 서점의 아들. “미스터 리”. <사는 게 뭐라고>에서 매번 사노 요코에게 일제 침략에 대한 일본의 사과를 요구한 이도 “미스터 리”였을까. 이 “미스터 리”의 일본식 이름은 하치야 신이치. 그는 하치야 마유미와 함께 1987년 11월에 대한항공 비행기를 폭파한다. 하치야 신이치는 독약 캡슐을 씹어 먹고 자살했고, 하치야 마유미, 즉 김현희는 자살 직전 저지당했다. 그가 죽었기 때문이었는지 김승일에 대해선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노 요코는 이래저래 한국과 인연이 깊은 작가인 듯하다. 근 2년 동안 목이 돌아갈 만큼 누워서 한국 드라마만 주구창창 보면서 행복해했던 사노 요코. 나중에는 ‘한국 드라마는 쓰레기’라고 제 정신을 차리기도 했다. 그 순간에 행복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누구나 죽는다. 죽기 전엔 살아 있을 것이고 사는 한 죽음은 찾아오지 않는다. 따라서 죽음에 대한 고민, 공포 등은 부질없는 짓이다. 인간은 모두가 특별하다. 때문에 인간은 모두가 특별하지 않다. 사노 요코를 본받아 우리 모두 ‘기운차게’ 죽음을 맞자.
그럼에도 그녀의 죽음은 아무래도 아쉽다.
2.5인칭의 죽음이기에.
밑줄 그은 문장
p81. 히라이 : 죽음에 대한 감상에도 1인칭, 2인칭, 3인칭이 있다는 군요. ‘그, 그녀의 죽음’은 아, 죽었구나 정도로 별로 슬퍼하지 않아요. 반면 2인칭인 ‘당신의 죽음 (부모, 자식, 형제 등)’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죠. 그래도 그건 자신의 죽음이 아니에요. 1인칭의 죽음, 즉 ‘나의 죽음’은 아무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일인 데다 남들한테 물을 수도 없으니 어려운 거죠. 의사에게 환자의 죽음은 어떤가 하면, 그, 그녀의 죽음처럼 3인칭은 아닙니다. 환자와의 관계가 있으니 2인칭도 아니고 2.5인칭 정도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