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위대한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오마르 하이얌에게 과학은 이슬람의 지적 구속에 저항하는 반역이었다.


저 엎어놓은 사발을 하늘이라고 부른다.

그 아래 갇혀 우리는 한생을 살다 간다.

하늘을 향해 도움을 구하는 손을 내밀지 말지니,

하늘도 그대와 나처럼 무력하게 돌고 있을 뿐이다.

 

현 세기에도 우리는 소련의 감옥에 수감되었던 물리학자 레프 란다우와 목숨을 걸고 스탈린에게 란다우의 사면을 호소한 표트르 카피차를 기억하고 있다.

 

수학자 앙드레 베유와 그를 구해준 수학자 라르스 알포르스도 알고 있다.

 

수학자 챈들러 데이비스. 동료를 밀고하라는 요구를 거절한 죄로 유죄판결을 받고 감옥에 수감됐다.

 

힐베르트는 이 보편적 과정을 발견하는 문제를 결정문제라고 명명했다.

그는 결정문제를 풀게 되면 수학의 유명한 난제들도 모두 풀 수 있다고 믿었다.

 

힐베르트가 70세가 되었을 때, 쿠르트 괴델은 탁월한 분석을 통해 힐베르트의 방식으로는 결정문제를 결코 풀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보였다. 일반적인 산술규칙들을 포함해 모든 수학의 공식화에는 명제들의 참과 거짓을 구별하는 결정적인 과정이 존재할 수 없음을 입증한 것이다. 동시에 그는 참이나 거짓을 증명할 수 없는, 유의미한 산술적 명제들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괴델의 정리. 괴델의 정리는 순수수학에서 환원주의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결정적으로 보여준다.

 

아인슈타인은 생애 마지막 20년 동안 물리학 전체를 통합할 수 있는 방정식들을 찾는 일에만 매달려 무익하게 보냈다.

 

노년의 아인슈타인과 노년의 오펜하이머는 블랙홀의 수학적 아름다움에만 눈이 멀어서, 그것의 실제 존재 여부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펜하이머와 아인슈타인은 환원주의 철학에 빠져 길을 잃었다. 그들은 모든 물리적 현상들을 몇 개의 기본 방정식들로 환원하는 것을 물리학의 유일한 목표로 삼았다.


 

프랜시스 크릭은 금세기 최고의 과학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말년에 자신이 주동했던 미생물학 혁명에 대한 개인적인 해설을 책으로 출간했다. 존 키츠의 시구에서 제목을 빌린 <열광의 탐구What mad pursuit>가 그것이다. 그 책에서 크릭이 참여한 두 가지 발견, DNA의 이중나선구조와 콜라겐 분자의 삼중나선구조를 비교, 설명한 부분이 내겐 가장 인상적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기념비 중 하나는 텍사스 주 샌안토니오 알라모에 있는 새뮤얼 곰퍼스의 석상이다. 석상 아래에는 곰퍼스가 했던 연설의 한 구절이 적혀있다.

 


노동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우리는 감옥보다는 교사를

총보다 책을

범죄보다 배움을

탐욕보다 여가를

복수보다 정의를

우리의 훌륭한 본성을 배양시켜줄 기회를 더 원한다.

 

새뮤얼 곰퍼스는 미국노동총동맹을 설립하고 초대회장을 역임했던 사람이다.

 

과학이 최근 수십 년간 가난한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지 못하게 된 까닭은 두 가지 현상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순수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인간의 현실적 요구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현상이 한 이유요, 응용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점점 더 즉각적인 이윤에 집착하고 있는 현상이 또 한가지 이유다.

 

토머스 제퍼슨이 자명한 이치라고 주장했던 말이 있다. 모든 인간은 동등하게 창조되었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으며, 그 권리에는 생명과 자유 그리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말에 동의한다면, 수백만 명이 실질과 빈곤에 내몰리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 원자력발전소들 버금가게 이 지구의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것도 자명한 이치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위상을 기억한다는 것은 귀가 미세조정공명기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 공명기는 무음 간격 동안에도 끊임없이 진동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골드의 실험은 음의 고저 구분이 뇌가 아니라 주로 귀에서 이뤄진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골드가 옳았던 또 다른 이론은 청각이론보다 더 오랫동안 학계로부터 배척당했다. 바로 지구의 자전축이 90도 뒤집힌다는 이론이었다. 1955년 골드는 지구 자전축의 불안전성이라는 제목의 매우 혁명적인 논문을 발표했다. 요약하자면, 지구의 자전축이 100만 년에 한 번꼴로 90도 각도로 회전해 이전의 북극과 남극이 적도가 되고, 적도의 두 지점이 각각 양극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1997년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암석자기학의 대가였던 조셉 커시빙크는 한 편의 논문에서 캄브리아기 초기에 지질학적으로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지구의 자전축이 실제로 90도 회전했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이것은 생명의 역사에서도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갖는 발견이었다. 왜냐하면 자전축의 90도 회전이 일어난 시기가 캄브리아기 폭발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에 골드가 제시한 혁명적인 이론은 그의 저서 <깊고 뜨거운 생물The deep hot biosphere>의 주제이기도 하다. 골드는 지표의 수 킬로미터 아래에도 생물들이 서식하는 또 다른 생물권이 있다고 설명한다.

 

마이클 크라이튼의 <먹이>는 무책임하게 응용된 생물학적 지식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이 세상이 그 메시지를 듣기를 바란다.

 

두 번째로 빌은 나노기술의 선도자 에릭 드렉슬러의 말을 인용한다. 드랙슬러는 나노기술의 활용을 장려하는 동시에, 오용을 경고하기 위해 포어사이트 인스티튜트를 설립했다. 다음은 드랙슬러의 말이다.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합성박테리아는 진짜 박테리아를 압도할 수도 있다. 이것들은 꽃가루처럼 바람에 날려 퍼질 수도 있고, 빠르게 복제해 수일 내에 생물권을 초토화시킬 수도 있다. 이 위험한 복제자들은 아주 작고 억세고 빠르게 퍼지기 때문에 막을 수가 없다.



 

나노기술은 한마디로, 기능면에서는 생물세포와 비슷하나 구성성분이 달라서 세포보다 훨씬 강인하고 다재다능한 미시 규모의 기계를 만드는 기술이다. 어셈블러도 그중 하나다. 어셈블러는 쉽게 말해 스스로를 복제할 뿐 아니라 다른 기계를 제조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공장이다.

 

 

버나드스키는 생물권이라는 용어를 고안하지 않았지만, 생물권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지구과학과 생명과학을 최초로 통합한 러시아의 과학자다. 바츨라프 스밀은 프라하에서 교육받고 캐나다에 살면서 스스로 동서양을 잇는 가교임을 자처했다. 그는 자신의 책을 통해 버나드스키를 새롭게 조명하고 서구에 그의 이론을 소개하고자 했다. 스밀은 <지구의 생물권 : 진화, 역학 그리고 변화>에서 거의 모든 장에 걸쳐 버나드스키의 <생물권>을 인용한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핵전쟁의 결과를 철저하고 솔직하게 묘사한 톰 스토니어의 <핵 재앙>을 읽었다.

 

일종의 직업으로서 군인의 소임을 다하는 것과 광신적인 군인의식은 엄연히 다르다. 너무 진지한 타입이 아니었던 발크는 호감가는 인물이었다. 그는 군인으로서 당연히 전쟁에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종교를 빙자한 허세나 자만심도 없었다. 발크는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이 대단히 훌륭하고 고결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게 전투는 단지 임무였을 뿐이다.

 

하지만 군인의 소임을 인간성보다 더 높이 둔 요들은 호감 가는 인물이 아니었고, 결국에는 악당이 되었다. 그는 군인의 맹세를 신성한 서약으로 여겼다. 군인의 의무는 히틀러에 대한 충성이라고 확신했고, 결국 자신도 히틀러의 광기에 전염되고 말았다.

 

전략폭격이라는 복음을 전파한 것은 1920년대 이탈리아의 줄리오 듀헤였으나, 그 복음을 처음 실천한 사람은 영국의 휴 트렌차드 경이었다. 트렌차드는 중폭격기들을 제작해 독일의 민간경제를 공격하자고 정부를 설득했다. 그 순간, 영국은 과거 특정한 적만을 공격했던 19세기 전쟁의 전통에서 완전히 돌아서버렸다.

 

퀘이커교가 이룬 불멸의 위업은 노예제 폐지였다.

 

오늘날 평화운동에 필요한 교훈도 이것이다. 평화운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전쟁의 완전한 금지다. 모든 전쟁이 악이지만, 핵무기 사용은 더 악랄한 악이다. 핵무기 폐지가 전쟁을 금지하는 것보다 정략적 목표로서 실현 가능성이 더 크다. 18세기의 퀘이커 교도들과 마찬가지로, 현대의 평화주의자들은 보다 무너뜨리기 쉬운 악을 첫 번째 표적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핵무기 폐지에 성공하면, 다음 세대들이 전쟁금지를 공략하기가 수월해 질 수도 있다.

 

간디는 사티아그라하(진리의 힘이라는 뜻의 힌디어로, 비폭력 저항철학을 담고 있다)라는 개념을 고안했다. 그것은 비폭력주의 그 이상을 의미했다......사티아그라하는 단순히 수동적으로 저항하거나 폭력적 행동을 포기하자는 뜻이 아니다. 사회적, 정치적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무기로서 도덕적 압력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자는 의미다.

 


필립 할리는 <무고한 피를 흘리지 않기 위해>라는 책을 썼다. 그 책은 히틀러에 대항해 비폭력 저항의 길을 선택한 프랑스의 한 마을에 관한 이야기다.....유대인을 숨겨주면 추방이나 사형이 구형되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르 샹봉쉬르리뇽마을은 수백 명의 유대인을 숨겨주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개신교 목사 앙드레 트로크메를 따르고 있었다.

 

르 샹봉쉬르리뇽 마을 이야기는 훌륭한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다. 바로 1987년 피에르 소바주가 제작한 <영혼의 무기Weapons of the Spirit>.

 

조지프 로트블랫은 지구상에서 핵무기를 없애기 위해 생애의 대부분을 헌신했던 과학자다. 19391월 조지워싱턴 대학에서 물리학자 회의가 열렸을 때, 불행히도 그는 폴란드에 있었다. 그 회의에서 핵무기의 가능성이 처음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로트블랫도 그 가능성을 알고 있었지만, 공개토론에서 그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만약 그가 그 자리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면 역사는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지도 모른다. 1939년에 그 엄청난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생물학자들이 히포크라테스 윤리의 전통으로 생물학 무기개발을 중단시켰던 것처럼, 물리학자들이 핵무기에 반대하는 윤리적 전통을 세울 마지막 기회였다. 하지만 그 기회는 물거품이 되었고, 그때부터 역사는 무정하게 히로시마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1944년에 독일에 핵폭탄이 없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밝혀졌을 때에도 로스앨러모스의 과학자들 중 단 한 명만 연구에서 손을 뗐다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그가 바로 조지프 로트블랫이었다. 로트블랫은 로스앨러모스를 더난 후 퍼그워시Pugwash(조지프 로트블랫과 버트런드 러셀, 아인타인 등이 국제평화를 위협하는 요인들을 해결하기 위해 설립한 국제 기구)운동의 지도자가 되었다.

 

자격 없는 사람들에게 노벨 평화상이 수여된 것은 실로 부끄러운 일이며, 로트블랫이 노벨 평화상을 받지 못한 것이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그때 학생 하나가 큰 소리로 외쳤다. “아직 소식 못 들으셨나요? 오늘 아침에 로트블랫이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그 말에 나는 놀라서 소리쳤다. “만세!” 학생들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헤이스팅스는 <아마겟돈>에서 동부 유럽에서 전쟁이 어떻게 끝났는지를 마지막 둘째 장에 묘사한다. 스탈린은 19454월에 베를린에 대한 최후 공격을 개시했고, 3주 만에 35만 명을 잃었다. 독일군은 전체 병력 중 약 1/3을 잃었다. 영국군과 미국군은 엘베 강에서 전쟁을 멈췄고 살아서 귀환했다.

 

우리는 두 배로 운이 좋다. 통찰력과 감성이 넘치는 유리 마닌의 <수학과 물리학>이 있는 것도 행운인데다가 섬세하고 꼼꼼하게 영어로 번역되어 있기 때문이다. 100
쪽 남짓 된 이 작은 책에 실린 문장들은 한 문장 한 문장이 모두 인용할 가치가 있다.

 

이 세상은 하나의 거대한 기계와 같다. 그 기계를 움직이는 나사들과 기어들의 작동방식이 밝혀진다면, 새로운 대형으로 조립되고 정렬될 수 있다. 그 결과 이 세상은 활과 직기를 얻거나 집적회로를 얻는다.’

 

20세기 과학의 위대한 혁명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혁명과 쿠르드 괴델의 혁명이다. 두 혁명은 기존의 과학 개념을 뒤집고 새로운 과학 개념을 만들어냈다. 하이젠베르크는 고전물리학을 전복시켰고, 쿠르트 괴델은 수학의 토대를 전복시켰다.


 

 

역사적 차원에서 간결하고 탁월하게 과학을 파고든 책이 또 한 권이 있다. 바로 폴 포먼의 <바이마르 문화, 인과성과 양자이론1918~1927: 적대적인 지적환경에 대한 독일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의 적응>이다.

 

포먼은 클라인의 괴팅켄 연설을 이용해 바이마르 독일의 지적 대반전을 극적으로 묘사하려고 한다. 새로운 시대는 파멸과 우울의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이 시대를 상징하는 주제곡은 오스발트 슈펭글러가 쓴 묵시론적 세계사 <서양의 몰락>이었다.


 

각각의 문화는 발생하고 무르익고 타락하고 완전히 사라지는 자기 현시의 가능성들을 저마다 가지고 있다. 하나의 문화에는 조각, 그림, 수학, 물리학이 하나씩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깊은 본질적 측면과 존속기간, 독립성이 각기 다른 것들이 다수 존재한다.’

 

오늘, 과학의 시대가 저물고 회의주의가 승리하고 있다. 이 무대에서 구름은 흩어지고, 조용한 아침의 경관은 명료하게 다시 나타나고......고투 끝에 지친 서양 과학은 영적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다.’

 

에드워드 텔러의 <회고록 : 20세기 과학과 정치 여행>은 재밌으면서도 아주 독특한 역사기록이다.

 

닐스 보어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그리고 에르빈 슈뢰딩거가 심오한 사색가로서 임루를 완수한 후, 문제해결사들은 새로운 개념들을 이용해 실용적 문제들을 해결하려 했다. 텔러와 그의 친구 한스 베테, 레프 란다우, 조지 가모프 그리고 엔리코 페르미가 그런 문제해결사였다. 그들은 새로운 개념들을 이용해서 물리학과 화학을 기초부터 깡그리 다시 세웠다.

 

보통 달은 지구 둘레를 일정한 방향으로 공전하기 때문에 우리 눈에는 오로지 앞면만 보인다. 그런데 달이 그 공전궤도를 아주 살짝 벗아나 뒤뚱거릴 때가 있다. 그때면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지역이 가시적인 앞면 가장자리로 슬쩍 드러난다. 무어는 달이 고전궤도를 최대로 이탈하는 그 순간을 포착했다.

 

무어는 달이 공전궤도를 최대로 이탈하는 그 순간을 포착했다. 그리고 달에서 가장 크고 가장 아름다운 충돌 크레이터 마레 오리엔탈을 발견했다.

 

이런 관점은 원자핵을 발견한 물리학자 어니스트 러더퍼드의 말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물리학만이 진정한 과학이다. 나머지는 나비 수집에 불과하다

 

과학에는 크게 두 종류의 학파가 있다. 흔히 역사학자들은 베이컨 학파와 데카르트 학파라고 부른다. 베이컨 학과의 과학은 세부적인 것들에 주목하고, 데카르트 학파의 과학은 개념에 관심을 둔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6-02-28 17: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에 있는 내용을 직접 옮겨 쓰신 건가요? 정말 대단합니다. 이렇게 많은 양의 내용을 입력하는 게 쉽지 않으니까요. ^^

시이소오 2016-02-28 18:08   좋아요 0 | URL
워낙에 머리가 안 좋답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다 잊어버릴까봐서요. 그리고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