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주변과 중심
검은 피부 하얀 가면 프란츠 파농
“누구에게나 이뤄지지 못한 약속의 땅에 사랑하는 사람을 묻는 일이 한번쯤은 찾아오리라...... 사랑하는 사람을 묻을 땅을 파느라 더러워진 옷, 아니 얼룩진 옷......옷이야 갈아입으면 되지만, 얼룩진 마음은 기억에서 잊혀질지언정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는다.”
고로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의 마지막 장면, 비행기를 보여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소년이 죽은 여동생을 공항 부근에 묻고 돌아오는 장면을 소설가 김연수는 이렇게 썼다.
며칠을 이 문장과 함께 살았다. ‘얼룩진 옷’을 입고 살아가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 내가 약자의 삶을 ‘선택’하면, 즉 ‘일부러’ 얼룩진 옷을 입으면 얻게 되는 인식론적 자원이 있다......하지만 나는 당연히 얼룩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정의로워서가 아니다......얼룩으로 인해 감당해야 할 삶이 있다. 얼룩의 이물감, 분노 조절 실패, 사회적 시선과의 싸움.......
평화 혹은 민주주의를 추구한다는 것은 ‘얼룩진’ 옷을 벗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소외를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것. 사람들은 고통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 행복보다 괴로움이 안전하다. 행복은 지켜야 하는, 피곤한 것이다.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은 36살에 죽은 파농이 27살에 쓴 책이다. 이런 책은 지식만으로 쓰여지지 않는다. 1970년 미국의 급진주의 페미니스트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이 <성의 변증법>을 25살에 썼듯이 자기 위치성에 대한 정치적 자각 없이는 가능하지 않은 걸작이다.
“타자를 만지고 느끼며 동시에 그 타자를 내 자신에게 설명하려는 노력을 왜 그대는 하지 않는가?”
“나의 육체여, 나로 하여금 항상 물음을 던지는 인간이 되게 하소서”
고정희 시전집1,2, 고정희
이 책은 시선집이 아니라 시 전집이다. 그런데 한 사람의 전집이 아니라 마치 ‘한국 명시선’ ‘한국 현대 시인선’처럼 연애편지에 인용하기 좋은 시부터 신학, 민중, 자연에 이르기까지 인생과 시대를 아우르는 주제가 망라돼 있다.
섣부른 생각이지만 고정희 같은 인물이 다시 나올까 싶다.
시집을 뒤적이다가 <사랑법 첫째>라는 시에 연필을 꽂아 둔다.
그대 향한 내 기대 높으면 높을수록
그 기대보다 더 큰 돌덩이를 매달아놓습니다
부질없는 내 기대 높이가
그대보다 높아서는 아니 되겠기에
기대 높이가 자라는 쪽으로
커다란 돌덩이 매달아놓습니다.
그대를 기대와 바꾸지 않기 위해서
기대 따라 행여 그대 잃지 않기 위하여
내 외로움 짓무른 밤일수록
내 설움 넘치는 밤일수록
크고 무거운 돌덩이
가슴 한복판에 매달아놓습니다
이별의 기술, 프랑코 라 세클라.
나의 소원은 인류 멸망이다. 내 소원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죽사’는 모든 사람의 희망일 것이다.
시간 차 비극의 제일은 무엇일까. 며칠 전 “사랑의 반대말은 사랑이다. 사람들마다 각자 사랑의 개념,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부모 자식 간에 사제 간에 연인 간에 갈등이....” 이런 하나 마나 한 장광설을 늘어놓던 내게 친구가 말했다. “너는 아직도 그러고 사는구나, 사랑은 그런 게 아냐. 사랑한다, 사랑했다. 이게 서로 반대야”
비극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의 책을 좋아하는데 <이별의 기술>이 그렇다. 이별 와중에 의문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부제는 ‘인류학자가 바라본 만남과 헤어짐의 열 가지 풍경’이지만 내용은 이보다 흥미롭고 참혹하다.
상대에게 떠난 이유를 따지는 것은 전혀 효과가 없다. 사랑이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실리 측면에서도 그렇고, 사실 진짜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심오하지 않다. ‘피해자’에게 관심도 없다. 관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쪽이 약자가 될 뿐이다. 그들은 단지 할 수 있으니까 그런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그들이 될 수 있다.
트라우마는 ‘가해자’때문이 아니라 ‘가해자’를 이해하려는 순간 시작된다.
페미니즘, 왼쪽 날개를 펴다. 낸시 홈스트롬
살해된 통영 초등생(<한겨레> 2012년 7월 24일자 1면)와 정치학자 이성형 교수의 영면. 두 사건은 내가 사는 세상을 요약하는 듯하다. 충격과 슬픔도 컸지만 열패감이 더했다. 아, 세상이 세구나.
<페미니즘, 왼쪽 날개를 펴다>는 35편의 논문이 실려 있다. 섹슈얼리티, 공공정책, 인종, 군사주의까지 다루지 않은 분야가 없다. 이 책은 내가 접한 페미니즘 입문서 중에서 가장 우수하며 가장 ‘충분’하다. 또한 가슴 죄는 명언들이 즐비하다. 여성주의는 양성 평등이 아니라 사회 정의를 위한 것이다.
“너 자신을 파괴하고 눈에 띄지 말라.”는 사회의 메시지, 아니 협박을 받으며 살아가는 주변인에게 가장 중요한 생존 전략은 자기부정이다. “‘숨자, 살아남으려면 숨자.’ 라고 생각했다. ”
파멸이 ‘약자’ 스스로에 의해 저질러진다면 권력자들은 더없이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그들’인 우리는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사회는 어려운 조건에 놓인 어린이를 보호하는 데 총력을 쏟아야 하며, 선하고 재능 있는 이가 53살에 세상을 떠나서는 안 되는 것이다.
신약성서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성경은 언제나 원본 없는 개정판이었고 또 그래야만 한다. 정치적(신화적)해석 말고 표현상으로도 바이블은 없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의 앞 구절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에 반대하는 하느님이다. 따라서 보복하지 말라, 저항하지 말라, 앙갚음하지 말라, 대적하지 말라 등이 널리 알려져 있으나 나는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가 가장 맘에 든다.
악의 활동, 피해가 발생하는 시간은 짧다. 그러나 악의 이유를 묻게 되면 영원히 피해자가 된다. “왜?”라고 질문하는 그 순간부터 ‘피해자 됨’의 진정한 의미, 불행감과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된다. 악의 이유에 대한 궁금증은 피해자의 자아 존중감을 파괴하는 악의 본질이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무관심으로 악의 기능을 중단시키자. 그럼, 누가 악과 싸우나? 그건 악 자신이 할 일이다.
성의 변증법, 술라미스 파이어스톤
<성의 변증법>을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대표작, 여성학의 고전이라고 소개하는 것은 부정의하다.
이 책은 그냥 인류의 고전이다.
부모 사랑 금기는 오이디푸스/엘렉트라 콤플렉스, 동성애 혐오를 낳았다. 파이어스톤은 이 세 가지 억압이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기본 장치이며 가족 폐지를 통한 근친상간 금기의 종식은 성, 계급, 자아 개념을 바꾸는 인류의 혁명을 가져올 것으로 보았다. 현재 가족은 계급 우월과 인생 성패의 기준으로 절대시되고 있다. 가족 제도가 만악의 근원이라거나 인간이 발명한 가장 폭력적인 행위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필요한 것은, 가족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가장 인위적인 제도라는 인식이다.
세 가지 물음, 톨스토이. 지금 접촉하고 있는 사람
며칠 전 어떤 사람이 내게 물었다.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나는 주저 없이 “엄마”라고 대답했다. 그는 ‘답’이 아니라고 했다. “그럼, 나 자신?” “아니면 통찰을 주는 예술가?” 나는 계속 틀렸다. 답은 “지금 접촉하고 있는 사람”이다. 톨스토이의 우화 <세 가지 물음>에 나오는 질문 중 하나다.
톨스토이의 단편은 그의 지혜만큼이나 넘치게 출간되어 있다. 최근 국내 최대 47편을 수록한 책이 나와서 사고 싶었지만, 참았다. “지금 접촉하고 있는” 책부터 읽기로.
경제적 공포, 비비안느 포레스테
아직도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는 이들을 만난다. 이 헌신적인 사도들에 대한 내 감상은 세 가지다. ‘아, 저 열정이 부럽다.’ ‘천당이 그렇게 좋으면 먼저 가시지’ ‘여기가 지옥인데 뭘 벌써부터 걱정을..’
<경제적 공포 –노동의 소멸과 잉여 존재>의 저자 비비안 포레스테는 그의 다른 명저 <고요함의 폭력>에서 이 상황을 요약한다. “지옥은 비어 있고 악마들은 다 여기 있다.”
<경제적 공포>는 <자본론> 이후 가장 많이 팔린 경제학서라고 한다.
지금 이 체제에 시너를 부을 것인가? 폭탄을 설치할 것인가? 자폭할 것인가? 필요한 것은 앎이다. ‘무능한 잉여’의 유일한 자원은 생각하는 능력뿐이다. 필독을 권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인생, 자녀 교육, 투표에 대한 생각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그렉 버렌트 외
지금 누군가 이 책을 사고자 한다면 결사적으로 말리겠다.....이런 책을 사려고 망설이는 상태라면 이미 연애가 깨졌거나 시작하지도 않은 것이다. 남자가 신뢰를 준다면 이 책의 존재를 알 리 없다. 책을 읽고 진실을 직면한 치료 효과가 없진 않겠지만, 자신에 대한 분노로 최소 며칠간은 미칠 가능성이 있다.
심화학습을 원한다면 자본주의의 고전인 재클린 사스비의 <낭만적 사랑과 사회>를 읽으면 된다. 자본주의는 사랑과 가족 문제를 여성의 일, 성 역할로 할당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다만, 가장 추잡한 남자는 헤어지면서 좋은 인상으로 기억되고 싶어 ‘희망 고문’을 지속하는 자, 두 번째 저질 남자는 거절 못하고 질질 끌면서 여자의 감정과 자원을 착취하는 부류다. 이런 분들은 ‘코끼리에 밟혀 죽어야 한다.’
보스턴 결혼 –에스터 D. 로스불름 외 엮음, ‘그것’
섹스 생활 없는 여성 동성 결혼을 다룬 <보스턴 결혼>을 읽으며 행복해하다가, 새삼 베스트셀러에 문제의식을 품게 되었다. 여성주의나 동성애는 ‘그들’에 대한 이슈가 아니라 사회에 대한 담론이다....깊이 있는 지식과 통찰력, 편집, 번역에서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주는 책(이 책!)이 ‘여성’, ‘레즈비언’이라는 레터르가 붙어 ‘툭수’ 분야의 서적으로만 여겨진다면, 공동체 전체의 손실이 아닐 수 없다.
헨리 제임스의 소설 <보스턴 사람들>에서 유래한 ‘보스턴 결혼’은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미국 도시 지역에서 경제적으로 독립한 여성들 간의 동거 관계를 말한다. 보스턴 결혼은 여성에게 돌봄, 연대감, 로맨스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보스턴 결혼>의 매력과 성취는 인류사 전반에 대한 상상력과 모색에 있다. 로맨틱하고 헌신적이지만 섹스가 필수적이지 않은(asexual) 동성 결혼은, 진부한 질문을 근본적인 질문으로 바꿔놓는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섹스, 금욕, 육아, 친밀성, 가족이란 무엇인가.
<보스턴 결혼>에는 지시대명사가 많다. “그것 하기”, “우리가 뭐였든 하여간 그거였을 때, 우리에게 있었던 그게 무엇이었든 간에”, “그 여자는 결코 모를, 그 사람 전부를 알 길”, “소녀가 소녀를 만나고 소녀가 소녀를 잃고, 소녀가 소녀를 얻는다.” 이 책에서 섹스는 ‘그것it’이다. 섹스는 미지의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