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고문 ※※ 본 페이퍼에는 얼어붙은 감성을 산산조각 낼 숱한 명시들이 즐비하나 

핸드폰 북플 이용시 손가락 골절이 우려되므로 컴퓨터로 읽으실것을 권고드리며 

아예 본 페이퍼를 패스하시고 책을 사서 읽으시는 방법을 추천드립니다. ^^



저런, 그래도 들어오셨네요.   

손가락에 행운을 !! 

 


p40. 김지하의 시는 한국에서는 판매 금지를 당했지만, 일본에서는 널리 읽히고 있었다. 그의 수많은 시, 특히 <타는 목마름으로>를 나는 그야말로 목이 말라 애타는 사람처럼 되풀이해서 읽고 또 읽었다.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는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라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이 시는 내게 폴 엘뤼아르가 대독 레지스탕스를 노래한 시<자유>를 연상하게 했다.

 

 

조국의 시인들 가운데 특히 김수영에게 친밀감을 느낀 것은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 역시 경력으로 보아 디아스포라적인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 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중략)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중략)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역사 박일호 (서경식 선생님이 고등학교 3학년 때 자비 출판한 시집에서의 필명)

 

여기는 일본

현해탄 너머 나라를 사랑하려는

나의 슬픔을

이 나라 사람들은 모른다

 

지금 이땅에서

흙이니 물이니 하늘이니 구름,

흑은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처럼

나는 조국을 사랑할 순 없다

 

나에겐

조국을 이야기할 언어가 없다

나에겐

조국을 느낄 살갗이 없다

 

하지만 나는 언제가 들었다

동양의 진창에서 피를 흘려가며 부르던

혼잣말처럼 나직한, 그러나 사라지지 않을

조상들의 노래

 

들이밀어진 칼날 앞에서

짓밟힌 군화 아래서

태어나 노래하는

내 아버지들 내 어머니들

 

어둠속을 걷는 수많은

유민들처럼

눈물을 흘리면서 묵묵히

여기까지 온 조국의 역사

 

그리고 나는 알고 있다

나의 이 슬픔의 근원

남의 땅 일본에 나를 태어나게 한

고통스런 역사를 고통스런......

 

오늘도 내 밖에 있는 나의 조국을

사랑하고자 몸부림치는 것이다 사랑하고 싶어서

이제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 이런 슬픔은

이렇게 고통스런 역사는

 

그러니 살고 싶은 것이다

역사의 진창 속에 있어

이 슬픈 역사를 응시하면서

응시하면서 살고 싶은 것이다

 

p117. 일본 지배 아래 있던 1909, ‘조선민적령이 발령되었다. ‘민적이란 호적의 전신이다. 새로 일본의 지배하에 들어간 수많은 조선인을 모두 파악하기 위해 민적을 만들어 등록한 것이다. 당시를 경험한 시인 한용운은 <당신을 보았습니다>라는 시를 남겼다.

 

당신을 보았습니다 한용운

 

당신이 가신 뒤로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까닭은 당신을 위하느니보다 나를 위함이 많습니다.

 

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으므로 추수가 없습니다.

저녁거리가 없어서 조나 감자를 꾸러 이웃집에 갔더니,

주인은 거지는 인격이 없다. 인격이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다.

너를 도와주는 것은 죄악이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돌아 나올 때에 쏟아지는 눈물 속에서

당신을 보았습니다.

 

나는 집도 없고 다른 까닭을 겸하여 민적이 없습니다.

민적이 없는 자는 인권이 없다. 인권이 없는 너에거 무슨 정조냐하고

능욕하려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를 항거한 뒤에 남에게 대한 격분이 스스로의 슬픔으로 화하는 찰나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아아 온갖 윤리, 도덕, 법률은 칼과 황금을 제사지내는 연기인 줄을 알았습니다.

영원의 사랑을 받을까, 인간 역사의 첫 페이지에 잉크 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 망설일 때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p121. 이때 조선 반도 내에서 평화적인 독립운동을 이어갈 수 없게 된 이들이 중국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만들어 항일독립투쟁을 계속했다. 1932년에 도쿄 사쿠라다몬에서 천황에게 폭탄을 던진 이봉창이나 중국 상하이의 홍커우 공원에서 일본군과 정부 요인에게 폭탄을 던진 윤봉길도 그 일원이었다. 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현재 한국의 국가적 정통성의 원류로 여겨진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간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끄을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게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갑부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마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손에 호미를 쥐여 다오

살찐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팔목이 시도록 매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스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잡혔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p129. 윤동주는 어쩌면 일본에서 가장 잘 알려진 조선 시인일지도 모른다. 시집이나 평전도 나와 있고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가 그에 대해 쓴 에세이가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별 헤는 밤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 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 ,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게외다.

 

p132. 8개월간에 이르는 가혹한 취조 끝에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로 이송되었고, 결국 그곳에서 옥사했다. 19452월의 일이다. 반년 후면 일본이 패전하고 그도 석방되었을 것을. 시 속의 부끄러운 이름이란 창씨개명을 가리키는 것이라 여겨진다.

 

p133. 한때 수상이었던 아소 타로는 아소 재벌가의 도련님인데, 전쟁 중엔 아소 재벌이 소유하는 탄광에 수많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끌려와 있었다. 아소 씨는 창씨개명은 조선인들이 원해서 한 일이다. 기뻐하는 사람도 있었다라는 발언을 자민당 총재 시절에 했는데, 일본 국민 다수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아소는 한국으로 부터도 재일조선인에게도 항의를 받았지만, 일본 사회에서는 그다지 문제시되지 않고 넘어갔다.

 

그때까지 창시개명을 거부해오던 윤동주 일가는 그 때문에 몹시 고심했지만 끝내 어쩔 수 없이 히라누마라는 창씨명을 갖게 되었다. 현재도 도시샤 대학에 남아 있는 윤동주의 학적부에는 히라누마 동주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고통과 고뇌와 굴욕으로 점철된 기록이다.

 

p135. 서시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p140. 이번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여당 쪽, 즉 김지하 자신을 비롯하여 민주화 세력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던 독재자의 딸을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민주주의는 무자가한 채로 단말마의 시기를 맞이하고, 한국에서는 일찍이 타는 목마름으로라고 노래했던 시인이 스스로 자신의 시를 배반하는 비참한 꼴을 드러내고 있다.

 

p142. 겨울 공화국 양성우

 

여보게 우리들의 논과 밭이 눈을 뜨면서

뜨겁게 뜨겁게 숨 쉬는 것을 보았는가

여보게 우리들의 논과 밭이 가라앉으며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으면서

불끈불끈 주먹을 쥐고

으드득 으드득 이빨을 가로 헛웃음을

껄껄껄 웃어대거나 웃다가 새하얗게 까무라쳐서

한꺼번에 한꺼번에 죽어가는 것을

보았는가

 

총과 칼로 사납게 윽박지르고

논과 밭에 자라나는 우리들의 뜻을

군화발로 지근지근 짓밟아대고

밟아대며 조상들을 비웃어대는

지금은 겨울인가

한밤중인가

 

(중략)

 

삼천리는 여전히 살기 좋은가

삼천리는 여전히 비단 같은가

거짓말이다 거짓말이다

날마다 우리들은 모른 체하고

다소곳이 거짓말에 귀기울이며

뼈 가르는 채찍을 견뎌내야 하는

노예다 머슴이다 허수아비다

 

(중략)

 

여보게 화약 냄새 풍기는 겨울 벌판에

잡초라도 한 줌씩 돋아나야 할 걸세

 

이런 때면 모두들 눈물을 닦고,

한강도 무등산도 말하게 하고,

산새도 한번쯤 말하게 하고

여보게

우리들이 만약 게으르기 때문에,

서른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가도

끝내 못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가난한 멍에를,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늘어처진 육신에

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서른, 잔치는 끝났다 최영미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 운동가를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p151. 돌 정희성

 

돌을 손에 쥔다

고독하다는 건 단단하다는 것

법보다 굳고

혁명보다 차가운

돌을 손에 쥐고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불과하다는

시를 보며 돌을 쥔다

배고프지, 내 사람아

어서 돌을 쥐어라

입술을 깨물며

손에 돌을 쥐고

청청한 하늘을 보며 내 사람아

돌밖에 쥘 것이 없어

돌을 손에 쥔다.

 

세상이 달라졌다 정희성

 

세상이 달라졌다

저항은 영원히 우리들의 몫인줄 알았는데

이제는 가진 자들이 저항을 하고 있다

세상이 많이 달라져서

저항은 어떤 이들에겐 밥이 되었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권력이 되었지만

우리 같은 얼간이들은 저항마저 빼앗겼다

세상은 확실히 달라졌다

이제는 벗들도 말수가 적어졌고

개들이 뼈다귀를 물고 나무 그늘로 사라진

뜨거운 여름 낮의 한때처럼

세상은 한결 고요해졌다

 

p153. 그러나 폭압적인 시대현실이 나를 고전적인 안온함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게 가만 놓아두지 않았다. (중략) 유신에 반대하던 나의 벗들은 직장에서 쫓겨나고 감옥에 갇힌 바 되었다. 마침내 나는 고전적인 시인이 되기를 포기하고 현실적인 시인이 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중략) 시인은 자기 시대의 사람들을 숨 막히게 하는 산소 결핍 징후를 남보다 먼저 감지하고, 아무도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해야 하며 모든 사람이 침묵할 때에도 침묵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다. 나도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였다.

 

이것은 마지막에 소개한 정희성이 자신의 시를 돌아보며 쓴 문장 <시를 찾아나서며>에서 인용한 것이다.

 

p155. “상처 입고 소외된 사람들은 정희성의 말이다. 한국에서도 상처 입고 소외된 사람들과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 하는 것이 시인에게 부과된 커다란 과제다. 1970년대, 1980년대 같은 피투성이 잔치는 끝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인은 지금 눈앞에 있는 현실을 노래할 방법을 알아야만 할 것이다.

 

물론 옛날과 같은 자락으로 같은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 지금 이 상황 속에서 소외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노래해야만 한다. 그것이 시인의 소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은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도 똑같다.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바뀌었다 하더라도 이 사회에 소외되고 상처 입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상, 시인의 일은 끝나지 않는다. 지금 이 시대가 시인들에게 새로운 노래를 요구하고 있다.

 

 

p270. 하지만 수업 마지막에, 아시가키 린의 <산다는 것>을 소개했더니, 그때까지 무표정하던 학생 하나가 반응을 보였다.

눈물 날 것 같아. 이거 내 얘기예요......”

모든 것을 픽션화해왔던 젊은이가 시의 힘으로 처음 생명을 실감하는 순간.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산다는 것 이시가키 린

 

안 먹고는 살 수가 없다.

밥을

푸성귀를

고기를

공기를

빛을

물을

부모를

형제를

스승을

돈도 마음도

안 먹고는 살아 남을 수 없었다.

부풀어 오른 배를 안고

입을 닦으면

주방에 널려 있는

당근 꼬리

닭 뼈다귀

아버지 창자

마흔 살 해질녘

내 눈에 처음으로 넘치는 짐승의 눈물.

 

p277. ‘시의 힘이란 시적 상상력을 가리킨다. 루쉰에게 있어 서정시 형태의 정치적 태도 결정(나카노 시게하루)” 역시 그러한 상상력이 가져온 것이다.

 

문학이 저항의 무기로서 유효한지 의심스럽다. 내가 쓰는 것을 문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지는 더욱 의심스럽다. 그럼에도 이런 책을 내려는 이유는 본문에서 루쉰의 말을 빌렸듯, “걸어가면 길이 되기때문이다. 아직 걸을 수 있는 동안은 걷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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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부인 2016-02-16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읽느라고 정말 한참을......^^

시이소오 2016-02-16 09:41   좋아요 0 | URL
아, 죄송해요. 경고문을 붙일까 한참 고민하다 그냥 올렸네요.
고생하셨습니다. ^^;;

달걀부인 2016-02-16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읽는건 읽으면 되지만 ˝복붙˝이 아니라면 글올리신 시이소오님이 몇배 더 고생.. 김수영씨 읽으면서 잠깐이나마 뜨거워져서 좋았습니다. 지금은 좀 뜨거워져도 좋은 시대, 지않습니까.

시이소오 2016-02-16 09:50   좋아요 0 | URL
달걀부인님의 댓글을 보고 바로 경고문을 띄웠습니다. ㅋ
김수영 <고궁을 나오며>는 마치 제 얘기 같아요.


달걀부인 2016-02-16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가락관절우려되는 ㅣ오호!

시이소오 2016-02-16 09:54   좋아요 0 | URL
손가락 골절이요. ^^

깜장앨리스 2016-02-16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올리시느라 힘드셨겠어요. ^^
잘 읽었습니다.

시이소오 2016-02-16 16:14   좋아요 1 | URL
긴 글 읽으시느라 고생하셨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