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절로 가는 사람
강석경 지음 / 마음산책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장석주의 <불면의 등불이 나를 인도한다>를 보면 담양 토지문학관에 입소한 시인이 강석경의 <신성한 봄>을 허겁지겁 읽은 일화가 나온다. 시인은 강석경의 문장이 손이 데일 듯 뜨겁다고 말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서민 박사의 서평집 <집 나간 책>에서도 강석경을 찬양하는 글을 보았다.

 

그러니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강석경이란 이름을 보았을 때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냉큼 집어왔다. 어라, 그런데 소설이 아니었다. <저 절로 가는 사람>

주로 스님들, 혹은 절에 관한 에세이다.

소설이 아니었지만 글자를 삼키듯 허겁지겁 읽은 건 나 역시 시인과 마찬가지였다.

 

책을 읽으면서 엉덩이가 들썩거려 혼났다.

오늘이라도 당장 삭발하고 출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고요히 앉아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치킨 안 먹을 자신 있어? 한우 안 먹을 자신 있어? 삼겹살은? ...... ’

 

왠지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송광사에서 나오는 표고가 들어간 떡국과 짬뽕이 더 먹고 싶었다.

 

섹스는? 섹스 안 할 자신 있어?’

 

예상과 달리 그것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출가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속세와 인연을 끊을 수 있을 것 같은데......

 

, 싸질러놓은 애새끼는 어쩌란 말인가.

 

혹시 변명 아닐까. 애를 빙자해 미련을 버리지 못한 닭다리와 닭 날개,

섹스에 대한 욕망을 은폐하는 것은 아닐까.

우선은 참기로 했다. 재가 불자 박문호 박사도 있지 않은가.

 

심산 명당은 오대산이고 야지 명당은 통도사라고, 통도사에도 가보고 싶다.

화엄산립법회의 정수라는 법문도 듣고 싶다.

해인사, 송광사, 화운사에도.

 

작가가 송광사 가는 길에 만난 숙녀의 말은 얼마나 황당하던지. 특목고 다닐 때 인간의 양상이 아수라장이어서 빨리 제도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그리고 숙녀는 유학 이후 실제로 출가했다.

 

작가가 소개한 스님들의 면면은 실로 파란만장하며 경이적이기까지 하다.

송광사 인석 스님은 경율이 암기가 안 되자 한 번 읽고 직도직해 했다고 한다. 대장경을 위해 일생을 바친 해인사 성안 스님. 선일 스님은 인도 유학, 팔리어 공부만으로 9년을 보냈다. 공부를 더 하기 위해 스님은 스리랑카로 떠난다. 그곳에서 6~7년 동안 등이 아플 정도로 경전 공부에만 매진한다. 한국에 돌아와 암에 걸렸지만 투병 3년 만에 암을 완치한다.

 

신동화가로 이미 15세 때에 원각사 탱화불사 5축을 혼자 완성한 석정스님. 석정스님과 17년간 한국의 불화작업을 함께 한 송천스님. 초등학교 때도 장례 희망 직업란에 스님이라고 적었던 정우 스님.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에 나가 상을 받을 정도였으나 15세 때 출가를 결심한다.

 

뇌과학자면서 지치지 않고 수년간 불교 경전을 강의하는 박문호 박사. 미국에서 한국인 최초로 대학 강단에 선 화공스님. 하루 만에 천수경을 외워버릴 정도로 천재였던 덕민 스님. 스님은 추연 권용현 선생 밑에서 유학을 공부한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닌데 입을 못 마출 게 뭐 있냐며 여자들에게 키스를 하고 가슴을 만지는 둥 기행을 일 삼치 않았던 종표 스님. 덕민 스님은 그 종표 스님을 탁구로 꼬셔 유,,선의 고전과 경전들을 가르친다.

 

이 스님들을 다 만나고 싶지만 특히나 몬스터종표 스님을 만나고 싶다.

지금은 장자, 맹자, 논어를 지나 두보 시를 공부하신다고.

두보를 공부해야겠다.

 

종표스님은 화엄사에 계신다.

 

기독교인에서 무신론자였다 다시 유신론자(모든 종교를 믿었다)였다가

지금 나는 불가지론다.

 

비록 불교도가 아닐지라도 강추한다.

진리가 비처럼 쏟아질테니.

 

만일 내가 애새끼를 버리고

기어코 출가하게 된다면 이건 모두 다 강석경 작가 때문이다.

 

책을 통해 누구나 삐-(기쁨)를 느끼시길.

 

아따 딧빠!! (너 자신을 섬으로 삼아라)

 

밑줄 그은 문장

 

p22. 아만의 산을 무너뜨리고 공덕의 숲을 키운다는 뜻의 산림법회에서는 돌아가신 부모 조상과 유주무주의 영가까지 청하여 천도를 실시하면서 회향한다. 회향이란 세간의 생사가 없는 저 언덕으로 가는 것

 

p25. 영취산은 부처님이 인생의 후반부를 보낸 인도 마가다국 라자그리하의 산 이름을 한자식으로 번역한 것으로 영축이라고도 읽는다.

 

모든 진리를 회통하여 중생을 제도한다는 통도사 현판이 걸린 일주문 앞까지 걸어가면 좌우 기둥에 쓰인 불지종가 국지대찰 글씨가 보인다.

법광 스님이 쓴 <선객>에 통도사 스님의 자기 도량 자랑이 나오는데 이러하다. “저희는 지난해 동지 때 가마솥의 팥죽을 젓기 위해 나룻배를 타고 수평선 너머로 간 스님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p26. 자료에 의하면 원나라 사신들도 고려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진신 사리탑이 있는 적멸보궁에 참배했다고 한다. 이웃 나라에 알려진 만큼 고려 말에 왜구들은 두 차례나 통도사에서 부처님 사리를 가져가려 했고 조선시대에는 한때 사리를 약탈당했으나 천신만고 끝에 찾아왔다고 한다.

 

p32. “형상은 세간법이고, 법계는 무상법이에요. 몸은 세간이지만 자세히 보면 법계예요, 중생은 법계를 모르고 형상만 봐요. 보이는데 보이는 것이 없어. 들리는데 들리는 것이 없어. 거울의 그림자처럼 드러나는 것이 법계예요. 넓고 넓은 바다에 많은 그림자가 비치는데 바닷속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없어요. 물뿐이야. 물속에 별이 보이는데 별이 아니라 물이고, 해가 보이는데 해가 아니라 물이에요. 일체 만물이 지혜의 바다에 비친 그림자인데 중생은 미혹해서 그림자만 알고 마음인 물을 몰라. 우리 마음의 물에 비친 그림자는 아무리 큰 것도 작은 것도 그림자일뿐 자체가 없어요. ”

 

p41. “인간은 구하다 구하다 죽어요. 기러기는 날다가 날다가 죽어요. , 명예, 사람, 건강, 어떤 것을 구해도 남는 것이 하나도 없어. 그러니 다음 생애 또 구해요. 생사윤회야. 중생은 구하는 데 머물고 부처님은 깨닫는데 머물러요.”

 

p53. 지눌이 혜심을 알아보았듯이 인석 스님도 사람을 알아본다. 모든 생명은 육도 윤회를 하는지라 동물보다는 식물, 식물보다는 패류가 영이 낮고 전생에 동물로서 윤회한 사람은 지능이 낮고 착하다고 들려준다. 대부분의 동안들은 천상에서 떨어진 사람인데 언젠가 초등학교 교사인 어머니와 함께 온 동안의 여대생을 원주실에서 맞고 인석 스님의 동공이 벌어졌다. 영이 맑기가 바로 천상에서 떨어진 사람 같았다.

 

p55. 수처작주, 어느 곳을 가든 주체가 되리라.

 

청나라 순치 황제의 출가시가 그의 마음을 굳혔다.

곳곳이 수행처요, 쌓인 것이 밥이거늘/ 대장부 어디 간들 밥 세 그릇 걱정하랴.”

 

p56. 프로적인 사고로 일을 하려 하지만 차 타는 시간이 쉬는 시간이 될 만큼 몸이 피곤한 것도 사실이다. 그럴 때면 눈을 감고 검은 묵과 다크의 느낌이 왜 다른가를 생각한다. 누가 다크 초콜릿을 가져와서 다크란 단어가 머리에 박혔다. 묵이 강이라면 다크는 강가의 바위다. 묵이 선()이라면 다크는 정()이다.

 

p65. “당신에게 사막이란 무엇일까, 중사여, 그것은 당신 쪽으로 끊임없이 걸어오는 신이었다. (....) 사막은 우리에게는 무얼까? 그것은 우리 속에서 생겨나는 무엇이다. 우리 자신에 관해 우리가 배우는 그것이다.”

 

p68. 해인(海印)이란 아름다운 이름도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대승 경전의 최고봉으로서 동양 문화의 정수라고 일컬어지는 <화엄경>에 나오는 해인삼매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인이란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한없이 깊고 넓은 바다에 비유하여, 거친 파도 곧 중생의 번뇌 망상이 비로소 멈출 때 우주의 참된 모습이 그대로 물속에 비치는 경지를 말한다. 이것이 부처님의 깨달음의 모습이요 오염되지 않은 무구한 우리 중생의 본디 마음이다.”

 

p80. 말로 들으면 평범한 일 같지만 행자 일이 결코 만만하지는 않다. 세속의 습관을 버리고 중물 들이기의 시작이므로 하심이 먼저 요구된다. 시선을 밑으로 내리고, 오른손을 왼손 위에 얹어 모으는 차수 자세도 행자가 지켜야 할 하심 사항이다. 중노릇 모든 것이 행자 기간과 강원 교육까지 5년 동안에 형성되므로 중요한 만큼 엄하다. 사찰 중에서도 해인사 행자 노릇이 가장 힘들기로 꼽히는데 군대로 치면 해병대고 인원도 가장 많아서 전국 절의 행자들이 모여 집체 교육을 받을 때면 으레 해인사 행자가 반장을 맡았다.

 

p90. 선일 스님의 법문대로 철마다 철마다 우린 모두 곧 떨어질 꽃처럼 살고 있다.”

 

p107. “부모가 돌아가실 때도 울지 않았지만 우리 스님이 돌아가실 땐 울었어요. 나고 죽음이 없으니 무상하다는 건 알지만 정이란 게 고약스러워. 이치는 알지만 상좌를 떠나보내니 육신을 가진 마음이 미어져요. 논리적으론 불생불멸이나 가슴이 아프고 허전한 정. 부처님이 돌아가실 때도 산천초목이 울었고 오백아라한이 슬피 울었어요. 이치만 알아서는 냉혈이 돼요. 이치도 알고 감정이 풍부해야 자비가 생겨요.”

 

p119. 절망에 휩싸인 여인은 옷이 훌러내린 줄도 모르고 광녀처럼 돌아다니다가 부처님이 계신 곳까지 왔다. 사람들이 뒤에서 몰아내려고 하자 빳따짜라야하고 부처님이 부르셨다. ’빳따짜라옷이 풀어진 채 다니는여인이다. 부처님의 부름에 여인은 그제야 정신이 들어 황급히 천으로 몸을 가리고 자신의 고난을 호소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걱정하지 말라, 그대가 그대의 안식처이고 피난처이며 귀의처이다. 너 자신을 섬으로 삼아라.“ 맨 마지막 말씀이 바로 팔리어로 아따 딧빠.

 

중생심의 너 자신, 탐진치의 자신을 섬으로 삼으라는 말이 아니에요. 몸에서 몸을 관찰하고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는, 그러한 수행을 하는 너 자신을 섬으로 삼으라는 말씀입니다. ”

 

p125. “ -띠라는 팔리어가 있어요. 기쁨이라는 뜻이에요. 수행은 기쁨이 있어야 가능해요. 수행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삐-띠예요. 기쁨을 알면 더 큰 기쁨을 알고 싶고, 기쁨이 있어야 진보가 있어요.”

 

p127. 스리랑카에서 돌아와 한 첫 법문은 자애경(멧따수따)이었다. 자애경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팔리어 구절이 있었다. “모든 생명 모두 다 행복하여지이다!”

 

p132. 몸 받은 생명, 몸 없는 존재까지,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멀리 있거나 가까이 있거나

숨 쉬는 이라면 누구라도 모두 다

모든 생명 모두 다 행복하여지이다!

 

삽베 삿따아 바완뚜 수키땃따아!

 

p178. 간경 시간에 <금강경> 5장의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구절을 외우는데

환희심에 눈물이 났다.

 

p185. 울란바토르는 붉은 영웅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울란바토르에 가보았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일이었다. 특히 나처럼 아름다운 지명에서 살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대단한 일이었다고 자서전에 썼다.

 

p210. 지구 산소의 기원인 시아노박테리아가 자라고 있는 남호주 샤크베이의 스트로마톨라이트라는 암석 덩어리에 대해. 35억 년 전 생명의 시원을 담은 살아 있는 화석이 지금도 산소를 보글보글 내뿜으며 샤크베이 해멀린폴 바닷가에 펼쳐져 있다고.

 

p224. 실크로드 답사 때도 버스에서 법성게를 강연하며 우보익생만허공, 중생수기득이익을 강조했다. “진리가 비처럼 쏟아지는데 중생은 자기 그릇만큼만 가져갑니다. 제발 그릇 좀 넓히세요라고.

 

p233. 물과 바람이 만나 생기는 파도라는 현상. 파도는 본연이 아니다. 파도처럼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상념들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인위적이다. 포도주도 칭찬을 들으며 마시면 더 향기롭고 화날 때 마시면 쓰다. 인위적인 염심이 없는 것이 자연이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는 말했다. “나는 생각할 줄 압니다. 나는 기다릴 줄 압니다. 나는 단식할 줄 압니다.”

 

지상의 수많은 생물 중 인간만이 깨달을 수 있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깨달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이것이 천상천하유아독존의 뜻이다. 아란 인간의 생명을 가리킨다.

 

p243. 사회학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불교는 사회운동이다. 화공 스님은 2014년에 펴낸 저서 <유마경과 이상향>에서 불교의 종교 사회학적 측면을 강조했다. “붓다의 제행무상과 제법무아의 가르침은 카스트제도의 근간을 이루는 아트만(자아의 본질, 영혼) 사상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문화 혁명이었다.” 이 세상에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은 없으며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운명을 살아야 할 주체(영혼, 자아)도 없다는 것. 카스트라는 고정관념의 허구를 밝힘으로써 인류 최초의 노예해방을 일으킨 개념이다.

 

p245. 사바세계란 참고 견디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세계를 말한다. 천재지변, 길흉화복은 언제든 찾아오고 나가지만 주인공이 중생이다 보니 고통스럽다. 중생인 우리는 무엇으로 고통 받나? 고통의 주체는 마음이다. 인도인들은 마음의 형태를 관했고, 불교는 마음을 연구한 것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내 마음의 진정성은? 견성이란 마음을 들여다보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원인 구명하여 번뇌를 정화시키는 것. 우리 마음속에 온갖 번뇌 망념이 파도처럼 일렁이는데 탐욕, 분노, 어리석음이라는 원인을 제하니 실체가 없는 공이더라. 무어든 담을 수 있는 장이더라. 그것이 여래장이다. 심즉불. 인간의 마음이 곧 부처이니 둘이 아니다. 한 발을 내딛음으로써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간다. 즉사이도다. 번뇌즉보리. 번뇌가 곧 깨달음이다.

 

p246. 원리 자체를 무시하는 사회에서 고통을 겪었지만 직심이 정토라는 <유마경>구절을 명상했다. 사바세계가 얼마나 삐뚤어져 있으면 곧은 마음을 가지는 것 자체가 바로 정토(부처가 사는 청정한 국토)라고 할까. 중생이 얼마나 왜곡되게 살면 직심의 소유자가 바로 보살이라고 할까.

 

흔히 민주주의를 다수결과 연결시키지만 진정한 민주주의는 다수라는 양이 아니라고 스님은 강조한다. 민주주의는 다수가 아니라 옳은 길로 가는 것이다. 집단이 개인에게 작용하는 힘이 개인이 집단에 미치는 영향보다 더 크게 작용할 때 그 사회는 하강이나 타락이 일어난다고 한 슈바이처의 말을 경청하자고.

 

p250. 더 이상 노력할 길이 보이지 않으니 할 일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을 마쳐도 될 것 같았다. 폭포 가까이 걸어갈수록 가슴을 에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토록 슬픈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누굴까, 나보다 더 슬픈 놈이 있네. 나이아가라 폭포에 거의 다가갔을 때야 그 슬픈 놈이 누구인지를 알았다. 그건 지구가 우는 소리였다.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무섭게 때리는 소리가 세상 어디 있을까. 아픈 지구가 흐느끼고 있었다. 자신보다 더 슬픈 지구 앞에서 수행자는 가만 돌아섰다.

 

산천초목도 한다는 무정설법이었다. 명망 있는 선사를 시험하러 갔다가 도리어 당하고 정신없이 마을 타고 가다 계곡의 물소리에 돌연 깨달아 오도송을 읊은 소동파.

절망적으로 갈구한다면 깨달음을 얻으리라.

 

p. 266. 자로가 공자의 원을 듣기를 청하자 공자가 말씀하셨다. 노자안지 붕우신지 소자회지.

어른은 공경하여 편안하게 하고 친구에게는 믿음을 주고 아랫사람은 품어준다. 이것이 유교의 진리다. 평이한 말 같지만 엄청난 힘이 있는 소리다. 여기서 내 문제를 다 해결했다.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걸 알아버렸다.”

 

p.268. 종표 스님은 거경궁리에 대해 자주 말한다. 경에 머물고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라. 경은 우리가 천지로부터 태어날 때 가지고 온 프로그램이라 인류가 다 갖추고 있다고 일러준다. 일체가 부처니 경에 머문다. 경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서 사물의 이치에 맞추어 노인은 공경하고 친구에게 신의를 지키고 아랫사람은 감싸준다.

 

지금 종표 스님에게 <맹자>강의를 듣는 현학 스님이 질문했다. “경이 어떻게 항상 유지됩니까?” 종표 스님은 답했다. “사상(아상,인상,중생상, 수자상)이 무너져야 한다. 젊은 현학 스님은 눈물을 흘렸다. 그만큼 고뇌를 많이 했기에 종표 스님의 말을 제일 잘 알아들었다. “너는 나를 의심하지 말라. 유가는 꿰뚫었다.”고 했다. 공자가 말한 오도일이관지였다. 종표 스님도 오십에 천명을 알았다.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02-14 0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2-14 09:16   좋아요 1 | URL
또 다시 윤회할까 두렵네요 ㅋㅋ

samadhi(眞我) 2016-02-14 2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절에 들어가는 것은 좀 어려울 것 같고(그것도 사람마다 다르겠지만요. 뭐든 의지의 문제일 것이라 여기는데요.) 머리 미는 건 생각보다 쉽습니다. ㅋㅋ 저도 마음 수련한답시고 계룡산에 들어갔다 일주일만에 머리를 밀었거든요. 머리 미는 동안에 미용사분과 즐겁게 웃었습니다. 굉장히 후련한 기분이 들어요. 사람들이 치어다봐서 좀 그렇지만.

시이소오 2016-02-14 20:40   좋아요 0 | URL
깨달음 고수들이 와글거린다는 계룡산 계셨군요. ^^

samadhi(眞我) 2016-02-14 20:42   좋아요 0 | URL
겨우 2주만에 뛰쳐나왔어요. ㅋㅋ 선배들 사이에서, ˝걔가 글쎄 머리깎고 절로 들어갔다더라.˝는 소문이 파다했답니다.

시이소오 2016-02-14 20:46   좋아요 0 | URL
ㅋㅋ 2주 있기도 힘들지 않나요? 대단하시네요^^

samadhi(眞我) 2016-02-14 20:48   좋아요 0 | URL
마음먹고 가는 사람들이라 다들 몇 개월씩 버티던데요. 제가 딸려서 못 참고 나온거죠. 마음이 허해서 벼르다 큰 마음 먹고 간 건데도 여전히 의지가 없었던 거죠.

시이소오 2016-02-14 20:53   좋아요 0 | URL
책만 있음 한 2-3년은 버틸수 있을것 같아요 ^^

samadhi(眞我) 2016-02-14 21:10   좋아요 0 | URL
그때 그리스인 조르바를 들고 갔는데 수행에 방해된다 하여 압수합디다. 그 책을 돌려받지도 못 하고 나왔는데요.(아까운 그 책 ㅠㅠ) 책 없이 면벽수행해야 해서 못 버텼는지도 모르겠어요.

시이소오 2016-02-14 21:17   좋아요 0 | URL
이 책에도 보면 스님이 작가에게 인간의 대지를 빌려달라는 일화가 나오던데
스님들은 대개 책을 못 읽나봐요? 그래도 경전이라도 읽을 수 있으면 좋을텐데
면벽수행 후덜덜하네요
제가 촛불명상은 자신있는데
벽보고 있으라면 얼마나 버틸론지 ㅋ

samadhi(眞我) 2016-02-14 21:41   좋아요 0 | URL
제가 갔던 곳은 절이 아니고 마음수련원이라는 마음닦는 단체입니다. 처음엔 가야산(경남쪽에 있는)에 있었다가 나중에 계룡산으로 근거지(?)를 옮겼구요. 말 그대로 마음 닦는 곳인데 그곳에 있는 동안 종교적 색채가 느껴져 그게 싫어 나왔습니다.
못내 마음을 버리지 못 해 뛰쳐나오고 만 자신이 한심했는데 계룡역으로 마중 나온 남편이(그땐 연애할 때) 저를 보고 씨익 웃더라구요. 그 웃음에 위로를 받았습니다.

시이소오 2016-02-14 21:44   좋아요 0 | URL
남편미소에 깨달으셨네요^^

samadhi(眞我) 2016-02-14 21:45   좋아요 1 | URL
깨닫지는 못 했고요^^. 마냥 좋았죠. 호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