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만한 눈사람 생각하는 분홍고래 3
세예드 알리 쇼자에 글, 엘라헤 타헤리얀 그림, 김시형 옮김 / 분홍고래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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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게 있어서 눈은 설렘이다.

내가 사는 부산은 눈이 적어 일 년 동안 눈 구경을 한 번도 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래서 눈이 오는 날, 아이들의 마음은 콩닥거릴 수밖에 없다.

초등학교 시절, 눈이 많이 와서 임시 휴업으로 인하여 학교 대신 동네 아이들과 손을 호호 불면서 종일 뛰어놀던 때가 그림처럼 떠오른다.

지금도 밖에 눈이 오면 하던 공부를 멈추고 아이들과 운동장으로 달려 나간다.

언제 그칠 줄 모르는 눈을 조금이라도 맞아 보기 위해서다.

눈사람, 눈싸움까지 할 수 있다면 그 날은 정말 잊을 수 없는 날이 된다.

이틀 동안 쉬지 않고 함박눈이 펑펑 내린 마을, 그 마을 아이들이 이 눈을 보고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눈이 많이 오는 것이 걱정인 어른들이 있는 곳에서도 아이들의 마음은 어느 곳이나 비슷할 것 같다.

세상에서 제일 큰 눈사람을 만들고 싶었던 아이들은 밥도 먹지 않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까지 커다란 눈사람을 만든다.

눈사람은 금세 아이들의 키를 훌쩍 넘었다.

손과 발은 꽁꽁 얼어붙고 종일 굶은 탓에 배가 고프고 목도 말랐지만 눈사람을 완성해 가는 기쁨이 더 먼저였던 아이들은 머리까지 완성한 다음 각자 눈사람에게 선물할 장식품들을 가지고 온다.

새로 산 목도리, 촌장님이 쓰는 근사한 모자, 갖가지 장신구, 할아버지가 오래 쓰신 지팡이까지 모든 것이 동원된다.

큰 구슬 두 개는 눈이 되고, 사슬 목걸이는 코가 되고, 목에는 폭신한 새 목도리를 둘러 주고, 머리에는 촌장님 모자를 씌워 주고, 마지막으로 할아버지의 지팡이를 손에 쥐어주니 세상에서 제일 큰 눈사람이 멋지게 완성되었다.

그런데, 다음 날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까마귀는 시끄럽게 울지 말 것, 배가 고프니 먹을 것을 가져 올 것, 더우니 부채질을 하고 얼음을 가지고 올 것, 머리 위에는 햇빛 가리개를 해 줄 것 등을 눈사람이 요구하고 사람들은 눈사람이 시킨 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더라는 것.

눈사람의 요구는 끝이 없고, 점점 희안해지기까지 하지만, 사람들은 매일같이 그 명령을 따르는 일이 벌어진다.

시간이 흘러 겨울이 가고 봄이 왔건만, 이 마을은 여전히 겨울이다.

해님이 봄을 맞을 준비를 하라고 사람들에게 말하지만, 사람들은 눈사람을 왕으로 모시고서는 봄을 맞기를 거절한다.

해님은 마을을 떠나고, 눈사람은 사람들의 마음에 봄이 자라지 않도록 나무를 전부 베어버리고 땅 위의 풀도 모두 뽑고 봄 제비는 멀리 쫓으라고 명령하고 사람들은 그렇게 한다.

마을은 추운 겨울 속에 있다.

옆에서 함께 책을 보던 아이에게 묻는다.

옳지 못한 일을 만나면 넌 어떻게 하겠느냐고?

“당연히 잘못이라고 말해야지요.”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아이와 달리

세상을 더 살아보니 그런 것이 쉽지 않더라는 생각이 든다.

엉터리 ‘거만한 눈사람’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사람들,

해님의 따뜻한 햇살까지 거부하는 사람들이 참 어리석어 보이기도 하지만,

어쩜 그런 모습이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은 아닐까 해서 뜨끔하기까지 하다.

잘못된 우상을 만들어 낸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하나하나 깨달아 가면서 그 우상을 깨트려야 할 텐데,

보다 못한 해님이 마을 사람들이 원하지도 않는데 따뜻한 햇살을 보내어 눈사람을 녹이고,

마을 사람들의 얼어붙은 마음까지 녹여서 따뜻한 봄을 선물한 것이 못내 아쉽다.

이 책을 통해 이란 작가의 작품을 처음 만났다.

서남아시아에 자리한 이란에도 우리나라처럼 눈이 온다는 사실이 새로웠고

책의 아랫부분에 적힌 그림같은 아랍어에도 눈길이 머문다.

‘안녕하십니까’ 대자보가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다.

우리나라 모든 이들의 마음에 안녕을 기원한다.

잘못을 잘못이라 말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가능할 때 눈사람은 녹을 것이며,

우리는 좀 더 나아질 것이다.

앗쌀라무알레이쿰!(이 책을 읽는 모든 분들의 평화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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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1-09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란에도 틀림없이 눈이 올 테지요 ^^;;;
아이와 함께 깊고 너른 넋을 헤아리셨겠어요~

희망찬샘 2014-01-20 11:26   좋아요 0 | URL
다른 분 덕분에 읽은 책이지만, 책을 읽으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어 참 좋아요.

수퍼남매맘 2014-01-15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신주 님이 인간의 감정 중 가장 중요한 두 가지로 사랑과 분노를 들더군요.
거만한 눈사람에게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 가져야 할 게 바로 분노인 듯 해요.

희망찬샘 2014-01-20 11:26   좋아요 0 | URL
스스로 노예가 되지 않기! 그리고 분노! 작은 일에 분노하지 않고, 큰 뜻에 함께 분노할 수 있어야 겠어요. 그런데, 저는 항상 작은 일에 분노하니 그릇이 참 쪼잔한 듯...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