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이브>를 오늘 집어들었다. 지지난주 주말에 가서 빌린 책인데 반납 기한 3일 남겨놓아서 부랴부랴~
2042년 대한민국에 무슨 일이?
나는 물에 공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물에 잠시 동안이라도 호흡을 멈추는 상상을 하기조차 싫다.
물 속에서 나는 적어도 자유롭지 못하고 숨을 쉰다는 것에서도 공포감을 떨쳐내기 어렵다.
헌데 내가 알고 있던 세계가 달라진다면 어떨까? 지금의 불평등은 사라질까?
초반이지만 희망적이지 않다.

지난 번에 이어 두 번째로 신청한 도서관 희망도서가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괭님 서재에서 보고 바로 신청했는데 조건에 탈락되지 않고 받을 수 있어 다행이다.
나도 그렇지만 어른들에게도 그림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사회 생활, 관계에 마음이 찌들고 병들 때 그림책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여기 등장하는 그림책 작가 중 한 명만 얻어도 수확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저주토끼>는 읽어보자 싶어 도서관에 검색해보니 다른 분이 대출중이라 예약 걸어놓고 기다렸다.
어제 대출 가능하다고 톡이 와서 이번 도서관 행은 수확이 클 듯하다.
여러 모로 사회에 목소리를 내는 작가님이라 공포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 읽어보자 생각했다.
사뭇 감상이 궁금해진다.



<인류본사> 는 아나톨리아 반도 주변에 일어난 인류의 문명을 들여다보는 책이다.
서양사에서 로마 이후에는 그곳의 땅은 존재하지만 인류의 중심에서 비켜나 있어 그동안 주목되지 않았던 점을 강조하고 있다.
수메르 이전 괴베클리 테페, 차탈회위크가 있었고 그보다는 알려졌으나 바빌로니아, 히타이트 문명이 존재했다.
차탈회위크는 앉아있는 테라코타 여인상을 통해 살펴볼 때 평등 사회를 지향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바빌로니아는 함무라비 법전 정도만 알려져 있는 듯하고 히타이트도 철기 문명을 일으킨 장본인이라는 정도만 알려져 있었다.
생각보다 쑥쑥 잘 읽히고 흥미로운 역사이다. 아직 초반이지만 남은 분량도 기대가 된다.




2.


퇴근 버스 타고 집 근처에 내려서 걸어가는데 옆지기에게 전화가 왔다. 지금 막 버스에서 내렸단다. 밖에서 먹고 들어가자고 하길래 "그래" 해서 근처에서 칼국수를 먹었다.

나는 매운칼국수 먹고 옆지기는 들깨칼국수. 

왕만두까지 시켜서 아주 배부르게 먹었다^^;







3.


워들 얘기는 한참 전에 들었던 것 같은데 해보자x2 하다가 선뜻 도전을 못했다.

이제 3번 했을 뿐인데 셋 다 성공하기는 했으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ㅋㅋㅋ

한 단어는 아예 모르는 단어였어서 흠...

원서도 읽고 하니 단어 공부에 도움은 되겠지하며 계속 이어가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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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8-04 12: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번에는 소설책이 많네요~!! 역시 칼국수는 매운 칼국수 아닌가요? ^^

거리의화가 2022-08-04 12:48   좋아요 2 | URL
앞의 세 책들은 모두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입니다~ㅎㅎ 소설책은 구매하기엔 너무 모험이어서^^
칼국수는 역시 매운칼국수죠~ 새파랑님 먹을 줄 아시는분...ㅎㅎㅎ

독서괭 2022-08-04 13: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와~ 한국의그림책작가들에게묻다 빌리셨군요! ^^ 화가님 덕에 도서관에 들어가게 됐군요. 괜히 뿌듯합니다 ㅎㅎ

거리의화가 2022-08-04 13:45   좋아요 3 | URL
ㅎㅎ 괭님 덕분에 좋은 책이 도서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읽으시면 좋겠는데 일단은 제가 젤 먼저 읽을 수 있어 좋네요~ㅎㅎㅎ

바람돌이 2022-08-04 13: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칼국수의 세계를 넓고도 무진장합니다. 그리고 다 맛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입니다. ㅎㅎ 우리 동네에 진짜 맛난 칼국수집 있어요. 신김치 싹 풀어주는데 안 매운데도 완전 맛남요. ㅎㅎ
저주토끼 재밌습니다. 다만 초반 진입장벽 있습니다. 어려운 장벽 말고 좀 썰렁한 장벽. ㅎㅎ 점점 재밌어지더라고요. ㅎㅎ

거리의화가 2022-08-04 13:50   좋아요 2 | URL
바람돌이님 동네 칼국수 맛집 궁금합니다~ㅎㅎ 언제 한번 인증샷 올려주세요~ 말씀만 들어도 군침이 돕니다ㅋㅋㅋ
저주토끼 썰렁장벽이라니ㅋㅋㅋ 그래도 점점 재밌어진다니 감안하고 보겠습니다^^

책읽는나무 2022-08-05 00:14   좋아요 2 | URL
저는 <변기> 편 읽고 며칠 화장실 갈 때 좀 무서웠어요.
이 단편도 초반에 있었는데 썰렁장벽??ㅋㅋㅋ
저는 <몸하다> 기이하면서 재밌었어요.

단발머리 2022-08-04 13: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김치만두에 완전 띠용! 맛있겠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저주토끼 읽고 싶은데 읽고 나서 못 빠져나올거 같아서 걱정입니다. 어쩌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거리의화가 2022-08-04 13:54   좋아요 1 | URL
이 집 체인점인지 체크를 못했네요. 어쨌든 만두 맛있었습니다. 김치만두 안에 든 김치가 원래 칼칼해야 좋은데 딱 제가 생각하던 칼칼함이었어요~ㅎㅎ
저주토끼 도서관에서 인기 많더라구요. 대기하느라 좀 걸렸습니다ㅋㅋ 미리 걱정하기보다는 도전해보시죠!ㅎㅎㅎ

청아 2022-08-04 14: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칼국수에 겉절이 먹고 싶네요 ^^ 저도 열심히 도서관에서 업어온 책들 잘 갖고있다가 반납기간 가까워지면 읽곤 해요 ㅎㅎㅎ
<다이브>가 궁금하네요. 아름다운 판타지가 필요한 대한민국!ㅎㅎ

거리의화가 2022-08-04 14:18   좋아요 2 | URL
도서관 책들은 그런가봐요ㅎㅎ 칼국수엔 겉절이죠. 신김치보다는 겉절이를 좋아하는데 여름이라 김치가 빨리 익어버려서 아쉬운 계절이에요 요새 배추값이 많이 오르기도 했고요ㅠㅠ
<다이브>는 얇아서 오래 걸리지는 않을듯합니다ㅎㅎㅎ

프레이야 2022-08-04 16: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보다 왕만두가 띠용 눈에 들어옵니다 ㅎㅎ
김치왕만두 최고! 매운칼이랑 딱이네요
오늘은 완전 화창합니다 여긴.

거리의화가 2022-08-04 17:06   좋아요 2 | URL
여기도 어제 출근때까지 비가 오더니 이후 개어서 오늘은 아주 쨍쨍하네요^^ 김치왕만두 넘넘 맛있었어요. 저도 고기만두보다는 김치만두를 좋아합니다. 매운칼국수랑 김치왕만두 조합이 최고인 듯해요~ㅎㅎ

레삭매냐 2022-08-04 16: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우 매칼에 만두라~

고저 침이 꼴깍 넘어가네요.

거리의화가 2022-08-04 17:08   좋아요 2 | URL
맛있어 보이죠~?ㅎㅎ 제가 애정하는 조합이에요. 저녁 시간 얼마 안 남았는데 맛난 거로 챙겨드세요^^

scott 2022-08-04 22: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들깨 칼국수!
보다
만두!에 눈이! @^^@

만두 갯수가 부족 합니다
화가님 남편분
따숩^^

거리의화가 2022-08-05 09:04   좋아요 1 | URL
왕만두라 2개씩 먹으니 배불렀어요~ㅎㅎㅎ
옆지기는 제게 과분한 사람이죠^^ 제가 너무 무뚝뚝해서 표현을 더 많이 해야 하는데 늘 생각합니다ㅋㅋㅋ

책읽는나무 2022-08-05 00: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들깨 칼국수 최애 메뉴라 늘 그거 시켜먹는데..아!! 배고파요ㅜㅜ
만두는 김치 만두!!!@.@
며칠 전부터 뜨끈한 칼국수 먹고 싶었는데 막상 밖에 나가면 넘 더워서 시원한 걸로 먹자!! 변경해서 밀면,냉면, 물회로 먹게 되더라구요.
칼국수 먹으러 가야겠습니다^^

거리의화가 2022-08-05 09:06   좋아요 1 | URL
ㅎㅎ 들깨 칼국수 고소해서 저도 좋아해요~ 저는 여름에도 찬 음식을 잘 먹지 않아서 주로 뜨거운 거 호호 불어 먹으면서 더위를 견디는 것 같아요ㅋㅋ 칼국수 맛나게 드시길!
 
조선총독부박물관과 식민주의 - 식민지 역사의 재현과 문화재 관리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2
오영찬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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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이전의 역사는 어떠했을까. 과거의 유물이 일부는 이왕가 박물관으로, 조선총독부박물관으로 옮겨지는 동안 역사는 빠르게 변화하였다. 

종종 국립중앙박물관을 찾곤 했다. 상설전시장은 물론이고 특별전이 있을 때면 1년에 한 두번 정도는 먼 걸음이지만 찾아가 보았다. 지금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박물관에서 평일 수요일 낮에 무료 강의를 열기도 했는데 그것도 몇 차례 들었었다.

전국의 많은 박물관이 있지만 국립중앙박물관은 특히 대한민국 이전의 많은 유물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식민지에도 박물관이 설립되었다. 그 배경은 무엇일까. 선전과 홍보에 최적화된 탓일 것이다. 근대화의 바람을 타고 서구 문명이 최고라고 선전되던 때다. 자신들의 문명을 과시하면서 식민통치의 정당성과 합리성을 제시하는 장으로 박물관은 철저히 이용되었다. 식민지 조선에도 이에 부응하는 목적으로 조선총독부박물관이 세워졌다. 1915년 한일강제병합 이후 시정 5년 성과를 위한 조선물산공진회가 개최되었는데 공진회가 끝나고 난 뒤 미술관 건물을 전용하여 개관한 것이다. 총독부박물관은 경복궁 내 세워지면서 과거 왕조의 공간에 근대 공간인 박물관 건물을 세워 식민자 중심의 논리를 펼치는 장으로 이용되었다. 


이 책은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설립 과정과 목적, 조직의 운영, 박물관이 벌인 조사 사업, 시기에 따른 변화 과정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총독부박물관은 조선총독부 내의 과 단위에 소속된 하부 기구로 출발했다. 때문에 관장직은 존재하지 않았고 운영 실무 책임자는 과장 아래에 위치한 주임급 정도였다. 박물관 인력은 제국대학 출신의 주임, 전문 기술자가 하부를 맡는 이원 구조였고 조선인의 참여는 배제되었다. 


총독부박물관을 설립하는 데는 초대 총독인 데라우치 마사타케의 역할이 컸다. 그는 총독 재임 기간 중 조선에서 많은 문화재를 수집하였는데 그가 수집한 유물은 1916년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초기 주요 컬렉션으로 자리매김할 정도로 양이 많았다. 데라우치가 박물관 설립을 결정하고 추진하는 데 영향을 끼쳤던 인물은 미술사학자인 오카쿠라 덴신, 역사학자 도쿄제대 구로이타 가쓰미, 건축사학자 도쿄제대 세키노 다다시이다. 실무자로는 오다 미키지로와 바바 제이치로가 총독부박물관 설립과 운영을 주도했다. 


총독부박물관 초기 전시물은 식민지 조사사업으로 이루어진 물품과 조선주차군사령부에서 받은 조선의 재래 병기, 데라우치 총독의 기증품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총독부박물관 상설전시는  재질별 전시에서 출발하여, 1921년 고대사 전시부터 시대사 전사가 이루어졌고 1926년이 되면 시대별 전시로 완전히 정착되는 흐름을 보인다.


조선에서 이루어진 문화재 조사사업은 고적조사라는 이름으로 조선총독부 통제 하에 이루어졌다. 고적조사란 식민지배를 위한 조사의 일환이자 식민지 문화재의 보존과 관리의 성격을 지녔다. 고적조사는 여러 부서에서 개별적이고 산발적으로 시행되었는데 1920년대 초반을 기준으로 제국대학 교수 주도에서 재조 일본인 주도로 주체의 변화가 일어난다. 고적조사는 총독부박물관의 주요 사업이었지만 재정난으로 인해 민간 모금을 통한 조사가 이루어진 경우도 많았다. 


1920년대 이후가 되면 박물관에 대한 확장 논의가 일어난다. 일제의 정당성 확보의 선전을 확보하고 박물관의 기능과 역할을 확대하기 위한 필요성이 높아진 탓이다. 결국 확장 계획은 1935년 시정 25주년 기념사업으로 추진된 종합박물관 건립계획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태평양전쟁의 시작으로 박물관 소장품조차 공출의 대상이 되면서 확장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전쟁 피해 방지를 위한 박물관의 대응책 마련에는 일제와 조선 간의 차이가 있었다. 일본은 전쟁 피해로부터 박물관과 문화재 보호를 위해 적극적 대책을 마련하고 실행에 옮겼으나 조선 총독부와 행정 관료들은 소극적 태도를 취했고 오로지 박물관 식무 직원들의 노력에 의존하였다. 총독부박물관은 일본 제국대학 교수를 비롯한 일본인들의 전유물이었고 조선인 직원들은 초기에 일시적으로 차출되거나 1930년대 이후에는 말단으로 행정 보조 업무에 종사할 수 있을 뿐이었다. 당시 문화재 뿐 아니라 보호시설에 설치된 금속도 회수당하였고 사찰 문화재의 공출 피해도 컸다. 국내에서는 아직 일제 말 금속 공출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는데 이는 심각한 전쟁 범죄이므로 반드시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총독부박물관 관람은 1937년 이전까지는 일본인 관람객이 많았고 이후에나 조선인 관람객이 급증한다. 이는 학교를 중심으로 한 단체 관람이 늘어났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초기에 조선인 관람객이 적었던 이유는 박물관 관람 문화가 생경했던 이유도 있겠지만 식민권력이 만들어낸 장소에 대한 의구심과 거부감도 존재했을 것으로 보인다. 


총독부박물관 주변에는 조선에서 생산된 고적조사의 결과를 자체적으로 소비하던 소수 계층이 존재했다. 일본 제국대학 교수와 총독부박물관을 중심으로 한 관변 고고학과는 다른 경성제대에 있었던 민간 학자들 중심의 경성고고담화회가 그것이다. 경성고고담화회가 나올 때쯤이면(1941년 이후) 관변고고학에서 축적된 고고학 지식이 유통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 단, 이는 폐쇄적 성격을 지닌 단체였다. 여기에 참여한 조선인 김재원은 해방 후 국립박물관 관장을 맡게 되고 한국의 박물관계를 주도하게 된다. 김재원은 해방 이전 박물관 주임을 맡은 아리미쓰 교이치 등과 교분 관계를 유지하면서 인맥을 넓혔다.


꼭 기억해야 할 인물 두 명을 소개한다.


먼저, 구로이타 가쓰미다. 그는 일본 고문서학 체계를 수립하고 문화재의 보존과 조사에 지대한 역할을 한 도쿄제대 교수로, 일본 역사학계의 거물이다. 그는 1912년부터 국립박물관에 관한 구상을 강력히 펼쳐 박물관과 고적조사사업 및 보존관리가 하나의 기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다. 1915년부터는 한반도 고적조사에 관여하기 시작했고, 1916년 고적조사위원회를 발족시키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1922년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인 아리요시 주이치와 대학 동창의 인연으로 조선사 편수작업을 진두지휘했다.


두 번째는 후지타 료사쿠다. 그도 도쿄제대 출신으로 1922년 조선총독부 고적조사 사무 촉탁으로 부임한 후 1923년이 되면 박물관 주임으로 임명되어 박물관 운영에 대한 실질 책임을 맡게 된다. 1926년 6월 경성제대 법문학부 조교수로 임명되었지만 촉탁 신분으로 박물관 주임직은 이후에도 계속 유지한다. 1932년이 되면 경성제대 조선사학 제1강좌를 맡게 되는데 이는 1945년까지 이어진다. 


둘은 조선 총독부박물관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책임진 핵심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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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8-02 13: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YS 가 여러 실정을 했지만,
조선총독부 폭파 및 철거 진행
한 것 하나만큼은 속이 다 시원
했습니다.

거리의화가 2022-08-02 13:45   좋아요 2 | URL
그때 국민들의 열망이 컸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그때 크게 관심도 없었고 잘 모르던 때여서 감정이라는 것 자체도 없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생각해보면 양가 감정이 듭니다. 건물을 존치시켰어도, 폭파 및 철거시켰어도 둘 다 만족스럽지는 않은데 굳이 선택하라면 존치를 하되 자리를 옮기는 방향을 바랐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역사의 기록이니 후학 연구를 위해서라도 남겨두는 게 좋지 않았을까 싶어서요. 어쨌든 한 왕조의 정궁 안에 떡하니 있었으니 언짢기는 했죠~;;;

독서괭 2022-08-02 13: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호, 1995년에야 철거되었군요? 선전과 홍보에 최적화.. 우리 민족을 완전히 흡수해버리려던 거였겠죠? 잊으면 안 될 역사로군요. 덕분에 알고 갑니다^^

거리의화가 2022-08-02 13:52   좋아요 2 | URL
네. 그때 김영삼 정부의 역사 바로세우기 정책에 의하여 폭파 및 철거가 진행되었죠. 건물 자체가 정궁 안에 있다보니 국민들의 공분이 컸었던 기억이 납니다~ 철저히 일제는 조선 왕조의 기를 낯추면서 자신들의 우월성을 강조하려는 효과를 주기 위함이었을 겁니다.

그레이스 2022-08-02 14: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그 박물관 갔었습니다.
조금 음침하고 사람들이 없어서 으스스했던 기억이!^^;;

거리의화가 2022-08-02 16:08   좋아요 2 | URL
95년 이전에 가보신거군요^^ 왜 저는 가볼 생각을 못했을까요. 유물들은 다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으니 딱히 볼 것도 없고 건물만 덩그러니 있었을테니 음침하긴 했을것 같네요~ㅎㅎ

새파랑 2022-08-02 16: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조선총독부 박물관 건립에 저런 목적이 있었군요. 저도 저게 폭파했다는 뉴스를 어렴풋이 본 기억이 납니다 ㅋ

거리의화가 2022-08-02 16:11   좋아요 2 | URL
식민지 박물관이라면 모두 저런 목적이 깔려 있을겁니다^^ 식민 지배 체제의 선전도구로 딱 좋거든요.
저도 조선총독부 건물 폭파 영상은 어렴풋하게 기억이 납니다.

mini74 2022-08-03 2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궁궐을 떡 하니 가로막고 있던 그 건물 ㅠㅠ 요즘 미니어처로든 뭐든 새로 만든다는 소리에 뭐지? 하고있습니다. 총독부박물관의 설립이유, 문화재 공출 등에 열받지만 그래도 화가님덕에 자세히 알게 돼서 좋아요 ~

거리의화가 2022-08-04 09:15   좋아요 1 | URL
네~ 의도도 뻔히 보이고 국민들이 보면 열받을 만했죠~ 2년 넘게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하지 못했네요. 요새도 특별전 할텐데~ 날씨 선선해지면 한 번 들러봐야겠어요. 미니님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프롤로그

오리엔트의 뜻
에게해의 기원
아나톨리아 반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고대사 10대 문명
로마 이후에도 아나톨리아에는 역사가 존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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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8-03 0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나톨리아 반도
에 인류의 문명의 꽃이 !ㅎㅎ

크레타 문명!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이상의 문명 사회 였을 것 같습니다 ^^



거리의화가 2022-08-03 08:59   좋아요 0 | URL
어제 아나톨리아 문명 읽었어요~ 흥미롭더라구요. 괴베클리 테페, 차탈회위크ㅎㅎ 수메르만 대강 알고 있었는데 직접 답사까지 가신 작가님이 부럽기도 했습니다^^ㅎㅎㅎ
아나톨리아 반도 중심으로 일어난 문명의 역사를 더듬어보는 기회가 될 것 같아요.
 

#1 - 이 달에 읽은 책들



총 13권의 책을 읽었다.


<침묵>은 읽을 결심이 나지 않아 뒤로 밀리게 됐고 대신 <조선총독부박물관과 식민주의>를 읽었다.

어려웠던 책은 중국철학사(상)이었다. 하지만 읽을 만한 가치는 있었던 책이었다.

기대 이상을 충족시켜준 책은  <만주족의 역사>였고 <이욘 티히의 우주일지>는 흥미롭고 재미났던 책이었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증언이 가지는 힘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다만 이것이 실효성이 있으려면 학문적으로나 제도적으로 각고의 노력이 이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토지> 1권은 오디오북으로 완청했다. 이제 2권 째를 듣고 있는데 꾸준히 들어서 시리즈를 완청하는 것이 목표다.



#2 - 8월에 읽을 책들



8월은 벽돌책 독파 기간으로 삼았다.

그동안에도 벽돌책을 많이 읽어서 딱히 독파 기간이라고 하기에는 뭣하지만 그래도 이번엔 많이 두꺼운 책들이긴 하다.

휴가가 포함되어 있는지라 읽을 시간이 더 확보되었으니 충분히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3 - 이 달의 사건

매 달 특별한 사건을 뽑는 습관이 있었는데 요사이 정리를 잘 못한 것 같아서 다시금 시작해보려 한다.


자우림 25주년 기념 콘서트에 다녀왔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참으로 오래간만의 서울 나들이이자 내적 흥을 외부로 분출할 수 있는 기회였다.

가수와 함께 나이를 들어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콘서트장에 있으면서 참 행복했던 것은 오래도록 그들이 음악을 멈추지 않고 앨범을 내고 노래를 불러준다는 것, 그리고 내가 그 자리에 함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시간이 부디 더욱 오래가길 소망했다.



추가)

주중에 찍어둔 사진이 있었는데 북플 아이폰앱에서는 사진이 잘 추가가 안되어서 계속 올리지를 못했다.

이런 풍경을 보는 것이 요즘은 또 하나의 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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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07-31 17: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님 벽돌책도
거뜬히 읽어내시는 모습 항상 부럽습니다*^^* 저는 여태 많아야 서너권? 정도 읽어본거같아요.
8월에는 화가님따라 한 권 클리어해볼래요!! 저녁맛있게 드세요😊

거리의화가 2022-07-31 20:17   좋아요 3 | URL
두꺼운 책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심호흡이 필요하긴 하지만요. 알라딘 서재에 워낙 다양한 분야로 많은 책들을 척척 읽어내는 분들이 많으셔서 전 명함 못내밀것 같아요ㅋㅋ 임신중지를 제외하곤 제가 주로 읽는 역사 분야의 책들로 잡았습니다. 미니님의 벽돌책 읽기도 응원할게요! 저녁은 맛나게 드셨는지요^^ 저는 맥주와 문어버터구이 먹었습니다. 남은 저녁 편안하게 보내세요!

얄라알라 2022-07-31 19: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코스모스가 가을에 피는 꽃이라고 생각해온 저는,
어린시절 코스모스 늘어서 핀 도로변을 조깅했던 기억(가을이라 생각한)을 믿지 못하겠네요.
여름 꽃이었군요??

7월에 밀도 높은 책들로 13권.
8월에도 <임신 중지>만 해도 하루를 꼬박 써야 읽을 수 있는 빡빡한 책인데 여럿 읽으시는 거리의화가님은 진정 앎의 즐거움을 누리시는 분^^ 응원드립니다

거리의화가 2022-07-31 20:12   좋아요 3 | URL
ㅎㅎ 그러게요 저도 코스모스보고 놀랐습니다 심지어는 잠자리가 날아다니더군요 오늘 오전 산책하면서 찍었습니다ㅎ
임신중지가 오히려 제겐 어려운 책일 것 같습니다. 저는 임신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서; 흐흐 알라님 응원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2-07-31 20:0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와우 13권~!! 대단하십니다~!! 화가님 좋은 동네 사시는군요 ^^ 8월에도 기대가 됩니다~!!!

거리의화가 2022-07-31 20:14   좋아요 5 | URL
ㅋㅋ 좋은 동네라고 하니 뭔가 갸웃하게 하기도 하고요. 좋은 동네인가?ㅎㅎ
새파랑님의 8월 독서 생활도 응원합니다!^^*

scott 2022-07-31 22: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화가님이 포착 하신 사진 속 풍경에서
열탕 같은 습도와 무더위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가을이 가깝게 느껴지능!
8월 휴가
멋지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

거리의화가 2022-08-01 09:03   좋아요 2 | URL
ㅎㅎㅎ 사진만은 그렇죠? 코스모스 피어 있는 사진은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열대야로 기온도 높고 습도까지 높아서 말 그대로 사우나 같았어요ㅠㅠ 그래도 코스모스 보니 가을이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에 잠시나마 기분 좋더라구요!ㅎㅎ
스콧님도 8월 활기차게 시작하세요~*^^*

막시무스 2022-07-31 23: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자우림 콘서트 너무 부럽습니다!ㅎ 8월의 벽돌 격파하기 응원할께요!ㅎ

거리의화가 2022-08-01 09:04   좋아요 2 | URL
막시무스님 콘서트 다시 생각해도 참 잘 다녀온 것 같아요. 역시 혼콘의 맛이 좋고요~ㅎㅎ
8월 독서 생활 저도 응원합니다~^^*

희선 2022-08-01 02: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벌써 코스모스가 많이 피었군요 언제부턴가 코스모스가 여름에도 보였어요 제 때 피면 좋을 텐데... 봄꽃도 예전보다 빨리 피기는 하는군요 하늘 멋지네요 더워도 하늘이 멋지면 좀 괜찮지요 거리의화가 님 이달에 책 즐겁게 만나시기 바랍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2-08-01 09:06   좋아요 3 | URL
코스모스 보니 잠시 초가을인가 착각을~ㅎㅎ 요새는 꽃들도 한꺼번에 피었다 지는 듯 싶어요. 특히 봄꽃은 더 그런 듯 싶구요. 몇 년전 봄에 창덕궁에 갔었던 적이 있었는데 꽃들이 그때 한꺼번에 피어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후원해설사 분도 놀라더라구요. 기후변화를 실감했던 기억이 납니다ㅠㅠ
지난주 하늘 보는 맛은 좋았어요. 많이 덥긴 했지만요~ 이번주는 태풍 때문인지 흐리게 시작하네요. 희선님도 8월 즐거운 독서 생활 되시길 바랍니다^^

바람돌이 2022-08-01 13:3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8월도 만만치 않은 책들이 포진해있군요. 하나같이 관심가는 책들인데 왜 저는 읽기가 요원한지... ㅠㅠ 지금 저희 집앞 공원에도 코스모스가 피기 시작했어요. 예전 어릴때는 분명히 가을에 피었는데말이죠.

거리의화가 2022-08-01 15:35   좋아요 3 | URL
관심가는 책들이 부피도 얇으면 얼마나 좋을까요~ㅎㅎㅎ
요새 꽃 개화 시기 패턴이 달라진 모양입니다. 그곳도 이제 피기 시작했군요~ 핀 김에 가을이 오면 좋겠어요. 바람돌이님 이번 달도 즐거운 독서 생활 되세요!

레삭매냐 2022-08-01 15: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와 벌써 코스모스의 계절이 되었군요 :>

콘서트 관람, 멋지십니다!!!

8월의 벽돌책 격파 기대합니다 화이팅~

거리의화가 2022-08-01 16:40   좋아요 2 | URL
코스모스...가 2주 전부터 조금씩 피더니 지난 주말에는 저렇게 한가득 피었더라구요. 이리 더운데 너무 일찍 나온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콘서트 한살이라도 더 먹기 전에 체력이 있을 때 다녀야 합니다. 나중에는 힘들어서 못 다닐수도;;;ㅎㅎㅎ

감사해요. 매냐님 8월 독서 저도 응원합니다^^

라로 2022-08-01 17: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코스모스 이렇게 일찍 피다니 이상해요. ㅎㅎㅎ 예전엔 9월이 넘어야 보였는데… 하늘하늘 아주 예뻐요. 그름도 멋지고요!! 노을이 배경이라 더 멋져요. 어려운 책 많이 읽으시는 거리의화가님!!

거리의화가 2022-08-01 17:27   좋아요 1 | URL
그쵸. 요새 꽃 시기들이 다 엉망인듯해요ㅠㅠ 9월부터 보여야 맞는건데~ 흠...
지난주는 날이 맑아서 저런 하늘이 자주 보였어요. 날씨는 무진장 더웠는데 그래도 하늘 볼때만큼은 좋더라구요. 퇴근 때 딱 저렇게 해 질무렵이어서 노을을 보는 맛도 좋았습니다.
라로님~ 감사해요^^

mini74 2022-08-01 22: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코스모스 사진에 저도 놀란 ~계절감과 상관없이 참 예쁘네요 사진이 *^^* 화가님 역사며 철학책 척척 읽어내시는 모습 👍 8월 벽돌책 독파 파이팅입니다 !

거리의화가 2022-08-01 22:24   좋아요 1 | URL
미니님 코스모스 보니 계절이 앞서 와 있는 것 같지 않으신가요?ㅎㅎ 정작 저는 미니님을 닮고 싶습니다. 다양한 책을 척척 읽으시잖아요~ㅎㅎ 동양 철학사 책은 저도 이번에 처음 읽어요. 물론 논어, 맹자는 인강을 통해서 들었지만~ 참 진도는 안나갑니다ㅎㅎ
미니님의 8월 독서 리스트도 궁금합니다^^ 멋진 독서생활 되시길 기원해요~
 
중국철학사 -상 - 완역판 까치글방 154
풍우란 지음, 박성규 옮김 / 까치 / 1999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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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랜동안 역사를 읽어오면서 자국의 역사 뿐 아니라 이웃 나라인 중국과 일본에 대한 역사를 공부해야겠다 마음먹었던 기억이 난다. 구체적인 계기는 생각이 안나지만 아마도 차곡차곡 필요성이 누적된 것이라 여겨진다. 

이 책을 도전하기로 했던 이유는 결국 그것에서 출발한다. 중국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결국 사상가들, 즉 철학자들에 주목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이 중국사, 나아가 한반도와 일본 등지에 끼친 영향이 크고 심지어 이들은 동양 사상을 대표한다 여겨지기도 한다. 때문에 이들을 공부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인 풍우란은 20세기 중국을 대표하는 철학자로 특히 이 책을 펴냄으로 인해 큰 족적을 남겼다 할 수 있다. 무려 27쇄다. 지금은 더 추가됐을 수도 있겠다. 한 권의 책이 20쇄가 넘어가도록 꾸준히 읽힌다는 것은 정말 가히 놀라운 일이다. 


저자가 사료를 선택한 기준은 다음과 같다. 

- 토론한 내용이 철학에 존재하는 문제들의 범위 내에 있는 것

- 새로운 “소견”이 들어있는 저술

- 철학자의 소견, 즉 중심 관념이 있는 것

- 이지적 논변으로 표출된 것

- 한 철학자에 관한 서술 가운데 인격을 드러내는 것

이렇게 선택한 자료를 헤겔의 정반합 관점과 연결시켰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정은 전통적 견해, 반은 실증을 찾을 수 없는 경우, 합은 실증은 찾을 수 없지만 상당수 발생원인이 있다고 여겨지는 경우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사상의 기초 저작을 싣고 저자의 견해를 밝힌 것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독자가 비판적으로 읽는 지혜가 필요하다. 관심이 가는 저작이 있다면 원전(또는 번역본)을 찾아 읽는 것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철학이라는 용어는 서양에서 온 것이다. 중국 철학은 논증의 측면에서 서양 철학에 비하여 뒤떨어진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중국 철학자들은 지식을 위한 지식 추구를 하지 않았을 뿐 철학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중국인의 사상 속에는 한번도 "아"에 대한 뚜렷한 자각이 없었기 때문에 역시 한번도 "아"와 "비아"가 뚜렷이 분리된 적도 없었고, 따라서 인식의 문제(협의의)는 중국철학에서 한번도 큰문제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 철학자는 논변하지 않으면 몰라도 변한다면 반드시 논리학을사용해야 한다고 이미 말했다. 그러나 중국철학자들은 대체로 주장을 수립하는 데에 진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났다가 금방 사라진이른바 명가(名家)를 제외하고는, 사상과 논변의 과정 및 방법 자체를 의식적으로 문제시하거나 연구한 사람이 드물었다.

중국철학자는 또 인간사를 특별히 중시한 까닭에, 우주론에 대한 연구 역시 매우 간략했다. - P11


춘추시대부터 한나라 초에 이르기까지 중국역사는 정치, 경제, 사회 모두에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하며 해방의 시대(자학시대)를 맞았다. 봉록의 세습과 정전제가 무너지면서 서민이 사유재산을 획득하면서 부호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공자는 이전 제도가 무너져 가던 시기 등장하여 구제도를 옹호하기 위해 나선다. 이후 유가 학파가 공자의 사상을 계승한다. 자학시대는 전국시대 말이 되면 끝난다. 한 무제(140-87B.C.) 때 재상인 동중서는 공자를 숭상하며 유학을 제도권의 학문으로 끌어올리게 된다. 이 때부터 공자는 신이 되고 유가는 유교가 되었다. 


공자(551-479B.C.)는 중국 역사에 있어서 어떤 위치에 자리할까. 공자는 서양 철학으로 말하면 소크라테스와 비견되는 인물이라 할 것이다. 제자가 그의 사상을 정리하여 출판했다는 것도 비슷하고 사상 면에서도 유사성을 엿볼 수 있다. 공자는 주의 문화를 추종하여 주례를 잘 알았고 또 깊이 이해한 사람이기도 했다.


공자는 소크라테스와 흡사했다. 소크라테스도 원래 "소피스트였지만, 그들과 다른 점은 학생들에게 학비를 받지 않았고 지식을 팔지 않았다는 점이다.

소크라테스는(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귀납법으로써 정의(定義)를 구했고, 정의로써 우리 행위의 기준으로 삼았다. 공자 역시 정명(正名)을 주장했고, 명(名)에 대한 정의로써 우리 행위의 기준으로 삼았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도덕성을 강조했다. 공자도 인간의 "인(仁)"이 "정치담당(從政)" 능력보다 더욱 중요하다고 보았다. - P92

소크라테스 사후에 그의 학파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선양, 발전 과정을 거쳐 마침내 서양철학의 정통이 되었다. 공자의 학파도 맹자와 순자의 선양, 발전 과정을 거쳐 마침내 중국철학의 정통이 되었다. - P93


공자는 각각의 이름들에 정의가 있고 정의가 뜻하는 바는 이름이 지칭하는 사물의 본질이라고 보았다(정명론). 공자는 정명론을 통해서 당시의 혼란상을 바로잡으려 했다.


공자는 당시에 이름이 바르지 못해서 어지러워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름을 바룸으로써 당시의 폐단을 구제하고자 했다.  - P103


공자의 직, 인, 충, 서, 의, 리, 성 또한 밝혔다. 공자의 철학은 인간의 심리(마음의 도리와 이치) 측면을 매우 중시했다. 그래서 그후 유가는 모두 심리학을 중시했다.


정직이란 안으로 자신을 속이지 않고 밖으로 남을 기만하지 않고, 심중의 좋고 싫음을 그대로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 P113

인이란 우리 마음의 진실되고도 예에 맞는 발로로서, 동정심을 바탕으로 자기 마음을 미루어 남을 헤아리는 것을 말한다. - P117

"자기가 서고 싶으면 남도 세워주고 자기가 통하고 싶으면 남도 통해주는 것"이니 곧 충이다. "자기가 싫어하는 것은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이니 곧 서이다. 충과 서를 실행한다고 함은 인을 실행한다는 말이다. - P121

공자는 다섯 가지를 세상에 실천할 수 있으면 인이다고 했는데, 공손하면 남에게 모욕당하지 않고, 관대하면 많은 사람의 지지를 얻을 수 있고, 미더우면 남의 신임을 받고, 기민하면 공을 이룰 수 있고, 은혜로우면 남을 부릴 수 있다’는 것이다. - P124

"군자가 벼슬함은 자기의 의를 행하는 것일 따름인즉", "그 옳은 도리를 바룰 따름"이며, "그 도를 밝힐 따름"이다. 도가 과연 행해질지의 여부는 결과로서, "이익"이고 "공(성과)"이니, 반드시 "꾀하고" 반드시 "계산할" 필요는 없다. - P127

군자는 의리에 밝고 소인은 잇속에 밝다.

이것이 공자와 맹자의 일관된 주장이고 묵가와의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 P127


묵자(475?-396B.C.)는 묵가 사상의 중심 인물로 귀족을 반대했고 주의 문물제도를 반대했기 때문에 당연히 유가와 대척점에 있는 입장이었다. 그의 사상의 핵심은 공리주의와 겸애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주장에는 반드시 세 표준이 있다.

첫째, 그것의 근거; 둘째, 그것의 실증성; 셋째, 그것의 응용성이다. 어디에 근거해야 하는가? 위로 옛 성왕의 사적(事: 과거에 경험한 역사적 교훈)에 근거해야 한다. 어디에서 실증되어야 하는가? 아래로 뭇 사람의 이목의 실제 경험에서 실증되어야 한다. 어디에 응용할 수 있어야 하는가? 정치제도에 응용하여 국가와 모든 이익에 적중할지를 살펴야 한다."

"국가와 모든 인민의 이익"은 바로 묵자가 모든 가치를 평가하는 표준이다. 모든 사물은 반드시 쓸모가 있고, 주장(言論 : 학설)은 반드시 행할 수 있어야만 가치가 있게 된다. - P144

겸애의 도는 타인에게 유리할 뿐더러겸애의 도를 행하는 사람 자신에게도 유리하다. 즉 "타인에게 이로울" 뿐더러 "자신에게도 이롭다." 즉 순전히 공리적인 측면에서 겸애의 필요성을 증명했다. 이것이 묵가의 겸애설이 유가가 주장한 인(仁)과 다른 까닭이다. 천하의 큰 이익은 사람들이 겸애하는 데에 있고, 천하의 큰 해악은 사람들이 서로 투쟁하는 데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전쟁을 배격해야 한다. - P157


맹자(371-289B.C.)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 생각했고 호연지기를 통해 덕을 함양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공자의 사상을 계승했으나 기존의 귀족을 위한 제도를 넘어서 백성을 위한 정치/경제 제도를 시행하려 했다는 점이 다르다. 모든 정책은 인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공자를 읽을 때와 맹자를 읽을 때 태도가 달랐던 이유가 이것에서 온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인이란 "사람"이면 지녀야 할 마음이요, 의란 "사람"이면 따라야 할 길이다. 만약 "인에 거하지 않고 의를 따르지 않으면" 곧 사람이 아니다. - P204

"임금이 신하를 자신의 수족처럼 여긴다면 신하는 임금을 자신의 몸처럼받들 것입니다. 임금이 신하를 개나 말처럼 대한다면 신하는 임금을 일반인처럼 대할 것입니다. 임금이 신하를 초개처럼 취급한다면 신하는 임금을 원수처럼 여길 것입니다." - P206

인간에게 4단이 있는 까닭과 그리고 성이 선한 까닭은, 바로 성이 "하늘이 내게 부여한 것", 즉 인간이 하늘로부터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성선설의 형이상학적근거이다.

마음이 인간의 "대체(大體)"이므로 "자기의 마음을 다 발휘한 사람"은 "인간의 본성을 알게 된다." 이 본성은 바로 "하늘이 내게 부여한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을 다 발휘하고" "인간의 본성을 아는 것"은 또한 "하늘을 아는 것"이다. - P210


양주는 맹자와 동시대 인물로 위아 사상을 주장하며 자신을 존중하자 말하였다. 맹자는 양주가 일신을 께끗하게 하기 위해대륜을 어지럽혔다며 비판하였다. 하지만 노장은 양주의 사상을 계승함으로써 그의 사상은 이어질 수 있었다.


양주(일파)가 말한 것은 주로 우리 스스로 자신의 생을 손상시키지 않을 방법(道)이다. 그러나 이 세계에서 살면서 스스로 자신의 생은 손상시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를 손상시키는 다른 사람과 다른 사물은 항상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진실로 자신을 손상시켜서도 안 되지만 또한 나를 손상시키는 다른 사람과 다른 사물에도 대처해야 한다. 이 측면에서의 양주의 방책은 오직 피(避 :도피)라는 한 글자의 비법이있었을 뿐인 듯하다. 예컨대 "은자"의 "피세(避世)"가 그 예이다. 그러나 인간사는 변화 무궁해서 피하지 못할 해는 늘 있는 것이다. - P231


‘노자’라는 책은 초나라 사람인 이이가 쓴 전국시대의 저작으로 알려져 있다. 사마천은 이이를 전설 속의 노담으로 병치시켰는데 노담의 모습은 신령과도 같아 전설 속 인물의 모습이다. 이이가 쓴 기록에 노담의 전설이 더해진 후 순자, 장자 이후에는 노자학을 노담의 학문으로 자리하게 된다. 노자학과 장자학의 학설은 같은 듯 다르다. 노자가 말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원시 사회가 아니라 소박함을 지키는 사회이다. 야만을 함유한 문명의 경지로 오래 지속 가능한 문명이었다. 노자는 도에 형이상학적 의미를 부여하며 만물의 생성에는 원리가 있는데 그것을 도라 한다 했다.


"초연히 홀로 신명과 더불어 거했다"는 말과 "홀로 천지의 정신과 더불어 교류했다"는 말만이 같은 의미이다. 이외에, 『노자』학은 여전히 선후(先後), 자웅(雌雄), 영욕(榮辱), 허실(虛實) 따위의 분별에 주목하여, "단단하면 깨지고 예리하면 꺾임"을 인식하고, 깨지지 않고 꺾이지 않을 술(術)에 주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장자학은 "사생을 도외시하고 시종을 무시한다." 『노자』학에서 주목한 내용은 장자학에서 주목할 가치가 없다고 여긴 것들이었다." - P279

도가라는 명칭은 한나라 사람이 수립했다. 그들이 노장을 같은 도가로 여긴 것은, 『노자』학과 장자학이 서로 다르기는 하지만 다같이 당시의 모든 전통적인 사상과 제도에 대한 반대파였기 때문이고, 또『노자』학과 장자학이 논한 도·덕의 두 근본 관념도 같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한나라 사람이 그들을 도가로 통칭한 이유였다. - P281

사물은 유(有)라고 이름할 수 있지만, 도는 사물이 아니므로 다만 무(無)라고만 일컬을 수 있다. 그러나 도는 천지만물을 생성할 수 있기 때문에 유라고도 일컬을 수 있다. 따라서도는 유무를 겸한 말인데, 무는 도의 체(體)를, 유는 도의 용(用)을일컫는다. - P285


“변자”는 당시의 “유명 학파”로 “유명 학파”를 통칭하는 말이기도 했다. 변자 학설은 명리(이름에 근거한 판단, 논리학)에 근거를 둔 것이다. 혜시(350?-260B.C.)는 변자 중 하나로 그리스로 따지면 소피스트와도 같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장자의 학설은 “말”과 “지식”의 측면에서는 혜시와 일치한다. 그러나 장자는 혜시가 논변으로 명성을 추구하여 끝내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하였기에 재능이 아깝다고 평했다. 


혜시는 단지 지식(知識)으로써 "만물은 어느 면에서는 모두 같고, 어느 면에서는 모두 다르다", "천지는 한몸이다"는 설을 증명했지만, 우리가 어떻게 해야 실제로 "천지와 한몸인" 경지를 경험할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장자는 말(言) 외에 또 "무언(무言)"을 말했고, 지식(知) 외에 또 부지(不知)를 말했고, 이른바 "심제(心齋)", "좌망(坐忘)"을 통하여 실제로 망인아(我), 제사생(齊死生), 만물일체(萬物一體), 절대소요(絶對逍遙)의 경지에 도달했다. 따라서 「천하편」은 장자를 일컬어 "위로는 조물자와 더불어 노닐었으며 아래로는 사생을 도외시하고 시작과 끝을 무시하는 자와 더불어 벗했다"고 한 반면, 혜시는 "도덕수양이 빈약하고 사물의 해설 따위에 뛰어났은즉 매우 협착한 길이었다"고 평했다. 이로써 보건대 장자의 학문은 참으로 혜시에서 다시 진일보한 것이었다. - P324

혜시의 관점은 개체를 강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개체는 항상 변한다. 따라서 혜시의 철학은 변화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P353


장자학은 전통적 사상과 제도에 반대하는 태도를 견지했는데 유묵을 공박했으나, 노담은 우러러 공경했다. 맹자와 장자(369?-286?B.C.)는 동시대인이었다. 장자의 학문은 양주의 학문이 진일보한 것으로 맹자의 관점에서 보면 장자도 양주의 추종자였고 장자 역시 맹자를 공자의 추종자로 보았다. 장자학이 논한 도와 덕은 노자와 같았으나 그는 천지만물이 변화 가운데 존재한다고 보았다. 본성을 따르는 것이 행복이고 사물은 모두 동등하므로 도와 합일할 수 있다면 하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우주론이 신비주의로 여겨지는 것은 우주와 합일하는 경지에 이르는 것을 최고의 경지라 보았고 그곳에 이른 이를 지인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만물의 생성은 마치 말이 질주하는 것과 같다. 움직여 변하지 않는 것은없고, 잠시도 변천하지 않는 것은 없다. - P363

정치적, 사회적 각종 제도는 장자학의 관점에서 보면 모두 다만 인간에게 고통을 주기에 충분한 것일 뿐이다. 사물의 본성은 지극히 상이하여 사물마다의 취향(所認爲之好)이 존재하기 때문에, 꼭 같을 필요도 없고 강제로 같게 해서도 안 된다. 사물이 한결같지 않으니, 한결같지 않은 대로 맡겨두어야 한다. 이른바 한결같게 하지 않음으로써 한결같게 한다(以不齊齊之)는 말이다. 정치적, 사회적 각종 제도는 모두 하나의 취향(一好)을 정하여 행위의 기준으로 삼아 사람들로 하여금 따르게 한 것이므로, 한결같지 않은 것을 강제로 한결같게 만든 것으로서 사랑이 오히려 해가 된 경우이다. - P366

맹자의 철학 속에 존재하는 신비주의의 경우, 신비주의적 경지에 도달하는 맹자의 방법은 "자강불식 서를 실천하여(強恕)" "인을 구함(求仁)"으로써, "만물이 다 내게 구비되어 있으니, 자신을 돌이켜 참될(誠) 수 있으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은 없다")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자학이 사용한 방법은 인식의 측면에서 모든 분별을 없애고, "천지는 나와 더불어 생겼고 만물은 나와 더불어 하나이다"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이 두 방법은 중국철학사상 분파하여 나란히 대치하여 상당한 이채를 띠었다. 그러나 장자학의 방법은 위진(魏晉) 이래로 다시 거론한 사람이 없게 된 반면, 맹자의 방법은 송명(宋明)의 여러 철학자들에 의해서 발전되고 제창되었으니, 두 파의 운명은 이렇게 달랐다. - P391


묵가의 묵경은 유가의 순자, 정명편처럼 변자의 학설을 논박한 것이다. 묵가는 유가보다 더욱 논변을 중시했고 묵가의 제자는 4개의 파로 나뉘었다(상리씨 유파, 상부씨 유파, 등릉씨 유파, 송견과 윤문 일파).각 파들은 서로 달랐고 상대를 별묵이라고 부를 정도로 자기들이 정통이라 주장했다. 묵경에서도 공리주의를 논하면서 이익이 행위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묵경은 인간의 인식 능력을 인간 생명의 본질로 여겼다.


욕망사항은 항상 그 이익을 놓고 올바로 가늠(正權)해야 하고, 혐오사항은 항상 그 손해를 놓고 올바로 가늠해야 한다. 「경설」 : 권이란 두 가지 이익과 손해를 치우침 없이 고려하는 것이다." - P400


순자(298?-238?B.C.)는 공자를 존숭한 반면 맹자에 대해서는 비판적 태도를 견지했다. 손자는 맹자와 기질적으로도 학문적으로도 차이가 있었다.


공자는 어질고 슬기로웠으며 가로막히지 않았다. 따라서 천하통치에 대한 그의 학술은 선왕(先王)에 비해서 손색이 없었다. 일가(一家)의 언설로서주도(周道:周의 정치철학)의 핵심을 파악했고, 나아가 그것이 널리 앙양되고 통용되게 된 것은 그가 어떠한 기성의 잡설에도 가로막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공자의 덕은 주공에 비견되었으며, 이름은 삼왕(하의 우왕, 은의 탕왕, 주의 문왕 또는 무왕)과 더불어 드날리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편견 없는(가려막히지 않은) 인식 체계의 복이다. - P451

단지 선왕(先王)의 지엽적인(피상적인 것만 본받고 선왕의 근본정신을모르면서도, 오히려 재주를 과시하고 뜻만 커서 견문은 잡다하고 해박했기에, 옛것에 빗대어 새 학설을 조작하여 오행(五行:五常)이라고 했다. 그들의 견해는 기묘하고 모순되어 기준이 없고, 불분명하여 논리적 근거가 없고, 난삽하여 해명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런데도 그 말들을 수식하고 찬양하면서 "이야말로 진정한 선배 군자(즉 공자의 말씀이다"고 말한다. [이 사조는] 자사(子思)가 창도했고 맹가(孟軻)가 동조했다. 세속의 어리석고 눈먼 유생들은 그저 떠들고 있지만 그것의 그릇됨을 모르고 있다. 드디어 서로 전수하면서 공자와 중궁이 그들 덕분에 후세에 더욱 추존되었다고 주장한다. - P452


순자는 자연지천을 주장했고 이는 노장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순자는 공맹과는 다르게 성악설을 주장했다. 또한 왕도정치와 패도정치를 구분한 맹자와는 달리 순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종류의 차이가 없다고 여겼다. 공맹의 정명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관점에 치우쳐 있었으나 순자의 정명론은 묵자의 관점과 오히려 비슷했다(인간이 가진 인식능력이 지이고, 지가 외물과 접촉하는 것이 인식이며 이름을 통해서 실제 사물에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다.).


배울 수 없고 도모할 수 없는 천성적인 것을 성이라고 한다. 배워서 얻을 수 있고 도모하여 성취할 수 있는 인위적인 것을 위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본성과 인위의 분별이다. - P461

우리는 무엇으로써 도를 인식하는가(知道)? 그것은 바로 심(心)이다. 심은어떻게 하여 [도를] 인식하는가? 허일이정(虛壹而靜 : 허심, 전일, 평정)함으로써 인식한다. 심은 잠시도 [생각을] 저장하지 않을 때가 없지만 거기에는 이른바 허(虛: 비어 있음)가 존재한다. 심은 대립적인 것들이 없을 때가 없지만 거기에는 이른바 전일함(一:專一)이 존재한다. 심은 잠시도 활동하지 않을 때가 없지만 거기에는 이른바 평정(靜)이 존재한다. - P468

성취하는 데에 재능을 다 발휘하여 도야된 성품을 지속시켜 처음 상태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교화된 것이다. - P471

○ 임금이란 공동체(사회)를 잘 경영하는 사람이다. 공동체의 도리가 정당하면 만물은 각기 그 적합성을 획득하고, 육축이 잘 자랄 수 있고, 뭇 생물이제 명을 다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제때에 기르면 육축은 잘 자라고, 제때에벌목하고 식목하면 초목은 번성하고, 제때에 정령이 발해지면 백성들은 단결하고 어진 인재들은 복종하는데, 이것이 바로 성왕의 제도이다. - P480


법가의 학설은 제나라와 삼진(한, 위, 조)에서 성행했다. 당시 현실은 귀족정에서 군주정으로 가던 때였는데 인민은 독립하고 자유로워지고 국가 범위는 넓어지고 조직이 복잡해지면서 사람 간의 관계가 이전보다 친밀하지 않게 되면서 인물로 사람을 다스리는 정치는 먹히지 않게 되었다. 법가는 한대에 와서 사상으로 자리하게 된다. 법가하면 한비자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 전에 세 파가 존재했다. 신도(395?-315?B.C.), 신불해(385?-337B.C.), 상앙(390?-338B.C.)이 그 중심 인물이다. 세 파는 각각 세(임금은 위세가 있어야 신하를 부릴 수 있다)와 술(군주가 신하를 제어해야 한다), 법(신하가 준수할 법규가 있다)을 중시하는 점이 달랐다. 이 세 파를 하나로 집대성한 사람이 한비자(279?-233B.C.)다. 


법이 통일되지 않으면 군주에게 불길하다.…………즉 법이란 고정불변적이지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법이란 존망(存亡)과 치란(亂)이 갈라지는 근원이요, 성군(聖君)이 천하의 대(大)의표가 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만사만물은 법에 규정된 것이 아니면 행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법이란 천하의지극한 도술(道)이요, 성군에게 가장 실용적인 기물이다.………법을 만드는이가 있고, 법을 수호하는 이가 있고, 법에 복종하는 이가 있다. 무릇 법을만드는 이는 군주요, 법을 수호하는 이는 신하요, 법에 복종하는 이는 일반백성이다. 군신(君臣), 상하(上下), 귀천(貴賤)을 막론하고 모두가 법을 따르는것, 이것이 바로 태평성세(大治:太平)이다. - P511

일은 사방에 있지만 관건은 중앙에 있다. 성인(聖人 : 명철한 군주)이 관건을 쥐고 있으면 사방의 신하들이 저마다 공력을 바친다. 군주가 허심한 태도로 신하를 대하면 신하들은 각자의 능력을 운용한다. 군주는 이미 온 천하를 품에 안았으면 은밀한 가운데서 신하들의 동태를 관찰한다. 좌우에 보필하는 신하가 세워졌으면 문을 열고 모든 것을 맞아들이기만 하면 그만이다. 군주가 변경하거나 바꾸지 않고 오직 두 가지(二: 形, 名)를 바탕으로 행하여, 중단 없이 행하는 것이 바로 "법도의 실천(履理)"이다. - P525


진한 무렵 예기, 효경, 대학, 중용을 통해서 이론을 뒷받침하는 저작이 정리된다. 예기에는 주로 예를 논하고 있는데 사람과 사람 간의 충돌을 막기 위해 든 예라는 이론은 차별을 낳고 분리를 낳아 구조적 폐쇄성을 낳는다고 보인다. 오랜동안 이것이 고착화되었고 이는 오늘날로 보면 고리타분한 이론으로 느껴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예란 인간의 성정(人之情)에 의거하여 그것을 절제하고(節) 격식화하여(文) 인민의 단속(民坊)을 도모하는 것을 말한다. 예의 기능(禮之用)에는 두 측면이 있는데, 하나는 "인간의 성정"을 "절제하는" 측면이고, 하나는 "인간의 성정"을 "격식화하는" 측면이다. 먼저 "인간의 성정"을 "절제하는" 측면에 대해서 논한다. 인간의 정욕의 발로(情欲之流露)는 적당한 절도와 본분(分限)에 맞아야 한다. 절도와 본분에 맞는 것이 곧 중도(中)에 맞는 것이다. 중도란 인간의 정욕발로의 적절한 한 지점으로서, 이 지점을 넘으면 남혹은 자기 자신의 다른 측면과 충돌이 생긴다. 예란 인간에게 중도를 얻게 하는 표준적인 외부규범이다. - P538


전국시대 말이 되면 유가의 육예인 시, 서, 예, 악, 춘추, 역이 정립된다. 진한은 통일 후 정치나 사회상으로 각종 제도를 정립할 때 유자의 힘을 빌렸는데 유자는 이전의 제도에 밝았고 공자 이래 기존 제도에 부여한 각종 이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여러 사람의 사상이 포함된 유가의 사상은 탄력성이 있어 흡수할 수 있는 범위가 넓었던 이유도 있다. 따라서 진한 통일 이후에는 유가에 필적할 수 있었던 사상은 없었다.


○음양이 교대로 작용하는 것이 도(道)이다(一陰一陽之謂道). 도를 이어받은 것이 선(善)이고, 도에 의해서 성취된 것이 성(性)이다. [이 도는 어진 이가 보면 어질다고 하고, 지혜로운 이가 보면 지혜롭다고 하며, 또 백성들은 날마다 도를 사용하면서도 인식하지 못한다. 따라서 군자의 도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도는 만물을 생육하는 인(仁)에 드러나 있지만, 그 작용은 은밀하여 감추어져 있다. 만물을 약동시키지만 즉 만물에 생명을 불어넣음] 성인처럼 걱정하지 않는다. 그 도의 성덕(盛德 : 왕성한 능력)과 대업(大業 : 즉 만물)은 지극하다. 우주간의 모든 존재가 대업이고, 끊임없는 혁신(日新)이 성덕이고, 끝임없이 낳고 또 낳는 것이 "역(易)"이다. - P607

고인은 얼마나 완벽했던가(備)! 신명(神明)에 짝하고 천지를 본받아 만물을 양육하고 천하를 화평시켰다. 그 은택은 모든 백성에 미쳤고, 본수(本數:본질적인 법도)에 밝았고, 그것들을 말도(度 : 말단적인 제도)와도 연계시켰다. 상하 사방 모든 곳과 대소(大小), 정조(精粗: 심오한 것과 조잡한 것)를 막론하고 그들의 영향은 무소부재했다. 그 가운데 명확히 본수와 말도(數度)에 해당되는 것들은 옛날의 법도와 사관들의 기록 속에 아직 많이 보존되어 있다. 그리고 『시』, 『서』, 『예』, 『악』속에 기록된 가르침들은 추노의 선비(鄒魯之士)와 진신선생(搢紳先生)들 대부분이 통달하고 있다. - P642


중국철학사 상권은 자학시대의 사상을 역사적 흐름에 따라 고찰하였다. 하권은 경학시대로 청나라 시대까지를 다룬다. 

사실 철학사 책이 재밌을 수는 없다. 읽다가 졸기도 하고 정리하느라 애를 먹었으나 이렇게 한 번 훓고 나니 유가, 도가, 법가 사상 등의 등장 배경과 이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앞으로 중국 문학과 역사를 읽을 때도 이해의 깊이를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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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7-30 19: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와 화가님!!👍변자 혜시 새로운 걸 많이 알아갑니다 ㅎㅎ 전 묵자가 좋더라고요. 실제 얼굴이 검었다고 노동자계급이었을거란 글 생각납니다. 잘 읽고 갑니다 화가님 *^^*

거리의화가 2022-07-30 20:02   좋아요 1 | URL
미니님 저는 묵자 하면 겸애만 떠올렸는데 공리주의를 주장한 것이 흥미롭더라구요. 저는 노자가 이야기한 이상 사회가 가장 마음에 와 닿았어요. 안분지족? 소박함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변자, 혜시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답니다^^ 이리도 다양한 학파들이 나와서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걸 보면 당시 사람들도 세상을 개혁하고자 하는 꿈과 이상이 있었던거겠죠. 감사합니다^^

희선 2022-08-01 02: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래전 사람이어도 지금까지 책이 읽히기도 하는군요 제대로 읽어본 건 하나도 없지만... 공자나 노자는 여러 사람이 말하기도 한 듯합니다 장자도... 이 책 보기 쉽지 않았겠습니다 상권 다 보셔서 뿌듯하시겠습니다 거리의화가 님 남은 하권도 끝까지 보시기 바랍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2-08-01 15:26   좋아요 2 | URL
몇 천년전의 학자와 철학자들의 사상이 지금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보면 놀랍죠^^ 아마도 여기 나온 사상가들의 철학을 제대로 공부한 이들은 드물 듯 싶습니다. 각 저작들의 부피도 상당하고 일단 한문이라 쉽지 않죠. 상권을 읽은 김에 하권도 이어서 보려고 계획은 잡았는데 상권보다는 덜 어려웠음 좋겠습니다ㅎ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