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의 창조
거다 러너 지음, 강세영 옮김 / 당대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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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자의 기록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그동안 여성들의 역사는 왜곡되거나 지워진 경우가 많았다.

이 책은 기원전 4천년 이상부터 주로 고대 서양(메소포타미아, 히브리, 유대)의 현장에서 가부장제가 어떻게 정착되었는지 그 기원을 추적한다.
무엇보다 역사 속에서 여성 불평등의 기원을 살펴본다는 것 때문에 더 눈여겨보며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고대인들의 세계관이 담겨진 신화에는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이해하는 열쇠가 있다.
따라서 고대 시기 고전을 읽거나 공부하려면 역시 신화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고대 시기 관심이 없어서 신화를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다. 그래서 이 책의 신화 속에 표현된 은유나 상징, 개념들이 작가의 문장만으로는 곧바로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다행히 나 같은 초보자 독자를 위해서 작가는 다양한 역사 속 사례를 통해서 개념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해주고 있다.

처음 3장까지는 어렵고 난해하다는 느낌이다가 4장부터 갑자기 눈이 번쩍 뜨이더니 5장부터는 쏙쏙 머릿속으로 책 속의 문장들이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몇몇 문장에서는 공감이 가서 소름이 끼친 반면 반대로 분노해서 끓어오른 적도 있었다.

줄거리를 요약하기 보다는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발췌하는 것으로 소감을 정리하려 한다.

나는 여성노예와 부인-첩, 성서 속 여성,  그리스 철학 속의 상징들의 모습에 대해서 특히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여성노예들은 남성 노예와 달리 주인에게 성적 서비스를 해야 했다.
남성노예는 7년이 지나면 노예 생활을 청산할 수 있었는데 여성노예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
상업적 매춘이 여성들의 노예화의 기원이나 강화에 영향을 미쳤고 부족(국가) 간의 싸움이 포로(특히 여성)를 낳아 성적 학대로 이어지며 매춘과 빈곤의 악순환의 고리의 시작이 되었다.

후대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고대문명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종속과 부자유가 공존하였다. 바빌로니아 ·중국·이집트를 비롯하여 그밖의 다른지역에서도 가부장적 가족관계와 축첩제도, 그리고 외지인의 노예화가 공존하였다. 그러나 위계와 강요된 부자유의 개념이나 영구적 노예의 신분으로 대변되는 영구적 부자유(permanent unfreedom)의 관념이 발전 진화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고 보는 것이 논리적이다. 역사의 후반기에 모든 인간존재가 갖는 불가분의 권리로서 자유의 개념이 발달하는데 수세기가 걸렸을 것이다. 고대국가와 도시국가들에서 노예는 재산의 일종으로 간주되었지만, 동시에 일정 정도 보호받을 자격을 갖는 가구의 구성원으로 생각되었다. 노예제가 지배체계로 됨에 따라 노예신분은 점차 열등한 서열의 인간을 표시하게 되었고 노예 지위의 영구적 낙인은 미래세대까지 이어졌다. 만일 이런 유의 노예를 점진적으로 발전된 계층화 과정의 최종산물로 보고 또 가부장적 지배·보호 아래에 있는 부인을 이 과정의 최초 형태로 간주한다면, 첩은 이 두 형태 사이의 어딘가에 해당될 것이다. - P166

성서의 여성 차별에 관해서는 창세기의 히브리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본다. 왜 하필 창세기일까. 창세기에서 드러나는 위계 질서와 차별의 상징성 때문이다.
여기에서 모계혈통적인 가족 형태가 부계혈통적인 가족조직으로 변천되는 징후를 사례를 통해서 들여다보고 있다.
기혼 유대 여성은 어머니로서의 의무를 강조한다. 바빌로니아 여성은 재산을 소유하고 계약을 체결하고 남편 유산에 대한 지분을 처분할 권리를 가질 수 있었기에 비교가 된다.
히브리 남성은 자유로운 성적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던 반면 여성들은 순결을 강요받았고 모성의 중요성을 세뇌시켰다.

창세기에 있는 가부장들에 관한 이야기는 일부 부족들에서 모처거주적(matrilocal)이고 모계혈통적(matrilineal)인 가족조직이, 부처거주적(patrilocal)이고 부계혈통적(patrilineal)인 가족조직으로 변천되는 몇 가지 징후를 제시해 준다(레아와 라헬의 결혼 참조 한 남자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그의 아내와 결합하는 것에 대한 창세기 2:24 의 언급도 그렇게 해석될수 있다). - P294

조선시대 양반집 여성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결혼하면 남편의 아내가 되어 본인의 뜻을 펼칠 수도 없고 아들 낳는 것을 강요받았다. 아이를 낳지 못하면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며 냉대를 받고 소박을 맞았다. 첩을 들이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절이었다. 이것이 불과 몇 십년전까지 벌어지던 일이니 말 다했다.
과거 아들을 낳기 위해 많은 희생을 했던 한국의 어머니들이 떠오른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플라톤 사상의 비교는 볼수록 섬뜩함이 일었다.
서양 철학의 기원이 여성 불평등과 연관된다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비단 여성 문제 아니다. 서구 문명의 사상적 실체가 지극히 남성중심적이고 다양성에 대한 고려 자체를 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뿌리 깊은 가부장제가 이렇게나 오래된 역사인 것이구나 생각하면서 이 틀을 깬다는 것이 왜 이토록 어려운 일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쩔 수 없다며 여성에게 강요되는 것들을 앞으로도 얼마나 더 견뎌내야 할까 생각하면 갑갑해진다.
그래도 과거의 역사가 결코 멈춰 있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여성들의 요구와 노력으로 지금까지 왔다. 우리는 가부장적 사고와 관습에서 해방되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이어가야 한다.

페미니스트 세계관은 여성들과 남성들의 정신을 가부장적 사고와 관습에서 해방시킬 수 있을 것이며, 마침내 지배와 위계가 없는 세상, 진정으로 인간적인 세상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 P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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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6-20 18:0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 지금 3장 읽는 중인데 너무 책장 안넘어가요. 저는 역사나 신화 모두 관심이 없어서 그런가봐요. 3장 넘어가면 저도 쑥쑥 읽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읽느라 고생하셨고 이렇게 리뷰 쓰시느라 또 고생하셨습니다 거리의화가 님. 그리고 함께 해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분발할게요. 아자!!

청아 2022-06-20 19:26   좋아요 4 | URL
다락방님 저도 3장까지 재미없었는데^^; 4장부터 흥미진진합니다(4,5,6장 확실히👍)-6장은 매춘

책읽는나무 2022-06-20 22:18   좋아요 4 | URL
저도 화가님이 3장 이후부터 좀 흥미로웠다는 이야기를 듣고, 읽다 보니 저도 똑같이 느꼈어요.
3 장 까지는 확실히 진도가 좀 더디긴 했습니다.

다락방 2022-06-21 07:53   좋아요 4 | URL
저 4장 노예 분노하며 읽는 중입니다.. 이 새끼들!! 이러면서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거리의화가 2022-06-21 08:32   좋아요 3 | URL
@다락방님
고대 시기 공부를 하려면 확실히 신화나 전설을 들여다봐야 할 것 같은데 저는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이 아직 안 들어요. 믿음이 부족한 탓도 있는 것 같고;;;ㅋㅋ 3장까진 좀 난해하고 어려우셨지만 4장 읽자마자 분노 지수 오르신 걸 보니 앞으로는 수월하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네요~ 좋은 징조입니다ㅋㅋ 화이팅이에요!

@미미님
ㅎㅎ 역시 미미님도 그렇게 느끼셨군요~ 저도 4-6장 특히 재밌게 읽었어요.

@책읽는나무
나무님~도 비슷하게 느끼셨다니 동지애를 느낍니다ㅋㅋ 저만 어려운 게 아니었군요~ㅎㅎ

mini74 2022-06-20 20: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성서속 아버지들이 불한당들이 요구하는 손님 대신 딸을 강간하도록 내주는 것이 충격이었어요. 조선도 임난때 보여준 실망스런 양반이나 권력층에 대한 이미지개선을 위해 여성의 정절을 더 강조했다는 글 읽은 기억납니다. 화가님 글 👍 넘 잘 읽었어요 ~~

거리의화가 2022-06-21 08:35   좋아요 2 | URL
오~ 저도 그 부분 밑줄긋기한 부분이었어요. 자식 팔아 넘기는 아버지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들 있었나봐요ㅠㅠ 조선 시기 여성의 정절은 말씀하신 대로 유교 사상이 강화되면서 특히 피해가 심해졌죠.

너무 날림 리뷰라 민망합니다. 그냥 소감 정도로 썼어요. 뭐 쥐어짠다고 더 나올 것 같지도 않아서요. 미니님이 워낙 리뷰로 줄거리 요약 잘 정리해주셔서 저는 이걸로 대체~ㅋㅋ 감사합니다.

공쟝쟝 2022-06-20 20: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일 빨리 끝내고 가부장제 읽겠어요 ㅠㅠㅠㅠㅠ 왜 20일인고얌 ㅠㅠㅠ

얄라알라 2022-06-20 22:11   좋아요 3 | URL
저는 오늘 실수로 살짝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제 2022년도 열흘만 남겨두고 있다고.....흑흑....1분기가 열흘 남은 건데

마음만 급한가봐요

6월 20일 흑

거리의화가 2022-06-21 08:36   좋아요 4 | URL
ㅎㅎㅎ 공쟝쟝님 화이팅! 저보다 훨씬 더 잘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얄라알라님ㅋㅋ 시간이 너무 빨리 갑니다. 저도 마음이 급한지~ 날씨도 더워지고 정신이 없네요.ㅎㅎㅎ

공쟝쟝 2022-07-07 12:07   좋아요 2 | URL
저 다 읽었어요! 헤헤헤헤헤헤헤헤!! (6월안에 다 읽었어야지!!!!) 근데 진짜 열심히 읽었거든ㅇ...(평소에 다른 건 열심히 안 읽는 다는 말인가?ㅋㅋㅋㅋ) 아무튼 다 읽었고.. 이거 댓글달려고 들어왔다가 거화님 서재에서 엉덩이 붙이고 한동안 앉아있었네요... ^^
역사에 조예가 깊으신 분 (크... 왤케 멋있는 여성 많은거야 ㅜㅜ) 근데.. 이 페이퍼 양쪽에 둥둥 떠다니는 소주잔들은....? (내적 친밀감) 오.. 거리의 화가님도 애주가...?

거리의화가 2022-07-07 13:07   좋아요 1 | URL
랜덤스킨인데 소주가 픽된 모양인데요~ㅎㅎㅎ
한때 애주가였는데 요즘은 나이도 들고 술도 줄어서 금방 취하니까 적당히 먹고 있습니다ㅋㅋ

암튼 완독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저 댓글달려고 생각했는데 뭔가 정리가 안되서~ㅎㅎ
여기 알라딘 서재에 멋진 여성들 천지인듯요ㅎㅎㅎㅎㅎ

얄라알라 2022-06-20 22:1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거리의 화가님, 저는 이번 달 책만 모셔놓고 완전 게으름인데
거리의화가님 리뷰 저 같은 책 안 읽은 사람에게도 쏙 쏙 들어오게 써주셨네요. 화악 들어옵니다 쏘옥 박힙니다.

지금 제가 읽는 파친코도 ‘가부장제‘코드로 읽으면 새롭게 보이던데
신화를 그 관점에서 눈에 불켜고 읽어볼 필요도 있겠네요

거리의화가 2022-06-21 08:39   좋아요 4 | URL
얄라알라님~ 쏙 들어온다니 저 너무 날림 리뷰 쓴 것 같아 창피한 중이었는데요^^;;; 간단한 소감 정도로 쓴 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책들도 페미니즘 시각으로 읽으면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굳이 넣지 않아도 될 성교 장면이나 이런 것들이 너무 눈에 들어오고 불편해졌어요. 신화 속에 상징이나 은유들이 많이 있어서 여성이 그 세계에서는 어떻게 묘사되는지 눈여겨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책읽는나무 2022-06-20 22:2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오...화가님!!
저도 머리에 쏙쏙 들어옵니다^^
주말 놀러 갔다 오느라, 그동안 모든 걸 손 놓았더니 순간 깜빡하고 있었던 느낌이네요ㅋㅋ
다시 뒷편 남은 장들 박차를 가해야 겠어요.
완독 축하드려요^^

거리의화가 2022-06-21 08:40   좋아요 4 | URL
인상적인 장면만 몇 개 꼽았습니다^^; 밑줄긋기한 거 다 옮기기도 그렇고 줄거리 요약하기도 자신 없고 그래서요^^;
주말에 어디 놀러오셨을까요? 즐거운 시간이었을 것 같습니다~ㅎㅎ
완독 축하 감사드립니다. 나무님도 남은 분량 힘내세요!

바람돌이 2022-06-21 06:5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검사때문에 다시 병원 입원해서 마지막 남은 장들을 못읽고 있네요. 오늘 퇴원해서 집에 가면 저도 빨리 읽어야지요. 전 앞장 재밌던데 신화도 역사도 역시 사람들의 관심은 참 다양해서 호불호가 이렇게 단락으로도 나뉘는게 재밌네요. ㅎㅎ

거리의화가 2022-06-21 08:43   좋아요 4 | URL
바람돌이님 검사 힘든데~ 저는 어렸을 때도 병원이 무서웠는데 점점 가면 갈수록 더 무서워집니다ㅠㅠ 나이가 들수록 병원을 가까이 해야 한다고 하던데 말이죠. 몸조리 잘하시고요~ㅎㅎ
1장부터 재밌으셨다니 역시!!! 저는 번역투 문장 같은 것도 어색한 게 있었고 해서 앞 부분은 잘 안 들어왔던 것 같아요. 4장 이후부터는 좀 그나마 수월했구요~ 저자 문체에 익숙해진 것도 있지만 내용 때문인 것 같기도 합니다.ㅋㅋ 남은 분량도 화이팅하세요!
 
파푸아뉴기니 쿠아 마운틴 #4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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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은 고소하면서 균형감이 돋보이는 맛이다. 음미할수록 상큼한 산미가 올라오는 것이 특징. 산미가 강하면 아침에 먹기 부담스러운데 산미가 적당한 편이라 좋았다. 내겐 이 정도의 산미가 딱 좋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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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다 하루끼의 북한 현대사
와다 하루키 지음, 남기정 옮김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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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북한 정권이 수립되기 전부터 김정은 정권이 들어올 때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짧지 않은 기간의 역사를 300여페이지의 분량으로 담아냈는데도 빈 구석 없이 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문장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 읽기에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세밀한 역사는 사료를 통해 보충해야겠지만 북한사를 처음 경험하기에 충분한 책이라 보여진다.

북한은 사회 구조상 자료 접근이 쉽지 않아 연구자들이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 소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가 종식되고 나서야 비로소 내부자료를 입수할 수 있게 되면서 북한의 과거 시대 조명의 기회가 확대되었다. 때문에 현재는 1945년 이후부터 북한 체제가 국가사회주의체제로 확립되는 1961년까지의 역사는 거의 완전하게 복원 가능해졌다. 다만 1960년대 이후가 되면 소련도 북한의 내부사정을 파악하지 못하게 되었고 1970년대 이후는 내부자료조차 얻을 수 없는 시기가 되어 망명자 증언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저자도 1961년까지는 공식자료에 의해 검증할 수 있었으나 이후는 망명자 증언이나 다른 책이나 논문, 증언 등에 도움을 받았다.

나는 기존에 북한사 책으로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북한현대사(개정판)', '북한의 역사'(총 2권) 요렇게 가지고 있었다. 이 책이 셋 중 가장 최근 책이다.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북한현대사'는 제목에서 느낄 수 있지만 사진과 그림 자료들이 컬러로 들어가있고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와다 하루끼의 책은 정치사 분야로 치중하여 서술하고 있지만 다루는 기간이 가장 길다. '북한의 역사'도 정치사 분야에 입각하여 기술하였지만 1994년 김일성 시기까지만 다루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구판으로 느껴질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책에 대한 서술을 확인해보자.

지도자들의 스타일을 설명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흥미로웠다.

김일성은 해방 이전부터 항일운동 이력으로 인해 이미 유명했다. 1933년 5월부터 민생단(조선인 당간부와 부대간부가 일본이 꾸며낸 모략단체) 단원으로 몰려 구속 처형되는 민생단 사건이 벌어졌다. 이 때 동만주에서도 일본에 맞서기 위한 유격대가 조직되어 있었는데 김일성도 여기에 구성원이었다.
김일성은 적극적이고 용감했으며 대원들 사이 신뢰와 존경을 얻고 있다고 진술되어 있다. 말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이 눈에 띄는 반면 정치문제는 잘 알지 못한다고 되어 있다.

이 시점에서 동만주의 군사간부에 대해 평가한 중국공산당의 자료에 김일성이 나온다. 동만주 당의 지도자 웨이 정민(魏拯民)이 코민테른 제7회 대회 참가를 위해 모스끄바에 가서 핑 캉(馮康)이라는 필명으로 코민테른 중공당 대표부에 제출한 보고서다.
김일성. 고려인. 1931년 입당. 학생. 23세. 용감적극. 중국어를 할 수 있음. 유격대원 출신이다. 민생단이라는 진술이 대단히 많다. 대원들 가운데서 말하기를 좋아하고, 대원들 사이에서 신뢰와 존경을 받으며 구국군 속에서도 신뢰와 존경을 받는다. 정치문제에 대해서는 아는 게 많지 않다.(『동북지구혁명문헌회집 乙一』) - P29

"조선인 부대를 중국인 부대와 구별하는 데에는 동의할 수 없다. 장래에는 단독으로 조선인민혁명군을 조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조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분할을 강행하면 항일 무장역량을 약화시키는 결과가 된다"라고 주장했다고 한다.(『현대동북사』, 『세기와 더불어』 제4권). - P30

올브라이트 장관이 기술한 김정일에 대한 인상은 김일성의 용감성과는 거리가 있다. 정보전에 능하고 수싸움에 능한 이미지가 엿보인다. 그는 김일성 사후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전군을 돌며 군인들의 마음을 얻는데 성공한다. 또 고난의 행군 시기 사람들이 공식 선전에 대해 소극적 자세를 보이자 자신이 우대한 군대를 경제면에서도 전위로 삼아 다른 인민의 본보기로 활용하겠다고 생각한다.

올브라이트 장관은 김정일이 "지적인 인물"이고 "고립되어 있지만 정보에 통해 있으며" "절망하고 있는 사람이 아닐뿐더러 걱정하고 있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가 바라고 있는 것은 미국과의 정상적인 관계였다"라고 회상했다. - P269

김정은은 아직 자신만의 확고한 스타일이 있다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보이는데 저자는 이전 두 지도자들의 스타일과 비슷하면서도 새로운 스타일이 엿보인다고 평가한다.

표현의 수위를 점점 높여가며 위협을 가하거나, 제재에 대해 더 강경한 조치로 대항하는 것은 김정일 시대부터 이어진 북한의 전통적인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다만 그런 와중에도 김정은의 새로운 스타일이 선보이기도 했다. 위성발사장을 외국의 기자에게 공개한 것, 발사가 실패했다는 사실을 즉각 발표한 것 등이다. 나아가 김정은은 김일성 탄생 100주년 열병식에서 육성으로 연설했다. 이 최초의 연설에서 그가 "새 세기 산업혁명"을 목표로 삼겠다고 한 것도 새로웠다. - P310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세 명의 정치인이 북한을 이끄는 동안 북한의 체제는 변함이 없어 보이지만 내외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키워드로 표현한다면 '주체정치 -> 선군정치 -> 보통국가' 가 될 것이다.

1970년에 국가의 새로운 상부구조가 완성되었다. 유격대 모델을 전국가로 확대하고, 사령관 김일성을 전인민이 받드는 유격대국가다. 이 구조는 국가사회주의체제 위에 구축된 2차적 구조물이었다. 이 국가체제는 베트남전쟁에 호응하여 남조선혁명을 일으키고, 이를 지원하여 혁명적 통일을 실현하겠다는 목표로 구축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 목표는 백일몽으로 끝났다. 목표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강력한 국가체제가 나타났다는 것은 커다란 역설이었다. - P176
국가디자인 측면에서는 이즈음 새롭게 가족국가론이 제창되어, 유격대국가라는 건물 위에 간판처럼 내걸렸다.
중심이 된 것은 "어머니 당"이라는 새로운 말이었다. 지금까지는 수령을 '부모님 같은 수령'이라는 의미로 '어버이 수령'이라 불러웠지만, 이즈음에 와서는 그 의미가 '아버지인 수령'으로 변화했다. 수령이 아버지이고 당이 어머니라면 대중은 그 자식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로써 가족에 비유한 국가디자인이 완성된 것이었다. - P198

1999년 6월 16일에는 논설 「우리 당의 선군정치는 필승불패이다」가 게재되었다. 이는 김정일의 체제, 즉 필자가 '정규군국가'라고 부른 것을 북한 스스로 '선군정치'라고 명명한 것이었다.
오늘 경애하는 김정일 동지가 혁명과 건설에서 구현해나가시는 기본적 정치방식은 선군정치다. 이 위대한 정치는 최악의 역경 속에서 사회주의 보루를 지키고 강성부흥의 새 시대를 열어놓은 전화위복의 기적을 창조했다. 현실은 선군정치야말로 현대 사회주의정치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는 불패의 정치라는 것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 P262

2011년 12월 30일 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이 회의를 열고, 김정은을 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서 "높이 모시었다"라고 선포했음을 발표했다. 국방위원장과 당중앙군사위원회가 관여하지 않고 당 상무위원, 당 정치국원과 정치국 후보위원들만이 모인 가운데 국방위원회 위원장이 겸무해야 할 최고사령관 인사를 결정했다는 사실은 당의 국가지배, 당 정치국의 지배도, 당 집단지도의 개시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규군국가체제는 최고사령관인 후계자를 머리로 받아들이기는 하겠지만 '당==국가체제'로 이행해나갈 것이다. 정규군국가로부터 당국가체제로의 이행은 보통의 국가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정치국의 정치는 합의의 정치이며, 전문성 있는 사람이 책임을 분담하는 정치이기도 하다. 이렇게 김일성의 시대에 이어 김정일의 시대도 끝났다. 북한 현대사의 새로운 페이지가 시작된 것이다. - P304

다만 그들이 주장한 정치 형태에 대한 내부 사람들의 평가는 어떨까?

리상조는 김일성에 대한 개인숭배 양상을 기술하면서, 김일성과 그 주변에서는 당 내에 개인숭배가 없다고 억지를 쓰고 있지만 "김일성과 그 지지자들에게 20회 대회의 문서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리상조는 또한 역사가 왜곡되고 있다며, 김일성의 만주 항일무장투쟁만이 조선인민의 민족해방투쟁사를 이루고 있다는 역사기술을 비판하고 있다. - P130

1월 4일자 『로동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김정일 어록이 발표되었다. "과거의 시기에 만들어진 기초 위에서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맞게 그 면목을 계속해서 일신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신문에서는 김정일 위원장이야말로 새로운 사고방식의 선두주자라고 추켜세웠다. 이러한 메시지가 북한의 간부와 인민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궁금하다. 고르바초프가 주장한 뻬레스뜨로이까의 가장 중요한 기둥은 "글라스노스찌(자유언론)"였다. 그것이 김정일의 "개건"에는 빠져 있었다. 그것 없이 신사고는 나타나기 어렵다. - P271

남한과 북한의 현대사를 읽으면 어쩔 수 없이 느낄 수 밖에 없는 안타까움의 순간은 찾아온다. 이 책에서 꼽아보자면.

첫 번째 장면 ->
1948년 북한의 헌법이 제정된다. 헌법 제103조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부는 서울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이전까지는 북조선만의 정권이었으나 국가 범위를 한반도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이 때 조선최고인민회의 선거가 8월 25일 북조선 전역과 남조선 지하에서 실시되었다. 이보다 앞서 8월 15일 서울에서는 대한민국이 전조선을 영토로 한 한반도 유일의 합법국가임을 내세우며 정부수립을 선포했다. 이쪽도 스스로가 전조선을 영토로 하며 서울이 수도인 조선 유일의 합법 국가임을 주장했다. 북한 헌법에 명시된 대로, 서로 다른 정권이 수립된 이후 무력으로 상대방을 제거하여 국토를 통일하겠다는 구상은 이미 자리한 셈이었다.

두 번째 장면 ->
김일성은 중국의 국공내전이 진전되는 것을 호기로 여겨 결국 스탈린과 마오 쩌둥의 승인을 받은 이후 전쟁을 개시했고, 이승만은 이에 맞서 미군을 끌어들여 국지전을 세계전으로 만듦으로써 북진통일을 이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전쟁 후 김일성은 정치적으로 승리했지만 한반도는 수많은 인적 물적 피해를 낳았고 이념 전쟁은 격화되었다.

스딸린은 "변화한 국제정세를 위해" 북한의 동지들의 생각에 동의했지만 중국의 동지가 동의하지 않는 의견이라면 결정은 연기하겠다고 전해왔다. 마오 쩌둥은 대만 해방 이후라면 충분히 도울 수 있지만, 지금 무력통일을 개시하기로 결정했다하더라도 동의한다고 김일성 등에게 말했다. 김일성은 2만 내지 3만의 일본군이 파견될 가능성은 있지만 문제 없다고 말했다. 마오 쩌둥은 미군이 참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으며, 그렇게 되면 중국은 군대를 파견하겠다고 말했다. - P88

그날 정오 직전 무초(Muccio) 주한 미대사가 대통령 관저로 방문하자, 이승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조선을 제2의 사라예보로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어쩌면 현재의 위기는 조선문제를 일거에 전면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기회를 부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미국의 여론이 공산주의의 침략에 대해 나날이 강력해지고 있다. - P89

세 번째 장면 ->
미국은 베트남 전쟁을 일으켰고 한국은 그 전쟁에 참여했다. 박정희는 1965년 한일조약 체결을 하고 김일성은 이 기회에 혁명전쟁을 일으키려는 계획을 세운다. 이 때부터 우리가 잘 아는 김신조 청와대 습격을 비롯한 수많은 사건들이 발생된다.

베트남전쟁에 호응하여 남조선혁명을 조직하고 필요하다면 다시 혁명전쟁을 일으킬 것이며, 이를 위해 수령의 유일지도를 확립해 전인민이 항일유격대원의 정신으로 행동해달라는 것이 당시 김일성의 주장이었다. 베트남 사태와 한국의 출병에 자극을 받은 김일성은 한국에서의 혁명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믿었다. - P161

네 번째 장면 ->
김일성과 김정일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협의하던 남북한의 교류가 끊어지게 된다. 남북한 관계는 북한과의 문제만이 아니고 미국, 일본, 중국 정권과도 얽혀 있어 정권이 강성하면 냉각 기류가 되고 온건하면 화해 무드가 조성이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북미간의 핵 관련한 문제가 그렇다. 국가 간의 이해관계가 맞지 않으면 제대로 풀리지 않는 문제가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미국은 오만무례하게도 우리를 선제공격하기 위한 방법이 책상 위에 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기분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 상대가 막대기로 때리겠다고 하는데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우리의 생존권을 위해 핵을 갖게 된 것이다. 생존권이 보장된다면 핵은 쓸모없는 물건이다.
미국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모른 척하면서 먼저 핵을 포기하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언어 도단이다. 핵의 완전포기는 패전국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의 패전국이 아니다. 이는 이라크 같이 무조건 무장해제하자고 하는 것이며 받아들일 수 없다. (...) 미국이 핵무기를 가지고 때린다면 그냥 맨손으로 가만히 있다가는 결국 이라크처럼 되어버리고 만다. - P281

저자는 북한의 역사를 기술하면서 남한 등 주변의 역사도 함께 기술해줌으로써 역사적 이해에 도움을 준다.
현재 진행형인 김정은 시기에 대한 기술은 아무래도 부족하다. 당연한 것이겠지만 앞으로 펼쳐질 역사가 강대강으로 쓰여지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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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리미트] 식물성 육포 갈비맛 - 갈비맛 [언리미트] 식물성 육포 1

평점 :
절판


육포향과 맛은 비슷하게 구현되었으나 식감이 좀 아쉽다. 약간 꾸덕한 젤리 느낌? 안주로 먹는 것이지만 간이 좀 센 느낌. 양은 1인이 먹기에 적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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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티나무 2022-06-18 06: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악 간이 세다구요? 미리 실망이어요……ㅎㅎㅎ

거리의화가 2022-06-18 08:19   좋아요 2 | URL
ㅋㅋ 저에겐 살짝 짰는데 옆지기는 괜찮다네요ㅎㅎ 사람 따라 다를수도 있어요 맛보고 평가가시죠ㅎㅎ

다락방 2022-06-18 08: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으앗 저 어제 왔어요. 빨리 먹어보고 싶네요!! 화가 님, 양꼬치맛도 사실 건가요?

거리의화가 2022-06-18 08:20   좋아요 2 | URL
오 다락방님도 받으셨군요^^* 옆지기가 살거면 양꼬치맛 사지 왜 갈비맛 샀냐고 하네요ㅠㅠㅋㅋㅋ 며칠 후 주문해볼까 해요ㅎㅎ

독서괭 2022-06-18 09: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호 젤리느낌이라.. 뭘까요?ㅎㅎ

거리의화가 2022-06-18 20:07   좋아요 2 | URL
ㅎㅎ 뭐라고 표현할지 떠오르는 게 없어서 꾸덕한 질감은 맞는데.

mini74 2022-06-18 09: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 핫하다는 육포리뷰가 올라왔군요 ㅎㅎ

거리의화가 2022-06-18 20:08   좋아요 1 | URL
ㅎㅎㅎ 핫한 육포인가요? 음음 일단 사신 분 저 포함 세분?ㅋㅋ 간 보는 분들 몇 분 계신 것 같고요^^

바람돌이 2022-06-18 09: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육포리뷰가 올라왔군요. 육포는 식감도 중요한데 하 고민입니다. ㅎㅎ

거리의화가 2022-06-18 20:09   좋아요 1 | URL
ㅋㅋㅋ 식감 때문에 고민되시는군요ㅜ 맛있게 표현했어야하는데 제가 미식가가 아니라서인지 맛표현을 잘 못하는듯합니다ㅋㅋ

singri 2022-06-18 09: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ㅋㅋ드셨군요.

거리의화가 2022-06-18 20:10   좋아요 1 | URL
네 어제 맥주랑 같이 먹었습니다ㅋㅋ

그레이스 2022-06-18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식감! 여기서 주저되네요.

거리의화가 2022-06-18 20:11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 미각으로는 다르게 표현될 수도 있을듯합니다 제가 미식가가 아니라서ㅋㅋㅋ 저는 괜찮았어요ㅎㅎ

라로 2022-06-18 2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젤리느낌의 육포맛은,,,, 어쩐지 저는 별로 🙄

거리의화가 2022-06-18 22:19   좋아요 0 | URL
젤리라는 표현을 괜히 썼나봐요ㅠㅠ 다락방님의 후기를 기대해봐야겠습니다^^;ㅋㅋㅋ

scott 2022-06-19 0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건 봉지를 뜯고 손으로 육포를 잡는 순간
또 한개 육포는 없을 정도로 양이 넘 작아여 ㅎㅎㅎ
간이 세서
땅콩이나 호두 같은 견과류랑 먹으면 간이 딱 맞능 ^ㅅ^

거리의화가 2022-06-19 07:24   좋아요 1 | URL
스콧님 말이 무슨 말인지 이제 이해가ㅋㅋ 견과류랑 먹으면 간이 딱 맞겠어요ㅎ
 
두만강 국경 쟁탈전 1881-1919 - 경계에서 본 동아시아 근대 너머의 글로벌 히스토리 2
쑹녠선 지음, 이지영.이원준 옮김 / 너머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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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한반도의 국경은 자연스레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 부근이고 간도 지역은 1909년 중일간 간도 협약 이후 현재의 영토 범위로 되었다라고 인식되어 있다.

남한은 두만강과 압록강이 한반도의 국경임에도 육로로는 가볼 수가 없어 체감상 거리가 까마득하다. 간도 지역은 더하다.
사실 그 지역을 직접 피부로 느끼는 것은 북한일 것이다. 한반도의 국경선이 직접적으로 맞닿아있고 간도 지역도 거리상 가까우니 말이다.
일본은 근대 시기에 식민지 제국의 대륙 발판기지로 만주 지역을 선택하면서 분쟁에 개입했다.

지난 저작 《동아시아를 발견하다》에 이어 저자 쑹녠선은 동아시아 근대를 삼국을 중심으로 다각도로 바라본다. 먼저 경계라는 의미부터 살펴본다. 

마르틴 하이데거의 유명한 말처럼 경계는 "무엇인가가 멈추게 되는 지점이 아니라 무엇인가가 존재하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이 관점은 변경에도 적용된다. 변경은 단순히 주변이 아니라 상호작용하는 장소다. - P31

서양학자 앙드레 슈미드는 두만강 경계 획정을 한국 국가건설 과정의 한 부분으로 간주한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새롭게 상상된 '한민족'이 제기되었고, 민족주의 사상가들이 현재의 정치적 주장을 뒷받침하려고 과거에 대한 낭만적 향수를 이용하기 시작했음을 그의 연구는 보여준다.
나는 이러한 관점을 수용하면서 두만강 지역의 국경 형성을 검토하는 대안적 공간 단위로 '로컬'을 적용할 것을 제안한다. 이 '로컬' 개념에는 '다변적 로컬'과 '지역적 차원의 로컬', '지구적 차원의 로컬' 등 최소한 세 가지 지리적 층위가 포함되어 있다. 이 세 층위는 서로 다르지만 역동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 P33~34


두만강은 청 제국의 국경이었을 뿐 아니라 조선인의 거주를 허용하고 양국 간 무역을 장려하는 제국의 포용성 그리고 러시아와 일본을 차단하는 제국의 배타성을 모두 보여주는 이중적 상징이기도 했다.
만주에 대한 거버넌스와 인식은 다양한 압력에 따라 그리고 국경을 초월하는 행위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재설정되었는데, 이 행위자들은 최소한 세 가지(국내, 양자 간, 다자간) 상호작용하는 공간 층위와 관계되었다. - P89

그리고 한 사건이 등장한다. 1931년 7월 두만강 국경에 있던 정계비(목극등비)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조사차 들렀던 사람들은 비석을 확인했으나 백두산 천지에 다녀온 사이 그 자리는 텅 비고 실체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것은 조사의 핵심 증거물이었다. 

두만강과 간도를 둘러싼 이전 역사를 살펴보자.

두만강 유역 부근은 조선 초기 6진이 조선의 영토가 되면서 남쪽에 있던 백성들이 이곳에 유입되며 시작되었다. 하지만 국방을 위한 혹독한 세금의 수취 요구와 차별 및 배제로 많은 백성들이 불편과 고통을 겪고 있었다. 17세기 청은 예수회 선교사들이 전해준 지도 제작법을 전수받고 새 지도 제작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청은 1710년 이전부터 답사대를 만주로 여러 차례 파견하면서 백두산을 황실의 산으로 선전하고 왕조의 건국신화를 강화하는 작업을 했다. 1710년 그 지역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지자 강희제는 목극등에게 재판을 감독하고 끝나면 청과 조선의 경계를 조사하라 명령한다. 조선은 청의 의도를 간파하였으나 협력할 수 밖에 없다 느끼고 1712년 현지 조사 후 두만강 수원지로 결정하고 6월 18일 비석(정계비=목극등비)을 세운다. 얼마 후 조선은 이 때 선택한 수원지가 두만강이 아닌 송화강의 지류임을 알게 되었으나 조정은 이 문제를 묻기로 하면서 청 조정은 이 사실을 모르고 넘어간다.
1713년 목극등이 백두산 수계와 지리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요구하자 조선 조정은 주는 시늉은 하되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고 잘못된 지리 정보를 주었다. 장 밥티스트 레지(1663~1738)는 목극등이 한국에서 수집한 자료에 기초하여 한국에 관한 지식과 지도를 생산했고, 이는 나중에 프랑스의 중국학자 장 밥티스트 뒤 알드의 중국 서술에서 재생산되었다. 이후 약 200년이 지난 뒤 시노다 지사쿠는 레지 원고에서 특정 부분만 골라내어 사실을 편집하고 왜곡했다. 두 세기 넘게 변형된 지리 지식은 일본인에 의하여 두만강과 압록강 이북의 땅이 '무주지'로 간주되는 증거로 이용되기에 이른다.

한족과 만주족 정치가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추진해온 '영토화'와 '내지화'의 지속적 실천은 만주족의 고향이 '중국'이라는 새로운 개념 안으로 통합되어가는 길을 예견했다. - P154

간도 지역에 1877년 조선인 14가구가 용정에 처음 정착했다. 본래 있었던 세금 폐해에 이 무렵 조선에 심각한 자연 재해가 발생하자 많은 백성들은 살기가 어려워졌고 이에 자발적으로 간도로 넘어가게 되었다. 1881년 조선인의 월경 사건을 계기로 청과 조선이 두만강을 둘러싼 국경 조사/협상을 시작했으나 1887년까지 이어진 후속 조사에도 양국 간 타협을 보지 못한채 종결된다. 이후 청일전쟁의 결과 일본이 승리하면서 천하질서는 막을 내리고 청과 조선 모두 세계 질서로 진입한다. 이후 알다시피 1909년 간도 협약으로 두만강의 국경선이 확정되었다. 1909년 조선은 이미 외교권을 상실한 상태였고 일본은 이미 남만주 철도부설권 획득으로 대륙 진출의 야욕을 드러낸 상태였다. 러시아도 부동항을 얻기 위해 만주를 노렸으나 러일전쟁에서 일본에 패하면서 그 기회를 잃었다. 1910년 한일 강제병합 이후 독립운동을 위해, 먹고 살기 위해 간도에 모여드는 조선인들이 많아졌다. 청은 이를 어느 순간 민감하게 여겼고 일본도 식민지민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영토 전쟁에 뛰어들었다. 

만주에서든 전국 각지에서든 '비적'에 대한 청의 정책은 탄압과 수용이 결합된 야누스식 전략이었다. 반군을 진압하는 데 실패했다면 항상 대안은 있었다. 반군을 진압하는데 실패했다면 항상 대안은 있었다. 반군을 사면하고 그들을 징집하는 것이다. 이 전략은 비정부 무장 세력에게 국가와 사회 사이에서 활동할 수 있는 상당히 넓은 공간을 허용했다. 만주의 야심 찬 젊은이들에게는 토비가 되는 것이 단순한 생존 전략이었을 뿐만 아니라 신분 상승의 수단이기도 했다. 만주에서 여러 국가가 벌인 정쟁은 비정부 무장 세력이 서로 경쟁하는 국가들과 협력하거나 대항할 더 많은 선택지를 제공했다. - P187


두만강 국경 획정 과정은 동아시아 민족과 국가가 근대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를 남겼다. 이 과정은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이후 이 땅에 조선족이 정착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기존의 연구는 두만강 경계의 영토 주권 문제에 집중한 측면이 크다. 이 책은 연속성을 이야기한다. 시간적으로는 전통에서 근대의 과정이 이분법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전통을 극복하고 근대를 수용하는 과정이 공존하고 상호작용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공간적으로는 두만강을 단절된 경계선의 영역이 아닌 수많은 사람과 물자가 오랜 시간 교류하고 소통해온 연속된 공간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동아시아의 다변적 변경지대를 개념화하는 과정에서 유라시아대륙 양편 사이의 지적 연계의 역동성이 드러났다. 로렌 벤튼의 표현을 빌리면 무주지 개념이 보여준 여정은 "갈수록 더 서로 연결되는 세계 속에서 공간의 점진적 개념화에 관한 지배적 매력적인 서사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3세기에 걸쳐 지구의 다양한 지역 간에 이루어진 오랜 기간의 상호교류로 권력을 둘러싼 경쟁에 따라 공간과 법에 관한 지식은 다양한 형태로 생산 재생산되고 변형되었다. 두만강 국경 지대에 대한 인식의 전환은 그 사례이며, 이로써 우리는 유럽과 동아시아의 관계를, 특히 서로가 상대방의 역사적 발전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더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 P248

책을 읽고 난 후 한국사에서 다루는 한국 영토의 인식에 대해 생각이 많아졌다. 정권에 따라 역사 교육은 저마다 다르게 전개되고 자국사를 한편으로는 국수적이고, 다른 한편으로 근대화와 개발의 논리에 맞춰 가르친다. 이에 맞춰 과거사의 영토의 범위는 축소되고 확장되었다.
역사 인식에 다양한 관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배우고 수용하는 대로 익숙한 관점에서 바라보기 쉽다. 이 책은 그런 내 좁은 관점과 식견에 대해서 상기시키게 만들어주는 책이었다.


간도와 만주를 둘러싼 영토 경쟁과 함께 이 다변적 변경에서는 지적 차원에서 '탈영토화'와 '재영토화'가 진행되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의 대표 지식인들은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제시하면서 이 공간에 대하여 각각 민족주의적 제도주의적 식민주의적 계획과 구상을 제시했다. 각자의 구상은 상대방으로부터 지적 자원을 흡수했고, 서로 경쟁하면서도 서로에게 영감과 양분을 주며 강화했다. 이 다변적 상호작용 과정을 거치면서 만주, 특히 백두산의 개념은 그 환상이 벗겨졌다가, 합리화되었다가, 다시 환상이 입혀지는 과정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만주는 20세기 동아시아 정신의 역사에서 복합적이고 핵심적이며 독특한 위치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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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6-13 23: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국경이나 영토 등과 관련되면 항상 더 복잡해지는 거 같아요. 넘 재미있게 읽었어요 ~~

거리의화가 2022-06-14 06:44   좋아요 3 | URL
미니님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용이 많은데 다 담을 수가 없었어요ㅠ 국경과 영토의 의미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었습니다.

새파랑 2022-06-14 06: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딱 화가님이 좋아하실 스타일의 책이네요~!! 두만강이 저런 역사와 의미가 많았다니 놀랍기만 합니다. 역시 역사천재 화가님~!!

거리의화가 2022-06-14 06:47   좋아요 3 | URL
맞습니다 딱딱해서 제 스탈입니다. 두만강 국경선에 얽힌 스토리가 참 복잡다단하더군요. 리뷰 내용에 차마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숨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새파랑님^^

scott 2022-06-16 00: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간도 까지 우리 한반도 영역인데 ㅜ.ㅜ

국경의 밤이라는 시가 떠오릅니다 ^^

거리의화가 2022-06-16 08:56   좋아요 3 | URL
간도 땅에 우리 동포들이 왜 그리 많이 흘러들어가게 됐는지 기원을 알게 되니 달리 보이고 그렇습니다ㅠㅠ 먹고 살기 위해, 독립 운동을 위해 숨어들어간 곳이니까요~ 중국인들과의 마찰도 무시못할 일이었을텐데 그곳 생활이 결코 녹록치 않았을 듯합니다. 나중엔 일본인까지-_-; 1945년 이후에는 더 먼 땅이 되어버렸네요.

그레이스 2022-06-16 23: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 담아둡니다!

거리의화가 2022-06-17 09:11   좋아요 2 | URL
그레이스님 이 책 문체는 딱딱해도 두만강과 간도에 얽힌 한중일 삼국간 서로 다른 관점들을 엿볼 수 있을듯합니다. 도움이 되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