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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의 창조
거다 러너 지음, 강세영 옮김 / 당대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그동안 여성들의 역사는 왜곡되거나 지워진 경우가 많았다.
이 책은 기원전 4천년 이상부터 주로 고대 서양(메소포타미아, 히브리, 유대)의 현장에서 가부장제가 어떻게 정착되었는지 그 기원을 추적한다.
무엇보다 역사 속에서 여성 불평등의 기원을 살펴본다는 것 때문에 더 눈여겨보며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고대인들의 세계관이 담겨진 신화에는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이해하는 열쇠가 있다.
따라서 고대 시기 고전을 읽거나 공부하려면 역시 신화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고대 시기 관심이 없어서 신화를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다. 그래서 이 책의 신화 속에 표현된 은유나 상징, 개념들이 작가의 문장만으로는 곧바로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다행히 나 같은 초보자 독자를 위해서 작가는 다양한 역사 속 사례를 통해서 개념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해주고 있다.
처음 3장까지는 어렵고 난해하다는 느낌이다가 4장부터 갑자기 눈이 번쩍 뜨이더니 5장부터는 쏙쏙 머릿속으로 책 속의 문장들이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몇몇 문장에서는 공감이 가서 소름이 끼친 반면 반대로 분노해서 끓어오른 적도 있었다.
줄거리를 요약하기 보다는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발췌하는 것으로 소감을 정리하려 한다.
나는 여성노예와 부인-첩, 성서 속 여성, 그리스 철학 속의 상징들의 모습에 대해서 특히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여성노예들은 남성 노예와 달리 주인에게 성적 서비스를 해야 했다.
남성노예는 7년이 지나면 노예 생활을 청산할 수 있었는데 여성노예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
상업적 매춘이 여성들의 노예화의 기원이나 강화에 영향을 미쳤고 부족(국가) 간의 싸움이 포로(특히 여성)를 낳아 성적 학대로 이어지며 매춘과 빈곤의 악순환의 고리의 시작이 되었다.
후대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고대문명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종속과 부자유가 공존하였다. 바빌로니아 ·중국·이집트를 비롯하여 그밖의 다른지역에서도 가부장적 가족관계와 축첩제도, 그리고 외지인의 노예화가 공존하였다. 그러나 위계와 강요된 부자유의 개념이나 영구적 노예의 신분으로 대변되는 영구적 부자유(permanent unfreedom)의 관념이 발전 진화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고 보는 것이 논리적이다. 역사의 후반기에 모든 인간존재가 갖는 불가분의 권리로서 자유의 개념이 발달하는데 수세기가 걸렸을 것이다. 고대국가와 도시국가들에서 노예는 재산의 일종으로 간주되었지만, 동시에 일정 정도 보호받을 자격을 갖는 가구의 구성원으로 생각되었다. 노예제가 지배체계로 됨에 따라 노예신분은 점차 열등한 서열의 인간을 표시하게 되었고 노예 지위의 영구적 낙인은 미래세대까지 이어졌다. 만일 이런 유의 노예를 점진적으로 발전된 계층화 과정의 최종산물로 보고 또 가부장적 지배·보호 아래에 있는 부인을 이 과정의 최초 형태로 간주한다면, 첩은 이 두 형태 사이의 어딘가에 해당될 것이다. - P166
성서의 여성 차별에 관해서는 창세기의 히브리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본다. 왜 하필 창세기일까. 창세기에서 드러나는 위계 질서와 차별의 상징성 때문이다.
여기에서 모계혈통적인 가족 형태가 부계혈통적인 가족조직으로 변천되는 징후를 사례를 통해서 들여다보고 있다.
기혼 유대 여성은 어머니로서의 의무를 강조한다. 바빌로니아 여성은 재산을 소유하고 계약을 체결하고 남편 유산에 대한 지분을 처분할 권리를 가질 수 있었기에 비교가 된다.
히브리 남성은 자유로운 성적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던 반면 여성들은 순결을 강요받았고 모성의 중요성을 세뇌시켰다.
창세기에 있는 가부장들에 관한 이야기는 일부 부족들에서 모처거주적(matrilocal)이고 모계혈통적(matrilineal)인 가족조직이, 부처거주적(patrilocal)이고 부계혈통적(patrilineal)인 가족조직으로 변천되는 몇 가지 징후를 제시해 준다(레아와 라헬의 결혼 참조 한 남자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그의 아내와 결합하는 것에 대한 창세기 2:24 의 언급도 그렇게 해석될수 있다). - P294
조선시대 양반집 여성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결혼하면 남편의 아내가 되어 본인의 뜻을 펼칠 수도 없고 아들 낳는 것을 강요받았다. 아이를 낳지 못하면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며 냉대를 받고 소박을 맞았다. 첩을 들이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절이었다. 이것이 불과 몇 십년전까지 벌어지던 일이니 말 다했다.
과거 아들을 낳기 위해 많은 희생을 했던 한국의 어머니들이 떠오른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플라톤 사상의 비교는 볼수록 섬뜩함이 일었다.
서양 철학의 기원이 여성 불평등과 연관된다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비단 여성 문제 아니다. 서구 문명의 사상적 실체가 지극히 남성중심적이고 다양성에 대한 고려 자체를 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뿌리 깊은 가부장제가 이렇게나 오래된 역사인 것이구나 생각하면서 이 틀을 깬다는 것이 왜 이토록 어려운 일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쩔 수 없다며 여성에게 강요되는 것들을 앞으로도 얼마나 더 견뎌내야 할까 생각하면 갑갑해진다.
그래도 과거의 역사가 결코 멈춰 있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여성들의 요구와 노력으로 지금까지 왔다. 우리는 가부장적 사고와 관습에서 해방되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이어가야 한다.
페미니스트 세계관은 여성들과 남성들의 정신을 가부장적 사고와 관습에서 해방시킬 수 있을 것이며, 마침내 지배와 위계가 없는 세상, 진정으로 인간적인 세상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 P3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