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1: A World of Empires
찰스는 대부분의 유럽을 점유했음에도 더 많은 것을 원했다. 교황과 프랑스왕이 그를 두려워하기에 이르렀고 이탈리아 왕자도 찰스로부터 독립하기를 원했다. 찰스는 재임 기간 동안 전쟁에 수많은 비용을 쓰면서 점점 더 재정적으로 가난해졌고 스페인, 네덜란드, 이탈리아 땅을 아들인 필립에게 준다. 찰스는 동생인 페르디난트에게 신성로마제국황제 자리를 물려주었다.
콜럼버스 이후 콩키스타도르 항해가 시작되었다. 필립 2세가 남아메리카에 금을 찾는데 혈안이 되었고 스페인의 금광으로 마침내 돈을 끌어모으게 된다. 아프리카 땅은 점점 더 악화의 길로 치닫게 된다.

CH2: Protestant Rebellions
오늘날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영연합국은 같은 국가이지만 17세기만 해도 스코틀랜드는 독립국이었다.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는 5살 때 어머니인 Mary of Guise로부터 왕권을 계승했다. Mary of Guise는 가톨릭 신자여서 딸인 메리가 프로테스탄트에 물들까 프랑스로 보내 가톨릭 교도들 사이에서 13년 간 자라게 했고 몇 년 후 그녀는 사망했다. 스코틀랜드의 프로테스탄트 전도사인 John Knox는 여성(특히 가톨릭교도 여성)이 남자들을 제치고 왕권을 차지해서는 안 된다 주장했다. 당연히 메리는 동의할 수 없었고 18살이 되자 자신의 왕권을 찾기 위해 스코틀랜드에 입성한다. 그녀는 가톨릭교도였으나 프로테스탄트도 스코틀랜드 땅에서 잘 살아나가기를 바랐다. 그녀는 프로테스탄트 교도인 귀족 Darnley경과 결혼을 했다. Darnley는 메리보다 더 큰 권력을 갖기를 원해 프로테스탄트 귀족 일부와 함께 그녀를 감금하고 자신이 왕위에 오르는 계략을 꾸민다. 메리는 이 음모를 알게 되었지만 태중에 아기가 있어 그를 용서하기로 한다. 아기가 태어나고 얼마 후 Darnley 집이 통째로 날아가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람들은 메리가 살해한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프로테스탄트 귀족들은 메리의 아들인 제임스를 왕위(13개월짜리 아기)에 올리고 메리는 갇힌다. 메리는 탈출하여 영국으로 가 사촌인 엘리자베스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엘리자베스는 그녀의 힘이 두려웠고 결국 메리는 교수형에 처해진다.

CH3: James, King of Two Countries
엘리자베스 여왕이 1603년에 사망하자, 가까운 친척이었던 메리의 아들인 제임스 6세가 영국 왕의 자리에 오른다. 당시 영국은 세 개의 종교 집단이 맞서고 있었다. 가톨릭, 성공회 교도, 청교도다. 이들은 제임스 6세에게 각자의 요구를 들어주기를 청원한다. 이 와중 가톨릭교도인 Robert Catesby와 Guy Fawkes가 제임스와 프로테스탄트 의회 지도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의회 건물을 날려버릴 계획을 세우고 건물 지하 터널을 몇 달동안 판다. 그러나 Guy Fawkes가 지하실에서 성냥을 소지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저세상으로 가고. 제임스는 영국에서 숨어 있는 가톨릭 신자들을 법으로 압박한다. 의회도 불만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는 법 위에 왕이 존재하는 것이라 단언한다. 오늘날 제임스는 성경을 새롭게 번역(킹 제임스 성경)한 것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
제임스 왕은 필립 2세가 남아메리카에 금을 캐는 것을 보고 부러워 북미에 금을 찾고자 부자들을 3대의 배를 태워 보낸다. 1607년 5월 13일 우여곡절(돌풍을 만나고 등등...) 끝에 미국 땅을 밟았다. 원주민인 포하탄을 만난 영국인들은 마을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리더인 존 롤프와 포하탄의 딸인 포카혼타스가 결혼한다. 영국인들이 정착한 곳은 제임스타운으로 현재도 그대로다.

CH4: Searching for the Northwest Passage
사뮈엘 샹플랭은 1604년 프랑스 앙리4세의 명을 받은 뒤 몇몇 프랑스인들을 이끌고 캐나다를 탐험한다. 여러 곳을 조사한 끝에 마침내 퀘백에 정착하여 거주 환경을 조성했고 이것이 오늘날 퀘백주의 시작이었다.

CH5: Warloads of Japan
영국이나 프랑스 탐험가들이 북서쪽을 향하는 동안 일본에서는 약해진 황위에 다이묘들이 영지 제각각을 다스리며 내전 중이었다. 혼란한 정국을 통일한 이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다. 그러나 그는 일본을 정복하는데 성공했지만 한국을 지나 대륙인 중국 진출에 실패했다. 그가 죽고 나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히데요시의 권력을 이어받는다.

CH6: New Colonies in the New World
신대륙에 많은 청교도인들이 들어가 자리를 잡은 후 플리모스 플랜테이션 북부에 2천명이 넘는 청교도인들이 매사추세츠에 입성했다. 오늘날의 매사추세츠 이민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신대륙에 뉴잉글랜드, 뉴프랑스, 뉴스페인이 이런 식으로 형성되었다.
독일은 아직 그 기반이 없는 상태였다가 암스테르담에 기반을 둔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가 뉴암스테르담에 자리하며 세력을 자리잡을 수 있었다.

CH7: The Spread of Slavery
뉴 암스테르담을 원했던 영국인들은 모피 부역으로 영국에 돈을 가져다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나 미국에 정착한 영국인들은 많은 부를 생산해내지 못했다. 킹 제임스는 제임스타운 식민주의자들이 금을 찾아내기를 희망했지만 버지니아의 흙은 보석이나 값비싼 광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영국은 John Rolfe가 버지니아에서 담뱃잎(green gold)를 사들여서 부를 끌어모으게 되었다. 담배를 비롯한 플랜테이션 상품의 삼각 무역으로 인해 점점 더 많은 노예들이 미국으로 가게 되었다.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땅의 일부를 점령하기를 원했고, 서아프리카의 Ndomba가 그 대상국이 되었다. 양국 간 전쟁이 30년 넘게 이어졌는데, 포르투갈은 Ndomba 왕가의 공주인 Nzinga를 포섭하여 기독교인으로 개종하게 만들고 평화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포르투갈의 욕심이 그렇게 간단할 리 없었고 결국 포르투갈은 야심을 드러내 Ndomba를 다시 쳐들어온다. 수년간 싸움 끝에 포르투갈인들은 마침내 전투를 포기하고 물러갔고 Nzinga는 평화롭게 Ndomba를 죽을 때까지 다스릴 수 있었다. 그녀가 죽고 나서 고국인들이 그녀를 전쟁의 신으로 불렀던 것처럼 포르투갈인들은 나라명을 ngola로 명명했고 이것이 오늘날 앙골라가 되었다.

CH8: The Middle of the East
중동에 모하메드 종교를 기반으로 한 이슬람 제국이 들어섰다. 한편으로 아시아 유목 세계에는 투르크가 등장했다. 그들은 어느 순간 세력을 키워 아랍군보다 더 군대력을 발휘하게 된다. 투르크계 중 Ghaznavids는 이슬람 율법을 거부하고 페르시아 땅으로 건너갔는데 몽골의 침입으로 페르시아는 무너졌다. 이스마일은 동족과 함께 몽골군을 공격하여 승리하여 사파비 왕조를 세운다. 압바스가 황제가 오른 뒤 전쟁으로 파괴된 나라가 재건되었다. 투르크 군을 기술과 무기를 들여와 훈련시키고 무역을 통해 경제를 부흥시켰다. 그러나 갈수록 흉포한 정치를 하고 형제들과 자식이 자신의 권위를 노릴까 두려워하여 의심한다(아들은 심지어 죽임).
투르크의 지도자 중 하나였던 오스만은 추종자들이 지중해 북서부에 모여 살도록 했고 투르크는 오스만 제국이 되었다. 중동에는 페르시아와 오스만이라는 두 강자가 집권하게 되었다. 오스만 투르크는 페르시아, 비잔틴 제국을 넘어 유럽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오스만 투르크에 부가 쌓이자 집권자들은 부패의 늪에 빠지고... 무라드 술탄은 자신의 권위를 찾기 위해 칼을 갈고 기다렸고, 시간이 되었을 때 거침 없이 정적들을 제거했다. 나중에는 무자비하기까지 했다.

CH9: The Western War
무라드 술탄이 중동을 두고 오스만 투르크와 전투를 하고 있을 때 유럽은 30년 전쟁(1618~1648)으로 피해를 겪었다.
당시 독일은 페르디난드 2세가 통치자라는 명목을 가졌으나 여러 개의 지역마다 세력이 있었고, 종교도 달랐다. 페르디난드 2세는 가톨릭 신봉자였는데 프로테스탄트인 보헤미아 지역이 가톨릭 법률에 항의하며 들고 일어나며 전쟁이 시작되었다. 페르디난드 2세는 신성 로마 제국까지 가지고 싶은 욕구를 가졌고 독일의 7 지역의 왕자들을 포섭하고, 오스트리아, 스페인까지 끌어들여 자신을 뽑아달라 설득했다. 이때 덴마크 왕인 크리스티안 4세는 페르디난드 2세의 권위를 두려워하여 3만 군대를 이끌고 독일로 쳐들어온다. 페르디난드 2세는 알버트 월런스타인 장군을 기용하여 대응한다. 스웨덴 왕인 구스타부스 2세(프로테스탄트)는 페르디난드 2세를 대응하기 위해 적극 준비를 하여 덴마크 밖으로 그들을 몰아낸다. 스웨덴인과 독일인은 프로테스탄트 연합이 되어 독일의 심장부에서 페르디난드의 수도인 비엔나를 향했다. 구스타부스가 전투에서 사망하자 프로테스탄트 연합은 쪼개지고 전쟁이 장기화되자 독일의 각 지역의 리더들과 페르디난드는 평화 협약을 맺어 나갔다. 그런데 프랑스가 페르디난드에게 전쟁을 선포하여 전쟁은 이어졌다. 각국의 지도자들이 사망하면서 전쟁의 동력은 점점 떨어져나갔고 베스트팔렌 조약에 서명을 했다. 그러나 프랑스와 스페인은 11년 전쟁을 더 하여 1659년까지 이어졌다.

CH10: Far East of Europe
도쿠가와 이에야쓰 사후 아들인 히데타다가 차기 쇼군이 된 뒤 유럽에서는 30년 전쟁이 치뤄지고 있을 때 예수회를 비롯한 가톨릭은 철저히 배제되었다. 그 바람에 기독교인이 많이 있었던 시마바라에 폭동이 일어났으나 철저한 진압으로 그들은 항복하고 순교의 길로 갔다(<침묵>의 내용이 이를 배경으로 함). 일본은 그 뒤 한참동안 가톨릭 선교를 철저히 배제했고 내면을 가꾸는 선불교(신라 8~9세기 무렵에도 선불교가 유행)가 유행했다.
중국의 명이 쇠퇴할 무렵 이자성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는 진압당했고 청 왕조가 들어섰다. 민족을 철저히 가르고 분리했던 시기를 지나 강희제 때 들어서 민족 간 통합 정책을 펼치면서 그는 중국을 부강하게 했다.

CH11: The Moghul Emperors of India
인도는 자한기르의 아들 샤 자한이 왕이 들어서고 나서 인도 전역을 부강하게 만들었다. 그에게는 아내 뭄타즈 마할이 있었는데 아내 사랑이 지극했다. 하필이면 전쟁을 함께 나갔다가 아내가 병을 얻어 사망한다. 아내가 죽자 너무 많이 울어서 시력을 잃을 정도였다고… 그는 2년의 애도 기간 후 타지마할을 짓는다.
샤 자한은 아들 중 현명한 아우랑제브를 놔두고 다라라는 아들에게 애정을 쏟았다. 아우랑제브는 반란을 일으켰고 아버지의 권위를 빼앗아 등극한다. 아우랑제브 시기 영국은 벵갈 지역에 도시를 내어 공장을 짓고 항구를 만들었는데 그곳이 현재의 캘커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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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4-09-14 1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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