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식사준비로 분주했었다. 소파 위에 두었던 휴대전화가 울리는데 그저 놀러나간 아이의 돌아오겠다는 전화라고 생각하여 받지 않았다. 한창 싱크대에서 찬거리 재료들을 다듬고 씻느라 손이 젖어 있어 더 그러했다. 그런데 예사롭지 않게 전화가 연이어 다시 울렸다가 끊어지기를 반복하였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수건에 손을 닦고 소파 쪽으로 가서 전화기를 집는데 아이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전화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아이 친구의 목소리였다. “아줌마, 저, 현수 친구 규은이 인데요. 현수가 지금 그네에서 떨어져서 울고 있어요. 많이 아픈 것 같아요.”하고 말하였다. 정말 아이가 서럽게 우는 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어느 놀이터인지 확인하고 바로 그곳으로 달려갔더니 그네 옆 의자에 앉아 아이는 한참을 서럽게 울고 있었다.
마침 남편도 함께 갔는데 남편은 대뜸 “그만 울어.”하고 말하는 게 아닌가. 나는 “많이 아픈 거야”하고 묻고는 아프면 울 수 있어. 괜찮아, 하고 등을 토닥였는데 아이는 계속해서 울기만 하였다. 해서 아이를 데리고 정형외과로 곧바로 갔다. 엑스레이 촬영결과 아이는 발목 쪽 성장 판 골절 진단을 받았고, 약간의 금이 간 것도 확인하였다.
한 4주면 나을까했는데 의사선생님은 6주는 걸릴 것 같다고 하였다. 보통 성인의 경우라면 12~16주는 걸릴 수도 있지만 성장기아이니까 금방 좋아지는 거라는 말을 덧붙여했다. 그리고 아이는 깁스를 하고 소염진통제 처방을 받고, 목발을 받아들고 왔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다친 상황이라 아이에게는 땀내가 진동을 하였다. 깁스한 다리에 커다란 비닐봉투를 씌우고 테이프로 칭칭 감아 물이 새지 않게 하고는 머리를 감기고 몸을 구석구석 씻겼다. 그러고는 남편이 아이 방에서 자고 아이와 한 침대에서 잠을 자는데 밤새 끙끙거려서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나대로 혼란스러운 날이었다.
이틀을 집에서 돌보았다. 목발을 짚고 천천히 걷는 연습도 하고 다리의 붓기가 잘 빠지도록 얼음찜질도 하고 아이에게 온 신경이 곤두세워져 있었다. 삼일 째에는 학교에 보냈다. 목발을 짚고 학교에 가는 게 창피하다고 하였지만 막상 잘 지내고 돌아오니 결석하지 않고 가길 잘 했다고 하였고, 그 뒤로는 매일 아침마다 등교시키고 끝나는 시간에 맞춰 하교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교실 복도에서 목발을 짚고 걷는 아이를 잘 모르는 아이들이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는 것이 느껴지면 아이는 의기소침해진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아이에게 이야기 한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여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하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누구나 넘어져서 다칠 수 있고, 다쳤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고 지내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하였다.
아이는 병원 처치실에서 통 깁스를 하며 선생님들이 했던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남자선생님도 그네 타다가 자기처럼 떨어진 적이 있었다고 그러면서 하는 얘기가 ‘그네를 타면 아이들이 떨어져서 다칠 확률이 정말 높은가 봐요.’하며 웃었다고, 그랬더니 옆의 여자선생님은 선생님 딸도 그네에서 떨어졌는데 얼굴을 심하게 다쳐서 더 많이 속상했었다고 ‘너는 다리만 다쳐서 얼마나 다행이니.’하고 말했다며 웃었다. 아이는 자기만 다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위안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또 앞으로는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새 이주일 정도가 되었고, 아이는 통증은 거의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의사선생님은 엑스레이를 다시 찍어보고, 비교해보며 얘기하기를 잘 나아가고 있는 중이라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살짝 발을 대는 정도는 괜찮을 것 같다고 안심을 시켜주어서 이제 거의 나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확연히 전번에 보였던 금간 자국이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서는 잘 아물고 있는 것 같았다.
골절에 좋은 음식하면 아무래도 사골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정육점에 가서 사골과 우족을 사와서 밤새 핏물을 빼려고 담가두었는데 밤새 뒤척이느라 못 자고 새벽같이 일어나서 사골과 우족의 불순물을 제거하여 하루 종일 끓였다. 8시간 이상을 끓이고 다시 물을 갈아 8시간 이상을 끓이고 세 번까지는 괜찮다하여 조금 물을 적게 잡아 8시간 이상을 끓여내었다. 그렇게 끓여낸 국물에서 기름기를 제거하려고 일부러 김치냉장고에 넣었다가 하얀 기름은 걷어내고 세 번 끓여낸 국물을 섞어서 하루 한 끼 이상은 곰탕을 먹였다. 큰애는 곰탕 질린다고 하였지만 다친 작은애는 잘 먹었다. 얼른 낫고 싶다는 아이의 마음이 보인다. 게다가 언젠가 홍화씨가 뼈를 잘 붙게 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서 홍화씨 환을 사서 아침, 저녁으로 먹으라고 하였더니 스스로 알아서 잘 챙겨 먹는다.
다리를 다치고 아이는 많이 불편해하지만 밝게 지낸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이렇게 다쳤는데 어떻게 안 아플 때처럼 웃을 수 있는지 궁금해 한다고 한다. 그건 나도 정말 많이 고맙게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다. 언제나처럼 웃고 떠들고, 보통처럼 활기찬 아이의 에너지가 넘쳐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나도 일부러 알록달록한 색깔과 예뻐 보이는 옷을 골라 입힌다. 평소보다 더 예쁘고 단정하게 입히려고 노력하는 것을 아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기 때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엄마의 손길을 받는 아이는 공주대접을 받는 것 같다고 한다. 아이가 자라고 나서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혼자 해결하도록 하였는데 아이는 가족들에게 온갖 보살핌과 도움을 받고 있다. 한편 다친 게 좋기도 하다는 얘기를 하며 웃는 딸아이의 천진함이 얼마나 갈까 생각하니 지금 이 일이 그리 나쁜 일만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마음 생각하기에 달렸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다쳤던 상황만 생각하면 좀 조심하지, 어째 그렇게 조심성이 없어. 하고 다그치는 말을 해야 할 것 같지만,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다칠 수 있다 생각하고, 한편 이 일로 조심성이 더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니 앞으로는 지금보다 훨씬 나을 수 있겠다는 기대가 생겨서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만하길 정말 다행인 게 아닌가하고 말이다.
딸아이의 골절은 시간이 지나면 치유가 된다. 오히려 더 튼튼해질 것이다.
외상은 치유의 과정과 치유가 끝난 시점까지 모든 게 눈에 확연히 보인다.
그래서 사실은 아이가 다쳤다고 했을때 크게 걱정하지 않았었다. 시간이 지나면 나을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치유는 쉽지가 않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직접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갔다고해서 나의 모든 것을 정지상태로 두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바라는 바가 아닐 것 같다.
갑작스러운 이별에 모든 것이 허망하다고 생각될 수 있고, 현재가 아무 의미없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의 상처가 아물었으면 좋겠다.
다시 일상을 살아낼 힘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리운만큼 더 열심히 살아냈으면 좋겠다.
그리고 잊지 않고 끝까지, 더 오래 기억할 수 있게, 만들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