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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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필요없는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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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계속 문제가 되는 것이 대통령의 월권이다.

정의화의 '뚝심' "의회민주주의·삼권분립 지켜갈 것"

 

행정부의 수장 대통령이 입법부의 대표를 자기 아래로 생각하는 것은 큰 문제다. 헌법의 기본원리이자, 대한민국 운영의 원리를 저벼리는 행위다. 그런데 행정부가 항상 잘하는 것은 아니다. 행정부는 1997년 IMF 경제위기로 그 한계를 보여줬다. 행정부가 다시 입법부 위로 올라온 근 7-8년간 우리나라가 제대도 돌아가고 있지 않다. 이미 MB정권에서도 경제위기를 겪었고, 지금도 그렇다. 나라 망한다. 행정부 가만히 있으라, 수장인 대통령도...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 원수의 지위를 갖지만 국내적으로는 행정부의 수반일 따름이다. 우리가 흔히 권력구조를 분류할 때 대통령제라는 말을 쓰는데, 이 말 때문에 오해가 생긴다. 대통령제의 기저 원리는 삼권분립이다. 입법부와 행정부와 사법부가 분립하는 가운데 입법부가 선차적 위상을 갖는 게 삼권분립의 원리다. 분립하는 삼권을 관통하는 것이 바로 법치다. 법을 만드는 사람을 국민이 선출하고, 그 법에 의해 이해관계가 조정·관리되고, 법을 기준으로 옳고 그름이 판정된다. 이 법을 만드는 곳이 입법부이기 때문에 삼권 중에 입법부가 우월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129쪽)

 

관료 중심의 국가 발전은 어느 정도의 소득수준으로 성장하는 데는 매우 유효한 전략이다. 조직이 전문화될 수록 더 큰 역량이 발휘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 접어들어 사회가 다원화되기 시작하면 관료 중심체제는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법안을 만들어내는 전문적인 테크닉보다 서로의 입장이 상충되는 이해관계자들이 집단적으로 자기 의견을 표출하고 걸러내는 작업이 더욱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다름의 문제에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일은 전문화된 관료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다. 이 일은 행정부가 아닌 의회의 몫이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표자들의 논의를 통해 걸러져야 한다. 따라서 한 사회가 발전할 수록 관료의 손에서 선출직 대표에게로 권한이 넘어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210쪽, 뭐라도 합시다)

 

 

정치불신, 그 중에서도 특히 국회에 대한 불신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국회가 잘하는 게 없으니 불신의 강도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국회가 왜 못하는지는 짚어볼 문제다. 입법부가 국정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표현처럼 한국은 행정부 우위의 심리적 토대가 아주 튼튼하다. 국회도 국민의 대표로 구성되는 만큼 그들의 판단대로 입법 과정을 처리할 권한을 갖고 있다. 행정부는 잘하려고 하는데 입법부가 당리당략 때문에 제동을 걸고 있다는 식의 이해는 심각한 왜곡이다. 군사독재정권의 잔재다. 헌법에 입법권은 국회에 있다는 산순한 사실에 비춰보더라도, 입법부는 행정부가 하는 일에 열심히 보조를 맞춰야 한다고 보는 것은 잘못이다. 과거 정통성이 부족한 군사정권의 독재자들은 입법부를 거수하는 '통법부;로 만들었다. 걸핏하면 날치기를 일삼았다. 몸싸움이 벌어지는 국회를 누군들 좋아하랴. 국회 불신이 높아질수록 대통령에 대한 기대는 높아지고, 대통령이 국민의 대변자라는 인식은 강해졌다. 군사정부가 아니더라도 대통령은 입법부와 제도적으로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입법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수록 득을 보기 마련이다. 그 때문에 행정부는 끊임없이 '지질한' 국회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52쪽, 이철희의 정치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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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합시다
이철희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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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과 여당, 그리고 각 정당내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움질이다. 꼴보기 사납나? 난, 싸움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뭐 새누리당이야 사람으로 모이니 정책 보다는 사람들간의 헤게모니 싸움일 것이고,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은 각 계파마다 생각이 다르다. 당연히 싸움이 날 수 밖에 없는 구조 아닌가. 사람도 지역문제를 우선에 두는 사람이 있고, 경제문제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듯이 말이다. 열심히 싸우는 게 정치인의 바른 문제가 아닐까 싶다. 그런 싸움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누가 생떼를 쓰는지, 누가 다른 생각을 하는지 들여다 봐야 할 것이다.

의회는 원래 시끄러운 도떼기시장이다. 지역에서 각 세력과 대표들이 와서 자원을 배분받기 위해 법을 만드는 이곳에서는 서로 많이 가져가기 위해 싸울 수 밖에 없다. 비록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더라도 말이다. 싸운다는 것은 노력한다는 뜻이다. 국회에 모인사람들은 개인이 아니라 대표성을 가진 사람이며, 따라서 누군가의 이익을 지켜줘야 할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싸워야 한다. (16쪽)

 

우리나라 진보의 역사는 짧지 않다. 보수가 오랫동안 권력을 잡아서 그렇지, 진보 역시 오랫동안 존재한 엄연한 정치집단이다. 그러나 최근의 선거를 보면 지고만 있다. 김대중, 노무현의 리더십을 넘어서는 인물도 보이지 않고, 정책도 시민과 유리되어 있다. 자신들만의 세상에 갖혀 버린 것은 아닌가 걱정된다. 최근 안철수의 탈당으로 새정치에 사람들이 모여들고는 있지만 내부의 혁신이 없는 새정치가 어떤 정책이나 리더십을 보일 지 걱정된다.

 

진보는 자신이 옳은 쪽, 선한 쪽이라는 믿음이 교조로 굳어진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이러한 사고방식이 진보에 팽배해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선거 때 마다 '어떻게 박근혜에게 표를 줄 수 있느냐'는 식의 얘기를 꺼내 든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유권자에게 투표는 가치의 문제가 아니었다. 누가 선이고 악이냐를 따지는 과넘이 아닌 누가 현실적인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을까를 가리는 관점에서 '왜 박근혜를 좋아할까'라는 질문을 던져야 했다. 박근혜는 독재자의 딸이라고 얕보고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대중을 욕할 게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를 탓해야 한다. 독재자의 딸에게 표를 던질 정도로 진보가 못났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19쪽)

 

 

 2000년대 이후로만 보면 의제도 잘 설정하는 등 시민에 대한 전략, 선거에 대한 전략은 진보보다 몇 수 위다. 시민들이 원하는 바를 콕 집어낸다. 하지만 태생적 한계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대한민국 보수의 뿌리는 생각보다 깊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시대의 사림, 그중에서도 노론이 대한민국 보수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왕조 500년 중 300년 가까이 집권한 노론은 조선 말 나라를 잃자 곧 친일파로 변신한다. 해방 이후에는 김구 중심의 통일 노선과 충돌하는 이승만 중심의 단정 노선의 주축이 되는데 이들이 바로 친미 세력으로 발전한다. 이처럼 노론, 친일, 단정, 친미로 이어지는 일련의 세려이 대한민국 보수의 역사, 보수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다. 근대사로 들어오면 이들은 '성장'이란 아젠다를 내세운 산업화 세력으로 발전한다.
...
북한을 공포의 대상으로 이용하는 반공논리는 한편으로는 야당을 믿을 수 없다는 논리로 발전하기도 한다. 자신의 장점을 내세우기보다는 여전히 상대를 부정하는 논리로 자신의 정당성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보수의 태생적 비극이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의 보수가 승승장구하는 것은 도대...체 왜일까? 이런 논리가 그나마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산업화와 고도성장 덕분이다. 보릿고개를 넘겼다는 자부심은 보수의 존재 이유가 됐다. 문제는 이것이 생명을 다했다는 것ㅇ다. 우리 사회의 담론은 산업화를 거쳐 이미 민주화로 넘어간 지 오래다. 그런데 보수는 산업화 이후 다른 어젠다를 만들어내지 못한 채 여전히 헤매고 있는 것이다.
....
지금의 새누리당은 역대 여당 중 가장 공격적인 여당이라 할 만하다. 야당도 아닌 여당이 싸우기를 좋아하는 것은 긍정적인 자기 플랜이 없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시대 담론을담보하지 못한 부작용이 지금의 호전적인 여당을 만들어냈다. (107~109쪽)

 

이명박 정부를 넘어 박근혜 정부에서 조심해야 할 것이 바로 관료사회의 부활이다. 행정부를 입법부, 사법부의 위에 두는 행포 역시 관료사회와 다르지 않다.

관료 중심의 국가 발전은 어느 정도의 소득수준으로 성장하는 데는 매우 유효한 전략이다. 조직이 전문화될 수록 더 큰 역량이 발휘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 접어들어 사회가 다원화되기 시작하면 관료 중심체제는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법안을 만들어내는 전문적인 테크닉보다 서로의 입장이 상충되는 이해관계자들이 집단적으로 자기 의견을 표출하고 걸러내는 작업이 더욱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다름의 문제에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일은 전문화된 관료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다. 이 일은 행정부가 아닌 의회의 몫이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표자들의 논의를 통해 걸러져야 한다. 따라서 한 사회가 발전할 수록 관료의 손에서 선출직 대표에게로 권한이 넘어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210쪽)

 

사실 관료주의의 결과는 1997년 IMF 경제위기였다. 그리고 이명박 정권, 박근혜 정권에서 부활한 관료주의 이명박정권에서는 미국발 금융위기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박근혜 정권에서는 아무것도 못하고 있고, 나라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관료주의의 폐해를 시민들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가난한 홍길동이 자기 삶을 바꾸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뿐이다. 하나는 개미처럼 일해서 열심히 부를 축적하는 것, 흔히 말하는 아메리칸 드림이다. 개미처럼 일하면 성공할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자신을 채찍질하는 자기계발서가 유행하던 시대, 이른바 국민성공시대도 있었다. 성패의 기준을 내 노력에서 찾는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러한 시대에도 성공하는 사람은 소수였을 뿐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실패를 맛봐야 했다. 사회가 발전하면 발전할 수록 계층간의 이동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소득의 양극화가 심해져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을 볼 수 없다.

 

이런 현상은 아메리칸 드림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자 자기계발서가 퇴조하고 인문사회 서적이 부상했다. 개인의 실패에 대한 문제를 사회구조 속에서 찾고자 하는 노력이 나타났다. 개인의 행불행의 문제는 이제 사회적 해법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외침이 커졌다. 제레미 리프킨의 비유를 빌리면, 아메리칸 드림이 아닌 유러피안 드림을 꿈꾸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사회를 꿈꾼다면 경제와 정치의 긴장관계는 더욱 첨예해질 수밖에 없다. 정치는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차원에서 삶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결국 정치 시스템을 이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164쪽)

 

 

이 책을 읽는다면 우리나라 정치를 한번에 읽어낼 수 있다. 그리고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은 어떤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는지도 보이고, 지역감정의 근원을 알수 있는 등 참 유용하다. 그리고 그 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를 무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지랄 같은 사실은 내가 정치를 외면할수록 누군가 이득을 보고 있다는 점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사회의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은 몇 가지 안 된다. 시위에 나서는 직접적 행동도 있고, 단체를 만들어 활동할 수도 있지만 부담이 만만치 않다. 이 중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쉬운길이 투표나 정치참여다. 어차피 내 삶에 영향을 주는 법률은 국회에서 만들어진다. 따라서 그 국회에서 내 입장을 살펴서 법을 만들도록 하는게 유효한 방법이다. 내가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회적 결정이 미뤄지지는 않는다. 많이 가진 이들이 더 열심히 투표하는 현상에서 알 수 있듯이, 불행하게도 정치는 참여하는 이들의 의견만 반영되기 마련이다. 결국 내 삶을 돕겠다고 하는 정당과 후보에 표를 주고, 지지를 보내는 정치참여야 말로 내 삶을 바꾸는 가장 쉽고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다. 그래서 싫어도 외면해선 안되는 것이 정치다.(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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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다. 사실 먹고, 자고, 싸고 다 정치와 관련되지 않은 것은 없다. 국민의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은 정치밖에 없다. 그러나 정치에 대한 불신은 너무 심하다. 아마도 정치를 고귀한 것으로 생각해서 인 것 같다. 정치는 고귀하지 않다. 사람들의 생각이 다르니, 매일 다툼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그러면서 서로 타협하는게 정치다.

"의회는 원래 시끄러운 도떼기시장이다. 지역에서 각 세력과 대표들이 와서 자원을 배분받기 위해 법을 만드는 이곳에서는 서로 많이 가져가기 위해 싸울 수 밖에 없다. 비록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더라도 말이다. 싸운다는 것은 노력한다는 뜻이다. 국회에 모인사람들은 개인이 아니라 대표성을 가진 사람이며, 따라서 누군가의 이익을 지켜줘야 할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싸워야 한다." (16쪽, 뭐라도 합시다)

 

몇 권의 책을 골라봤다. 제목으로 보자면 <이철희의 정치썰전>으로 정치를 드러봤으니, <뭐라도 합시다>의 방법은 바로 <청년이여, 정당으로 쳐들어가라> 그랫 <이기는 야당을 갖고 싶다> 이다.

 

물론 내용은 그렇지는 않다. 한결같이 정치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왜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야당에 대한 아쉬움과 비판도 담겨있다. 이기는 야당을 갖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정치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는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정치가 달라지기를 기대하는 건 로또 당첨보다 더 비현실적이다. 정치가 달라지면 그때 정치에 관심을 갖겠다는 자세는 쇠붙이가 썩기를 기다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치를 바꾸려면 보통의 시민이 정치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그래야 정치가 정치인의 놀이로 왜곡되지 않고 보통사람의 일상이 된다.

(7쪽, 뭐라도 합시다)

 

 

선진국에는 상당히 젊은 나이에 정부 수반에 오른 정치인들이 꽤 많다. 영국의 존 메이저는 47세에, 토니 블레어는 44세에 각각 수상이 됐고, 버락 오바마는 47세에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다. 20대 초반부터 지역사회 혹은 정당의 기초 조직에서 활동하면서 경력을 쌓아왔다. 존 메이저가 시장통에 설치된 연단 위에 올라가서 연설을 하기 시작한 것은 21세 때였다. 토니 블레어는 22세에 노동당에 가입해서 정치를 시작했고, 오바마도 대학 재학 중이던 20세에 첫 정치 연설을 했다. (307쪽)

 

우리가 경쟁해야 할 국가의 정치인들이 20년 이상 경험을 쌓고 전문성을 키운 사람들인데 비해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은 별다른 준비 없이 다른 분야에서의 경력을 토대로 정치를 시작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지기까지 한다.(308쪽)

 

정치는 전문적인 영역이다. 경험도 반드시 필요하다. 인격이 고매하다거나 머리가 좋다고 해서 무조건 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다른 분야에서 명성을 쌓은 사람들이 정치판에 와서 실수를 저지른 후에 흔히 "이번에 많이 배웠다. 다음에는 더 잘하겠다. "라고 한다. 그러나 정치란 공적인 일이고 그 결과는 사람들의 삶에 즉각 영향을 미친다. (309쪽/이기는 야당을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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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의 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
이종필 지음 / 동아시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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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성이론을 향한 일반인들과 이종필교수의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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