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인가 서울시청에 갔다가 스피커 크게 틀어놓고 빨간 조끼 입고선 박원순 시장을 비난하는 기독교인들을 본 적이 있다. 동성애 문제 때문이었다.

 

순간 드는 생각은 이거였다. 과연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면 뭐라 하실까? 외려 동성애자들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시고 동성애자들을 핍박하던 기독교인들에겐 "왜 나를 핍박하느냐?"고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책을 읽다가 든 생각인데, 만약 2차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나지 않고, 아직 우리가 일제치하에 있다면 그 기독교인들은 그냥 말만 바뀐 사람들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전범으로 가득한 신사참배에 앞장서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머리에 스친다.

 

 튜링은 콜로서스라는 세계 최초의 컴퓨터를 개발해 에니그마의 메시지를 판독하는데 성공한다.
에니그마의 판독이 없었다면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어쩌면 제2차 세계대전은 독일의 승리로 끝났을 수 있다. ... 연한군이 승리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여전히 '대일본제국'의 2등 시민으로 일왕을 섬기고 아베 신조 총리 밑에서 살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독일과 일본의 세계 정복 망상에서 우리를 구해준 튜링의 삶은 비극적이었다. 당시까지 영국에서 불법이었던 동성애자였던 튜링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체포되어 화학적 거세를 당한다. 미국 입국이 금지되고 더 이상 국가 안보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없게 된 튜링은 1954년 자살을 선택하고 만다. (187-188)

김대식의 말을 한번 더 고민해야 한다.

 

뇌는 비논리적이고 그룹 이기주의로 가득찼지만 민주주의는 개인에게 현명함과 타인에 대한 인내심과 배려를 요구한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그렇게 어렵고 우리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수적인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2의 기계 시대 - 인간과 기계의 공생이 시작된다
에릭 브린욜프슨 & 앤드루 맥아피 지음, 이한음 옮김 / 청림출판 / 201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불과 10년전만 하더라도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에 대해 그다지 크게 평가하지 않았다. 2004년의 책에서는 운전이라는 것이 모든 정보를 집합해서 순간적인 판단을 해야 하기 때문에 컴퓨터가 쉽게 대체할 수 없다고 했다. 실제 그 후에 있었던 자율주행차 경주에서 아주 조악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불과 10년만에 실제 운행하는 자율주행차를 마주하고 있다.

 

'모라벡의 역설'이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공학이 인간에게는 아주 간단한 일이 엄청난 연산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인공지능, 로봇에는 어렵다는 것인데, 생각보다 개선이 빠르게 되고 있다.

 

이에 저자들은 체스판의 후반부라는 예를 들어 순식간에 인공지능과 결합된 기계화의 시대가 올 수 있다고 본다. 체스판의 후반부란 체스판 한칸에 정확히 두배씩 늘어나는 원리인데, 후반부에 들어서면 예상할 수 없도록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것을 눈으로 보고 있다. 2000년대 후반 퀴즈게임 제퍼디에서 IBM의 인공지능 '왓슨'이 우승하는 것을 경험했고, 그리고 2016년 바둑에서도 인공지능의 경이로움을 경험했다.

 

제2의 기계 시대의 기하급수적 성장, 디지털화, 재조합 혁신 능력 덕분에 인류가 역사상 가장 중요한 유례없는 사건 중 두가지를 일으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쓸모있는 인공지능을 출현시키고 공통의 디지털망을 통해 세계 대부분의 사람을 연결한 것이다.

이 두가지 발전은 그중 하나만으로도 우리의 성장 전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을 것이다. 하물며 둘은 결합함으로써 육체노동이 이루어지는 방식을 영구히 바꾸어놓은 산업혁명 이래로 가장 중요한 것이 되었다.

인지적 작업을 완수할 수 있는 기계는 물리적 작업을 해낼 수 있는 기계보다 더 중요하다. 그리고 현대 인공지능 덕분에 우리는 지금 그런 기계를 갖고 있다. 우리의 디지털 기계는 협소한 틀을 벗어나 패턴인지, 복잡한 의사소통 등 오로지 인간만이 독차지하던 영역들에서 다방면으로 능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118쪽)

 

그러나 이런 자동화, 인공지능화는 소득불균형을 더 가속화 시킬 수 있다.

 

우리 대다수는 어떤 원형을 참조해 추론하는 데 익숙하다. 정치가는 '평균적인 유권자'를 이야기하고, 마케팅담당자는 '전형적인 소비자'를 이야기한다. 그런 태도는 가장 흔한 값이 평균 근처에 놓일 때, 더 공식적으로 말하면 분포의 최빈값과 평균이 같거나 거의 같은 정규분포를 보일 때 잘 작동한다. 하지만 멱법칙 분포의 평균은 대체로 중앙값이나 최빈값보다 훨씬 더 높다. 예를 들어, 2009년에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 선수의 평균 연봉은 324만 206달러로, 중앙값인 115만 달러의 거의 세배에 달했다.

실질적으로 이 말은 소득분포가 멱법칙을 따른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소득이 평균보다 낮을 것이라는 의미다. .. 더군다나 시간이 흐를수록 평균소득은 증가해도 중위소...득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수 있다. 다시 말해, 대다수 사람들의 소득은 전혀 증가하지 않을 수 있다. 멱법칙 소득분포는 소득불평등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직관도 혼란에 빠뜨린다. (206쪽)

 

이런 환경변화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기계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인간만의 장점을 찾아야 한다. 저자들의 권유는 '아이디어 떠올리기' '큰틀의 패턴인식', 복잡한 의사소통 기능'을 갖추는 것이다. 뻔한 답이긴 하지만 이 것 말고 다른 건 잘 생각하기 어렵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기술의 발전을 예측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우리의 예측과 권고를 일종의 복음처럼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컴퓨터와 로봇이 언제라도 곧 아이디어 떠올리기, 큰 틀의 패턴인식, 고도로 복잡한 의사소통 같은 일반 기능을 획득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으며, 모라벡의 역설이 조만간에 완전히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디지털 발전을 연구하면서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결코 안된다고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른 많은 연구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과학소설에서 곧바로 튀어나온 듯한 기능과 능력을 보여주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거듭 놀라고 있다.

사실 인간 특유의 창의성과 기계의 능력을 나누는 경계선은 계속 바뀌고 있다.  ... 때로 인간의 창의성은 기계의 강력한 분석력과 동일해질 수 있다.(257쪽)

 

 

두 저자들의 전작이 있다. 바로 <기계와의 경쟁>이다. <제2의 기계시대>는 큰 틀에서 <기계와의 경쟁>과 다르지 않다. 오히려 증보판의 느낌이 강하다. 그리고 전작의 저자 표기가 다른데,(전작은 앤드루 매카피, 이 책은 앤드루 맥아피)이는 전작에 맞추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계와의 경쟁 - 진화하는 기술, 사라지는 일자리, 인간의 미래는?
에릭 브린욜프슨 & 앤드루 매카피 지음, 정지훈 외 옮김 / 틔움출판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제목은 Race against the Machine이다. 번역은 <기계와의 경쟁>으로 되어 있지만, '기계와의 경주'가 어울려보인다. 책 자체가 기계와의 경쟁보다는 기계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책은 경제침체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하지만 저자들은 경제침체에 대해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기계의 변화를 인간이 못 쫓아가서 발생한다고 이야기한다.

 

침체론자는 미국의 중간 소득 감소와 전체적인 경제 성장 둔화가 상당히 오래전부터 이뤄져 왔음을 잘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에 대해서는 우리와 생각이 다르다. 그들은 기술혁신의 속도가 늦어진 것을 원인으로 생각하지만 우리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기술혁신의 속도를 인류가 쫓아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간단히 말해, 사람이 기계와의 경주에서 패한것이다.(33쪽)

 

기술혁신은 체스판의 후반부와 같이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의 발전은 경제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기술적 실업의 발생이다.

 

기술이 계속해서 발달하고 오직 사람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을 기계가 위협하기 시작하면, 미래 어느 순간부터는 점점 더 많은 일이 기계의 몫으로 넘어갈 것이다. 적어도 미국에서는 이 같은 사실이 이미 증명되었다. 지난 30년 동안 미국의 비숙련 노동자 임금은 계속해서 낮아졌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급여 수준이 최저 생활비 이상이 될 때 기술적 실업이 발생하며 (84쪽)

 

기술적 실업은 우리가 겪고 있는 실제 위협이다. 이 위협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술 변화가 만들어내는 3가지 승자와 패자 집단을 올바르게 정의해야 한다. (1) 고숙련 근로자대 저숙련 근로자 (2) 슈퍼스타 대 기타 일반인 (3) 자본 대 노동.(85쪽)

 

1. 고숙련 노동자 대 저숙련 노동자

흥미로운 것은, 높은 교육을 받은 근로자의 경우 공급이 늘어도 이들의 임금은 계속 올랐다는 것이다. 공급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도 급여가 계속 올랐다는 것은 숙련된 근로자에 대한 상대적 수요가 증가했음을 의미한다. 결국, 최소한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가장 낮은 임금을 받게 되었고, 이 같은 변화는 전체적으로 소득 불균형을 심화시켰다.(87쪽)

 

2. 슈퍼스타 대 기타 일반인

많은 산업 분야에서 소수의 승자가 대부분의 보상을 가져간다. 대중음악가, 프로 운동선수, 전문 경영인 등을 생각해보라. 기술은 정보 상품 뿐 아니라 비즈니스 프로세스 그 자체를 복제한다. 그 결과 한사람의 재능, 통찰력, 결정이 한 국가 혹은 전 세계 시장에 영향을 준다. (91쪽)

기술의 발전으로 단 한명이 판매할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값싸고 쉽게 복제할 수 있다면, 최고 품질의 제품을 만드는 한 사람이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 다음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는 사람은 시장의 아주 적은 부분만을 확보할 뿐이다. (92쪽)

실제 일반 근로자와 CEO의 월급을 비교해보면, 1990년에는 70배의 차이를 보였지만 2005년에는 300배까지 늘었다. .. 이런 현상이 정보통신 기술의 활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다른 경영진의 급여도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디지털 기술의 도움으로 창업주, CEO, 엔터테인먼트 스타, 그리고 금융 부문의 전문가들은 글로벌 시장을 오가며 자신의 능력을 확대 재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이전 시대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보상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94쪽)

 

3. 자본 대 노동

기업 순이익이 국내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50년 사이에 최고치였다. 반면에 노동에 대한 각종 보상은 임금과 모든 수당을 포함해도 50년 중 최저치였다. 노동보다 자본이 점점 더 큰 몫을 가져가고 있다.(97쪽)

 

기술의 발전은 불평등한 세상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현재의 기술혁신은 이런 불평등을 더 가속화시킬 수 있다. 이에 대해 저자들은 다소 낙관적인 전망을 하고 있다. 기술혁신을 인류가 쫓아가지 못해서 발생한 문제이기 때문에 교육과 제도의 변화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결국 교육이나 제도가 아무리 변화한다고 해도 기술혁신의 속도를 쫓아갈 수는 없을 것 같다.

 

인공지능을 갖춘 기계의 등장은 분명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갈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저자들의 해답중에 하나는 인간과 기계가 협조할 수 있다고 본다. 기계의 도움과 인간의 판단이 결합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인간과 기계의 체스경기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 뒤의 체스경기에서는 인공지능과 인간이 함께 조를 이룬 팀들이 좋은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와 인간의 장점을 더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경제적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지적은 새겨들어야 한다. 저자들의 해답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기계를 경쟁의 상대가 아니라 공존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인공지능, 로봇의 시대를 맞이하는 인류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작인 <기계와의 경쟁>은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영어 원제는 Race against the machine이다. <기계와의 경쟁> 보다는 '기계와의 경주'가 더 어울린다. 저자는 결국 기계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기계시대가 급격하게 도래할 수 있다고 본다. 체스판의 후반부를 그 예로 든다.

이 이야기는 체스 발명가와 그 나라 통치자와의 거래에서 시작되었다. 그 나라 황제는 체스 게임을 너무나 좋아서 체스 발명가에게 어떤 보상을 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갖고 싶은 것을 말하라고 물었다. 그러자 체스 발명가는 다음과 같은 규칙에 따라 쌀을 달라고 했다. 체스판의 첫 번째 사각형에 쌀을 한 톨 놓고, 두 번째에는 두 톨, 세번째에는 네 톨 ... 이렇게 정확히 두 배씩 늘어나도록 쌀을 다음 사각형에 쌓아서 달라는 것이었다.

.....

32번째 사각형을 지나자, 황제는 발명자에게 40억 톨의 쌀을 줘야 했다. ... 이 상태로 체스판의 후반부로 넘어간다면, 둘 중의 한명은 커다란 곤경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커즈와일은 무엇인가 두 배씩 지속해서 증가하면, 즉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면, 처음에는 그리 눈에 띄지 않지만 뒤로 갈수록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속임수처럼 느껴진다는 것을 지적했다. 기하급수적 증가의 초기 단계에서는 선형적 증가 곡선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그 증가폭은 우리의 직관과 기대를 크게 무너뜨린다. 작은 한 톨의 쌀이 에베레스트 산 크기의 쌀 더미를 만들 듯, 컴퓨터 기술의 기하급수적 발전은 과거엔 불가능하게 여겨졌던 여러 가지 일들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52~53쪽, 기계와의 경쟁)

 

문제는 단순히 기술의 발전만이 아니다. 두 책이 모두 이야기하는 것이 1970년대 이후 미국의 전체적인 부는 엄청나게 증가했지만 하위 80%의 소득은 늘어나지 않은 것이다. 자동화와 더불어 이런 추세가 강해지고 있는데, 인공지능의 시대 역시 이런 현상이 더 심해질 수 있다.

 

그렇다면 기계에 밀려야 하는가? 저자들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인공지능이 체스에서 인간을 이긴 이후 체스경기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조합일 때 가장 강력함을 보여줬다. 인간과 기계의 공존을 생각해봐야 할 때이다.

 

사실 체스판의 후반부는 이미 시작되었을 수 있다.

 

 

그런데 두 책의 내용이 너무 비슷하다. <제2의 기계시대>는 <기계와의 경쟁>의 증보판 정도의 느낌이다. 게다가 저자가 같은데 <기계와의 경쟁>은 앤드루 매카피, <제2의 기계시대>의 앤드루 맥아피로 표시되어 있다. 큰 문제가 없다면 전작의 명명은 따라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 싶은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3만 년의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일본 최대의 사구로, 동서16km, 남북으로 2km에 달하는 웅대한 모래언덕이 펼쳐지고 있다. ...

이 모래언덕은 중국산맥에서 흘러내린 센다이 강과 바람이 옮기는 모래가 유구한 세월동안 쌓여 만들어진 것으로, 그 웅대함 앞에서 여행객들은 말을 잃는다. 특히 거센 바람이 불면 나타나는 신비적 모래에술 '풍문(風紋, 모래 위에 생기는 물결무늬)'은 그야말로 자연이 창조해 낸 최고의 예술이다. (287쪽, 일본소도시여행)

 

 

"이 사구는 일본 서쪽 주고쿠 산지의 화강암이 풍화하며, 강으로 흘러내려 해안에 쌓이면서 형성된 대표적인 해안사구이다. 바닷속의 모래를 파도가 밀어내고, 해안선에 퇴적된 모래를 다시 바람이 내륙으로 쌓아올리면서 언덕을 형성한 것이다.
.....
돗토리사구는 하나의 거대한 산과 같이 장막처럼 펼쳐져 있는데, 남에서 북으로 2.4㎞, 동에서 서로 16㎞에 달한다. 특히 이곳은 크게 3개의 사구가 행렬로 이루어져 있는데, 동해의 푸른 바다와 거의 수평을 이룬다. 이를 해안 쪽에서부터 제1, 제2, 제3 사구열(砂丘列)이라고 부른다. 이 중 가장 높은 모래언덕은 60m에 이른다. 최대 높낮이 차이는 90m로, 일본의 전통 바리때인 스리바치와 비슷한 꼴로 움푹 파인 지형도 유명하며, 특히 '큰 스리바치'라고 불리는 지형의 높이는 40m에 달한다."
http://m.media.daum.net/…/society/newsview/20140905104416239

한국에서 불과 1시간 거리(물론 요나고공항에서 1시간은 달려야 하지만)에서 사막을 만날 수 있다. 사실은 해안사구이다. 자연의 경이로움을 직접 볼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