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 36 : 회화 - 우리 문화와 역사를 담은 옛 그림의 아름다움
백인산 지음 / 컬처그라퍼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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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부터 2016년까지 간송미술관의 작품들이 DDP 나들이를 했다. 사실 간송미술관의 작품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1년에 봄,가을 2주씩 두번만 특별기획전을 열었다. 이곳에 다녀온 이마다 작품 뿐만 아니라 주변환경을 들어 추천하였지만 실제 발검음을 한번도 하지 못했다.

 

간송미술관이 바깥 나들이를 하면서 같이 나온 책이다. 간송미술관의 회화 작품 36편이 책으로 소개되었다. 조선의 그림을 주로 소개하는데, 소개된 그림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외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이들의 그림도 소개된다. 그림아래 소개되어 있는 화가(문인화가도 화가로 보자면)들의 연대를 보면 1500년대에서 부터 1800년대 후반까지의 그림의 흐름을 볼 수 있다.

 

간송미술관의 많은 유물중에서 이들 그림을 선정한 이유는, 이것이 조선시대의 문화와 예술, 선조들의 삶과 정신을 이야기하는 데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아름답고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래서 간혹 이 그림은 별론데 왜 넣었을까 하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수 있지만, 소위 잘 알려진 명작 뿐 아니라 그다지 주목 받지 못한 작품일지라도 그 시대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넣은 겁니다. 즉,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그림을 통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부분이 가장 컸습니다. (17)

 

간송 전형필은 일제시대 옛 문화재를 소장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돈을 사용했다. 그런데 단순히 수장가들 처럼 유명 작품 중심으로 구매하지 않고, 우리 문화를 잘 알려줄 수 있는(시대가 불화하여 문화가 발전하지 못했다면 그대로) 작품들을 선별하여 구매하였다. 우리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고 싶었던 것이다. (간송 전형필이 단순 수집가가 아니었던 것은 해방후에는 더 이상 작품 소장을 하지 않은 것인데, 더 이상 일제로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간송미술관은 단순히 옛 문화재를 소장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존과 연구에도 힘썼다. 겸재나 겸재시대 연구에 있어서는 독보적인 연구성과를 낸 것이 그렇다. <간송미술36 : 회화>는 그 연구결과를 대중에게 소개하는 귀중한 작업이다.

 

<간송미술36:회화>는 조선의 그림 36점을 설명한다. 그림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조선미술에 대한 다양한 가이드를 제공한다.

 

'삼원 삼재'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들을 일컬을 때 흔히 쓰는 말이다. 기원은 명확치 않지만 대체로 삼원은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을 지칭하고, 삼재는 ‘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 관아재 조영석'을 꼽는다. 다들 조선시대 회화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대가들인데, 공교롭게도 삼원은 모두 화원화가이고 삼재는 모두 사대부화가이다. ...

조선시대의 허다한 문인화가들 가운데 이들을 유독 '사인삼재'라 통칭하며 중시하는 이유는 단지 기량이나 명성 때문만은 아니다. 삼재라는 호칭은 각기 조선 후기 회화의 세 축이라 할 수 있는 진경산수화, 조선남종화, 풍속화를 창안하여 조선 후기 회화 발전의 기틀을 다지고 절정에 올려놓은 업적에 대 한 역사적 평가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여기서 마땅히 진경산수화는 겸재, 조선남종화는 현재의 자리이다. 문제는 풍속화다. 연배로 보아서는 공재 윤두서가 그 자리를 차지해야 마땅하지만 공재의 풍속화를 보면 머뭇거리지 않을 수 없다. 풍속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조선의 의관과 풍물을 그림의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선구적이나 한계가 보인다. 바로 기법의 문제이다. 공재의 풍속화는 여전히 중국의 영향이 강했던 조선 중기 이전의 인물화 기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

후배 문인 이규상은 "우리나라의 그림이 조영석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크게 독립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말했다. ... 관아재는 동문 선배인 겸재와 더불어 진경시대 인물 풍속에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냈고, 그것은 곧 조선 후기 풍속화의 본격적인 시작을 의미했다.(144-147)

 

몇 해 전 조선화공을 소재로 한 드라마(물론 픽션이지만)를 계기로 혜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단순히 드라마 때문은 아니다. 그 전 부터 혜원 신윤복의 그림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일제 시대 문화재를 거래하던 일본인들은 단원이나 겸재 못지 않게 혜원의 그림을 모았다. 당시만 해도 풍속화에 한정된 혜원의 작품에 대한 평이 높지 않을 때 였다. (물론 그럼에도 간송은 혜원의 그림을 꾸준히 모았다.)

 

혜원의 그림에 우리보다 일본인들이 먼저 반응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저 우리 것의 소중함을 몰랐다는 일반적인 말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 겸재나 단원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유독 혜원이 홀대받은 것은 조선시대에 혜원의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떨어졌고,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일본인들의 심미안이 탁월했던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온전히 기호와 취향의 차이에서 비롯된 문제이다. 혜원의 그림이 지닌 화려한 색감과 감각적인 필치, 그리고 은밀한 선정성 등이 우리보다는 일본인들에게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듯하다. 그러나 누가 먼저 혜원의 가치를 발견하고 세상에 알렸는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미술 작품은 시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혜원도 그렇다 2백여 년간 홀대받던 혜원과 그의 작품이 근대 이후 재조명 받은 것은 이런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오늘날 혜원의 평판과 인기가 겸재는 물론 단원까지 압도하는 현상도 같은 맥락으로 보면 된다. 이 같은 현상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혜원은 특이한 그림을 그린 일탈적 화가가 아닌, 우리 미술사의 한 복판에 우뚝 선 거목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근대성이나 현대적 감각을 운운하며 혜원을 과대평가할 필요도 없지만, 혜원이 이전의 어떤 화가도 보여 주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개척했고, 그 수준 또한 탁월했음은 분명하다. (258-259)

 

얼마전 인문학 대중화의 선두에 있던 이가 방송에서 오원 장승업을 극찬했다. 그런데 극찬한 작품이 오원의 작품이 아니었다. 과연 오원은 어떤 인물일까? 물론 오원에 대한 잘못된 설명은 2016년에 책은 2014년에 나왔으니 그런 일을 예상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원의 그림은 왕실과 사대부, 혹은 부유한 중인층의 기호와 수요에 맞춰 그린 주문작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만의 개성이나 감흥을 펼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의 화풍은 중국의 자취가 매우 강하게 묻어나며, 심지어 중국 그림을 그대로 모방한 작품도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독자성과 창의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오원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은 분명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는 오원 개인의 역량 탓으로 돌릴 문제는 아니다. 대개의 예술작품이 그렇듯이 오원의 그림도 시대적 산물이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는 조선성리학은 물론 추사 김정희가 수용해 들인 청나라 고증학까지 외래 이념에 의해 압도당한 이념의 공백기이자 혼란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불학무식한 화공 오원에게 치열한 시대 정신이나 선구적 독창성 등을 바라는 것은 애초에 무리다. 그는 탁월한 기량으로 별다른 의식 없이 시대적 기호와 수요에 적절히 부응했을 뿐이다. (290쪽)

 

이런 조선미술에 대한 지식 뿐만 아닐 각 그림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설명은 옛 그림을 보는 법을 기를 수 있는 아주 좋은 가이드를 제시한다. 꾸준히 이 책을 보면 우리 옛 그림을 보는 안목은 키울 수 있을 것이다. (한번 보고 덮을 책이 아니다.) 우리 그림에 관심을 두었다면 그 관심의 폭을 확대하는데, 그림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궁금했다면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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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소담 - 간송미술관의 아름다운 그림 간송미술관의 그림책
탁현규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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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화정담>과 <그림소담>은 편하게 옛 그림을 들려준다. 

간송미술관의 아름다운 그림이라는 부제가 붙은 <그림소담>은 간송미술관의 그림을 통해 우리 옛 그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림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그림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찬찬히 알려준다. (간단하게 후기를 남겨본다.)


우리 옛 그림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겸재가 그린 그림은 소나무에 앉아 있는 매미의 모습이다. 그냥 지나칠 만한 매미가 너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화면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구성도 아름답지만, 매미와 소나무의 조화도 놓치기 힘들다. 



화면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소나무 가지하나가 자연스레 휘었고, 여기에 매미 한 마리가 나뭇가지와 나란히 붙어 있다. 매미를 묘사하는 데 어느 부분 하나 소홀하지 않았는데 커다란 투명 앞날개 안에 작은 뒷 날개의 모습까지 정확하게 그려 넣었다. 가지 끝에 솔잎을 그린 것을 보면 오래된 솔잎 떨기는 엷은 녹색으로 약간 번지게 해서 겹쳐 그렸고, 그 위에 새로 난 짙은 녹색 솔잎 하나하나를 가는 붓으로 그렸다. 그 결과 새로 난 솔잎의 파릇파릇함이 돋보이는 효과를 낸다.


화면 왼쪽 솔가지는 거의 생략하고 솔잎 떨기만 강조해 매미가 붙어 있는 가지로 시선 을모으는 동시에 화면 왼쪽을 채웠다. (163-164)



역시 겸재의 그림 중에 하나이다. 책 <그림소담>에 있는 많은 그림들이 눈길을 멈추게 만들었다. 어떤 그림은 그림의 아름다움에 또 어떤 그림은 세밀함에. 이 그림은 수묵화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 한참 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도성 내 가옥들은 안개에 파묻혀 보이지 않지만 멀리 남산과 관악산의 능선은 어슴푸레 잡히고 키 큰 나무숲도 거뭇가뭇 드러났다. 하늘과 안개는 여백으로 비워두어 먹보다 종이 바탕이 더 많은데 과감한 여백 덕분에 안개 낀 달밤 한양 풍광이 박진감 넘치게 다가온다. 이로써 비우면서 완성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겠다. 


하지만 안개 낀 달밤이라도 이렇게 보이지 는 않을 것이다. 겸재는 생략하고 단순화 해 안개 낀 달밤이 주는 인상만 그린 것이다.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모네가 템스 강의 안개 낀 풍경을 그린 방식과 비슷하다. 진경 산수는 실재와 똑같이 그리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부분은 빼고 필요한 부분은 강조하는 생략과 확대를 적절하게 섞는 화풍이다. 겸재는 이런 방법을 극대화 해 서울의 안 개낀달밤을 가장 덜 그렸어도 가장 사실감 넘치는 그림으로 완성했다. (79-80)



<고화정담>에서도 언급이 있었지만, 혜원이나 단원의 그림은 그림의 아름다움 뿐 아니라 그 시대를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당시 유행했던 옷 맵시를 찾아볼 수 있고, 집은 어떻게 꾸몄는지, 그리고 놀이문화는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 


서 있는 선비는 자줏빛 띠를 가슴에 매고 호박을 이어 갓끈 삼아 호사를 다했으니 멋쟁이 선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진정 멋쟁이는 장침에 편안히 기대어 오른 손으로는 부채를 잡고 왼손으로는 연죽을 들고 음악에 몰두한 풍채 좋은 저 선비다. 호박 갓끈을 왼쪽 귀에 돌려 맨 저 모습을 보라. 이것이 당시 한양 귀족들의 일급 맵시다. 가슴의 붉은 띠는 한복 끈 치레의 또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 


마당을 반으로 나누어 한쪽에는 돌을 두 단으로 쌓아 나무를 심는 조경 방식은 지금도 궁궐에 가면 볼 수 있는 전통 방식이다. 연못도 흙을 파내고 사방을 돌로 둘러 쉽게 무너지지 않을 만큼 튼튼해 보인다. 이 그림에서 한가지 더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선인들이 야외에 나갈 때 항상 돗자리를 가지고 다니다가 좋은 장소를 발견하면 자리를 펴서 유흥을 즐겼다는 사실이다. (31-33)


책은 겸재 정선, 혜원 신윤복, 단원 김홍도 등 잘 알려진 이들 외에도 이인문, 김득신 심사정 등 조금은 덜 알려진 이들의 그림도 소개한다. 옛 그림에 대한 틀을 벗어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옛 그림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한 아주 좋은 가이드 북이다. 


게다가 간송미술관은 작품의 보존 뿐 아니라 연구에서도 뚜렷한 결과를 낸다. 유명한 작품들 뿐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알 수 있는 작품들을 소장하고 연구하여 정치적 암흑기라고 하는 시대에서도 문화의 꽃을 피워냈음을 증명해낸다. 특히 '진경 시대'에 연구는 우리 옛 문화 연구의 좋은 길잡이를 마련했다.  


한 시대 문화는 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뿌리가 이념이라 면 꽃이 예술이다. 꽃이 풍성하고 생기 있다는 것은 뿌리가 튼튼하고 둥치와 가지 모두 건실하다는 뜻이다. 만약 식민 사관에서 말하듯 조선 후기가 당쟁에 골몰해 어지러운 시 기였다면 어떻게 겸재와 단원 같은 뛰어난 화가가 나올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숙종 대부터 정조대에 이르는 125년간의 우리 문화 황금기를 최완수 선생은 1996년에 '진경 시대'라 이름 붙였고, 이로써 우리는 오랜 식민 사관에서 벗어나 조선 후기 문화를 다시 볼 수 있는 눈을 얻게 되었다. 공론을 주도하는 식자층 일부에서 여전히 식민사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1990년대중반 간송미술관에서 탄생한 '진경 시대'란 개념은 간송 선생의 문화재 수집만큼이나 값진 것이었다 간송 선생이 우리 미술품을 목숨과 같이 아 끼며 지켜낸 참뜻이 바로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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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명절이다. 고향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부모님, 친척을 찾아 먼길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명절이면 빠지지 않는 뉴스가 바로 교통정체이다.

 

 <세상물정의 물리학>에서는 교통정체에 대해 유령정체phantom traffic jam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Youtube 화면에서도 나오지만 모두가 동일속도, 동일차로를 달린다면 교통정체가 없을텐데 실제 화면에서 보듯이 1대가 순간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을 때 연쇄 반응이 일어난다.

 

 이는 밀도 차이에 의한 것으로 이런 밀도가 해소되지 않는 한 해결하기 힘들다. 그런데 해결방안이 있기는 하다. 운전자의 반응속도의 차이에 의한 정체라면 모든 차가 동시에 일정한 간격,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면 가능하다. 아마도 100% 자율주행차라면 정체없는 운전이 가능할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밀도를 분산시키는 방법이 최선인 것 같다.

 

 

차가 많아도 모든 차가 다 함께 정확히 같은 거리를 유지하면서 같은 속도로 달리면 막힐 이유가 없다. 하지만 도로 위에 차가 많아지면 차 사이 거리가 줄어든다. 이때 차 1대가 살짝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조금만 줄여도 그 뒤를 바짝 쫓아오던뒤차는 깜짝 놀라 속도를 갑자기 줄이게 되고, 그 차의 또 뒤차는 어쩌면 아예 서버릴지도 모른다. 이 과정에서 정체가 생기는 것이다. 이처럼 교통정체는 사고가 나지 않아도, 갑자기 앞 트럭에서 짐이 떨어지거나 고라니가 도로로 뛰어들 않더라도 얼마든 생길 수 있다. 이를 유령 정체phantom traffic jam라 부른다. 

유령 정체가 생기는 이유는 모든 사람이 똑같이 운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운전 습관 차이, 교통상황에 대한 판단 차이, 자동차의 가감속 능력의 기계적 차이 등을 생각하면 도로 위 자동차들이 다르게 움직이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차이로 균일하던 교통 흐름에 작은 교란이 생길 경우, 교란은 마치 퐁당퐁당 던진 돌멩이가 만드는 호수 위 물결처럼 파동 형태로 도로 위를 움직인다. 도로 위에 차가 많지 않다면 1 대가 만든 작은 교란은 뒤차에 영향을 주지 않고 곧 사라진다. 그러나 차들이 많아 촘촘히 움직일 때는 작은 교란도 바로 뒤 차로 전달되며 증폭 확대된다. 

 

다시 말해 운전자의 반응시간이 길고, 도로 위의 차 움직임이 균일하지 않으며, 운전자가 교통 상황에 과잉 반응하는 것, 이것이 바로 사고 가 나지 않아도 차만 많아지면 도로 위에 정체가 나타나는 이유다. (115-116쪽)

 

일단 고체 상태가 되면 온도를 변화시키지 않는 한 절대로 스스로 알아서 액체 상태로 돌아가지 못하는 손난로처럼 고속도로 위 정체도 차의 밀도가 변하지 않는 한 저절로 풀리지 않는다. 온도를 많이 올렸다 식혀서 다시 액체로 만드는 손난로처럼, 차의 밀도가 작아져야만 교통 정체가 해소되고 이후 차 대수가 천천히 늘어나 이전 정체가 있던 차의 밀도에 이르면 교통 흐름은 원활한 비평형 상태에 머무를 수 있다. (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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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추석 연휴다. 책을 좀 읽을 여유가 될지 모르겠다.

 

EBS에 통찰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월,화 밤 12시가 넘어서 시작하고, 1시 즈음에 마치는 프로그램인데, 최근에는 두 명의 전공자가 나와서 서로의 의견을 강의한 후 약간의 질문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일종의 교양프로그램이다. 바로 전에는 지중해문명을 두고 미술사학자와 역사학자가 강의를 맡았다.

 

이번 통찰의 주제는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이다. 제목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 거린다. 일단 강의를 맡은 두 교수님의 책을 준비했다. <세상물정의 물리학>, <김상욱의 과학공부>  일종의 과학에세이, 칼럼 같은 글인데, 그렇다고 내용이 가볍지는 않다.

 

8월말 간송전에 다녀오면서 이번에는 꼭 간송에 대해 읽어야지 생각하고 든 책들이다. 간송의 삶을 다룬 <간송 전형필> 그리고 간송 작품들을 다룬 <간송미술 36>, <고화정담>, <그림소담>이다.

 

간송 전형필은 간송미술관을 설립했다. 일제시대 거부였던 그는 일찍부터 우리 문화재의 소중함을 알고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사재를 털어 문화재를 구한다. 일본 경매장에서 참여해 일본에 있는 우리 문화재를 들여오는데도 큰 일을 했다. 그가 단순히 부가 많아 문화재를 소장한 것은 아니다. 해방후에는 문화재를 수집하지 않았는데, 문화재가 일본으로 넘어갈 일은 없다고 본 것이다. 또한 유명인들의 작품만을 소장한 것이 아니라 우리 문화예술의 역사를 알 수 있도록 훌륭하지 않더라도 시대적으로 의미가 있거나 대표할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구해냈다. 그리고 간송미술관의 전문가들이 우리 문화예술의 해석에 대한 성과를 내기도 한다. <간송미술36>, <고화정담>, <그림소담>은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가운데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작품들을 설명하는 책이다.

 

추석연휴에는 예술의 전당 서예미술관에 방문해서 민화구경을 할 생각이다. 전시구성은 책가도와 문자도가 중심이라는데, 딱 이 주제를 다룬 <무명화가들의 반란, 민화>를 읽을 생각이다. 또한 민화를 체계적으로 분석한 <민화, 가장 대중적인 그리고 한국적인>을 읽을 텐데 두 책은 정병모라고 민화 연구의 대가의 글이다.

 

이외에 <민화에 홀리다> , <허균의 우리민화 읽기>를 같이 읽을 생각이다.

 

일단 9월엔 한국화에 푹 빠질 생각이다. 고전역학, 양자역학은 잘 모르겠다. 왠지 발 잘못 담갔다고 빠져나올 수 없을수도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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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현 2016-09-29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제 12회 서울와우북페스티벌에서 `시를 품은 물리학`이라는 주제로 김상욱 물리학자의 강연이 있습니다! http://onoffmix.com/event/76806 여기에서 신청 가능하고, 그 외에도 다양한 강연과 전시가 준비되어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고화정담 - 간송미술관의 다정한 그림 간송미술관의 그림책
탁현규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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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畵情談 : 옛 그림을 사이에 두고 나누는 정겨운 이야기

 

라는 뜻의 <고화정담>은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작품 중 30 작품에 대한 소개이다.

사군자, 영모, 진경산수, 풍속, 도석이라는 주제로 작품을 나누고 설명한다. 조선 그림을 주제별로 크게 구분해서 알려준다.

 

1년에 몇 번씩 큰 전시회를 통해 서양화가들의 유명작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많지만, 우리의 옛 그림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눈에 담을 기회도 많지 않고, 그래서 지나쳤던 옛그림들. 하지만 <고화정담>을 통해 우리 옛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림 하나 하나가 갖는 의미가 남다르고,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이 어떤지 조금씩 트이는 기분이다. 우리가 알던 몇 몇 작가들 외에 심사정, 김득신 등의 그림을 접하는 것 또한 쏠쏠한 즐거움이다. 알아간다는 즐거움.

 

 사군자편은 4편의 그림을 설명한다. 사군자는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조선의 선비정신과 빗대어 선비들이 줄곧 그려낸 그림이다. 그중 심사정의 그림에 대한 설명이다.

 

옅은 먹으로 국화 잎을 툭툭 쳐내고 바위도 붓으로 최소한으로만 그었다. 먹빛도 묽어 단단한 느낌은 커녕 곧 뭉크러질 것만 같다. 위쪽 국화 잎은 반을 잘라 다 그리지 않았으며 꽃봉오리는 점 몇 개로 단순화했다. 국화 잎이 너무 무성해 약간 비대한 듯 느껴져 단아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것이 심사정 묵화의 중요한 특징이다. 닮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은 것. 국화 옆 바랭이풀은 먼저 갈색으로 잎을 그리고 그 위에 먹선을 그었고 바위도 마찬가지인데 먹선을 약간 어긋나게 그어 입체감을 주었다. 심사정이 줄겨 사용한 방법이다. 그리고 바위 주변에 녹색 점을 찍어 먹색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났다.(30쪽)

 

 

동물을 그린 영모화는 그림을 그리는 도화서 화원들이 주로 그렸다. 물론 사대부도 동물을 그렸다. 윤두서의 군마 같은 작품이 그렇다. 솔직히 군마를 보고 놀랐다. 단순하면서도 살아있는 듯한(똑같이 그렸다는 것이 아니라) 느낌이 눈을 자꾸 돌리게

했다.

사군자에서 의미를 담았듯이, 동물에게도 그 뜻을 담았다.

 

그런데 도화서 화원들은 조금 다르게 영모화에 접근했다. 초상화에서 중요한 것이 수염이었는데, 수염으로 원근감 등을 표시할 뿐 아니라, 인물의 특징도 잡아냈다.

초상화에서 알맹이는 얼굴이고, 얼굴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눈동자이지만 가장 공들여야 하는 것은 수염이다. 가늘고 길며 꼬불꼬불한 수염이 한 올 한 올끊이지 않아야 하고 엉켜서도 안 되며 흑백이 섞여야 하고 바람도 통해야 하니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먹의 농담도 일정해야 한다. 먹을 묻혀 정신을 바로잡고 비단 위에 수없이 붓질해야 초상화가 비로소 완성된다.  화원들이 도화서에서 그린 여러 그림 가운데 초상화가 제일 중요했기 때문에 화원들은 수염 그리는 데 선수였다. 

그렇다면 이 수염 그리는 솜씨를 발휘할 수 있는 그림은 무엇일까. 당연히 털 짐승 그림이다. 그래서 각기 전념하던 털 짐승 그림이 있었다 정홍래는 매, 김두량은 개, 변상벽은 닭과 고양이를 잘 그렸다. (70)

 

 

진경산수화가 의미있는 것은 실제로 우리 땅을 그렸기 때문이다. 중화사상이 가득했던 조선초중반 해도 중국책에 있는 중국의 산과 강을 그렸다. 겸재가 이 땅의 그림을 그렸다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우리 눈으로 우리땅을 그려냈다는 것이다.

우리 옛 땅의 모습이 그림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렇다고 있는 그대로 담은 것은 아니다. 때로는 여백으로 때로는 단순하게 그려내 그림에 예술성을 덧 붙였다.

 

저 기와집엔 양반이 살 테고 초가집엔 평민이 살 텐데, 그래서인지 기와집 자리는 전망 좋고 양지바르다. 재밌는 건 기와집이건 초가집이건 모두 드러난 집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모두 드러나서는 안 된다. 그러면 재미가 없다.  저 나무 뒤에 기둥은 이럴 것이고, 지붕은 저럴 것이다 등등 감상자에게 상상할 여지를 주어야 그림이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산등성이에는 솔들이 한줄로 빼곡해 산 전체에 솔 향기가 가득한데 마을 뒤는 산이 둘러싸고 마을 앞으로는 넓고 푸른 강이 흘러가니 청탄마을 사람들에겐 이곳이 무릉도원일 것이다. 산주름에 먹점을 찍어 키 작은 잡목을 그렸고, 저 멀리 있는 산자락은 주름만 있고 먹점은 찍지 않았으며 뒤에는 주름마저 사라지고 더 멀리는 청색으로 물들였다. 이 보다 박진감 넘치는 원근법을 따라 할 화가는 많지 않다. (116, 겸재 녹운탄)

 

 

혜원 신윤복의 그림을 볼 때면 항상 놀랍다. 다른 그림들이 전체적인 느낌, 분위기에 주목해서 본다면 신윤복의 그림은 선과 색체, 그리고 살아움지이는 듯한 움직임까지.

사람을 묘하게 그림에 붙들어매는 능력이 있다. 부분 부분을 보는 것 자체가 예술이다.

 

신윤복의 그림은 그림의 가치도 뛰어나지도 우리 문화를 담아냈다는 점도 놓쳐서는 안된다. 당시 문화가 그림속에 담겨있다. 신윤복의 그림은 예술이자, 역사이다.

 

신윤복 그림에는 200년 전 의복, 춤, 음악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과장도 없고 생략도 없다. 따라서 오늘날 좋은 옷을 지어 입으려는 이, 잊힌 춤을 다시 살리려는 이, 옛 가락을 내일로 전하려는 모든 이들은 신윤복 그림을 의지하면 어긋나지 않는다 또 제대로 된 조선 역사극을 만들려고 하는 이 또한 신윤복 그림울 기준으로 고증하면 탄탄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 (198)

 

 다섯번째 주제인 '도석'은 쉽게 말해 달마도사 등을 그린 그림을 말한다. 유교사상이 강한 조선에서 불교 및 도교사상이 그림에 자리잡기는 힘들었는데, 유교의 틀에서 자유로운 화원들은 달마대사나 동자승을 종종 그렸다. 단순히 중국의 소재가 아닌 각자에 맞게 발전시켜서 그렸다.

 

놀라운 것은 맹호도에서 수백 번 붓질로 털 하나하나를 그려 살아 있는 호랑이를 그려낸 김홍도가 이번에는 붓 몇 번 대지 않고 역시 살아 있는 호랑이를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마치 둥글둥글하며 성근 삽살개의 털을 그리는 것처럼 먹으로만 슬렁슬렁 돌렸는데 영락없는 호랑이다. 바로 이 점에서 김흥도는 대가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확인할 수 있다. 대가는 양쪽 끝점을 모두 아우르는 이의 다른 이름이다. 수없이 붓질해 완성한 호랑이와 쓱싹 붓 질몇번해서 그린 호랑이 둘 다 기운생동하다 이 둘이 모두 가능하다는 점 또한 옛 그림 특유의 매력이. 겸재 정선의 소나무 역시 솔잎 하나하나를 그린 것과 붓을 뉘어 툭툭찍어 그린 것이 모두 있었다. 호랑이 꼬리는 굽이치며 솟구쳐 용맹함이 여실하고 날카 운 발톱은 땅을 굳건히 움켜쥐어 안정감이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김홍도의 솜씨는 나한의 옷 선에서 드러난다. 

 

부드럽게 흐물흐물 몸을 따라 흘러내리지만 역시 모든 것을 다 갖췄다. 그리고 나한의 옷 선이 이래야만 호랑이 털과 어울릴 수 있다. 그래서 나한과 호랑이는 한마음 한몸이 된다. 더군다나 모두 먹빛 하나이기 때문에 둘은 더욱 쉽게 결합된다. 나한의 얼굴이 김홍도의 달마도해에 나오는 달마 얼굴과 비슷한 걸로 봐서 김홍도가 스님 얼굴로 좋아한 도상인 듯하다. (245-246)

 

<고화정담>은 이야기하듯 쓰여있어 쉽게 읽히는 책이다. 그렇다고 가벼운 책은 아니다.

이 책은 한번에 읽고 말 것이 아니다. 옆에 두고 조금씩 읽어봐야 할 책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통으로 읽어도 좋고, 필요한 부분만 시간 날때 접하는 방법도 나쁘지 않다. 그러다 보면 우리 옛 그림에 대한 눈이 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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