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에 소개된 책들을 뒤늦게 살펴보다 재미있는 점을 발견했다. 민주주의의 위기를 다룬 책이 소개되었는데 이에 대한 아감벤 등이 쓴 책이 소개되었다는 기억이 나길래 인터넷을 뒤져 또 다른 책의 소개글을 찾아냈다.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와 <민주주의는 죽었는가?>라는 책이다. 흥미로운 것은 국내와 세계 모두 민주주의의 위기를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두권 모두 여러명의 지식인들의 글 모음이다라는 점에서도 동일함을 갖고 있다.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 도정일 박원순 외 지음/휴머니스트·1만7000원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이런 역진화의 원인을 “사적 이익의 공적 조정 역할”을 맡아야 할 국가의 탈공공화, 사사화, 시장화에서 찾았다. 이로 말미암아 사회권력자원의 분배가 힘센 자들한테로 집중되는 과두화, 초집중화, 세습화, 역근대화가 일어나고 힘없는 개인들은 개체화, 자영화, 만인 불안화 속에 ‘루저’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역진화는 단지 정부의 민주화였을 뿐인데도 사회나 공동체의 민주화를 이뤘다고 착각한 지난 ‘민주정부’ 때부터 시작됐고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는 사회가 “거의 해체 단계”에 이르렀단다.
그럼에도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지지율은 떨어질 줄 모른다는데, 왜 그럴까?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말한다. “여러분, 우리가 피땀 흘려 민주화를 이뤘는데, 민주화가 되고 난 다음에 살림살이 좋아졌어요? …민주화되고 진짜 좋아진 건 재벌이고, 그다음이 조?중?동 아닙니까? 억울하지 않으세요? 민주주의가 왜 이렇게 됐죠? 어쩌다가 민주주의가 여의도에서 투표하는 절차 정도로 찌그러져버렸죠? 민주주의를 우리 삶과 관계없는 것으로 만들고 있잖아요, 그래 놓고서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백날 떠들어봐야 뭐합니까? 민주주의가 내 삶과 연관이 있어야, 민주주의가 실현돼서 내 삶이 좋아지는 게 있어야 민주주의를 위해서 뭘 하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니에요.” 이른바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냐?”는 것인데, 한 교수의 대답은 “그렇다. 밥 먹여준다”다. 그에 따르면 1987년 6월항쟁으로 열리기 시작한 민주화 공간에서 그해 여름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났다. 그 결과 노동자들 임금이 껑충 뛰었고 그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지면서 폭발한 소비 덕에 나라살림도 크게 좋아졌다.
잔업 철야가 줄고 영화관객이 수십만 단위에서 수백만, 천만 단위로 급증하고 평균수명이 대폭 늘어나는 등 생활의 질이 크게 개선됐다.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된 자본과 기득권 세력의 반격이다. 신자유주의를 거치면서 노조가 파괴되고 비정규직이 양산됐으며 민주주의는 4년마다 한 번씩 투표할 때만 주인 행세 하는 껍데기로 형해화했다. 폴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하다>를 보면 이런 역진화는 미국에서 먼저 진행됐다. 독점자본을 규제한 민주당 정권의 뉴딜정책으로 오랫동안 수세에 몰렸던 공화당 중심의 미국 자본가?기득권세력은 신자유주의를 앞세운 로널드 레이건이 정치 전면에 나서기 시작한 1970년대부터 본격적인 반격에 나섰고 부시 가문 집권 때 그 절정에 도달했다. 월스트리트발 금융공황으로 공화당 정권은 무너졌으나, 그것을 한 템포 뒤늦게 흉내내고 있는 이명박 정권의 위세는 여전하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20867.html
〈민주주의는 죽었는가?〉 조르조 아감벤 외 지음·김상운 외 옮김/난장·1만1800원
"브라운은 오늘날 민주주의가 역사상 전례 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개념은 더할 나위 없이 모호하고 내용은 빈약하다고 말한다. “민주주의란 말은 누구나 자신의 꿈과 희망을 싣는 텅 빈 기표다.” 이탈리아의 부패한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부터 팔레스타인의 하마스까지 온갖 정치 세력이 스스로 민주주의자라고 한다. 브라운은 민주주의가 이렇게 제멋대로 사용되는 데는 이유가 없지 않다고 말한다. 민주주의(데모크라시)는 어원상 인민(데모스, demos)과 통치(크라토스, kratos)의 결합, 곧 ‘인민의 자기 통치’라는 추상적인 규정만 담고 있을 뿐 구체적인 것은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이런 모호성이야말로 민주주의라는 말이 남발되고 남용되는 근거가 된다고 브라운은 말한다.
나아가 브라운은 오늘날 민주주의가 기업권력의 지배하에 떨어졌다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아이콘인 ‘자유선거’마저 표와 자금을 노리는 정치 마케팅으로 전락했다는 것도 민주주의 위기의 뚜렷한 징표다. 브라운은 특히 신자유주의 합리성이 정치 영역에 침투해 민주주의 원리가 기업가적 원리로 대체되는 현상에 주목한다. 이 과정에서 데모스(인민)가 민주주의로부터 퇴출당하고 그 자리에 기업적 효율성?수익성이 들어앉는다. “신자유주의는 민주주의의 정치적 실체를 부스러기로 만들어버린 뒤 제 입맛에 맞게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탈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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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틴 로스(미국 뉴욕대 비교문학 교수)는 브라운의 이런 우울한 진단을 이어받아, 민주주의가 “극소수 사람들만의 통치, ‘인민 없는 통치’만을 허용하는 체제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가 되어 버렸다”고 말한다. 그가 보기에 민주주의라는 말은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의 완전한 통제 아래 들어갔다. 자크 랑시에르는 이렇게 통제당하는 말의 의미를 투쟁으로 되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정치적 투쟁은 단어들을 우리 것으로 만들기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 랑시에르는 한국에서 벌어졌던 촛불시위를 사례로 들어, 서구에서 오랜 세월 마모되고 오염된 민주주의라는 말이 이곳에서는 여전히 힘을 행사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특히 민주주의란 “자격 없는 자들의 권력”인바, 그렇게 자기 몫이 없는 배제된 자들이 나서서 자기 몫을 주장하며 싸우는 것이 민주주의의 요체라고 말한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18688.html
홀로 우리나라의 문화재를 지킨 사람이 있다. 바로 간송 전형필이다. 간송미술관은 바로 전형필의 호를 딴 것이다. 간송미술관은 일년에 두차례만 문을 여는데 사설 미술관임에도 국가 미술관보다 더 수준높은 문화재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먹고 살기 힘들때일 수록 문화를 지키는 것은 더 힘들어진다.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삶을 담고 있는 문화재를 지킨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먹고 산다고 문화를 지키는 것은 아니다. 청계천 개발도중 발견한 옛 다리들을 분해해 갖다 버린 이들이 청와대를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래서 더 간송 전형필이 빛나 보인다.
〈간송 전형필〉 이충렬 지음/김영사·1만8000원
"1937년 2월 일본 도쿄의 한 숙소. 큰 승부를 앞두고 32살 청년 간송은 마음을 다잡았다. 영국인 골동품 수집가 존 개즈비가 20년간 조선?일본을 넘나들며 명품만을 골라 수집한 고려청자 20여점을 일괄처분한다는 소식에 지체 없이 일본으로 건너간 그였다. 원숭이형 연적(국보), 기린형 향로(국보) 등 그의 눈앞에 아름다운 고려청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6년을 기다린 승부였다.
사흘에 걸쳐 진행된 도쿄 협상은 가격 차를 좁히지 못하고 결렬됐다. 간송은 포기하지 않았다. 서울에 온 개즈비에게 박물관 보화각(간송미술관) 건설현장을 보여주었다. 일본인들에게 팔 수도 있었던 영국인 개즈비의 마음을 잡아챈 건 결국 조선의 청자들을 조선 땅에 두어야 한다는 전형필의 마음이다.
이 마지막 협상에서 개즈비가 간송에게서 본 것은 그가 그저 많은 유산을 상속받은 수집광이 아니라, 나라를 빼앗겼으면서도 제 나라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수집하여 보존?전시하겠다는 한 인물이었다. 드디어 40만원에 낙찰! 기와집 한 채 값이 1000원이던 때였으니 400채 값. 당시 한?일 골동품 수집 사상 최대 규모 거래였다. 요즘 아파트 시세로 한 채당 3억원으로 셈하면, 한 점에 60억원, 20점에 1200억원을 낸 셈이다. 간송은 이를 위해 논 1만마지기를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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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이 남긴 것은 비단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큰부자라는 수식에 머물지 않는다. 그가 아니었다면 우리 미술사의 텃밭은 지금 모양새보다 협소했을 것이다. 그가 <훈민정음>을 지키지 않았다면 우리말 연구의 밑천은 지금보다 협착했을 것이다. 그가 스물다섯살 때부터 1945년 해방을 맞기까지 15년 동안 흩어져 떠돌던 문화재들을 모아 놓은 간송미술관 수장고는 한국 미술의 역사와 아름다움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 이 미술관 수장품을 빼고는 우리 미술사를 온전히 쓸 수 없다고도 한다. 해방 뒤엔 누가 모아도 이 땅에 남을 것이라며 수집을 중단했던 그는 빚을 갚으려 동분서주하다 1962년 1월 쉰여섯의 나이에 쓰러졌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19769.html
고전에 현재를 담겠다는 포부로 시작한 그린비와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열번째 작업이 세상에 나왔다. 리라이팅 클래식. 이번에는 진화론의 고전 다윈이다.
<종의기원, 생명의 다양성과 인간소멸의 자연학> 박성관 지음/그린비 3만2천원
"사람들은 “창조론을 비판하며 진화론을 확립한 과학역사상 최고의 고전, 서구를 비롯하여 전세계를 뒤바꾼 혁명의 서” 등의 찬사를 받는 <종의 기원>을 왜 읽지 않을까. 박씨의 생각으로는, 학교 다닐 때 다들 배운 적 있는 진화론을 사람들은 얼추 안다고 생각한다는 것, 그리고 막상 읽어보려 하면 150년이나 묵은 이 두꺼운 “고물탱이” 만연체 책을 읽어내기가 어렵다는 것, 극소수가 의무감에서라도 가까스로 다 읽어냈다 한들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 수도 없다는 것 등을 그 이유로 들었다. 그리고 제대로 된 번역본이 있다 해도 도전해보기가 망설여지는 터에 좋은 번역본이 없다는 것도 한몫했다.
<종의 기원, 생명의 다양성과 인간소멸의 자연학>은 바로 그런 난제들을 해소하고, 현대 진화론의 성과들을 토대로 <종의 기원>을 재해석해 보려는 독특하고 야심만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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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윈의 이론은 미처 꽃을 피워보기도 전에 시들고, 인간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며 세상의 비밀은 거룩한 기원에 있지 않다는 그의 메시지는 유폐됐다. 부르주아들이 주조해낸 근대인들은 지난 150년간 다윈의 과학비판을 종교비판으로 좁히고, 자연선택은 자연도태와 적자생존으로 변형시켰으며, 생존투쟁과 상호의존은 생존경쟁으로 바꿔쳐버렸다. 그리하여 다윈은 종교비판가이자 부르주아 가치의 대변자로 전락했다. 당대의 기성 세계와 앎의 체계에 도전했던 다윈의 의문과 그 불온성은 거세당했다. 서
구 열강의 제국주의 침탈과 지금의 개발•성장주의의 맥이 거기에 닿아 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세계와 기존의 모든 앎의 체계에 의문을 품어온 지은이가 <종의 기원>에서 발견해낸 것이 바로 다윈의 의문과 불온성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과학을 가리키는 풍요로운 빛살이었다. 나는 이제 여러분과 함께 <종의 기원>을 새로 읽음으로써 그것을 소생시키고 싶다.” 10여년 벼려온 그의 다윈 공부 깊이와 폭이 예사롭지 않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18642.html
4월에도 다윈과 관련된 책 소개가 하나 있었다. 진화론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경우라면 읽어볼만하겠다.
〈생명의 개연성〉마크 커슈너•존 게하트 지음, 김한영 옮김/해나무•1만8000원
이외 4월에 출간된 책들중에 관심을 끄는 책은 한겨레기자들의 노동현장 체험을 담은 <4천원 인생>이다. 작년말 한겨레21 특집기사로 소개되었었다. 사법개혁이 화두인 요즘 사법의 역사를 엮어낸 <법원과 검찰의 탄생>이라는 책도 있다.
<4천원인생> 한겨레출판 12000원
"<4천원 인생>은 <한겨레21> 사회팀 기자들이 한달 동안 ‘위장취업’해 겪은 생생한 노동 현장 이야기를 다시 책으로 펴낸 것이다. 4000원은 이들이 일했던 2009년 법정 최저임금이다. 임지선 기자는 갈빗집 식당 아줌마로, 안수찬 기자는 대형마트에서 양념육을 파는 노동자로 한 달을 살았고, 전종휘 기자는 경기도 마석 가구공장에서 이주노동자들과, 임인택 기자는 경기도 안산 난로공장에서 파견노동자들과 함께 땀을 흘렸다. 이들은 끈적한 추파를 던지는 ‘진상’ 손님을 만나고, 엄지손가락에 길이 25㎜짜리 못이 박히는 산재를 입고, 굽고 있던 뜨거운 고기를 얼굴에 얻어맞기도 한다. 그야말로 “생살 그대로의 기록”이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18705.html
〈법원과 검찰의 탄생〉 문준영 지음/역사비평사 45,000원
"<법원과 검찰의 탄생>은 한국의 사법제도의 기원과 형성 과정을 추적한 역저다. 검찰과 법원의 조직, 형사소송제도 등 오늘의 사법기구와 운영방식, 문화가 어떻게 태어났고, 어떤 역사적 과정에서 변화해왔는지 등을 탐색했다. 돋보이는 점은 일제감정기와 미군정기, 4•19 혁명 이후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이르기까지의 대한민국 사법사를 철저히 1차 자료를 기초로 논증했다는 것이다. 무려 976쪽에 이르는 방대한 양도 이 때문이다. 대한민국 근대 사법의 모태적 환경과, 성장•굴절 과정에는 일그러진 사법 얼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21889.html
올해는 까뮈 사후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국제도서전에서도 주빈국이 프랑스였으니 까뮈와 관련된 행사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동안 까뮈 번역에 힘을 썼던 김화영교수의 번역본 까뮈 전집이 완간되었고 그 기념으로 전집형태의 특별판이 나왔다.
6월이다. 올해는 경술국치, 나라가 망한지 100년이 된 해인데 그냥 슬그머니 넘어가버렸다. 경술국치 100주년 해의 3.1절 기념사에서 이 나라의 대통령은 일본의 과거에 대한 언급을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그에 비해 한국전쟁 60주년은 일찌감치 준비가 되는 느낌이다. '포화속으로'라는 영화가 해외 시사회를 하고 각 방송국들이 특집 드라마를 준비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하여간 6월에는 시간이 된다면 한국전쟁과 관련된 책들을 읽어보고자 한다. 월드컵이라는 시간을 잡아먹는 귀여운 악마가 나의 6월을 알고 있다는 듯 실실거리고 있지만 말이다.

http://blog.daum.net/rainaroma/16098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