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에 소개된 책 들 중에 별도로 묶어볼 만한 책들이 있다.)
 

음식과 관련해 곤란한 질문은 바로 개고기와 관련된 것이다. 특히 외국인이 묻는다면 더 곤혹스럽다. 그런데 더 이해하기 힘든 것은 개고기에 반대하면서 쇠고기, 돼지고기를 먹는 사람들이다. 개와 소, 돼지가 무슨 차이가 있지? 개는 깨끗하고 돼지는 더럽다? 집단식 사육방식 때문에 그렇지 돼지는 개처럼 교육을 시키지 않아도 똥,오줌을 잘 가린다.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면 간혹 '개 보다 못한 인간'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경우를 보게 된다. 그들은 사람보다 개를 더 우위에 놓는 경향이 있고, 기득권층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이분법으로 놓기는 그렇지만 개를 사랑하지만 사람은 차별하는 사람, 개를 먹지만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누가 도덕적으로 옳을까?


하여간 2월에는 동물과 관련해 3권의 책이 소개되었다.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멜라니 조이 지음•노순옥 옮김/모멘토•1만2000원.

<동물 권리선언>
마크 베코프 지음•윤성호 옮김/미래의창•1만2000원


 

"사람은 다른 동물과 얼마나 다를까?
미국 콜로라도대학 명예교수(생태학•진화생물학)로 제인 구달 등과도 오래 협력해온 동물행동학자 마크 베코프가 2010년에 낸 <동물 권리 선언>은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건 분명하지만 결코 그들보다 더 우월한 건 아니라고 얘기한다. 다른 동물들도 사람처럼 인지능력이 있고 온정•사랑•연민•배려•존경•존엄•평화를 느끼고 생각하고 실천하는 존재라는 걸 베코프는 숱한 사례를 들어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베코프는 낙관주의자요 현실주의자지만, 인간이 이 사실을 깨닫고 동물들을 지구라는 같은 집에 사는 대등한 동료요 벗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전환을 이뤄내지 못하는 한 자신의 ‘인간다운’ 삶과 미래도 없다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낸다. 그것은 인간이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와도 연결돼 있다. 결코 쉽지 않은 이 철학적인 주제를 쉽고 잔잔하게 풀어가는 것, 그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


보츠와나의 사파리에서 새끼 코끼리가 굶주린 사자들 밥이 됐다. 그때 100여마리의 코끼리들이 몰려오더니 사자들을 내쫓고 피투성이의 사체를 코로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훌쩍이면서 차례차례 예를 표하고 순서대로 물러섰다. 코끼리떼가 인간의 총에 죽임을 당한 코뿔소를 애도하는 광경도 목격됐다. 2008년 12월 중국의 한 서커스 공연장에서 원숭이 한 마리가 미니자전거에 올라타기를 거부했다. 조련사가 회초리로 원숭이를 때리자 분노한 다른 원숭이 두 마리가 조련사를 공격했다. 한 원숭이는 조련사의 귀를 잡아 비틀고 다른 원숭이는 그의 머리를 잡아당기고 목을 물었다. 조련사가 회초리를 떨어뜨리자, 한 마리가 그것을 집어들고 부러질 때까지 조련사를 계속 때렸다. 레버를 누르면 음식이 나오게 돼 있는 실험실에서 우리에 갇힌 쥐가 처음엔 열심히 레버를 누르다가 그렇게 하면 다른 쥐가 전기충격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레버 누르기를 거부했다. 토큰을 넣으면 음식이 나오는 원숭이 실험실에서 수컷 다이아나 원숭이는 아직 그 기술을 배우지 못한 암컷을 위해 자신의 토큰을 넣어 먹게 해주었다.


.....
하지만 인간은 아직도 철저한 ‘종(種)우월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2009년 1월 지은이가 사는 마을에 코요테 한 마리가 나타나 원반던지기 놀이를 하던 여인을 공격했다는 신고가 떴다. 달려온 콜로라도주 야생동물관리국 직원들은 코요테를 사살했다. 그 전에도 지은이가 애완견 제스로와 원반 물어오기 놀이를 할 때 종종 인근 붉은여우들도 함께 놀고 싶어했다. 문제의 코요테는 여인을 물지도 않았고 난폭하게 굴었는지 여부도 확인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관리들은 사전 예방 조처라는 명목으로 다섯 마리의 코요테를 추가로 사살하기까지 했다. 그해 6월에는 얼어붙을 듯이 찬 바다를 160㎞ 이상 헤엄쳐 아이슬란드 스카가피외르뒤르 해안에 간신히 도착한 북극곰 한 마리를 현지인들이 사살해버렸다. 인간에게 위험하다는 일방적 이유만으로.


멀리 갈 것도 없다. 곳곳에 덫을 놓아 멸종위기의 산양이나 방사한 반달곰들을 죽이고, 먹이를 찾으러 민가로 내려온 멧돼지를 사살하는 게 당연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소•돼지만 300만마리를 넘고 오리•닭 등을 합하면 무려 1000만마리가 넘는다는 구제역 생매장 참극도 현재진행형이다.


...
“이 세상이 모두 우리의 집이고 모든 살아 있는 존재가 이를 공유하고 있으며, 모든 존재는 서로를 보살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대로는 우리 삶이 존엄할 수도 풍요로울 수도 없으며 지속가능하지도 않다고 베코프는 말한다.

이 책이 지닌 또 하나의 강점은 지향점은 선명하되 설득방식은 온건하고 현실주의적이라는 것이다. 베코프는 일거에 실험실을 폐쇄하자거나 모두 채식주의자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먼저 생각을 바꾸고 일상의 가능한 일부터 하나하나 바꿔가보자고 권한다. 예컨대 우리가 먹는 고기 양을 조금 줄이기만 해도 산업구조가 바뀌고 온난화 가스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단다. 그걸 위해 베코프는 반대자들에게도 온정적으로 접근한다. 상대를 배려하는 온정이 온정을 낳고 세상을 가속적으로 밝고 풍요롭게 만드는 선순환 효과를 동물한테만이 아니라 인간끼리도 기대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65374.html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를 쓴 멜라니 조이 미국 매사추세츠대학 교수는 해마다 학생들에게 개와 돼지에 대한 생각을 묻는 수업을 한다. 학생들의 대답은 비슷하다. 개는 귀엽고 다정하지만, 돼지는 더럽고 멍청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지은이는 이런 편견이 잘못됐음을 지적하면서 학생들에게 “왜 우리는 돼지는 먹고 개는 먹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데, 학생들은 “먹기 위해 돼지를 키운다. 왜 그런지는 생각 안 해봤다”고 답한다.

 

지은이는 소나 돼지를 당연히 고기로 소비할 수 있다는 생각 뒤에는 육식주의가 도사리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채식주의처럼 육식주의도 확고한 이데올로기이지만, 육식주의는 채식주의와 달리 현실을 보지도 듣지도 않는 부정을 통해 지탱된다고 주장한다. 지은이는 이를 육식주의의 비가시적 특성이라고 이름 붙인다. 현실에서 돼지는 태어난 지 2~3주 뒤부터 더러운 우리에 쑤셔 넣어지고, 6개월 뒤에는 도축장으로 향한다. 돼지는 도축장 컨베이어 벨트에서 때로는 산 채로 사지가 절단되고 분리되며, 고통스런 비명을 내지른다.

 

지은이가 한국의 개고기 소비에 대해 적은 부분은 동의하기 어렵다. 지은이는 “계몽된 서양에서는 개와 고양이가 당연히 받아야 할 대우를 해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나 후진적인 사회에서는 그걸 본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은이의 논리대로라면 소고기나 돼지고기, 개고기 소비 모두가 잘못된 육식주의이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64146.html

 

<우리가 먹고 사랑하고 혐오하는 동물들>
할 헤르조그 지음•김선영 옮김/살림•1만8000원
 
"매일 쇠고기를 먹으면서 개고기 먹는 걸 혐오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 흔하다. 60%의 “미국인이 동물들은 살 권리가 있다”와 “우리는 고기를 먹을 권리가 있다”는 데에 모두 동의한단다. 어시장 연례행사에서 상인들의 죽은 생선 던지기를 보고 즐기면서도 죽은 고양이 시체를 그렇게 주고받는다면 기겁을 할 사람들이 많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사랑하고 그들에게 키스까지 퍼붓는 사람이 모피 생산을 위해 밍크 항문에 전기충격을 가하거나 바다표범 머리를 몽둥이로 내려치는 잔혹에는 어떻게 그토록 무감각할 수 있는지.


그뿐인가. 모피코트를 입고 고양이를 사랑스럽게 안고 가는 여성, 돼지고기는 거부하지만 고등어는 먹는 자칭 ‘채식주의자’, 훨씬 많이 자행되는 쥐 실험엔 침묵하면서 원숭이 실험 연구자에게만 테러를 가하는 과격 동물보호운동가, 투계를 잔인하다 비난하면서 닭튀김이나 치킨버거는 맛있게 먹는 사람, 7만마리의 닭을 희생시키느니 차라리 같은 고기양을 지닌 대왕고래 한 마리를 희생시키는 게 낫다며 고래를 먹자는 캠페인을 펴는 동물보호단체….

 

인간과 동물 관계 연구의 권위자인 할 헤르조그 웨스턴캐롤라이나대학 심리학과 교수의 <우리가 먹고 사랑하고 혐오하는 동물들>은 동물에 대한 인간 사고와 행동방식에서 드러나는 이런 비일관성과 역설 뒤의 심리학, 동물 애호가나 보호론자들이 자신의 신조에 집착하면 할수록 일상생활에서 더 첨예하게 부닥치게 되는 도덕적 난관들을 흥미로운 사례들을 동원해 현란하게 파헤친다.


....


지은이가 드는 인류동물학의 뜨거운 쟁점 세 가지. 첫째, 돌고래 등 동물과 함께 놀고 교감하면 우울증이 치료되고 자폐증이 낫는다는 얘기가 옳은가? 둘째, 사람들은 자신이 키우는 개를 닮아간다는 얘기는 정말인가? 셋째, 어려서 동물을 학대한 아이는 결국 폭력적인 성인으로 자랄까? 첫째는 아니고 둘째는 맞고 셋째 또한 아니란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6537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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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에 소개된 책 들 중에 별도로 묶어볼 만한 책들이 있다.)

 

어산지는 누구인가? 현재 그는 성폭행혐의로 기소되어 런던에서 전자발찌를 찬 채 경찰의 감시하에 있다. 전세계의 정보를 뒤흔든 그는 파렴치한 성폭행범인가? 아무래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정부는 그를 파렴치한으로 몰고 가려는 듯 하다.


하지만 그가 성폭행범으로 몰리는 과정은 너무나 이상하다. 두 명의 여성에게서 성폭행으로 신고되었는데 두 명의 여자 모두 그와의 성관계에 동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웨덴에서는 성관계 도중 콘돔이 찢어진 상황에서 성관계를 거부할 수 있고 이 때 성폭행이 성립된다고 하는데 문제는 두 건 모두 똑같은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더군다나 그 여성 중 한명은 스웨덴 출신 미국 공무원인데 CIA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이 사건에 미국 정부가 깊숙히 관련되었다고 의심되는 이유이다.


위키리크스는 한동안 전세계를 뒤흔들었다. 대한민국 또한 여기서 자유롭지 못했다. 한국 정부의 고위 공무원들이 중국을 비하하거나 중국 관료를 비하한 사실이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2월에 위크리크스에 관한 책이 두권 출판되었다. 한권은 독일 <슈피겔>지의 기자들에 의해, 다른 한권은 위크리크스 설립에 관여했던 위키리크스2인자에 의해 씌여졌다.



<위키리크스-권력에 속지 않을 권리>


마르셀 로젠바흐 등 지음•박규호 옮김/21세기북스•1만5000원

"그리하여 “아날로그 세상과 디지털 세상, 현실 정치와 인터넷 속 도전자들 사이의 한판” 거대한 싸움은 권력 쪽의 승리로 끝난 듯이 보인다. 어산지와 위키리크스를 ‘국가의 적’ ‘초국가적 위협’으로 규정한 미국 주류사회는 사이버 세계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들을 정비하는 한편 위키리크스 사이트를 집중 공격해 접속 불능의 마비상태에 빠뜨렸다. 서버를 임대해주고 있던 아마존도 정치적 압박 때문에 임대를 철회했다. 머니부커스와 스위스 우체국 자회사 포스트파이낸스 등이 위키리크스 계좌를 정지시켰고 지불서비스업체 페이팔도 협력 해지를 통보했다. 마스터카드와 비자 역시 위키리크스로 들어가는 돈의 송금업무를 중단했다. 이제 남은 자금조달원은 독일 헤센주 국스하겐의 비영리단체 ‘바우 홀란트 재단’ 하나뿐이다.

 

백악관은 정부 부처와 기관, 하원 도서관 컴퓨터의 위키리크스 및 폭로협력 매체 사이트 접속을 원천 차단했다. 위키리크스 활동 중에 ‘불법’으로 확정된 것은 아직 아무것도 없는데도. 지은이들은 유죄 판결을 받은 적 없는 위키리크스에 대해 무죄추정주의를 적용하지 않겠다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개인신상 정보와 외교관들 아이티(IT) 정보까지 수집하는 명백한 불법 ‘간첩활동’을 하도록 지시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계좌는 왜 정지시키지 않고, 꼭같이 기밀문서를 보도한 <뉴욕 타임스> 등 유력 매체들은 왜 그냥 두느냐고 힐난한다.

하지만 대다수 기성 언론들은 위키리크스 활동을 불법으로 몰아붙이면서 “새로 밝혀진 건 거의 없다”는 권력의 김빼기 작전을 재빨리 수용하고 비아냥거렸으며, 미국 동맹국들 역시 워싱턴이 제시한 모범답안을 그대로 따랐다. 친미로 올인한 한국 언론들한테서 예외를 기대할 수 있을까. 서방의 대중매체와 정치권의 이런 굴종적인 자세를 두고, 지은이들은 만일 모스크바나 베이징에서 중국이나 러시아 기밀문서가 유출되었을 때도 과연 그런 논조를 취할까 하고 되묻는다.

 

기성 매체들은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함으로써 사회가 자신의 실존적인 문제들을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게 하겠다는 위키리크스의 파격적인 도전이 이미 자신들이 기득권자인 기성체제의 안전성을 깨뜨릴까 두려워 정부를 편드는 것이라고 요약한다.


그러나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다. 어산지는 이제 베이스캠프에 도착했을 뿐, 싸움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선언했다. “최초의 진짜 정보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터는 위키리크스이고 당신들은 전투병력이다.” 디지털인권운동 ‘전자프런티어재단’ 공동설립자이자 ‘사이버공간 독립선언문’ 작성자인 존 페리 발로는 수많은 인터넷 유저들을 향해 그렇게 외쳤다. 탄압자 못지않게 저항자들도 나름 군대와 지지자들을 확보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탄압이 시작되자 페이스북과 트위터 지지자와 팔로어 숫자가 가파르게 치솟는 거대한 국제연대 물결이 일어나고 바우 홀란트 재단에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엄청난 기부금이 몰려들었다.


베트남전 개입 구실을 조작한 정부 문서를 폭로한 대니얼 엘즈버그는 공개적으로 “아마존의 비굴함에 구역질이 난다”며 아마존을 탈퇴했고 정부 조처를 수용한 다른 기업들에 대한 계약 해지와 불매운동도 거세졌다. 위키리크스의 ‘콘텐츠 미러링’ 호소에 발맞춰 불과 며칠 만에 세계 곳곳에 1200개 이상의 미러 서버가 생겨나기도 했다. 마스터카드와 비자카드 사이트가 위키리크스 지지자들의 공격으로 다운되고, 공화당 리더 세라 페일린과, 어산지를 기소하려던 스웨덴 검찰청 사이트 등이 디지털 집중포격을 당했다. 사상 최대의 사이버 국제봉기가 벌어진 것이다.
....
그 한편에선 중국 인권운동가들이 ‘거번먼트리크스’라는 이름의 사이트를 만들고 있고, 돔샤이트 베르크는 위키리크스 비판자들과 함께 ‘오픈리크스’를 만들고 있다. 발칸리크스, 인도리크스, 브뤼셀스리크스, 트레이드리크스 등 지역적 내용적으로 특화된 많은 대안들은 이미 떴다. 민주주의와 인터넷 주권의 미래는 이런 수천 수만의 위키리크스들이 열어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세상을 바꿀 새로운 분화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64157.html

 

<위키리크스-마침내 드러나는 위험한 진실>
다니엘 돔샤이트 베르크 지음•배명자 옮김/지식갤러리•1만3800원



한때 위키리크스 2인자로도 불리던 초창기 핵심멤버 다니엘 돔샤이트 베르크가 줄리언 어산지와 결별한 뒤 쓴 책. 어산지와 위키리크스를 잘 아는 비판자의 시선으로 본, 아직까지도 잘 알려지지 않은 위키리크스의 속내와 실체. 원래 미국 정보기술(IT) 대기업 일렉트로닉 데이터시스템(EDS) 독일지사에서 보안전문가•프로그래머로 근무하던 그는 2007년 어산지와 의기투합해 이후 3년 동안 위키리크스의 토대를 구축해간다. 세상을 뒤흔든 비밀문서들의 입수와 사실 확인, 폭로 과정과 제보자(정보원)의 신변보장 방법 등이 구체적인 일화들과 함께 흥미롭게 소개돼 있다.

 

아울러 그들이 왜 헤어지게 되는지, 두 사람의 견해 차이와 결별 과정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돔샤이트 베르크는 어산지를 “그렇게 극단적인 사람은 지금껏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극단적으로 자유로운 사고를 지녔다. 극단적으로 에너지가 넘친다. 극단적으로 천재적이다. 극단적으로 권력에 사로잡혀 있다. 극단적인 편집증이다. 극단적인 과대망상이다.” 돔샤이트 베르크는 어산지와의 결별 뒤에 위키리크스에서 활동한 세월을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보람 있었다며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고 어산지에 대해서도 부정으로 일관하진 않는다. 기밀문서 폭로를 이유로 그를 간첩법 위반으로 처벌하거나 미국으로 송환하는 데에도 단호히 반대한다.

 

일련의 대형 폭로 작업을 통해 위키리크스의 위상이 비약적으로 높아지면서 어산지의 존재감도 커가는데, 그 과정에서 돔샤이트 베르크는 어산지가 “독재자라고, 항상 모든 결정을 혼자 내린다고, 나와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고” 자주 비판하게 된다. 수학에 능한 해커 출신의 어산지는 뛰어난 머리를 지녔으나 대인관계는 원활하지 못했고, 조직을 자신의 아이디어대로, 자기 중심적으로 끌고 가려는 의지가 강했다. 위키리크스 운영전략을 두고서도 둘은 충돌했다. 돔샤이트 베르크는 어산지가 대형 폭로에만 몰두하면서 다른 많은 작은 프로젝트들을 소홀히 하는 걸 못마땅해했고, 권력과도 정면충돌을 피하면서 효율적으로 대응하자는 쪽이었다. 그는 어산지 1인체제로의 권력집중이 초래한 폐해, 미디어 스타로서의 처신, 재정 운용상의 불투명성 등을 특히 문제삼았다. 그는 위키리크스의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점들을 보완한 새로운 폭로 인터넷 매체 ‘오픈리크스’ 개장을 준비하고 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6416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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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핀란드가 유행이었다. 세계 학습능력 평가에서 핀란드가 1위, 대한민국이 2위를 차지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핀란드의 학습방법 및 교육정책이 대한민국과 정반대에 있다는 점이다. 경쟁을 우선시하는 대한민국에 비해 핀란드는 협력을 우선시한다. 한 TV 프로그램에서 본 핀란드의 시험장면은 가히 놀라웠다. 시험을 마치고 답안지를 제출한 학생에게 선생은 몇 번 문제를 다시 풀어보라고 한다. 그러자 먼저 시험을 마친 학생이 ‘도와줄까’라며 옆에 앉는 장면이었는데 한국식 시험에 익숙한 나로서는 상당히 낯선 장면이었다. 이어지는 교사의 말은 시험은 이 학생이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는가를 판단하는 것이지 서열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제 스웨덴이 유행을 타려나 보다. 무상급식 논란에서 시작된 복지논쟁이 스웨덴을 우리사회로 끌고 들어왔다.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모습이 심심치 않게 방송을 타고 있다.

복지국가 스웨덴
신필균 지음/ 후마니타스•1만7000원


“스웨덴식 보편복지는 예컨대 이런 것이다. 18살까지의 아동•청소년들은 무상으로 교육을 받는다. 기초교육과정에는 점수나 등급에 의한 성적평가가 아예 없다. 성적평가는 좋음, 더 좋음, 아주 좋음 세 종류뿐이고 정해진 과목의 90% 이상에서 ‘좋음’ 이상만 받으면 누구나 어느 대학이든 갈 수 있다. 그런데도 고교 졸업생 중 대학에 진학하는 건 43% 정도밖에 안 된다. 가지 않아도 사회적 차별과 불이익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더 공부하고 싶으면 언제든 갈 수 있는 사회평생교육 시설들도 모두 무료다.   
 

육아 지원도 탁월하다. 출산 6개월 뒤 또는 부모 출산휴가(480일) 뒤부터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길 수 있고 각종 유치원과 탁아소 등 다양한 아동센터들이 존재한다. 임신휴가 급여로 월평균 소득의 80%를 최대 50일까지 받을 수 있다. 출산휴가는 480일이고 부와 모 양쪽이 나눠서 쓸 수 있되 어느 한쪽도 60일 미만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역시 평균 소득의 80%를 받는다. 자녀가 아파도 부모가 연간 120일까지(60일까지만 간병 급여 지급) 간병휴가를 받을 수 있다. 16살까지 아동수당도 나온다.


스웨덴에서는 “모든 아이는 모두의 아이”라는 관념이 일반화돼 있다. 어릴 때부터 그런 공감대 속에서 그런 사고훈련을 받고 자란 사람들이 남을 딛고 서기 위해 필사적으로 사교육 전쟁을 벌일 까닭이 없다. 유럽에 드문 속도로 스웨덴 인구가 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65살 이후부터 누구나 보장연금을 받는다. 고용과 소득수준에 비례한 부가연금제도도 마련돼 있는데, 급여액은 소득의 60% 수준이다. 아파서 쉬면 병가급여로 소득의 80%를 받는데, 산업재해를 빼고 최장 550일까지 병가를 받을 수 있고 1년을 넘기면 소득의 75%로 줄어든다. 개인이 부담하는 병원비와 약값은 아무리 큰 수술을 받더라도 연간 45만원 수준을 넘지 않게 돼 있다.

실업급여도 이전 소득의 80%를 14개월간 받을 수 있고 18살 아래 자녀가 있으면 그 기간이 150일 더 늘어난다. 실업자 채용 회사엔 정부가 6개월간 임금의 50~65%를, 장기실업 고령자나 이민자에겐 12개월간 임금 총액의 최대 75%까지 지원한다. 18살이 되면 임대아파트를 신청할 수 있는데, 원룸 학생아파트, 결혼이나 동거하는 학생들을 위한 학생가족아파트, 노인들이나 장애인을 위한 특수아파트, 호텔형아파트, 맞춤형아파트 등이 즐비하고 임대료도 건물 소유자와 세입자조합 간에 단체협상을 통해 정하게 돼 있다.

19세기 말의 가난에 허덕이던 농업국가 스웨덴을 비교적 단기간에 일류 산업국가로 바꾼 건 절차적 민주주의 쟁취뿐만 아니라 이런 보편 복지정책을 통해 사회•경제적 민주주의까지 이룬 덕이었다. <복지국가 스웨덴>은 어려운 시절 나라의 기틀을 바꾸려는 웅대한 장기 비전을 갖고 역경을 헤쳐온 사민주의세력의 혜안과 철학, 가치관, 그리고 토론과 협의를 통해 폭넓은 참여•존중•합의를 끌어낸 그들의 정치적 리더십에 더 주목하라고 주문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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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삶의 확대, 소득 수준과 무관”
신필균 사회투자재단 이사장

……………………….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누구는 주고 누구는 주지 않고 해서 받는 쪽이 주눅들게 해선 안 되며 모두에게 꼭같은 기회를 줘야 한다면서 선별•시혜적 복지론에 현혹돼선 안 된다고 했다. “모든 아이는 모두의 아이”라는 스웨덴식 사고가 사회구성원 경쟁력 차원에서도 우월하다고 했다. 포퓰리즘이라는 비난은 자신들이 특권적 지위를 누리는 현 체제의 모순을 은폐하고 정당화해서 결국 자신들의 독점적 지위를 계속 유지하려는 속셈이 아니냐는 얘기도 했다. 그러면서 “국회 인사청문회에 나온 자들이 자신의 비리의혹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남들은 더 하지 않느냐고 얘기할 때 제일 화가 난다”고 했다. 거기엔 아무런 비전도 없다.

그는 또 “민주주의의 핵심 요건은 참여, 존중, 연대다. 복지의 최고 가치는 자유, 평등, 연대다. 양쪽 모두에 연대가 들어 있지 않으냐” 며 “모든 사회(공동체) 구성원이 사회•경제적으로 기회의 평등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사회복지정책, 특히 보편적 사회복지 정책을 통해 비로소 가능하다”고 했다. 비록 보통선거권과 같은 민주적 제도가 확립됐다 하더라도 사회•경제적 격차가 확대되면 민주주의는 무너지고 결국 소수 엘리트가 모든 걸 좌우하는 과두제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59977.html

 

미국사 산책 1~17
강준만 지음/인물과사상•각권 1만4000원



1990년대 실명비판의 장을 열었던 강준만, 2000년대에 들어서는 역사를 둘러보는 작업을 내놓고 있다. 한국근대사, 현대사에 이어 이번에는 미국사를 내놓았다. 한국근현대사에 대한 강준만교수의 작업은 한국사 연구에 있어 독특한 위치에 놓인다. 자료를 중심으로 정치, 사회, 문화, 예술을 모두 엮어낸 솜씨는 모두가 인정하는 바이다. 초기 저작부터 그랬지만 강준만의 작업의 특징은 방대한 자료를 중심으로 한다는 점인데, 역사를 묶어내는데도 큰 역할을 하였다.

““왜 모든 분야와 주제들을 ‘비빔밥’처럼 요리해 통합적으로 자세히 보여주는 시도가 이렇듯 외면받아야 한단 말인가? 정치, 경제, 군사, 외교, 사회, 문화, 언론, 영화, 방송, 학술, 과학, 기술, 문학, 언어 등 모든 분야가 상호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게 아닌가? …어느 한 분야에만 집착할 경우 포괄적이고 공정한 시각을 놓치게 되고 그로 인해 긍정과 부정의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치게 되는 건 아닌가?” 이게 강 교수의 문제의식이고 ‘산책’ 기술 기본원칙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강 교수에게 중요한 또 하나의 역사기술 원칙은 파편적으로 파고만 들 게 아니라 전체를 아우르는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상을 그려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 미국이란 나라에 대한 지금 한국 사회의 이해가 어딘가 크게 잘못돼 있고, 그걸 바로잡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닿아 있다.

문제는 그게 한 사람의 힘으로 가능하냐는 것일 터. 그 능력이 바로 강준만 역사쓰기의 비결이요 요체다. 미국 조지아대, 위스콘신대에서 미국언론사•대중문화사•커뮤니케이션사를 공부한 강 교수는 굉장한 수집가다. 국내외 전문서적, 신문, 방송 보도, 잡지, 논문 등 그가 인용하는 방대한 자료들을 보면 사료를 찾는 그의 안테나와 채집망이 얼마나 강력하고 광범한지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이런 기성 연구나 보도자료들을 적절히 채집하고 활용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닥치는 대로 긁어모아 적당히 나열하는 차원을 넘어서려면 수집력 못지않게 그것을 선별해내고 재조립•재해석하는 선구안과 창의력이 필요하다. 그건 또 엄청난 독서력과 판단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

애초 강 교수는 이 책을 ‘미국사를 중심으로 한 세계사’로 꾸밀 작정이었고, 한국인을 위한 미국사 산책이니만큼 특히 한-미 관계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한국 현대사의 주요장면들과 겹치는 이 책의 미국사 부분은 좀더 온전한 한국현대사 이해에도 유용하다. 강 교수는 한국과 미국이 닮은 점으로 압축성장, 평등주의, 물질주의, 각개약진, 승자독식 등을 꼽고, 한국의 반미주의와 사대주의의 정체에 대해서도 파고든다. 그는 여기서도 친미냐 반미냐, 사대주의냐 아니냐 식의 이분법적 시각을 거부한다. 하지만 그런 것을 섣불리 이론화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진 않는다. 그가 말하는 ‘통섭’은 친미-반미뿐만 아니라 좌-우, 진보-보수 등 어느 한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겠다는 게 대원칙이다. 편식하지 않도록 다양한 재료로 적절히 요리해서 내놓을 테니 최종판단은 독자가 하라는 것이다. 물론 사관이 없을 수 없다. 그 방대한 자료들을 가려내고 재배열할 때의 선구안 그 자체에 이미 강준만의 역사관•세계관이 작용하고 있다. 그게 이 책에 의미를 채워주는 또 하나의 기둥이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56732.html


국사의 필수과목 지정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국사가 선택과목이었나 본데 여러 모로 생각할 거리다. 나라의 근본이니 이런 문제를 거론하기에 앞서 국사라는 말 자체가 합당한가에 대한 논란도 있다. 차라리 역사라는 과목으로 세계사 그 속의 동아시아사 그 안의 한국사를 조금 더 자세하게 다루는 교육은 어떨지? 한국사만 강조하기엔 너무나도 깊은 관계를 맺어온 동아시아사를 놓쳐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작년부터 한국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동아시아에 대한 무지를 고민중에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한국사는 세계사 최소한 동아시아사 속에서 같이 공부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함께 읽는 동아시아 근현대사 1, 2
유용태•박진우•박태균 지음/창비•1만8000원

“중국 근현대사 전공의 유용태 서울대 사범대 교수, 일본 근현대사 전공의 박진우 숙명여대 교수, 한국 근현대사 전공의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등 동아시아 3국 근현대사 전공자 3명이 토론과 협의를 거듭한 지난 6년간의 구상과 집필 작업 끝에 내놓은 <함께 읽는 동아시아 근현대사>는 냉전 해체 이후 등장한 동아시아 담론들을 역사서술로 심화시키면서 기왕의 각국사나 동아시아사의 한계를 돌파하려 한다. 지은이들은 국사와 세계사라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분적인 역사서술은 메이지 유신 이래 제국일본이 구축한 자국중심주의와 유럽중심주의에 토대를 둔 것이라며, 탈냉전으로 일국사에 갇혀 있던 동아시아에 지역사가 등장할 조건이 갖춰졌다고 본다.

………이 책의 특징은 이 소항목들 서술부터 일국사가 아니라 다국사 또는 지역사라는 점이다. 말하자면 하나의 소재나 작은 주제를 한 나라의 얘기로 채우는 게 아니라 다국 또는 지역 얘기가 교차하는 식으로 짜는 것이다. 집필 편의상 각 장들은 전공별로 나눠 한 사람이 대표집필할 수밖에 없었지만 의견과 자료 교환을 통해 집필자 모두의 생각이 담길 수 있도록 애썼다.

그때의 서술원칙이 ‘연관과 비교’다. 한•중•일 3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 역사가 중심이지만 주제에 따라 필리핀과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나 인도까지도 ‘연관’되고 ‘비교’된다. 예컨대 필리핀에서 2차대전 뒤 독립과 계급해방을 위해 싸운 세력들이 미국의 제국주의적•냉전적 필요에 의해 제거당하고 우익보수 친미•친일세력이 주류로 등장하는 과정은 광복 뒤의 한국 현대사 과정과 흡사하다. 하지만 한국처럼 미완의 토지개혁조차 달성할 수 없었던 필리핀이 오늘날까지 대지주들이 지배하는 반봉건적 후진의 늪에 빠져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 비교점이다. 문인 사대부들이 권력기반을 이룬 중국•조선•베트남, 그리고 무사가 권력기반이 된 일본은 다른 근대의 길을 걸었다. 전후 일본 개조에서 재무장(역코스)으로 바꾼 미국의 대일정책 선회에는 인도의 간디 암살과 제3세계의 등장도 영향을 끼쳤다.

그리하여 동아시아라는 ‘지역’ 안에서 ‘국가’ 및 ‘민중’(민간사회) 상호간의 의존•연관과 대립•갈등을 아울러 파악하도록 하되, “연대와 협력을 통해 자유와 평등을 추구해가는 노력을 부각시킨다”고 집필자들은 밝혔다. 지역•국가•민중의 교직이 서술 방법상의 원칙이라면 이 연대와 협력, 자유와 평등은 이 책을 관통하는 서술의 기본정신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선 세계적 차원에서 냉전이 붕괴된 지 20여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냉전의 섬으로 남아 있는 동아시아, 그 현실을 떠받치고 있는 정신구조, 진보를 가로막는 그 수구적 장애물을 제거하려는 지은이들의 열망을 느낄 수 있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61201.html

아울러 중국사를 개괄할 수 있는 책이 소개되었다.

천추흥망 1~8
거지엔슝 총편집•이지연 외 옮김/따뜻한 손•각 권 1만8000원

 
“중국 역사를 책 몇 권으로 압축하려는 시도는 무모하거나 무용할 것이다. 아득한 천추(千秋)의 시간이고, 그 세월이 지나온 내용의 두께를 책이란 물건이 온전히 감당해 내기엔 버거운 일이다. 중국 역사학자 거지엔슝 푸단대 교수의 지휘(총편집)로 중국 역사가 <천추흥망> 8권의 책에 담겼다. 중국 대륙 최초의 통일 왕조인 진부터 마지막 왕조 청까지의 중국사를 여덟 칸(진, 한, 삼국•양진•남북조, 수•당, 송, 원, 명, 청)으로 나눠 들여다본 이 책은, “무모했지만, 쓸모없지는 않을 것”이란 거지엔슝 교수의 겸손한 자평과는 달리 “신해혁명 후 중국 학계가 이룩한 최고의 연구 성과”라는 소리를 들었다. 통사 형식이 아니라 그 시대나 왕조의 특징과 의미를 잘 드러내는 10여개의 주제를 뽑아 다루는 방식이어서 방대한 분량에도 지루하지 않게 읽힌다. 중국에서는 2000년에 모두 출간됐지만, 우리나라에선 2008년 1권이 나온 뒤 이번에 마지막 8권이 나오면서 완역됐다. 4권 당나라 태종을 다룬 ‘봉건시대 치세의 모범’ 부분을 보자. 그 시대 ‘정관의 치’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대규모 농민봉기가 일어난 뒤에는 어김없이 훌륭한 황제가 출현했다. 태종도 수나라를 무너뜨린 농민들의 봉기를 보고 백성 무서운 줄 알았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침몰시킬 수도 있다’는 두려운 마음이었다.” 선정을 베풀던 군주도 말년엔 초심을 잃고 어김없이 폭정으로 갔다. 지은이는 그것이 바로 역사가 보여주는 아이러니요, 권력의 속성이라고 썼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58894.html

지젝은 낯선 이름은 아니다. 데리다, 푸코, 장 보드리야르 등 모든 이름 솔직히 익숙하다. 독서보다 책 정보를 찾는데 더 많은 시간은 쓰는 나로서는 이런 현대철학자들은 자주 접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읽어보았느냐고 한다면 시뮬라시옹 등 극소수의 책을 제외하곤 손도 대지 않았다. 나이가 들고 식구들이 늘어나면서 읽을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래도 폭력을 주제로 한 지젝의 책이 나왔다 하여 소개글을 관심있게 읽었다.  
 
 
폭력이란 무엇인가
슬라보예 지젝 지음•이현우 외 옮김/난장이•1만5000원

이야기는 독일 문예비평가 발터 베냐민(1892~1940•사진)이 1920년에 쓴 짧은 에세이 <폭력 비판을 위하여>에서 시작된다. 당시 유행하던 조르주 소렐의 <폭력에 대한 성찰>을 지적 배경으로 깔고 있는 이 에세이는 폭력을 ‘신화적 폭력’과 ‘신적 폭력’으로 나누어 고찰한다. 베냐민이 말하는 신화적 폭력의 ‘신화’는 그리스 신화를 가리키고, 신적 폭력의 ‘신’은 유대교의 신, 곧 야훼를 가리킨다. 베냐민은 그리스 신화 속의 ‘니오베 이야기’를 사례로 든다. 테베의 왕비 니오베는 아들 일곱명과 딸 일곱명을 두었는데, 그 다복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니오베는 자기가 여신 레토보다 더 훌륭하다고 뽐냈다. 레토에게는 아들(아폴론), 딸(아르테미스) 한명씩밖에 없었다. 화가 난 레토는 아폴론을 시켜 니오베의 아들들을 죽이게 하고 아르테미스를 시켜 딸들을 죽이게 하였다. 자식을 모두 잃은 니오베는 울며 세월을 보내다 돌이 되고 말았다. 여기서 레토의 분노가 바로 신화적 폭력이다.

베냐민은 신적 폭력의 사례로 <구약성서> 민수기의 ‘고라의 반역’을 든다. 고라는 모세의 사촌이었는데, 무리를 지어 모세의 지도력에 반기를 들었다. 모세가 분수에 넘치도록 교만하고 독선적이라는 것이 명분이었지만 실상은 같은 레위지파 후손으로서 모세에게만 영광이 돌아가는 데 대한 질투가 진짜 이유였다. 모세에 대한 반역은 모세에게 권위를 준 야훼에 대한 반역과 다르지 않았다. 모세가 야훼의 공정한 심판을 요청하자, 땅이 갈라지고 불길이 솟아 고라의 무리는 한꺼번에 소멸당했다. “신은 레위족 사람들(고라의 무리)을 경고도 위협도 하지 않은 채 내리치고 주저없이 말살했다.” 이것이 신적 폭력이다. 그렇다면 신화적 폭력과 신적 폭력은 어떻게 다른 것인가? 베냐민은 신화적 폭력이 법을 정립하고 보존하는 폭력, 다시 말해 지배를 구축하고 유지하려는 폭력인 데 반해, 신적 폭력은 그런 법을 파괴하고 해체하는 폭력이라고 말한다. “신화적 폭력이 법 정립적이라면 신적 폭력은 법 파괴적이고, 신화적 폭력이 경계들을 설정한다면, 신적 폭력은 경계를 파괴한다.” 베냐민은 이 신적 폭력을 ‘순수한 폭력’이라고 옹호한다.

………
지젝은 베냐민의 신적 폭력의 구체적 사례로 프랑스 대혁명의 자코뱅 공포정치, 그리고 1919년 러시아 내전 때 붉은 군대의 ‘테러리즘’을 거론한다. “신적 폭력을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적 현상과 등치시키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모호함을 피할 수 있다.”

이렇게 지젝의 이 책은 신적 폭력이라는 이름의 ‘순수한 혁명적 폭력’을 변호한다. 이 폭력은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저지르는 거대한 구조적 폭력에 맞서는 대항 폭력이다. 이 신적 폭력은 그 내부에 뜨거운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고 지젝은 단언한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58960.html

아울러 미술에 대한 입문서가 하나 소개되었다.

미술은 똑똑하다
리처드 오스본•댄 스터지스 글•나탈리 터너 그림•신성림 옮김/ 서해문집•1만1900원.

○○○이란 무엇인가? 무언가의 정의를 묻는 질문은 언제나 힘들다.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에 따라 수천수만 갈래로 나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질문의 대상이 추상적인 것일 때, 문제는 더욱 골치 아파진다. 미술 개괄서인 <미술은 똑똑하다: 오스본의 만화 미술론>이 읽기 만만치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입문자를 위한 이론서’라는 서문의 주장만 철석같이 믿고, 혹은 책 곳곳에 삽입된 키치풍의 만화만 보고, 가벼운 마음으로 책 속에 뛰어든 독자들은 책을 읽어갈수록 당혹스러워할지도 모르겠다. 책은 미술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짜여 있다. 지은이에 따르면 미술 이론이란 결국, 특정시대들이 미술에 관해 품은 다양한 문답들을 정리한 것이다.

고대 동굴 벽화부터 시작해 영국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 이르기까지 ‘미술’ 이라는 개념은 수많은 변화를 겪는다. 특히 지은이들은 근대 미술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산업화가 시작된 근대•현대의 대격동은 미술의 기존 개념과 정의 역시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놓았다. 초현실주의•미니멀리즘 등 다양해진 철학의 스펙트럼은 그대로 미술에 반영된다. 구태의연하지 않은 것을 추구하는 모더니즘 예술은 더더욱 추상적, 전위적, 그리고 철학적인 논쟁을 키워가며 현재에 이르렀다. 깡통수프, 좌변기가 예술작품의 소재로 등장하게 된 배경에도 이런 시대의 변화가 깔려 있다. 런던 미술대학의 캠버웰 칼리지에서 진행된 미술 입문 강좌를 정리해서 묶어냈다. 리처드 오스본•댄 스터지스 글•나탈리 터너 그림•신성림 옮김/ 서해문집•1만1900원.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5666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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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에 소개된 책들은 의외로 눈에 띄는 인문사회,경제서적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건 최근 오세훈 시장의 무상급식 등과 관련된 정책에 대해 째째하다며 비판을 가한 선대인씨의 책이다. 부동산 문제에 대해 지적해 왔던 그가 이번엔 세금에 대한 지적을 해왔다.  

  

프리라이더 / 선대인

 

“책 제목 ‘프리 라이더’는 무임승차자를 뜻한다. 부패가 사전 뜻 그대로 ‘정치?사회제도?의식 따위가 타락한’ 상태라면, 한국 사회는 공정하지도, 타락에서 자유롭지도 않다. 세금을 제대로 내지도 않고 그 세금으로 제공되는 공공재(공공서비스)에 거저 올라타서 온갖 혜택을 누리는 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 무임승차자들은 재벌기업들과 부유층, 고소득 전문직이다. 이 책은 한국에서 세금이 얼마나 불공정하게 걷히고 있는지, 세금을 걷어야 할 곳에서 정부와 제도가 얼마나 과세를 방기하고 있는지, 따라서 무임승차한 이 사회 특권층이 누리는 특혜실태를 분노에 찬 필치로 까발린다.

지은이는 우리가 더 분노할 대상은 구조적으로 잘못 짜인 현행 과세제도라고 말한다. 한국 사회 세금제도는 ‘1970년대 개발연대’에 만들어졌다. 경제 부문을 ‘자산경제’와 ‘생산경제’로 나눌 때, 당시 한국경제는 생산경제 중심이었다. 곧 기업이 공장을 가동하고 그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월급을 받아 소비지출을 하는 경제가 주축을 이뤘다. 그렇게 부가가치세?법인세?근로소득세가 국세 수입의 3대 축을 형성했다. 문제는 수십 년이 지났지만 그 조세체계 근본틀이 바뀌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2000년대 내내 부동산 값이 폭등하고 주식 거래가 활발해지며 주식?부동산으로 대표되는 자산경제 규모가 비대해졌다. ‘7500조원의 자산경제’ 규모가 국내총생산으로 대표되는 생산경제의 7배를 넘어섰다. 그런데 자산경제의 각종 자본이득, 이자?배당 소득에 대해 걷는 세금은 전체 세수의 17.8%에 불과하다. 자산경제 규모는 생산경제의 7배인데 그 세금은 4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지은이는 따라서 대부분 자산소득이 ‘불로소득’인 셈이라고 말한다. 세금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와 제도는 월급쟁이들의 근로소득엔 칼 같은 반면 자산소득에는 헐겁다. 집값이 올라 수억 차익이 생겨도 1가구1주택일 경우 시가가 9억원을 넘지 않는 한, 세금이 필요 없다. 주식으로 큰돈을 벌어도 역시 세금이 필요 없다. 국내 부동산 보유세 부담액은 부동산 자산가치의 0.09%에 불과한데도 부유층은 이를 ‘세금폭탄’이라 호도한다. 지은이는 반문한다. 실질 보유세율이 1%를 넘는 미국 같은 나라는 세금 핵폭탄이 떨어지는 나라인가.”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55698.html


21세기 초반 인문학의 위기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닌 듯 하다.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 이 담근 책들이 꾸준히 출간되고 있는데 이전처럼 반자본주의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묻어 보인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끈 책은 정치가 우선한다 와 이론 이후 이다. 일단 독서목록에는 올려놓지만 실제로 읽게 될지는 모르겠다.

정치가 우선한다
셰리 버먼 지음?김유진 옮김/후마니타스?1만7000원

<정치가 우선한다-사회민주주의와 20세기 유럽의 형성>은 정치학자 셰리 버먼(사진)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2006년에 펴낸 책이다. 2006년이면 자유시장주의의 21세기적 극단형인 신자유주의가 이데올로기적 지배력을 최대로 휘두르던 때다. 20세기 역사를 자유주의의 승리의 역사로 서술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때였다. 이 책은 이런 시대 분위기에 맞서 전혀 다른 명제를 제시한다. 20세기에 승리한 것은 자유주의가 아니라 사회민주주의(사민주의)였다!

그동안 사민주의는 대체로 마르크스주의와 자유주의의 실용주의적인 타협으로 이해돼 왔다. 사민주의자는 ‘혁명적 신념이나 용기가 없는 사회주의자’라는 다소 경멸스러운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 책은 사민주의를 이런 어정쩡한 타협 혹은 타락으로 보는 태도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지은이는 사민주의가 단순한 정책방향의 차원을 뛰어넘어 명확한 자기완결적 이념체계를 지닌 정치이데올로기로써 자신의 존재를 입증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이 사민주의 이념이 어떤 역사적 경로를 거쳐 성립했는지, 또 누가 사민주의 성립 과정에 노력과 희생을 바쳤는지, 그리고 그 사민주의가 왜 우리 시대에 마땅히 추구해야 할 보편이념인지를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이 책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부분은 마르크스주의에서 사민주의가 분화돼 나오는 과정에 대한 역사적 설명이다.
……..
지은이는 이 마르크스주의의 세계인식이 19세기 말에 이르면 현실 설명력을 잃어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자본주의가 붕괴하는 게 아니라 위기를 극복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인 것인데, 이런 시대적 상황에 대응해 등장한 것이 ‘정치의 우선성’에 주목하는 마르크스주의의 새로운 판본, 곧 ‘민주적 수정주의’와 ‘혁명적 수정주의’다.
……..

이 두 이념은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자본주의의 ‘사회 파괴’에 대항하여 맹렬하게 타오르던 민족주의적 공동체주의를 받아들여 내적 성격을 변화시켰다. 소렐의 혁명적 수정주의는 이탈리아로 건너가 민족주의와 결합해 파시즘으로 나아갔다. 또 독일에서는 나치즘(국가사회주의)을 낳았다. 비슷한 시기에 민주적 수정주의는 공동체적 연대에 눈을 돌림으로써 사회민주주의로 진화했다. 지은이는 양차 세계대전 사이에 자본주의에 맞서는 이념으로서 이 파시즘과 사민주의가 서로 격렬하게 경쟁했는데, 결국 승리한 것은 사민주의였다고 말한다. 파시즘과 그 급진적 형태인 나치즘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과격한 성격 때문에 파산했다.
 
사민주의는 민주주의를 수단이자 동시에 목적으로 인식했다. 또 자유주의를 ‘자유시장에 대한 집착’에서 분리시킴으로써 이 이념의 본질적 핵심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전후에 사민주의는 가장 유력한 정치이념이 되었다. 지은이는 사민주의가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유물론에서 벗어나 ‘정치의 우선성’을 앞세우고, ‘계급 투쟁’을 넘어 계급 타협을 통한 공동체적 연대를 실현하고, 또 마르크스주의가 외면했던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본질적 가치를 수용함으로써 탄력 있는 정치이데올로기로 자립했다고 말한다. 특히 사민주의자들은 시장과 자본주의를 전적으로 부정하지 않고 경제성장의 ‘귀중한 도구’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과거의 마르크스주의와 단절했다. “동시에 그들은 시장이 하인으로서는 훌륭하지만 주인으로서는 끔찍하다는 주장을 흔들림없이 지켜나갔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52060.html
 

이론 이후
테리 이글턴 지음?이재원 옮김/길?2만5000원

<이론 이후>는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문화이론가 테리 이글턴(1943~?사진)의 2003년 저작이다. 2003년이면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뒤 이라크를 초토화하던 시점이다. 이글턴은 “미국 정부를 장악한 극단주의자들과 반(半)광신적인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날뛰고 있는데도, 이런 반인륜적 광기를 제어하지 못하고 진보운동이 주저앉은 이유 가운데 하나를 ‘이론의 무기력’에서 찾는다. 단적으로 말하면, “이 시대의 통설”인 ‘포스트모더니즘’이 문제다. 아무런 전망도 저항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불임의 이념이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이글턴은 바로 그 포스트모더니즘이 종언을 고했다고 선언한다. 이 책은 이 포스트모더니즘이 어떤 경로로 서구 좌파의 대세를 장악했는지, 또 어떤 이유로 이 이념이 무기력 속에서 파산할 수밖에 없는지를 이글턴 특유의 생기 넘치는 언어로 이야기한다.

이 책의 제목에서 말하는 ‘이론’이란 ‘문화이론’을 가리킨다. 문화이론은 1960년대의 격동 속에서 태어났다.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 베트남전쟁 반대운동의 흐름을 타고 격렬해진 서구 학생운동이 문화이론의 산파 구실을 했다. 당시 학생운동은 자본주의 지배체제에 복무하는 인문학을 격하게 거부했는데, 그 과정에서 인문학이 전면적인 자기성찰을 감행했고, 그 결과로 태어난 것이 문화이론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론’이란 것은 바로 인문학의 비판적 자기 성찰이다.” ………‘문화이론’은 1980년대에 들어와 소비주의가 만연하고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면서 몰락해 버렸다. 그 이론의 폐허 위에 깃발을 꽂은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이글턴은 말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1960년대의 대항문화가 낳은 이론들 속에서 자라났으나 결국에는 그 이론들의 건강한 비판성을 잃어버린 껍데기 이념이다
………….
이글턴이 보기에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지적 흐름은 “총체성, 보편적 가치, 거대한 역사적 담론, 인간 실존의 튼튼한 기반, 객관적 지식의 가능성”을 거부한다. 또 “진리?통일성?진보에 회의적이다.” 요컨대, 영원한 보편적 진리도, 보편적으로 타당한 가치도, 인간 실존의 굳건한 토대도 없다고 보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이다. 모든 것이 가변적이고 부분적이고 상대적이어서, 거기서 진리나 보편을 찾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글턴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런 주장들이 모두 틀렸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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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턴은 말한다. “초국적 기업들이 지구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펴져나가는 동안 지식인들은 보편성이란 일종의 환상이라고 목청 높여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2003년의 전 지구를 뒤덮은 네오콘 광기였다. 이런 광기에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고 끝없이 자기 회의와 자기 부정에만 골몰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끝에 다다른 듯하다.” 이글턴은 “이론 없이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숙고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결코 ‘이론 이후’에 존재할 수 없다”며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이론적 파산’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문화이론이 자본주의의 저 야심만만한 전 지구적 역사와 싸워나가야 한다면 자기만의 책임있는 원천을 지니고 있어야만 할 것이다.” 그는 다시 힘주어 말한다. “문화이론은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 저 숨 막힐 듯한 통설에서 벗어나 새로운 주제들을 탐구하라.”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54483.html

 

반자본 발전 사전
볼프강 작스 외 지음?이희재 옮김/아카이브?3만2000원  


“빈곤층의 가난은 부유층의 풍요를 만들고, 빈곤층의 굴욕은 부유층의 자부심을 낳고, 빈곤층의 의존성은 부유층의 자립성을 낳는다. 따라잡기를 통한 평등은 현실의 불평등을 조직하고 합리화하는 신화에 불과하다.”

<반자본 발전 사전>(The Development Dictionary) 셋째 항목 ‘평등’을 집필한 더글러스 러미스(74)의 얘기다. 빈곤과 풍요, 독립과 종속, 평등과 불평등은 각기 독립적인 게 아니라 동전의 양면처럼 인과관계 또는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가난은 그 홀로 게으르고 못나서 그런 게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타인 몫을 앗아가거나 독점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가난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고 누구도 가난을 의식하지 않고 만족했으나 부자라는 이질적 존재가 나타난 순간 가난이 만들어지고 의식되고 불행해졌다. 어느 쪽이든 누군가가 부자이기 때문에 또다른 누구는 가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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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총생산이니 국민소득이니 하는 서구산업문명이 고안해낸 일률적 잣대에 따라 나라들 순위가 정해지면서 다양한 가치를 향유하던 멀쩡하던 나라들이 무더기로 어느날부턴가 ‘저발전’의 못살고 못난 나라가 됐다.

그 순위의 포로가 되면서 모두들 순위의 사다리를 먼저 올라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경쟁의 광풍이 몰아쳤다. 극소수 꼭대기만 배를 불리고 대다수가 패배자가 되는 한국의 학교?학벌 서열화를 빼닮았다. 지난 반세기의 세계가 그랬다. 결과는 거꾸로였다. 저발전의 발전이요, 프랭크식으로 말하면 저개발의 개발이다.
개발이나 발전이나 모두 영어 디벨로프먼트를 옮긴 것인데, 옮긴이는 개발이란 말은 이미 긍정적인 의미를 잃은 것이어서, 굳이 한국사람들이 막연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또 개발보다 외연이 더 큰 발전으로 옮겼다고 했다. 흔히 좋게들 생각하는 단어들이 실상 얼마나 위험한 뜻을 담고 있는지를 더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선택인 셈이다.

발전(성장)을 고발하기 위해 끌어온 ‘환경’이란 말도 서구적 기준의 빈곤을 없애려면 성장하는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일반화하면서 성장을 통해서만 지킬 수 있다는 자기파괴적인 함의를 갖게 됐다.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을 강조하는 쪽으로 흘러간 평등이란 말도 결국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변질됐다. 자급자족하며 유유자적 마음 편히 살아가던 사모아의 어부는 서구적 국민(국내)총생산 기준으로 따지면 졸지에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이 돼버리고, 카라카스 빈민촌의 빈사상태 실직 노동자는 사모아 어부들에 비하면 갑부가 돼버리는 ‘생활수준’도 지나치게 작위적이다.

<반자본 발전 사전>은 이들과 함께 시장, 생산, 도움, 요구, 참여, 계획, 인구, 빈곤, 생산, 진보, 한 세계, 자원, 과학, 사회주의, 국가, 기술 등 절대선으로 믿어왔거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온 총 19가지 개념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뿌리째 뒤흔들어놓는 비판적 개념사전이다. 서구문명 비판론자 이반 일리치를 중심으로 1988년부터 작업을 시작해 1992년에 초판을 마무리한 이 책은 딱딱한 개념어 풀이 사전이 아니다. 성장이 곧 발전인가? 진보는 늘 정의로운가? 언젠가는 정말 모두가 평등하게 잘살게 될까? 그리고 지금 방식의 서구문명은 존속 가능할까? 이런 의문들에 대해 생태학자들이 그 핵심 개념어를 중심으로 사회적?철학적?역사적 맥락까지 짚어가며 답해 놓은 에세이 모음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54476.html


12월 리영희선생께서 작고하셨다. 선생에 대한 많은 기사들이 나왔는데 그 중 두 기사를 스크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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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에 창작과비평사가 펴낸 리영희의 평론집 <전환시대의 논리- 아시아?중국?한국>. 리영희라는 새로운 민주주의 전사, 우상 파괴자의 등장을 알린 그의 첫 단행본은 1970년대 유신 전체주의 억압체제하에서 “‘전논’이라는 은어로 불리면서 학생과 노동자들 사이에 ‘해일과 같은’ 폭발력으로 퍼졌다.”(김삼웅 <리영희 평전>) 금서가 된 이 스테디셀러는 이처럼 권력의 감시망을 뚫고 떠돌고 회자되면서 20세기 말 한국사회 격동을 예비했다. 87년체제와 민주정부 탄생이 상징하는 한국 민주화와 변혁운동의 이론적?실천적 주역들 다수가 그 세례를 받았다. 그런 점에서 리영희는 분명히 ‘의식화의 원흉’이요 ‘주범’이었다. 베트남전에 개입하기 위한 미국의 ‘통킹만 사건’ 조작 사실을 폭로한 대니얼 엘스버그와 그 사실을 보도한 <뉴욕타임스>의 보도태도, 냉전의식에 사로잡혀 미국사회를 분열과 해체상태로 몰아가던 반공주의세력을 비판하면서 권력의 언로차단과 비밀주의, 자유 억압이 결국 비극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음을 논한 그 책 제1장은 이후 평생 변하지 않은 우상파괴자 리영희의 존재방식에 대한 예시였다. 코페르니쿠스처럼 ‘가설’임을 전제로, 6개의 장으로 구성된 그 책은 중국에 대한 접근을 축으로 한 이른바 ‘닉슨 독트린’에 따른 연쇄반응인 주한미군 감축, 그 자리를 대신할 일본의 군사적 재무장, 그것이 야기할 한반도 정세의 그야말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대한 분석과 전망을 담고 있으며, 아무것도 모른 채 조건반사의 토끼처럼 권력과 외세의 조종에 놀아나던 한국인들에게 토끼장에서 벗어나라고 절규한다. 그가 전한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으며, 그것은 결연하고 처연했던 그 뒤 한국사회의 변혁을 예고했다.

“나의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그것에서 그친다. …그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발전, 사회의 진보는 있을 수 없다”는 유명한 선언적 머리말이 실린 <우상과 이성>(1977년, 한길사)은 <전환시대의 논리> 출간 이후의 세상변화까지 담은 그 책의 ‘속편’적 성격을 지니면서 그 책과 더불어 리영희의 초기 대표작으로 꼽힌다. 광복 32주년의 반성과 중국이란 나라, 베트남전 총평가, 냉전과 독일통일문제 등을 담아 시야는 더욱 넓어졌다. 이 책 두달 전에 <8억인과의 대화>(창작과비평사)가 나왔다. 1974년에 한양대가 설립한 ‘중국문제연구소’를 맡은 리영희의 중국연구 성과를 담은 <8억인과의 대화>는 해외 중국 전문가들 저술의 편역이었음에도 출간 약 2달만인 그해 11월1일 중장정보부가 판매금지 조처를 내렸다. 그 책이 판금당한 바로 그날 <우상과 이성>이 출간됐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유신체제에 대한 저항이 거세지고 있던 그 상황에서 당국은 그 이념적 배후로 리영희를 지목했고 <전환시대의 논리>와 <8억인과의 대화> <우상과 이성>은 그를 반공법으로 옭아넣는 구실이 됐다. “1977년 11월23일 아침 7시, 나는 집에서 세 사람의 낯선 손님의 방문을 받았다. 그들은 다짜고짜로 서재로 올라가 수백 권의 책을 훑어 꾸린 다음 ‘잠깐 조사할 일이 있으니 함께 가자’고 했다.” 그가 끌려간 곳은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이었고 1980년 초에야 그는 광주교도소에서 출감했다.

<80년대의 국제정세와 한반도>(1984년, 동광), <분단을 넘어서>(1984년, 한길사), <역설의 변증- 통일과 전후세대와 나>(1987년, 두레)는 이스라엘-아랍 등 제3세계로 그의 시선을 더욱 넓히는 한편, 문화적 접근단계를 넘어 군사협력체제로 나아가던 한-일 보수정권 유착관계의 진화와 이를 뒤에서 조종한 미국의 세계정책 구상 분석을 중심으로 핵문제와 통일 문제에 대한 인식을 심화시킨 그의 ‘80년대’ 저작들이다. 이들 80년대 저작 중에서 특별한 책 하나가 그의 탄생부터 5?16쿠데타 직후 그의 30대까지의 삶을 뒤돌아본 <역정>(1988년, 창비)이다.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하게 녹아 있는 이 책의 내용은 이후 말년까지 그가 여러 글과 책에서 회고하고 재인용한 그의 삶의 형적들의 원형을 이룬다. 고향에 대한 애틋한 기억들, 가난했던 서울 유학시절, 문사기질의 그가 경성공립학교 전기과와 국립해양대 항해과에 들어가게 삶의 궤적과 백범 김구를 연모하며 4?19혁명에 뛰어들었던 얘기, 미군 통역장교 등으로 복무한 7년간의 군대생활, 그때 목도한 군과 국가의 부패와 부도덕이 그의 인생지침을 돌려놓게 되는 과정, 언론사 입문 과정 등이 흥미롭게 그려져 있다. 장교 시절 군인들이 불쏘시개로 삼던 신흥사 목판경전들을 구한 얘기, 술 마신 기분에 호기를 부렸다가 도리어 준엄한 꾸중을 듣고 무릎꿇고 사죄해야 했던 어느 진주 기생의 기개와 인간적 무게를 보며 깨친 생각 등 흥미로운 대목들이 많다.

<自由人, 자유인>(1990년, 범우사),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1994년, 두레), <스핑크스의 코>(1998년, 까치), <반세기의 신화- 휴전선 남북에는 천사도 악마도 없다>(1999년, 삼인) 등 그의 ‘90년대 저작’들에는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급속히 진행된 현실사회주의체제 붕괴를 지켜봐야 했던 리영희의 인간과 사회에 대한 반성적 성찰과 고뇌가 깊게 배어 있다. 하지만 그의 1970년대적 시선과 문제의식은 일관되게 유지되며 종교?문화?언론?통일문제를 아우르는 그의 사유는 더욱 깊고 풍성해진다. 1996년 지중해 일대를 여행한 뒤 쓴 <스핑크스의 코>는 지식?문화?종교?예술?정서 등 모든 면에서 오로지 자기 것만을 내세우며 약자에게 이를 강요한 지배적 문명, 그 폭력숭배와 잔인성, 반지성, 반문화, 몽매와 독단이 이집트 스핑크스의 코를 무참하게 뭉개버린 사실을 지적하면서 이를 처참하게 망가진 얼굴의 한국사회를 대비시킨다.

2005년에 문학평론가 임헌영 교수와 대담형식으로 엮은 회고록 <대화-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은 리영희의 삶과 사상의 종합편이다. 리영희의 기억을 재생시키는 역할을 맡은 임 교수의 주도면밀한 진행에 따라 리영희의 삶과 기억들은 깔끔하게 정리되고 풍부하게 종합된다. 원숙과 깊이, 그리고 삶에 대한 달관의 경지까지 느낄 수 있는 <대화>는 <전환시대의 논리>의 문제의식이 세상과의 사투를 벌이며 마침내 당도한 변증법적 종합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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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5247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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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 사회평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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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와 배신, 정의와 휴머니즘이 버무러진 재미있는 드라마 뒤 슬픈 대한민국의 속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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