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3편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여라.

마음을 다해 그분의 거룩한 이름을 찬송하여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그분의 모든 은혜를 잊지 마라.

주는 나의 모든 죄들을 용서하시며, 나의 모든 질병을 고쳐 주십니다.

무덤에서 내 생명을 구원하시고, 사랑과 자비를 베푸십니다.

주는 좋은 것으로 나의 소원을 만족시켜 주시니

내가 독수리처럼 새롭고 힘이 넘칩니다.


여호와는 억눌린 자를 위해 정의롭고 공평한 일을 행하십니다.


그분은 그의 뜻을 모세에게 보이시고

그의 행동들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이셨습니다.

여호와는 자비롭고 은혜로우시며 화를 참으시고 사랑이 넘치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항상 꾸짖거나 따지지 않으시며, 화를 오랫동안 품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값을 그대로 갚지 않으시며,

우리가 저지른 잘못에 따라 처벌하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그분의 사랑은

땅에서 하늘이 높음같이 높고 위대합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그분은 우리로부터 죄를 멀리 치우셨습니다.

마치 아버지가 그의 자녀들을 깊이 사랑하듯이

주는 그를 존경하는 자들을 깊이 사랑하십니다.



주는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아시며, 우리가 한낱 먼지임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인생은 풀과 같습니다. 들판에 핀 꽃처럼 자랍니다.

바람이 불면 그 꽃은 떨어지고 그 있던 자리는 흔적조차 남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를 높이고 두려워하는 자에게 여호와의 사랑이 영원히 함께할 것입니다.

여호와의 정의는 그들의 자손들과 그분의 언약을 지키는 자들과

그분의 법규들을 기억하고 따르는 자들에게 이를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 왕좌를 놓으시고 온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그분의 뜻을 행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는 자여, 여호와를 찬양하십시오.

그분의 천사들이여, 여호와를 찬양하십시오.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여, 여호와를 찬양하십시오.

그분의 뜻을 행하는 그분의 종들이여, 여호와를 찬양하십시오.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은 만물들이여, 그분이 다스리는 모든 곳에서 여호와를 찬양하십시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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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어딜가나 차가 꼭꼭 막혀서 도저히 다닐 수가 없다.

지난 번에도 일산에서 신촌가는데 1시간도 넘게 갔는데 아직도 수색도 못 미쳐서.. 게다가 앞에는 차들이 빽빽하고.. 신호하나 바뀔 때 한 대가 겨우 지나가는 정도이니.. 도저히 갈 수가 없어서 U-Turn해서 돌아왔다.

얼마전에는 남대문에서 광화문까지 오는 데 30분도 더 걸렸다.

그 버스 전용차선 공사니 어쩌니 하는 것 때문에 이렇게도 길이 복잡해 지다니...

그치만 아마도 공사가 끝나면 버스타고 다니기는 좀 수월해 지지 않을까.. 기대를 품어보긴 한다.

20대가 되면서.. 조금씩 변한 것들이 있다.

화장실에서 한줄서기,  시청 앞 광장,  버스 전용차선.. 뭐 등등등..

사실, 조금씩 합리적인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 같아서 뿌듯할 때도 있다. "이제 우리 나라도.." 이런 생각이나 느낌이 들기 때문에...

물론 모두 다 완전히 변하고 바뀌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리겠지만,

서로에게 합리적이고, 사회적인 약자들을 좀 더 배려하는 방향으로 여러가지 방법들을 창의적으로 모색한다면 좀더 새롭고 발전적인 우리나라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최근들어 시청 앞 광장의 용도를 놓고 또 여기저기서 다툼이 이는 모양인데,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정말 휴식의 공간으로 만들었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아주 개인적인 생각에 불과하고...

원칙을 세우고 그 외의 예외사항을 두어서 지혜롭게 활용한다면 간단하게 해결될 수도 있을 문제일 것 같은데, 너무나 처음부터 싸우려고만 하고, 서로  반목하려고만 하는 것 같아서 아쉬울 때가 있다.

그치만 역시, 어렵게 만들어 놓은 잔디 광장을 매일, 매주, 투쟁이나 농성, 집회의 장소로만 사용하는 것은 아마 아무도 바라지 않을 것이며, 광장의 본 취지와도 어긋나는 일인 것 같다. 집회와 휴식의 절충안을 찾아보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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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카를 > 글렌 굴드 ' 골드베르크 81'

글렌 굴드 ' 골드베르크 81'
출처블로그 : 피아노가 있는 풍경


 

GLENN GOULD

고뇌와 환희

경외로운 재능으로 축복받은 글렌굴드는 모든 위대한 피아니스트들 중에서 거의 틀림없이 가장 논란이 많은 인물이었다.
찰스 홉킨스가 캐나다 출신 천재의 음악적 성장기를 살펴본다.

"저 애는 내과 의사나 피아니스트가 될거야. 둘 중에 하나 말이야" 이 말은 태어난 지 사흘된 글렌 허버스 골드(Glen Herbert Gold: 굴드의 원래 성은 골드였다)의 끊임없이 움직이는 손가락과 팔에 그의 부모가 주의를 돌리자 주치의가 한 말이었다. 그의 부모가 발견한 또 다른 이상한 점은 아이가 울기보다는 허밍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었다. 아픔.기쁨에 대한 비상한 표현이었다. 글렌굴드의 이런 행동은 그의 어머니 플로렌스였던 에마 그레이그가 그를 가졌을 때, 태아가 그녀의 음악적 열정을 물려받기를 원했기에 태아에게 상당히 다양한 음악을 들려줬다는 것과 무관하지가 않다.

굴드가 절대 음정을 가지고 있던 3세때부터 그는 어머니에게 더 체계적인 레슨을 받기 시작했으며.이는 10세때까지 계속되었다. 놀라운 기억력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음악이 질서와 구조를 결정하는 논리의 체계에 의해 지배받는다는 사실을 안 굴드는 글씨를 깨치기 전에 악보를 읽었다.

근래의 기록들은 그의 쇼팽연주에 녹아 있는 따뜻함과 자연스러운 서정성에 대해 얘기하나, 놀랍게도 후에 굴드는 1981년도 <인터내셔널피아노> 가을호에 실린 팀페이지와의 인터뷰에서 쇼팽에 대한 반감을 나타냈다.
"나는 그가 아주 훌륭한 작곡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어렸을 때 단지 느낌이 어떤지 보기 위해 B단조 소나타, Op 58을 쳤지요. 그런데 느낌이 좋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 후로 쇼팽을 더 이상 치지 않았어요."

1930년대 후반, 가족의 성은 골드에서 굴드로 바뀌었으며, 그 당시의 연주회에서 그의 이름은 계속 글렌 굴드로 나왔다.(그는 쇼팽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가 자신의 네 금붕어 중 하나를 쇼팽이라고 이름 지은 것은 이야기 할 만하다. 나머지 금붕어의 이름은 바흐, 베토벤. 하이든이었고 그에게는 모차르트라고 이름 지은 잉꼬도 있었다. 굴드의 데뷔 직후에 그으 집에 있는 장비들로 만든 비상업성 음반들에는 굴드가 그의 스승과 같이 연주한 두 개의 네 손을 위한 소나타와 이 담겨 있는데, 이 연주들의 정확성과 프리모(primo)의 리드미컬한 악센트를 들으면 그의 독특한 스타일이 일찍부터 어느 정도로 형성되었는지 알 수 있다.

굴드의 아버지는 해마다 음악회에 행사에서 음악 애호가로서 뿐만 아니라 부유한 사업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리스트와 레베츠키 왈츠 연주로 굴드에게 200달러 상당의 '켐프여사 장학금'이 수여되었다. 장학금 수여에 대한 기사를 다룬 신문들은 전형적인 모차르트 기질을 가진 천재라고 했으며, 그의 '뛰어난 지적 능력과 책임감'에 대해 평했다.

경쟁이라는 논제를 담고 있는 것들, 예를 들어 채점되는 음악 시험 체제. 경쟁이 심한 음악 축제 그리고 솔리스트와 오케스트라가 의지의 전쟁에서 서로 경쟁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는 낭만파 피아노 협주곡 등과 같은 것들은 굴드에게는 저주와도 같았다. 그는 당시에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 본 잔인함만큼이나 고생과 혼란의 터에서 갈고 닦은 닦여진 경쟁적 본능들을 싫어했고, 그것을 멀리하려고 초기 시절부터 고독한 상상력 속에 있었다. 후에 그는 경쟁과 창의적 행위에서 오는 정신적 황홀감이 서로 배타적인 것이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의 부모가 공식적인 데뷔라고 일걷는 1945년 12월 12일에는 이튼 연주 홀의 연주가 있었다. <토론토 텔레그램>의 에드워드 W.왓슨은 이 연주회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 많은 오르가니스트들이 노력해도 잘 칠 수 없었던 오르간을 쳤다. 그는 진정한 천재만이 알아 볼 수 있는 겸손함을 가진 천재이다.."

1946년 5월 8일 에토레 마촐리니가 지휘한 음악원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연주에서 한두 부분 서로 안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날의 연주는 그를 매우 의기양양하게 만들었고, 비평가들로부터 호평도 받았다. 그러나 한 비평가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굴드의 프레이징이 "어떤 때는 좀 끊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슈나벨의 연주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좀 이상하게 들렸겠지만 그럴 수는 있다' 고 평했다. 왓슨은 이전에 굴드를 천재라고 했던 자신의 평과 유사하게 썼다. ".....그의 나비 같은 손은 오직 파흐만이 그랬던 것처럼 피아노를 위에서 스케일 패시지와 아르페지오가 테크닉적으로 아름다움뿐 아니라 영혼을 가질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이렇게 평했다. "그의 프레이징은 시인이 시를 낭독하는 것처럼 우아했다."

1월 14일 15일 중등학교 연주회에 대한 평
"소년은 절묘하게 연주를 했다. 무거운 톤은 아니지만 프레이징과 타이밍의 섬세함은 파워를느끼게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젊은 예술가는 초보자가 빠지기 쉬운 매너리즘을 보이며 혼자 연주하는 부분에서 절제력을 잃어 버렸다. 그가 어른이 되면 의심할 여지 없이 다른 동료들이 혼자 연주하는 동안 문제가 되는 초조함을 조절하는 능력을 키워 나갈 것이다." 어떤 이에게 그것은 비꼬는 재미를 제공했고 다른 이에게는 신경질 나는 혼란이기도 했다. 사실 그것은 굴드가 타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 만든 연극적인 허식이 아니라 그의 연주의 본질적인 부분이었다. 요컨대 그것은 굴드가 어떤 음악이든 그 안에 내재 되어진 황홀경을-그는 이것이 예술가에게 있어서 단 하나의 진정한 탐구 대상이라 생각했다-찾고자 하는내적 충동의 외부적 발로이다.

1954년 10 16일 '새로운 음악 협회'에 의해 기획된 세 개의 연주회 중에 마지막에서였다. 이 연주회는 바흐의 곡으로만 구성되었고 그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바흐와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대중 앞에서 연주했다. 새로운 음가 시리즈에서 바흐를 포함하고자 하는 굴드의 생각은 바흐의 지속적인 현대성에 근거한 것이었다. 사실 굴드의 <골드베르크변주곡>은 6월 21에 방송되기는 했으나, 10월의 연주회에서 그가 은둔 생활을 했을 때 축적한 바흐 음반에 대한 그만의 신체적. 지적 견해를 담은 남다른 바흐 연주 방식을 견고하게 하는 결과를가져왔다. 바흐를 어떻게 쳐야하는지에 대해서 게레로와 의견 다툼을 한 이래 그는 해답을 찾기 위해 란도프스카. 피셔. 카잘스 등의 연주를 공부했고 이로 인해 마침내 본질을 양보화지 않으면서 절충적인 방법으로 많은 해석상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풀 수 있었다. 그러나 로잘린 투렉의 연주가 그에게 가장 깊은 영향을 주었다.
"도덕적 장소에서 적절하도록 아주 바르게 치는 듯합니다. 침울하기보다는 종교적 예배같이 도덕적 올바름과 관련 있는 편안한 휴식을 취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존 브릭스는 굴드가 선택한 임무에 몰두하는 초월적인 추상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우리는 그가 그냥 열등하거나 수준 떨어지는 연주를 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그리고 비록 대부분의 피아니스트들이 피아노용이 아닌 바로크 음악을 피하지만 굴드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음악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그가 관(현악기의) 픽이나 건반을 모방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들을 없앤다. ....나는 그를 위대하다고 부를 수밖에 없으며 그의 연주를 아직 들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가 새로운 깊이의 감정과 인지의 세계로 그들을 빠뜨리는 점을 미리 경고한다."

International Piano 한국 창간호 2003.3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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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 황금빛 유혹 다빈치 art 9
신성림 지음 / 다빈치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 그림도, 이 책도 봤을 거란 생각이 든다.

요즘엔 그림에 대한 책들도 많이 나와있고,

그림자체도, 또 그림에 대한 설명도, 작가에 대한 것도, 시대적인 배경도 잘 알 수 있는 책들이 많다.

게다가 그런 책들은 보기에도 너무나 예쁘다.

마치 하나의 작은 미술관과도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클림드, 황금빛 유혹> 은 또 하나의 클림트 전용 미술관이다.

클림트가 어떻게 살아왔고 그의 여성에 대한 시각이 어땠는지를 이해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그 그림.. <키스>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정말 특별한 그의 그림들을 만끽하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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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그렇다.

요는,

이럴려고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모든 일은 내가 의도한 바가 아니며 모든 일은 나의 통제를 벗어나 있는 듯 하다.

나의 의도는 이런 것이 아니었으며

내가 생각한 삶이란 이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연..

그럼 내 의도는 무엇이고, 내가 생각한 삶이란 무엇이란 말이가.

참으로 의미가 없고

참으로 복잡하며, 참으로 모순적인 이야기다.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닌 결과를 놓고, 본래의 의도를 모르다니..

살아가면서 항상 즐겁고, 신나고, 행복하고, 기쁘기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치만 또 역시 살아가면서 항상 괴롭고, 힘들고, 지치며, 다운되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말이다.

모든 게 섞여서 결국은 아무 것도 아닌게 되어버리고

마치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듯함 느낌에

문득문득 위기의식을 느끼며,

일 자체에 대한 무능력감과, 나 자신에 대한 회의감, 내 잠재력에 대한 불신과, 모든 주변 현상에 대한 좌절감.

이런 모든 느낌이 나를 갑갑하게 할 때..

..

더 우울한 건 그런 상황에서도 역시, 살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무언가를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참으로 의미와 기쁨으로 충만했다가도

순간

이렇게도 허무하게

눈물이 한없이 쏟아질 정도로 허무하며 공허한 것으로 느껴질 때..

내가 역시나 방황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What Should I 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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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 2004-05-17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사진이 바뀌었네요.
음, 저도 하루하루 조금 우울해하고, 조금은 기뻐하고 그러면서 보내요.
우울함과 기쁨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면서 찾아오곤 해요.
저도 아직 제가 방황한다고 느끼는데, 우리 모두 그런 느낌을 갖고 사는 것 같아요.

Hanna 2004-05-17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한번 바꿔봤어요. 별론가요. ㅡㅜ (충격완화용 선글라스를 착용했는데.. 맘에 안드신지요..) 암튼, 어제 오늘 너무 글루미해서.. 찔찔 짜다가..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렇/게/살/지/말/자. 음.. 고쳐야 할 부분 6가지 정도 정했어요. 고치고 나면 또 시간 좀 지나면 우울해지는 날이 올겁니다. 그 때, 또 다시 고칠 겁니다. 이대론 안되겠어요, 역시!

호밀밭 2004-05-20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썬글라스 좋아요. 사실 썬글라스는 눈만 가리는 게 아니라 사람을 다 가리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어요. 다음에는 썬글라스 벗은 눈도 보여 주세요.
글루미했다는 날이 월요일이니까 지금은 어떠세요? 저도 천계영 만화에 나오는 황보래용처럼 좋았다 우울했다를 반복하곤 해요. 지금은 좀 마음이 가벼운 편이에요. 저도 이대로는 안 돼라는 말 하곤 하는데, 사람들의 고민은 다 비슷한 것도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