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우리 교회) 사모님이 갑자기 장례식에 가게 되셨다며 전화가 와서 들은 소식이다.
한 여자. 결혼 한지 3년. 귀여운 쌍둥이의 엄마다. 남편은 평범한 회사원이지만 아마도, 가정에 충실한 좋은 남편이지 않았을까? 암튼, 그렇게까지 자세한 것은 모르겠으나 이 남편분, 회사에서 친목 차 가게 된 여행에서 바다에서 놀게 된 거다. 산소통을 안 메고 바닷속에 들어가는 무슨 뭔가가 있나부지? 스쿠버다이빙인가? 암튼 이름은 잘 모르겠는데...회사 사람들과 다 같이 이걸 하다가 실종이 되셨단다. 그러고 이틀 후인가... 바닷가에서 시체로 발견된 거다.
잘 모르는 분이었지만, 그 분의 소식을 듣고 왠지 가슴이 아팠다.
두 아이와 혼자 남은 여자의 남은 일생에 대한 아련함. 후에 느낀 감정은, 왜?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고난은 늘 '왜'라는 질문을 하게 하는 것 같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왜 하필이면 지금 이런 일이, 왜 , 왜, 왜...
왜 고난이 주어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늘에 계신 분 말고는... 심지어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에게까지 왜 고난이 주어지는 걸까. 사실, 그러면 안되는 거 아닙니까 하고 따지고 싶은 마음이 들때도 있다.
혼자 남은 여자는, 삶을 감당하기 힘들 것이고, 아마 쌍둥이 때문에 새로운 남자를 만나기도 힘들 거다. 게다가 일을 할 수도 없을 테고, 아마 빚은 계속 늘어갈 수도 있을 것이며, 일찍 죽어버린 남편의 그늘에 가려 모든 사람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왠지 죄지은 것 같은 생각으로 살아 갈 수도 있다.
...
이렇게 생각하니까 너무 가슴이 무거우졌다. 하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 봤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고난을 주실 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않으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고, 시험당할 즈음에는 피할길을 내사 능히 감당하게 하셨다.
그 말씀이 떠오르자, 상황은 좀 밝아졌다.
혼자 남은 여자는 좀 더 성숙한 크리스챤이 되어 눈물로 간증할 지도 모른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주어졌는지, 이런 일을 이 시점에서 허락하신 그분의 뜻을 알 수 없지만, 나는 주님의 말씀과 공급하심을 믿으며 당당하고 용감하게 살아가겠노라고. 그리고 그녀의 삶은 많이 변할 것이다. 아이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을 찾을 것이고, 잘 키우기 위해서 말씀도 많이 읽을 것이다. 기도도 많이하고.. 그러면서 그녀는 주님 안에서 성장해 나갈 것이고, 아마도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어 줄 수도 있을 거다. 그리고 언젠가, 그녀가 준비 되었을 때, 그녀와 그녀의 쌍둥이들을 똑같이 사랑해 줄 마음 따듯한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물론, 못 만날 수도 있지만, 그것은 그녀에게 큰 상관이 없을 거다. 왜냐하면 그녀에게는 이미 하나님이 계시고, 그 분만으로 만족할 수 있을테니까...
고난이 우리에게 왜 주어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고난은 우리가 인내함으로써 인격적인 성숙을 이루게 하며 그것과 함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인한 소망을 낳는다. 그렇다면, 왜 주어지는지 알지 못하지만 고난은 소중한 삶의 전환점이지 저주의 순간이 아닐 거다.
그녀를 위해 기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