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어떤가?" 하고 내가 물었네. "어떤 사람이 모르는 것을 아는 체하며 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아는 체하며 말하는 것은 옳지 않겠지요. 하지만 자기 생각을 어디까지나 하나의 의견으로 말하려 한다면, 그것은 옳겠지요." 하고 그가 말했네.

 

"어떤가?" 하고 내가 말했네. "지식이 결여된 의견이란 모두 추악하다는 것을 자네는 깨닫지 못했는가? 그중 아주 훌륭한 것들조차 눈이 멀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느냐는 말일세. 아니면 자네는 지성이 결여되어 있으면서도 어떤 사물에 대해 올바른 의견을 갖는 사람들이란 실수하지 않고 길을 걸어가는 장님들과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무 차이도 없다고 생각해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렇다면 자네는 다른 사람들한테서 밝고 아름다운 것을 들을 수 있는데도 추악하고 눈멀고 등이 굽은 것들을 보고 싶다는 것인가?"(371∼372쪽)

 

 - 플라톤, 『국가』, <제6권>

 

 

 

 * *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밑줄긋기)

 

철학적 품성들

 

"철학적 품성들은 철학에 가장 어울리는 배필인데도, 철학은 그들에게 이렇게 버림받고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 채 홀로 남게 되네. 그 결과 그들은 그들대로 자신들에게 맞지도 않고 건실하지도 않은 생활을 하는가 하면, 친척 없는 고아나 다름없어진 철학은 철학대로 어울리지도 않는 엉뚱한 자들을 만나 욕을 보게 되고, 자네 말처럼 철학 비방자들이 철학에 퍼붓는다는 그런 비난을 받게 된다네. 철학과 함께하는 자들은 더러는 무용지물이고, 대부분은 갖은 고생을 겪어 마땅한 자들이라는 비난 말일세."

 

"아닌 게 아니라 철학 비방자들은 대개 그렇게 말하지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래서 내가 말했네.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세. 그도 그럴 것이, 보잘것없는 인간들은 아름다운 이름들과 장식으로 가득한 이곳이 비어 있는 것을 보면 마치 감옥에서 신전으로 도주하는 죄수들처럼, 자기들의 전문 기술을 버리고는 얼씨구나 잘됐다 하고 철학으로 뛰어들기 때문이네. 그런데 이들은 자기들의 전문 기술에서는 가장 유능한 자들이네. 그들이 그러는 이유는 철학이 비록 이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해도 다른 전문 기술에 견주면 아직도 높은 명망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네. 그래서 품성이 불완전할뿐더러 마치 몸이 기술과 직업으로 망가친 것처럼 그런 기술이 지니게 마련인 천한 성격 때문에 혼까지 불구가 된 수많은 사람들을 이 명망이 유인하는 것이라네. 그게 당연하지 않은가?"

 

"물론 당연하지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래서 내가 말했네. "이들은 방금 감옥에서 풀려나와 목욕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신랑처럼 차려입고는, 주인 딸이 고아가 된 것을 기화로 그녀와 결혼하려고 하는 돈 많은 작은 몸집의 대머리 땜장이와 비슷해 보이는데, 자네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무 차이도 없어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런 부모한테서는 어떤 자식들이 태어날 것 같은가? 서자나 볼품없는 자식들이 태어나지 않을까?"

 

"당연하지요."

 

"어떤가? 교육에 어울리지도 않는 자들이 교육에 접근하여 어울리지 않게 결합한다면, 어떤 사상과 의견을 낳을까? 그들은 진실로 궤변이라 불리어 마땅한 것을 낳고, 순수한 것이나 참다운 지혜를 내포하는 것은 아무것도 낳지 못하겠지?"

 

"전적으로 동의해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래서 내가 말했네. "아데이만토스, 그렇다면 철학과 결합하기에 적합한 사람들 가운데 극소수만이 남았네. 그것은 마음이 고상한 데다 훌륭한 교육을 받은 성격이 국외로 추방당한 결과 그를 타락시키려는 자들이 없었기에 타고난 품성 그대로 철학에 머무른 경우이거나, 또는 위대한 혼의 소유자가 작은 나라에서 태어나 그 나라의 국사를 무시하고 깔보는 경우일 것이네. …… 나처럼 신의 암시를 받은 경우는 거론할 필요가 없을 걸세. 나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 중에는 신의 암시를 받은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이들 소수의 일원이 된 사람은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재산이 얼마나 감미롭고 축복받은 것인지도 맛보았겠지만, 대중의 광기도 충분히 보아왔을 것이네. 그는 또한 건전한 그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 정치가나, 자기와 함께 싸우며 자기를 지켜줄 수 있는 투사는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네. 오히려 그는 야수들의 무리 사이에 떨어져 함께 불의를 행하려고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모두가 광포한 가운데 혼자서 이에 항거할 수도 없는 사람처럼, 친구들에게 뭔가 도움을 주기도 전에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쓸모없는 인간으로 최후를 맞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네. 이 모든 점을 심사숙고한 끝에 그는 조용히 자기 일에만 전념하게 될 것이네. 그리고 폭풍이 몰아치는 겨울날 먼지나 폭우를 피해 담벼락 밑에 서 있는 사람처럼 남들이 도리에 어긋나는 생활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면서도, 자기만 부정과 불경행위에 오염되지 않고 이 세상을 살다가 아름다운 희망을 품고 편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해할 것이네."

 

"하지만 그가 가장 작은 일을 해놓고 세상을 떠난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내가 말했네. "하지만 그는 자기에게 맞는 정체를 만나지 못했으니 가장 큰일을 해놓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네. 그는 자기에게 맞는 정체에서는 스스로도 더 성장하여 자신도 구하고 공동체도 구하게 될 테니 말일세. 이상으로 우리는 어째서 철학이 그런 비방을 듣게 되었으며, 어째서 그것이 부당한지 충분히 논의한 것 같네."(350∼354쪽)

 

 - 플라톤, 『국가』, <제5권>

 

 

 

 * * *


 

선생님께서는 참 멀리도 내다보시는군요

 

"그게 어떤 부분인가요?"

 

"나라가 망하지 않으려면 어떤 방법으로 철학을 다루어야 하느냐는 문제일세. 무슨 일이든 큰일에는 위험이 따르게 마련이고, 사람들 말마따나, 아름다운 것은 진실로 어렵기 때문일세."

 

"그렇지만 증명이 완결되려면 그 문제부터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텐데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래서 내가 말했네. "나를 방해하는 게 있다면 그것은 의지의 결여가 아니라 능력의 부족일세. 자네는 내 열성을 직접 보게 될 것이네. 자, 자네는 내가 얼마나 대담하게 거리낌 없이 말하는지 눈여겨보게. 나는 국가가 오늘날과는 정반대되는 방법으로 철학을 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네."

 

"무슨 말씀이신지요?"

 

그래서 내가 말했네. "오늘날 철학에 관여하는 사람들은 어린아이들에 불과하네. 이들은 소년시절과 가사를 볼보고 돈벌이를 시작하는 시기 사이에 철학의 가장 어려운 부분에 다가가다가 철학에서 떨어져 나가는데, 바로 이들이 철학의 대가(大家)로 간주되고 있네. 그런데 내가 말하는 철학의 가장 어려운 부분이란 논리적 논의를 뜻하네. 이들은 훗날 철학에 관여하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토론을 들어달라는 요청을 받고 이에 응하면 그것을 무슨 대단한 일로 여긴다네. 이들이 생각하기에 철학이란 여가가 날 때 틈틈이 하는 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일세. 그리고 이들은 노년에 이르면 소수를 제외하고는 불꽃이 꺼져버리는데, 다시 점화할 수 없다는 점에서 헤라클레이토스의 태양보다 더 심하게 꺼져버린다네."

 

"그럼 어떻게 대해야 하나요?" 하고 그가 물었네.

 

"그와 정반대로 대해야지. 소년시절이나 청년시절에는 그 나이에 걸맞은 교양이나 지혜에 관여해야겠지. 아직도 성인으로 성장하고 있는 이 시기에는 철학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몸을 세심하게 돌보지 않으면 안 되네. 그러다가 나이 들어 혼이 성숙해지기 시작하면 혼의 단련을 강화하지 않으면 안 되네. 그러나 기력이 쇠하여 정치적 봉사와 병역 의무를 면제받게 되면 그때는 철학의 풀밭에서 마음껏 풀을 뜯으며, 여가 시간을 제외하고는 철학 이외의 다른 일에 몰두해서는 안 되네. 그래야만 행복한 삶을 살고, 죽은 뒤에는 저승에 가서 자기가 살아온 삶에 합당한 운명을 부여받게 될 걸세."

 

그러자 아데이만토스가 말했네. "소크라테스 선생님, 내가 보기에 선생님께서는 과연 열성적으로 말씀하시는군요. 하지만 트라쉬마코스를 비롯하여 선생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선생님보다 더 열성적으로 선생님 말씀을 반박하며 믿으려 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 내가 말했네. "여보게, 자네는 나와 트라쉬마코스 사이를 이간하지 말게나. 우리는 방금 친구가 되지 않았는가. 전에도 서로 적이었던 적은 없지만 말일세. 나는 트라쉬마코스와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거나, 아니면 그들이 내세(來世)에 이런 토론을 하게 될 때 그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무엇인가를 해주기 전에는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네."

 

"선생님께서는 참 멀리도 내다보시는군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래서 내가 말했네. "영원(永遠)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지. 그러나 사람들이 대부분 내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닐세. 그 이유는 지금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 실현된 것을 그들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네."(355∼357쪽)

 

 - 플라톤, 『국가』, <제6권>

 

 

 * *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밑줄긋기)

 

"그러니 우리가 규정한 바 있는 철학적 품성은 적절한 교육을 받으면 필연적으로 성장하여 온갖 미덕에 도달하겠지만, 적절하지 않은 곳에 씨 뿌려지거나 심어져 양육되면 신의 도움이 없는 한 정반대되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네. 아니면 자네도 대중처럼 젊은이들 가운데 일부가 소피스트들에 의해 타락한다고 생각하는가? 소피스트들이 사교육(私敎育)을 통해 젊은이들을 언급할 가치가 있을 만큼 타락시킬 수 있을까? 사실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최악의 소피스트들이 아닐까? 그들이야말로 완벽하게 교육시켜 남녀노소를 자기들이 원하는 인간으로 만드는 것 아닐까?"

 

"그들이 언제 그렇게 한다는 거지요?" 하고 그가 물었네.

 

그래서 내가 대답했네. "그들이 민회, 법정, 극장, 군영 등 다중이 모인 공개석상에 함께 모여 앉아 떠들썩하게 고함을 지르고 박수를 치며 남의 언행을 침소봉대하여 비난하기도 하고 칭찬하기도 할 때 그런다네. 더군다나 비난과 칭찬의 소음은 바위들과 그들이 모여 있는 장소에 되울려 갑절로 크게 들리네. 이럴 경우 자네는 젊은이가 사람들 말마따나 심정이 어떨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사교육이 이에 저항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것은 이런 비난과 칭찬의 홍수에 휩쓸려 그 흐름이 이끄는 대로 떠내려가지 않을까? 그리하여 그는 그들이 아름답다고 하면 덩달아 아름답다 하고 추하다고 하면 덩달아 추하다 하게 되어, 결국 그들과 똑같은 것을 추구하며 똑같은 인간이 되지 않을까?"

 

"소크라테스 선생님, 당연히 그렇게 될 수밖에 없겠지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래서 내가 말했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강제력 중에서 가장 중대한 것은 우리가 아직 말하지 않았네."

 

"그게 어떤 것인가요?" 하고 그가 물었네.

 

"이들 교육자들과 소피스트들이 말로 설득할 수 없을 때 행동을 통해 가하는 강제력 말일세. 누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을 때, 자네는 그들이 시민권을 박탈하거나 벌금형을 부과하거나 사형에 처한다는 것도 모르는가?"

 

"물론 알고 있지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렇다면 다른 소피스트나 어떤 개인적인 발언이 그런 압력에 맞서 싸워 이길 수 있을까?"

 

"아무도 싸워 이길 수 없을걸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래서 내가 말했네. "물론 없겠지. 그리고 그런 시도를 하는 것 자체가 아주 바보 같은 짓이지. 여보게, 그들의 교육과 반대되는 교육을 받음으로써 미덕에 관해 그들과 다른 견해를 갖게 된 성격이란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한 적도 없으며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네. 여보게, 인간의 성격은 그렇다는 말일세. 신적인 성격은 사람들 말마따나 논외로 하세. 잘 알아두게. 이런 정체에서 살아남아 제대로 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신의 가호를 입어 살아남았다고 말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네."

 

"전적으로 동의해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렇다면 그에 더하여 자네는 이 점에도 동의해야 할 걸세" 하고 그가 말했네.

 

"어떤 점 말인가요?"

 

"대중은 돈을 받고 개인적으로 가르치는 자들을 소피스트라 부르며 자신들의 경쟁자로 여기지만, 이들 각자가 가르치는 것은 대중의 의견, 즉 대중이 집회 때 갖게 되는 의견 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며, 이들이 지혜라고 부르는 것 역시 대중의 의견 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라는 점 말일세. 그것은 마치 거대하고 힘센 짐승을 사육하는 사람의 경우와도 같네. 이런 사람은 그 짐승의 기질과 욕구를 잘 연구해서 그 짐승을 가까이할 수 있는 방법이라든가 다룰 수 있는 방법, 어떤 경우에 가장 난폭하고 어떤 경우에 가장 유순한지 그리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네. 또한 무엇 때문에 여러 가지 소리를 지르는지, 반대로 어떤 소리를 내면 유순해지고 어떤 소리를 내면 사나워지는지 알게 될 것이네. 그는 오랜 접촉을 거쳐 이런 것들을 모두 배운 뒤 그것을 지혜라 부르며 하나의 기술로 체계화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줄 것이네. 하지만 그는 그 짐승의 이러한 취향과 욕구들 가운데 어는 것이 아름답거나 추한지 또는 좋거나 나쁜지, 또는 올바르거나 불의한지 실제로는 알지도 못하면서 오직 거대한 짐승의 반응과 결부시켜 이런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네. 말하자면 그는 그 짐승이 좋아하는 것은 좋은 것이라 부르고, 그 짐승이 싫어하는 것은 나쁜 것이라 부르네. 그는 이에 대해 달리 설명하지도 못하면서 필요불가결한 것을 올바르고 아름답다고 일컫지만, 필요불가결한 것과 좋은 것의 본성이 실제로 얼마나 다른지는 관찰한 적도 없거니와 다른 사람들에게 증명해 보일 수도 없네. 제우스에 맹세코, 교육자가 그런 사람이라면 참으로 이상한 교육자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나에게는 그렇게 생각되요"하고 그가 말했네.

 

"그런데 자네는 그림에서건 음악에서건 정치에서건 사방에서 모여든 잡다한 대중의 기질과 취향을 아는 것이 지혜라고 여기는 자가 있다면, 그가 이런 인간과 다소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어떤 사람이 대중과 가까이 지내면서 시(詩)나 다른 예술품이나 국가를 위한 봉사를 과시함으로써 필요 이상으로 대중을 주인으로 섬긴다면, 그는 이른바 디오메데스적인 필연성(주석)에 따라 대중이 칭찬하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에 하는 말일세. 한데 자네는 그들 가운데 누군가가 대중이 칭찬하는 것이야말로 진실로 좋고 아름답다고 칭찬하는 말을 듣고 가소롭지 않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없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하고 그가 말했네.(343∼347쪽)

 

(주석)

Diomedeia ananke. 이 말의 유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런데 주석학자들에 따르면, 그리스 장수 디오메데스가 오뒷세우스와 함께 트로이아 성에 안치되어 있던 아테나 여신의 신상(palladion)을 훔쳐 가지고 돌아오던 도중, 공을 독차지하기 위해 자기를 죽이려던 오뒷세우스의 양팔을 묶은 다음 칼로 그의 등을 두드리며 군영으로 데려갔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 플라톤, 『국가』, <제6권>

 

 

 * *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첨과 우정 사이

 

 

그래서 내가 말했네. "누가 무엇을 사랑한다고 제대로 말하려면, 그는 그것의 일부는 사랑하고 다른 일부는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내가 자네에게 상기시켜줘야 하나, 아니면 자네도 기억하고 있는가?"

 

"선생님께서 상기시켜주셔야 할 것 같아요. 나는 기억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내가 말했네. "글라우콘, 자네가 그런 대답을 하다니 정말 뜻밖일세. 소년을 사랑하는 사람은 한창때의 소년들을 보면 언제나 뜨거운 열정을 느끼며 그들 모두가 자신의 관심과 애정의 대상이 되기에 손색없다고 여긴다는 점을 자네처럼 사랑에 민감한 사람이 잊는다는 것은 부적절하네. 아니면 자네들 같은 사람들은 미소년들을 다음과 같이 대하지 않는단 말인가? 자네들은 사자코를 가진 소년은 귀엽다고, 매부리코는 제왕답다고, 이들 양극단 사이의 중간은 균형이 잘 잡혔다고 칭찬한다네. 자네들은 또한 피부색이 검은 소년들은 남자답다고, 피부색이 흰 소년들은 '신들의 자식들'이라고 부른다네. 벌꿀색이라는 말 또한 한창때의 소년이 안색이 파리해도 싫지 않아서 듣기 좋으라고 연인이 지어낸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한마디로, 자네들은 온갖 핑계를 대고 온갖 말을 하며 한창때의 젊은이를 단 한 명도 퇴짜 놓으려 하지 않는다네.(474c∼474e)

 

 - 플라톤, 『국가』, <제5권>


 

 * * *

 

 

어쨌든 모든 사람은 한창 청춘일 때 어떻게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플라톤이 말하듯이 동성애의 상대자로서 사랑하고픈 남자를 충동질하여 호감을 사려는 행동을 함을 우리는 알고 있네. 그런 자는 피부색이 흰 소년들을 '신들의 아이들'이라고 부르고 피부색이 검으면 '남자답다'고 부르는가 하면, 매부리코를 애칭으로 '왕답다'고 하고, 들창코를 '매혹적'으로, 혈색이 누런 소년을 '꿀 색깔'로 부르며 모든 상대를 환영하고 좋아하지. 사랑은 담쟁이덩굴과 같아서 어떤 버팀목에라도 찰싹 달라 붙는 데 재빠르기 때문이네.(229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의 모랄리아』, <철학자들의 강의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

 

 

 

파당 싸움과 전쟁 중에 투퀴디데스는 이렇게 말했네.

 

그들은 보통 받아들여지고 있는 단어들의 의미를 자신들이 행한 행동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의미로 바꿔 버렸다. 그래서 무모한 만용은 진정한 용기로, 신중한 기다림은 그럴듯한 비겁으로, 온건함은 겁쟁이의 구실로, 만사에 대한 명민한 이해는 어떤 일을 맡기에는 행동력이 부족한 것으로 간주하기에 이르렀다.

 

고. 그래서 하는 말인데, 누가 아첨하려고 할 때에 우리는 주의 깊게 관찰하여 감시의 고삐를 늦추어서는 안 되네. 낭비가 '베풂'으로, 비겁이 '자기 보전'으로, 충동이 '기민함'으로, 인색이 '검약'으로, 호색한이 '사교적이고 호감을 주는 사람'으로, 성 잘 내고 오만방자한 사람이 '기백이 있는 사람'으로, 미천하고 온순한 사람이 '친절한 사람'으로 불리는 것들이지. 플라톤도 어디선가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애인의 아첨꾼이 되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부른다고 말했네. 사자코의 애인은 '매혹적'인 사람, 메부리코의 애인은 '왕과 같은' 사람, 피부색이 검은 사람은 '사내다운' 사람, 살갗이 희고 금발인 사람들은 '신들의 아이들'로 말이지. 반면에 '벌꿀 색조'의 사람은 순전히 혈색이 나빠 누르스름해진 애인을 애칭으로 기분 좋게 만든 말이네. 하지만 못 생긴 남자를 미남이라고 믿게 하고, 키 작은 사람이 키 크다고 믿게 하는 것은 오랫동안 속이는 것도 아니고, 그가 앓는 상처는 가벼워 불치의 것도 아니네.

 

그러나 악을 덕으로 취급해 칭찬하는 사람의 경우는 다르네. 그는 악에 분개하지 않고 오히려 악을 기뻐하지. 그래서 자기 잘못에 대한 온갖 수치심을 못 느낀다네. 이것이 일종의 큰 재앙을 초래했는데, 시켈리아 주민으로 하여금 디오뉘시오스와 팔라리스의 야만적인 잔학 행위를 '불의와 부정에 대한 증오심의 발로'로 부르게 함으로써 큰 고통을 당하게 했네. 아이귑토스를 파멸시킨 것 역시 이것이었네.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유부단, 그의 종교적 심취, 그의 찬가, 그가 두드리는 북소리에다가 '경건심'과 '신들에 대한 헌신'의 이름을 갖다 붙였기 때문이지. 이것이 바로 공화정 말기 당시에 로마인들의 성격을 비뚤어지게 하고 훼손시킨 것이었네. 안토니우스의 사치, 그의 무절제한 행위, 화려한 전시를 "권력의 신과 행운의 여신의 손을 적절히 이용하는 그의 유쾌하고 친절하고 고상한 행동들"로 두둔하려 했기 때문이지. 프톨레마이오스로 하여금 주색잡기에 빠지게 했던 것은 이것 말고 또 무엇이 있겠는가? 네로에게 비극의 무대를 설치해 주고 그에게 탈을 쓰게 하고 편상(編上) 반장화를 신게 했던 것은 이것 말고 또 무엇이 있겠는가? 그것이 그의 아첨꾼들의 칭찬이 아니었는가?

 

어떤 왕이라도 노래 한 곡조 웅얼거리면 아폴론 신, 술 한 잔 하면 디오뉘소스 신, 레슬링을 하면 헤라클레스 신이라 부르지 않는가? 그렇지 않으면 왕은 기쁨을 누리지 못하지. 그래서 왕은 아첨에 의해 기쁨을 얻고 온갖 종류의 불명예스런 일에 빠져 들지 않았는가?(277∼281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의 모랄리아』, <아첨꾼과 친구는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선인(善人)을 아주 사랑하게 될 때매다 우리가, 플라톤이 말한 대로, 자제력을 갖춘 사람 자신을 축복받은 인간으로, "그리고 이러한 사람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들을 듣는 동석인도 역시 축복받은 인간"으로 여길 뿐만 아니라, 그의 습관, 걸음걸이, 얼굴 표정, 그리고 미소에 탄복하여 정을 느껴, 열심히 그와 동참하려 하고, 말하자면 그 관계를 굳건히 하려 하게 된다면, 그때는 우리가 정말 덕 쌓기에서 진전을 보았다고 밍어야 한다네. 더욱이 다음 경우도 마찬가지라네. 우리가 선인들을 찬미하기를 그들의 밝은 행운의 시절에만 국한하지 않는다면, 게다가 또 연인들이 서로 좋아해 상대가 말더듬이거나 창백한 얼굴의 소유자라도 상관치 않으며, 또 슬픔과 비참이 가득한 속에서 실의에 차 눈물을 흘린 판테이아가 아라스페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처럼, 아리스테이데스의 [도편] 추방, 아낙사고라스의 투옥, 또는 소크라테스의 빈곤, 또는 포키온에게 언도된 [사형] 판결 등등을 생각해도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심지어 이런 역경이 닥쳐온다 하더라도 덕은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면, 이것은 우리가 덕에 가까이 가려고 애쓰고 있다는 연유이므로, 덕 쌓기의 진전이 있다고 믿어야 한다네. 이런 뷰류의 각 경험에 대해 에우리피데스는 이렇게 감정을 토로하고 있지.

 

훌륭한 사람들은 어떤 것에서나 영예를 찾느니.

 

왜냐하면 무서운 것에 대해서 아무런 불안 공포도 느끼지 못하고 오직 그것에 감복하여 본뜨려는 열정을 지닌 자는, 명예로운 것을 그냥 수수방관하고만 있을 수 없기 때문이네. 이런 뷰류의 사람들에게는 이미 어떤 사업을 하거나, 관직에 취임하거나, 행운을 잡거나 할 때 자기들 눈앞에 현재 또는 과거의 선인들을 놓고 깊이 성찰하는 것이 한결같은 습관이 되었지. "이 경우 플라톤은 어떻게 행동했을까? 에파메이논다스는 뭐라고 말했을까? 뤼쿠르고스 자신이나 아게실라오스는 어떻게 생동했을까?" 이와 같은 거울들 앞에서, 비유적으로 말하면, 그들은 치장하고 습관을 고치며 천한 말을 자제하거나 정념의 발동을 끈다네.(404∼407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의 모랄리아』, <덕을 쌓는 사람은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는가>

 

 

 * * *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겨울호랑이 2018-01-06 14: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oren님께서 인용해 주신 글 속에서 플라톤의「파이돈」의 ‘상기‘, 「향연」에서의 ‘에로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중용‘ 내용을 발견할 수 있으니 플루타르코스가 여러 차례 언급한 이유도 납득이 갑니다^^:

oren 2018-01-06 15:20   좋아요 1 | URL
아하.. 제가 인용한 글이 플라톤의 『파이돈』과 『향연』에서도 ‘다시‘ 나오는군요. 그 책들도 『국가』를 다 읽고 나면 읽어볼 참입니다.(『향연』은 예전에 읽어봤지만 제 기억에 남아 있는 문장이 거의 없어요.)

플라톤의『국가』를 읽는 동안 곁에 함께 펼쳐 놓으면서 읽는 책들이 자꾸만 쌓여 갑니다. 플라톤은 호메로스와 비극 작가들의 작품을 너무나 자주 인용하고,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루타르코스 등은 플라톤의 『국가』를 자꾸만 거듭 인용하니까 말이지요.(예전에 <플루타르코스의 모랄리아>를 읽을 때, <플라톤의 국가>가 인용된 부분을 여러차례 표시해 둔 게 큰 도움이 되네요...)

cyrus 2018-01-06 15: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플라톤의 책을 읽게 되면 oren님의 글을 많이 참고해야겠어요. 글 속에 포함된 oren님이 읽은 책을 읽어보고 싶어요. ^^

oren 2018-01-06 16:09   좋아요 0 | URL
플라톤의 『국가』를 뒤늦게(?) 새로 읽다 보니 이 책 속의 문장들을 여러차례 인용했던 다른 책들도 다시 생각나더군요. 아마도 이 책을 가장 많이 인용한 사람은 제 짐작으로는 그의 직계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였지 싶은데(『시학』과 『니코마코스 윤리학』만 봐도 그렇더라고요.), 그 이외에도 플루타르코스를 비롯해서, 몽테뉴, 아담 스미스, 쇼펜하우어, 니체, 하이데거 등등이 인용했던 유명한 문장들을 직접 만나는 재미가 여간 쏠쏠하지 않네요.
 

 

그의 대화들을 교리의 일관된 시스템으로 읽지 말고, 유머, 재치, 정신작용, 신화라는 멋진 비유들로 가득한 지적 드라마로 읽으면 좋다. 대화들은,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인물 중 하나인, 못 생겼지만 매력적이고 짐짓 겸손한 척하는 소크라테스를 지적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 클리프턴 패디먼

 

 * * *

 

고전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책 속에 담긴 내용을 '눈 앞에서 벌어지는 현실'에 직접 비춰보면서 읽는 것이다. 고전이 현실과 아예 동떨어져 있다면 도대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그런 면에서 보자면 때때로 고전을 읽는 '타이밍'을 잘 맞출 필요도 있을 듯하다. 그걸 일부러 겨냥하기가 무척 힘든 줄은 알지만 말이다.

 

까마득한 옛날에 쓰인 고전 속에 담긴 문장들이 내게 가장 재미있게 읽힐 때는 바로 다음과 같은 느낌이 찾아들 때다.

 

어?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내 눈앞에서 벌어진 일들'을 어쩌면 이토록 자세히도 알고 있지?

 

이런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 그 고전을 갑자기 놀라운 흡인력을 발휘한다. 고전 속에서 대화를 나누는 인물들이 갑자기 현실 속의 인물들과 급속히 가까워지거나 혹은 대체된다. 플라톤의 <대화편>이라고 예외일까? 아니다. 대학에 다닐 때 뭣도 모르고『국가』를 처음 읽었을 때는 이런 경험을 전혀 하지 못했던 듯하다. 책을 읽는 사람도 바뀌고 세월도 많이 흐르다 보니 플라톤의『국가』도 아주 흥미로운 책으로 돌변한 듯하다.

 

 

 * * *


 

"갈라져서 여러 개로 분열되는 것보다 국가에 더 큰 악이 있을까? 또는 결속과 통일보다 국가에 더 큰 선이 있을까?"

 

"없어요."

 

"그런데 국가를 결속시켜주는 것은, 가능한 한 모든 시민이 같은 성공과 실패를 기뻐하고 괴로워할 때의 그 기쁨과 고통의 공유겠지?"

 

"물론이지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러나 국가와 그 주민들에게 똑같은 일이 일어났는데 어떤 사람들은 크게 괴로워하고 어떤 사람들은 크게 기뻐한다면, 개인 간의 이러한 감정 차이는 결속을 저해하겠지?"

 

"당연한 일이지요."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공동체 구성원들이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 또는 '남의 것'과 '남의 것이 아닌 것' 같은 표현을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할 때겠지?"

 

"물론이지요."

 

"그렇다면 가장 훌륭하게 경영되는 국가는 최대 다수가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표현을 같은 사물들에 대해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국가이겠지?"

 

"물론이지요."

 

"또한 가장 개인을 닮은 국가이겠지? 예컨대 우리 가운데 누가 손가락을 다치면, 지배적인 부분의 휘하에서 몸과 혼을 하나의 체계로 결합시키는 유기체 전체가 그것을 감지하고는 몸의 한 부분이 당하는 고통을 전체로서 함께 느낀다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은 손가락이 아프다고 말하는 것이라네. 또한 고통을 느끼든 안도의 쾌감을 느끼든 인간의 다른 부분에도 같은 원칙이 적용되겠지?"

 

"네, 같은 원칙이 적용돼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리고 선생님의 질문에 답변하자면, 가장 잘 다스려지는 국가가 그런 상태를 가장 닮았어요."

 

"그러니 개별 시민에게 좋은 일이나 궂은 일이 일어나면, 그런 국가는 그 개별 시민이 자신의 일부라고 강조하며 전체로서 함께 기뻐하거나 함께 슬퍼할 것이네."

 

"훌륭한 법을 갖춘 국가라면 당연히 그렇게 하겠지요" 하고 그가 말했네.(288∼289쪽)

 

 - 플라톤, 『국가』, <제5권>

 

 * * *

 

"어떤가?" 하고 내가 말했네. "전투에서 이겼을 때 전사자들에게서 무구(武具) 외에 다른 것을 벗겨가는 것은 좋은 관행일까? 아니면 그런 관행은 겁쟁이들에게 적군과 맞서지 않을 핑계만 대주는 것이 아닐까? 그들이 시신 주위로 어슬렁거리는 것이 아주 중대한 일인 것처럼 말일세. 아닌 게 아니라 이런 약탈 관행 때문에 이미 많은 군대가 파멸을 맞았다네."

 

"물론이지요."

 

"시신을 벗기는 것은 돈을 밝히는 노예다운 짓이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적군은 갖고 싸우던 무구들만 남겨두고 생명은 이미 날아가버렸는데 죽은 시신을 적군 취급한다는 것은 여자답고 속 좁은 짓이 아닌가? 자네는 그것이 던져진 돌멩이들에는 화를 내면서도 돌멩이들을 던져대는 사람은 내버려두는 암캐들의 태도와 뭐가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전혀 다르지 않아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전사들이 시신을 벗기는 것을 허용해서도 안 되고, 적군이 장례를 위해 자기편 전사자를 들고 가는 것을 방해해서도 안 될 것이네."

 

"제우스에 맹세코, 절대 그래서는 안 돼요."

 

"또한 우리는 적군의 무구, 특히 헬라스인들의 무구를 신전에 봉헌하는 일이 없을 것이네. 만약 우리가 다른 헬라스인들과의 선린관계에 관심이 있다면 말일세. 오히려 우리는 동족의 무구를 봉헌함으로써 신전들을 더럽힐까 봐 두려워할 것이네. 아폴론 신께서 다른 말씀을 하시지 않는 한 말일세."

 

"지당하신 말씀이에요" 하고 그가 말했네.

 

"헬라스 땅을 황폐화하고 집들을 불사르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자네의 전사들은 적군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어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래서 내가 말했네. "내 생각에, 그들은 그중 어떤 짓도 해서는 안 되고 그해 농작물만 실어가야 하네. 내가 자네에게 그 이유를 설명해주기를 바라는가?"

 

"물론이지요."

 

"내가 보기에, '전쟁'과 '내분'은 이름도 서로 다르지만 서로 다른 두 가지 분쟁에 관련됨으로써 실제로도 서로 다른 것을 뜻하는 것 같네. 내가 말하는 서로 다른 두 가지 분쟁 가운데 하나는 동족 또는 친족끼리의 분쟁이고, 다른 하나는 외국과의 또는 남남끼리의 분쟁일세. 우리는 그중 동족끼리의 분쟁은 '내분'이라 부르고, 외국과의 분쟁은 '전쟁'이라고 부르네."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은 전혀 사리에 어긋나지 않아요" 하고 그가 말했네.

 

"다음의 내 주장도 사리에 어긋나지 않는지 살펴봐주게나. 내 주장인즉, 헬라스인들은 저들끼리는 동족이고 친족이지만 비헬라스인들에게는 남남이고 외국인들일세."

 

"네, 맞아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렇다면 헬라스인들이 비헬라스인들과 싸우거나 비헬라스인들이 헬라스인들과 싸운다면, 우리는 그들이 전쟁을 하고 있다고, 그들은 타고난 적이라고, 그래서 그러한 적대행위는 '전쟁'이라 불리어 마땅하다고 말할 것이네. 그러나 헬라스인들이 헬라스인들과 싸운다면, 우리는 그들이 타고난 친구들이지만, 그런 경우에는 헬라스가 병들어 분쟁에 휘말려 있다고, 그래서 그런 적대행위는 '내분'이라 불리어 마땅하다고 말할 것이네."

 

"나도 선생님의 견해에 동의해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래서 내가 말했네. "방금 우리가 내분이라고 부르기로 합의한 사태가 어디에선가 발생해 나라가 내분에 휘말렸다고 가정해보게. 만약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의 농토를 황폐화하고 집들을 불사른다면 내분은 가증스러운 것으로 간주될 것이며, 양쪽 모두 애국심이 없는 것으로 여겨질 것이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유모와 어머니를 황폐화하지 않을 테니 말일세. 그러나 이긴 쪽이 진 쪽의 농작물만 약탈해가고 진 쪽을 언제까지나 전쟁을 할 상대가 아니라 언젠가는 화해하게 될 상대로 대한다면, 절제 있는 태도로 간주될 것이네."

 

"그래요. 후자의 태도가 훨씬 인간적이니까요" 하고 그가 말했네.

 

"어떤가?" 하고 내가 물었네. "자네가 세우고 있는 나라는 헬라스 국가가 될 것 아닌가?"

 

"그야 당연하지요" 하고 그가 대답했네.

 

"그렇다면 그 나라의 시민들은 훌륭하고 인간적인 사람들이 되겠지?"

 

"물론이지요."

 

"그들은 헬라스인들을 사랑하고, 헬라스를 조국으로 여기고, 다른 헬라스인들과 같은 종교 축제에 참가하게 되지 않을까?"

 

"물론이지요."

 

"그렇다면 그들은 동족인 헬라스인들과의 분쟁을 '내분'이라 여기고 '전쟁'이라고 부르지는 않겠지?"

 

"전쟁이라고 부르지 않겠지요."

 

"그들은 언젠가는 화해하게 될 사람들처럼 싸우게 되겠지?"

 

"물론이지요."

 

"그들은 선의에서 상대방이 절제를 지키게 해주려는 것이지, 상대방을 처벌하려고 예속시키거나 파괴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네. 그들은 정신 차리게 해주려는 것이지, 적군은 아니니까 말일세."

 

"그렇겠지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들은 헬라스인들이기에 헬라스 땅을 황폐화하지도 않고 집들을 불사르지도 않을 것이네. 그들은 또한 남자건 여자건 아이들이건 한 나라의 주민 전체가 자신들의 적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분쟁에 책임이 있는 적대적인 소수만을 자신들의 적으로 간주할 것이네. 따라서 그들은 우호적인 다수의 농토를 황폐화하거나 집을 파괴하지 않을 것이며, 이들 분쟁에 책임이 있는 자들이 죄 없이 고통받는 사람들에 의해 죗값을 치르도록 강요받을 때까지만 적대행위를 계속할 것이네."(304∼307쪽)

 

 - 플라톤, 『국가』, <제5권>

 

 * *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