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첨과 우정 사이

 

 

그래서 내가 말했네. "누가 무엇을 사랑한다고 제대로 말하려면, 그는 그것의 일부는 사랑하고 다른 일부는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내가 자네에게 상기시켜줘야 하나, 아니면 자네도 기억하고 있는가?"

 

"선생님께서 상기시켜주셔야 할 것 같아요. 나는 기억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내가 말했네. "글라우콘, 자네가 그런 대답을 하다니 정말 뜻밖일세. 소년을 사랑하는 사람은 한창때의 소년들을 보면 언제나 뜨거운 열정을 느끼며 그들 모두가 자신의 관심과 애정의 대상이 되기에 손색없다고 여긴다는 점을 자네처럼 사랑에 민감한 사람이 잊는다는 것은 부적절하네. 아니면 자네들 같은 사람들은 미소년들을 다음과 같이 대하지 않는단 말인가? 자네들은 사자코를 가진 소년은 귀엽다고, 매부리코는 제왕답다고, 이들 양극단 사이의 중간은 균형이 잘 잡혔다고 칭찬한다네. 자네들은 또한 피부색이 검은 소년들은 남자답다고, 피부색이 흰 소년들은 '신들의 자식들'이라고 부른다네. 벌꿀색이라는 말 또한 한창때의 소년이 안색이 파리해도 싫지 않아서 듣기 좋으라고 연인이 지어낸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한마디로, 자네들은 온갖 핑계를 대고 온갖 말을 하며 한창때의 젊은이를 단 한 명도 퇴짜 놓으려 하지 않는다네.(474c∼474e)

 

 - 플라톤, 『국가』, <제5권>


 

 * * *

 

 

어쨌든 모든 사람은 한창 청춘일 때 어떻게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플라톤이 말하듯이 동성애의 상대자로서 사랑하고픈 남자를 충동질하여 호감을 사려는 행동을 함을 우리는 알고 있네. 그런 자는 피부색이 흰 소년들을 '신들의 아이들'이라고 부르고 피부색이 검으면 '남자답다'고 부르는가 하면, 매부리코를 애칭으로 '왕답다'고 하고, 들창코를 '매혹적'으로, 혈색이 누런 소년을 '꿀 색깔'로 부르며 모든 상대를 환영하고 좋아하지. 사랑은 담쟁이덩굴과 같아서 어떤 버팀목에라도 찰싹 달라 붙는 데 재빠르기 때문이네.(229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의 모랄리아』, <철학자들의 강의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

 

 

 

파당 싸움과 전쟁 중에 투퀴디데스는 이렇게 말했네.

 

그들은 보통 받아들여지고 있는 단어들의 의미를 자신들이 행한 행동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의미로 바꿔 버렸다. 그래서 무모한 만용은 진정한 용기로, 신중한 기다림은 그럴듯한 비겁으로, 온건함은 겁쟁이의 구실로, 만사에 대한 명민한 이해는 어떤 일을 맡기에는 행동력이 부족한 것으로 간주하기에 이르렀다.

 

고. 그래서 하는 말인데, 누가 아첨하려고 할 때에 우리는 주의 깊게 관찰하여 감시의 고삐를 늦추어서는 안 되네. 낭비가 '베풂'으로, 비겁이 '자기 보전'으로, 충동이 '기민함'으로, 인색이 '검약'으로, 호색한이 '사교적이고 호감을 주는 사람'으로, 성 잘 내고 오만방자한 사람이 '기백이 있는 사람'으로, 미천하고 온순한 사람이 '친절한 사람'으로 불리는 것들이지. 플라톤도 어디선가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애인의 아첨꾼이 되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부른다고 말했네. 사자코의 애인은 '매혹적'인 사람, 메부리코의 애인은 '왕과 같은' 사람, 피부색이 검은 사람은 '사내다운' 사람, 살갗이 희고 금발인 사람들은 '신들의 아이들'로 말이지. 반면에 '벌꿀 색조'의 사람은 순전히 혈색이 나빠 누르스름해진 애인을 애칭으로 기분 좋게 만든 말이네. 하지만 못 생긴 남자를 미남이라고 믿게 하고, 키 작은 사람이 키 크다고 믿게 하는 것은 오랫동안 속이는 것도 아니고, 그가 앓는 상처는 가벼워 불치의 것도 아니네.

 

그러나 악을 덕으로 취급해 칭찬하는 사람의 경우는 다르네. 그는 악에 분개하지 않고 오히려 악을 기뻐하지. 그래서 자기 잘못에 대한 온갖 수치심을 못 느낀다네. 이것이 일종의 큰 재앙을 초래했는데, 시켈리아 주민으로 하여금 디오뉘시오스와 팔라리스의 야만적인 잔학 행위를 '불의와 부정에 대한 증오심의 발로'로 부르게 함으로써 큰 고통을 당하게 했네. 아이귑토스를 파멸시킨 것 역시 이것이었네.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유부단, 그의 종교적 심취, 그의 찬가, 그가 두드리는 북소리에다가 '경건심'과 '신들에 대한 헌신'의 이름을 갖다 붙였기 때문이지. 이것이 바로 공화정 말기 당시에 로마인들의 성격을 비뚤어지게 하고 훼손시킨 것이었네. 안토니우스의 사치, 그의 무절제한 행위, 화려한 전시를 "권력의 신과 행운의 여신의 손을 적절히 이용하는 그의 유쾌하고 친절하고 고상한 행동들"로 두둔하려 했기 때문이지. 프톨레마이오스로 하여금 주색잡기에 빠지게 했던 것은 이것 말고 또 무엇이 있겠는가? 네로에게 비극의 무대를 설치해 주고 그에게 탈을 쓰게 하고 편상(編上) 반장화를 신게 했던 것은 이것 말고 또 무엇이 있겠는가? 그것이 그의 아첨꾼들의 칭찬이 아니었는가?

 

어떤 왕이라도 노래 한 곡조 웅얼거리면 아폴론 신, 술 한 잔 하면 디오뉘소스 신, 레슬링을 하면 헤라클레스 신이라 부르지 않는가? 그렇지 않으면 왕은 기쁨을 누리지 못하지. 그래서 왕은 아첨에 의해 기쁨을 얻고 온갖 종류의 불명예스런 일에 빠져 들지 않았는가?(277∼281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의 모랄리아』, <아첨꾼과 친구는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선인(善人)을 아주 사랑하게 될 때매다 우리가, 플라톤이 말한 대로, 자제력을 갖춘 사람 자신을 축복받은 인간으로, "그리고 이러한 사람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들을 듣는 동석인도 역시 축복받은 인간"으로 여길 뿐만 아니라, 그의 습관, 걸음걸이, 얼굴 표정, 그리고 미소에 탄복하여 정을 느껴, 열심히 그와 동참하려 하고, 말하자면 그 관계를 굳건히 하려 하게 된다면, 그때는 우리가 정말 덕 쌓기에서 진전을 보았다고 밍어야 한다네. 더욱이 다음 경우도 마찬가지라네. 우리가 선인들을 찬미하기를 그들의 밝은 행운의 시절에만 국한하지 않는다면, 게다가 또 연인들이 서로 좋아해 상대가 말더듬이거나 창백한 얼굴의 소유자라도 상관치 않으며, 또 슬픔과 비참이 가득한 속에서 실의에 차 눈물을 흘린 판테이아가 아라스페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처럼, 아리스테이데스의 [도편] 추방, 아낙사고라스의 투옥, 또는 소크라테스의 빈곤, 또는 포키온에게 언도된 [사형] 판결 등등을 생각해도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심지어 이런 역경이 닥쳐온다 하더라도 덕은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면, 이것은 우리가 덕에 가까이 가려고 애쓰고 있다는 연유이므로, 덕 쌓기의 진전이 있다고 믿어야 한다네. 이런 뷰류의 각 경험에 대해 에우리피데스는 이렇게 감정을 토로하고 있지.

 

훌륭한 사람들은 어떤 것에서나 영예를 찾느니.

 

왜냐하면 무서운 것에 대해서 아무런 불안 공포도 느끼지 못하고 오직 그것에 감복하여 본뜨려는 열정을 지닌 자는, 명예로운 것을 그냥 수수방관하고만 있을 수 없기 때문이네. 이런 뷰류의 사람들에게는 이미 어떤 사업을 하거나, 관직에 취임하거나, 행운을 잡거나 할 때 자기들 눈앞에 현재 또는 과거의 선인들을 놓고 깊이 성찰하는 것이 한결같은 습관이 되었지. "이 경우 플라톤은 어떻게 행동했을까? 에파메이논다스는 뭐라고 말했을까? 뤼쿠르고스 자신이나 아게실라오스는 어떻게 생동했을까?" 이와 같은 거울들 앞에서, 비유적으로 말하면, 그들은 치장하고 습관을 고치며 천한 말을 자제하거나 정념의 발동을 끈다네.(404∼407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의 모랄리아』, <덕을 쌓는 사람은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는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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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1-06 14: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oren님께서 인용해 주신 글 속에서 플라톤의「파이돈」의 ‘상기‘, 「향연」에서의 ‘에로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중용‘ 내용을 발견할 수 있으니 플루타르코스가 여러 차례 언급한 이유도 납득이 갑니다^^:

oren 2018-01-06 15:20   좋아요 1 | URL
아하.. 제가 인용한 글이 플라톤의 『파이돈』과 『향연』에서도 ‘다시‘ 나오는군요. 그 책들도 『국가』를 다 읽고 나면 읽어볼 참입니다.(『향연』은 예전에 읽어봤지만 제 기억에 남아 있는 문장이 거의 없어요.)

플라톤의『국가』를 읽는 동안 곁에 함께 펼쳐 놓으면서 읽는 책들이 자꾸만 쌓여 갑니다. 플라톤은 호메로스와 비극 작가들의 작품을 너무나 자주 인용하고,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루타르코스 등은 플라톤의 『국가』를 자꾸만 거듭 인용하니까 말이지요.(예전에 <플루타르코스의 모랄리아>를 읽을 때, <플라톤의 국가>가 인용된 부분을 여러차례 표시해 둔 게 큰 도움이 되네요...)

cyrus 2018-01-06 15: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플라톤의 책을 읽게 되면 oren님의 글을 많이 참고해야겠어요. 글 속에 포함된 oren님이 읽은 책을 읽어보고 싶어요. ^^

oren 2018-01-06 16:09   좋아요 0 | URL
플라톤의 『국가』를 뒤늦게(?) 새로 읽다 보니 이 책 속의 문장들을 여러차례 인용했던 다른 책들도 다시 생각나더군요. 아마도 이 책을 가장 많이 인용한 사람은 제 짐작으로는 그의 직계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였지 싶은데(『시학』과 『니코마코스 윤리학』만 봐도 그렇더라고요.), 그 이외에도 플루타르코스를 비롯해서, 몽테뉴, 아담 스미스, 쇼펜하우어, 니체, 하이데거 등등이 인용했던 유명한 문장들을 직접 만나는 재미가 여간 쏠쏠하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