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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에 대해 쓴 책 가운데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
















그들이 몰랐기 때문에 5


역사의 기록을 점검하고, 또 당신 자신이 경험한 테두리 안에서 일어난 일들을 회상하면서 사적인 삶이나 공적인 경력에서 대단한 불행을 겪은 사람들 거의 모두-그들에 대해 당신이 읽었거나 전해들은 내용이 있을 수도 있고, 당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주의 깊게 생각해 보라; 그들 가운데 절대 다수가 겪은 불행은 형편이 좋았을 때, 다시 말해 가만히 앉아 자족했더라면 그저 좋았던 때를 그들이 몰랐기 때문에 생겨났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아담 스미스, 『도덕심성론The Theory Moral Sentiments』 가운데
 
(나의 생각)
찰스 P. 킨들버거의 다른 책에서도 발견했던 문장이다. 이 문장 덕분에 아담 스미스도덕감정론을 본격적으로 읽게 된 '참 고마운' 인용문이다.


눈먼 자본 5


패닉과 광기에 대해서는 우리가 갖고 있는 최대한의 지식을 동원해 좇고 상상할 수 있는 규모를 넘어서는 대단한 분량이 쓰여졌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특정 시점마다 엄청난 금액의 멍청한 돈이 부지기수의 멍청한 사람들 손에 주어진다는 사실이다. ······ 당면한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명분을 이유 삼아 이런 사람들의 돈-우리는 이 돈을 눈먼 자본(blind capital)이라고 부른다-이 주기적으로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불어나고 꿈틀대는 욕망에 주체를 못한다. 이 돈은 누군가가 자신을 집어 삼켜 주기를 갈망하며 "흘러 넘친다"; 흘러 넘치는 돈이 누군가를 찾아내면 '투기'가 벌어지고; 투기가 이 돈을 다 먹어 치우고 나면 '패닉'이 발생한다.

월터 배젓, 『에드워드 기븐에 관한 소론Essay on Edward Gibbon』가운데


눈에 익은 단계들 5


나는 위기가 다가옴을 느낄 수 있다. 증권거래위원회가 있든 없든, 파탄을 몰고 올 새로운 투기의 거대한 소용돌이가 익히 눈에 익은 단계들을 밟아가며 다가오고 있다; 핵심 우량주가 붐을 일으킨 다음, 이류 종목들이 뜨겁게 달아오르면, 이어서 장외시장에서도 투기판이 벌어질 것이다; 그리고는 새로 상장된 주식을 둘러싼 또 한 차례의 끝물 장세가 지나가면, 마침내 피할 수 없는 붕괴가 찾아올 것이다. 이 일이 언제 벌어질지는 모르겠지만,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빌어먹을 일은, 내가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버나드 J. 라스커(1970년 뉴욕증권거래소 회장으로 재직)
그가 1972년에 했던 말 가운데, 존 브룩스가 쓴『고고의 시절The Go-Go Years』에서 인용


경제학과 역사 19


"경제학은 역사가 경제학을 필요로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역사를 필요로 한다."


상품가격의 극적인 변동 25


이 기간 동안 상품가격의 변동이 극적인 경우도 꽤 있었다. 금의 미 달러화 표시 가격은 1970년대 초에는 온스 당 40달러였는데, 1970년대 말에는 온스 당 1000달러 가까이까지 상승했고, 1980년대 말에는 450달러, 1990년대 말에는 283달러를 기록했다. 원유가격은 1970년대 초 배럴 당 2.5달러에서 1970년대 말에는 40달러로 올랐으며, 1980년대 중반에는 배럴 달 12달러였다가 1980년대 말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이후 다시 40달러에 거래됐다.

(나의 생각)
2011년 2월 22일 현재 금의 가격은 온스 당 1,409.70달러, 원유 가격은 두바이유 기준으로 배럴당 100.36달러를 넘었다.


쳬계적인 관련 33

이 책이 다루는 주제 가운데 하나는 1980년대 후반 일본의 부동산 및 주식시장 거품과 이와 유사한 1990년대 중반 태국 방콕과 인근 아시아 국가들의 금융 중심지에서 형성된 거품, 그리고 1990년대 후반 미국 주식시장의 거품, 이들 세 가지 거품이 체계적인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이다.


'뜨거운 감자' 이야기 33

해외로부터 어느 나라로 자금 유입이 증가하면 거의 예외 없이 자금이 유입되는 나라에서 거래되는 유가증권의 가격이 상승했다. 왜냐하면 외국인에게 유가증권을 매도한 내국인들은 매도한 금액 중 많은 부분을 다른 내국인이 보유한 다른 유가증권을 매수하는 데 사용했고, 또 내국인에게 유가증권을 매도한 내국인도 마찬가지로 이 매도 금액 가운데 많은 부분을 다시 다른 유가증권을 매수하는 데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유가증권 거래는 더 높은 가격을 유발하며 계속 이루어졌다. 이것은 마치 속담에 나오는 '뜨거운 감자' 이야기와 유사하다. 외국인에게 매도한 유가증권 매도 자금이 한 집단의 투자자에서 다른 투자자 집단으로 옮겨갈 때는 항상 더 높은 가격을 붙이며 빠르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광기의 매커니즘 36

일반적으로 광기 현상은 경기순환의 확장 국면에서 나타났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광기에 동반하는 풍요로운 감정이 지출 증대를 야기한다는 점에 기인한다. 광기 국면에서 부동산가격이나 주가, 상품가격의 상승은 소비지출 및 투자지출의 증가에 기여하고, 이것은 다시 경제성장을 가속화한다.


광기의 작동원리 36

광기, 특히 거시적 차원의 광기는 경제적 풍요감과 함께 나타난다; 더 많은 기업들이 희망에 휩싸여 기대에 부풀고, 신용이 넘쳐나므로 투자 지출은 급증한다. 1980년대 후반 일본의 제조업체들은 도쿄와 오사카의 안면이 있는 은행가들에게서 원하는 만큼 돈을 빌릴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돈이 '공짜'인 것처럼 보였고(돈은 광기 국면에서는 언제나 공짜처럼 보인다), 일본인들은 흥겨운 소비 잔치와 투자 잔치를 계속했다. 일본인들은 수만 점의 프랑스 예술작품을 구입했다. 반 고흐의 작품 '의사 가셰의 초상화'를 매입한 오사카 출신의 경마장 사업가는 당시 미술품 가격으로는 사상 최고가인 9000만 달러를 지불했다. 미쓰이 부동산은 최초 호가가 3억 1000만 달러였던 뉴욕의 액손 빌딩을 구입하는 데 6억 2500만 달러를 지불해, 업무용 빌딩 매입가격으로는 당시 최고 가격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붕괴의 첫신호 37

이어서 하나의 사건이 터지는데, 정부정책의 변화나 어제까지만 해도 성공적이라고 여겨지던 회사가 별다른 설명도 없이 파산하는 사건과 같은 일이 벌어지면서, 자산가격은 상승 행진을 중단한다. 자산의 매입을 대부분 차입금으로 조달했던 일군의 투자자들은 결국 대출자금에 대한 이자 지불액이 자산에서 나오는 투자소득보다 커지게 되는 순간, 보유하고 있던 부동산이나 주식의 투매자로 돌변한다. 이들 자산의 가격이 매수한 가격 밑으로 떨어지는 상황에 이르면 매수자들은 "물속으로 잠겨버린다"; 자산 매입을 위해 조달한 대출자금의 원리금이 자산의 현재 시장가격보다 커지고, 급기야 덫에 걸려들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들의 투매는 자산가격의 급락을 초래하게 되고, 패닉과 붕괴가 뒤따를 수도 있다.


광기 현상들의 한 가지 유사한 유형 38

이 같은 광기 현상들의 특징은 전부 똑같지는 않지만, 한 가지 유사한 유형을 갖는다. 경제적 풍요감에 동반해 부동산과 주식, 상품가격의 상승이 나타난다. 가계의 부가 증가하고, 따라서 지출도 늘어난다. "이보다 더 좋았던 적이 없다"는 인식이 자리잡는다. 그러는 사이 자산가격이 그 정점으로 치솟고, 곧이어 하락이 시작된다. 거품의 파열은 부동산가격, 주가, 상품가격의 하락과 동반해 나타났으며, 이런 가격 하락은 종종 붕괴나 금융위기로 이어졌다. 일부 금융위기 현상에서는 그보다 앞서 특정한 자산이나 유가증권 가격의 급등이 나타났다기보다 하나 혹은 몇몇 차입자 집단의 채무규모가 먼저 급증했던 경우도 있다.


애매함과 딜레마 43

패닉과 붕괴에 대처하는 궁극적 대여자의 역할은 애매함과 딜레마에 싸여 있다. 1825년의 위기 당시 영란은행의 행동에 대해 토마스 조플린은 "원칙과 전례가 깨지면 안 되는 시기가 있는 반면, 원칙과 전례를 고수하는 것이 안전하지 않은 때도 있다"고 논평했다.


비이성적 과열에 대한 공식적 경고 48

한가지 문제는 광기가 공식적 경고-도의적 권고나 설득-에 의해 중지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점이다. 경험적 증거가 말해 주는 것은 그런 방식으로는 광기를 멈출 수없으며, 위기를 막고자 의도했던 경고 후에 많은 위기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널리 지적되는 사례는 미국 주식시장이 비이성적일 정도로 과열돼있다고 지적한 앨런 그린스펀 당시 FRB의장의 1996년 12월 6일자 논평이었다. 이 때 다우존스 산업평균 주가는 6600이었으나 그 후 계속 상승해 1만 1700까지 치솟았다. 나스닥 지수는 그런스펀의 논평 시점에 1300이었는데 4년 후 5000이상으로 뛰어 올랐다. 이와 유사한 경고가 1929년 2월 민간 은행가로 미국 연방분비제도(Federal Reserve System)의 창설자 중 하나였던 폴 워버그에 의해 제기됐지만, 주식시장의 상승 행진을 그리 오래 늦추지는 못했다.


의구심을 마지막까지 끌고 갔다는 점에서 56

금융 질서는 자산가격 붕괴에 따르는 패닉의 확산을 막기 위해 궁극적 대여자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궁극적 대여자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채무 과다 상태에 빠지게 될 개별 차입자들이 '구제'될 것이라는 견해와는 구분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뉴욕 시가 지원을 받게 될 것인지, 또 누가 지원할 것인지에 대한 불확실성을 유지했던 것은, 종국적으로는 지원이 주어졌다는 점에서, 그리고 지원이 주어질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마지막까지 끌고 갔다는 점에서, 장기적인 관점으로 보면 옳은 대응이었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신용공급의 순환 58

민스키는 경기가 확장할 때 늘어났다가 경기 둔화 국면에서 줄어들면서, 경기순환의 파동과 함께 오르내리는 신용 공급의 순환에 주목했다. 경기 확장 국면에는 투자자들의 미래에 대한 낙관적 태도가 증폭되고, 이들은 다양한 영역에서 투자에 대한 수익성 추정치를 상향 조정한다. 따라서 이들이 자금을 차입하려는 의욕이 늘어난다. 동시에 대여자들은 개별적인 투자에 대한 위험 평가를 낮추고, 이들의 위험 회피 성향도 줄어들어 자연히 돈을 빌려주려는 의욕이 증가하고, 이전에는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했던 투자가 긍정적인 여신 대상으로 바뀌는 경우도 생겨난다.

제반 경제 여건들이 둔화될 때는 투자자들의 낙관론은 줄어들고 신중론이 고개를 든다, 동시에 대출손실이 늘어나게 되므로 대여자들은 훨씬 더 조심스러워진다.

민스키는 이처럼 호경기 때 늘어나고 경제의 탄력이 약화될 때 줄어들면서 경기순환에 동조하는 신용 공급의 확대와 축소가 금융 질서의 취약성을 초래하고 금융위기의 가능성을 증폭시킨다고 믿었다.


단기적인 자본이득을 얻으려는 목적 59

이 모델은 신용 공급의 불안정성에 주목한 존 스튜어트 밀, 알프레드 마샬, 넛 빅셀, 어빙 피셔 등 고전파 경제학자들의 전통을 따르는 것이다. 민스키는 피셔의 노선에 따라 과도한 채무를 진 차입자들, 특히 경기 확장기에 단기적인 자본이득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부동산이나 주식, 상품의 매수 자금을 차입금으로 조달하는 사람들의 행태에 주목했다. 이들이 이런 거래를 하는 이유는 해당 자산가격의 상승률이 매수 자금으로 조달한 차입금의 금리를 능가할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가 둔화하면 이들이 매수한 자산가격의 상승률이 차입금의 금리보다 낮아지게 된다. 그러면 이들 차입자 가운데 일부는 실망하게 되고, 이들 중 다수는 투매자로 돌변한다.


충격의 성격 60

충격의 성격은 투기붐이 일어나는 국면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1920년대 미국에서의 충격은 전국적인 전력 보급과 전화를 보유한 가정의 급속한 확산, 자동차 생산의 급증 및 이에 동반한 고속도로의 건설이었다. 1980년대 일본에서의 충격은 금융자유화와 엔화의 외환가치 급등이었다. 1980년대 노르딕 3개국에서의 충격은 금융자유화였다.

1990년대 아시아 국가들에서의 충격은 일본 자산가격 거품의 붕괴, 엔화 가치의 상승에 따른 도쿄로부터의 자금 유입 증가, 각국의 금융자유화였다. 1990년대 미국에서의 충격은 정보기술 혁명과 컴퓨터, 무선통신, 전자우편을 통한 새롭고 값싼 방식의 통신 및 제어기술이었다. 때로는 전쟁의 발발이나 종전, 풍작 혹은 흉작, 운하나 철도 같은 파급효과가 엄청난 새로운 사회간접자본시설의 광범위한 보급이 충격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예상치 못한 통화 정책의 변화도 주된 충격이었다.


바람에 휘둘리도록 61

민스키는 은행 여신의 성장이 매우 불안정한 양상을 띠며 이어져 왔다고 지적했다;은행들은 자금 대여자로서 어떤 때는 무척이나 강한 풍요감에 젖어 제한 없이 자금을 빌려주었다가, 어떤 때는 신중함이 극에 달해 차입자들이 "바람에 휘둘리도록" 내버려뒀다.


경제적인 풍요감 61

민스키는 이 단게에서 경제적인 '풍요감(euphoria)'이 고개를 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투자자들은 상품과 유가증권의 가격 상승을 예상하고, 자본이득에서 나오는 이익을 얻기 위해 여러 가지 상품과 유가증권을 매입한다. 관련 당국은 경제에 무언가 이례적인 현상이 발생하고 있음을 인식하지만, 이전에 있었던 광기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이번에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와 함께 이들은 무엇이 다른지 그 차이점에 대한 광범한 설명 요인들을 찾아낸다.


'폰지금융'의 유래 62

'폰지금융'이라는 용어는 1920년대 초 보스턴 교외 지역에서 소규모 융자업체를 운영한 카를로스 폰지(Carlos Ponzi)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폰지는 자금 예탁자들에게 한 달에 30%의 이자를 지불해 주겠다고 약속했고, 그의 금융거래는 3개월 동안 무난하게 굴러갔다. 그러나 네 번째 달에 이르자 신규 에탁자들에게서 얻는 현금 유입액이 기존 예탁자들에게 지불할 이자 지급액보다 작아지게 됐고, 결국 폰지는 교도소로 가야 했다.

폰지금융이라는 용어는 이제 '지속 불가능한 자금조달 유형'을 가리키는 범주적 용어의 하나가 되었다.


킨들버거式 '투기의 정의' 63

투기란 어느 상품을 사용해서 얻는 이익이 아니라, 예상되는 가격 상승으로 발생하는 자본이득을 얻을 목적으로 상품을 매수하는 행위를 말한다. 유가증권의 경우에도, 유가증권이라는 상품에서 발생하는 투자소득이 아니라, 다시 매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매수하면 투기의 대상이 된다.


친구가 부자되는 것 64

"친구가 부자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큼 사람들의 안락과 판단력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없다."


돈을 버는 일이 이보다 더 수월했던 적이 없었다는 느낌 64

예전에는 투기적 모험과는 거리가 멀었던 기업과 개인들 중에서도 높은 수익률을 얻기 위한 소란스런 게임에 뛰어들기 시작하는 사례가 점점 많아진다, 돈을 버는 일이 이보다 더 수월했던 적이 없었다는 느낌이 든다. 지본이득을 위한 투기는 사람들을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행동에서 일탈시켜 '광기'나 '거품'이라는 표현 말고는 달리 묘사하기 어려운 행동으로 이끈다.


가격 상승과 하락 매커니즘 68

투자자들은 열차가 정거장을 떠나 속도를 올리기 전에 열차에 올라타려고 몰려든다. 외부자들의 매수 열망이 내부자들의 매도 욕구보다 강하면 해당 자산이나 유가증권의 가격은 상승 행진을 계속한다. 반대로 매도자들의 욕구가 매수자들보다 강해지면 가격은 떨어지게 된다.

매수 세력의 의욕이 약해지고 매도 세력의 의욕이 강해지면, '금융불안'이라는 불안정한 시기가 뒤따른다; '금융불안'은 기업 금융에서 쓰이는 용어로 기업이 채무 원리금 상환을 지킬 수 없는 사태를 의미한다. 경제 전반에 적용하면 기업과 개인투자자들 모두 지금은 유동성 비중을 늘려야 할 때라고 인식하는 사태를 나타낸다. 상품과 유가증권의 가격이 급격하게 떨어질 수 있다. 자산가격이 급락해 자산 매입을 위해 빌린 차입금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 하락하면 차입금 의존도가 높은 일부 투자자들이 파산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일부 투자자들은 가격 하락이 일시적이며 딸꾹질처럼 잠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믿음으로, 가격이 하락해도 자산을 계속 보유한다.


위기를 격발하는 특수한 신호 69

위기를 격발하는 특수한 신호로서 은행이나 기업의 파산, 부정직한 수단을 통해 곤란에서 벗어나려 했던 어느 투자자의 사기나 횡령, 혹은 상품가격이나 주가의 가파른 하락이 등장할 수 있다. 쇄도가 시작된다. 가격은 하락하고 파산이 늘어난다. 청산 과정에 질서가 유지될 때도 있지만, 비교적 소수의 투자자들만 정점의 최고가에서 심각하게 폭락하지 않은 가격으로 매도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이런 청산 과정은 패닉으로 악화되기도 한다. 19세기에는 이같은 행태를 '급반전'이라는 용어로 표현했다, 상품 또는 유가증권을 담보로 대출하는 은행의 조심스러움이 확연히 커진다. 19세기 초 이런 상황은 '신용경색'으로 일컬어졌다.


동질성은 더욱 강화된다 71

각각의 위기에는 그 자체에 고유한 개별적인 특징들이 있다; 충격의 성격, 투기의 대상, 신용 팽창의 형태, 사기범의 독창성, 급반전을 격발시킨 사건의 성격 등이 그런 것들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격언을 하나 빌린다면,
"무언가의 사물에 변화가 계속될수록 그 사물의 동질성은 더욱 강화된다." 세세한 것들은 증식하지만 구조는 유지되는 것이다.


네거티브 캐리, 거품 붕괴의 시작 75

1980년대 기간 중 일본의 부동산 가격은 10배 상승했고, 주가는 지수마다 차이는 있지만 6∼7배 상승했다. 1980년대 후반 일본은 전후 최고의 경기붐을 만끽했다. 부동산 투자자들이 벌어들인 수익률은 대략 연 30%에 달했다. 기업들은 부동산 투자수익률이 철강이나 자동차, 혹은 TV 제조에서 얻는 수익률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을 알자 은행 차입금을 이용한 거액의 부동산 투자자로 변신했다. 부동산가격은 임대료보다 몇 배나 빠른 속도로 상승했다. 그러나 어느 단계에 이르자 순 임대소득이 부동산 매입에 동원된 차입금의 이자 지급액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차입자들이 "네거티브 캐리' 상태에 빠진 것이다. 이제 차입자들이 이자를 내기 위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은 보유 중인 부동산의 일부를 담보로 차입금을 늘리는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초 일본은행의 신임 총재는 부동산 담보 대출이 은행의 대출 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규제함으로써 신규 부동산 대출을 제한했다. 은행의 부동산 대출 증가율이 연 30%에서 5∼6%로 줄어들자, 차입금에 대한 이자 지급을 위해 신규 대출이 필요했던 기업과 투자자들 가운데 일부는 돈을 마련할 길이 없게 됐다. 이들이 부동산을 매도하면서 거품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위치 76

현재 미국이 처해 있는 국제금융상의 위치는 1970년대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와 유사하다. 당시 이들 나라의 경상수지 적자는 지속 불가능할 정도였고, 해외 채권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이자를 다시 해외 채권자들에게 빌려서 갚았다. 이것이 함의하는 바는 미국의 국제수지상태가 이대로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은 금융의 역사에 대한 연구이지 경제 에측에 대한 것은 아니다. 투자자들은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얻어야 할 것을 배우지 않은 것 같다.

(나의 생각)
이 책의 저자가 일찌기 2005년에 지적한 내용이 2010년이 되어서야 진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



남해회사 거품에 대한 아담 스미스의 논평 81

남해회사 거품에 대한 아담 스미스의 논평을 고려해 보라; "그들은 엄청난 숫자의 투자자들에게서 얻은 막대한 금액의 자본금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 사업 전반에 걸쳐 어리석고 부실한 관리와 낭비가 만연할 가능성이 있다고 마땅히 짐작할 수 있었다. 회사 임직원들의 부주의와 낭비, 부정부패가 그렇듯이, 그들이 벌인 부정직하고 무절제한 주식매매도 충분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미쳤다면 83

군중심리나 히스테리는 종종 발생하는 합리적 행동으로부터의 일탈 현상으로서 엄연히 자리잡고 있다. 몇 가지 경제 모델은 스미스 집안 사람들이 존스 집안을 쫓아가려다가 소득수준 이상으로-적어도 당분간은-소비하는 현상을 초래하는 전시 효과(demonstration effect)를 부각시킨다. 또 다른 모델은 스미스 집안과 존스 집안 모두 소득이 늘 때 소비지출을 늘리지만, 소득이 줄 때는 소비지출의 축소를 기피한다는 듀젠베리 효과(Duesenberry effect)다. 정치 세계에는 유권자들이 가장 승산 있는 후보를 밀어 주는 '편승 효과(bandwagon effect)'가 있다; 다시 말해, 유권자들이 패자에게 등을 돌릴 때의 모습은 마치 "쥐들이 가라앉을 배를 버리고 탈출하는" 양상이다. 프랑스의 역사가 구스타브 르봉은 이 주제로 『군중The Crowd』을 썼다. 찰스 맥케이는 남해회사 거품을 거론하면서, 1720년 8월 남해회사의 제3차 주식 청약 당시 어느 은행가가 500파운드라는 거액의 주식을 매입하며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미쳤다면 어느 정도는 우리도 그들을 흉내내야 한다"고 말한 사례를 언급했다.


투기의 전개 단계 87


투기는 보통 두 단계로 전개된다. 들뜨지 않은 첫 번째 단계에서는 가계와 기업, 투자자들은 충격에 대해 절제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대응한다; 두 번째 단계로 접어들면, 자본이득에 대한 예상이 이들의 거래를 좌우하는 지배력이 갈수록 증폭된다. "처음의 입맛은 고금리지만 이 입맛은 조만간 부차적인 것으로 변하고, 매수한 투자 대상 자체를 매도해 챙길 수 있는 큰 이득에 대한 두 번째 욕구가 생겨난다."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지 않았다 88


본질적으로 목표와 과정이 뒤바뀌었고, 마침내는 목표는 사라지고 과정만 남았다. 대여자들은 이 과정에 너무 열광한 나머지, 게임의 끝내기 여건을 평가하지 못했다. 즉, 대여자들이 차입자들에게 신규 대출 형태의 현금 공급을 중단할 경우 차입자들이 이자 지급을 위한 현금을 어디서 마련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지 않았다. 정크본드 시장도 당초에는 합리적일 수 있었지만, 곧이어 정크본드의 공급 물량이 급증하고 차입자들의 신용도도 급격하게 떨어졌다.

(나의 생각)
현재 한국경제에서 커다란 골칫거리의 하나로 자리잡은 부실 부동산PF를 생각나게 한다.


또다른 판돈을 저축하기 위해 89

투기 세력으로서의 전문적 내부자들은 처음에 상승 파동과 하락 파동을 과다하게 증폭시킴으로써 균형점 이탈을 유발한다. 이 내부자들은 "추세는 내 친구"라는 마법의 주문을 따른다. 이런 투자자들은 예전에 테이프 워처(tape watcher)로 알려졌고, 보다 최근에는 '모멘텀 투자자'로 불렸다. 고점에서 매수해 저점에서 매도하는 비전문가인 외부자들은 뒤는게 그들을 끌어들이는 풍요감의 희생자들이다. 이들은 돈을 잃고 난 뒤 앞으로 5∼10년 후에 쓸 또 다른 판돈을 저축하기 위해 다시 일상의 직접으로 돌아간다.

(나의 생각)
한국 증시에도 유독 '모멘텀 투자자들이 너무 많이 득세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과거보다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어쨌든 시장의 단기변동성이 커지고 '투기적 매수세'를 유발하는 주범들은 늘 '모멘텀 투자자들'인 것 같다.



아이작 뉴턴의 이야기 91

균형점 이탈 유형의 교란적 투기에 가담해 고점에 사서 저점에서 팔았던 외부자 사례를 하나 더 찾는다면, 왕립조폐국 장관이자 위대한 과학자였던 이아작 뉴턴(Isaac Newton)의 이야기가 있다. 그는 1720년 봄 "나는 천체의 운동을 계산할 수는 있어도, 사람들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뉴턴은 그해 4월 20일 보유하고 있던 남해회사 주식을 매각해 수익률 100%에 달하는 7000파운드의 이익을 실현했다. 하지만 그 뒤 그해 봄과 여름에 세상을 휘몰아친 광기에 그도 같이 휩쓸려 더 많은 물량의 주식을 거의 최고점에서 매입해 2만 파운드의 손실을 입었다. 재정 파탄을 겪는 수많은 사람들의 비합리적 행태에 마음이 상한 그는 그렇게 말했고, 남은 생애 내내 남해(South Sea)라는 이름을 듣는 것조차 견디기 어려워 했다.


패닉에 대한 처방들 92


"악마는 맨 뒤에 처진 사람을 잡아먹는 법이다(Devil take the hindmost)", "재주껏 도망쳐라(Sauve qui peut)", "맨 뒷사람이 개에 물린다(Die Letzen die Runde)", 이런 말들이 채닉에 대한 처방들이다. 이와 비슷한 광경은 사람들이 들어찬 극장 안에서 불이 났다고 고함칠 때의 모습이다. 연쇄편지가 연출하는 과정도 이와 닮은꼴이다. 왜냐하면 그 연쇄고리가 무한정 확장되는 것은 불가능하고 오직 소수의 투자자들만 가격 하락이 시작되기 전에 팔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개인의 입장에서는 연쇄 과정의 초반에 참가하면서 다른 모든 사람들도 자신들이 합리적이라고 여길 것이라고 믿는 것은 합리적인 일이다.

(나의 생각)
Devil take the hindmost는
금융투기의 역사라는 책의 원제목이기도 하다.


유사한 대응이 발휘하는 힘을 인식하는 데 실패하는 사례 93


물리학자나 수학자 혹은 교사가 부족하다고 알려지면 많은 젊은이들이 이런 직업을 얻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지만, 그들이 학위를 마칠 때쯤이면 이 분야에 취업하기 위해 훈련 받은 개인들의 '과잉 공급'이 발생할 수 있다. 공급이 뒤늦게 급증함에 따라 취업 기회가 갑자기 귀해진다. 그러나 과잉 공급은 학교에서의 훈련 기간이 끝난 후에야 알려진다. 커피, 설탕, 면화, 또는 다른 상품의 부족에 대응하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과잉이 나타날 수 있다. 공급 부족 초기에는 수요의 급증으로 인해 가격이 급격히 상승하지만, 그 후 오랜 동안의 투자 기간이 지나고 신규 공급 물량이 들어올 때는 더욱 가파른 양상으로 가격이 떨어진다.

(나의 생각)
근래의 회계사, 변호사 혹은 한의사들의 형편과 너무나 닮았다.



1880년대 양조회사 주식 발행 붐 94

약간 지나치게 추론을 확장하자면, 포도나무뿌리진디(phylloxera)라는 해충이 프랑스에서 포도 농장을 망치고 포도주 생산에 피해를 입힌 사태가 1880년대 영국에서 양조회사 주식 발행의 붐으로 이어지는 파급 효과를 낳았다; 당시 영국에서는 주식공개 광기가 불어 사설 양조회사들이 줄지어 투자자들에게 주식을 팔았다. 이들 양조회사 가운데 아서 기네스 회사(Arthur Guineess and Co.)의 주식은 170만 파운드에 인수돼 320만 파운드에 팔렸다. "신규상장 주식의 성공은 쏜살같이 이루어졌고, 1890년 11월에는 다른 양조회사 86개사가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회사 주식을 공개했다."



이것저것 다 참을 수 있지만 96


노동의 공급 측면에서는, 실제 작업량은 임금이 높아진다고 해서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소하며, 작업량을 증대시키는 방법은 단위시간 당 임금을 낮추는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는 '후방굴절 공급곡선'으로 나타난다. 경제사를 다룬 책에서는 이 원리를 "존 불은 이것저것 다 참을 수 있지만 2%는 참지 못한다"는 말로 표현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비합리적 투기로 시작해 상업위기에 이르는 출렁거림은 여태까지 지켜본 바로는 자본이 성장하고 산업이 확장되면서 그 빈도가 줄어들거나 강도가 약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경쟁의 격화가 그 원인이라고 일컬어지고 있으나, 낮은 이익률과 이자율이 그 원인이라고 말하고 싶다. 즉, 이로 인해 자본가들이 안전한 상업 이익을 취하는 평범한 경로에 만족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1970년대 FRB가 보다 확장적인 정책을 채택함에 따라 미 달러화 표시 유가증권의 금리가 가파르게 하락하면서, 뒤따라 제3세계에 대한 은행의 신디케이트론이 불어났다. 당시 은행들은 유동성이 매우 풍부했으며 매력적인 차입자를 찾고 있던 차에, 대부분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제3세계 정부와 국유기업들을 그 상대로 삼았다. 1960년대는 미국 주력 은행들의 국제화가 가속화한 시기로 이들은 해외 지사망을 빠르게 확장했다. 1차 원자재 가격의 급등으로 인해 멕시코와 브라질을 비롯한 개발도상국의 명목 소득과 실질 소독은 감소했다. 1차 원자재 가격의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당연히 미국 은행들은 예견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나의 생각)
지금 현재 국제 원자재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데 머지 않아 가격의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예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호랑이 등에 올라탔거나 곰의 꼬리를 붙잡고 있는 동안은 97


1928년에 미국의 투자자들이 주식으로 선회하고 채권 매입을 중단하면서 독일에 대한 미국의 장기 대여가 중단되었을 때, 뉴욕의 은행과 투자회사들은 독일의 차입자들에게 단기 여신을 계속해주었다. 호랑이 등에 올라탔거나 곰의 꼬리를 붙잡고 있는 동안은-적어도 당분간은-그대로 가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눈먼 사람과 다를 바 없다 98


합리성의 경계선상에 걸쳐있는 세 번째 사례는 머리 속에는 합리적 모델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잘못된 모델을 가지고 있는 경우다. 다른 분야이기는 하지만, 이에 해당하는 가장 유명한 사례는-비합리적 기대라기보다는 느끼지 못하는 지체(undistributed lag)의 사례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프랑스인들이 가지고 있던 "마지노선(maginot Line)의 심리"다. 폰지는 "한 사람의 시야가 어느 하나의 사물에 고정돼 있을 때 그 역시 눈먼 사람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이와 유사한 지적으로 월터 배젓은 맬서스에 대해 이렇게 논평했다. "파격적이고 독창적인 생각을 만들어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 생각을 좀처럼 없애지 못한다."


"다우 36000" "다우 40000" "다우 100000" 109


1999년 한 해 동안 세 권의 서적이 거의 똑같은 제목으로 출판됐다. 이 책들의 주제는 거의 같았다: 금리가 낮은 수준에서 그대로 유지되고 기업 순이익이 계속 증가한다면, 다우존스 평균주가는 과거 최고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신고가에 도달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 논리는 충분히 큰 지렛대만 있다면 이 세계를 들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아르키메데스 원리를 어느 정도 연장한 물리학의 원리처럼 논박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장기적으로 주가의 수준은 세 가지 요인을 방영한다: GDP 성장률, GDP에서 차지하는 기업이익의 비중, 기업 순이익과 주가의 관계, 즉 주가수익비율(price-earnings ratio: PER)이다. 미국의 GDP에서 기업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장기적으로 8% 수준을 유지해왔고, 주가수익비율은 평균적으로 18을 이어왔다.


아폴론적 기질의 문화와 디오니소스적 기질의 문화 113


어느 나라의 투자자들이 다른 나라의 투자자들보다 투기 성향이 더 높다는 의견이 있다. 루스 베네틱트는 아폴론적(균형 잡힌) 기질의 문화와 디오니소스적(향략적) 기질의 문화를 구분하기는 했지만, 이 명제는 다소 미심쩍은 구석이 많다. 미심쩍은 구석에도 불구하고, 역사가들 사이에는 16세기 브라반트인은 강한 도박 기질을 가지고 있었으며, 1576년 11월의 안트워프 약탈과 1586년의 파괴적인 포위 후에 그들 가운데 유나이티드 프로빈스(지금의 네덜란드)로 이주한 수만 명이 그 기질도 함께 가져갔다는 생각이 일반적인 것으로 보인다. 네덜란드에서는 은행가, 투기자, 심지어 평범한 서민들도 도박 본능을 가지고 있으며, 캘빈교와 루터교의 근검절약과는 갈등 관계에 있다고 할 정도였다.


거래비용과 보유비용, 두 가지 모두를 줄이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것 121


신용의 팽창은 우연한 사건들의 연쇄작용이 아니라, 수백 년 동안 이어진 체계적인 발전 과정으로서 금융시장의 참여자들이 거래비용과 유동성 및 현금잔고의 보유비용, 두 가지 모두를 줄이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정적인 문제 126


결정적인 문제는 통화를 정의하기는 쉬워도, 유효 통화 공급량을 계측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월터 배젓은 이렇게 기술했다: "잉글랜드 사업가들은 ······ 통화 문제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화폐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정의하는 일을 난감해 한다: 그들은 '어떻게' 계산하는지는 알고 있지만, '무엇을' 계산해야 하는지는 모르고 있다."


어느 개인의 구매력 128


존 스튜어트 밀은 이 논쟁을 깔끔하게 요약했다.

우리가 화폐, 즉 돈을 귀금속으로 정의하든 아니면 은행권도 함께 포함시키든, 일정 시점에서 어느 개인의 구매력은 실제로 그의 지갑에 들어있는 돈으로 계측되는 것이 아니다. 그의 구매력을 구성하는 것은 첫째, 그가 소유하고 있는 돈이고, 둘째 그의 은행 예치금과 그가 요구하면 지급받을 수 있는 다른 곳에 빌려 준 모든 돈이다. 셋째는 그가 어떻게든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신용이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132


민스키는 신용 구조의 취약성을 측정하기 위한 채무의 '질'을 강조했다; '투기'와 '폰지'라는 용어가 이 취약성을 부각시켜 준다. '폰지금융'이라는 용어가 함축하는 내용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해당 기업이 약정 일정에 맞추어 채무 원리금 상환을 이행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험한 사업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에약된 채무라는 건축물은 그 자체로 불안정한 것이다.


환어음 135


환어음(bills of exchange)은 미래 지불을 위해 상품의 판매자가 만든 청구권으로, 당초 주화의 공급이 비탄력적이었기 때문에 개발됐다; 환어음은 판매자금융의 한 형태다. 상품 판매자는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구매자에게 신용을 제공했고, 구매자는 채무상환 의무를 90일이나 120일 이내에 이행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나의 생각)

증권사가 주식투자자에게 주식매입자금대출을 해주는 것도 환어음과 매우 닮았다.


대공황에 대한 통화주의적 시각 147


대공황에 대한 통화주의적 시각은 밀튼 프리드만과 안나 슈워츠의 기념비적인 저작에서 개진되었다; 그들은 1930년대 전반에 있었던 경제 활동의 급격한 위축은 FRB가 수행한 통화정책의 오류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주로 1929년 8월에서 1933년 3월 사이의 통화 공급량 감소에 주목했다.


대공황 초기 단계의 사태들을 설명해 주는 요인들 150


통화주의자들과 케인즈주의자들 간의 논쟁은 신용의 불안정성과 은행 시스템의 취약성, 또 다수의 상품가격과 제품가격의 하락에 따른 차입자들의 채무 불이행으로 인해 신용 시스템이 마비되었을 때 야기되는 생산과 물가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무시하고 있지만, 1929년 대공황 초기 단계의 사태들을 설명해 주는 것은 바로 이 요인들이다. 이 같은 시각은 하이먼 민스키와 헨리 시몬스-시몬스는 시카고 대학교의 경제학자로 기업 신뢰감의 위축이 불안정한 신용 시스템을 매개로 유동성 변화를 야기함에 따라 결과적으로 통화 공급량에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대공황이 초래되었다고 생각했다-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무시했다.

보다 기억할 만한 것은 쿤, 로브 회사(Kuhnm Loeb & Co.)의 공동 설립자이자 연방준비제도(FRS)의 설립자 가운데 한 명인 폴 워버그의 카산드라식 발언이었다: 그는 1929년 2월에 미국의 주가가 지나치게 올랐고, 1907년의 패닉을 연상케 하는 징후를 보이고 있다고 미국 대중에게 경고했다; 이어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유사한 성명을 발표했다. 투자자들은 잠시 멈칫했지만 곧이어 주가는 다시 상승했다. 미국의 주가 수준이 "비이성적으로 과열됐다"고지적한 1996년 12월의 그린스펀 FRB 의장의 언급 역시 효과가 없었다는 것은 앞에서 지적했다. 1999년 8월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인상한 뒤 그린스펀 의장은 앞으로 FRB가 금리를 결정할 때 주가 수준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주식시장은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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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사람의 묘비에 새겨진 글

역사의 기록들을 검토해 보고, 당신 자신이 경험한 범위 내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회상해 보고, 당신이 책에서 읽었거나 이야기를 들었거나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로서 자신의 개인생활에서건 사회생활에서건 극히 불행했던 모든 사람들의 행위가 어떠했었는지를 주의를 기울여 고찰해 보라. 그러면 당신은 그들 중 절대다수 사람들의 불행은 그들이 자신의 한창 좋은 때가 언제인지, 조용히 앉아서 만족하고 쉬어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것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즉, 만족하고 멈추어야 할 때를 몰랐던 데 있는 것이다). 온갖 약을 복용함으로써 건강한 자신의 신체를 더욱 건강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던 어느 한 사람의 묘비(墓碑)에는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다. "나의 몸은 건강했다. 나는 더욱 건강해지기를 원했다. 그리고 지금은 여기에 있다"라고. (277쪽∼278쪽)

 - 아담 스미스(Adam Smith),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中에서


 * * *


그들이 몰랐기 때문에......

역사의 기록을 점검하고, 또 당신 자신이 경험한 테두리 안에서 일어난 일들을 회상하면서 사적인 삶이나 공적인 경력에서 대단한 불행을 겪은 사람들 거의 모두-그들에 대해 당신이 읽었거나 전해들은 내용이 있을 수도 있고, 당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주의 깊게 생각해 보라; 그들 가운데 절대 다수가 겪은 불행은 형편이 좋았을 때, 다시 말해 가만히 앉아 자족했더라면 그저 좋았던 때를 그들이 몰랐기 때문에 생겨났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 아담 스미스(Adam Smith),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 中에서 

 - 찰스 P. 킨들버거,『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題詞 中에서



  * * *
 

과잉팽창


전쟁은 "과잉팽창", 즉 자신의 능력을 넘는 야심의 결과일 수 있다. 과잉팽창에 대해서도 애덤 스미스는 여러 격언들을 만들어냈다.

"역사기록을 살펴보라. 당신의 경험 속에서 일어난 일을 회상해 보라. 당신이 읽고 듣고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의 개인적이거나 공적인 생활에서 일어났던 큰 불행을 주의 깊게 생각해 보라. 그러면 대부분의 불행은 그들이 언제 행복한지, 언제 얌전하게 자리에 앉아서 만족하고 있어야 하는지 몰라서 일어났다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비참과 무질서를 초래하는 큰 원천은 부와 빈곤 사이의 차이를 너무 과도하게 평가하는 데에 있다. 또 공적인 지위와 사적인 지위 사이를 과도하게 평가하는 데에서 야심이 나오고, 무명과 유명 사이를 과도하게 평가하는 데에서 허욕이 나온다." (22쪽)

 - 찰스 P. 킨들버거, 『경제 강대국 흥망사 1500-1990』 中에서


 * * *


승리의 한계정점


승리의 한계정점은 적의 타도가 전쟁의 목표일 수 없는 모든 미래 전쟁에서 나타날 것이며 대부분의 전쟁에서 항상 그러할 것이다. 따라서 모든 전역계획의 본질적 목표는 공격이 방어로 전환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목표를 초과하는 것은 더 이상 성공할 수 없는 무익한 노력일 뿐만 아니라 적의 반격을 유발하는 유해한 노력이다. 극히 보편적인 경험에 의하면 이 반격은 항상 적대적 효과를 지닌다. 이 현상은 관련 원인에 대한 상세한 조사가 필요없을 정도로 보편적이고 자명하며 쉽게 이해될 수 있다. (357쪽)

이쯤에서 야전사령관이 결심 전에 유의해야 할 모든 요인들을 재음미해보면 야전사령관은 수많은 가능성, 즉 가깝거나 먼 가능성을 고려하는 가운데 가장 중요한 가능성의 방향과 가치를 평가하고 어느 정도까지 예측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① 야전사령관은 최초 타격이 오히려 적의 결의와 저항력을 단단하게 만들 것인지 아니면 적군이 볼로냐의 유리병처럼 표면이 긁히자마자 산산이 부서질 것인지 여부를 예측해야 한다.

② 야전사령관은 적국의 보급 원천의 고갈, 연락선의 차단 등이 유발한 적군의 약화와 마비의 정도를 예측해야 한다.

③ 야전사령관은 상처 입은 적이 타는 듯한 고통 때문에 혼절하여 주저앉을 것인지 상처입은 황소처럼 광분하게 될 것인지의 여부를 예측해야 한다.

④ 야전사령관은 다른 강국들이 공포에 떠는지 또는 분노하는지, 정치적 동맹관계가 해체될 것인지 또는 형성될 것인지의 여부를 예측해야 한다.

야전사령관은 이상의 모든 요인과 다른 요인들에 대해 사수가 표적에 명중시키듯이 신중한 판단력으로 적확하게 예측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인간 정신의 성취 능력이 결코 미미한 것이 아님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다방면의 수많은 질곡이 야전사령관의 판단력을 오도할 수 있다. 여러 요인들의 영향력, 혼돈, 복잡성 등이 야전사령관을 압도할 만큼 충분치 않다면 상황의 위험성과 야전사령관의 책임감은 수많은 질곡을 극복할 것이다.

이상의 내용이 대다수의 야전사령관이 목표에 너무 가까이 접근하기 보다는 훨씬 못 미치는 곳에 남아 있기를 좋아하고, 고도의 용기와 모험정신을 지닌 야전사령관도 때때로 목표를 초과하여 목적의 달성에 실패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오직 제한된 수단으로 큰 결과를 이룰 수 있는 자만이 전정으로 목적을 달성할 것이다. (360쪽)

 -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전쟁론』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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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2-28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제에 대하여, 언제 만족하고 멈추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판단하기가 쉽지 않은거 같아요. 안분지족安分知足 그렇게 살 수 있으면 제일 좋겠는데 말이죠,
그놈의 욕심이란게.. 아하하.

oren 2011-03-01 18:05   좋아요 0 | URL
절제의 미덕을 배우기 쉽지 않다는 게 늘 문제인 것 같아요.

"연습과 실천을 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것 없이는 어떠한 습관도 상당한 정도로 형성될 수 없다. 곤란, 위험, 상해, 불행 등은 우리가 그 밑에서 이러한 미덕의 실천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교사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아무도 스스로 그 아래 들어가서 배우고 싶어하지 않는 교사들인 것이다." - 애덤 스미스
 


















인간생활의 불행과 혼란의 최대 원천

인간생활의 불행과 혼란의 최대 원천은 하나의 영속적 상황과 다른 영속적 상황과의 차이를 과대평가하는 것으로부터 생기는 것으로 보인다. 탐욕(貪慾: avarice)은 가난과 부유함 사이의 차이를 과대평가하고, 야심(野心: ambition)은 개인적 지위와 공적 지위의 차이를 과대평가하고, 허영(虛榮: vain-glory)은 무명(無名)의 상태와 유명(有名)한 상태의 차이를 과대평가한다. 이러한 종류의 사치스런 격정의 영향하에 있는 사람은 그 자신이 처해 있는 실제 환경에서 불행하고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흔히 그가 어리석게도 감탄하는 처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사회적 안정을 교란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인생에 대해) 조금만 살펴보아도, 인간생활의 일상적인 모든 상황에서 교양 있는 사람은 마찬가지로 평온하고, 마찬가지로 기뻐하고, 마찬가지로 만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러한 통상의 여러 가지 상황들 중에서 어떤 상황은 다른 상황보다 더욱 바람직한 것임에 틀림없지만, 그러나 그것들 중 어떤 것도 신중(愼重: prudence) 또는 정의 (正義: justice)의 법칙들을 위반해 가면서까지 격정적인 열의를 가지고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며, 또는 후에 가서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을 회상할 때 느끼게 될 수치심과, 자신의 부정한 행위에 대한 두려움에서 오는 회한(悔恨)으로 마음의 장래의 평정까지 파괴해 가면서까지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신중(愼重)이 자신의 처지를 바꾸려는 시도를 지도(指導)하지 않고, 정의가 자신의 처지를 바꾸려는 시도를 허용하지 않는데도 그것을 바꾸려고 시도하는 사람은, 모든 위험한 게임들 가운데서 가장 불평등한 게임을 하는 것이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모든 것을 거는 사람으로서, 그가 장차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에피루스(Epirus) 국왕의 총애하는 신하가 국왕에게 말한 것은 인생의 일상의 모든 경우에 있어서 모든 사람들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국왕은 그 신하에게 자신이 예정하고 있는 모든 정복 계획들을 차례대로 설명해 주었는데 그 최후의 정복계획에 이르렀을 때 그 신하가 말했다. "그런 다음에 폐하께서는 무엇을 하실 작정이십니까?" 그러자 국왕이 대답했다. "그런 다음 나는 나의 친구들과 더불어 즐겁게 지낼 거야. 술을 마시면서 친구들과 사귀도록 노력할 거야 ······ ." 그 신하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무엇이 폐하께서 지금 그렇게 하시는 것을 방해하고 있습니까?" (275쪽∼276쪽)


 - 아담 스미스(Adam Smith),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 中에서


 * * *


여행 의욕

물론 오래오래 살아서 차비라도 벌어놓은 사람은 언젠가는 기차를 타게 되겠지만 그때는 활동력과 여행 의욕을 잃고 난 다음일 것이다. 이처럼 쓸모없는 노년기에 미심쩍은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인생의 황금 시절을 돈 버는 일로 보내는 사람들을 보면, 고국에 돌아와 시인 생활을 하기 위하여 먼저 인도로 건너가서 돈을 벌려고 했던 어떤 영국 사람이 생각난다. 그는 당장 다락방에 올라가 시를 쓰기 시작했어야 했다. (78쪽)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월든』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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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장 심각하고 흔히 저지르는 어리석음`에 대하여......
    from Value Investing 2011-12-19 16:07 
    가장 심각하고 흔히 저지르는 어리석음은 '삶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하는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준비하든 마찬가지다. 이런 준비를 시작하며 사람들은 완벽한 삶이 가능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완벽한 삶에 이르는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사람이 아무리 오래 산다 해도 그 계획에 비하면 삶은 너무나 짧다. 그런 계획을 실행하는 데는 짐작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또 그런 계획은 모든 인간사가 그렇듯 자주 좌절을 겪고 장벽에 부딪혀 목표한 대로
 
 
마녀고양이 2011-02-28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탐욕(貪慾: avarice)은 가난과 부유함 사이의 차이를 과대평가하고, 야심(野心: ambition)은 개인적 지위와 공적 지위의 차이를 과대평가하고, 허영(虛榮: vain-glory)은 무명(無名)의 상태와 유명(有名)한 상태의 차이를 과대평가한다" 를 옮겨놓고 다시 보는 중입니다. 그리고 저를 방해하는 것은 어떤 녀석일까 생각합니다.

오렌님, 오랜만이셔요.... 늦었지만 새해 즐거운 일 가득하셔요.

oren 2011-03-01 17:33   좋아요 0 | URL
마고님의 댓글 보면서 또다시 읽어봐도 애덤 스미스의 말은 '명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많음(혹은 높음)과 적음(혹은 낮음)의 차이에 대해 사람들이 느끼는 감각은 나이를 먹는 데 따라 점진적으로 줄어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을 조금만 회상해 보더라도, 내 옆 짝궁이 가졌던 조금 더 멋진 많은 것들(옷,가방,신발,장난감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연필과 지우개, 딱지와 구슬까지도)에 대해 얼마나 부러워했는지에 대한 기억이 생생할 정도니까요.

나이가 들수록 주위를 살펴보면 '돈이 많거나 적거나' 혹은 '지위가 높거나 낮거나' 하는 문제에 대해 갈수록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는 걸 훨씬 더 자주 보게 됩니다. 살면서 나이를 먹다보니, 수백억 혹은 수천억이나 수조원의 재산을 가진 사람들과도 가끔씩(혹은 자주) 만나서 어울릴 기회가 있는데, 그 사람들도 나이가 들수록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오히려 각자의 건강에 대한 차이가 훨씬 더 중요하고, 각자의 자식에 대한 문제가 훨씬 더 크게 다가오고, 점점 더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누구나 완전히 똑같게 된다는 사실 등)을 점점 더 깊이 인식하는 것 같아요.

역설이긴 하겠지만, 그런 차이를 '과대평가'하는 사람일수록 그 자신이 그만큼 젊다는 반증일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도 듭니다.
 
















되돌아올 수 있었던 사람이 거의 없는 그곳

 

"사랑에는 보통 야심이 뒤따르지만, 그러나 야심에 사랑이 뒤따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라고 나의 로슈포코 경(Lord Rochfaucault)은 말했다. 야심과 같은 격정에 일단 마음이 완전히 사로잡혀 버리면 경쟁자도 후계자도 용납을 하지 않는다. 대중의 감탄을 한 몸에 받는 데 익숙해 있거나 혹은 그런 희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다른 모든 쾌락은 혐오스럽거나 시들해진다. 실각한 모든 정치가들이 스스로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야심을 극복하고, 이제는 더 이상 가질 수 없는 명예심을 멸시할 것을 배우지만, 그러나 실제로 이에 성공한 사람은 얼마나 극소수에 불과하였던가? 그들 대부분은 맥 빠비고, 무미건조한, 나태한 상태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들의 존재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런 처지에 놓여 있음을 생각하고 분노하고, 개인적인 생활의 거의 모든 것에 흥미를 가질 수도 없고, 자신들의 과거의 좋았던 시절을 이야기할 때 외에는 어떤 즐거움도 느끼지 못하고,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어떤 허망한 계획을 꾸미고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어떤 만족감도 느끼지 못한다.
 
당신은 당신의 자유를 궁정의 화려한 노예생활과 바꾸지 않고 오로지 자유롭게, 두려움 없이, 독립적으로 살아가려는 진지한 결의에 차 있는가? 이 유덕(有德)한 결의를 견지해 나갈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있는 것 같다. 아니, 오로지 이 방법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곧 되돌아올 수 있었던 사람이 거의 없는 그곳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야심의 영역 속에는 절대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미 당신보다 앞서 전 인류의 반의 관심을 차지해 버린 이 세상의 지배자들과 자신을 비교해서도 절대 안 된다.


애덤 스미스, 『도덕감정론』 中에서(104쪽∼105쪽)

 * * * * *

인간생활의 노동의 반이 추구하는 목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보편적인 동감과 주목을 가장 잘 맡을 수 있는 지위에 있는 것이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라고 상상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자리 또는 지위는, 고관 부인들의 사이를 갈라놓는 위대한 목표로서, 인간생활의 노동의 반은 이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서이며, 그리고 이것은 탐욕과 야심이 이 세상에 끌어들인 모든 소란과 소동, 모든 강탈과 부정의 원인이 되고 있다.

애덤 스미스, 『도덕감정론』 中에서(1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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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에 대한 끝없는 열망과 필연적으로 남겨진 믿기 힘든 결과물들 ①
불멸에 대한 끝없는 열망과 필연적으로 남겨진 믿기 힘든 결과물들 ②
불멸에 대한 끝없는 열망과 필연적으로 남겨진 믿기 힘든 결과물들 ③
불멸에 대한 끝없는 열망과 필연적으로 남겨진 믿기 힘든 결과물들 ④
백두산에 한 번 올라가 보세요~


DSLR에 처음 입문하면서 만났던 서른디(Canon EOS 30D)와는 이제 오늘밤이 마지막이다. 얼마 전에 갑자기 오두막(Canon 5D Mark II)으로 용감하게(?) 갈아타기로 작정하면서 30D는 처분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서른디는 2007년 7월에 구입했는데, 최근 몇 년간 가까이 지내왔던 지인분께 그 당시 구입원가의 약 1/3 가격에 뚝~~ 잘라서 팔게 되었다. 30D와는 그동안 얼마만큼 정도 들었고, 웬만하면 'two body'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오두막과 함께 하고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팔기로 한 지인분께 넘겨줄 수밖에 없었던 나름의 이유도 있었던 것 같다.

그 분은 오래 전에 필카를 제법 오랫동안 다뤘던 경험이 있으신 분인데, 나이를 들면서 카메라가 DSLR 중심으로 변하는 바람에 이 쪽으로는 전혀 관심을 끊고 지내 오다가, 내가 이번에 오두막으로 갈아탄다는 얘기를 듣고선 선뜻 '나한테 팔라'고 말씀하시길래 서로 주저없이 단돈 ***만원에 물건을 매매하기로 의견일치를 봤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최근 몇 년 동안 그분과 함께 국내의 여러 곳을 놀러 다니면서 '서른디'와 제법 함께 했던 인연이 있었던 것이다. 참 잘된 일이다 싶다.

2007년 여름에 당시 중학교 1학년이던 아들 녀석과 함께 백두산 종주 산행을 갔다온 적이 있는데,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에 급작스럽게 '카메라를 아주 잘 다루는 고교 동창생'의 권유로 이 녀석을 만나게 되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친구 덕분에 DSLR이 뭔지도 알게 되었고, 그 친구와 함께 '모델 출사'에도 참석해 보고, 또 무엇보다도 여행을 다닐 때마다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 덕분에 나의 삶이 옛날보다 조금이나마 더 풍성해졌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싶다. 


* 이미지 위에 '마우스클릭'하면 더 큰 이지미를 볼 수 있습니다


(손때가 묻은 Canon EOS 30D의 모습)



카메라와 관련해서 내가 늘 안타깝게 느끼는 점 한 가지부터 미리 얘기해야 겠다.

DSLR에 입문한지 어언 4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여전히 '적정 노출'과 '화이트 밸런스'조차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스트로보는 갖췄어도 선막동조와 후막동조를 구분해서 사용할 줄도 모른다.

더욱 한심스러운 일은 귀찮고 무겁다는 핑계 등으로 '삼각대'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고, 똑딱이 수준의 막샷을 남발한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어디든 길을 나설때면 용감무쌍하게도 무거운 카메라 가방은 꼬박 꼬박 챙겨서 집을 나선다는 점일 것이다. 어쨌든 사진을 조금이라도 더 찍어보고 배워볼려는 의지는 충만한데, 도대체 실력이 늘지 않는 게 언제나 문제이다.


(기본인 50mm 단렌즈조차 생략한 채 거의 언제나 표준줌렌즈를 장착한 Canon EOS 30D)



(그동안 열심히 메고 다닌 덕분에 스트랩이 제법 낡았다)



(2009년 봄에 미국과 캐나다를 여행하기에 앞서 용감하게도 '아빠백통'까지 마련했다.)



(부드러운 융으로 닦아놓고 봤더니 아직까지도 새 물건 같다)



(렌즈를 제거하고 바디캡을 닫은 모습)



(2.5" LCD 창을 가진 후면부)



어쨌든 30D와 함께 한 약 4년 동안 어설픈 솜씨로 사진을 열심히 찍긴 했는데, 여태껏 제대로 찍은 '사진다운 사진' 한 장 없어서 그 흔한 디카사진 인쇄조차 맡겨본 기억이 없는 점은 무척 아쉽다.

30D를 들고서 여기 저기 무척이나 열심히 쏘다녔던 것 같은데, 결과물은 거의 언제나 다음 카페나 네이버 카페에 올리는 게 전부였던 것 같다. 그래도 '어설픈 사진'에 대해서도 후하게 봐주는 친구들 덕분에 각종 동문회, 동문 체육대회, 사은회, 추억의 수학여행, 철마다 다녔던 산행(북한산, 설악산, 오대산, 두타산, 청옥산, 덕유산 등등), 각종 축제와 행사 등등에 카메라를 지참하고 별다른 부담감없이 '스냅사진들'을 중심으로 열심히 막샷을 찍어온 것 같다.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해외출장'도 심심찮게 다녀온 것 같은데, 대충 꼽아보면, 백두산(2007년 8월), 이집트(2008년 2월), 필리핀(2007년 11월, 2008년 5월, 2010년 1월), 중국, 미국·캐나다(2009년 5월) 등지를 이 녀석과 함께 다녀온 것 같다.

얼마 전에 급작스럽게 오두막(Canon 5D Mark II)으로 바꾼 건 '고교동창들과의 해외전지훈련'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지만, 언젠가는 오두막으로 갈아탈 작정을 내심 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르면 올해나 내년쯤에 '중남미 여행'을 꼭 가볼 예정인데, 그 여행길에 실제 오르게 되면 틀림없이 오두막으로 바꾸기로 미리부터 내심 단단히 작정을 하고 있던 터였는데, 이번에 '고교동창들과의 짧은 해외전지훈련'에 함께 가기로 한 동창생 녀석의 은근한 꼬드김에 넘어가는 바람에 예상보다 너무 성급하게 결국 오두막으로 갈아타고 말았다.

2007년 여름에 나에게 DSLR로 입문하게 해준 그 동창생 녀석은 카메라 경력만 20년이 넘는 데다가, 몇 년 전에 있었던 'Canon 캄차카 출사대'에도 당당히 차출될 만큼 검증된 실력을 갖추고 있는데, 이 친구가 이번 '전지훈련'에 함께 가기로 하면서 나보고 '한 수 가르쳐 줄테니 카메라 장비를 오두막으로 업그레이드'해 오라는 권유 때문에 결국 기기 변경을 앞당기게 되었다.


(Canon 5D Mark II에 망원줌렌즈인 아빠백통을 장착한 모습)



(바디네임인 EOS 5D Mark II가 새겨진 스트랩)



(PC 모니터 앞에 놓인 오두막)



(풀프레임 바디에 어울리는 24-70mm f/2.8 L 렌즈를 장착한 오두막)



(3" LCD 모니터를 갖춘 후면부)



(표준줌렌즈인 24-70mm f/2.8 L 렌즈를 장착한 모습)



(아빠백통으로 불리느 망원줌 70-200mm f/2.8 L IS USM 렌즈)



(바디캡을 닫은 오두막의 전면부)



(표준줌렌즈 : 풀프레임 바디용 24-70mm 렌즈 vs 크롭바디용 EFS 17-55mm 렌즈)



(후드를 장착한 아빠백통)



(후드를 장착한 24-70mm f/2.8 L 렌즈)



(후드를 뺀 24-70mm f/2.8 L 렌즈)



(중고거래가 활발한 카메라의 특성상 훗날을 위해 보관중인 '박스')


지난주 목요일(2/10)은 전국적으로 졸업식이 열린 날이었던 모양이다. 오두막으로 업그레이드하고 나서 처음으로 딸아이의 졸업식에 갔으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저렇게 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빼곡히 들어차 앉은 졸업식장에서 딸을 찾아냈지만 후래쉬를 터트리며 사진을 찍는다고 딸아이의 '핸드폰 문자'를 통해 '구박'만 실컷 듣고 왔다.

(모처럼 화기애애하게 동생의 졸업앨범을 함께 살펴보는 남매, Shooting Date/Time 2011-02-08 오후 9:15:26)



(2/10, 목요일 오후 2시에 있었던 딸아이의 졸업식 모습)



(딸아이의 졸업식이 있던 날 저녁 비행기로 간신히 합류한 태국 전지훈련코스, SIR JAMES COUNTRY CLUB)



(귀국길에 찍은 방콕 수바르나부미 국제공항)



(방콕 수바르나부미 국제공항, Shooting Date/Time 2011-02-14 오전 1:42:56)



(인천국제공항 도착을 앞두고 떠오르는 태양, Shooting Date/Time 2011-02-14 오전 7:09:57)


(상공을 가득 메운 구름바다, Shooting Date/Time 2011-02-14 오전 7:24:26)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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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2-16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십니다.
근데 오렌님 학부모셨군요.
저렇게 큰 자제분이 계시다니...!
카메라 멋집니다.^^

oren 2011-02-16 22:42   좋아요 0 | URL
네.. 정말 오랜만입니다.
새해 들어선 알라딘에 거의 들어오지 않았더니, 댓글 달기도 어색할 지경이네요. ㅎㅎ
stella09님께서도 그동안 잘 지내셨겠지요?
울 아들은 덩치만 컸지(금년 3월에 고2 올라가는데 키가 180cm 쯤...),
생각하는 거나 말하는 거나 아직까지도 여러모로 '애'랍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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