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대화들을 교리의 일관된 시스템으로 읽지 말고, 유머, 재치, 정신작용, 신화라는 멋진 비유들로 가득한 지적 드라마로 읽으면 좋다. 대화들은,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인물 중 하나인, 못 생겼지만 매력적이고 짐짓 겸손한 척하는 소크라테스를 지적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 클리프턴 패디먼

 

 * * *

 

고전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책 속에 담긴 내용을 '눈 앞에서 벌어지는 현실'에 직접 비춰보면서 읽는 것이다. 고전이 현실과 아예 동떨어져 있다면 도대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그런 면에서 보자면 때때로 고전을 읽는 '타이밍'을 잘 맞출 필요도 있을 듯하다. 그걸 일부러 겨냥하기가 무척 힘든 줄은 알지만 말이다.

 

까마득한 옛날에 쓰인 고전 속에 담긴 문장들이 내게 가장 재미있게 읽힐 때는 바로 다음과 같은 느낌이 찾아들 때다.

 

어?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내 눈앞에서 벌어진 일들'을 어쩌면 이토록 자세히도 알고 있지?

 

이런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 그 고전을 갑자기 놀라운 흡인력을 발휘한다. 고전 속에서 대화를 나누는 인물들이 갑자기 현실 속의 인물들과 급속히 가까워지거나 혹은 대체된다. 플라톤의 <대화편>이라고 예외일까? 아니다. 대학에 다닐 때 뭣도 모르고『국가』를 처음 읽었을 때는 이런 경험을 전혀 하지 못했던 듯하다. 책을 읽는 사람도 바뀌고 세월도 많이 흐르다 보니 플라톤의『국가』도 아주 흥미로운 책으로 돌변한 듯하다.

 

 

 * * *


 

"갈라져서 여러 개로 분열되는 것보다 국가에 더 큰 악이 있을까? 또는 결속과 통일보다 국가에 더 큰 선이 있을까?"

 

"없어요."

 

"그런데 국가를 결속시켜주는 것은, 가능한 한 모든 시민이 같은 성공과 실패를 기뻐하고 괴로워할 때의 그 기쁨과 고통의 공유겠지?"

 

"물론이지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러나 국가와 그 주민들에게 똑같은 일이 일어났는데 어떤 사람들은 크게 괴로워하고 어떤 사람들은 크게 기뻐한다면, 개인 간의 이러한 감정 차이는 결속을 저해하겠지?"

 

"당연한 일이지요."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공동체 구성원들이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 또는 '남의 것'과 '남의 것이 아닌 것' 같은 표현을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할 때겠지?"

 

"물론이지요."

 

"그렇다면 가장 훌륭하게 경영되는 국가는 최대 다수가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표현을 같은 사물들에 대해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국가이겠지?"

 

"물론이지요."

 

"또한 가장 개인을 닮은 국가이겠지? 예컨대 우리 가운데 누가 손가락을 다치면, 지배적인 부분의 휘하에서 몸과 혼을 하나의 체계로 결합시키는 유기체 전체가 그것을 감지하고는 몸의 한 부분이 당하는 고통을 전체로서 함께 느낀다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은 손가락이 아프다고 말하는 것이라네. 또한 고통을 느끼든 안도의 쾌감을 느끼든 인간의 다른 부분에도 같은 원칙이 적용되겠지?"

 

"네, 같은 원칙이 적용돼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리고 선생님의 질문에 답변하자면, 가장 잘 다스려지는 국가가 그런 상태를 가장 닮았어요."

 

"그러니 개별 시민에게 좋은 일이나 궂은 일이 일어나면, 그런 국가는 그 개별 시민이 자신의 일부라고 강조하며 전체로서 함께 기뻐하거나 함께 슬퍼할 것이네."

 

"훌륭한 법을 갖춘 국가라면 당연히 그렇게 하겠지요" 하고 그가 말했네.(288∼289쪽)

 

 - 플라톤, 『국가』, <제5권>

 

 * * *

 

"어떤가?" 하고 내가 말했네. "전투에서 이겼을 때 전사자들에게서 무구(武具) 외에 다른 것을 벗겨가는 것은 좋은 관행일까? 아니면 그런 관행은 겁쟁이들에게 적군과 맞서지 않을 핑계만 대주는 것이 아닐까? 그들이 시신 주위로 어슬렁거리는 것이 아주 중대한 일인 것처럼 말일세. 아닌 게 아니라 이런 약탈 관행 때문에 이미 많은 군대가 파멸을 맞았다네."

 

"물론이지요."

 

"시신을 벗기는 것은 돈을 밝히는 노예다운 짓이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적군은 갖고 싸우던 무구들만 남겨두고 생명은 이미 날아가버렸는데 죽은 시신을 적군 취급한다는 것은 여자답고 속 좁은 짓이 아닌가? 자네는 그것이 던져진 돌멩이들에는 화를 내면서도 돌멩이들을 던져대는 사람은 내버려두는 암캐들의 태도와 뭐가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전혀 다르지 않아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전사들이 시신을 벗기는 것을 허용해서도 안 되고, 적군이 장례를 위해 자기편 전사자를 들고 가는 것을 방해해서도 안 될 것이네."

 

"제우스에 맹세코, 절대 그래서는 안 돼요."

 

"또한 우리는 적군의 무구, 특히 헬라스인들의 무구를 신전에 봉헌하는 일이 없을 것이네. 만약 우리가 다른 헬라스인들과의 선린관계에 관심이 있다면 말일세. 오히려 우리는 동족의 무구를 봉헌함으로써 신전들을 더럽힐까 봐 두려워할 것이네. 아폴론 신께서 다른 말씀을 하시지 않는 한 말일세."

 

"지당하신 말씀이에요" 하고 그가 말했네.

 

"헬라스 땅을 황폐화하고 집들을 불사르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자네의 전사들은 적군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어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래서 내가 말했네. "내 생각에, 그들은 그중 어떤 짓도 해서는 안 되고 그해 농작물만 실어가야 하네. 내가 자네에게 그 이유를 설명해주기를 바라는가?"

 

"물론이지요."

 

"내가 보기에, '전쟁'과 '내분'은 이름도 서로 다르지만 서로 다른 두 가지 분쟁에 관련됨으로써 실제로도 서로 다른 것을 뜻하는 것 같네. 내가 말하는 서로 다른 두 가지 분쟁 가운데 하나는 동족 또는 친족끼리의 분쟁이고, 다른 하나는 외국과의 또는 남남끼리의 분쟁일세. 우리는 그중 동족끼리의 분쟁은 '내분'이라 부르고, 외국과의 분쟁은 '전쟁'이라고 부르네."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은 전혀 사리에 어긋나지 않아요" 하고 그가 말했네.

 

"다음의 내 주장도 사리에 어긋나지 않는지 살펴봐주게나. 내 주장인즉, 헬라스인들은 저들끼리는 동족이고 친족이지만 비헬라스인들에게는 남남이고 외국인들일세."

 

"네, 맞아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렇다면 헬라스인들이 비헬라스인들과 싸우거나 비헬라스인들이 헬라스인들과 싸운다면, 우리는 그들이 전쟁을 하고 있다고, 그들은 타고난 적이라고, 그래서 그러한 적대행위는 '전쟁'이라 불리어 마땅하다고 말할 것이네. 그러나 헬라스인들이 헬라스인들과 싸운다면, 우리는 그들이 타고난 친구들이지만, 그런 경우에는 헬라스가 병들어 분쟁에 휘말려 있다고, 그래서 그런 적대행위는 '내분'이라 불리어 마땅하다고 말할 것이네."

 

"나도 선생님의 견해에 동의해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래서 내가 말했네. "방금 우리가 내분이라고 부르기로 합의한 사태가 어디에선가 발생해 나라가 내분에 휘말렸다고 가정해보게. 만약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의 농토를 황폐화하고 집들을 불사른다면 내분은 가증스러운 것으로 간주될 것이며, 양쪽 모두 애국심이 없는 것으로 여겨질 것이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유모와 어머니를 황폐화하지 않을 테니 말일세. 그러나 이긴 쪽이 진 쪽의 농작물만 약탈해가고 진 쪽을 언제까지나 전쟁을 할 상대가 아니라 언젠가는 화해하게 될 상대로 대한다면, 절제 있는 태도로 간주될 것이네."

 

"그래요. 후자의 태도가 훨씬 인간적이니까요" 하고 그가 말했네.

 

"어떤가?" 하고 내가 물었네. "자네가 세우고 있는 나라는 헬라스 국가가 될 것 아닌가?"

 

"그야 당연하지요" 하고 그가 대답했네.

 

"그렇다면 그 나라의 시민들은 훌륭하고 인간적인 사람들이 되겠지?"

 

"물론이지요."

 

"그들은 헬라스인들을 사랑하고, 헬라스를 조국으로 여기고, 다른 헬라스인들과 같은 종교 축제에 참가하게 되지 않을까?"

 

"물론이지요."

 

"그렇다면 그들은 동족인 헬라스인들과의 분쟁을 '내분'이라 여기고 '전쟁'이라고 부르지는 않겠지?"

 

"전쟁이라고 부르지 않겠지요."

 

"그들은 언젠가는 화해하게 될 사람들처럼 싸우게 되겠지?"

 

"물론이지요."

 

"그들은 선의에서 상대방이 절제를 지키게 해주려는 것이지, 상대방을 처벌하려고 예속시키거나 파괴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네. 그들은 정신 차리게 해주려는 것이지, 적군은 아니니까 말일세."

 

"그렇겠지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들은 헬라스인들이기에 헬라스 땅을 황폐화하지도 않고 집들을 불사르지도 않을 것이네. 그들은 또한 남자건 여자건 아이들이건 한 나라의 주민 전체가 자신들의 적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분쟁에 책임이 있는 적대적인 소수만을 자신들의 적으로 간주할 것이네. 따라서 그들은 우호적인 다수의 농토를 황폐화하거나 집을 파괴하지 않을 것이며, 이들 분쟁에 책임이 있는 자들이 죄 없이 고통받는 사람들에 의해 죗값을 치르도록 강요받을 때까지만 적대행위를 계속할 것이네."(304∼307쪽)

 

 - 플라톤, 『국가』, <제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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