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구소련 연방의 핵심 국가였던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뜬금없는 대규모 무력 침공 때문에 하루 아침에 참혹한 전쟁터로 돌변했습니다. 구소련 연방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경제 부흥 등을 위해 NATO 가입을 추진하는 등 친서방 행보를 보이자 소비에트 연방 대제국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 '현대판 차르' 푸틴 대통령이 외교적 해법조차 무시한 채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워 무참하게 대규모 침략 전쟁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유럽대륙에서 이토록 대규모의 전쟁이 발발한 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무려 80여년 만에 처음 보는 광경입니다. 이처럼 세계의 곳곳에서는 독재자의 영토확장 야욕에 의해서든 자유에 대한 염원 때문이든 끊임없는 갈등과 분쟁이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구소련 연방이 해체된 이후 극단적인 냉전체제를 벗어나 마침내 평화로운 시대가 도래하는 듯했지만, 소비에트 연방을 대신해 절대 양강 체제를 구축한 미국과 중국은 어느새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며 서로 으르렁대고 있습니다. 1979년 국교 수교 이래 처음으로 '강 대 강'으로 맞붙어 첨예한 무역 전쟁을 벌였으며, 앞으로도 치열한 헤게모니 쟁탈전을 벌일 것이라고 누구든 쉽게 예상하고 있습니다. 최근 홍콩에서 느닷없이 불거졌던 격렬한 반중 시위는 중국과 서방세계 사이에 전에 없던 극도의 긴장을 불러왔으며, 대만과 중국 사이의 해묵은 갈등 또한 언제든 큰 싸움으로 비화될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시야를 조금 더 남쪽으로 옮기면, 거기엔 남중국해 영유권을 둘러싼 중국과 여타 이해 당사국 간의 갈등이 언제 무력충돌로 비화될지 모르는 긴장감이 느껴집니다.


(홍콩 반중 시위)

 

시야를 더욱더 넓혀 전지구적으로 돌리면 어떤가요? 2011년에 시작된 시리아 내전은 언제 마무리 될 지 기약조차 없으며, 남수단 내전은 국제 사회(미국, 중국, 아프리카 연합)의 중재로 휴전협정을 체결했음에도 여전히 유엔평화유지군이 주둔 중이며 한빛부대는 아직도 그곳에 머물고 있습니다. 여기서 시간을 좀 더 거꾸로 돌려 구소련 연방이 해체될 무렵인 1989년까지로 돌려 보면 어떨까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로 그토록 강고하게 유지된 냉전 체제가 급작스럽게 붕괴되고,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말』이라는 거창한 표현까지 내세우며 서구식 자본주의에 바탕을 둔 자유민주체제의 완전한 승리를 선언했음에도, 국가적, 종교적, 인종적 분쟁과 갈등은 끊임없이 발발하고 있습니다.

 

1991년에는 역사상 최초로 미국 중심의 다국적 연합군이 이슬람 국가인 이라크를 상대로 대규모 지상전을 벌였고, 아프가니스탄 분쟁은 미군이 완전히 철수할 때까지 끊임없는 내전을 벌였습니다. 미국과 이슬람 사이의 끊임없는 갈등은 빈 라덴이 서방세계의 심장부 건물인 세계무역센터를 '영화의 한 장면처럼' 드라마틱하게 침공함으로써 하이라이트를 장식했으며, 전세계 유일 강국인 미국 사람들을 거대한 충격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중동의 화약고인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네 차례의 중동 전쟁 이후로도 끊임없는 분쟁이 계속 발생하고 있으며, 대규모 인종 청소를 낳았던 발칸 반도의 보스니아 내전과 코소보 사태도 오랜 기간 동안 국제 뉴스를 장식하였습니다. 이밖에도 체첸 분쟁,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 등이 잊을 만하면 또다시 분쟁으로 얼룩졌습니다.


(걸프 전쟁)


도대체 이토록 빈번한 지역간 분쟁과 갈등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계속 발생하는 걸까요. 이런 질문에 대한 새로운 시각틀을 제공하려는 목적으로 쓰여진 게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었습니다. 이 유명한 책은 1996년에 출간되자 말자 전세계적으로 뜨거운 반응과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책에서 주장하는 요지는 이렇습니다. 탈냉전 이후로 발생하는 전세계적인 분쟁과 갈등은 '문명 사이의 충돌'로 바라볼 때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으며, 분쟁의 해결책 또한 그러한 시각틀로 바라볼 때 올바르게 도출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는 실로 방대한 시공간적 범위에 걸쳐 '문명의 본질'을 탐구하고, 전세계 여러 문명들의 부침들을 살핍니다.


(새뮤얼 헌팅턴)

 

그가 분류하는 문명의 구분은 종교가 핵심적인 바탕을 이룹니다. 종교 말고도 문명을 구분짓는 요소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마을, 지역, 전통, 인종, 언어, 문화 등등이 문명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들입니다. 문명은 뚜렷한 경계선이 없으며 딱 부러지게 시발점과 종착점을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문명은 진화하고 적응하며, 인간들의 결속체 중에서도 유독 질긴 생명력을 갖습니다. 새뮤얼 헌팅턴의 말대로 그것은 극단적인 '장기 지속'의 양상을 지닙니다.  

 

문명의 독특하고 특별한 본질은 바로 그 장구한 역사적 지속성이며 사실상 가장 오래 된 이야기는 문명이다. 제국은 일어섰다 무너지고 정권도 왔다가 사라지지만 문명은 유지되며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이념적 격변의 와중에서도 살아남는다.(50쪽)

 

과거의 주요 문명과 현재의 주요 문명에 대해 학자들의 견해는 대체로 일치되고 있습니다. 다만 역사적으로 존재한 바 있는 문명의 총수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이견이 분분합니다. 역사상 뚜렷한 흔적을 남겼으나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문명은 대략 일곱 개로 요약할 수 있으며,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크레타, 그리스-로마, 비잔틴, 중미, 안데스 문명이 그것입니다. 지금까지 가장 뚜렷하게 현존하는 주요 문명은 다섯 개를 꼽을 수 있는데, 중국, 일본, 인도, 이슬람, 서구 문명이 그것입니다. 여기에 새뮤얼 헌팅턴은 세 개의 문명을 추가해서 자신의 분석틀로 삼고 있습니다. 비잔틴 문명이나 서구 크리스트교 문명과는 별개로 진화한 러시아 정교 문명, 라틴 아메리카 문명, 아프리카 문명이 그것입니다.


이들 문명들은 실로 오랜 시간 동안에 걸쳐 서로 조우하고, 접촉하고, 정복하고, 복속시키고, 사상과 기술을 전파하고, 교역하였습니다. 유럽의 크리스트교권은 서로마 제국이 멸망(476년)한 이후인 8세기와 9세기 무렵에 독자적 문명으로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은 당 · 송 · 명 시대에, 이슬람은 8세기에서 12세기까지, 비잔틴은 8세기에서 11세기까지 유럽을 훨씬 능가하는 경제력, 영토,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예술적, 학술적, 과학적 성취도 면에서도 유럽을 훨씬 앞서 있었습니다. 다른 문명에 비해 뒤쳐져 있던 서유럽 문명이 부상한 때는 15세기부터였습니다.


(정화함대)

 

문명과 문명 사이의 제한적, 간헐적 접촉은 다른 모든 문명들에 대한 서구의 지속적, 일방적, 압도적 영향력 행사로 성격이 바뀌었다. 15세기 말이 되자 무어인들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마침내 축출당하고 포르투갈의 아시아 정복과 스페인의 아메리카 정복이 시작되었다. 그 이후 250년 동안 서반구 전역과 아시아 주요 지역은 유럽의 지배를 받거나 그 주도권 아래 들어간다. 18세기에 들어서면 유럽의 직접적 통치는 처음에는 미국에서, 그 다음에는 아이티에서 축소되었다. 라틴아메리카의 대부분 지역이 유럽의 지배에 반기를 들고 일어나 독립을 쟁취하였다, 그러나 19세기 후반부에는 재부상한 서구 제국주의가 아프리카의 전 지역으로 영향력을 확대하였으며 아시아에서도 인도를 비롯한 광범위한 지역을 지배권 아래 끌어들였다. 20세기 초반으로 접어들면 터키를 제외한 중동의 거의 모든 지역이 서구의 직간접적인 영향력 아래 들어갔다. 유럽인 또는 과거 유럽 식민지 이주민은 1800년에 이르러 세계 육지의 35퍼센트를 점유하였다. 1878년에는 그 비율이 67퍼센트로 높아졌고 1914년에는 다시 84퍼센트로 껑충 뛰었다. 1920년에 가서도 오스만 제국이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 의하여 분할되면서 그 비율은 더욱 높아졌다.(60∼61쪽)

 

1500년 이후 400년 동안 문명과 문명의 관계는 '서구 문명에 대한 다른 문명들의 종속'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독특하고 극적인 사태를 낳은 원인들 가운데 가장 직접적인 것은 바로 기술이었습니다. 대양 항해술의 발명과 화약과 대포로 무장한 첨단 군사력 앞에 다른 문명들은 한마디로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서구의 팽창은 산업 혁명으로 더욱 탄력을 받았습니다. 서구는 가치관이나 종교의 우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조직화된 폭력의 우위'로 세계를 정복하였던 셈이었습니다.



 

서구 문명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유럽 민족들은 자기네들끼리도 싸웠습니다. 유럽의 국가들 사이에서 평화는 일상이 아니라 예외였습니다. 서구 문명 내부의 정치 역학을 지배한 것은 왕조 전쟁 아니면 종교 전쟁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서구인은 국민 국가를 만들었으며 프랑스 혁명 이후로 분쟁의 주역은 군주가 아니라 국가로 바뀌게 됩니다. 어느 역사가의 말대로 "왕들의 전쟁은 끝났고 민족들의 전쟁이 시작되었던" 셈이었습니다. 이러한 양상은 1차 대전까지 지속됩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여파로 국민 국가들 사이의 분쟁은 처음에는 파시즘과 공산주의, 자유 민주주의 사이의 대결로, 그 뒤에는 공산주의와 자유 민주주의 사이의 이념 대결로 바뀌었다. 냉전 시대에 이 이념들은 두 초강대국에 의해 구체화되었다. 이들은 모두 스스로의 정체성을 이념에서 찾았고 둘 다 유럽적 의미의 전통적 민족 국가가 아니었다. 마르크시즘이 처음에 러시아에, 곧 이어 중국과 베트남에서 권력을 잡으면서 유럽식 국제 체제는 탈유럽적 다극 문명 체제로 이행하였다. 마르크시즘은 유럽 문명의 산물이었음에도 유럽에서는 뿌리를 내리지도 성공을 거두지도 못했다.(63쪽)

 

20세기에 들어와 모든 문명들 사이에서 다각적인 교섭이 강하게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단계로 접어들게 됩니다. 역사가들이 즐겨 쓰는 표현대로 '서구의 팽창'이 끝나고 '서구에 대한 반항'이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비서구 사회들은 서구가 만든 역사에서 단순한 대상의 차원에 머물러 있었지만 이제는 자기 자신의 역사는 물론 서구의 역사를 조금씩 움직일 정도에 이릅니다. 서구가 주도하던 단계를 벗어나면서 문명의 쇠락을 좌우하던 이데올로기의 자리를 종교 또는 문화에 바탕을 둔 정체성이 물려받게 됩니다. 서구 정치 이념이 빚어낸 문명 내적 충돌은 문화와 종교가 주축이 된 문명간 충돌로 대체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새뮤얼 헌팅턴이 제시하는 시각틀의 요지였습니다.


이 책의 특장점 가운데 하나는 현존하는 여러 문명들의 장기간 동안의 변화를 구체적인 지도나 도표를 통해 명확하게 제시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대목들을 보노라면 『총, 균, 쇠』와 『문명의 붕괴』라는 책을 통해 장기간 동안의 인류 문명의 거대한 변화를 어느 누구보다 생생하게 보여주었던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20세기의 100년 동안에 서구의 쇠퇴를 보여주는 극적인 통계들은 여럿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문명들이 정치적으로 지배하는 면적'의 백분율입니다. 서구 문명은 1920년에 48.5%로 정점을 보인 이후 1993년 현재 24.2%까지 감소했습니다. 극적으로 부상한 문명은 이슬람 문명입니다. 1920년에는 3.5%에 불과했지만 1993년에 21.1%로 치솟았습니다. 1993년 기준으로 세 번째 문명은 14.9%의 라틴 아메리카였으며, 동방 정교 문명이 13.2%로 네 번째를 차지했습니다. 이때로부터 어느새 30년 가까이 흐른 오늘날의 수치는 과연 얼마나 바뀌었을까요.

 

문명들이 정치적으로 지배하는 세계 인구의 상대적 비중 또한 극적으로 변했습니다. 서구는 1920년에 48.1%를 차지하다가 2025년에는 10.1%까지 감소할 전망입니다. 중화 문명은 1920년에 17.3%였다가 2025년에는 21.0%로 선두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슬람은 더욱 극적인데요, 1920년에는 불과 2.4%에 불과했으나 2025년에는 19.2%까지 치솟아 중화문명을 턱밑까지 추격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네번째 문명은 힌두 문명으로 2025년에는 세계 인구의 16.9%까지 차지할 전망입니다.

 

주요 언어의 사용 인구(세계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를 보면 일반적인 상식을 훌쩍 뛰어넘습니다. 1992년 기준으로, 압도적인 1위는 15.2%를 치지한 북경어입니다. 2위는 이 수치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7.6%의 영어였습니다. 세 번째는 6.4%를 차지하는 힌두어, 네 번째가 6.1%의 스페인어, 다섯 번째가 4.9%의 러시아어입니다.



 

문명별 세계 총생산 비중으로는 서구 문명의 비중이 아직까지 탄탄하다고 볼 수 있으나 통계치가 1992년에 머무른 탓에 21세기의 빠른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측면이 아쉽습니다. 책에 실린 도표에 따르면, 서구문명의 세계 총생산 비중은 1928년 84.2%까지 치솟았다가 1992년에는 48.9%까지 줄어듭니다. 1992년 기준으로 두 번째 비중을 차지하는 문명은 11.0%의 이슬람입니다. 세 번째는 중화 문명(10.0%)이고, 네 번째는 라틴 아메리카 문명(8.3%), 다섯 번째는 일본 문명(8.0%)입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2020년의 세계 총생산 전망입니다. 이 책이 출간될 무렵(1996년)만 하더라도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의 기세가 워낙 대단했던 탓인지, 전망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제법 커 보입니다.

 

1992년 현재 세계에서 경제 규모가 가장 큰 나라는 미국이고 10개 상위국 가운데 서구 국가가 5개국, 나머지 5개국은 다른 문명들의 주도 국가인 중국, 일본, 인도, 러시아, 브라질이다. 신빙성 높은 전망에 따르면 2020년에 가서 중국이 세계 최대 규모의 경제력을 자랑하게 된다. 5개 상위국은 5개 문명의 몫으로 골고루 돌아가고, 10개 상위국은 중화 문명권 3개국(중국, 한국, 대만), 서구 문명권 3개국(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인도, 인도네시아, 태국이 차지한다. 10대 경제 강국 중에 아시아권이 7개국 포함되고 그 중에서 6개국이 동아시아권이다. 1960년 동아시아는 세계 총생산의 4퍼센트를 차지하였고 북미는 37퍼센트를 차지하였다. 그러던 것이 1995년에는 똑같이 24퍼센트가 되었다. 한 보고서는 2013년경에 가서는 서구는 세계 총생산의 30퍼센트를, 아시아는 40퍼센트를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한다.(111쪽)

 

(2021. 5.20 파이낸셜뉴스 보도)


세계통화기금(IMF)이 내놓은 경제 전망 보고서를 분석한 CNBC에 따르면, 2019년 12위였던 한국은 코로나 발생 후 10위로 상승했다. 명목 국내 총생산(GDP) 규모에서 한국이 세계 10위를 차지한 것이다. 1위부터 4위는 미국, 중국, 일본, 독일 순으로 2019년과 동일하다. 견고한 상위 4개국 외에 2019년 5위였던 인도는 6위로 내려가고 6위였던 영국이 5위로 올라갔다.

 

새뮤얼 헌팅턴의 연구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변화하는 문명의 균형'을 인구 변화와 경제력의 변화에서 찾는다는 점입니다. 서구 문명에 도전하거나 뛰어넘을려는 문명의 뚜렷한 두 주자는 아시아와 이슬람인데, 이 책이 쓰여질 무렵에는 이들 두 문명의 발전이 지금보다 더욱 눈부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슬람과 아시아 문명의 극적인 발전은 자신들의 문명에 대한 자부심과 서구적 가치와 제도에 대한 거부감으로 나타나게 된다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미국의 학자인 저자 입장에서는 이들 두 문명의 거센 도전이 부담스러웠을 게 틀림없습니다. 다음의 문장 속에는 서구인의 이슬람과 중국의 급부상에 대한 두려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아시아의 자기 주장은 경제 성장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슬람의 자기 주장은 상당 부분 사회적 동원력과 인구 증가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도전은 지금도 그렇지만 21세기에 가서도 세계 정치에 심각한 불안 요소로서 파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파장의 성격은 상당히 다르다. 중국과 여타 아시아 국가의 경제 발전은 이들의 정부가 대외 관계에서 적극적으로 자기를 주장할 수 있는 근거와 자원을 제공한다. 이슬람 국가들의 인구 증가, 특히 15세에서 25세 사이 연령층의 폭발적 증가는 원리주의, 테러리즘, 폭동, 노동력 수출에 필요한 인력을 제공한다. 경제적 발전은 아시아 정부를 강화시키고 있지만 인구 증가는 이슬람 정부와 비이슬람 사회에 위협으로 다가오기도 한다.(133∼134쪽)

 

20세기 후반부터 최근까지 진행 중인 수많은 지역적 분쟁들은 구소련 연방의 해체에 따른 탈냉전 시대의 도래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강대국을 중심으로 이념에 따라 맺어진 제휴 관계가 극적으로 사라지고 문화와 문명을 축으로 제휴 관계가 재편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정치적 경계선이 문화적 경계선 곧 민족적, 종교적, 문명적 경계선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급속도로 바뀌었습니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기준으로 NATO와 EU 가입 문제를 결정했습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다짜고짜 무력으로 침공한 최근의 사태는 제휴 관계의 핵심이 이념에서 문명으로 옮겨간 영향의 극단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습니다.


구 유고 연방이었던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세르비아는 이념에서 탈피하여 민족과 종교에 따라 각각 분리되었으며, 냉전 시대에 소련에 맞서 부자연스런 동맹을 맺었던 그리스와 터키는 탈냉전 시대에 접어들자 말자 NATO와 EU에서의 역할을 둘러싸고 사사건건 충돌하는 관계로 바뀌었습니다. 홍콩, 대만, 싱가포르와 동남아시아의 화교들은 점차 중국과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본토 의존도가 커지는 추세로 바뀌었습니다. 냉전 질서가 무너지면서 세계 각국은 새로운 대립과 제휴를 진전시키거나 해묵은 대립과 제휴를 소생시키는 쪽으로 재편되는 과정에 놓여 있습니다.

 

냉전의 종식은 분쟁을 종식시킨 것이 아니라, 문화에 뿌리를 둔 새로운 정체성, 가장 광범위한 수준에서는 문명을 형성하게 될 상이한 문화에서 유래한 집단들 사이의 새로운 갈등 양상을 낳았다. 아울러 공통의 문화는 그 문화를 공유하는 국가나 집단 사이의 협조를 낳는다. 이것은 특히 경제 부문에서 국가들 사이의 지역 연합이 출현하는 현상에서 확인된다.(171쪽)


탈냉전 이후의 문명과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특히 중국의 역할이 급속도로 바뀌는 점은 안보와 경제 모두에서 직접적인 영향권에 놓인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도 눈여겨 볼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중국 정부는 중국 본토를 중국 문명의 핵심국으로 이해하고 다른 모든 중국인 공동체가 이 핵심국을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홍콩 사태야말로 이런 생각이 현실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셈이었습니다.

 

'대중국'은 그러므로 단순한 추상적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급속히 성장하는 문화적, 경제적 현실이며 이제는 정치적 현실의 성격마저 띠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극적으로 전개된 동아시아 경제 발전을 주도한 것은 본토, 호랑이들(네 마리 중에서 한국을 제외한 세 마리가 중국계), 동남아시아의 중국인이었다. 동아시아의 경제는 점차 중국 중심, 중국 주도로 운영되고 있다. 홍콩, 대만, 싱가포르의 중국인은 1990년대 본토에서 이루어진 눈부신 경제 발전의 토대가 되었던 자본을 실질적으로 제공하였던 층이다. 그 밖에도 동남아시아의 화교들은 이 지역 경제를 틀어쥐고 있다. …… 일본과 한국을 제외하면 동아시아 경제는 기본적으로 중국 경제이다. 227∼228쪽)

 

이념 중심에서 문명 중심으로 세계 정치 구도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문명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납니다. 충돌의 원인은 무역 갈등, 강한 라이벌 의식, 경쟁적 공존, 군비 경쟁 등으로 매우 다양합니다. 세계적이고 거시적인 차원에서 '핵심국 분쟁'은 상이한 문명에 속한 주요국들 사이에서 발생합니다. 그들 사이에 분쟁을 낳는 핵심적 쟁점들은 국제 정치의 고전적 주제들인 셈입니다. UN, IMF 등 국제 기구의 운영을 둘러싼 문제, 핵 확산 금지, 무기 규제, 무역과 투자 문제, 인권 문제, 가치관과 문화의 갈등 등이 바로 그런 주제들입니다.

 

문명의 핵심국들은 지리적으로 인접한 경우가 아니면 직접적 군사 충돌은 상호 자제합니다. 그러나 문명들의 세력 균형에 변화가 올 때, 핵심국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저자는 경고합니다. 이른바 그 유명한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는 주장이지요. 미중 무역분쟁이 격화 일로를 걸어 온 최근 몇 년 사이에 수많은 언론에서 숱하게 화두로 삼은 용어 또한 이 책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문명의 충돌』이라는 책이 인용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용어가 바로 '투키디데스의 함정'이기 때문입니다.

 

투키디데스의 주장에 따르면 그리스 문명 내부에서 아테네의 힘이 강성해졌을 때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서구 문명의 역사는 부상하는 강대국과 쇠락하는 강대국 사이에 벌어진 '헤게모니 전쟁의 역사다. 상이한 문명에 속해 있으면서 부상하는 핵심국과 쇠락하는 핵심국 사이의 분쟁 촉발 정도는 이들 문명에 속한 국가들이 새로운 강대국의 부상 앞에서 견제를 추구하느냐 편승을 추구하느냐에 달려 있다. 아시아 문명에서는 편승 현상이 더 지배적으로 나타나지만, 중국의 부상은 미국, 인도, 러시아 같은 다른 문명권의 국가들로 하여금 세력 균형을 도모하도록 자극할 수 있다. 서구의 역사를 볼 때 영국과 미국 사이에서는 헤게모니 전쟁이 벌어지지 않았다. 팍스 브리타니카에서 팍스 아메리카나로의 이행이 평화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주된 요인은 두 사회의 문화적 유대감이 강하였기 때문이다. 서구와 중국 사이에는 그러한 종류의 유대감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서구에서 중국으로 패권이 넘어가는 과정에서 군사 충돌이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런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은 상당히 많다. 이슬람의 역동성은 비교적 소규모로 벌어지는 단층선 분쟁의 지속되는 원천이 되고 있으며, 중국의 부상은 핵심국 사이에 벌어지는 대규모 문명 전쟁의 잠재적 원천이 되고 있다.(279쪽)

 

몇 해 전부터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한 미중 무역전쟁은 소규모의 관세 전쟁에서부터 시작하여 대규모 관세 폭탄을 주고받는 단계를 지나 '화웨이 사태'로까지 확산일로를 걷다가 잠시 멈춰서 있습니다. 남중국해의 영유권 주장을 둘러싼 갈등, 홍콩과 대만의 지위를 둘러싼 '하나의 중국 정책'에 대한 미국의 입장, 티벳과 위구르 자치구에 대한 인권 문제 등도 미중간에 잠재된 폭발력 있는 갈등 요소들입니다. 미중간의 갈등은 아직까지는 전쟁으로까지 확전될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습니다. 중국의 경제력이나 군사력이 아직까지는 미국과 상당한 격차를 보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는 또다시 '투키디데스의 함정' 앞에서 두 나라가 건곤일척의 대전쟁을 벌이느냐 마느냐로 심각한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어쨌든 이 책이 1996년에 출판된 점을 고려해 보더라도 20여 년 후의 미중 갈등의 본질을 날카롭게 꿰뚫어 본 명저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문명 충돌에 관한 광범위한 주제들'은 오늘날까지도 현재 진행형인 사안들이 너무나 많아서 뒤늦게 이 책을 붙잡고 읽는 독자들한테도 놀라움을 안겨 줍니다. 핵무기 개발을 위해 온갖 집요한 노력을 기울여 온 이란과 북한의 사례는 24년 전에 이 책을 쓴 저자가  2020년에 최신 개정판을 다시 낸다고 하더라도 이미 기술한 내용에 대해서는 특별히 손댈 만한 곳이 거의 없을 만큼 정확하고 날카롭습니다. 1993년부터 본격적으로 문제가 된 북한의 핵무기는 한국과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바뀔 때마다 ('전략적 인내' 등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해 오면서) 문제를 점점 더 키워오다가 어느새 '핵동결 내지는 핵군축의 단계'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더욱 복잡하고 중차대한 문제로 발전하고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입니다.


수많은 문제들이 여전히 미해결인 채 남아 있고, 어떤 문제들은 처음 등장할 때만 하더라도 심각한 위기로 대두되다가(쿠바 위기 등) 시간의 경과에 따라 이내 사그라지기도 합니다. 또한 과거부터 오랫동안 잠재된 갈등들이 기나긴 잠복 기간을 거쳐 일순간 거대한 분노로 표출되는 경우도 더러 나타납니다. 가장 최근에 일어났던 홍콩의 격렬한 반중 시위는 100년 동안의 서구화를 겪은 사회가 아무런 갈등도 없이 중국 본토 문명으로 재흡수될 수 없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새뮤얼 헌팅턴이 제시한 '문명끼리의 충돌 관점'은 고작(?) 수십 년 동안만 존재했던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얼마만큼 허약한 기반 위에 존재했던가를 새삼 되짚어보게 만드는 한편, 1,000년 혹은 2,000년 이상의 장구한 세월 동안에 걸쳐 단단하게 형성된 문명이라는 범주가 얼마만큼 강렬한 힘을 비축한 채 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 힘을 발휘하는가를 다시금 깨닫게 만듭니다. 또한 수많은 역사가들이 예견했듯이, 지구상에 존재했던 수많은 문명들은 시간이 경과하는 동안에 축적되는 인구 증가 및 인구 구성의 변화, 경제력의 차이, 군사력의 변화 등에 따라 갈등과 충돌을 겪으면서 차츰 쇠락한다는 사실도 다시금 깨닫게 만듭니다.

 

실로 오랬동안 미국이 주도해 온 서구 문명도 차츰 쇠락하고 나면 멀지 않아서 아시아 문명, 그 가운데서도 중국 문명이 지구 최강의 경제력과 인구와 여러 친족국들(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을 대동한 채 새로운 질서 재편 과정을 밟아나갈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입니다. 수천 년 동안 유교 문명권에 속해 있으면서 중국과 접촉했던 우리나라는 과연 새로운 세계 질서 속에서 미국의 핵심 우방으로 계속 남게 될까요, 아니면 중국 문명으로 재차 복귀할까요.


 

이 어려운 문제에 대해 그 누가 속시원히 대답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우리나라가 언젠가는 그런 어려운 선택지 앞에서 의사결정을 강요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오랫동안 서구식 합리주의와 민주주의에 적응해 온 다른 문명들은 아직까지도 민주적인 선거 절차와 지도자 선출 과정조차 경험하지 못한 권위주의적인 중국 문명과 어떤 갈등과 충돌을 빚을까요. 새뮤얼 헌팅턴의 책을 읽노라면 이런 새로운 걱정들이 계속 떠오릅니다.

 

이 책은 온갖 첨예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국제적인 분쟁들을 보다 냉철하게 분석해 볼 수 있는 유용한 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한 번쯤 읽어볼 가치가 충분한 책입니다. 지금도 우리의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지고 있는 세계적인 분쟁들의 근원적인 이유들이 이 책 곳곳에 숨어 있다는 느낌이 결코 과장은 아니니까요. 과연 서구 문명은 언제쯤 다른 문명에게 자신의 주도권을 내놓을까요? 30년 후? 100년 후?

 

모든 문명의 역사에서 적어도 한 번은, 그리고 대개는 여러 번 역사의 막을 내린다. 문명의 보편 국가가 등장하면 그 문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토인비가 말한 대로 '영속성의 망상'에 눈이 멀어 자기네 문명이 인류 사회의 최종 형태라는 명제를 신봉하게 된다. 로마 제국이 그러했고 압바스 왕조가 그러했으며, 무굴 제국과 오스만 제국도 다를 바 없었다. 보편 국가에 거주하는 국민들은 그 보편 국가를 황야의 하룻밤 거처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약속의 땅, 인간의 궁극적 목표점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절정기의 대영 제국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1897년의 영국 중산층은 역사는 종착역에 이르렀다고 보았다. 그들은 이 역사의 종말이 자신들에게 베풀어 준 영구 불멸한 열락의 상태를 자축해야 할 이유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자신들의 역사가 궁극점에 이르렀다고 전제하는 사회는 대체로 몰락기로 접어든 사회이다.(413쪽)

 

이것으로 『문명의 충돌』에 대한 소개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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