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셰익스피어보다 더 가슴을 찢는 비통한 작가를 알지 못한다 : 어릿광대여야 할 필요가 있었던 그 인간은 어떤 고통을 겪어야만 했단 말인가! ㅡ 햄릿을 이해하겠는가? 미치게 만드는 것은 의심이 아니라, 확실성이다 ······ 하지만 그렇게 느낄 수 있으려면 깊이가 있어야만 하고, 심연이어야만 하며, 철학자여야만 한다.

 - 니체, 『이 사람을 보라』

* * *


셰익스피어의 천재성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초과하기 때문에 범인들이 그의 작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해설을 늘어놓는 일은 언제나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와 비견될 작품을 찾기조차 어려운 셰익스피어의 걸작들을 언제까지나 먼 산 바라보듯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셰익스피어의 수많은 걸작들 가운데서도 그의 천재성이 최고로 발휘된 작품이 바로 『햄릿』입니다. 어떻게 이처럼 뛰어난 걸작이 완성되었을까 하는 것조차 상상하기 어려운, 걸출한 묘사력과 창조력의 극치를 이루는 이 작품을 어떻게 소개할까 걱정부터 앞섭니다만, 어쨌든 이 놀라운 작품 속으로 한번 들어가 보시지요.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는 총 37편의 희곡작품을 남겼는데 그 가운데 비극은 10편을 썼습니다. 열 편의 비극 가운데 최고의 작품이 바로 『햄릿』이지요. 셰익스피어가 정말로 뛰어난 부분은 인간 세상의 모든 사건, 특히 감정적 부분인 사랑, 증오, 질투 등의 희로애락 전부를 써냈다는 사실이지요. 사랑만 해도 연인 간의 사랑뿐 아니라, 부부, 부모자식, 형제, 사제, 친구의 사랑을 모두 그려냈습니다.  


괴테의 예술론은 에커만이 지은 <괴테와의 대화>에 나와 있다. 거기에서 괴테가 셰익스피어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을 조금 소개하겠다.

 

"그는 인간생활의 모티브란 모티브를 하나도 남김없이 그려냈고, 또 모두 표현해냈다. 게다가 그 모든 것이 선명함과 자유로움으로 넘쳐난다."

 

"무대는 그의 위대한 정신을 보여주기에는 너무나도 좁다. 그뿐인가, 이 눈에 보이는 모든 세상마저 그에게는 너무나도 좁았다."

 

괴테의 이런 견해, '선명하고 자유로움으로 넘쳐난다'는 것이 중요하다. 셰익스피어는 모든 것을 써냈고, 인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감정을 표현해냈다.

 

 - 오다시마 유시, 『셰익스피어가 내게 찾아왔다』, <03. 괴테, 톨스토이, 마르크스가 읽은 셰익스피어>

  

이처럼 인간의 온갖 감정을 빠짐없이 그려냈던 셰익스피어가 인간의 복수심을 놓칠 리 없었지요. 사실 따지고 보면 저 유명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조차도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대표되는 '인간의 복수심'이 작품의 전편을 지배하고 있지요. 우선, 트로이아 전쟁이 발발한 근본 원인부터가 스파르타의 왕비였던 헬레네를 불법으로 납치한 사건 때문이었는데 바로 그걸 응징하기 위해 수만의 군대가 대전쟁을 벌인 셈이지요. 


이 수천 수만의 무장한 인간들의 가공할 장비, 그 맹위·정열·용기, 이런 것들이 얼마나 쓸데없는 원인으로 일어나서, 가벼운 인연으로 사라지는가를 고찰해 보면 기가 막힐 일이다. 


파리스라는 사람 때문에 저 처참한 전쟁이 

그리스와 외족(外族) 국가 사이에 야기되었다고 전한다. (호라티우스)

아시아 전체가 파리스의 오입질 때문에 전쟁으로 불타 버려 파괴된 것이다. 단 한 남자의 시기심, 울분, 쾌락, 가족 간의 질투 등, 수다스런 마나님 둘이 서로 할퀴며 대들게 할 만큼 성나게 할 것도 못 되는 원인들, 이것이 전쟁의 핵심이며 직접적인 원인이다. 이런 전쟁을 일으킨 주요한 인물이며, 동기가 된 자들의 말이면 바로 믿어 주어야 할 일인가?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그런데 이 유명한 고대의 전쟁은 제대로 불붙기도 전에 그리스 진영에서 생긴 뜻밖의 내분 때문에 이상한 방향으로 꼬이기 시작하지요. 사건의 발단은 연합군 최고의 전사였던 아킬레우스가 총애하던 애인을 연합군 총사령관이었던 아가멤논이 불문곡직하고 빼앗아간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억울한 일을 당한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도대체 얼마나 컸으면 지금으로부터 무려 2800년 전에 쓰여진 저 유명한 호메로스의 서사시조차 이렇게 시작했을까요?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아카이오이족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통을 가져다주었으며
숱한 영웅들의 굳센 혼백들을 하데스에게 보내고
그들 자신은 개들과 온갖 새들의 먹이가 되게 한
그 잔혹한 분노를! 

 - 호메로스,『일리아스』


분노 때문에 불화산처럼 달아오른 아킬레우스는 곧장 전쟁 전면 보이콧을 선언하고 칩거에 들어가지요. 오뒷세우스를 비롯한 그리스 연합군 진영의 핵심들이 아무리 설득해도 아킬레우스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그리스 전력의 핵심이었던 그가 전쟁에서 빠지자 그리스 군대는 순식간에 패전 직전까지 내몰리게 되고, 아킬레우스의 절친이었던 장수 파트로클로스는 전사하고 말지요. 절친을 잃은 아킬레우스는 또다시 분기탱천하여 전쟁에 뛰어들고, 이내 트로이아 최고의 장수였던 헥토르를 죽입니다. 아킬레우스는 그러고도 분노가 풀리지 않아 틈날 때마다 헥토르의 시신을 전차 뒤에 매달아 끌고다니지요. 사랑하는 아들의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한 트로이아의 늙은 왕 프리아모스는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아킬레우스를 찾아가 저 유명한 읍소작전을 펼치지요. 


<아킬레우스에게 간청하는 프리아모스>


마침내 아들의 시신을 되돌려 받은 프리아모스는 헥토르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르고 이 장면을 마지막으로 『일리아스』는 끝나지요. 트로이아 전쟁은 그 이후로도 계속 이어져 결국 아킬레우스가  파리스가 쏜 화살에 아킬레스건을 맞아 전사하고 말지요. 이번에는 아킬레우스의 아들이 '아버지의 죽음'에 복수하기 위해 또다시 분기탱천하여 피비린내 나는 복수혈전을 펼치게 되고, 그 장면은 호메로스보다 800년 뒤에 등장한 로마 최고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에 담기게 되지요. 그리스 연합군에 패해 멸망한 트로이아를 탈출하여 이탈리아의 로마로 향하는 아이네이아스 일행의 기나긴 여정이야말로 『아이네이스』의 줄거리인 셈인데, 로마 건국 신화의 주인공인 아이네이아스가 온갖 간난신고 끝에 만난 여인이 바로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였습니다. 패망한 트로이아의 장수 아이네이아스가 디도를 만나 들려주는 '트로이아 전쟁 이야기'는 베르길리우스보다 무려 1600년 뒤에 등장한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다시 한번 재연됩니다.


<디도에게 트로이아 전쟁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이네이아스>



              햄릿

그 극에서 내가 제일 좋아했던 대목이 있는데 그건 아이네이아스가 디도에게 해 준 얘기로, 특히 그가 프리아모스의 도륙을 말하는 부근이야. 기억할 수 있거든 이 줄에서 시작해 보게 ㅡ 어디 보자, 어디 보자 ㅡ


'험상궂은 퓌로스가 불길한 목마 속에

쭈그리고 앉았을 땐 칠흑 같은 갑옷이

자신의 의도처럼 검은 밤을 닮았더니

지금은 그 무섭고 검은 모습 더욱더

불길한 색깔로 물들었소. 그는 지금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완전히 시뻘겋게

아비, 어미, 딸들과 아들들의 핏물로

끔찍이 채색되어 그들 왕의 살해에

포악과 저주를 더하면서 불타는 거리에서

바짝 말라 구워졌소. 분노와 불길에

딱딱해진 피껍질을 온몸에 덮어쓰고

석류석 붉은 눈빛, 지옥 같은 퓌로스가

프리아모스 노친을 찾는다오.'


이어서 자네가 계속하게

                                                                                 

                                                                                 - 『햄릿』, <2막 2절> 중에서


셰익스피어가 이처럼 『햄릿』에서 '극중극'으로 뜬금없이 퓌로스를 등장시킨 건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선친의 유령을 만난 이후 햄릿 왕이 독살당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기 시작한 햄릿 왕자는 살해범에게 복수할 궁리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지요. 그때 햄릿 왕자가 의심하는 범인이 바로 형을 죽이고 왕위를 차지한 숙부 클라우디우스였습니다. 숙부는 아버지의 목숨과 왕위만 찬탈한 게 아니라 형수인 햄릿의 어머니까지 차지한 악인이었지요. 그 철천지 원수가 정말로 아버지를 독살한 범인이 맞는지 확신을 얻기 위해 햄릿이 유랑극단을 동원하여 '극중극'을 꾸몄고, 왕과 왕비 앞에서 『아이네이스』에 등장하는 '퓌로스의 복수극'을 재연한 것입니다. '친부 살해'에 대한 끔찍한 복수를 다짐하는 햄릿의 롤모델이 바로 퓌로스였기 때문이지요. 퓌로스는 일명 네옵톨레모스라고도 불리는데, 호메로스의 서사시『일리아스』에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웅 아킬레우스의 아들입니다.


<프리아모스 왕을 죽이는 네옵톨레모스>


셰익스피어어의 비극작품 『햄릿』은 이처럼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자유자재로 넘나들 만큼 깊이가 풍부한 데다가 그 표현력이 그 어떤 시인이나 극작가에게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탁월하지요.


대부분의 현자는 아무리 현명하다고 해도 이럭저럭 어림짐작 내에 들 정도인데 셰익스피어의 현명함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초과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플라톤은 인류 최고의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데 열심히 읽으면 그의 사고회로를 뒤쫓는 것은 어떻게든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손을 들게 된다. 어떻게 그와 같은 작품이 완성되었을까 하는 것조차 상상을 뛰어넘고 있는 것이다. 그 걸출한 묘사력, 창조력에서 그와 견줄 수 있는 자는 없다. 셰익스피어처럼 쓴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하는 것이다. 그는 도저히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지 못할 정도의 문학적인 세련이 극에 달하고 있다. 그것은 작가적 자질로도 최고봉이라고 해도 좋은데 그의 재능은 좁은 뜻에서의 작가라는 틀을 훨씬 뛰어넘고 있는 것이다.

 

 랄프 왈도 에머슨위인이란 무엇인가, <제3, 인류 최고 향연의 사회자, 시인 세익스피어>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이니라."와 같은 햄릿의 명대사를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설령 『햄릿』을 단 한 줄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그 정도 대사쯤은 누구라도 한두번은 들어봤을 테니까 말이지요.


"사느냐 죽느냐"로 시작되는 그의 독백


200여 년 이상이나 "사느냐 죽느냐"로 시작되는 그의 독백은 끊임없이 인용되어 왔고, 때문에 오히려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다. …  『햄릿』에 담긴 일곱 개의 독백 가운데 세 번째인 '사느냐 죽느냐' 독백은 지식과 행위 사이의 부정적 관계에 대해 다루었다. 이 부분은 햄릿이 극에서 왕 역할을 하는 배우를 위해 쓴 대사의 절정을 이루며, 또한 다음 위대한 시의 원천이 되기도 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야기의 매듭을 지으려 하오.

인간의 의지와 운명은 서로 어긋나는 것이므로

계획은 언제나 무너지게 마련이지.

생각은 우리 자신이 하지만 그 결과는 우리도 어쩔 수 없는 것이오.    ㅡ 3막 2장 (386쪽)


 - 헤럴드 블룸, 『교양인의 책읽기』중에서


인간의 본성과 운명에 대해 셰익스피어만큼 미묘하고 멋진 대안과 비전을 제시한 작가는 없었다. 어떤 면에서 햄릿이나 이아고, 리어 왕, 클레오파트라의 말도 같은 권위를 지닌다. 설득에서는 오히려 셰익스피어의 풍부함이 더욱 커 보인다. (중략)


나는 셰익스피어가 "인간을 발명했다"고 말한 후로 다른 비평가들로부터 비난을 받아 왔다. 존슨 박사는 "시의 본질은 발명"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따라서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셰익스피어의 극시가 그렇듯 실용적으로 인간을 개조하고 재발견했다 해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367쪽)


 - 헤럴드 블룸, 『교양인의 책읽기』중에서


이처럼 극찬을 받는 『햄릿』은 단지 이야기의 줄거리로만 설명될 수 있는 작품이 아니지요. 그러나 『햄릿』이 아무리 심오한 극작품이라고 하더라도 이 극에 나오는 등장인물과 줄거리를 빼놓고 이 작품을 계속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덴마크의 왕자 햄릿입니다. 그는 두 달 전에 아버지 햄릿 왕을 잃었으며, 지금은 숙부인 클라우디우스가 덴마크를 통치하고 있지요. 햄릿의 어머니인 거트루트 왕비는 왕위에 오른 시동생 클라우디우스와 재혼한 상태입니다. 햄릿은 재상 폴로니우스의 딸 오필리어를 연모하고 있으며, 그녀에게는 레어티스라는 오빠가 있습니다. 햄릿에게는 절친 호레이쇼가 있으며, 옛 학교 동창생들인 로젠크랜츠와 길든스턴도 있습니다. 또한 『햄릿』에는 노르웨이의 왕자 포틴브래스와 묘지기들도 등장합니다. 이 극에서는 여섯 명의 등장인물이 죽는데, 죽는 순서는 폴로니우스, 오필리어, 거트루드, 클라우디우스, 레어티스 그리고 햄릿입니다.


극은 덴마크의 엘시노어 성 위의 망대에서 시작되지요. 바로 여기서 억울하게 죽은 햄릿 왕이 한밤중에 유령으로 등장합니다. 유령은 보초병들이 말을 걸어도 아무런 대답 없이 사라지지요. 절친 호레이쇼로부터 이런 사실을 전해들은 햄릿은 한밤중에 망대에 올라 아버지의 유령을 직접 만납니다. 유령은 자신이 동생에게 독살됐다고 주장하지요. 


간단하게 말하마. 정원에서 잠자는데

오후에는 그게 항상 습관이었으니까,

방심하고 있었던 그 시각에 네 삼촌이

저주받을 독즙 병을 몰래 갖고 들어와

나병을 일으키는 증류액을 내 귀에 

다 쏟아부었고...


그래서 난 자다가 동생 손에 의하여

생명, 왕관, 왕비를 한꺼번에 빼앗겼고

죄업을 한창 쌓고 있을 때 잘렸으니

성체 없이, 준비 없이, 종유의 성사 없이

죄 청산도 못하고 내 모든 결함을

머리에 인 채로 심판대로 보내졌다.

(1막 5장)


햄릿은 이때부터 삼촌에게 복수하기로 다짐하지요. 그러면서도 유령과 나눈 대화는 절친 호레이쇼에게도 비밀로 하고, 보초병들이 유령을 본 사실도 절대 발설하지 말도록 다짐을 받습니다. 햄릿이 조금의 빈틈도 없이 복수를 준비하기 위해서였죠. 햄릿은 연인 오필리어를 만나서도 미친 사람처럼 이상한 행동을 취하지요. 오필리어의 아버지인 폴로니우스는 햄릿이 오필리어에 대한 상사병으로 그만 미쳐버렸다고 여기지요. 폴로니우스는 왕자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걸 왕에게 증명하기 위해 햄릿이 오필리어에게 쓴 편지까지 보여주지요.


한편, 햄릿의 옛 학교 동창생들인 로젠크랜츠와 길든스턴을 만난 햄릿은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중 자신이 요즘 심정이 너무나 울적하여 지구가 온통 불모의 땅덩이로 보인다는 하소연을 늘어놓지요.


인간이란 참으로 걸작이 아닌가.

이성은 얼마나 고귀하고 능력은 얼마나 무한하며,

생김새와 움직임은 얼마나 깔끔하고 놀라우며,

행동은 얼마나 천사 같고 이해력은 얼마나 신 같은가.

이 세상의 꽃이고 동물들의 귀감이지

 - 그렇지만 내겐 이 무슨 흙 중의 흙이란 말인가?

난 인간이 즐겁지 않아 - 여자도 마찬가지야.


이런 대화 끝에 그들은 왕자에게 봉사하러 왕궁을 찾아온 유랑극단을 봤다고 알리지요. 햄릿은 그 유랑극단의 배우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하지요. 그때 햄릿이 배우들과 나눴던 대화가 바로 이 영상의 초반부에서 미리 소개한 『아이네이스』에 관한 장면이었습니다.


이어지는 3막 1장에는 『햄릿』을 대표하는 유명한 대사가 등장하지요.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질문을 파고드는 이런 놀라운 대사들 때문에 햄릿은 인류가 창조한 가공의 인물들 가운데 가장 지성적이라는 평판을 얻게 되지요.


존재할 것이냐, 말 것이냐, 그것이 문제다.

어느 게 더 고귀한가? 난폭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맘속으로 맞는 건가

아니면 무기 들고 고난의 바다와 맞서다가

끝장을 보는 건가? 죽는 건 자는 것

그뿐인데, 잠 한 번에 육신이 물려받은

마음의 고통과 수천 가지 타고난 갈등이

끝난다 말하면 그건 바로 경건히 바라야 할

결말이다. 죽는 건 자는 것, 자는 건

꿈꾸는 것일지도 ㅡ 아, 그게 걸림돌이다.

……

결국은 양심이 우리를 다 겁쟁이로 만들고

그에 따라 붉은 빛 영롱하던 결심은

창백한 생각으로 병들어 버리며

천하의 거창하고 웅대한 계획들도

이 점을 고려할 때 그 흐름이 바뀌면서

실천될 가망성이 없어진다.

(3막 1장)


이 유명한 독백이 끝나면 배우들이 등장하여 극중극을 공연하지요. 햄릿은 자신의 진정한 친구인 호레이쇼에게 '부친 사망 경위'와 비슷한 연극 장면에서 클라우디우스의 표정이 어떻게 변하는지 자세히 살펴봐 달라고 부탁하지요. 극중극의 이름은 '쥐덫'인데, 왕 역할을 맡은 배우가 귀에 부은 독 때문에 독살을 당하자 이 장면을 본 국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곧바로 연극은 중단되고 말지요.


대경실색한 왕비는 이 연극이 끝난 뒤 내실에서 왕자와 대화를 나누길 희망하고, 그 대화를 엿듣고 싶은 폴로니우스는 왕에게 이런 사실을 보고하고 내실의 휘장 뒤에 몸을 숨깁니다. 자신이 저지른 끔찍스런 죄악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 왕은 무릎을 꿇고 참회의 기도를 올리지요. 바로 이때 햄릿은 칼을 뽑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지요.


아서라 내 칼아, 더 끔찍한 상황을 만나자.

놈이 취해 잠자거나 광란하고 있을 때

침대에서 상피 붙어 쾌락을 즐길 때

경기 도중 욕하거나 구원받을 기미가

전혀 없는 행동을 하고 있을 바로 그때

이놈의 다릴 걸자, 발꿈치는 하늘을 박차고

그 영혼은 목적지인 지옥만큼 저주받아

시커멓게 되도록.

(3막 4장)


이렇게 해서 복수는 연기되고 햄릿과 거트루드 왕비가 연극 때문에 벌어진 소동으로 심각하게 다투는 사이 휘장 뒤에서 엿듣던 폴로니우스가 비명을 지르고, 햄릿은 엉겁결에 휘장을 뚫고 검을 찌릅니다. 이때 폴로니우스는 살해되고, 왕비와 함께 남은 햄릿 앞에 또다시 유령이 등장하여 무뎌진 복수심을 벼리기 위해 왔노라고 말하고 사라지지요. 햄릿은 이 우발적인 살인 사건 때문에 학교 동창 두 사람과 함께 배에 실려 영국으로 보내지는데, 덴마크 왕은 영국에 도착하는 즉시 햄릿을 제거하라는 비밀지령이 담긴 서신을 부하들에게 지참시키지요.


옛 학교 동창생 둘과 함께 영국으로 향하던 햄릿은 도중에 노르웨이의 왕자 포틴브래스가 이끄는 군대와 마주치는데, 아무런 이득도 없는 한 조각의 땅을 빼앗기 위해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는 모습을 보고 햄릿은 다시 한번 멋진 대사를 읊습니다.


모든 일이 사사건건 얼마나 날 꾸짖고

둔한 내 복수심을 찌르는가. 인간은 무엇인가,

일생을 팔아 얻는 주 소득이 먹고 또

자는 것뿐이라면? 짐승 그 이상은 아니다.

우리에게 이렇게 넓고도 앞뒤를 내다보는 

사고력을 넣어 주신 그분께서 그 능력과

신과 같은 이성을 쓰지 않고 썩히라고

주신 건 분명코 아니다. 그런데 이 무슨 

짐승 같은 망각인지, 아니면 결과를 너무나

꼼꼼히 따져 보는 소심한 주저인지 ㅡ

……

흙처럼 흔한 예가 나에게 훈계한다,

그 증거로 곱고 여린 왕자가 이끄는

이 대규모 호화판 군대를 보아라.

그의 맘은 하늘 같은 야심으로 부풀어

예측 못 할 결과 따윈 코웃음 치면서

덧없고 불확실한 인간의 목숨을

계란만 한 땅 때문에 온갖 운과 사망과

위험에 내맡긴다. 진정으로 위대함은

큰 명분 없이는 행동을 않는 게 아니라

명예가 걸렸을 땐 지푸라기 하나에도

큰 싸움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럼 난 어떤가?

(4막 4장)


4막 5장에서는 햄릿에게 버림받고 아버지까지 잃은 충격으로 실성한 오필리어가 등장하여 왕과 왕비 앞에서 온갖 이상한 노래를 부르지요. 졸지에 아버지를 잃고 사랑하는 누이동생마저 실성했다는 소문을 들은 레어티스는 유학 중이던 프랑스에서 은밀히 귀국하여 다짜고짜 왕궁으로 들이닥칩니다. 왕으로부터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레어티스는 부친을 죽인 햄릿에게 복수하기를 갈망하지요. 마침 그때 영국으로 보내졌던 햄릿이 (죽지도 않고) 왕궁으로 되돌아오고 있다는 전갈이 도착하고, 왕은 햄릿과 레어티스와의 검술시합을 핑계 삼아 햄릿을 독살할 계략을 꾸미지요. 레어티스는 자신의 칼에 미리 독약을 바르고, 왕은 독이 든 술잔을 준비하기로 하지요. 이런 와중에 오필리어가 익사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오필리어>


마지막 5막에서는 묘지기 두 사람이 등장하여 무덤을 파는 동안 해골을 던지며 인생무상을 노래하지요. 지나가던 햄릿과 호레이쇼가 이런 모습을 보면서 인간 삶의 무상함에 대해 다시 한번 세밀한 고찰을 전개합니다.


호레이쇼, 우린 얼마나 천한 쓰임새로 돌아가나! 흠, 알렉산더 대왕의 고귀한 유골이 술통 아가리를 막을 때까지 상상으로 추적해 보면 안 될까?


알렉산더는 죽었다. 알렉산더는 묻혔다. 알렉산더는 가루로 변한다. 가루는 흙이고 그 흙으로 회반죽을 만든다면 왜 그의 변신인 회반죽으로 맥주 통을 못 막지?


황제 같은 시저 또한 죽은 다음 진흙 되면

병아가리 바람 마개 되는 수도 있으리라.

아, 세상을 떨게 하던 그 흙덩이 몸뚱이가

겨울바람 막으려고 벽 구멍을 때우다니.


곧이어 관을 멘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 무덤엔 오필리어가 묻히게 되죠. 뜻밖에 왕과 왕비, 레어티스와 마주친 햄릿은 오필리어의 무덤 앞에서 그녀의 오빠와 소란스러운 언쟁을 벌이다가 헤어지지요.


5막 2장에서는 호레이쇼와 햄릿이 등장하여 저간의 사정들을 밝힙니다. 햄릿을 제거하라는 국왕의 비밀문서를 햄릿이 어떻게 교묘하게 바꿔치기했는지, 햄릿과 동행했던 길든스턴과 로젠크랜츠가 어떻게 도리어 목숨을 잃게 되었는지가 드러나지요. 곧이어 햄릿과 레어티스의 검술시합을 두고 국왕이 내기를 걸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데, 호레이쇼는 햄릿이 그 시합에 질까 걱정하며 말리고 나서지요.


전혀 그럴 것 없네. 우린 전조를 무시해.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데도 특별한 섭리가 있잖은가. 갈 때가 지금이면 아니 올 것이고 아니 올 것이면 지금이겠지. 또 지금이 아니라도 오기는 할 것이고. 마음의 준비가 최고야. 누구도 자기가 남기는 게 무엇인지 모르는데 일찍 떠나는 게 대수란 말인가?


탁자와 술잔이 준비되고, 햄릿과 레어티스는 검술시합에 돌입하지요. 시합 도중 거트루드 왕비가 아들에게 행운을 빌면서 (왕이 말릴 틈도 없이) 독이 든 술잔을 마시고, 시합 중에 레어티스가 독이 묻은 칼로 햄릿에게 상처를 입힙니다. 난투 중에 그들은 칼을 바꿔 쥐게 되고, 햄릿의 칼은 레어티스를 찌릅니다. 왕비가 독살됐다고 소리치며 쓰러지고, 레어티스로부터 왕의 흉계를 들은 햄릿은 왕을 찔러 죽입니다. 레어티스와 햄릿은 죽어가는 중에도 서로 화해하며, 햄릿은 호레이쇼에게 이 끔찍한 사태를 후세에 알려달라고 부탁하지요.


오 이런, 호레이쇼, 이 사태를 이렇게 덮어 두면

내 이름에 얼마나 큰 상처가 남겠는가!

자네가 날 마음속에 품은 적이 있다면

천상의 열락일랑 잠시 동안 미뤄 두고

이 험한 세상에서 고통 속에 숨을 쉬며

내 사연을 말해 주게.

(5막 2장)


이렇게 끝나는 비극 『햄릿』은 연극무대에 올려진지 400년도 더 지났지만 여전히 가장 실험적인 극으로 남아 있습니다. 『햄릿』이 그저 친부살해범에 대한 단순한 복수극으로만 다가오지 않는 까닭은 『햄릿』속에 너무나 많은 생각할 거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지요. 


햄릿에 대한 불쾌함은 그가 너무 많이 생각하는 게 아니라 너무 잘 생각한다는 점


셰익스피어가 소네트에서 흔히 그러했듯이 햄릿은 의지에 대해서 숙고한다. 우리는 행동할 의지가 있는가? 마지못해 움직이는 것인가? 의지의 한계는 무엇인가? 햄릿의 광대한 의식은 사고의 끝이 무언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종말을 의도한 모든 관련된 불확실성에 대해 어떻게 충분히 인식하는가?


니체가 인식하듯이 햄릿에 대한 불쾌함은 그가 너무 많이 생각하는 게 아니라 너무 잘 생각한다는 점이다. 햄릿은 예술을 향하지 않으면 진실에 의해 죽을 것이다. 햄릿은 귀족 중에서도 왕족이므로 지성적인 행위에 대해 지극히 회의적이면서도 그것에 대한 향수에 사로잡혀 있다.


양심이 우리를 겁쟁이로 만드는구나.

결단의 선명한 색채가

망설임으로 창백해지고 침울해짐으로 녹슬고 만다.

지극히 중요한 거대한 과업도

이 때문에 그 흐름이 틀어지고

실천의 힘을 잃고 마는구나.                                 ㅡ 3막 1장 (387∼388쪽)



 - 헤럴드 블룸, 『교양인의 책읽기』중에서

 

『햄릿』은 걸작들이 흔히 그러하듯이 읽으면 읽을수록 새롭게 느껴져 마치 다른 작품을 보는 듯하다는 평을 듣는 작품이지요. 또한 '우리는 햄릿이 되어야만 햄릿을 엿볼 수 있다.'는 평도 듣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셰익스피어의 모든 희곡 가운데 가장 독창적인 작품에 드러나는 기법이지요.


디오니소스적 인간은 햄릿과 유사하다. 양자는 우선 사물의 본질을 올바로 들여다보았다. 그들은 인식했다. 그리고 행위 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구토를 불러일으켰다. 왜냐하면 그들의 행위는 사물의 영원한 본질을 조금도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지리멸렬한 세계를 다시 정돈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우스꽝스럽거나 치욕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인식은 행위를 죽인다. 환영에 의해 베일이 드리워진 상태가 행위에 속한다 ㅡ 이것이 햄릿의 가르침이다.


- 니체,『음악의 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 7장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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